안담, 작가-친구-연습
어딘글방에서 우리는 작가 되기뿐만 아니라 작가의 친구 되기도 훈련했다. 인용하는 연습뿐만 아니라 인용당하는 연습도 했다. 기꺼이 서로의 글감이 되어 줄 수있는가? 글방에서 우정은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어떤 경험과 말에 ‘내 것‘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치사하고 쩨쩨한 처사였다. 누가 나를 글에 써서 분하다면 나도 그를 글에 쓰면 된다. 공동으로 겪은 하루를한 사람은 글로 써 오고 한 사람은 만화로 그려 오는 풍요가 글방에는 있었다. 아직 쓰이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내 이야기였어야 할 이야기‘라거나 ‘내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라는 표현은 틀렸다. 그가 썼다면 그의 이야기인 것이다. - P22

언제부턴가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의 뛰어난 문장과 생각을 모셔와내 글의 부족함을 만회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그 대가로 나도 내 말을 그들에게 헤프게 준다. 이제는 친구들이 나를 어디서 어떻게 인용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나는‘이라고 너무 많이 쓰다가 그렇게되었다. 원없이 ‘나‘라고 써놓고보니 그 많은 나가 다나일 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엇이라고 쓰는 순간 나는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진다. 나는 무엇도아니다. 그러므로 내말은 너의 말도, 그의 말도 될 수있다. - P29

이연숙, 비우정의 우정
그러나 분명 우호적인 관계를 못 맺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 역시도 우정이라는 개념을 경유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상적이라 말해지는 사회 규범에 도무지 적응할수 없는 괴짜들(queer)이 속할 수 있는 가장 미약한 공동체를 상상하기 위한 용어로 ‘비(非)우정의 우정‘을 제안한다. 비우정의 우정이란 너와 나의 ‘같음‘이라는 유사성과 동일성에 기반을 둔 우정이 아니다. 오히려 너와 나의 ‘다름‘이라는 불화와 불일치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너와 나의 ‘특별함‘ 또는 ‘유일무이함‘이라는환상이 들어설 자리를 너와 나라는 ‘아무나‘의 우연한마주침으로 채운다. 너와 내가 결코 같지 않고 앞으로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너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혹은너를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처럼 영원히 반복될 너라는 대상을 향한 나의 오해와 오독에는 일종의 충실성이 있다. - P39

김영민이 『동무론』에서 제시한 비우정의 우정은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사에서 유구하게 반복되어 말해진 주제다. 다시말해 우리가 우정이라 부르는 관계는 ‘나는 그를 안다‘는 긍정이 아니라 ‘나는 그를 모른다’는 부정에서, 혹은 그런 긍정과 부정의 사이 또는 겹침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주제에서 가장 유명한 경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고전해지는 "친구여, 친구가 없구나(O friend, there is nofriend)‘일 것이다. ‘친구‘를 돈호하는 동시에 ‘친구‘의부재를 확인하는 이 수수께끼 같은 경구는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에 의해, 그리고 『우정의 정치학에서 데리다에 의해 전유된다. 하지만 조르조 아 - P45

감벤에 따르면 그들은 전략적으로 그리스어 원전을 오독했다고 한다. 원전의 의미는 ‘친구가 많은 자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 P45

흥미롭게도 푸코의 우정론의 토대가 되는 ‘비인격적 친밀감‘은 로넬의‘커피나 한 잔‘에 대한 혐오, 김영민의 ‘서늘한 관계‘에대한 옹호, 아감벤의 ‘함께-나님‘과 공명한다. 이처럼친구의 정체성도, 과거도, 얼굴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비우정의 우정이 제기하는 문제는, 내가 너를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P51

김정은, 자기 언어를 찾는 방법
1984년 결성된 ‘또 하나의 문화‘는 조형, 조한혜정, 조옥라, 장필화 등이 남녀평등 문제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대안 문화를 모색하고자 한 동인 모임이다. [1] 줄여서 ‘또문‘이라 불린 이들은 계급 담론과 노동자 정체성이 특권화된 1980년대 대항 공론장에서 노 - P57

동 현장이 아닌 가정과 학교 등을 새로운 현장으로 부각했다. 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 등에 소속된 동인들은 서울 신촌 지역에 사무실을 차리고, 이를 근거지로삼아 여러 모임을 주관했으며 모임의 결과물을 정리하고 다듬어 무크지 <또 하나의 문화》(1985~2003년)를펴냈다. 활자 매체를 통한 운동으로 20여 년 동안 한국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제를 발굴했다. - P58

현재 출판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길보라, 이슬아, 하미나 등 1990년대생 여성 필자들은 모두 같은 글방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자기 언어를 찾았다. 어딘글방을 운영한 김현아는 또문이 인큐베이팅한 대안학교하자센터의 교사였으며, 글방은 또문의 사무실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집단에서 서로의 언어를 찾아가는 우정이라는 방법은 단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도 자기 언어를 갱신하는 구체적 훈련 방식으로 활용된다. - P59

[10] 김혜순은 2002년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출간을 기념한 한인터뷰에서 ‘문화권력모임‘과 관련한 질문에 특히 바리데기와 관련해 "김성례 교수에게서 많이 배웠다."라고 말했다. "당시 미셸 푸코가 유행하면서 여기저기 ‘권력‘이란 말이 붙어다녔다. 토론 결과를 책도 내지 말고 세상에 알리지도 말자는 모임이었다. 서강대 종교학과 김성례 교수에게서 많이 배웠다. 바리데기는 기본 뼈대만 같은 이본(異本)이 수십 종이고, 그것들은 각각 연희 때마다 살아 있는 텍스트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리데기를 글로 읽지 않고 파동으로 받아들이면서 흡수하게 된 것이다." "강요된 주부엄마의 정체성 벗고 싶었다"」, 《조선일보》, 2002년 1월 3일. - P65

김예나, 털 고르기를 하는 시간
동성애의 생물학적 기원을 설명하는 연구 자료는매우 많고, 실제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서 동성 간 섹스는 많이 관찰된다. 하지만 동성 간 섹스를 하는 동물에게 찾아가 방금 섹스를 한 당신의 파트너가 연인인지그저 친구일 뿐인지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사랑과우정의 명확한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답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사랑과 우정은 사람이 만들어 낸 단어에 불과하다. 시공간에 따라 유동적인 개념이며 문화나 개인에 따라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 P82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타인과의 연대를 추구하고 그러한 연대를 통해 신체적, 심리적 안정을 얻으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리 지어 사는 모든 동물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 P82

김지은, 비둘기와 귀얽히는 영역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체로 욕실을 나온 후, 자신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의 시선에 돌연 부끄러움을 느낀다. 언제나 발가벗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늘 발가벗고 있지 않은 암컷 고양이 앞에 인간 남성이 전라의상태로 서서 고양이의 눈길을 온몸에 받는 상황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거북함을 자아낸다. 데리다는이 곤란한 만남을 동물적 만남이라고 명명하고, 그 만남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도출한다. - P92

비슷한 맥락에서 호주 페미니스트 생태철학자 발플럼우드가 들려주는 먹이 이야기는 ‘풍요롭고 호의적인 자연‘이라는 안일한 환영이 어쩌면 도시인이 덧씌운 ‘낭만화된 자연‘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녀는 1985년 2월 호주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홀로 카약을 타던 중 바다악어에게 허벅지를 물린채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죽음의 소용돌이‘를 세 번이나 겪는다. 악어의 공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생존한플럼우드는 만물의 주인으로 군림해 온 인간이 먹이로 전락한 사건 속에서 일종의 환영을 발견한다. - P101

김경채, 일본인이 되는 문제
식민지라는 극단의 시공간은 마음을 증명하고 판단하는 일이 권력 및 권리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한국과 일본을 지우고 질문을 이렇게 - P123

바꿔 보자.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대한 판단을 멈출수 있을까?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의심과 불안을 견디고 타자와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이것은결코 아름다운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생명에의 위협을 감수하고도 언젠가 나에게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는 타자의 존재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급진적인 물음이다. 나는 이런 물음들과 마주하는 것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가 혹은 민족의 구심력에 대항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 P124

김민하, 정치에서 우정 찾기
모두가 자기는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면서 남의 말에는 책임을 지우는 게 오늘날의 온라인 화법인 셈인데, 바로 이 점이 온라인상의 정치적 분쟁을 격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이게 대의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정치를 인식하는 일반적 방식과 결합하면 부정적 효과는 배가된다. - P159

장현정, 바닷가 동네의 친구들
우정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의 도움 그 자체보다는 우리 친구들이 틀림없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그 확신이우리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인간은 불안과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의 믿음 체계를 구성해 왔다. 먼 옛날에는 종교가, 이후로 국가나 민족이, 요즘에는 돈이라는물신(物神)이 사람들을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믿음 체계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종교나 민족이나 돈처럼 거대하거나 창백한 가치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대상을 믿는다. 사람 말이다. - P178

추주희, ‘호구’가 되는 우정
이후 나는 도시의 공동 주거 경험과 또래 관계에서 새로운 친밀성과돌봄의 지형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팸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팸은 가출이 장기화되거나 가족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탈가정 청소년들이 주거와 생활비를 해결하기위해 또래들과 함께 사는 방식이다. 가출한 후에 생계와 안전 그리고 정서적 유대를 도모하는 유일한 자구책인 셈이다. 그만큼 쉽게 해체되기도 한다. - P188

때때로 어떤 팸은 조건 만남이나 마약성 물품 판매 등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 유지된다. 그러한 불법적인 일로 현재의 삶을 돌보는 관계를 유지한다. 삶의 불법성과 돌봄의 필요성이 교차하는 관계에서 분명한 것은 서로를 돌보는 과정이 의미 있는 삶의 순간으로 경험된다는 점이다. 진짜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관계, 어쩌면 폭력성이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관계에서돌봄과 친밀성이 구성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영지와 그 팸 구성원은 서로 마땅히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팸에서 돌보는 자, 그러니까 호구를 일방적으로 - P198

착취당하는 피해자로만 보면 돌봄과 친밀성의 관계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돌봄과 폭력은 의존관계에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물론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폭력 속에서도, 폭력을 뚫어 내고서 팸 생활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이유를 돌이켜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들은 원가족을 벗어나서 새로운 가족 실천을 통해 자신이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매번 몸소 부딪혀서 배우고 결정해 간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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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빠서 <페이드 포>에 대해 더 쓰지 못했지만. 이것만은 남겨놓으려고 짧게 쓴다.
이 책 초반부에 나온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생각지도 못한 용어. 성매매와 라이프 스타일이라니!
그러나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단어를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모랜의 말이 얼마나 적확한지 알게 되었다.
성매매 만큼 한 개인의 인생에 지배적인 라이프 스타일이 어디 있겠는가.


성매매와 관련해서는 ‘직업‘이라는 말보다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을 생각할 때 주로 특정한 이미지들을 머릿속에 떠올린다. 칵테일, 커피, 크루아상 혹은 요트와 항만 같은 부자들의 여유롭고 흥미로운 휴가 말이다. 어쩌면 육아와 대출금, 일상의 출퇴근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상기시키고자 하는 이미지들은 이러한 것들이 아니다.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할 때, 사람들의 대부분은, 심지어 성매매 당사자들조차도, 호텔이나 뒷골목에서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있는 여성을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라이프 스타일의 모습과 들어맞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말은 단순히 ‘사람이 사는 방식‘을 뜻하고, 성매매는 간단히 집 문밖에 두고 들어올 수 없는 것이기에 라이프 스타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맞다. 다른 업계의 노동자는 집에 와서 직업적 역할을 벗어버릴 수 있지만, 성매매 당사자는 복잡하게 얽힌 여러 요인들로 인해 그럴 수가 없다.
첫째로,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공개적으로 밝힐 수 없기 때문에 비밀에 매여 ‘평범한‘ 사회 구성원들과 거리를 두게 되고 매우 구별된다. 하루가 어땠는지, 다음 주의 계획이나 전날 있었던 끔찍한 경험 등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유일 한 일행은 다른 성매매 당사자들뿐이다. 성매매에 유입되었다는 이유로 조롱하지 않을 유일한 사람들이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는지, 왜 그곳에 남아 있는지, 왜 떠날 수 없는지 전적으로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행이다.
한 부류의 사람들과 일행이 되면서 동시에 다른 이들과는 어울릴 수 없게 된다. 한 가지 이유만 있는 것은 아니다. -3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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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23-10-31 18: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일회성으로 딱 들어가서 돈 벌고 휙 나오고 원하는대로 고르고.. 이런 게 불가능한 ‘라이프스타일‘! 그 용어 사용이 신선하더라고요. 읽을수록 딱 맞고요^^

햇살과함께 2023-10-31 18:44   좋아요 2 | URL
그죠 그죠 모랜 넘 똑똑!
이 책 장마다 나온 인용구도 좋아서 그 책들도 찾아봐야지하곤.. 생각만 했네요
수하님을 소환해야 하나 ㅋ

독서괭 2023-10-31 19:25   좋아요 1 | URL
목록수하 소환 ㅋㅋㅋ

다락방 2023-10-31 21:00   좋아요 1 | URL
목록수하 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11-01 18:58   좋아요 0 | URL
수하님 어디 가셨지???

건수하 2023-11-02 08:24   좋아요 0 | URL
어디서 보고 지나갔었는데 여기 있었군요. 전 인용된 책 중 딱히 궁금했던 책은 없었는데…. 게다가 단발님은 벌써 한 권 읽으셨다니;

다락방 2023-10-31 21: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타락의 상호작용이 정말 인상깊었는데 햇살과함께 님은 라이프 스타일 이었군요! 정말 대단한 작가입니다. 자신이 살아온 사간을 언제나 진지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햇살과함께 2023-11-01 18:58   좋아요 0 | URL
저도 그 부분도 좋았지만, 라이프 스타일은 정말 초반에 나와서 너무 충격적이었어요!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깨달음. 계속 글을 써주면 좋겠어요!
 
지금은 대만을 읽을 시간
서울중국어교사회 지음 / 민규 / 2023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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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크기의 1/3 밖에 안되는 대만에 무려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이 260여 개나 있다니! 트래킹 가고 싶다! 우리나라 만큼이나 굴곡진 역사의 대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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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을 찾아서 떠나 볼 첫 번째 장소는 <말할 수 없는 비밀>(2007)의 촬영지 단수이(淡水)이다.
이 영화는 주로 단수이에 위치한 단장고등학교와 인근 명소에서 촬영했다. 단수이는 타이베이 시내에서 MRT(전철)로 이동이 가능해 교통이 편리하며 접근성이 좋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칭이가 교정을 걸으며 막 전학 온 샹룬에게 전학을 온 이유를 묻자, 샹룬은 "교정이 예뻐서"라고 대답한다. 영화의 감독이자 주연 배우인 저우제룬(周杰倫)은 모교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 영화의 촬영지로 모교를 선택했다고 한다. - P15

대만 출신 리안 감독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를 영화로 제작한 <라이프 오브 파이>(2012)에서 미어캣이 사는 식인섬으로 등장한 곳이 바로 컨딩이다. 또 마지막 장면에서 호랑이가 거니는 멕시코의 어느 해변으로 등장한 곳도 사실은 컨딩의 바이사완(白沙灣)이다. 바이사완은 물이 투명하며 모래가 곱고 부드러운 백사장으로 유명하다.
컨딩 투어 버스를 예약하면 컨딩의 관광 명소를 동선에 맞춰 편하게 둘러볼 수 있다. 자유롭게 관광하고 싶다면 해안도로에 있는 스쿠터 전용 도로를 따라 전동 스쿠터를 타고달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 P27

우리나라 OTT 서비스에서 제공되며 큰 인기를 얻은 대만 드라마는 〈상견니〉(2019)다. ‘네가 보고 싶어‘ 라는 뜻의 이 드라마는 1998년 타이난과 2019년 타이베이를 배경으로 한 타임 슬립 로맨스이다. 여주인공이 우바이(伍佰)의 노래 ‘Last Dance‘를 들으면 타임 슬립에 빠지는 설정때문에 1996년에 발매된 이 노래가 드라마 방영 이후 역주행하기도 했다. - P35

1931년 일본이 만주를 침범하자 국민당 정부는 자금성에 전시되었던 유물들을 상하이(上海)로 옮겼고, 1937년중 · 일전쟁이 발발하자 상하이에 있던 유물들을 다시 난징(南京)으로 옮겼다. 그 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에 밀린 장제스 국민당 정부는 훌륭한 유물들만 엄선하여 1948년 대만으로 보냈다. 당시에는 전시 공간이 마땅치 않아 지하 벙커에 보관하고 있다가 1965년에야 국립고궁박물원을 개관하였다.
대만에는 중국 역대 왕조의 수도였던 도시가 없었기 때문에 궁궐이란 말을 쓸 수는 없으나 유물의 출처인 베이징 자금성을 연상할 수 있도록 국립고궁박물원이라 명명하였다. 이처럼 사연 많은 국립고궁박물원은 중국 역대 왕조의 유물들을 망라해서 보여주고 있다. - P52

타이베이는 청나라 초기까지 소외되었던 지역이었지만, 이지역을 가로질러 흐르는 단수이강 유역이 차(茶)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도시로 성장하였다. 1895년 청 · 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만을 점령한 후 1900년부터 도로와 상하수도 시설, 서구화된 건물을 세우면서 타이베이는 현대도시로 탈바꿈했다. - P59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한 대만은 낡아 보이는 수도 타이베이를 새롭게 단장하기 위한 ‘세계 최대 규모의 빌딩 프로젝트’를 세운 후 ‘타이베이 101빌딩‘ 건설을 서둘러 추진하였다.
이 공사는 대만 역사상 가장 큰 스케일의 토목공사로 총 공사 기간 5년, 비용도 2조원을 넘게 투입하여 마침내 2004년 12월 31일 성공적으로 완공하였다. ‘타이베이 101빌딩’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도시 전체에서 가장 돋보인다. 건물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지상 101층, 높이 509m로 2010년까지 세계 최고층 높이의 빌딩이었다. - P60

대만은 아열대 기후이기 때문에 눈을 거의 볼 수 없다. 그래서 겨울이면 많은 대만 사람들이 우리나라 스키장으로 눈을 구경하러 온다. 그런데 대만에도 눈을 볼 수 있는 곳이있다. 바로 위산(玉山)이다.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이 해발 2,744m인데 대만은 해발 3,000m가 넘는 고산이 무려 260여 개나 있다. - P65

대만 사람들은 한국의 대중문화를 가장 많이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인 열풍을 뜻하는 ‘한류‘라는 신조어를 처음 만들어낸 곳, ‘한류‘의 발생지이자 ‘한류’ 확산의 거점이 바로 대만이다. 하지만 그 시작은 매우 미미했다. - P105

금기를 다룬 대표적인 영화는 1989년에 상영한 허우샤오셴의 <비정성시>-슬픔의 도시-인데, 1945년 해방 당시의 대만 상황을 잘 그려낸 작품이다. - P122

대만은 왜 1912년을 기념하고 싶은 걸까? 그해 중국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19세기말 청·일전쟁에서의 패배로청나라의 무능함이 드러나고 서구 열강들의 침탈이 가속화되자 중국의 지식인과 국민들의 불만이 폭발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때 새로운 중국을 만들기 위해 혁명의 필요성을 주장하며 등장한 사람이 바로 쑨원이다. 쑨원은 중국 근대 - P189

사의 새 장을 연 인물로 대만과 중국 두 지역에서 모두 국부로 숭상하는 혁명가다. 호가 중산이어서 쑨중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그는 중국 최초로 반청, 공화, 무력 혁명을 주창한 인물로 중국의 국가 기본 이념인 민족, 민권, 민생의삼민주의를 제창했다. - P190

그 후 대륙에서 이주한 국민당이 통치를 시작한 후 외성인이 본성인을 억압하고 산지를 개발하면서 원주민의 호감을샀다. 그래서 상당수의 원주민은 지금도 본성인 위주의 민주진보당보다 외성인 위주의 국민당을 지지하는 편이다.
대만 원주민은 약 58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약 2%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문화는 다양하고 특색이 있다.
아메이족은 약 21만 명으로 대만 원주민 중 인구가 가장 많다. 아메이족은 대부분 대만의 동부지역인 화롄, 타이둥 등산악지대나 동부 평원에 거주하고 있다. - P198

대만은 기본적으로 이주민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대만 섬의 원래 주인이었던 원주민, 중국 푸젠성에서 이주해 온 민남인(閩南人), 북방 민족의 침략에 이주해 내려온 객가인, 1949년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이주해 온 중국 각지의 외성인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대만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다민족 공동체이다. 이들은 오랜 기간 지배당했던 아픈 역사를 통해 서로 관용을 베풀고 포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 P223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책을 잘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대만의 서점이다. 대만의 서점 가운데 가장 가볼 만한 곳은 청핀(誠品) 서점이다. 1989년 문을 연 이 서점은 대만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곳으로, 현재 대만과 홍콩, 중국, 일본 등에 40여 개의 점포가 있고, 대만에만 직원이 약 700명 정도나 되는 명실상부한 대만의 대표 서점이다. - P229

대만 전체 인구 약 2,350만명 가운데 명·청 시기에 이주해 온 본성인은 대략 70% 정도이고, 1945년 이후 국민당정부와 함께 이주해 온 외성인은 14% 정도를 차지한다.
다음은 객가인으로 외성인과 비슷하게 전체의 14%를 차지한다. 객가인이란 혈통적으로는 한족이지만, 전란과 재해등을 피해 중원을 벗어나 중국 대륙의 남부인 푸젠(福建), 장시(江西), 광둥(廣東) 등지에 모여 살며, 외부인과의 접촉을 최소화한 채 자신들만의 고유한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사는 사람들을 말한다.
객가인 중에는 유명한 사람도 많은데, 중국 대륙과 대만에서 모두 국부로 여기는 쑨원, 중화인민공화국의 개혁개방을 주도한 덩샤오핑(鄧小平), 대만의 총통을 역임한 리덩후이(李登輝),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 태국의 총리 남매 탁신 · 잉락 친나왓 등이 모두 객가인이라고 전해진다. 그리고 소수이지만 고대부터 대만 섬에 가장 오랫동안 살아온 16개 종족의 원주민이 2% 정도다. - P256

대만에는 고대로부터 살던 원주민, 명·청 시기 이래로 살던 한족, 20세기 중반에 이주한 한족, 그리고 객가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들만의 역사와 문화가 있다. 그리고 그들 - P264

은 대만이라는 공간에서 3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다른 나라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식민 지배를 받아온 역사가 있다. 따라서 대만이 일본에 대해 우호적인 것도 자신의 이익을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 P265

6년의 집권 이후 리덩후이는 대만 사상 첫 직선제 총통으로 다시 당선되며 민주적인 정치의 시작을 알렸다.
그리고 마침내 2000년에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는 민주진보당의 천수이볜이 당선되며 60년에 걸친 국민당의 독재도 막을 내렸다.
당시의 투표율은 82.6%(역대 투표율 1위)에 달했는데, 대만 국민들의 민주주의와 정권교체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컸는지를 잘 보여준다. - P295

대만에 가면 동먼역 근처 타이베이 교도소 유적지를 찾아 조명하 의사를 기억하며 묵념해 보자. 조국 땅에 있는 아내와 어린 아들을 돌보지 못한 채 나라를 잃은 청년이 쓸쓸히 타지에서 순국했을 때의 마음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그분의 의거가 헛되지 않을 것이다. -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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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0-31 09:0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과함께님 대만 여행 가시나 봅니다 ^^

햇살과함께 2023-10-31 16:3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 눈치 빠르신 건수하님^^ 11월에 가려고 공부 중입니다^^

건수하 2023-10-31 17:38   좋아요 1 | URL
저는 6월에 다녀왔지요. 맛있는 게 엄청 많았어요 ^^
처음 가시면 타이페이 주변만 보셔도 볼 게 많아요.
예류+스펀+지우펀 투어도 좋았구요.

전 전에 타이루거 가봤었는데 거기도 엄청 멋있었습니다.

가오슝은 생각보다 별로라고 하더군요 (지인들이).

참고만 하셔요 :)

햇살과함께 2023-10-31 18:08   좋아요 1 | URL
아 다녀오셨군요~~ 조용히 다녀오셨나요? 아님 저의 기억력 문제인가?
저도 친구가 가오슝은 별로라고 해서 타이페이와 근교만요~
대만여행은 열심히 돌아다녀도 살찌는 여행이라고 하던데 ㅎㅎ
빨리 가고 싶네요!

건수하 2023-10-31 18:10   좋아요 0 | URL
네 서재에는 안 쓴 것 같아요 ^^
 

파블로 세르비뉴와 라파엘 스테방스는 《붕괴의 사회정치학》에서, 이대로 가면 금융적 붕괴, 경제적 붕괴, 정치적 붕괴 그리고 사회적 붕괴는 불가피할 것이라고 본다. 정부가 당신을 돌봐줄 것이라는 희망이사라지고 동료가 당신을 돌봐줄 것이라는 믿음마저 사라진 다음에는, ‘인류의 선함‘에 대한 믿음마저 잃게 되는 문화적 붕괴까지 일어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이다. - P83

이보 모슬리는 《민중의 이름으로》(녹색평론사, 2022)에서 대의민주주의란 민중이 아니라 중간계급이 권력을 잡고 민중의 이름으로 통치하는 위선적인 체제라고 대놓고 비판한다. 서구의 근대사회가 이런 대의민주주의를 다른 나라들에 적극적으로 수출했고, 그렇게 수출된 선거대의제는 사회의 분열을 초래하고 신흥 엘리트들에게 권력을 몰아줬으며 민중의 경제적 독립성을 빼앗고 시민사회의 황폐화를 불러왔다. 대의민주주의를 외친 정치인들은 민중이 아니라 은행, 기업들과 손을 잡았고, "인간의 삶과 행위의 전 영역에서 기업구조가 공민적 구조를 대체해왔고, 전 세계가 부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개조되고 있다"(188쪽). 그 결과 "부유층과 빈곤층 사이에 거대한 골이 생겨나고 있다"(54쪽). 대의민주주의는 대안이 아니라 파국의 원인이다.
이런 설명에는 충분히 공감이 되지만 모슬리의 설명을 한국식으로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는 영국처럼 중간계급이 젠트리에 의한 정부를 세우기 위해 싸우지 않았고, 식민지와 한국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대의민주주의조차 전면에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방 이후 미군정을 통해 선거대의제가 도입된 것은 맞지만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면서 중간계급이라 불릴 수 있는 계층이 거의 사라졌다. 그리고 강력한 반공 이데올로기는 선거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하게 했고 진보정당, 진보정치의 등장을 봉쇄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선거 이상을 주장하거나 민중이 직접 권력을 쥐자고 주장하기 어려웠다. - P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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