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26년 여름호 - 통권 194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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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40도에 가까운 폭염 속에서 녹색평론을 읽고 있자니 현타가 온다. 시원한 사무실과 지하철, 점점 진화하는 AI. 전기 먹는 하마. 수도권 전기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늘어나는 지방의 핵발전소와 고압송전시설들. 지방을 착취하는 수도권.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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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휘

AI와 트랜스휴머니즘, 포스트휴먼 담론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들은인간 능력의 증강과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을 소유한 소수에게 더 큰 권력을 몰아주고, 인간 삶 전체를 자본과 기술시스템에 더욱 종속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효율과 속도, 최적화와업그레이드가 새로운 구원이 된 시대에 가장 먼저 밀려나는 것은 느리고약한 것, 돌봄과 배려, 관계와 책임 같은 것들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우리가 마주한 문명의 위기는 단지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누구의 고통 위에 우리의 미래를 세울 것인가 하는, 훨씬 더 오래되고 근본적인 질문이다. - P105

박혜영

내 나이 오십 줄에 들어 내가 길을 잃었다는 것을 나는 알았다. 사람들은 흔히 갈 길을 몰라 헤매고 방황하는 것을 청춘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또 길은 황야나 숲처럼 잘 모르는 곳에서 잃어버린다고 생각한다. 중년에 접어든 어른이 그것도 매일 다니고 만나고 생활하던 일상의 공간에서 길을 잃고 미아가 될 줄은 나 역시 예상하지 못했다. 젊었을 때도 길은 보이지 않았고 나는 헤매다녔다. 그때의 방황과 방랑도 고통스러웠다. 바로 손에 닿을 듯한데도 잡을 수 없었던 탄탈로스의 고통처럼답답한 마음으로 청춘을 보냈다. 지도는 들었는데 내 힘으로는 그 지도를 읽을 수 없다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길을 잃었을 때는이와 다른 고통이 밀려왔다. ‘이 길이구나‘라는 확신은 이미 잃어버렸는데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고, 계속 나가기에는 점점 더 길이 - P113

흐트러져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갇힌 것 같은 고립의 고통이었다. 걸어온 길에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를 바라보며 ‘이렇게 계속 가도 되나‘라고 하는 막막한 두려움이었다. 두려움의 대상이 명확하지 않을 때 존재의 불안은 시작된다. - P114

이나미 <일터의 소로> 서평

그는 "낭비하지 않으면 모자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내가 낭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모자라지 않는다. 소로는 차, 커피, 버터, 우유, 고기가 필요 없다고 했다. 욕구에 맞춰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갖고 있는 돈에 욕구를 맞추는 방식을 취했다. 두 저자도 젊은 시절바나나와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먹고 살았다고 한다. 소로는 "불필요한부로는 불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을 뿐이다. 영혼이 필요로 하는 것을사는 데는 돈이 들지 않는다"고 했다. 소로는 이러한 지혜를 가난한 이들로부터 얻었다. 옷은 집에서 만들어 입고, 차와 커피 대신 솔송나무잎을 우려먹는 것 등이 그것이다. - P210

김선애 <배고프고 아름다운 동물들> 서평

저자는 인종차별, 성차별, 종 차별의 메커니즘이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인간/동물의 이분법이 백인 남성과 그 외의 사람들을 구분하고, 후자의 착취를 정당화하는 논리가 되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를 ‘열등하다‘ 여기고 ‘동물화하여 그들에 대한 억압을 합리화하려 하듯이, 우리는 비인간 동물들을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이용하는 일을 정당화했다. 저자는 말한다. 육식의 폐해에 대한 많은 지식을 쌓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동물의 이분법에 가려져 그동안 못 본 세계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 P226

김찬호 <꿈을 꾸게 하는 꿈이 있다> 서평

몸을 이동시키면서 만나는 풍경은 새로운 생각의창문이 되어주는 듯하다. 그래서 평범한 사물들이 새삼스러운 의미로다가오고, 잠자고 있던 언어들이 눈을 뜬다. 루소가 <고백록》에서 말했다. "나는 걸을 때만 사색할 수 있다. 내 두 발이 움직여야 내 머리가 움직인다." 권대웅 시인의 <걷기주의자>에도 비슷한 고백이 나온다. "걷다 보면 답이 온다/생각이 오고 파동이 온다/하늘과 구름과 땅속에서/문장이 온다/・・・ 걸을 때 나는 창조자/자유로운 영혼/심장과 두 발은 나의 육필/몸으로 관통하는 바람과 구름과길의 문장을 쓴다"(<녹색평론>2025년 겨울호). - P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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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베틀라나 알랙시예비치 <체르노빌의 기도>

린다 펜츠 건터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집단학살이다. 집단학살은 단순히 대규모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다. 그건 특정한 사람들을 문화적으로도 지워버리는 일이다. 하나의 삶의 방식, 그 사람들의 언어와신념체계까지 파괴하는 행위인 것이다.
원자력이 사람들의 인권을 침해하는 지점은 어디인가? 우리가 땅에서 우라늄을 파내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인권침해는 시작된다. 우라늄을 - P40

채굴할 때, 연료로 가공처리하고 또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그리고방사성폐기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마지막 단계까지, 우라늄 공급사슬의 전 과정에서 인권침해가 일어난다. - P41

핵을 둘러싼 거짓말이 최고조에 달했던 것은 체르노빌 사고 직후였다. (핵산업계는) 사고를 수습하기 위해서 투입되었던 공무원과 군인들몇 명만 목숨을 잃었고 다른 사상자는 없었다는 이야기를 우리더러 믿으라고 했다.
물론 그 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병을 얻어 여생을 내내 고통속에 지내야 했던 사람들도 많았다. 그중 몇 명은 벨라루스 출신의 탐사저널리스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스베틀라나는 그들의 고통, 두려움, 그들의 상실에 대한 500개의 증언을 자신의 책 <체르노빌의 기도》에 담았다.
원자력을 옹호하는 전문가들 -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전망 좋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상아탑 속 식자들의 눈에는 이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지않는다. 이 사람들의 얼굴을 그들은 차마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그 존재로서 전문가라고 하는 자신들의 거대한 거짓말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식을 잃은 한 아버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여자아이 일곱이 전부 대머리인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병동에는 머리가 다 빠진 아이들이 일곱 명이나 있었어요. 아니야, 그만! 더 이야기 못 하겠어요!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이 .. 내 심장이 이건 배신행위라고 말하는 것 같아요. 우리 딸을 그저 어떤 누군가인 것처럼 말해야 되잖아요. 그 애의 고통을 묘사한다니...
우리는 문짝 위에 아이를 눕혔습니다. 언젠가 우리 아버지도 그 문짝위에 누우셨어요. 사람들이 작은 관을 가져올 때까지 그렇게 기다렸어요.관은 너무나 작았어요. 커다란 인형을 담는 상자 같았어요. 상자 같았다고요. - P46

김찬휘

‘핵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기만핵발전소는 핵무기 개발의 수단으로도, 핵 공격의 수단으로도 사용될수 있는 잠재적인 핵무기다. 따라서 ‘핵 평화적 이용‘이라는 말은 형용모순이다. 핵발전소 폐기 운동은 핵무기 금지 운동과 분리될 수 없는것인데, 우리 현실에서 전자는 환경·에너지 부문에서, 후자는 평화·반전 운동의 차원에서 마치 서로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다루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반해‘ 대신 ‘탈핵‘이란 표현이 사용되면서 "핵발전을 반대한다"는 의미로 축소되어 통용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이다. - P63

핵발전소도 식민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에서도 핵발전소가있는 지역은 모두 내부 식민지라고 말할 수 있다. 핵발전소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운반하는 송전탑 건설에 맞서 싸웠던 밀양주민들의 투쟁은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는 처절한 기억을 남겼다. ‘평화적 핵‘은없다. 모든 핵은 폭력이며 식민지배다. 그러므로 반핵은 평화요 반식민일 수밖에 없다. - P65

일본 농촌의 산림이 바로 이 문제를 겪고 있다. 근대적 소유권 제도가 도입되면서 마을공동체가 함께 관리하던 산림이 개인 사유지로 나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소유자가 다른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자녀에게 상속하면서 하나의 산림이 수백 개의 소유권으로 쪼개지게 되면 이들 중 누구도 단독으로 관리에 나설 수 없고, 합의를 이끌어내기도 어려워 숲은 방치된다. ‘내 땅이지만 어떻게 할 수 없는‘ 안티 커먼즈의 비극이다.
그러나 과소이용의 원인이 소유권 문제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구감소, 산업화로 인한 경제적 가치 하락, 소유권 제도의 변화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따라서 소유권 제도를 고치는 것만으로는충분하지 않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지방소멸의 위기‘ 앞에서 포기하지않고 마을이 공동체적인 방식으로 돌파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방치되었던 자연이 함께 살아난 사례들이 있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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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평론 2026년 봄호 - 통권 193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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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급변하는 AI 시대에 거대 AI 기업의 독점을 막을 방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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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진정한 전환은 행정구역을 합병하는 외형적인 변화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자원을 둘러싼 소모적 경쟁을 협력적 배분의 구조로 전환하려는 중앙-지방 간의 문화적 성찰과 제도적 처방에서 출발해야 한다. 더욱이 통합은 되돌릴 수 없는 위험한 선택인 데 반해, 설계된 협력 - P14

은 환경변화에 맞추어 다시 고쳐나갈 수 있는 유연함과 회복탄력성을지닌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가 되려는 용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상태로 함께 작동할 수 있는 정교한 거버넌스의 지혜다. - P15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가 되는 용기가 아니라 서로 다른 채로 함께 가는 지혜다. 더 큰 정부를 만드는 결단보다 더 정교한 거버넌스를 설계하는 인내가 절실하다. 우리가 꿈꾸는 지속가능한 지역의 미래는 하나의 단일한 위계구조가 아니라 각자의 자율성이 살아 숨 쉬는성숙한 네트워크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속도정치를 멈추고, 되돌릴 수 있는 미래를 위한 정교한 설계를 시작해야 할 때다. - P17

종묘 주변 개발 이슈는 한 번에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자연과 문화재보존은 발전지상주의 사회, 정확히 말하면 문화(K-콘텐츠)도 돈이 되는발전사회가 마주하는 일상적인 문제가 될 것이다. 이를 개발이익과 환경가치의 충돌로 바라보는 것은 근시안적이다. 제국주의와 한국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피식민 국가에서도 자본주의는언제나 제국주의로 전환된다. 일제하 조선의 남태평양 개발 열풍을 생각해보라. - P36

1977년 8월 20일과 9월 5일,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공군기지에서 보이저 2호와 1호가 차례로 발사됐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지난오늘, 두 대의 탐사선은 태양계 밖 성간 공간 어딘가에서 끝나지 않을직진운동을 지속하며 공허한 시공간을 항해하고 있다. 탐사선에는 55개 언어의 인사말과 27곡의 음악, 지구의 소리가 담긴 황금 레코드판이실렸다. 이와 더불어 지구와 인류의 모습을 담은 115장의 이미지도 수록됐다. 칼 세이건을 필두로 한 다학제적 전문가 팀은 수록 자료를 선정하며 부정적이거나 논란의 소지가 있는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오염된 도시나 대규모 벌목 현장처럼 지구를 훼손하는 인간의 활동은 실리지 않았다. 우리가 실제로 ‘어떤 존재인지‘를 폭로하기보다, 우리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어 하는지‘에 무게를 둔 탓이다. 그 결과 레코드에는 웅장하고 정결하며 조화로운 하늘과 구름, 산맥과 계곡, 바다와 - P74

해안의 풍경이 담겼다. 하지만 이렇게 고른 사진들은 사실 우리가 이미상실했거나 파괴하고 있는 모든 것의 영정사진과 다름없으므로 기실보이저호는 지금의 지구가 얼마나 달라졌느냐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는 데에 가장 큰 의미가 있겠다. 인류로부터 영원히 멀어지고있으면서도 매 순간 지금의 지구는 안녕하냐는 인사를 송신하고 있는셈이다. 과거의 우리가 미래를 향해 던진 안부를 현재의 우리가 수신하고 있는 모양새다. - P75

보통 네메시스를 ‘복수의 신‘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이 단어의 원래의미는 ‘분배하다‘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네메시스란 과한 것을 덜어내어 다시 균형을 회복하려는 원리로, 각자에게 마땅한 자기 몫을 재분배하는 우주적 작용을 말한다. 무엇이든 과잉은 항상 네메시스의 처벌 대상이 된다. 이런 응징을 통해 지켜야 할 선이 사라져 무질서해진 시공간에 다시 질서와 균형이 회복된다. 고대 그리스는 이것을 정의라고 보았다. 정의가 살아있는 한, 과도한 행위는 응징되고, 정당한 자기 몫은다시 올바르게 분배되어 질서와 균형이 맞춰진 상태로 돌아가게 된다. 비극의 효과인 ‘카타르시스‘도 주인공이 고통을 겪거나 죽을 때가 아니라 선을 넘는 행위가 마침내 처벌받고, 과잉 몫의 재분배가 이루어져균형이 회복될 때 일어난다. 관객들은 연민과 공포 속에서 과잉이 초래한 무질서가 회복되는 것을 보고 비로소 안도의 숨을 내쉬고 감정이 정화되는 것을 느끼는 것이다. - P87

영국 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는 두 가지 비극이 있다. 하나는 마음속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그것을 이루는 것이다." 첫 번째 비극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자기가 바라는 것을 얻지 못하면 고통스럽고 괴롭기 때문이다. 하지만그보다 더 큰 비극은 바로 원하는 것을 얻을 때 찾아온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오이디푸스가 겪은 비극이다. 그는 세속의 모든 것을 얻었다. 사랑도 권력도 명예도 모두 그의 손안에 있었고, 그의 운명을 부러워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네메시스가 응징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원하는 것을 다 얻는 것은 필멸의 존재인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이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바라는 바를 모두 차지하는 것은 과잉이고 우주의 균형을 깨는 욕심이기에, 네메시스가 정의의 사이렌을 울리며 출동하는 것이다. 휴브리스 관점에서 보자면 원하는 것을 다 이루어저마다의 몫의 균형이 깨질 때 바로 비극이 시작되고, 삶은 고통스럽게된다. - P89

성장의 사회적·생태적 한계를 직시하면, 지속적인 성장과 기술의 관계 연구보다 절박한 물음이 있다. "유한한 세계에서 언제까지 성장을지속할 수 있을까?" "성장 자체는 좋은 것이어서 한계를 무릅쓰고라도성장해야 하나?" 성장의 한계는 아니라고 답하지만, 성장을 지상명령으로 삼는 자본주의는 성장에 목을 맨다.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많을수록 좋은가?" 자본주의는 이런 물음을 외면한다. 필요 충족이 아닌욕망 충족에 ‘충분함‘이란 없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자본주의는성장의 이름으로 우리 욕망을 제어하던 사회규범이나 관습을 해체했다. 우리 욕망은 기술이라는 신기루를 좇아 확장일로에 있다. - P97

2025년 상반기, 재생에너지가 세계 전력생산의 34.3%를 차지하며 처음으로 석탄(33.1%)을제치고 세계 최대 전력원이 됐다. 하지만 석탄 사용량 자체도 늘어나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재생에너지 확대보다 전력 수요가 더 빠르게증가한 탓이다. 늘어난 재생에너지는 기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늘어난 에너지 수요를 보충하는 데 그쳤다.
지금 기술의 대세는 인공지능(AI)이다. 우리 정부도 ‘AI 강국‘에 매진한다. 그런데 AI 구현에 필요한 반도체와 데이터센터에는 막대한 전력이 들어간다. 지금 계획대로라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전력 수요는최대 16GW에 달한다. 전력 수요가 폭증한다며 지금 정부는 윤석열 정부의 핵 폭주 정책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급조한 두 번의 정책토론회와한 번의 여론조사를 형식적으로 해치우더니 기존 계획대로 핵발전소 2기와 소형모듈원전(SMR) 1기 건설을 발표했다. 가히 ‘에너지 쿠데타‘라고 할 만한 폭거다. 신규 핵발전소 건설 예정지로 지정된 지역은 극심한 갈등에 휩싸일 것이다. 새로운 송전선로는 지역의 산천과 마을을딴낼 것이다. 모두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다. 우리는 정녕 과거에서 배우지 못할 만큼 그렇게 어리석은가.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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