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급 한국어 오늘의 젊은 작가 30
문지혁 지음 / 민음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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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님이 책을 읽고 이승우 작가(나는 아직 1 밖에 읽지 않아 모르겠다, 아니 1권 밖에 안읽은 거 보니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안들었다..) 이후 두 번째로 다음 책도 읽고 싶다고 생각하게 만든 한국 남성 작가라고 해서 궁금해하던 차에 밀린 책읽아웃 팟캐스트를 듣다가(요즘 정희진의 <공부> 영어원서 팟캐/유투브 듣느라 밀렸네) 문지혁 작가 편을 들었다. 4월에 <중급 한국어> 출간에 맞추어 나온 것이다.


일단 목소리가 반듯하다. 말투도, 태도도, 말하는 문장도 반듯하다. 인터넷으로 검색하니 얼굴도, 옷차림도 반듯하다. ' 모범생이라고  붙이지 않아도 누구나 모범생으로 알 수 있는 이미지다. 학벌까지(!) 반듯하다.


책엔 이런 모범생 기질과 반듯함에 대한 주인공(이자 작가) 문지혁의 절망과 분노가 나온다. 나름 반듯한 길을 벗어나 소설이라는 일탈을, 소설가라는 험한 길을 가고 있으나, 여전히 자신을 반듯하게 만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분노.


몇몇은  개인의 성향을 문제 삼기도 했다 담배  하고 주말에 교회 가는  같은 애가 무슨 소설을 쓰냐  우아한 빈정거림도 있었다 글은 《좋은생각》 같은 잡지에 실리면 딱일  같아《좋은생각》은 물론 좋은 잡지지만  시절 나에게  말은 모욕적으로 들렸다세상에는 진짜’ 예술가가 될  있는 사람들이 있지만너는 절대 아니야나를 모범생이라고착하다고선비라고 부르는 사람들의  아래에는 그런 말이 숨어 있는  같았다.

노력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벗어나려고탈피하려고, ‘진짜’ 예술가가 되려고 발버둥 쳤다그때부터 소설에서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했다밤을 새우고 진짜’ 소설을 읽고 삐딱한 마음을 품었다. 술  마시면서 술자리에 억지로 참석했다끝까지 버텼다그러면 어디선가 바퀴벌레처럼 숨어 있던 상처성애자들이 나타났다 상처는 뭐야너한테 무슨 결핍이 있어 같은 애가 소설  자격이 있나?

절망적이었다. – P104~105


지혁  글은너무 반듯한  탈이에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주겠다는  아니라그래서 상을   없다는 말이었다나는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상을  받아서라기보다는  반듯하다  때문이었다그건 마치 너는 결코 진짜 예술가가   없다는 비아냥처럼 들렸다 딴에는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을  그대로 반듯하게’ 가다가  일탈을 결심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속이 뒤집어졌다그럼 어떡할까그냥 그만둘까죽을까? ‘순진하고 찌질하며 뻔하다 평가 미치게 만들었던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겹쳤다.

말대답하는 성격은  되지만그날 나는 분노를 담아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 비뚤어지겠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선생님들도 웃었다 사람만 웃지 않고 있었다거울을 보지 않아도 머리끝까지 벌겋게 달아올랐음이 분명한 나와 소설가 선생님.

웃음이 잦아들자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지혁 씨가 그렇게 대답하면  되죠.”

소설가는 덧붙였다.

반듯한  어때서요,라고 해야지.”

말문이 막혔다. – P148~149



문지혁은 그의 반듯함을 벗어나려 하지만, 어쩔 없다. 그건 그의 성정이다. 받아들이며 밖에. 그에겐 다소 썰렁한 농담과 함께하는 다정한 문학의 길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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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3-09-19 20: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작가들은 대개가 반듯한 이미지가 강하죠.
여성 작가들도 반듯하고 다들 착하구요.
그래서 때론 외국소설처럼 다이나믹한 소설로 발전이 안되는 건가? 욕을 먹더라도 불륜 소설이라도 쓰는 게 진정한 작가인 건가?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작가들이 고민이 많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그래도 어쨌거나 응원하는 독자들이 많은 건 사실이에요.
저도 이 책 재미나게 읽었어요.
중급도 읽어야 하는데..^^

햇살과함께 2023-09-19 23:05   좋아요 1 | URL
반듯한 척 하는 작가도 있을거고 문지혁 작가처럼 삐뚤어질테다하는 작가도 있을테고요 ㅎㅎ
자기스타일을 찾아가는 어려운 길인 것 같습니다
중급도 비슷하면서도 문학 얘기 많아서 좋아요!

잠자냥 2023-09-19 2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반듯한 제가 심히 공감 가는 문장이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왜 웃음이 ㅋㅋㅋㅋㅋㅋ

햇살과함께 2023-09-19 23:07   좋아요 1 | URL
일단 술에서 탈락입니다만??
잠자냥님 글은 반듯한 걸로 인정!
그외는 실물영접을 못해서 판독불가이고요 ㅎㅎ

잠자냥 2023-09-19 23:24   좋아요 1 | URL
오늘도 마신 반듯한 잠자냥~

햇살과함께 2023-09-19 23:57   좋아요 0 | URL
반듯하게 주무시와요 ㅋㅋㅋㅋㅋㅋ
 
그레인지 코플랜드의 세 번째 인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09
앨리스 워커 지음, 김시현 옮김 / 민음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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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막내였고 아직 네 살도 채 안 되었다.
"아버진 개새끼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재빨리 담요를 덮었다브라운필드가 그녀에게 가한 최초의 주먹질을 느끼지 않기 위해. - P192


아, 잠자냥님이 빡침이 구만리라고.. 정말 구만리다.

최악의 빡침이, 빡침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나를 건드린다. 멤에게, 아이들에게 공감할 수밖에 없다.



대프니는 오넷보다는 너그러웠다. 오직 브라운필드가 멤을 괴롭힐 때만 그녀에게서 살기가 돌았다. 브라운필드가 자신을 때릴 때면 대프나는 불타오르는 완벽한 공허로 마음을 유지함으로써 견뎌 냈다. 어릴 적의 추억 때문이었겠지만 대프니는 아버지의 사랑을 얻기 위해 참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이로 인해 그녀의 신경은 매우 예민해졌다. 그녀는 아주 작은 소리나 움직임에도 펄쩍 뛰었다. 신경과민이 심해지자 브라운필드는 그녀를 놀렸다. 그는 대프니가 아둔하고 정신이 나갔다고 말했다. 그는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고, 대프니가 아니라 대피*라고 불렀으며, 옆구리에 멍이 들도록 꼬집었다. 그래도 그녀는 몸의 떨림을 감추려고 애쓰며 용감하게 서 있었다. 그녀는 그 집을 경멸했다. 깨끗하게 치우는 것이 불가능했고, 브라운필드가 멤에게 강요한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루스나 오넷보다 더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 집을 증오했다. 겨울엔 추웠고, 사시사철 따뜻할 때라고는 없었다. 그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집에 대한 증오를 아버지에 대한 감정과 철저히 분리시켰다. 그녀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루스와 오넷은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대프니만큼 브라운필드를 너그럽게 봐줄 수 없었다. - P197


첫째 대프니의 마음 자기가 아기였을 아주 잠깐이나마 다정했던 아버지 브라운필드의 기억을 계속 소환하고,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동생들에게도 추억을 마치 직접 겪어 것처럼 주입해 주고자 하는 -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이해된다. 살아 내기 위한 심적 발버둥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다른 삶에 관해 그녀가 무엇을 알 수 있었을까그녀는 그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 아들을 두려워했다그녀가 어떻게 판단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루스가 보지도이해하지도 못했던 부부간의 친밀한 생활과 조시에 대해 무엇을 알았겠는가그녀가 알 수 있는 것은 할아버지가 그녀의 아버지에게 결코 아버지 노릇을 한 적이 없었다는 정도에 불과했다브라운필드와 그레인지는 서로를 저주했고 상대방의 연륜이나 젊음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다어쩌면 그레인지의 사랑에 결함이 있었을 수도 있다그의 삶이 그러했듯그것도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 그런 폭력이 시작된 것일까그리고 조시는 어떤 비밀을 알고 있는 것일까그토록 어린 아이가 파괴된 가족애의 결과와돌덩이와 같은 증오와검게 탄 마음 사이의 영역과울부짖는 영혼의 복수를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 P240~241


그레인지는 손녀 루스를 구원했나. 손녀를 통해 구원받았나. 작가의 마지막에 그레인지에 대해 긍정적 멘트가 있지만 나는 동의가 어렵다. 그는 손녀 루스를 구원하기 위해 노력했을 모르지만 손녀를 위해 그를 사랑하던 조시를 이용했다. 자기의 번째 인생의 은둔생활과 손녀 루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한 농장을 사기 위해 조시가 평생 일궈온 가게를 팔도록 했고 돈을 사용했다. 그리곤 조시를 무시했다. 조시의 사랑을 이용했다. 그리고 그의 아들 브라운필드에게 진정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가 진정 개과천선을 것이라면 루스만이 아니라 조시와 브라운필드에게도 동일한 태도를 보여야겠지만, 그에겐 오로지 루스만 있다. 루스를 위해 살인을 저지를 정도로. 맹목적이다. 그렇게 루스에게 집착하는 것인지. 그리고 아들 브라운필드가 며느리 멤을 살해한 이후 손녀 중에서 막내인 루스만 데려왔다. 며느리 멤의 부모가 아이들을 데려가려고 왔을 루스를 자매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고, 첫째와 둘째도 함께 돌보는 데까지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루스를 진정 생각한다면 언니들과 함께 지낼 있도록 하는 나은 것이 아닌가. 오로지 본인의 열망으로 루스만을 곁에 것은 이기적인 생각 아닌가. 기만적이다.


백인 탓만 하며, 나은 삶을 생각은 없고, 본인들보다 현명하고 똑똑한 아내들이 집안을 개선하고자 하면 가장의 권위가 무너질까 겁이 나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쓰고, 아내의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짓밟으며 통쾌해하는 찌질한 흑인 남자들.


남편이 아버지라는 작자들의 얘기만 나오면  흥분한다고 하겠지만당신들 인종차별을  당해서  인간들보다  심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네 심하긴 했나그럼에도  심한 인간들은 다른 이유를 대겠지.


작가가 앨리스 워커가 아니라 남성 작가였다면 그레인지를 옹호하는 듯한 시선이 편파적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삐딱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컬러 퍼플>은 좀 쉬었다 읽어야겠다. 너무도 처절한 엘리스 워커 책 연달아 읽다가 혈압 올라서 못살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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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09-18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총으로 대신 쏴주고 싶지 않습니까?!
저는 <컬러퍼플>이 좀 더 나았습니다.

햇살과함께 2023-09-18 19:21   좋아요 1 | URL
총은 너무 한방이니 총 말고요~ 좀더 오래 고통스로운 방법으로!!!!
컬러 퍼플은 좀 낫다니 다행이네요 ㅋ

독서괭 2023-09-18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빡침 구만리 ㅋㅋㅋㅋㅋ
함부로 손대면 안 되겠네요. 저도 여미쳐 예습해야 하는데..

햇살과함께 2023-09-18 19:25   좋아요 2 | URL
아 조마조마한 맘으로 읽었어요…
아이들이 넘…
그래도 엄청난 작품입니다 ㅋ
관련 책 한 달에 한 권이라도 읽으려고요.

책읽는나무 2023-09-18 21: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빡침의 소설ㅜㅜ
어휴 고생하셨네요.

햇살과함께 2023-09-19 11:04   좋아요 1 | URL
네 ㅎㅎ 읽는 내내 스팀 올라요;;;
 

4부 반격의 결과물
12장 그건 모두 당신 마음속에 있어요

페미니즘을 저지하려는 반격의 움직임은 대중 심리학을 통해 가장 내밀한 전선에 발을 들였다. 그리고는 치유서와 상담에서 도움을 찾으려는 수백만 여성들, 이미 고립된 개인의 밀실에 숨어 있는, 이미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는 여성들에게 가장 효과적으로, 그리고 파괴적으로, 비관적인 도덕군자의 메시지를 주입했다.
조언 전문가들은 어마어마하게 많은 자기 계발서 여성 독자층에게 2연타를 날렸다. 먼저 이들은 해방된 여성이 ‘과도한‘ 독립에 매달리는 바람에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상태가 되었고 그 결과 탐욕스러운 자아도취증 환자, 아이도 없는 멍청이가 되었다며 일격을 날렸다. 그다음으로 페미니즘의 ‘피해자’를 다소곳하게 무릎 꿇린 자기계발서 작가들은 반격의 희생자들을 어르고 달래서 단물을 빼먹었다. 1980년대 전반기에 조언 전문가들은 여성들에게 당신들이 힘든건 부풀려진 자아와 ‘친밀함에 대한 공포’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다가 후반기가 되자 이제는 위축된 자아와 ‘상호 의존’이 문제라고 했다. 여성을 상대로 한 1980년대의 전쟁에서 이런 대중 심리학자들은전쟁의 포문을 여는 데 일조하고 난 뒤 전쟁터로 달려 나가 많은 부상자들에게 붕대를 감아 주었다. - P505

조언 전문가들은 여성들이 반격에 아랑곳하지 않게 도와주기보다는 그 모든 반격의 압력을 그야말로 여성들의 문제라고 몰아세움으로써 여성의 정신과 감정을 반격에 종속시키는 데 일조했다. - P506

1989년의 한 조언서는 제목을 통해 사이비 페미니즘을 가장 일목요연하게 전달한다. 『낮춰서 결혼한 여자는 결국 모든 것을 다 가질 수 있다 Women Who Marry Down and End Up HavingIt All.
반격 성향의 이런 치료서들은 페미니즘의 표현을 들먹이며 그뒤에 숨고자 하지만 결국 페미니즘 요법의 가장 기본적인 계율을 완전히 망각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사회적 성장과 개인적 성장 모두가 중요하고 필요하며 이 둘은 서로 강화하는 관계라는 점이다. - P507

1980년대 반격의 심리 치료사들이 단호하게 거부한 근본적인 페미니즘 원칙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남성 역시 변할 수 있고,
변해야 한다는 점이다. - P508

하지만 직장 생활이 여성에게 심리적으로 상처가 된다면 어째서 직장 여성들은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사실상 모든 정신 건강 척도에서 꾸준히 1등을 하는 걸까? 프라이스 부부는 묵묵부답이었다. - P510

하지만 여성들을 어둠침침하고 카페인도 없는 회의실에 문까지잠근 채 가둬 놓고 이들에게 열정도 없고 소극적이며 미숙한 평정과성숙한 자기주장을 맞바꾸라고 훈계하는 노우드의 처방은 1970년대초 페미니스트 토론 모임보다는 19세기 말의 ‘휴양 요법 rest cure‘에 정서적으로 더 가깝다. 역시 어두운 방에 감금시키고, 자극적이지 않은음식을 먹게 하고, 자기표현을 부정했던 100년 전의 이 치료법은 환자를 치료하기보다는 상태를 더 악화시키곤 했다. 페미니스트 작가 - P524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 이 1887년 자신이 직접 체험했던 휴양 요법에 대해 남긴 가장 유명한 글에 따르면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최대한 가정적인 삶을 살라"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려다가 "정신을 놓치기 직전쯤 되는 위험한 상태까지 갔다." - P525

소위 ‘자연스러운‘ 여성 마조히즘은 많은 여성들이 순종적인 태도를 채택하게 유도하는 성차별주의적인 사회의 상벌 시스템이 낳은 부자연스러운 산물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 P531

무엇보다 최악은 이런 진단이 구타당하는 여성들을 가정폭력을 자초하는 마조히스트로 취급하는 현상을 다시 부추길 위험이 있다는 점이었다. - P533

그리고 이런 메커니즘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하면 여성 환자들에게 잘못된 진단과 잘못된치료의 길이 열리고, 폭력 남편과 법원은 배우자의 폭력을 아내의 잘못으로 돌리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P536

오후에 회의장에 돌아와 패널들이 하는 일을 지켜본 여성 심리치료사들은 점점 인내심의 한계를 느꼈다. 패널 구성원들은 마조히즘 정의 방식을 놓고 자기들끼리 토론을 벌이면서 그 어떤 조사나 임상 연구도 참고하지 않았다. 이들은 그저 새로운 ‘특성들’을 툭툭 던지듯 제시했고, 타이피스트는 그걸 그대로 컴퓨터에 입력했다. 그 과정을 지켜보았던 학회 직원 러네이 가핑클Renee Garfinkel은 나중에 "지적인 노력이 충격적일 정도로 낮은 수준이었다"고 회상했다.) "마치어떤 식당에 갈지를 정할 때처럼 다수결로 진단에 대한 논의를 진행시켰어요. 넌 이탈리아 음식이 먹고 싶구나, 난 중국 음식이 먹고 싶은데. 그럼 우리 푸드코트에 가자 하는 식이었죠." 페미니스트상담연구소의 소장 린 로즈워터Lynne Rosewater는 이렇게 회상했다.91) "그들은[마조히즘 성격장애에 대한] 기준을 토론하던 중이었는데, 로버트 - P537

스피처의 아내[재닛 윌리엄스 Janet Williams ]가 ‘나도 가끔 그래요‘ 하니까 스피처가 ‘좋아, 그건 빼‘ 하는 거예요. 그걸 보다 보니 ‘이게 과학이라서 우리한테 그들을 비판할 권리가 없다는 거야?‘ 하는 소리가절로 나오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 사람들이 하는 일이 이런식이라면 난 그들이 내리는 진단은 하나도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요." - P538

13장 직장 여성에게 타격을 입히다

사실 1979년부터 1986년까지 성별 임금 격차는 5퍼센트포인트미만으로 개선되는 데 그쳤다.4) 그리고 이 개선의 무려 절반이 여성의 임금이 개선되어서가 아니라 남성의 임금이 하락해서 나타난 효과였다.5) 남성 임금의 하락이라는 요인을 제외하면 임금 격차는 겨우 3퍼센트포인트 좁혀졌다. - P542

직장 여성이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분야에서 상당한 성과를 내기도 했지만 이 얼마 되지도 않는 경우에 여성들이 인정을 받은 건싸울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회학자 바버라 레스킨Barbara Reskin의 직업 통합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의 직종에 가장 많이 진출한 10여 개의 직종(조판, 보험 청구 사정, 제약업 등)에서 여성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일의 보수와 지위가 크게 하락해서 남성들이빠져나갔기 때문이었다.18) 가령 컴퓨터화가 진행되면서 남성 식자공들은 타이피스트로 좌천되었고, 드럭스토어 소매 체인점이 등장하면 - P544

서 독립적인 약사들이 저소득 점원으로 전락했다. 은행 경영에서 여성의 ‘진보‘에 대한 다른 연구들은 남성 일색이던 지점 경영자직이 여성들에게 넘어가게 된 건 대체로 그 일의 임금과 권력, 지위가 크게하락해서 남성들이 그 일을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임을 밝히기도 했다.19) 그리고 직업 변화에 대한 또 다른 분석에서는 교통 부문에서늘어난 여성 고용의 3분의 1과, 금융 서비스 부문에서 늘어난 여성 고용의 절반이, 그저 이 두 직종에서 여성들이 누릴 수 있는 지위가 사라졌기 때문일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 P545

우리가 1980년대에 직장 내 차별에 대한 소식을 더 적게 접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연방 정부가 고용 평등 감독관의 입에 재갈을물리거나 이들을 해고했기 때문이다. 평등고용기회위원회로 밀려든 성차별 고소가 넘쳐나고 있을 때 레이건 정부는 이 부처의 예산을 절반으로 감축하고 담당 건수를 폐기해 버렸다.39) 레이건이 취임하던해 평등고용기회위원회에는 25건의 집단소송이 진행 중이었는데, 불과 1년 뒤 진행 중인 집단소송은 하나도 없었다. 이 부처는 추적하는소송 건수를 300퍼센트까지 단계적으로 축소시켰다. 의회 교육노동위원회의 한 보고서에서는 1980년대 전반에 보상을 받은 차별 피해자의 수가 3분의 2로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1987년이 되자 회계감사원의 한 연구는 평등고용기회위원회의 지구 사무실과 주의 평등고용처들이 적절한 혹은 그 어떤 조사도 없이 사건의 40퍼센트에서 80퍼센트를 종결짓고 있다고 밝혔다. - P548

언론계 내에서 여성의 지위가 거의 모든 측면에서 하락하고 있는 바로 그때 ‘여자가 너무 많다‘는 불만이 뉴스룸과 방송국 직원들사이에서 터져나오고 있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NBC의 음향 기사리 세리Lee Serrie의 회상에 따르면 1982년 근무 중에 한 남성 카메라맨이 "지난 10년간 남성들이 잃어버린 모든 기반"에 대한 불만을 비통하게 쏟아 내기 시작했다.63) 하지만 그가 일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건 방송국에서 구조조정을 하면서 하나밖에 없는 여성 카메라우먼을 일찌감치 해고하고 그에게 그 자리를 맡겼기 때문이었다(반면 세리는 소송에 돌입한 뒤에야 겨우 임시 카메라직 대상자 목록에 오를 수있었다). ‘여성화‘에 대한 우려는 어쩌면 미디어의 인사 담당자들이 백인 남성 지원자들을 돌려보낼 때 전천후 알리바이로 차별 철폐 조치를 들먹이는 경향 때문에 강화된 것인지도 몰랐다. 《뉴욕타임스》에서 이런 실태를 직접 목격한 한 편집자는 "나는 해당 남성을 고용하지 않은 실제 이유가 자격이 부족한 것일 때도 ‘죄송합니다. 우린 흑인이나 여성을 고용해야 합니다‘라는 탈락 편지를 이들에게 보냈다"고 말한다.
미디어계 남성들의 진짜 문제는 ‘여자가 너무 많다‘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 P555

시어스의 채용 절차에는 가장 남자다운 사람만이 수수료를 받을수 있는 판매직의 ‘야단법석‘을 감내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었다. 시어스에서 판매 수수료가 있는 자리에서 일하고자 하는 모든 지원자는 "목소리가 저음인가요?", "풋볼 팀에 속해 본적이 있나요?", "사냥을 해 본 적이 있나요?", "땀을 잘 흘리나요?" 같은 질문이 들어간 ‘정력‘ 테스트를 거쳐야 했다. 시어스는 법원에서 1970년대에는 더 이상 테스트 결과에 많이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이 회사는 꾸준히 이 테스트를 운영해 왔다. 내부 연구를 통해 사실 ‘정력‘ 점수가 높을 경우 오히려 판매 실적이 낮다는 사실이밝혀진 뒤에도 말이다. - P562

조이스의 경험은 블루칼라 노동력 내에서 벌어지는 솔직 담백하면서도 종종 폭력적인 반격의 전형을 보여 준다. 이런 공격은 여성의 ‘차이‘에 대한 예의 바른 찬가라는 형식으로 위장하지 않는다. 가령 안전모를 쓴 여성이 손에 꼽을 정도밖에 안 되는 뉴욕의 한 건설현장에서 남성 노동자들은 한 여성의 작업용 부츠를 가져 가서 갈갈이 찢어 놓기도 했다. 또 다른 여성은 남성 동료가 각목으로 머리를 때려서 상해를 입었다. 조이스가 일했던 산타클라라 카운티의 경우 기회균등청 사무실에 배척, 괴롭힘, 성희롱, 위협, 언어적, 육체적 학대 신고가 넘쳐났다. 당시 산타클라라 카운티 기회균등청에서 일했던 존 롱가보 John Longabaugh는 "일부 작업장에선 비일비재하다"라고 말했다. "연장을 엉망으로 헝클어 놓고, 책상에 보란 듯이 포르노를 얹어 놔요. 안전 장비를 찾기 어렵게 하거나 아예 못 쓰게 하기도하죠." 어떤 정비 노동자는 자기 부서에 처음으로 들어온 여성을 "돈만 주면 네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릴 사람을 알고 있다"는 말로 맞이 - P576

하기도 했다. 또 다른 신참 여성은 감독관이 시내버스를 청소하라고 해서 버스에 올랐다가 남성들이 그녀를 위해 남겨 놓은 작은 선물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좌석에 처덕처덕 발라 놓은 분변이었다. - P577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난 내가 수학을 전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여자는 그렇다고 말을 하니까요. 그런데 내 뇌의 한쪽에서 그러는 거예요. 잠깐만, 저 사람들이 할 수 있으면 나도 할 수있어. 내가 특정한 방식으로 길러졌다고 해서 계속 그 상태로 뭉개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닌 거죠." - P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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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 nights later, Stanley lay awake staring up at the star-filled sky. He was too happy to fall asleep.
He knew he had no reason to be happy. He had heard orread somewhere that right before a person freezes to death, he suddenly feels nice and warm. He wondered if perhaps hewas experiencing something like that.
It occurred to him that he couldn‘t remember the last timehe felt happiness. It wasn‘t just being sent to Camp GreenLake that had made his life miserable. Before that he‘d beenunhappy at school, where he had no friends, and bullies likeDerrick Dunne picked on him. No one liked him, and thetruth was, he didn‘t especially like himself.
He liked himself now.
He wondered if he was delirious.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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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을 앞둔 지금에서야 나는 깨닫는다. 그녀는 책방 아주머니와 대화를 나누러 나를 데려갔던 것이 아니라, 나를 서점에 데리고 가기 위해 책방 아주머니와 친해져야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목적은 대화가 아니라 책이었고 아들이었다. 아이가 자연스레 책을 읽는 그 몇 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어머니는 별다른 내용도 없는 수다를 몇 시간이고 계속해야 했던 것이다.
그런 유년의 기억 때문일까. 아직도 나는 어디든 책을 파는 곳에 들어서면 마음 한구석이 이유 없이 설레 온다. 그리고 그때마다 생각한다. 이 설렘을 선사하기 위해 숨겨야만 했던 어머니의 작은 비밀을. - P118

한국어에서 시간은 ‘시간‘이라는 단어 하나뿐이지만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을 세 가지 단어로 구분했다. 아이온(aion), 크로노스(chronos), 그리고 카이로스(kairos). 아이온은시작도 끝도 없는 시간, 무한하고 신성하고 영원한 시간, 그러므로 신의 시간이다. 크로노스는 양적이고 균질한 시간, 수동적이고 무관심하며 무의미한 시간, 그러므로 인간의 시간이다. 마지막 카이로스(kairos)는 질적이고 특별한 시간, 구별되고 이질적이며 의미를 지닌 시간, 말하자면 신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만나는 시간이다.
우리는 아이온에 둘러싸인 채 크로노스 속을 살아가는 존재다. 무심하지만 규칙적으로 흐르는 크로노스를 좀처럼 벗어날 수 없는 시간 감옥의 죄수이기도 하다. 하지만 삶에는 가끔씩 카이로스가 찾아오는데, 이를테면 화살이 날아가거나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같은 것들이 그렇다. 이전과 이후가 갈 - P127

라지고, 한번 일어나면 결코 그 이전으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
따라서 시간을 묻는 방법은 두 가지여야만 한다.

1. 크로노스를 물을 때: 지금 몇 시예요?
2. 카이로스를 물을 때: 그건 어떤 시간이었나요? - P128

세상 어디에도 나의 자리는 없었고, 길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바닥을 파고 있었다.
그런데 그건 내 착각이었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A라는 여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는데, 나중에 B라는 여자를 만났다. 그런데 그 B는 내가 A보다 먼저 만났다면 사랑하지 않았으리라고 확신할 수 없는 매력적인 사람이었다는 이야기. 내게 있어 그 B는 바로 커트 보니것의 문장이었다.

만일 부모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주고 싶은데
게이가 될 배짱이 없다면 예술을 하는 게 좋다.
이건 농담이 아니다.

다시 2000년 여름으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 그 애는 폴 오스터가 아니라 커트 보니것을 적어 주었어야 했다. - P147

"지혁 씨 글은, 너무 반듯한 게 탈이에요."
예상치 못한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을 주겠다는 - P148

게 아니라, 그래서 상을 줄 수 없다는 말이었다. 나는 몹시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상을 못 받아서라기보다는 그 ‘반듯하다‘는 말 때문이었다. 그건 마치 너는 결코 진짜 예술가가 될수 없다는 비아냥처럼 들렸다. 내 딴에는 남들이 정해 놓은 길을 말 그대로 ‘반듯하게‘ 가다가 큰 일탈을 결심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그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속이 뒤집어졌다. 그럼 어떡할까? 그냥 그만둘까? 죽을까? ‘순진하고 찌질하며 뻔하다‘는 평가, 날 미치게 만들었던 그동안의 이야기들이 어지럽게 겹쳤다.
말대답하는 성격은 못 되지만, 그날 나는 분노를 담아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 비뚤어지겠습니다."
학생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졌다. 선생님들도 웃었다. 두 사람만 웃지 않고 있었다. 거울을 보지 않아도 머리끝까지 벌겋게 달아올랐음이 분명한 나와, 그 소설가 선생님.
웃음이 잦아들자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지혁 씨가 그렇게 대답하면 안 되죠."
소설가는 덧붙였다.
"반듯한 게 어때서요,라고 해야지."
말문이 막혔다. - P149

마지막 단어 때문이었을까? 은혜의 말이 떠올랐다.

거기는 낮이겠네. 여긴 밤이고, 니가 볼땐 어제야. 있잖아, 니가 미국에 간 뒤로는 항상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그 이유를 오늘에서야 알겠어. 내가 늘 과거에 남겨지는 느낌이라서그랬나봐. 넌 어느새 저만큼, 미래에 가 있는데, 과거의 목소리는 여기까지만 듣는 걸로 해.

나는 갑자기 뭔가 생각나서 핸드폰을 꺼내 세계 시간을 찾았다.
[서울, 내일 +13시간]
은혜가 틀렸다. 서울의 시간은 뉴욕보다 늦지 않다. 오히려 열세 시간이나 빠르다.
서울은 뉴욕의 미래다. - P166

이를테면 플롯이나 개연성, 복선과 반전 같은? 그건 혹시 편견이나 선입견이 아닐까? 삶은 평범하고 소설은 특별하다는 고정 관념만큼이나 해로운 것은 아닐까? 현실과소설 사이에는 대체 어떤 벽이 세워져 있기에?
나는 자주 가던 대형 인터넷 커뮤니티에 [미니픽션]이라는 말머리를 달아 이 소설을 올렸다. 새로운 전자 제품과 연예계가십, 정치 이슈들 사이에서 내 소설은 (예상대로) 아무런 반응 없이 금방 뒤 페이지로 밀려났다. 마침내 딱 하나의 댓글이 달렸는데, 그걸 확인하고 나는 뭔가를 들킨 기분이었다.
미국 섭웨이가 한국보다 더 맛있나여???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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