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월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고전
유광수 지음, 홍선주 그림 / 현암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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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역시 영웅 서사를 좋아하지 않아. 영웅이 여자든 남자든. 이미 정해진 운명에 따라 영웅은 살고 살아남고 승리하고. 그래도 여자임을 밝힌 후에도 왕에게 인정받아 남편을 부하로 부리며 전쟁을 이끄는 모습은 통쾌하네. 내가 읽은 건 민음북클럽 에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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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의 노래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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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앞에는 거대한 적이 있고 뒤에는 무력한 임금이 있다. 앞에 적이 있어 임금은 나를 죽일 수 없고 뒤에 임금이 있어 나는 나를 살릴 수 없다. 죽음, 오로지 죽음 만을 선택할 수 있다. 죽을 자리와 시간을 가늠하며 승리가 아닌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칼의 울음.
2007년에 읽었단다. 전혀 기억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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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량은 명량에서 깨어진 적선에 올라가빼앗은 쌀이었다. 모두가 적들에게 빼앗긴 연안 백성들의 쌀이었다. 내가 적을 죽이면 적은 백성을 죽였고 적이 나를 죽인다면 백성들은 더욱 죽어나갈 것이었는데, 그 백성들의 쌀을 뺏고 빼앗아 적과 내가 나누어 먹고 있었다. 나의 적은 백성의 적이었고, 나는 적의 적이었는데, 백성들의 곡식을 나와 나의 적이 먹고 있었다.
대낮에 오한이 오면서 임진년에 총 맞은 왼쪽 어깨가 쑤셨다. 바람이 없는데도 먼바다에서 물결이 일었다. 내일, 바다에는 비가 내릴 것이었다. - P117

그리고, 그 각자의 몫들은 똑같은 고통과 똑같은 무서움이었다 하더라도, 서로 소통될 수 없는 저마다의 몫이었을 것이다. 저마다의 끝은 적막했고, 적막한 끝들이 끝나서 쓰레기로바다를 덮었다. 그 소통되지 않는 고통과 무서움의 운명 위에서, 혹시라도 칼을 버리고 적과 화해할 수도 있을 테지만 죽음은 끝내 소통되지 않는 각자의 몫이었고 나는 여전히 적의 적이었으며 이 쓰레기의 바다 위에서 나는 칼을 차고 있어야 했다. 죽이되, 죽음을 벨 수 있는 칼이 나에게는 없었다. 나의 연안은 이승의 바다였다. - P135

그때 나는 세상이 견딜 수 없이 가엾고, 또 무서웠다. 나는 허망한 것과 무내용한 것들이 무서웠다. - P212

정유년 겨울에, 전쟁은 전개되지 않았다. 전쟁은 지지부진했다. 전쟁은 천천히 죽어가는 말기 암과 같았다. 적이 죽어가는 것인지 내가 죽어가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을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희망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언어로개념화되는 어떠한 미래도 생각하지 않았다. 희망은 멀어서보이지 않았고, 희망 없는 세상에서 죽음 또한 멀어서 보이지않았다. 보이지 않았지만, 살아 있는 나에게 내가 살아 있다는사실만은 의심할 수 없이 분명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들 - P213

이 힘겹게 겨우겨우 흘러갔다. 저녁이면 먼 섬들 사이로 저무는 햇살에 갯고랑 물비늘이 반짝였고, 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며 소멸하는 날들은 기진맥진했다.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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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 남성작가 편 - 세계문학의 흐름으로 읽는 한국소설 12 로쟈의 한국문학 수업
이현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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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작가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그 관계가, 그를 통해 형성되는 작가의 생애가, 그의 소설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이해하는 것은 흥미롭다. 작가의 경험이 - 책을 통한 것이든 실제적인 것이든 - 반영된 소설이란 매력적이지만 한계를 가진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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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구 <관촌수필>

주요 사례를 영국문학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토머스 하디의 작품들이 대표적이다. 영국만 하더라도 런던을 배경으로 하는 주요한 작품들이 19세기 중후반에 계속 등장한다. 다른 한편으로 대도시가 아닌 농촌지역에서는 어떤 일이 빚어지는지가 하디의 작품을 통해 드러난다. 변화의 속도가 우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영국은 아무래도 근대화 과정이 서서히 진행된 편이다. 나쓰메 소세키가 어림하기로는, 서구에서 300년에 걸쳐 진행된 변화가 일본에서는 메이지 유신 이후 40년 안에 이루어졌다. 단시간에 서구의 근대화를 반복 내지는 흉내 내야 했다. 이것을 보통 ‘압축근대화‘라 표현한다. 우리도 일본과 비슷한 모델이며 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이 모델을 따른다. 중국도 개혁개방 이후 급속도로 변화한다. 몇 배속을 빨리 감기 하듯급격한 변화를 겪게 된다. - P190

이문열 <젊은 날의 초상>

독일에서 처음 발흥한 교양주의는 세계 여러 나라로 수출되며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교양주의는 괴테가 아닌 헤세의 문학이었다. 1960년대에 전혜린이 번역한 <데미안>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고 이문열도 그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젊은 날의 초상>과 <데미안>이 비교되기도 한다.
본래 교양소설의 원조는 괴테가 쓴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였으나 한국의 상황과 잘 들어맞지 않아 외면당한다. 이 작품에서는 상인 집안의 아들인 빌헬름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그는 들어야 할 상인 수업은 받지 않고 연극 패거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일탈을 즐긴다. 그 과정에서 숱한 실패와 방황, 좌절을 겪고 난 뒤 다시 돌아오게 되는 것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이 작품은 죄르지 루카치가 쓴 소설의 유명한 정식으로도 표현된다. "길이 시작되자 여행은 끝났다." 루카치가 말하는 ‘길‘이란 인생의 진로나 방향을 의미하고 이것은 인생의 질곡이나 방황의 경로까지 미리 결정해놓는다. 괴테의 소설은 이 길을 찾는 과정을 보여준다. 달리 말하자면, 인생의 길 위에 선 사람이 자신의 영혼을 증명함 - P244

으로써 여행을 끝내는 것이 교양소설의 중요한 과제다. 자신의 영혼을 들여다보고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는 자기 파악의 여정이라할 수 있다. - P245

이인성 <낯선 시간 속으로>

사실 프랑스문학 쪽에서는 이미 이런 경향의 작품들이 있었다. 알랭 로브그리예로 대표되는 누보로망 전성기가 1950년대부터1960년대까지 있었기 때문이다. 이 흐름의 마지막에 있던 작가가 J. M. G. 르 클레지오인데 그가 초기에 낸 두세 편의 작품은 말 그대로 ‘누보로망(새로운 소설, 반反소설)‘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낯선 시간 속으로》는 프랑스어로도 번역이 됐다. 프랑스의 문학비평가 알랭 굴레는 《낯선 시간 속으로>의 프랑스어 번역본에 대해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로브그리예의 《고무지우개> 같은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이인성은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수렁의 형상화를 통해 사르트르의 《구》의 계보를 잇고 있는데, 세계 내의 이방인을 그린다는 점에서 카뮈적이기도 하며, 도박의 끝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베케트적이기도 하다." - P280

이승우 <생의 이면>

‘주체 형성‘이라는 과제의 세 가지 유형
이문열과 이인성, 이승우는 한국문학에서 ‘주체 형성‘이라는 과제의세 가지 유형을 보여준다. 각자 당면해 있는 문제 상황이 다른데 이문열은 이념으로서의 아버지, 가족을 내버린 아버지에 대한 애증이있다. 그 애증을 극복함으로써 자신을 정립하려고 한다. 이인성은 너무나 막강한 아버지와 할아버지 앞에서 스스로 분열되고 해체된다. 그래서 작품이 명쾌하지 않고 난해하다. 이인성 문학은 아버지로부터 일탈, 탈주의 시도다. 자전적인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살아있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며 필사적인 사투를 벌인다. 이인성은 막강한 아버지의 존재 때문에 주눅 든 아들의 형상이다. 그런 상황에서예술가로서 자신을 정립하는 모델로 조이스, 카프카 등을 참고할 수있다.
이승우의 경우 이인성과 완전히 반대다.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다. 존재하지만 그 자신에게는 부재한다. 동시에 어머니도 그를 고아 - P306

취급한다. 부모가 다 존재하지만 아들은 부모를 모두 잃어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자신을 정립할 수 없다. 자기 정립은 이상적인 자아와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이다. 자신이 상상하는 나 즉 ‘i‘가 있고 이상적인 나 즉 ‘I‘가 있다. 이 둘을 동일시하는 동시에 대타자가 보증을 서고 인정을 하면 자기 자신을 정립할 수 있다. 이승우의 경우 동일시를 보증하는 대타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데서 아버지를 데려와야 한다. 교회에 다니고 신학교에 입학하는 것도이 공백을 채우기 위해서다. - P307

알랭 드 보통은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이란 자식이 부모의 곁을 떠날 때 해방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부모와 평생 살 것도 아닌데 부모와 있을 때가 낙원이었다고 한다면 아이의 삶이 얼마나 불행한 것이겠는가. 아이에게 더 나은 미래가 있을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게 해야 한다. 부모와 지내는 친밀하고 안정적인 공간을 떠나 두렵지만 새로운 미래를 독립적으로 열어갈 사람으로 성장시켜야 한다. 곧 부모와 헤어질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살아가는 아이들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
‘텅 비어 있는 주체‘의 형상을 보여주는 이 작품에서는 아버지와어머니의 결여가 기본 조건으로 설정되어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맺는 인간관계인 부모와의 관계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대인기피증이 생기고 정상적인 사회적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다. 아이가 보다 성숙한 사회적 인격을 갖기 위해서는 부모가 아이에게 대하는 태도도 서로 달라야 한다. 그래야 아이가 인간관계에 대한 감각을 기를수 있다. 한쪽은 친근하게, 한쪽은 멀게 대해야지 둘 다 똑같으면 곤란하다. - P311

이승우 작가의 창작의 동기는 자기 보상이다. 자기 삶의 모자람을 문학을 통해서 보상받고자 하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스스로를위무하는 문학이라 할 수 있다. 남들이 읽어주지 않아도 그는 작품을 계속 썼을 것이다. 《생의 이면> 역시 삶의 실패를 보듬고 자기 자신에게 보상하기 위해 쓴 작품이다. 현실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고 현실에 복수하려는 의도는 많은 작가들이 지니고 있는 창작의 동기다. 문학의 역할 중 하나로 ‘자기 보상‘ 내지는 ‘자기 치유‘가 있다. 프로이트의 관점에서 보자면 환자들이 쓴 ‘상상적 작품‘은 백일몽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것 자체가 증상인 동시에 치료가 될 수 있다. 이승우는 작품을 통해서 자신의 결함과 결핍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그러한 내적 고백을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고자 한다. 이것이<생의 이면이 지니는 치료적인 의의다. - P319

김훈 <칼의 노래>

이순신은 잘 알려진 인물이고 그에 대한 책들도 많이 나와 있는데 독자들이 굳이 찾아 읽진 않는다. 김훈 세대가 이순신과 관련하여즐겨 읽은 책은 이은상이 번역한 《난중일기》와 그가 지은 책 《이 충무공 일대기》였다고 한다. 역사적 인물 이순신은 1597년 4월 백의종군한 뒤 1598년 노량해전을 마지막으로 전사한다. 《칼의 노래>는 바로이 1년 정도의 기간을 충무공의 1인칭 시점으로 다루고 있다.
1인칭 시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인물에게 특별한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실존했던 인물로서의 이순신이 있고 그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있다. 그런데 그가 쓴 일기 《난중일기》의 내용은 단순한 사실들의 나열일 뿐이다. <칼의 노래>에서 김훈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순신을 창조해야 했다. 바로 이순신에게 ‘내면성‘을 탑재시킨 것이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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