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2025년 봄호 - 통권 189호
녹색평론 편집부 지음 / 녹색평론사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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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선거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 또 뼈저리게 느끼는 요즘인데. 꼴보기 싫어도 관심을 갖고 알고 참여해야 하는데. 이런 사태를 다시 직면하고 싶지 않다면. 회의감도 무력감도 접어두고. 녹색평론이라는 백신을 계속 맞아가면서.

정아은 작가의 책 <전두환의 마지막 33년>을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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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정한

콘텍스트에 대한 무한 존중을 넘어 그것에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그것을 교정하는 패턴을 디자인하는 것이 그가 지향하는 조경작업인 셈이다. 물론 자신의 패턴이 콘텍스트에 도전해야 함을 말한다기보다는 "콘텍스트와 패턴 사이"의 접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다음 구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설계는 더하는작업이 아니라 빼는 작업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욕심을 부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의욕이 지나치게 앞서면 설계안은 복잡해진다. 복잡한 설계 - P143

안이 좋은 공간으로 진화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때로는 ‘패턴‘이 ‘콘텍스트‘를 존중하고 스스로 몸 낮추기를 아끼지 말아야 할 이유다. 형태뿐만이 아니다. 재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모든 조형적요소들은 최적의 순간까지만 적극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10) 박승진의작품에 미니멀리즘을 대입할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워커힐 아카디아호텔 옥상(2007년), 풀무원 폐수처리장 물의 정원(2009년), 아모레퍼시픽 뷰티 캠퍼스(2012년) 등과 같은 그의 작업에서는 자연의 바탕을 마련하고 자연의 시간성과 물성을 살리는 "보살핌"의 조경이 미니멀한 형태와 재료를 통해 명료하게 드러난다. - P144

퍼트리샤 조핸슨

저는 이 원리를 수년 전에, 샌프란시스코에서 하수처리 습지를 조성하면서 배웠습니다. 그때 제가 만난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 개발업자들과 의기투합해서 돈을 벌고 있었어요. 한편으로 습지를 파괴하는 일을 하면서, 다른 편에서 그로 인한 폐단을 줄이는 사업도 하고 있었습니다. ‘습지 복원 전문가들이 나서서 습지를 새로 조성하는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될까요? 절대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심어놓은 식물들은 항상 죽어버려요. 제가 여기서 배운 건 자연이 선택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자연을 거역해서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습지 위에 건설된 주차장이 있다고 한다면 그 땅에는 결국 습지가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습지는 언제나 그곳에 있었고, 그곳에 있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게 중요한 교훈이라고 생각해요. 본래 있어야 할 자리가 아닌 곳에 억지로 배치하려고 해선 안됩니다. 자연의 결정을 우리가 대신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에요. 이 모든 작은 부분이 다 어떻게 작동하는지 인간은 알고 있지 못합니다. - P163

그런데 실제로 다 사라졌거든요. 이렇게 된 것이었어요. 왜 샌프란시스코만에서 굴 등이 종적을 감추었는지 과학이 밝혀냈는데, 그 이유는사람들에 의해서 수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었어요! (갯벌이 공유지로 남아 있어서) 주민들이 굴을 조금씩 채취해서 먹을 수 있었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자주 개펄에 드나들면서 진흙탕을 계속해서 휘저었던것이죠. 그러면서 무거운 흙이 조개들의 서식지 위에 켜켜이 쌓여서 숨쉴 통로가 막히는 일을 방지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관에서 원주민들을 모조리 몰아내고 해안에 접근할 수 없게 했으니 어떻게 됐겠습니까. 굴 같은 동물들이 살 수 없는 곳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런데 과학적으로 규명되기 전에도, 사람들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이미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요. 우리가 조상 대대로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지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증거입니다. 종래의 과학이라는 것은부분적인 진실에 불과하기 때문에 (전체 맥락에 대한 이해가 확장됨에 따라서) 계속해서 바뀌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사실이라고 생각한 것이내일 틀렸다고 밝혀지기도 하지 않습니까. - P165

100% 공감합니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사람이 만든 작품에서는완벽한 균형미 같은 것은 볼 수 있어도 다른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호두 같은 것을 들여다보면 그 형상이 시각적으로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 물체가 본래 무엇인지, 무엇을 위한 것인지, 왜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지 등 기능적, 구조적인 고려를 모두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자연의 어떤 부분을 떼어놓고 보더라도 우리는 그 구조가 얼마나 완벽한지 알 수 있습니다. 형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전략적으로도 말입니다. 생존의 측면에서도, 이 세계에서 자신의 위치, 자신을 이 세상에서 영원히 지속되게 하기 위한 목적에서 더이상 적합할 수 없는 모습으로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런 각각의 요소들이 모여서 대단히다면적인 하나의 전체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캔버스 위의 작품은 아름답습니다. 색깔들도 멋있고 우리에게 미학적 기쁨을 주지요. 그러나 자연의 어떤 부분이라도 모두 보유하고 있는 다층적인 의미는 갖고 있지못합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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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희

단 1표만 더 받으면 되는현행 단순다수대표제는 잘하기 경쟁보다는 ‘저쪽이 싫어서 이쪽을 찍는 투표‘를 고착화하고, 낙선한 후보를 찍은 표는 모두 사표(死票)가 되기 때문에 연합정치의 실현 가능성을 떨어뜨린다는 학계의 오랜 지적에도 공감했다. - P93

뉴질랜드처럼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호주는 6개 주마다 12석, 준주 2곳은 2석씩 동등하게 의석을 갖는 상원과, 151개 지역마다 1명씩대표가 있는 하원 두 개의 의회로 구성된다. 상원과 하원의 투표방식에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는 동일하다. 유권자는 모든 후보자에게 선호도 순위를 매겨 표기하고, 일정 기준에 도래할 때까지 선호도를배분하는 방식으로 의원을 선출한다. 예를 들어 하원선거 1차 개표에서 과반 득표자가 없다면, 최하위 후보를 탈락시키되 그를 1순위로 택한 유권자의 표 중 2순위에 해당하는 표는 다른 후보들에게 배분된다. 이렇게 개표와 탈락을 반복함으로써 당선자가 정해진다. 단 한 표만으로도 승부가 갈리는 단순다수대표제하에선 거대 양당 간 대립이 극심할수록 양당정치의 원심력이 소수 정당을 링 밖으로 밀어낸다. 사표 심리 때문이다. 하지만 호주의 선호투표제는 내가 가장 선호하는 후보가탈락해도 당선자가 나올 때까지 모든 투표의 효력이 유지된다. 자신의표가 사장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덜 싫어하는 후보에게 표를 줄 필요가 없는 셈이다. - P97

박태현

나는 이것들이 부분적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사안 전체를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현행 환경법은 우리 경제체계 자체의 지향과 같은 근본원인은 다루지 않은 채 일상 행위의 외부효과만을 관리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이는 설령 환경법이 적정하게 집행되더라도 근본적으로 환경위기를 막을 수 없음을 함의하기 때문이다. 현대 환경법은 "지구공동체의 건강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이 경제성장, 산업개발 그리고 개인의 인권에 초점을 맞추는 ‘근대주의 프로젝트의 일부‘로, 기본적으로 자연을 인간 복리를 위한 산업적가치를 가진 것으로 다루며 그 자체 고유한 가치를 가진 실체로 고려하 - P113

지 않아 지금과 같은 환경위기가 초래됐다고 보는, 본원적인 문제 지점을 가리키는 견해에 주목해야 한다. - P114

’인간중심주의‘는 오로지 인간의 가치와 경험에 비춰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인간은 주체 그 밖의 비인간 실체는 객체라는 전제를 강화한다. ‘공리주의‘는 "개인의 목표와 욕구 실현, 독립성과 자립성을 강조하며 이것이 국가 내지 사회단체의 이익에 우선해야 한다"는 ‘개인주의‘ 철학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함으로써 개인의 가치를 원칙적으로 불가침적인것으로 규범화한다. 이러한 서구의 ‘개체인간중심주의‘는 현대 인간문화와 의식적 행위에 깊이 박혀 있는데, 이러한 토대 위에서 현대 법질서는 구축, 운영된다. 근래 개체 - 인간중심주의는 그 발원지인 서구에서도자기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구성 부분의 속성과 구분되는 전체로서의 창발적 속성에 대한 인정(전일론)과 세계 내 실체 간의 상호연결성과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중심주의에 대항하여 지구의 생명 또는 생태를 가치 중심에 두는 생명·생태중심주의가 주창된다. 또한 주체를 상호주체성으로 언급하며, 우리는 공통되게 서로에게 의존해 있고 공통된 삶을 위해 사회구조에 의존한다며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강조하는 정치철학적 이론"도 학계에서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다. - P115

고(故) 홍세화 선생은 생전에 마지막으로 쓴 칼럼에서 "자연이 인간의 지배, 정복, 소유, 추출의 대상일 때, 인간도 다른 인간의 지배, 정복, 수탈, 착취의 대상이었다"며, "소유주의가 끝없이 밀어붙인 성장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선생은 개인을 독립된 원자로 보지않고 "사회적 관계의 총화"로 보았다. 그리고 "자연과 인간, 동물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관계는 성장하는 게 아니라 성숙하는 것"이라며, 성장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힘주어 주문하셨다. - P116

오윤주

이제까지의 학습이란 개념은 ‘이해의 축적 혹은 확장‘이라는 의미로통용되어왔다. 학생들이 이미 있는 것을 알게 되고 이것을 축적하는 것이 학습이며, 교사의 주된 과업은 그러한 과정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인식되어왔다. 교육학자인 거트 비에스타는 학습의 개념을 "학생들이 이미 갖고 있지 않은 것과 마주침"이라고 새롭게 정의한다. 학습의 과정 - P124

에서 학생들은 낯선 것, 새로운 것과 만나 기존의 자신을 깨뜨려야 하는 실존적 어려움에 처한다. 학생들은 ‘현재 존재하는 것‘과 ‘현재 존재하지 않는 것‘ 사이의 긴장을 느끼며 저항하고자 하기도 하는데, 이때교사는 학습을 위한 ‘지연‘의 공간을 열어 학생들이 자신과 함께 있기만한 상태로부터 벗어나 함께 이 세계에 존재하도록 학생들을 초대한다.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축적적 이해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주체로서 세계에 존재할 해방적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게 된다. 그 열린 공간을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교사의 역할이다. 그 과정에서 중요한것은 교사와 학생들의 실존적 만남이며, 그 과정에서 교사의 실존 역시변화하게 된다. 교사와 학생은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함께 세계에 잘 존재하기 위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이처럼 교사와 학생이 실존적 배움의 공간에서 만나 세계 속에 성숙한 방식으로 존재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과정을 학습이라고 할 때, 학습을 시작과 끝이 있는 고정되고 단단한 닫힌 체계로 보고 있는 디지털교과서의 체계는 이러한 해방적이고 실존적인 학습의 면모를 적절하게담아내는 데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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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회

오현철

비상계엄은 적대정치의 결과물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만든 비상계엄 사태는 한국 대통령제와 대의민주주의의 허약함을 드러내었다. 그가 계엄의 이유로 내세운 야당의 줄탄핵과 예산삭감은, 우리 헌법이 삼권분립 원리에 기반해 대통령을 견제하도록 의회에 부여한 권한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야당인 민주당이 그 권한을 헤프게 썼다고 비난할 수는 있으나 합법적인 권한행사를 이유로군대를 의회에 보내는 것은 반헌법적인 폭거이다.
민주당의 줄탄핵과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이면에는 한국 정당정치에뿌리내린 적대정치가 있다. 정치세력들이 상대 진영의 정치적 목표와정책을 방해하기 위해 줄탄핵을 하거나 그에 맞서 계엄을 발동할 만큼서로를 적대하는 것이다. 내란죄의 피고인 윤석열이 보여준 야당 진영에 대한 적대감은 적대정치의 실체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 P41

한국에서 아테네 민주주의 체제가 가능한가
도시국가 아테네의 정치제도를 국민국가인 한국에 그대로 도입하는것은 불가능하지만 시민들의 주권행사 정신을 반영하는 방법이 있다. 그중 유력한 것이 시민의회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을 아테네처럼 시민의회에서 결정할 수 있다. 시민의회는 일반시민들을 추첨을 통해선발하여, 모든 사람에게 시민의회 의원이 될 가능성이 똑같이 주어진다. - P45

선진국에서는 정권을 담당한 권력자가 시민의회 구성을 요청했다.
소모적인 정쟁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력한 통로가 시민의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이 국민주권을 달성하기 위한 시민들의 노력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지방정부의 참여예산제에 시·도의원들이 반발한 전례를 보면, 정치인들은 시민들에게 의사결정권한을 주면 자신들의 권력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므로 시민들이 먼저 개헌안을 만들고 국회의원과 정당과 대통령에게 혹은 대통령 후보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주권의 실현을 위한 개헌, 최소한의 요구로서 박정희가 유신헌법에서 삭제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를 확보하는 개헌 운동을 전국민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6월항쟁처럼. - P51

최자영

국회가 탄핵한 공직자를 헌재가 기각 결정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실은 박근혜 탄핵을 제외하고는 전원 탄핵 기각했다. - P54

그런데 헌재의 탄핵 기각 결정은 당사자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뜻이아니다. 단지 탄핵당할 만큼의 큰 잘못이 아니란 것이다. ‘탄핵될 만큼‘이라는 정도의 평가에서 국회와 헌재가 판단을 달리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정도의 평가라는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평가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게다가 문제는 헌재의 판단이 반드시 국민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정도의 평가라는 점에서 객관성이결여되고 또 헌재의 결정이 국민 다수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보장도 없는 것이라면, 헌법재판소가 지금과 같이 탄핵심판권을 갖는 것이 타당한가하는 질문이 필히 제기된다. - P55

헌법재판소의 한계는 1987년 창설 당시부터 이미 배태된 것이었다. 헌재는 전두환 군부정권 말기의 작품으로 87년 헌법의 소산이다. 이헌법은 대통령 직선제를 제외하고는 유신헌법을 거의 그대로 물려받은것으로서 국민발안·국민투표·국민소환권을 복구하지 않았고, 그 대신헌법재판소라는 독재적 기구를 창설했다. 헌법재판소는 독일 헌법재판소를 모방한 것이라고 하는데, 이름만 같을 뿐 기능적으로는 전혀 독일의 것을 닮지 않았다. - P56

그것은, 소수는 다수보다 더 현명한 것이 아니라 더 부패하기 쉽다는 것이고, 또 법은 소수의 해석에 의해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각기 스스로 해석하고 행동함으로써 비로소 현실에서 구체화한다는 사실이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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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전두환의 마지막 33년>
김동춘 <고통에 응답하지 않는 정치>

책을 내면서_김정현

대의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1%를 위해 99%의 희생을 강요한다. 그일을 원만하게 성취하기 위해서 대의제 민주주의는 정기적으로 치러지는 선거를 통해 평등이라는 환상을 유포하고, 자본주의는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내세워서 대중의 동의를 얻는다. 그리하여 서구식 민주주의가 도입된 모든 나라에서 부의 상향 재분배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효과적으로 진행될 수 있었다. 우리 경우에도 독재자가 아니라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자유무역이라는 이름으로 농산물 시장을개방하여 식량안보를 위험에 빠트렸고, 온 국토를 부동산 개발업자들의 놀이터가 되게 허용하여 국가공동체의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훼손해왔으며, 마침내 전례 없는 경제적 양극화와 사회적 분열을 초래했던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도움을 받아 초국적기업들과 글로벌 자본은 야만적인 자본축적에 가속도를 붙였다. 그렇게 반세기 가까이 신자유주의가 독주를 펼친 결과 빈곤은 더욱 깊어지기도 했지만, 자본주의적 가난은 불안감, 수치심 같은 심리적, 정신적 상흔을 동반했기 때문에특별히 더 견딜 수 없는 것이 되었다.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은 ‘기회의 평등‘이라고 하는 수사(修辭)가 얼마나 기만적인 것인가를 누구도 반박할 수 없도록 실증적으로 밝혀냈기 때문에 대중의 환호를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 P4

첫째, 시민의회는 파편화된 문화, 양극화된 사회, 고립된 개인이라는문제를 극복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선거대의제에 익숙한 우리는 다수결을 민주주의의 원리라고 생각하지만, 시민의회는 합의가 민주주의의원칙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다수결은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내 편을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상대방을 헐뜯는 일이 자연히 수반된다. 그러므로 패배한 쪽은 앙심을 품고-극단적인 경우에는 투표과정에 부정이개입되지 않았는가 하고 의심하면서 다음 기회를 벼르게 되는 것이다. 한편, 합의에 이르기 위해서는 경쟁이 아닌 토의(숙의)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모든 참가자는 의견을 개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의 뜻이 관철되지 않아도 마음에 앙금이 남지 않는다. "내 의견이 존중받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나와 다른 관점을 가진 누군가와 깊이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본 것은 처음이다." 시민의회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 P9

좌담

성한용_저는 김영삼 대통령이 1995년에 특별법 만들어서 전두환·노태우 처벌한 것을 평가하고 싶어요. 우리가 일제 청산도 못 하고 김재규로 인해서 박정희 쿠데타도 제대로 정리를 못 했지만, 그래도 비록 다 집행이 안돼서 효과가 반감되긴 했어도 전두환 쿠데타는 청산을 한 셈이에요. 비상계엄 발표 나자마자 사람들이 곧장 막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즉시 움직였던 배경에는 성공한 쿠데타도 사법처리가 된다는 선례를 남긴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 P12

김동춘_저는 민주주의의 공고화(democratic consolidation) 이론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미국 정치학자들이 후발국의 민주화를 설명할 때 사용하는말인데, 주기적이고 투명한 선거, 평화적 정권교체, 군사정권으로의 역전 불가 등이 가능한 경우를 말하는 것이죠. 저는 과거사 문제에 오래관여해왔지만 그쪽에서 흔히 쓰는 ‘이행기 정의‘라는 말도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군사독재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이행했다는 말인데, 독재를 경험한 후발국이 서구적 자유민주주의를 제도화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지요. 이건 미국의 주류 정치학자들이 그들의 정치이론을 세계에 - P14

설파하기 위해 만든 모델이에요. 저는 한국과 같이 냉전과 분단이 지배하는 나라에 이런 이론은 적용되기 어렵다고 생각해왔어요. 무엇보다민주주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 문제와 연동돼 있기 때문에 이런 근대화론적인 발상을 수용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P15

김정현_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이해가 우리 정치지도자들에게 결여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번 정부에서 두드러진 모습은 정치가 실종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국민 여론에 호응하거나 야당과 협치하는 시늉조차 하지 않고, 비판자들에 대해선 심지어 언론까지 모조리 소송으로 대응하면서 사법으로 제압해왔지 않습니까. 반정치주의가 극단적인 정치의 사법화라고 해야 할지 이런 형태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는지요? - P21

김동춘_맞아요. 극우세력이 동원하는 담론이 미국에서 인종주의라면한국에선 반공주의입니다. 반북·반공이 이들의 문화적 자원이죠. 그걸깰 방법은, 지적하신 대로 사람들이 가까운 곳에서 변화가 어떻게 가능한지 체험하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고, 또 역사교육도 필요합니다. 저는 어디서나 10% 인구는 파시스트 혹은 왕조시대의 사고를 갖고 있다고 봐요. 그리고 복음주의 기독교인처럼 맹목적이고 제도정치나 현실정치에 무지한 사람들이 10% 있어요. 즉 20% 정도는 민주교육을 받았더라도 어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나서 모든 일을 일거에 해결하기를 바라고, 만사를 선악의 구도로 봅니다. - P24

김정현_앞에서 김동춘 선생님께서 신자유주의 세계를 지배해온 우익세력에게 자본주의가 초래한 난국을 헤쳐갈 능력이 없기 때문에 사회적 분열을 부추기고 폭력에 의존해서 권력을 유지한다고 하셨는데, 좀더 설명해주시겠어요?
김동춘_오늘의 세계체제라고 하는 건 결국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타협이라고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이른바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자본주의적 모순을 민주주의로 적절하게 제어해온 것입니다. 거칠게 말해서1원 1표제로는 체제가 붕괴하게 생겼으니까 자본가들이 일정 정도 양보를 한 것이지요. 가장 진보적인 형태가 사민주의 복지국가라면 군사독재는 가장 퇴영적 모습입니다. 그런데 1991년 사회주의 붕괴 이후 민주주의와 타협할 필요가 없어지자 자본주의의 고삐가 풀려버린 거예요. 그렇게 신자유주의라는 자본의 폭주가 1990년대 이후 전 세계에서나타나고 복지국가가 붕괴합니다. 제조업 기반을 포기하고 양극화가 극심해진 건 어설픈 복지국가였던 영국과 미국이고, 그 정도로는 안 망가져도 세계화 여파로 이주노동자들이 밀려들자 유럽에서도 극우세력이 등장합니다. 사민당, 노동당도 몰락하거나 우경화됐죠. 이렇게 최근 - P26

한 20년 사이에 이른바 선진국들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징후들이나타났는데 좀 극단적 형태가 미국, 영국, 브라질이라고 볼 수 있어요.
신자유주의체제를 이끌어가는 보수세력들은 안정적 노동시장에서밀려난 사회적 약자들에게 대안을 제시할 능력이 없어요. 그래서 인종주의, 이주민 혐오를 부추기는 거예요.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원망이정치권이 아닌 이주자들을 향하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는것이죠. 미국 트럼프, 브라질 볼소나로, 프랑스 르펜, 독일을위한대안(AfD) 또 오스트리아, 스웨덴에서도 극단적 정치세력이 부상하고 있어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타협이 깨졌는데, 조직노동이 해체되니까민주주의를 뒷받침할 세력이 사라졌고, 좌파, 진보세력이 무력화되고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니까 중도에 있던 사람들과 노동세력이 오른쪽으로 가서 우익이 독주를 하다가 자멸의 과정에 접어든 것이죠.
기만적이긴 했으나 지난 세기에 미국이 저개발국에 경제적 수혜를준 건 사실이잖아요. 그런데 냉전이 무너지자 그 정책도 버리기 시작했고 노골적으로 나타난 게 트럼프주의입니다. 이제 미국의 헤게모니가작동하지 않는데 중국은 미국 정도의 대항적 패권은 만들어내지 못한상태에서 중국도 시진핑의 국가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현재는 사실상 ‘글로벌 우익체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안 없는 글로벌우익체제의 한국적 현상이 윤석열 방식이라고 봐야죠. - P27

하승수_해법은 정치의 다양성 확보, 다당제를 통해 저마다 의제를 가지고 경쟁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쪽이 내란 같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면 당분간 상대편은 거저먹을 수 있는 거대 양당 구조가 문제예요. 극우 정치세력의 부상을 막기 위해서도 다당제가 필요합니다. 지금 국민의힘은 사실상 극우세력이 주도권을 갖고 있잖아요. 두 개 거대정당 중에서 하나가 사실상 극우라는 사실은, 유럽 다당제 국가들에서제일 오른편에 극우 정당이 존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입니다. 더욱이 민주당도 보수 내지 중도라고 할 수 있으니까, 진보적 입장에서불평등이나 기후위기 같은 문제에 대한 해법이 나오기 어려운 거예요.
그러나 다당제 구조라면 민주당보다 진보적이거나 생태적인 정당을 찍거나, 혹은 지역정당에 투표할 사람들이 있거든요. 또 저는 한국에선신자유주의와 맞물린 수도권 일극 집중이라는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모든 권력과 자본이 수도권에 집중되어 있으니까 비수도권지역이 소외당하고, 농촌이 마치 수도권 도시지역의 식민지처럼 돼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도권 일극 집중에서 벗어나는 일이 지금필요한 전환의 핵심인 것 같은데, 이 문제도 거대 양당에선 논의조차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우리 현실의 다급한 여러 문제를 풀려면 다당제정치구조는 필수적입니다.

성한용_민주주의는 깨지기 쉬운 유리그릇이라는 걸 눈치채기 시작한게 저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항상 불안한 건 당연한 거예요. 이번 기회에 민주주의는 언제든 위협받을 수 있다는 걸 우리 모두 학습했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말씀드렸듯이 저는 반정치주의의 극복이 가장중요하다고 봅니다.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정 - P39

치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가장 강력한 무기도 정치인데, 정치라고 하면더럽고 피해야 할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아요. 반정치주의를 유포시키는 분단체제 기득권 세력들과의 전쟁에 저는 남은 힘을보태고 싶습니다. 촛불·응원봉 시민들도 국회나 정당을 백안시하지 마시고 정치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에 함께해주시면 좋겠다는 당부를 드리고 싶어요. - 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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