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도산 선생은 나를 새롭게/나를 힘 있게/내가 나답게, 나는 나로서 일어나 살아가면서 타자들의 주체를 일으켜 세워주는 여립(汝立)의 사랑을 실천하면 나라도 찾고 인간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나로서 나를 새롭게_김인국

문제는 언제나 남이 아니라 나다. 나라가 망해서 식민지 백성으로 쓰라린 고통을 겪을 때 안창호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나를 일깨우려 애썼다. 나를 강조하고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앞세운 철학은 일찍이 없었다(박재순). 유교전통은 극기와 수기를 말하면서 나를 억눌러야 한다고 가르쳤다. 불교전통은 무아와 멸아를 강조했다. 그리스도교 전통은 나를구원자를 믿고 기다려야 하는 죄인으로 대했다. 하지만 도산 선생은 나를 새롭게/나를 힘 있게/내가 나답게, 나는 나로서 일어나 살아가면서타자들의 주체를 일으켜 세워주는 여립(汝立)의 사랑을 실천하면 나라도 찾고 인간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주체의 철학‘은 북한뿐 아니라 남한에서도 본래 취지에서 어긋나고 말았다. ‘나는 나로서 나로 말미암아‘, 이런 생각이 어느 정도 자라나다가 저만 최고로 아는 교만, 이기주의와 야합하는 바람에 아주 못쓰게 되었다. 각자도생은 미래도 없고 사람이 할 짓도 아니니 동고동락으로 살아보자는 목소리를 잡아 죽일 듯 저주하는 게 제정신인 - P174

가. 거짓-나가 참-나를 짓밟고 일어선 결과다. 이를 바로잡으려는 2003년의 삼보일배가 예순닷새 삼백이십이 킬로미터였고, 2008년의 오체투지는 일백스무나흘 장장 삼백오십오 킬로미터였다. "땅이 땅에 묻혀 숨막혀 하고(새만금), 물이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대운하) 모습을 차마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수경 스님) 나선 두 번의 순례는 망상의 나를 쓰러뜨리고 참다운 나를 되찾으려는 목숨 건 사투였다. 순례자들의그 마음을 오늘 다시 생각한다. - P175

자급을 생각한다(4) 도시살이 생협 조합원의 자급_장병윤

"필요 이상으로 많이 쓰는 것은 도적질이나 마찬가지다. 남의 것을 빼앗는 범죄행위다." 권정생 선생의 말씀이 늘 뒷덜미를 묵직이 누르고 있다. 무언가를 필요 이상으로 소비할때는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 P184

소비의 메커니즘을 한번 들여다보자. 거기엔 끊임없이 욕망을 부추기는 외부적 자극, 돈이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자본의 논리가 작동한다. 잉여를 통해 확대재생산해야 하는 자본주의 속성은 필연적으로 과잉생산-과잉소비를 불렀다. 우리의 소비는 그 틀 속에서 감응하고교화된 채 폭발적으로 질주한다.
오늘 우리에게 자급은 어떤 의미일까. 자본주의체제 아래서 자급한다는 것은 자본의 작동체계에 맞서고 시장의 질서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비정한 경제적 가치를 떨쳐내고 공동체적 가치를 앞세워 협동으로생산하고 유통하고 소비하는 틀을 만드는 게 자급 아닐까. 자급으로 가는 또하나의 길은 물자를 아껴 쓰고 소비를 줄이며 자립의 생활양식을마련하는 것이다. 그 길은 불편을 감수하는 일로, 자신이 누리고 있는풍요와 편리를 내려놓는 데에서 시작된다.
자급은 돈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자본의 시스템이 아니라 호혜의관계 속에서 공동체적 생산양식과 소비양식을 구축할 때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여러 한계에도 불구하고 생협운동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 P187

이제 죽음을 헤아려야 하는 나이가 됐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요즘의 과제다. ‘좋은 죽음‘ 역시 좋은 삶의 결과이고겸허하게 삶을 마감할 때 가능하다. 생의 말기를 산업화된 의료와 상업적 요양에 맡기지 않고 스스로 죽음을 준비를 하고 싶다. 삶과 죽음이 - P192

명멸하는 자연을 마주하고 우주의 섭리에 따라 마지막을 준비한다면
‘죽음의 자급‘을 이루지 않을까.
상품이 철철 넘치지만 내게 주어진 물질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한 마음으로 하나라도 아끼고 절약하는 일이 자급의 길이다. 자급적 생활은 기후변화의 재앙적인 사태, 극단적 이기주의와 승자독식의무한경쟁, 사회·경제적 양극화 등 우리가 마주한 복합적 위기를 넘는해법이기도 하다. 내가 누려온 편리와 풍요를 내려놓고 불편과 가난을기꺼이 받아들이는 ‘공생빈락‘, 그 가치를 삶으로 실현하는 자급은 우리의 자존과 미래를 지키는 길이다. - P193

자본주의 다시 보기(2) 명품과 스마트폰과 가치형태_강수돌

러시아혁명 뒤인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가 생겼다. ILO는 인간노동에 관한 세계 표준을 정립, 노동인권과 함께 자본주의를 수호하려했다. 그래서 ILO는 ‘하루 8시간제‘와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란 구호를온 세상에 외친다.
그러나 노동인권 보호 취지가 아무리 고상해도, 이 구호는 오류다. 그것은 노동력과 노동의 개념을 혼동하기 때문!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력‘이란 쌀, 가방, 아파트처럼 화폐와 교환되는 상품이다. 반면, ‘노동‘이란 노동력 상품을 구입한 사용자가 그 상품(노동력)을 소비하는 과정으로, 노동력이 생산수단(원료, 기계)과 결합, 새 상품(가치)을 생산하는 과정이다. 요컨대, 노동력은 상품이고, 노동은 행위다. 불행히도 ILO는 이잘못된 구호를 100년 넘게 고수한다.
만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가 옳다고 고집한다면, 이는 굳이 크게외칠 필요 없는 자명한 것이기 때문! 노동력과 노동을 정확히 구별한다면 저 구호 자체가 무용지물이다. - P197

앞서 2024년 대통령 신년사와 2023년 대법원 판결을 언급했는데, 이역시 가치공식 4를 현실로 증명한다. 즉, 여기서 국가(대통령, 법원 등)는자본의 가치증식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재판부는 충분한 휴식 없이 과로를 거듭하다 죽은 노동자 삶이나 차별적 하청구조는 외면한 채, 오직 자본의 노동비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 해석을 했다.
실은 2023년 마감 대법원 판결이 또 있다. 그것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김포 장릉 인근에 ‘왕릉뷰 아파트‘를 지은 건설사가 문화재청의 공사중지 명령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인데, 대법원 3부가 끝내 건설사 편을 든 것! 문화재청은 2019년부터 대광이엔씨, 대방건설, 제이에스글로벌 등 건설사가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에 20m 이상 고층 아파트를 사전 심의 없이 지었기에 문화재보호법 위반이라 봤다. 그러나 대법원의 핵심 논지를 보라! "건물은 이미 골조가 완성됐고, 공사 중단으로 건설사들과 수분양자들이 입을 ‘재산상 손해‘는 막대한 반면, 이 사건 처분이나 이 사건 건물을 일부라도 철거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그에 비해 크지 않거나 미미하다." 이로써 건설사와 법원은 결국 자본의가치증식 동맹체임이 거듭 확인된다.
이렇게 국가는 자본이 가치를 스스로 증식하도록 적극 돕는, 주관적가치형태다. 달리 말해, 국가나 제도와 같은 주관적, 의식적 가치형태없이는 상품, 화폐, 자본은 결코 ‘스스로‘ 증식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자본주의 근대성과 함께 출현한 개인, 사회, 국가, 민족, 제도, 정책 등은 결코 초역사적이거나 ‘원래 그런 것‘이 아닌, 자본의 가치증식 내지자본축적과 밀접한 연관 속에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과연 우리는 이 시스템 안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가? - P200

모든 상품은 백화점 진열 전에 생산돼야 한다. 명품일수록 장인의 손노동을 요한다. 170년 전통의 ‘루이비통‘도 그 신발을 오늘날 유럽에서노동력이 싼 루마니아에서 90% 이상 생산한다. 마지막 단계는 이탈리아 장인노동이 완성한다. 700여 루마니아 노동자들은 매월 20만 원 미만을 받는다(2017년 기준). 이 신발은 80만 원에서 300만 원짜리다. 흔히 우리는 ‘명품‘(가치형태인 상품)이나 그 가격(가치형태인 화폐)에 놀라거나 자랑하지만, 실은 원료 채굴, 생산과 운반, 판매 등 가치사슬에서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들이 뒤틀리는 ‘숨은 과정‘이 있다. 이그늘진 과정과 관계들을 놓친 채 오직 겉모습(명품 상표나 화려한 외양, 비싼 가격)에만 쏠리는 현상이 ‘물신주의(fetishism)‘다.
즉, 물신주의란 상품이나 화폐 그 자체의 외양에만 신경 쓸 뿐, 그 근본배경인 과정이나 관계에는 무관심한, 집단적·객관적 착시 현상이다《고병권의 자본 강의》). 실제로 우리는 명품이나 첨단 기술에 환호할 뿐,
그게 여기 오기까지의 사회적 관계들엔 맹목이다. - P201

서평. 기후위기 시대의 에코페미니즘_노고운
<우리는 지구를 떠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이 ‘자급’이란 문명을 이용하지 않고 약소하나마 자연이 허락하는 물질만으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축소‘되고 ‘후퇴‘한 ‘고된‘ 삶이라고 상상한다. 하지만 김혜련은 "에코페미니즘이 말하는 자급적 삶"이란 "돈을 위해 노동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생명과 삶을 위해 노동하고, 사치품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것을 스스로 생산하는 삶"이라고 말한다. 달리 말하면, 자급적 삶은 "욕망과 필요를 구분하고 필요의 원칙"(김은희)에 따르는 삶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탈성장이 추구하는 좋은 삶"이다. - P222

철학자 프레드릭 제임슨의 말처럼 확실히 우리는 기후 비상시대에도 여전히 "이 세계의 끝을 상상하는 것보다 자본주의의 끝을 상상하는 것이더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여기‘에서, 자본주의로 ‘죽어가는 행성‘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급적 삶을 살고, 자급적 사회를이룰 것인가?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하나의 답은 흙이다.
김혜련은 "자급의 삶은 소비를 억제하고 금욕하는 삶이 아니라, 소비하고 싶은 욕구 자체가 잘 일어나지 않는, 온전한 삶"이라고 말한다. 그는 텃밭에서 흙과 풀을 만지고 있으면 개별적 존재로서의 내가 사라지고 "거대한 내가", "온생명인 내가 되며, "이런 충만감에는 결핍과 불안이 자리할 곳이 별로 없다고 고백한다. - P223

장우주는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하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상호 연결되어 있으며 나아가 상호의존적이고, 서로 먹고 먹히는 "물질적 관계를 통해 서로 얽혀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존재가 되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 P224

사실 다종적 얽힘은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 아니다. 근대 유럽 식민주의의 영향하에서 우리는 자연/문화, 여성/남성, 비서구/서구를 나누는 이원론적 존재론과 세계관을 통해 지구 생물들을 분류하여왔다. 축산동물과 야생동물은 타자화, 여성화되어 인간 여성과 유사한 방식으로 가부장제 문명에 의해 구조적 억압을 받아왔다(유서연, 이미숙). 그러므로 인간과 비인간을 이원론의 반대 항에 두지 않고 한 몸 안에 서로얽힌 하나의 존재라고 보는 관점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현대 생물학에서는 이미 이 관점을 받아들여서 생물 진화의 단위를하나의 생물종이 아니라 홀로비온트(holobiont), 즉 복합 유기체(생물의몸)와 그들의 공생자(공생 미생물)로 이루어진 공생체로 보고 있다.
또한 이 책의 많은 저자들이 인용하는 페미니스트 영문학자 스테이시 앨러이모의 횡단신체성 개념을 통해서 생각해본다면, 다종의 얽힘이 자연스러운 상태로 여겨질 것이다. 우리 지구 생물들은 숨 쉬고, 먹고, 배변활동을 할 때, 그리고 타자와 여러 다양한 방식의 신체 접촉을할 때, 외부 물질이 몸 안에 들어오고 내부 물질이 몸 밖으로 나간다. 횡단신체성은 인간과 비인간의 신체와 지구행성을 이루는 물질이 끊임없이 교차하고 얽히는 양상을 잘 표현한 개념이다. - P225

에코페미니스트가 제시하는 자급적사회는 자본주의적 정치경제에 예속된 방식의 부의 축적에 의해서가 아니라, 홍자경이 보여주듯이 문화인류학자 애나 칭의 "알아차림의 기술"을 실천함으로써 이룰 수 있다. "인류세 시대의 수많은 오염되고 교란된땅에서 자연/문화 이분법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다양한 생물종들의 뒤얽힌 삶의 양식을 알아차리고, 그 얽힘의 삶이 지속가능하도록 하는 활동에 몸과 마음을 쏟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장우주가 주장하는 "생태적공감"과 "생태적 응답을 통한 다종의 돌봄이기도 하다.
김현미가 제시하듯이 기후위기 시대의 에코페미니즘은 "역사와 현재, 인간과 비인간, 물질과 기계의 연결성 및 전체성을 지향한다." 또한기후위기를 모른 척 방관하거나, 기후우울증에 빠져 인간임을 자책하기보다는, 감정의 이동을 통해 기후위기를 완화시킬 실천을 행하고자한다. 생태적 슬픔을 함께 느끼고 애도하는 감정적 연대를 통해 "위기이후의 희망을 기획해나갈 힘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생태적 슬픔은 피해자의 정서가 아니라 변혁자의 분노"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기후위기 시대 지구에서 경험하는 생태적 슬픔과 애도를 다양한 주제 속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하고, 이 감정들을 통해 "응답과 책임의 윤리를 알아내고 행동하는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에코페미니스트 15인의 이야기는 조금씩 다른 모양새로, 또는 같은 형태로 우리 모두의 삶 속에 들어 있다. 우리도 각자의 위치에서 다종적 얽힘을 알아차리고, 생태적 감정을 통해 얻은 희망을 바탕으로 응답의 윤리를 실천하며, 지금 여기에서 자급적 삶을 모색해보자. - P226

서평. 사랑과 혁명을 읽는 시간_김동현
<사랑에 미쳐 날뛸 날이 올 거다>

김수영을 모더니스트로 이해하든 리얼리스트로 이해하든 김수영의 시를 읽어가는일은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황규관 시인이 지적하고 있듯이 우리의 근대사 그 자체였던 ‘김수영의 현실‘을 이해하는 통사적 읽기가 선행되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 P235

김수영 시가 난해한 이유를 황규관은 "김수영 시인이 자신이 처한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영혼을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고투를 통해 시를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김수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의시를 단독적 예술의 발화가 아닌 그가 경험했던 시간의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함을 의미한다. - P238

한때 좋은 리얼리즘 시를 썼다고 해서 그게 평생 유용한 신원 증명서가 될 수는 없습니다. ・・・ 리얼리스트는 단순히 리얼리즘 양식의 작품을쓰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하는 현실 속에서 중단 없는 자기갱신을 하는작가를 말합니다. 그래서 한때 리얼리스트일 수는 있어도 온 삶이 리얼리스트인 경우는 드뭅니다. (100~101쪽) - P240

서평. 흙과 생명과 민중에 대한 모심의 시들_고영직
<니들의 시간>

"스테이 홈(stay Home)." 김해자 시인의 시집 《니들의 시간》을 읽으며 ‘스테이 홈‘이라는 표현이 저절로 떠올랐다. 이 말은 에코페미니즘의 핵심 개념으로 지구라는 집에 잘 머무르자는 의미에서 재(再)거주화를 뜻한다. 그렇다. 물살이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우리는 지구라는 집을 떠나 살 수 없다. 그렇듯 김해자 시인은 시집 《니들의 시간》에서 인류세 시대 시의 역할을 고민하며 다른 언어와 다른 시간을 제시하며, 지구라는 집에 살기 위해 다른 사유방식을 지닌 새로운 인간이 탄생해야 함을 촉구한다. 나는 언젠가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한 김해자 시인을 두고 ‘동네지식인‘이라고 명명한 적 있다. - P242

인류학자 에두아르도 콘은 인류세란 "인간적인 것 ‘너머‘의 세계가 너무나 인간적인 것에 의해 점차 변해버리는 불확실의 시대"라고 정의한다. 하지만 미국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좌파의 길》에서 "지구를태워버리겠다고 위협하는 것은 절대로 ‘인류‘가 아니며, 바로 자본주의다"라고 강조한다. 나는 이 점에서 인류세라는 표현 대신에 ‘자본세‘로이해해야 한다고 한 제이슨 W. 무어의 인식이 훨씬 더 정명(正名)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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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농업, 기후위기 시대의 대안일까_송원규

기후·먹거리 · 지역이 모두 위기에 빠진 복합위기의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대부분이 불안함, 무력감, 우울 그리고 인류의욕심이 지구적 위기를 불러왔다는 죄책감까지 더해져 ‘기후우울증‘을겪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세계 인구 증가, (농업) 투입재 및 에너지비용 증가, 토양 및 수질 악화라는 악재들까지 더해지면서, 기후변화에 대응하면서 동시에 경제성장과 안정적 식량공급까지 보장하는 첨단 기술이 있다는 선전은 큰 기대를 만들어냈고, 이것이 관련 정책들이 앞다투어 수립되고 시행되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 P150

기술을 개발한 기업과 이를 이용하는 농민 사이에 종속적인 관계가생겨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종종 언급되는 것이 바로 미국 기업 ‘존디어‘의 자율주행 트랙터이다. 존디어는 트랙터에 설치된 소프트웨어에 대한 디지털 지식재산권을 그들이 소유하고 있다는사실을 근거로 삼아서, 농민들이 트랙터를 직접 수리하거나 혹은 다른 - P152

농기계 수리점에서 수리하는 행위를 불법으로 만들었다. 농민은 트랙터 사용을 위한 일종의 ‘라이선스‘를 구입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떤 불편이 있더라도 존디어 회사의 서비스를 맹목적으로 기다려야 하며, 회사는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에는 농기계를 원격으로 비활성화하거나 사용을 종료시킬 수 있다.

첨단 기술은 글로벌 농식품체계의 부조리를 해결할 수 있는가
위의 이야기는 데이터 기반 스마트농업이 가져올 기업-농민 간, 농민-농민 간의 불평등한 사회적 관계를 상상해보기 위한 단편적 사례에 불과하다. 지구적 위기 시대에 첨단 기술이 인류와 농민에게 어떤 것을 해줄 수 있는지에 집중해 홍보하는 산업계의 서사에 대항해서, 실제로 영농현장에 적용되었을 때 기업이 기술을 통해 무엇을 실제로 하고 있는지, 이면의 이야기를 시사하고 있다. 스마트농업에 대한 관심과 적용이 증대하면서 그에 따라서 농장 데이터의 부당한 수집과 활용, 데이터를 독점적으로 활용한 이윤추구, 특정 기업의 서비스 및 투입재에 의존하는 영농방식의 강화, 관련 시장의 선점 등 다양한 문제 역시 구체적인사례들을 통해 하나씩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다. - P153

무엇을 위한 ‘친환경농업’인가_유병덕

어느새 ‘환경농업의 가치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농약이 검출되지않는‘ 친환경농산물은 화학물질의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안심이라는 가치로 소비자에게 다가갔다. 그 시절 우리 사회는 ‘소비자는 왕‘이라는 마케팅용 속담을 비판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먹을거리에 불안한 소비자는 안심을 구입하고 싶었고, 친환경농업은 ‘안전한 농산물‘의브랜드로서 소비자 왕을 만족시킴으로써 매출을 높일 수 있었다. 농업환경을 보전하겠다는 본래 목적보다 소비자가 희망하는 ‘케미컬프리(chemical free)‘ 상품을 공급하는 것이 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그렇게 ‘친환경농업‘이 육성되었다. - P161

유기농업을 핍박하는 친환경 인증제도
우리나라 친환경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출 비율은 6%이다. 혹자는 어떻게 그렇게 많이 검출되냐고 불평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74% 검출되 - P164

는 관행 농산물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경이로운 성과다. 평가는 상대적이어야 한다.
유기농업의 선진국들이 모여 있는 유럽연합의 유기농산물 잔류농약검출 비율도 14%로 우리보다 훨씬 높다. 미국의 유기농산물은 23%로우리의 거의 4배 수준이다. 우리나라 친환경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출 비율이 세계 1등 수준으로 낮으니, 좋은 일일까? ‘불검출‘을 추구하는 정부는 기분이 좋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성과는 합리적 제도 운용으로 얻어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농부들의 눈물 없이는 불가능하다. - P165

친환경농산물의 잔류농약 검출 빈도가 관행 농산물에 비해 현저히
낮음을 말했는데, 우리가 알아야 할 정보가 하나 더 있다. 바로 검출된잔류농약 성분의 농도이다. 친환경농산물이 완벽하게 잔류농약 ‘불검출‘이 되기는 어렵다. 즉 평균 검출 농도가 0.000ppm보다는 크다. 하지만 관행농산물의 평균 농도 0.134ppm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작다. 생명체가 변화의 충격에 대항하여 항상성을 갖기 위한 생체질서의 복원체계인 ‘알로스타시스(allostasis)‘를 생각한다면 우리나라 친환경농산물의잔류농약 농도는 비정상적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대단히 낮다. 다시 상기하자. 이 정도 성과는 농민의 눈물이 없이 불가능하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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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공동체, 새로운 문명의 출발점_이승무

지도에서 4대 문명의 발상지들인 인더스강, 황하, 나일강, 유프라테스티그리스강 유역들의 지리적인 위치와 지형들을 살펴보더라도 대체로 험준한 산악지형과 골짜기, 바다를 잇는 다채로운 지리적 조건들을 갖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곳들은 여러가지 색다른 사람들과지역들이 모여 서로 교류를 하면서 많은 자극을 주고받을 수가 있었고이를 통해 더 넓은 지역들로 퍼져 나갈 만한 웅장한 문명이 생겨나게되었다는 것이다. - P111

생물의 종 다양성 감소가 생태환경의 열악화를 나타내는 지표이듯지방문화의 다양성의 소멸은 한반도 문명에는 상당한 위험신호가 된다. 이러한 극단적인 시장과 문화의 통일은 교통, 통신의 발달에 따른자본주의 문명의 절대적 성향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문화적 취향 자체가 이러한 통일성을 선진적 진보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것을 부정할 수없다. 교회탑정책(Kirchturmspolitik)이란 표현이 있다. 이는 독일의 비스마르크가 지역에 기반을 둔 보수적인 정치세력들의 입장을 냉소적으로 명명하여 교회당 첨탑이 바라보이는 작은 지역 중심의 고립주의가독일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본 것을 비유한 것이다. 그 시대 이래 중앙집중화를 지향하는 정치사상적 경향은 달라진 바가 없다. - P113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하는 경제는 당연히 사람들의 건강과 자연의 건강을 기초로 하고, 이는사람들의 행복의 직접적인 모습일 것이기에 언제까지나 GDP에 매달리는 경제학을 계속할 수는 없다. 사람과 자연의 건강을 직접 측정하는, 정신건강을 포함한 건강상의 지표와 종 다양성과 같은 생태학적인 지표를 도입해서 실질적인 복지와 행복을 측정하고 이를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경제학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 P117

정치인들, 저리 비켜_에드 사익스

’미초아칸주 토착민 협의회(CSIM)‘ 대변인인 파벨 울리아노는 자신들에게 있어서 자치(自治)란 공동체를 안전하게 지키고 그들의 천연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도구"라고 표현했다. 자치는 또한 민주적으로 모든 사람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해준다. 지역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결정은 총회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울리아노는 푸레페차 공동체들이 자치권을 회복하기 위해 싸워나가는 과정에서 세 가지 요소가필수적이었다고 말했다. 첫째, 대중이 자신들의 집단적 권리에 대해서깨닫는 일, 둘째는 그 권리를 정부가 존중하도록 요구하기 위해서 공동체를 동원하는 일, 마지막으로 공동체 내의 결속과 의회체들 사이의 단합이 그것이다. 즉 지식, 행동, 단합이 없으면 자치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 P126

물리적 장소와 직접민주주의_야보르 타린스키

혁명이 일어날 때 우리는 거리에 있어야 한다.
-마커스 바람

오늘날에는 디지털민주주의나 전자민주주의, 즉 온라인을 통한 정치참여에 대한 논의가 무성하다. 심지어 앱민주주의(Appocracy), 즉 스마트폰 응용프로그램(앱)을 매개로 한 시민의 정치참여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갈수록 깊어지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단으로 보고 있다. - P129

물리적 장소, 민주주의의 핵심적 요소
직접민주주의는 국가에 대한 막연한 소속감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인 공간을 회복하는 일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그러한 사실은 아랍의봄에서 시작하여 월가점령운동, 인디그나도스 등으로 이어진 이른바광장운동의 진행과정에서 특히 잘 드러났다. 이 세계적인 운동의 핵심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건립하는 일의 일환으로서 시민들이 공공장소(특히 광장)를 되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공간들에서 민중의회 형태로 새로운 제도들이 생겨났는데, 그런 것들은 국회 및 초국적 기술관료주의체제의 정당성에 직접적으로 도전장을 냈다. 여기서전 세계의 수많은 사람들을 동원하고 조직화하는 데 있어서 인터넷이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운동들의 제일 중요한 부분은 (공적 공간을) 탈환하는 행동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후 대중의 숙의과정이 이어지면서 사회의 상상력에 다른 미래에 대한 비전을 급진적으로 불어넣었다. 그래서 각국 정부는 잔혹한 폭력으로 대응하면서 자생적인 운동의 흔적을 모두 지우려고 했던 것이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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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석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인간 강화와 인간 잉여의 패러독스》
포스트휴머니즘과 트랜스휴머니즘

지역의 이중소외 현상
지역정당
다르게 살기
돌아가기
주민자치
주민 정체성

인공지능과 민주주의_장정일

한국의 학부모들 사이에 고등학교는 ‘알파고‘라는 썰렁한 농담도 떠돌았지만, 알파고(인공지능)의 충격은 경제·사회의 혁명적인 변혁을 예상하게 만들었고, 새삼스럽게 ‘인간‘존재에 대한 심문도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김진석의 《강한 인공지능과 인간-인간 강화와 인간 잉여의 패러독스》 (글항아리, 2019)는 후자의 문제를 깊고 폭넓게 고민한 저작으로, 이 주제의 책으로는 가장 먼저 참조할 책이다. - P33

포스트휴머니즘 논자와 트랜스휴머니즘 논자들은 인간을 세계의 중심에서 밀어내거나 로봇과 공생해야 하는 지위로 추락시키고, 다른 한편 생명공학적 개입을 통한 인간강화(human augmentation)는 니체가 말한 ‘초인‘을 실현시킬지도 모른다. - P35

철학자 김진석이 내놓은 인간 생존의 방책은 두 가지다. 하나는 인간과 기계 사이의 대립이라는 모호한 가설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인간이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하고 진화하기 위해서는 인간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앞으로 등장할 인공지능 로봇들이 순전히 기계이기만 할 리는 없다. 뇌-컴퓨터의 연결을 추진하는 과학기술은 다름 아니라 인간과 기계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사이보그를 탄생시키려 한다."(146쪽) - P36

현재의 과학·기술 수준에서, 인공지능이란 빅데이터를 활용한 알고리즘 혹은 대량의 빅테이터를 알고리즘에 투입해서 얻는 결과를 뜻한다. 알고리즘은 국가정책과 기업활동뿐 아니라, 극히 전문화되어 있는법조계와 의학계에서도 이미 활용하고 있다. 그런 뜻에서 우리는 이미인공지능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를 실감하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에 덧입혀진 사이보그나 안드로이드와 같은 의인화의 외양을 벗겨내야 한다. - P37

인공지능은 기업과 권력을 가진 엘리트의 도구이지 인류를 멸망시키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다.
마크 코켈버그도 두 사람의 의견에 동의한다. "세상에는 우리를 억압하는 ‘인공지능‘ 같은 것은 없다. 인공지능을 고립된 인자나 많은 구성요소로 이루어진 인공적 행위자로 생각해서도 안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항상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인공지능이 권력에 미치는 영향은 늘인간 때문이고 인간을 통해 일어난다. 인공지능이 조금이라도 권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인간을 지배하는 권력 등), 그것은 인간을 통한 권력이자 사회를 통한 권력이다."(197쪽) - P40

인공지능, 거대기술과 자립의 삶_정형철

디지털과 인공지능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새로운 거대기술은 우리의 모든 관계망을 디지털 가상공간에 결박해버렸다. 사회적 관계망이라고 제멋대로 이름 붙여 부르는 소셜미디어 공간은 거대한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본색을 드러낸 지 오래다. 공짜 놀이터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놓고 그 속에서 사용자들이 놀고 간 흔적들로막대한 이윤을 남긴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의 진짜 고객은, 보통의 사용자가 아니라 사용자의 흔적을 팔아넘길 광고주라는 사실을 정작 사용자들은 모르고 있다. 온갖 콘텐츠를 자진 헌납하면서도 그 콘텐츠가 플랫폼 업체에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이렇게모인 사용자의 소중한 데이터는 인공지능을 위한 기계학습의 빅데이터가 된다. - P47

그렇다면 왜 기술의 방향이 이러한 안락과 편의를 제공하는 데 맞춰져 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안락과 편의가 인간의 본질적 욕망인 것처럼 간주되는 것은 소비자본주의 시스템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가사는 사회에서 안락과 편의는 이미 철저히 상품화되었다. ‘편안한 상태‘는 스스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통해 제공받아야 하는 것이다. 상품과 서비스에 극도로 의존하는 생활이 우리 삶대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자신의 노동뿐만 아니라 다른 활동도 모두 상품이나 서비스로 여기고 싶어 한다. 서비스에는 대가가 필요하다. 주는 - P48

쪽이든 받는 쪽이든 그것은 일종의 거래가 된다. 심지어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나 돌보는 행위도 서비스로 간주하거나 간주당한다. 소비사회에서 인간은 스스로 소비자로 태어났다는 환상을 갖는다. 아주 어린 나이부터 소비 주체로 길러진다. 상품과 재화, 서비스를 구매해야만 살아갈 수 있다고 스스로를 규정한다. 생존을 위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를위한 생존이다. 이런 사회에서 소비하지 않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받는다. - P49

거대기술이 포섭하는 삶 바깥에서 자치와 자립, 공생의 삶이 회복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기술사회가 현혹하는 안락과 편의를 소비하는 삶의 방식으로부터 과감히 탈피해나가지 않으면 안된다.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은 애초에 우리의 필요와 선택에 의해 만들어진 기술이 아니다. 이러한 거대기술이야말로 인간을 잉여로 만든다는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 불필요하다는 의미에서 잉여기술이다. 기술의 폭주 바깥에서 우리의 삶을 따로 돌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먼저 우리 삶이 어떤 ‘좋은 삶을 지향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보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주변에서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자. - P53

포스트휴먼 세계의 영성_카비르 헬민스키

일반적으로 이것은 ‘의식‘이라고 일컬어지는데, 나는 이 의식이 단순한 정신적인 경험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가치, 질(質), 관계에 관한 것까지 포함한다는 중요한 사실을 환기하고 싶다. 바로 이것이 "생존을 위해서 필요하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삶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C. S. 루이스) 것이다. - P55

인공지능은 점진적으로, 거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을 능가할 것이고, 우리는 십중팔구 인공지능에 의해 설계된 틀에 종속될 것이다. 우리 중에서 일부는 인공지능이 지배하고 어쩌면 통제하기도 할 경제·사회에서 유의미하고 경쟁력 있는 존재로 남아 있기 위해서 어쩔 수없이 자신의 생물학적 지능을 증강해야 할지도 모른다. 포스트휴먼 세계, 즉 인간이 일을 해야 할 필요는 줄어들고 인간의 주된 사회적 기능은 소비‘가 되었을 때, 인간이 경제에서 유용한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소득이 보장돼야 하고, 우리가 밥만 축내는 성가신 존재가 되어버린 세계에서 인간존엄성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게 될까. - P59

영국의 그레이엄 다우닝 박사는 인공지능 및 인간적 가치들에 대한형이상학적 무지로 인해서, 인간의 인식과 관련한 세 개의 문(門)이 영향을 받게 되었다고 말한다.
첫째는 외부 세계를 향한 문이다. 가상현실이 부상하면서 실제의 세계는 평가절하되고 있고, 인공지능에 의해서 상업적, 정치적, 이기적 속성이 강화된 만들어진 현실이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가상현실이 우리의 내부 세계가 될 때에는 이 문은 닫혀버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영적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그 어느 때보다 작아질 것이다 - P62

정치 개혁은 주민자치로부터_좌담

황종규_이런 이야기를 저는 계속 했어요. 중앙정부를 상대로 ‘지방의 몫‘을 요구하는 운동은 작은 공동체나 소지역 단위에서 다시 몫을 배분해야 하는 문제가 되면 소위 거점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위로부터의 자원 배분이 아니라 일상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가는 작은 단위의자치적 실천이 지역의 지속성에 관건적 요소라는 것이지요. - P69

윤현식_선거법 얘기도 해야겠는데, 2004년 17대 국회에서 민주노동당이 10명의석을 차지했는데 그중 8명이 비례였어요. 선거제도가 바뀌었기때문에 덕을 봤던 것이죠. 그런데 그게 그때는 득인 줄 알았는데 지나고 보니 독이 된 거죠. 2007년에서 2008년이 되면서 그 비례 자리를 누가 가져가느냐를 두고 싸움이 났던 것이니까요. 일정한 민주노동당의지지율만큼 자리는 분명히 있다는 확신이 생기니까 그 자리를 누가 차지하느냐의 싸움이 돼버렸던 겁니다. 정책적 지향을 가지고 토론을 통해서 경합하는 것이 아니라, 누가 앞자리 순번을 받을 것이냐의 싸움이되었다는 거예요. 저는 비례대표제가 진보정당이 이용할 수 있고 활용해야 될 수단이지만 동시에 극복하지 않으면 안되는 양날의 무기가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지역과 현장뿐이라고봅니다. 바로 그래서 지역정당이 필요한 것이죠. - P71

황종규_‘특별자치‘는 한마디로 개발을 위한 것이었죠. 중앙정부가가진 개발 관련 권한을 제주도에 부여함으로써, 말하자면 분권 시범사업을 정부 주도로 추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제주는 특별자치도가 되면서 기초자치단체를 두지 않도록 되어 있어요. 이것 자체가 반자치적인 일이지만 ‘특별한 자치‘, ‘분권‘이라는 말에 주민들이 현혹된 것이죠. ‘지방분권‘은 본질적으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정부와 얼마나 나눌 것인가를 뜻하는 행정적 접근입니다. - P76

하승수_제주도가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도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고, 따라서 그것을 극복하려는 시행착오를 우리 모두 관심을 갖고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아까 ‘자치주의‘라고 표현하셨는데, 그 대점에 중앙집권주의가 있다면, 지역 단위 안에서 그것은 개발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특별자치도를 ‘특별개발도‘로 생각하는경향이 제주도에서 있었지만, 이제 강원도와 전라북도도 특별자치도가되면서 마찬가지로……. - P78

황종규_한국사회가 당면한 거대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자꾸 어떤 큰해결책을 찾는데, 저는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제가 ‘돌아서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것은 당사자로서의 주민이 자신의 생활공간에서 정치의 주체가 되는 데서 출발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봅니다. 꼬리를 잡아서 머리를 흔든다는 표현을 하잖아요. 지역의 자치가 복원되지않은 상태에서 현재의 복잡한 문제들을 건드리려고 하다가는 오히려 - P90

체제의 논리에 동화될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래서 지역정당의 경우에도 작은 생활권의 정치를 복원하는 역할에 주력하고, 주민자치가 공식적으로 자리 잡아 자치제도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 P91

황종규_우리나라 지방자치의 가장 큰 약점이 규모예요. 자치단체의 평균 인구규모가 세계에서 제일 커요. 그리고 편차도 엄청나게 큽니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일상의 문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풀어가면서 주민들이 정치적 효능감을 느끼고 삶에 대한 만족감이 높아져 - P91

서 지역에 남게 하려면 자치의 단위가 잘게 나누어져야 됩니다. 그런데우리는 이 단위가 이미 너무 큰데 메가시티다 뭐다 하면서 더 크게 만들면 행복해진다는 신화를 못 버리고 있지요. 자치는 곧 주민자치, ‘Selfrule‘이죠. 굳이 ‘주민자치‘라는 말을 쓰는 나라는 일본하고 우리뿐입니다. 이건 한국의 지방자치 현실을 말해주는 동시에, 우리가 자치를 이해하고 실천하는 방식도 함의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치의 주체와 자치권을 가진 사람은 일치해야 하는데, 우리는 단체자치가 있고 주민자치가 있는 것처럼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정부가 해결해주고 보충적으로 주민들이 할 수 있는 것 하는 정도로 자치를 인식합니다. 이런 통념을 바꾸려면 결국 의회나 자치단체장이 최종 결정권을 갖는 구조부터 바꾸어야 해요.
유엔이 2011년부터 여러가지 행복지표를 조사해서 발표하고 있잖아요. 우리로서는 충격적인 지표가 한두 개가 아니지만 제가 눈여겨보는건 삶에 대한 선택의 자유도인데요, 거의 백몇십 위입니다. 한국인의삶이 그만큼 시장종속적이라는 것이죠. 삶의 기준이 획일화되어서 개인이든 공동체이든 스스로의 길을 개척해갈 여지가 거의 없다는 거예요. 그러나 현재의 방식은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치적으로도 한계에 왔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결국, 내 삶의 경로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기 위해서 정치를 재구성해야 하는 것이고, 그리고 일상의 정치를 활성화하는 데서 출발해보자는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재미를 느끼고 행복을 느끼는 지점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보자. 한나 아렌트가 정치야말로 인간 실존의 본질이라고 그랬잖아요. -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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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양극화

인공지능에 대한 물음에 대한 물음_손화철

프랑스의 기술철학자 자크 엘륄은현대 기술이 자율성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탄하면서, 거기에 더해 기술(technique)과 구별되는 기술에 대한 담론(technologie), 즉 기술을 궁극적인 문제 해결의 전형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가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보았다. - P22

생성형 인공지능 관련해서 자주 제기되는 문제로 할루시네이션 현상과 편향성 문제가 있다. 할루시네이션 현상은 챗GPT와 같은 대형언어모델(LLM)에서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정보를 제공하거나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 P23

인공지능의 편향성 문제는 인공지능이 학습 데이터의 편향을 반영한결과를 산출하는 현상을 말한다. ‘교수‘는 남성과, ‘청소‘는 여성과 더가깝게 연결짓고, 피부색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일상의 편견이 우리가생산하는 데이터에 반영되기 때문에 그 데이터를 학습해서 나오는 결과에도 그런 편향이 묻어 있는 것이다. - P24

좀더 직접적인 경우로 인공지능의 기능을 위해 인권침해적 노동이용인되기도 한다. 주로 제3세계에 퍼져 있는 일명 ‘유령 노동자‘는 인공지능이 부적절한 내용을 산출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입력 데이터를 가공하거나 생성형 인공지능에게 가상의 질문을 던지고 부적절한 대답을삭제하는 일을 한다. 이들은 때로 끔찍한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보거나읽어야 하고, 비정기적으로 불시에 부여되는 일감을 선착순으로 얻어내기 위해 상시 대기해야 한다. 작업의 질에 따라 보수가 달라지기 때문에 노동강도가 높지만, 실수도 반항도 용납되지 않고 노동자 인권은전혀 보장되지 않는다. 챗GPT에 포르노 소설을 쓰라는 것 같은 부적절한 쿼리(정보 요청 명령문)를 입력하면 대답을 유보하는 것은 기술적 탁월함이 아닌 비인간적인 노동의 결과다. - P26

현대 기술사회의 사고방식을 ‘기술의 패러다임‘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일을 문제풀이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 P30

"모든 문제에는 해결책이 있고, 그 해결책은 언젠가 발견되며, 만약 해결책이 없다면 처음부터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 패러다임은 모든 물음과 생각거리를 재빨리 문제와 문제 해결의 조합으로 바꾸어버린다.
기술의 영역에 특화된 이런 사고방식을 교육, 정치 같은 인간 삶의다른 영역에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이는 기술에 대한 담론에서도마찬가지다. 기술에 대한 담론은 기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에대한 다양한 논의가 일정한 범위 안에서 맴돌며 더 깊고 넓은 차원으로나아가지 못하는 이유도 문제와 문제풀이의 틀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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