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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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사랑할 마음이 충만한 상태의 독서이니, 진정한 평점과 리뷰가 가능하지 않다. 그저 감탄과 존경만 남았다. 노벨문학상 수상 전이라면 오별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간사한 존재이니. 프루스트의 단편을 읽고 필사를 하고자 했 듯(아직 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이건 필사해야 해를 마음 속으로 수십 번 외쳤다. 어제 밤 30페이지를 남겨두고 책을 덮었다. 이 책을 졸음에 겨운 상태로 끝마치고 싶지 않았고 아침의 맑은 정신(?)으로 끝내고 싶었다.

한때 귀가 들리지 않는 여자를 사랑했던, 눈이 점점 멀어가는 언젠간 보지 못할 남자와 목소리를 잃은 여자의 만남. 그들의 희랍어 시간. 나에게 문학 리뷰를 너무 어려운데, 이 책은 더욱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 이미지만 떠돈다.

, , 바람, , 어둠, 칠판이 있는 교실, 어둑한 거실, 스케이트 날이 스치듯한 자동차 소리와 유흥가의 화려한 불빛과 술 취한 사람들, 피곤과 술에 찌든 사람들의 버스 풍경. 풍경들.

어둠이 내려야 밖으로 나가는 여자와 어둠이 내리기 전에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남자.

위태롭게 계속 걷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걸으며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다.

그들과 함께, 내리는 비와 함께 차분히 가라앉는 오늘. 이런 기분도 나쁘지 않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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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은 밤색 코르덴 재킷은 팔꿈치 부분에 밝은갈색 가죽이 덧대어져 있다. 약간 짧은 소매 밖으로 손목이 드러나보인다. 그의 왼쪽 눈시울께에서 입술 가장자리까지 가늘고 희끗한 곡선으로 그어진 흉터를 여자는 묵묵히 올려다본다. 첫 시간에 그것을 보았을 때, 오래전 눈물이 흘렀던 곳을 표시한 고지도 같다고 생각했었다.
엷은 녹색을 넣은 두꺼운 안경알 뒤로, 남자의 눈이 여자의 꾹 다문 입을 응시하고 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가신다. 그는 굳은얼굴을 돌린다. 짧은 희랍어 문장을 빠르게 흑판에 쓴다. 악센트들을 채 찍기 전에 백묵이 두동강나며 떨어진다. - P11

그후 초등학교에 다니면서부터 그녀는 일기장 뒤쪽에 단어들을적기 시작했다. 목적도, 맥락도 없이 그저 인상 깊다고 느낀 낱말들이었는데, 그중 그녀가 가장 아꼈던 것은 ‘숲‘이었다. 옛날의 탑을닮은 조형적인 글자였다. ㅍ은 기단, ㅜ는 탑신, ㅅ은 탑의 상단.
ㅅㅡㅜ-ㅍ이라고 발음할 때 먼저 입술이 오므라들고, 그 다음으로바람이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어나오는 느낌을 그녀는 좋아했다. 그리고는 닫히는 입술. 침묵으로 완성되는 말. 발음과 뜻, 형상이 모두 정적에 둘러싸인 그 단어에 이끌려 그녀는 썼다. 숲. 숲. - P14

밤은 고요하지 않다.
반 블록 너머에서 들리는 고속도로의 굉음이 여자의 고막에 수천개의 스케이트 날 같은 칼금을 긋는다.
흉터 많은 꽃잎들을 사방에 떨구기 시작한 자목련이 가로등 불빛에 빛난다. 가지들이 휘도록 흐드러진 꽃들의 육감, 으깨면 단 냄새가 날 것 같은 봄밤의 공기를 가로질러 그녀는 걷는다. 자신의 뺨에 아무것도 흐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 이따금 두 손으로 얼굴을 닦아낸다. - P21

그렇게 상상하며 사람들을 지켜보는 일이 지루해질 때쯤, 천천히뒷산의 산책로를 오르기도 합니다. 연푸른 나무들은 한 덩어리로일렁이고, 꽃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색채로 번져 있습니다. 산기슭에 있는 작은 절의 대중방 마루에 앉아 나는 쉽니다. 무거운 안경을 벗어들고,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진 흐릿한 세계를 둘러봅니다. 잘 보이지 않으면 가장 먼저 소리가 잘 들릴 거라고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가장 먼저 감각되는 것은시간입니다. 거대한 물질의 느리고 가혹한 흐름 같은 시간이 시시각각 내 몸을 통과하는 감각에 나는 서서히 압도됩니다. - P39

이곳은 지금 깊은 밤이야.
창문을 열어놓고 볼륨을 줄여 네 시디를 들으면서, 이따금 따라 흥얼거리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어.
이곳의 여름밤을 기억하니.
한낮의 무더위를 보상하는 듯 서늘하게 젖은 공기.
흥건히 엎질러진 어둠.
풀냄새, 활엽수들의 수액 냄새가 진하게 번져 있는 골목.
새벽까지 들리는 자동차들의 엔진 소리.
뒷산과 이어지는 캄캄한 잡풀숲에서 밤새 우는 풀벌레들.
그 속으로 네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어.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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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경_밤과 요람

선희는 온종일 방에서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책을 들여다보다가 생각에 젖다가 영어 단어를 외우기도 했다. 오전부터 서머싯몸의 영어 소설 「비」를 들고 있었는데 한나절이 지나도록 겨우 두장 읽었다. 여학교 때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사전을 들추며 보는 것이 싫진 않았지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 P394

또 하나의 문화_좌담

조옥라 많은 사람들이 여성운동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여성이 주체가 되어서 지금의 남자들이 가진 지위를 여자가 누려 보려한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남성‘ 자체가 나쁜 게 아니라 남성적인 논리를 모든 면에다 적용하고자하는 것이 나쁘다는 거지요. 우리가 남자의 위치에 있지 않기 때문에 불평등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현상이 나타나게된 근원적 차원에서의 불평등 구조를 문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남자와 똑같은 지배자가 되겠다는 것은 전혀 아니죠.
조혜정 궁극적으로 가부장제의 변화가 목표가 되겠지요. 그리고 그변화를 위한 방법론에서도 우리 운동은 특성을 갖습니다.
김애실 지금까지의 운동은 제도적인 변화에 치중했고 따라서 제도개혁의 차원에서만 논의하여 왔는데 여기서는 그 변화를 생활을 통해 이루어 보려고 하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죠. - P654

조혜정 공적-사적 영역의 엄격한 구분과 그것이 위계질서화되어 있는 현상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지요. 전통적 가부장제 사회에서도 공사 구분은 존재하였는데 현재의 양상과 다른 점은그때는 사적 영역이 비교적 컸었고 양자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는 점이겠지요. 산업화되면서 공적 영역은 급격히 확대되고 따라서 사회는 인간성이 무시되기 쉬운 공적 영역 우선주의, 예를 들어 경제발전 우선주의 등의 성격을 강하게 띠게 됩니다. 한편 공적 영역이 거대 조직화되고 경쟁이 치열한 곳이 될수록 사적 영역은 공적 영역으로부터 유일하게 인간성이 보장되는 ‘피난처‘로 등장하게 되며 사수되어야 할 어떤 것으로 인지되지요. 이때 여성은 그 사적 보루를지키는 주인공이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사적 영역은그리고 그 영역을 지켜 온 여성들은 변동을 주도하는 공적영역에서 점차 유리되고 보수성의 온상으로, 수동적 시민으로 남게 됩니다. 반면 남성들은 공적 영역에서 더욱 쫓기고인간성을 실현할 장소마저 잃어 가지요. 공적 영역이 월등한비중을 갖는다는 것, 공사 간의 유기적 연결이 안 된다는 것은 단기적으로 볼 때 효율적인 사회발전을 가져올지 모르지만 결국은 효율적인 시스템이 될 수 없읍니다. 인간의 욕구와 창조성이 수렴되지않는 체제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맥락에서 여성의 사회 진출은, 즉 공적 영역에의 진출은 이 양 영역의 이분화가 변화되는 과정으로 풀어질 수 있읍니다. 공적영역과 사적 영역 간에 유기적 연결이 가능해지고 좀 더 인간 위주의 사회로 향해 가는 과정 말입니다. - P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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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근_덫에 걸린 집

기수 (담배 끄며 냉정하게) 그런데 아마 경찰에서는 이런 사건의경우 피해자가 과연 얼마나 결백했나 하는 부분에도 관심을 가질 겁니다. 평소의 품행, 부부의 성격, 범인과 평소에 안면은 없었던가 하는 식으로 잔인할 만큼 이것저것 물어 가며 파고들 겁니다. 어떤 종류의 힘이건 한두 가지는 나올 테고………… 여러모로・・・・・・ 별로 유리하지 않을 겁니다.
장모 (당황하며) 피해자도 의심을 받는다는 말이요? 왜? 당한 것만도 분한데 왜 의심까지 받아?
기수 꼭 피해자만 옳다는 보장도 없을 테니까요. 경찰에서는 성범죄의 팔십 프로는 피해자 측에 책임이 있다고 본다더군요. 흉영재악범이 많다 해도 아무나 그런 일 당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일동 타격 받고 침묵한다.
정원, 어쩔 줄 모르고 외면한다. - P285

고정희(1948-1991)

고정희는 한국에 페미니즘 문학이라는 개념을 처음 정립한 이론가이자 뛰어난 실천적 전범을 보인 시인으로 여성문학사에서 평가된다. 여성주의 운동가로서의 강인함과 이론가로서의 치열함, 인으로서의 열정과 섬세함을 두루 갖추고 있었던 고정희는 한국 현대 여성 시의 역사는 고정희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평가에 걸맞은 면모를 지녔다. 씻김굿, 마당굿 등 굿의 형식, 판소리 사설의 형식 등을 적극 계승하고 변용해 여성 민중문학의 형식을 창안한 점, 여성적 글쓰기의 실천을 통해 한국 현대 여성 시의 스펙트럼을 내용과 형식 면에서 확장하고 심화한 점, 민중·민족· 젠더를 둘러싼모순들이 교차하는 자리를 정확히 관통했다는 점에서 고정희 시의여성문학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할 수 있다. -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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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희담 <깃발>
윤정모 <고삐>

박완서_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아뇨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얼마나 좋아요. 난 그걸 알거든요."
"저를 놀리실 셈이군요."
"천만에요. 내가 자랄 때 우리 어머니한테 가장 많이 듣던 소리가 그 소리였어요. 얘야 우린 돈이 얼마 없단다. 그러면서 교복도 내리 입히고, 내복도 기워 입히고 용돈도 조금밖에 안 주셨죠. 그렇지만 학비를 제때에 못 내거나 밥을 실컷 못 먹거나 할 정도로 궁색한형편은 아니었어요. 얼마 없다는 건 아주 없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으니까요. 아버지가 교육자셨는데 6남매나 되었으니 어머니가 언제나 돈이 얼마 없을 수밖에요. 돈이 얼마 없는 상태는 형제 간에 우애 절제 근면을 배우기에 아주 적절한 상태였나 봐요. 6남매가 다쓸 만하게 되었거든요. 지금 난 남매밖에 안 낳았어요. 남편도 의사니까 아이들은 아쉬운 것 모르고 유복하게 자라죠. 돈이면 다라고하지만 돈이 아무리 많아도 해 줄 수 없는 게 딱 한 가지 있잖아요. 돈이 얼마 없을 때의 활력 말예요. 그게 얼마나 중요하다는 걸 알고있기 때문에 아쉬운 것이 없이 해 주면서도 미안한 생각이 드는 거있죠?"
"선생님이 돈이 얼마 없는 상태가 뭐라는 걸 정확하게 이해해주셔서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앞으로 잘될 거예요. 잘되길 빌겠어요."
"그래도 재판받을 생각하면 떨려요. 어려서부터 빚보증 서기나 소송 좋아하는 자식은 낳지도 말라는 식의 가정교육을 받아 온탓인지 웬만한 손해라면 당하고 말지 경찰이나 법원 신세 안 지자 주의였는데." - P172

홍희담(1945~)

본명은 홍희윤으로 194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자대학교국문과를 졸업했다. 1971년 소설가 황석영과 결혼해 작가의 꿈을 접고 주부로 살다가 황석영이 연재소설 「장길산」 집필에 전념하고 새로운 문화 운동을 기획하기 위해 1977년 해남으로 내려가자 함께 이주한다. 1978년 광주로 이주한 홍희담은 ‘현대문화연구소‘의 윤한봉과 함께 광주 전남 지역 구속자 가족 모임과 진보적 여성 활동가 그룹을 모아 광주 지역 최초의 민주 여성 단체 ‘송백회‘를 만든다. 2003년 첫 소설집 『깃발을 내면서 "내 소설은 ‘송백회‘ 동지들과 함께 쓴 것"이라고 말한 데서 드러나듯, 홍희담은 5.18민주화운동 당시 회원들과 함께 투쟁 기금 모금, 대자보 작성, 회보 배포, 깃발 제작, 선전 및 홍보 등을 담당한 여성 활동가로서 시민군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수행한다. 1986년 황석영과 이혼한 이후에도광주에 남아 송백회 동지들과 지내다가 2000년이 되어야 광주를떠나 경기도 광명으로 이주한다.
"광주와 5월은 나를 소설가로 만든 원인이자, 내가 소설가로서 쓰고 싶었던 모든 것"이라는 작가의 소회에서 알 수 있듯 광주에서의 경험은 홍희담 소설의 가장 큰 줄기를 이룬다. 대표작 「깃발」(1988)은 5·18민주화운동을 노동문학의 맥락에서 형상화한 문제작이다. - P179

김채원(原·1946~)

김채원은 1946년 남양주시 덕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시인 파인 김동환, 어머니는 소설가 최정희이고 언니는 소설가 김지원이다. 유년 시절 서울 동숭동으로 이주해 지내다가 한국전쟁기 아버지의 납북 후 피난지인 대구에서 달성초등학교를, 휴전 후에는서울로 돌아와 창경국민학교를 다녔다. 이후 숙명여중을 거쳐 1년휴학 후 이화대학부속중학교, 이화여대 회화과를 졸업했다. 1972년동경 한국초중고등학교 미술 교사를 지내다가 1975년 언니 김지원이 있는 미국으로 건너가 아트스튜던트리그에서 수학했다. 이후 프랑스에서도 유학 생활을 했다. - P183

김채원_겨울의 환

저는 생각했지요. 제가 요새 여자들처럼 호강을 하다가 온 여자도 아니고, 어린 시절부터 막숟가락을 가지고 된장을 뜨러 어둠속 장독대를 다니던 여자이다. 그때부터 죽 밥짓고 반찬하는 일들이 훈련되어 있다. 어머니의 말대로 격식 있는 음식은 못 한다 해도밥 지을 줄도 김치 담글 줄도 모르는 여자는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왜 이렇게 힘이 드는가, 왜 이렇게 숨 쉬기마저 곤란한가. 저는 그만가져온 버선도 속치마도 입지 않고 오로지 살림과 싸우기에만 분투했지요. 이 괴물 같은 살림아, 어디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해보자 라고 들러붙으며 저는 애꿎은 살림 쪽을 원망했습니다.
생일이나 환갑잔치 등으로 하여 친척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그는 항상 눈을 샐쭉하게 뜨고 있었습니다. 친척들의 얼굴을 떠올리면 스스로 창피해지고 자존심이 상하여 잊고 있던 결혼 당시의 감정들이 되살아나는가 봅니다.
샐쭉하게 내려앉은 그의 눈꼬리를 보며 저의 마음은 말할 수없이 썰렁해져서 버스 손잡이를 잡은 채 울음을 삼키는 시선을 창밖으로 돌리곤 하였습니다.
제게 돌아올 용기를 직접적으로 부어 준 것은 눈입니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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