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입문자를 위한 구조주의 해설서이다. 수박 겉핥기 정도. 겉도 다 핥는 건 아니고 혀만 살짝 닿는 정도가 아닐까. 그렇지만 표지의 무시무시한 4인방의 이름과 구조주의라는 난해한 개념을 얇은 분량에 담아 읽기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책이다.

먼저, 구조주의의 땅고르기에 큰 역할을 한, 사고의 전환, 관점의 전환을 가져온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가 간략하게 언급되고, 구조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인 언어학자 소쉬르의 언어학 개념에 대해, 그리고, 구조주의 4대장 푸코, 바르트, 레비스트로스, 라캉의 핵심적 관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읽을 땐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되는 듯하지만(라캉은 그마저도 안 된다) 책을 덮으면, 아니 다음 페이지를 펼치면 앞의 내용은 머리 속에서 사라진다. 그저 몇 명의 이름과 몇 권의 책 제목만 남았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에 대해 생각한다. 무지는 저자의 말 대로 단순이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알고 싶지 않음, 모르고 싶음의 성실한 축적의 결과다. 세상의 이치에 호기심이 없고 복잡하게 생각하고 싶지 않은 나는 무지한 사람이다. 계속 무지하게 살고 싶은 사람이다. [The Giver]의 구조화된 Sameness 사회 속에서 잘 살고 있다고 착각하며 성실하게 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가끔 이런 책을 읽으며 나의 무지를 자각하는 순간들이 나쁘지만은 않다. 느리지만, 금세 잊어버리지만, 그 끈을 놓지 않아야겠다.

푸코의 ‘표준화', 레비스트로스의 증여의 관점에 관심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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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6-04-25 11: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도서관 책으로 읽었는데, 담에 꼭! 다시 하고 메모해 두었던 책입니다. 우치다 다쓰루도 제 컬럭션에 들어 있는 작가구요.
구조와 sameness에 대한 이야기 또 해 주세요~~~ 관심이 많아요, 제가^^

햇살과함께 2026-04-25 11:54   좋아요 2 | URL
저도 이 작가 책 더 읽어보고 싶어요! 제가 말해드리고 싶지만 말이 안나오는 ㅠㅠ 공부해서 머리에 구조를 좀 채워야겠어요 ㅠㅠ

서곡 2026-04-25 13: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해서 머리에 구조를 좀 채워야겠어요 ㅠㅠ˝ 눈물과 미소가 동시에 나옵니다 ㄷㄷㄷ 응원해요!!! 햇살님 남은 이 달 잘 보내시길요~~~

햇살과함께 2026-04-25 20:49   좋아요 1 | URL
서곡님 응원 감사합니다^^ 어려워요 어려워~ 울고 있습니다 ㅎㅎ
 

레비스트로스(1908~2009)는 소쉬르의 직계인 프라하학파의로만 야콥슨과의 만남을 통해서 학술적인 방법을 단련한 문화인류학자입니다. 그는 야콥슨으로부터 힌트를 얻어 친족구조를 음운론의 이론 모델로 해석하는 대담한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이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친족의 기본구조』나 『슬픈 열대』를 저술하는 등인류학의 현지조사를 통해 학문적 업적을 쌓아 올린 레비스트로스는 야생의 사고에서 장 폴 사르트르의 『변증법적 이성비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이를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5년 동안 프랑스사상계에 군림해온 실존주의에 실질적인 사망선고를 내리게 됩니다. - P153

레비스트로스가 비난한 것이 바로 이 점입니다. 주체는 주어진 상황의결단을 통해서 자기형성을 한다는 점에서 실존주의와 구조주의의차이는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상황 속에서 주체는 늘 ‘정치적으로옳은 선택을 해야 하고 그 ‘정치적 올바름‘은 마르크스주의적인역사 인식을 전제해야 한다는 단계에 이르러 구조주의는 실존주의와 결별하게 됩니다. - P159

이 일반적인 호혜 형식이 밝혀지지 않고 있었던 것은 각각의 그룹이직접적으로 상대편과 주고받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줄 상대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며 얻은 자에게 돌려주는 것도 아니다. A는 B에게 주고 다른 C로부터 받는다는 식으로 전체는 하나의 방향으로만기능하는 호혜의 순환을 이루는 것이다. 구조인류학에서-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인류학적 견해는 우리를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끕니다. 레비스트로스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나 ‘보 - P179

편적인 가치관이 아닙니다. 사회집단마다 ‘감정‘이나 ‘가치관은놀라울 정도로 다양하지만 그것들이 사회 속에서 기능하고 있는방식은 단 한 가지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지요. 인간이 타자와 공생하기 위해서는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든 집단에 적용되는 규칙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사회는 동일한 상태로 계속 있을 수가 없다‘와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다면 먼저 타자에게 주어야 한다‘는 두 가지 규칙입니다. - P180

중요한 것은 이 형태가 ‘자아‘가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인지를 결정하기에 앞서서 사전에 허구의 계열 속에 ‘자아‘의 심급을 정한다는것이다. 이 자아는 결코 개인에 의해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며, 이런 말을 해도 좋다면 주체의 미래와 오직 점근선적漸近線的으로만합류할 수 있다. 변증법적인 종합에 의해 주체가 언젠가 ‘나‘로서 자기 고유의 실체와의 불일치를 훌륭하게 해소한다고 해도. (중략) ‘나‘와 그 상 사이에는 몇 가지 조응照應관계가 있는 까닭에 ‘나‘는 심적항상성을 유지하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이 자기를 깔보는 유령이나 ‘꼭두각시‘에 자기투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기능을 형성하는 것으로서의 거울 단계에서

인간은 ‘내가 아닌 것‘을 ‘나‘라고 가정하는 것에 의해 ‘나‘를 형성한다는 ‘외상‘을 깔고 인생을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나‘의기원은 ‘내가 될 수 없는 것‘에 의해 담보되어 있고 ‘나‘의 원점은 ‘나의 내부‘에 없습니다. 이것은 가만히 생각해보면 매우 위험합 - P189

니다. 왜냐하면 자기의 외부에 있는 것을 ‘자기‘라고 생각하고 거기에 매달려야만 간신히 자기동일성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거울 단계를 통과하는 방법에 의해 인간은 ‘나‘의 탄생과 동시에 일종의 광기에 시달리게 됩니다. - P190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으로 옮기는 과정을 통해 억압을 해제하고 증후 형식을 위한 여러 조건을 제거하며 병의 원인이 되는 갈등을 어떤형태로 해결할 수 있는 정상적인 갈등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정신분석입문』에서

프로이트는 그것이야말로 정신분석의 일이라고 단언합니다. 그 본질적인 몸짓인 ‘다른 것을 드러내는‘, ‘번역하는‘, ‘이전하는‘, ‘대체하는‘ 것은 독일어 übertragen이라는 동사로 모두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의 일이란 한마디로 말하면 ‘위버트라하는 일 입니다.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무의식적인 것을 의식적으로 옮기는‘ 것은 결코 ‘억압된 기억을 되살려내서 진실을 밝히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병의 원인이 되는 갈등 - P198

이 해결된다면 무엇을 생각해내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정신분석의 사명은 ‘진상의 규명‘이 아니라 ‘증의 관해解 (정신분열증의 증상이 없어지는 것옮긴이)‘ 이기 때문입니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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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제도가 생성된 순간의 현장, 즉 역사적인 가치판단이 개입해서 그것을 더럽히기 전의 ‘가공 전 상태‘를 훗날 롤랑 바르트는 ‘영도(degré zéro)‘라는 학술 용어로 부르게 됩니다. 구조주의란 한마디로 다양한 인간적 여러 제도(언어, 문학, 신화, 친족, 무의식 등에서의 ‘영도의 탐구‘ 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지금. 여기 · 나를 향해 일직선으로진화해온 과정으로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역사는 과거로부터 ‘지금‘을 향해 곧바로 흘러왔고, 세계의 중심은 ‘여기‘ 이며, 세계를 살고 경험하고 해석하고 의미를 결정하는 최종적인 재판부는다름 아닌 ‘나‘ 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죠.
‘지금 여기 • 나’를 역사의 진화에서 최고 도달점, 필연적인귀착점으로 간주하는 생각을 푸코는 ‘인간의humanisme‘ 라고부릅니다(자이중심주의의 일종입니다).
인간주의란 다른 말로 바꾸면 ‘지금여기. 나 주의가 됩니다. 푸코는 ‘지금, 여기 • 나’를 근원적인 사고의 원점으로 간주하고 거기에 편안하게 앉아서 그 시각으로 삼라만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판단하는 지의 자세를 ‘인간주의‘라고 부른 것입니다. - P87

푸코의 기본적인 생각은 지와 권력이근대사회에서 인간의 ‘표준화‘라는 방향을 목표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표준화는 다양한 차원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가장 현저하게 드러난 것이 ‘신체‘ 에 대한 표준화의 압력입니다.
우리는 신체라는 것을 생리적·물리적인 ‘자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동서고금 언제 어디서나 동일한 기능을 하고 고대인이든 현대인이든 지각이나 신체 조직에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고생각합니다. 그러나 푸코에 따르면 신체 또한 ‘의미에 의해 엮여있다는 점에서 일개 사회제도에 불과합니다. - P100

신체를 표적으로 하는 정치기술이 목적으로 하는 것은 단지 신체의 지배만은 아닙니다. 신체의 지배를 통해서 정신을 지배하는것이 이 정치기술의 최종 목적입니다. 이 기술의 요체는 강제 지배가 아닙니다. 통제되고 있는 사람이 통제되고 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기 의지를 토대로, 자기의 내발적인 욕망에의해 순종적인 ‘신민‘이 되어 권력의 그물코 속에 자기를 등록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정치권력이 신민을 조종하려고 할 때 권력은 반드시 ‘신체‘를표적으로 합니다. 모든 정치권력은 갑자기 인간의 ‘정신‘과 마주하고 의식 과정을 주무를 수가 없습니다. ‘장수를 쓰지 말고 말을쏘라‘ 또는 ‘정신을 통제하지 말고 먼저 신체를 통제하라‘ 와 같은것들이 바로 그러한 이야기입니다.

신체는 권력의 대상 및 표적으로서 발견되었다. 신체에 대한 조작되고, 형성되고, 훈련되고, 복종되고, 호응되고, 능력이 부여되든가 또는 힘이 다양하게 되는 그러한 대규모의 관심이 주어진 여러 특징이쉽게 발견되었다.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에서 - P113

푸코가 ‘권력 비판‘의 이론을 세웠다는 식으로 결론을 짓는 것역시 그가 진정으로 원한 일이 아닙니다. 푸코가 지적한 것은 모든지의 영위가 그것이 세계의 성립이나 인간의 모습에 대한 정보를정리해서 ‘축적‘ 하려고 하는 욕망에 의해 구동되는 한 반드시 ‘권력적으로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적혀 있는 푸코의학술적 이론도, 그리고 이 책을 포함해서) 푸코의 이론에 영향을 받아 기술되거나 소개되는 모든 저술 또한 숙명적으로 ‘권력‘ 적으로기능하게 됩니다.
현재 푸코의 저작은 전 세계의 사회과학 · 인문과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필독서이며 이를 ‘공부하는 것은 제도권 내에서 거의의무처럼 되어 있습니다. 대학원생들은 푸코의 용어를 구사하고푸코의 도식에 의거해 생각하며 추론하는 것을 거의 강제적으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권력=지‘를 낳는 ‘표준화의 압력‘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스스로 이 역설을 예지하고 푸코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제도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우리의 ‘의심‘ 까지도, 제도적인지‘로 의심받는 그 제도에 속한다는 불쾌함. 이런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권력에 대한 반역‘을 활기차게 노래하고 있는 우둔한 학자나 지식인에 대한 모멸감. 이러한 불쾌한 일들에 조종당하 - P121

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철저한 자기언급이 푸코가 보여준 비평의핵심입니다(‘대중을 증오하는‘ 것도 니체로부터 푸코가 계승한 지적 자질의 하나입니다).
여기에 있는 이 ‘나‘는 도대체 어떤 역사를 경유하여 형성된것일까? 그것을 묻는 것이 푸코가 주장한 비판의 구조이지만, 사실그것은 자기의 눈으로 자기의 뒤통수를 보고 싶다‘ 는 것과 마찬가지로 불가능한 희망입니다. 그러나 이 불가능한 희망에 가진 재산을 모두 건 미셸 푸코의 작업은 그 무모함 때문에라도 앞으로 오랫동안 칭송받을 것입니다. - P122

이상에서 본 것처럼 기호라는 것은 어느 사회집단이 인위적으로 약속한 ‘표시와 의미의 결합‘ 입니다. 기호는 ‘표시‘와 ‘의미‘가
‘하나‘가 되어 비로소 진정한 의미가 생깁니다. 또한 ‘표시‘와 ‘의미‘ 사이에는 어떠한 자연적. 내재적 관계도 없습니다. 거기에 있는 것은 순전히 ‘의미하는 것‘과 ‘의미되는 것‘의 기능적 관계뿐입니다.
일례로 장기를 두려고 하는데 졸이 하나 없는 경우, 자, 이걸로 졸을 대신하지 뭐‘ 라고 말하고 귤껍질을 잘라서 장기판에 놓는다고 했을 때 장기를 두는 사람이 그 ‘약속‘에 합의를 하면 장기는계속 진행됩니다. 그러나 ‘귤껍질‘과 ‘졸‘ 사이에는 그 어떠한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결합이 없습니다.
이런 엉터리가 ‘기호‘의 본질입니다.
소쉬르는 ‘귤껍질‘과 같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표시‘를 ‘의미하는 것signifiant(시니피앙)‘으로, ‘장기의 졸의 작용‘을 ‘의미되는 것signifié(시니피에)‘ 이라고 불렀습니다. - P127

여기서 바르트가 경고하고 있는 것은 특히 ‘어떤 집단 고유의에크리튀르‘라고 특정하기 어려운, 지나치게 넓은 범위를 지닌 어법이 지닌 위험성입니다.
‘징후가 없는 언어 사용‘이 바로 ‘패권을 쥔 어법 입니다. 그어법은 그 사회의 ‘객관적인 언어 사용‘ 입니다. 즉 어떤 주관적인의견이나 개인적인 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은 가치중립적인 의미에서 사용하는 언어 사용을 말합니다. 바르트는 이처럼 가치중립적으로 보이는 어법이 포함한 ‘예단‘과 ‘편견‘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가치중립적인 어법 속에 그 사회집단 전원이 무의식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이데올로기가 깃들어 있다는 바르트의 생각을 보다교묘하게 활용한 것이 페미니즘 비평의 언어론입니다.
페미니즘 비평 이론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사회의 ‘자연적인어법‘이란 ‘남성중심주의‘ 적인 어법입니다. 그것은 온갖 기호 조 - P134

작을 통해서 끊임없이 남성의 우월성과 위신을 말하고, 정치권력•과 사회적·문화적 자원을 오직 남성에게 귀속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언어 사용‘ 입니다. 따라서 남자든 여자든 ‘자연적인 어법‘으로말할 때마다 우리 사회에서 ‘패권을 쥔 성 이데올로기‘를 되풀이해서 승인하고 찬미하게 됩니다. - P135

텍스트와 독자 사이에 이처럼 ‘얽힌‘ 구조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비평의 기본원리로 제시한 것이 바르트가 텍스트 이론가로서 남긴 가장 큰 업적입니다.
텍스트와 독자는 사전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매우 충격이 강한 책의 경우 마지막까지 읽은 다음 성이 - P136

차지 않아 다시 읽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읽으면서 첫번째 읽을 때 알아채지 못했던 의미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처음읽을 때 놓친 의미를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그 책을한번 끝까지 읽은 덕분에 우리의 견해에 미묘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즉 그 책으로부터 새로운 의미를 읽어내는 ‘읽을 수 있는 주체‘로 우리를 형성한 것은 텍스트를 읽는 경험 그 자체였던것입니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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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싶지 않음

왜 우리는 그것에 대해 모르는 것일까요? 왜 이제까지 그것을모른 채 지내왔을까요? 게을러서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 이유는 대개 한 가지뿐입니다. 알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가 무엇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지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결여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알고 싶지 않다‘ 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한결같이 노력해온결과가 바로 무지입니다. 무지는 나태의 결과가 아니라 근면의 성과입니다. 거짓말 같나요? 부모가 설교를 늘어놓기 시작하면, 순간갑자기 눈을 딴 곳으로 돌리는 아이의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아이들은 부모가 ‘돌봐주기 모드‘에서 ‘설교 모드‘로 바뀌는 순간을확실히 알아차리고 곧바로 귀를 닫습니다. 그게 선생님이거나 다른 어른인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 P7

왜일까요? 그것은 지금 내가 문제를 제기하는 방식 자체가 ‘구조주의적‘ 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상식이 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편견의 시대를 살고 있다‘ 라는 자각 자체가 구조주의가 안고 있는 중요한 단면입니다. 다시 말해 구조주의라는 사상의관습에 대해 비판적 성찰을 하려고 할 때, 이를 위한 학술적인 근거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것은 구조주의밖에 없습니다. 구조주의적 견해를 이용하지 않고는 구조주의적 견해를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없는, 출구 없는 무한 고리 속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이 ‘고리 속에 갇히는 것‘이 바로 ‘어떤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 P21

세계에 대한 견해는 시점이 바뀌면 달라집니다. 따라서 하나의관점만을 고집하며 ‘나는 다른 사람보다 바르게 세상을 보고 있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현재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유효성을 알려준 것이 바로 구조주의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상식‘으로 등록된 것은 약 50년쯤 전인 1960년대의 일입니다. - P27

마르크스는 이러한 입장을 헤겔로부터 배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있는그대로에 만족하지 않고 목숨을 걸고 도약해서 이루고 싶은 것을이루는 것이다. 이는 헤겔의 인간학을 거칠게 표현한 것입니다(이런 헤겔의 인간 이해는 마르크스주의로부터 실존주의를 경유해서 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유럽 사상에서 일관되게 흘러왔습니다).
‘보편적인 인간성이라는 것은 없다. 만약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현실의 사회관계에서 ‘현재 상태의 긍정‘, 즉 ‘존재하는 것,
행동하지 않는 것‘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서만 기능할 뿐이다. 마르크스는 이렇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인간은 행동을 통해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 그 창조물이 그것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를 규정한다. 생산관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것‘을 매개로 인간은 자기의 본질을 알아차린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기본적 인간관입니다. - P31

프로이트는 심리학의 목적을 ‘자아는 자기 집의 주인이 아니라. 마음속에 품고 있는 생각이나 감정 가운데 무의식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드물게 보고받고 있을 뿐 임을 증명하는 데에 있다고 적었습니다(『정신분석입문』).
마르크스는 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실제로는 계급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프로이트는인간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르는 채로 생각한다는 것을 간파했습니다. 자기가 어떤 과정을 거쳐 생각하고 있는지 사고의 주체를 모른다는 사실을 가장 선명히 드러내어 보여준 것이 프로이트가 분석한 ‘억압‘의 메커니즘입니다. - P37

마르크스, 프로이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사람 가운데 인간의 사고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 인간은 대부분의 경우 외적 규범의 노예에 불과하다는 것을 열정적으로 외친사상가가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1844~1900)입니다.
우리가 보기에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어떤 시대나 지역의고유한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니체만큼 격렬하게 비판한 사람은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의 기본적인 입장은 다음과같이 집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우리에 대해 필연적으로 아무 관계가 없는 타인이다. 우리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다. 우리는 늘 우리를 잘못 해석할 수밖에 없다. ‘각자가 각자에게 가장 먼 사람이다‘ 라는 격언이 영원히 적용될뿐이다. 우리에 대해 우리는 결코 ‘인식자 일 수 없다.
-도덕의 계보에서 - P44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 이 세 사람은 구조주의의 ‘땅고르기‘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사람은 딱히 구조주의만을 준비한 것은 아닙니다. 20세기에 제창된학술 방법 가운데 마르크스, 프로이트, 니체의 영향을 전혀 받지않은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세 사람은 20세기 지식의 틀자체를 준비했기 때문에 당연한 말이지만 구조주의가 태어난 풍토의형성에도 깊이 관여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을 ‘구조주의의 직접 연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좁은 의미에서 직접적으로 구조주의의 연원이 되는 사람은 이들과 다른 별개의 인물입니다. - P65

소쉬르는 언어활동이 별자리를 보는 것처럼 원래 선이 그어져있지 않은 세계에 인위적으로 선을 긋고 별자리를 정하듯 정리를하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리적으로 보아 우리의 사상은 낱말을 통한 그 표현을 빼면 형태 없고 불분명한 덩어리에 불과하다. 기호의 도움 없이는 두 개념을 분명하고 한결같은 방법으로 구분할 수 없다는 데에 철학자와 언어학자들은 항상 의견을 같이했다. 사상은 그 자체로 보면 하나의 성운雲과 같아서 그 속에 필연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 일반언어학 강의에서

언어활동이란 ‘모두 분절되어 있는 것‘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아니라 밤하늘의 별을 보며 별자리를 정하는 것처럼 비정형적이고, 성운 모양을 한 세계를 쪼개는 작업 그 자체입니다. 어떤 관념이 먼저 존재하고 거기에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니라 이름이 붙으면서 어떤 관념이 우리의 사고 속에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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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활보는 사치가 아니야 - 휠체어 탄 여자가 인터뷰한 휠체어 탄 여자들
김지우 지음 / 휴머니스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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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구르님의 책. 휠체어 좀 타본 멋진 여자들의 이야기. 앞선 누군가의 ‘혼자 가볼 만한데?’가 이어져 혼자 집 밖 조차 나가본 적 없는, 뒤에 가는 누군가가 혼자 해외여행 가고 혼자 해외교환학생 갈 수 있는 용기를 준다. 휠체어로 더 멋지게 활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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