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담, 작가-친구-연습
어딘글방에서 우리는 작가 되기뿐만 아니라 작가의 친구 되기도 훈련했다. 인용하는 연습뿐만 아니라 인용당하는 연습도 했다. 기꺼이 서로의 글감이 되어 줄 수있는가? 글방에서 우정은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어떤 경험과 말에 ‘내 것‘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치사하고 쩨쩨한 처사였다. 누가 나를 글에 써서 분하다면 나도 그를 글에 쓰면 된다. 공동으로 겪은 하루를한 사람은 글로 써 오고 한 사람은 만화로 그려 오는 풍요가 글방에는 있었다. 아직 쓰이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내 이야기였어야 할 이야기‘라거나 ‘내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라는 표현은 틀렸다. 그가 썼다면 그의 이야기인 것이다. - P22

언제부턴가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의 뛰어난 문장과 생각을 모셔와내 글의 부족함을 만회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그 대가로 나도 내 말을 그들에게 헤프게 준다. 이제는 친구들이 나를 어디서 어떻게 인용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나는‘이라고 너무 많이 쓰다가 그렇게되었다. 원없이 ‘나‘라고 써놓고보니 그 많은 나가 다나일 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엇이라고 쓰는 순간 나는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진다. 나는 무엇도아니다. 그러므로 내말은 너의 말도, 그의 말도 될 수있다. - P29

이연숙, 비우정의 우정
그러나 분명 우호적인 관계를 못 맺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 역시도 우정이라는 개념을 경유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상적이라 말해지는 사회 규범에 도무지 적응할수 없는 괴짜들(queer)이 속할 수 있는 가장 미약한 공동체를 상상하기 위한 용어로 ‘비(非)우정의 우정‘을 제안한다. 비우정의 우정이란 너와 나의 ‘같음‘이라는 유사성과 동일성에 기반을 둔 우정이 아니다. 오히려 너와 나의 ‘다름‘이라는 불화와 불일치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너와 나의 ‘특별함‘ 또는 ‘유일무이함‘이라는환상이 들어설 자리를 너와 나라는 ‘아무나‘의 우연한마주침으로 채운다. 너와 내가 결코 같지 않고 앞으로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너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혹은너를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처럼 영원히 반복될 너라는 대상을 향한 나의 오해와 오독에는 일종의 충실성이 있다. - P39

김영민이 『동무론』에서 제시한 비우정의 우정은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사에서 유구하게 반복되어 말해진 주제다. 다시말해 우리가 우정이라 부르는 관계는 ‘나는 그를 안다‘는 긍정이 아니라 ‘나는 그를 모른다’는 부정에서, 혹은 그런 긍정과 부정의 사이 또는 겹침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주제에서 가장 유명한 경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고전해지는 "친구여, 친구가 없구나(O friend, there is nofriend)‘일 것이다. ‘친구‘를 돈호하는 동시에 ‘친구‘의부재를 확인하는 이 수수께끼 같은 경구는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에 의해, 그리고 『우정의 정치학에서 데리다에 의해 전유된다. 하지만 조르조 아 - P45

감벤에 따르면 그들은 전략적으로 그리스어 원전을 오독했다고 한다. 원전의 의미는 ‘친구가 많은 자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 P45

흥미롭게도 푸코의 우정론의 토대가 되는 ‘비인격적 친밀감‘은 로넬의‘커피나 한 잔‘에 대한 혐오, 김영민의 ‘서늘한 관계‘에대한 옹호, 아감벤의 ‘함께-나님‘과 공명한다. 이처럼친구의 정체성도, 과거도, 얼굴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비우정의 우정이 제기하는 문제는, 내가 너를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P51

김정은, 자기 언어를 찾는 방법
1984년 결성된 ‘또 하나의 문화‘는 조형, 조한혜정, 조옥라, 장필화 등이 남녀평등 문제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대안 문화를 모색하고자 한 동인 모임이다. [1] 줄여서 ‘또문‘이라 불린 이들은 계급 담론과 노동자 정체성이 특권화된 1980년대 대항 공론장에서 노 - P57

동 현장이 아닌 가정과 학교 등을 새로운 현장으로 부각했다. 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 등에 소속된 동인들은 서울 신촌 지역에 사무실을 차리고, 이를 근거지로삼아 여러 모임을 주관했으며 모임의 결과물을 정리하고 다듬어 무크지 <또 하나의 문화》(1985~2003년)를펴냈다. 활자 매체를 통한 운동으로 20여 년 동안 한국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제를 발굴했다. - P58

현재 출판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길보라, 이슬아, 하미나 등 1990년대생 여성 필자들은 모두 같은 글방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자기 언어를 찾았다. 어딘글방을 운영한 김현아는 또문이 인큐베이팅한 대안학교하자센터의 교사였으며, 글방은 또문의 사무실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집단에서 서로의 언어를 찾아가는 우정이라는 방법은 단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도 자기 언어를 갱신하는 구체적 훈련 방식으로 활용된다. - P59

[10] 김혜순은 2002년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출간을 기념한 한인터뷰에서 ‘문화권력모임‘과 관련한 질문에 특히 바리데기와 관련해 "김성례 교수에게서 많이 배웠다."라고 말했다. "당시 미셸 푸코가 유행하면서 여기저기 ‘권력‘이란 말이 붙어다녔다. 토론 결과를 책도 내지 말고 세상에 알리지도 말자는 모임이었다. 서강대 종교학과 김성례 교수에게서 많이 배웠다. 바리데기는 기본 뼈대만 같은 이본(異本)이 수십 종이고, 그것들은 각각 연희 때마다 살아 있는 텍스트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리데기를 글로 읽지 않고 파동으로 받아들이면서 흡수하게 된 것이다." "강요된 주부엄마의 정체성 벗고 싶었다"」, 《조선일보》, 2002년 1월 3일. - P65

김예나, 털 고르기를 하는 시간
동성애의 생물학적 기원을 설명하는 연구 자료는매우 많고, 실제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서 동성 간 섹스는 많이 관찰된다. 하지만 동성 간 섹스를 하는 동물에게 찾아가 방금 섹스를 한 당신의 파트너가 연인인지그저 친구일 뿐인지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사랑과우정의 명확한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답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사랑과 우정은 사람이 만들어 낸 단어에 불과하다. 시공간에 따라 유동적인 개념이며 문화나 개인에 따라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 P82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타인과의 연대를 추구하고 그러한 연대를 통해 신체적, 심리적 안정을 얻으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리 지어 사는 모든 동물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 P82

김지은, 비둘기와 귀얽히는 영역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체로 욕실을 나온 후, 자신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의 시선에 돌연 부끄러움을 느낀다. 언제나 발가벗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늘 발가벗고 있지 않은 암컷 고양이 앞에 인간 남성이 전라의상태로 서서 고양이의 눈길을 온몸에 받는 상황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거북함을 자아낸다. 데리다는이 곤란한 만남을 동물적 만남이라고 명명하고, 그 만남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도출한다. - P92

비슷한 맥락에서 호주 페미니스트 생태철학자 발플럼우드가 들려주는 먹이 이야기는 ‘풍요롭고 호의적인 자연‘이라는 안일한 환영이 어쩌면 도시인이 덧씌운 ‘낭만화된 자연‘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녀는 1985년 2월 호주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홀로 카약을 타던 중 바다악어에게 허벅지를 물린채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죽음의 소용돌이‘를 세 번이나 겪는다. 악어의 공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생존한플럼우드는 만물의 주인으로 군림해 온 인간이 먹이로 전락한 사건 속에서 일종의 환영을 발견한다. - P101

김경채, 일본인이 되는 문제
식민지라는 극단의 시공간은 마음을 증명하고 판단하는 일이 권력 및 권리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한국과 일본을 지우고 질문을 이렇게 - P123

바꿔 보자.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대한 판단을 멈출수 있을까?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의심과 불안을 견디고 타자와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이것은결코 아름다운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생명에의 위협을 감수하고도 언젠가 나에게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는 타자의 존재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급진적인 물음이다. 나는 이런 물음들과 마주하는 것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가 혹은 민족의 구심력에 대항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 P124

김민하, 정치에서 우정 찾기
모두가 자기는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면서 남의 말에는 책임을 지우는 게 오늘날의 온라인 화법인 셈인데, 바로 이 점이 온라인상의 정치적 분쟁을 격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이게 대의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정치를 인식하는 일반적 방식과 결합하면 부정적 효과는 배가된다. - P159

장현정, 바닷가 동네의 친구들
우정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의 도움 그 자체보다는 우리 친구들이 틀림없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그 확신이우리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인간은 불안과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의 믿음 체계를 구성해 왔다. 먼 옛날에는 종교가, 이후로 국가나 민족이, 요즘에는 돈이라는물신(物神)이 사람들을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믿음 체계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종교나 민족이나 돈처럼 거대하거나 창백한 가치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대상을 믿는다. 사람 말이다. - P178

추주희, ‘호구’가 되는 우정
이후 나는 도시의 공동 주거 경험과 또래 관계에서 새로운 친밀성과돌봄의 지형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팸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팸은 가출이 장기화되거나 가족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탈가정 청소년들이 주거와 생활비를 해결하기위해 또래들과 함께 사는 방식이다. 가출한 후에 생계와 안전 그리고 정서적 유대를 도모하는 유일한 자구책인 셈이다. 그만큼 쉽게 해체되기도 한다. - P188

때때로 어떤 팸은 조건 만남이나 마약성 물품 판매 등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 유지된다. 그러한 불법적인 일로 현재의 삶을 돌보는 관계를 유지한다. 삶의 불법성과 돌봄의 필요성이 교차하는 관계에서 분명한 것은 서로를 돌보는 과정이 의미 있는 삶의 순간으로 경험된다는 점이다. 진짜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관계, 어쩌면 폭력성이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관계에서돌봄과 친밀성이 구성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영지와 그 팸 구성원은 서로 마땅히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팸에서 돌보는 자, 그러니까 호구를 일방적으로 - P198

착취당하는 피해자로만 보면 돌봄과 친밀성의 관계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돌봄과 폭력은 의존관계에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물론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폭력 속에서도, 폭력을 뚫어 내고서 팸 생활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이유를 돌이켜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들은 원가족을 벗어나서 새로운 가족 실천을 통해 자신이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매번 몸소 부딪혀서 배우고 결정해 간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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