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쇠뜨기
수건 쓴 아줌마 지나갔나? 그러면서 쇠뜨기는 다시 올라와요. - P17
늦가을
바람끝 거칠어지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그 하늘 한 귀퉁이에 하루살이들 떼지어 난다.
흔들림 속 작은 것들이 보여 주는 살아 있음.
작은 것들이 이끌어 내는 그 흔들림 속 살아 있음. - P66
장작가리
겨울이면 누구네 집 가릴 것 없이 뒤란 담벽 따라 장작가리가 생긴다.
어쩌면 하나같이 그리도 가지런히 자르고 그리도 가지런히 패 놓았을까.
그걸 가만히 바라보노라면 소여물 저절로 꿇고 아궁이 속에 불이 넘실거린다. 겨울이 하나도 춥지 않다.
불을 때지 않고 그대로 두고만 싶다. 바라만 보아도 마음이 따뜻해 겨울이 하나도 춥지가 않다. - P70
몰라도 좋은 일
가고 싶은데 걸어갈 수 있고 먹고 싶은 것 먹을 수 있는 일들
일하느라 손을 움직이고 무얼 찾아 책을 펴 드는 일들
그게 얼마나 좋은 것인지 몰라요. 아무렇지 않지만
그런 일들이 기적 속에서 일어난다는 걸 알게 되는 날 세상이 달리 보이는 날. - P104
권정생 선생님
이웃 할머니 슬픈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야기 속에 녹아들고
길섶 소똥을 보면 그 소똥과 함께 풀숲에서 잠들고
가뭄에 타는 곡식들을 보고는 함께 목이 타고서야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분
그러다는 어느 새 살며시 우리 귓가로 다가와 시를 들려주고 이야기를 들려주시는 바람결 같은 우리들의 작은 하느님.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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