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주제 아닐까? 영끌.

누구나 집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아파트에 20년째 살고 있다. 결혼하면서부터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으니.

편리하지만 도무지 정이 가지 않는다. 내 집 같지 않다.

가족이 함께 살고 있지만, 그냥 숙소 같다. 집에 있으면 자꾸 집을 나가고 싶다(그래서 주말마다 탈주 중).


집 하면 어릴 때 살던 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그때는 탈출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그립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옥상이 제일 그립다.

방 두 칸, 손바닥 만한 중간방(거실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좁은 집에 많은 식구. 나만의 공간은 그저 내 책상 뿐이던 곳. 그곳에서 유일하게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옥상이었다.

엄마에게 혼나거나 형제들과 싸우거나 울적하거나 빈정 상하는 일이 있으며 옥상에 올라가서 구석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며 울거나 원망하거나 화를 내거나 욕을 하거나. 그러다 보면 마음이 가라앉아서 다시 내려온다.

그곳이 없었다면 가출했을지도. 아니, 더 삐뚤어졌을지도.



"우리가 집안의 구석에

몸을 피하고 있을 때,
스스로 잘 숨겨져 있다고 믿는
우리의 몸 주위에 하나의
상상적인 방이 건조된다.
이 부동성의 공간은
존재의 공간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 P3

 
















이한솔 편집자의 ‘13호를 펴내며편집자의 말. 엄마가 된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혼란과 어수선함과 정리되지 않음과 걱정과 우울과 짜증과 미안함과 가끔의행복 속에서 느끼는 양가감정.


엄마가 되고 나서는 혼란이 내 기본 상태다. (짧은 순간 벅차게 느끼는 엄청난 고양감과 행복 (하루의 대다수)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 부정과 죄책감 사이에서 몸도 정신도 쪼개진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네가 아이 봐주는 날이잖아. 하지만 아침에 애들을 두고 나가는 게 힘들어.‘ 우리는 언제나 말이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배웠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관성이 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제인 라자르, 『분노와 애정』)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일찍 아이 옆에서 잠들어야 하는 중력과 새벽 알람에 총 맞은 것처럼 집을 나서기. 나도 아는 것을 찾으려 자꾸 문장을 뒤진다. "저처럼 우울한 엄마들이 진짜 있나 궁금해서 왔어요."(수미,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하지만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다른 엄마들과는 진짜 통하는지? 비혼인 친구, 아이가 없는 동료들, 그리고 아이가 있는 남자들에게 말하는 게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주 사적인, 집에서 일어난 이 엄청난 일들을 못 참고 터뜨리듯 말한다. 난 친구와 동료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걸까? 그런데 이런 얘기를 집 밖에 해도 될까? 모든 걸 엎지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홀로 난망함과 수치심에 빠진다. – P6~7

  















 

김영욱의 글 장자크 루소집 없는 아이’ 루소가 자식들을 다 고아원에 보냈다는 것만 알았는데루소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살짝 알게 되었다.


루소는 18세기식 부랑아다. 우선 그는 계몽주의의 철학자로서 여러 측면에서 집과 가족을 고찰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인류학, 『사회계약론』의 정치학, 『에밀』의 교육학, 그리고 곧 다시 말할 『신 엘로이즈』의 정념론을 보라. 그는 집 혹은 가족이라는 소우주의 발생, 기능, 한계,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따진다. 그러고서 『고백』에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까지 자전적 문학을 통해 자신이 평생 편력한 집들을 문학사의주제로 제안할 것이다. 그에게는 집이 없었다. 다시 말해 집이 많았다. 제네바에서 보낸 유년기의 집들, 보호자이자 애인이었던 바랑 부인과 누린 짧은 행복의 거처 샤르메트, 세상의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그를 잠시 보호해 주었던 생피에르 섬의 외딴집, 그가 마지막 몽상의 나날을 보낸 영국식 정원의 은신처 등에는 지금도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P41

  














 


박진영의 글 나의 깨끗한 집 만들기’. 목요일에 한편 줌 강의에서 맹미선 편집자와 함께한 박진영의 강의를 흥미롭게 들었다. ‘가습기살균제이라는 엄청난 사건을 겪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국에서 화학제품의 위험을 감당하는 것은, 깨끗함, 편리함과 안전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는 것은 소비자의 몫이란 말인가. 박진영의 탐구 시리즈 책도 읽어봐야겠다.


과학기술과 그로 인한 사회문제와 갈등피해를 연구하는 나는 DDT, 글리포세이트, PHMGCMIT/MIT와 같은 화학물질이 공장과 집 안팎에서 일으킨 피해를 수없이 보고 듣고 읽어왔다하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그런 일들은 다 모르겠고 다만 집의 더러움을 간편하고 빠르게 없애고 싶었다편의점에서마트에서인터넷 장보기에서 익히 들어온 상표의 제품은 과연 편리하고 효과가 좋았다생활화학제품이눈앞의 더러움을 없애는 동안 내가 할 일은 마스크를 끼고 환기를 잘 시키는 것 정도였다. - P78

















 

육주원의 글 이슬람 사원 짓기’. 백인이 아닌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한국에서도 가장 보수적인 대구에서 벌어진 이슬람 사원 건립 관련 갈등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멸하는 지방대를 살리기 위한 정책으로 외국인 학생을 유치하면서 외국인 학생이 자신들의 문화을 유지하며 살 수 있도록 지원하지 못하고 방해하고 혐오하는 학교, 주민, 행정기관, 국가.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에서 눈여겨봐야하는 것은 단지 반대 주민들의 엽기적인 혐오만이 아니다글로벌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하에 학생들을 유치한 후 방치하는 국립대일부 주민들의 탄원서 한 장으로 무기한 공사를 중지시켜 갈등을 키운 북구청행정 소관의 문제를 운운하며 수수방관하는 대구시 등총체적인 국가의 ‘부작위가 배제적인 혐오의 집 만들기를 용인하고 있다그간 북구청경찰 등은 반대 주민들의 인종주의적 텃세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국가 기관이 극단적인 혐오에 눈 감고 그것을 혐오가아니라 국민들이 당하는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순간 반대 주민들의 인종화된 소속감의 정치가 힘을 얻었다. - P105


이슬람 사원 갈등을 취재해 단편 영화를 만들었던 경북대 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사원에 대해듣고 싶어 왔다는 그에게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냐고묻자 해 준 이야기다경북대 편입생인 그는 어느 날 자취하는 골목에 걸린 혐오표현 현수막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게 버젓이 걸려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그런데 하루이틀며칠이 지나자 그 현수막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자 카메라를 들었다혐오가 나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문제는 익숙해진다는 것이다내 일이 아닐 때는 쉽게 참아 넘길 수있다는 것이다그러는 동안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집만들기텃세 부리기도 어느 순간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혐오가 집이 되어 버리기 전에 상호 공존과이해의 집을 만들어 가는우리 안 국경을 허무는 실천이 절실하다. – P108~109


 

오은정의 후쿠시마 사태에 대한 글 후쿠시마의 주민들’, 이재임의 동자동 쪽방촌에 대한 글 쪽방의 장례식’, 김호성의 생애 마지막 돌봄과 장소에 대한 글 마지막 둥지를 찾아서등등.


이번 편은 편집자의 말부터 한편 한편이 다 흥미있는 주제여서,, 그만 줄여야겠다(??).

읽고 싶은 책들은… 역시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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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임 <힐튼 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그여자가방에들어가신다>
김호성 <죽는 게 참 어렵습니다>

이슬람 사원 짓기_육주원

짐을 버스에 실은 뒤 꼭 안아 주고 돌아가려는데, 버스 기사가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빙글빙글 웃으며 "넌 집에 안가니?" 물었다. 거구의 백인 남성의 한쪽 팔에 "영국인이 먼저다(British First)"라는 문신이 보였다. 차별이주는 모멸감, 폭력적 상황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공포는 아무리 여러 번 반복되어도 편안해지지 않는다. 간신히 "내 집 캔리(Canley)인데? 지금 갈 거야."라고 말했다. 그간 비슷한 인종차별적 상황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이불킥을 하던 밤들의 분노를담아 쥐어 짜낸 용기였다. 그러자 징그러울 정도로 빙글거리는 웃음과 다시 돌아온 "아니, 네 진짜 집."이라는 말. "떼끼, 이놈. 내가 너보다 여기서 더 오래 산 영국 사람이면 어쩌려고 그러니!"라고 호통을 치진 못했다. 떨리는 몸으로 ‘진짜 집이 아닌 내 집‘에 돌아와 맥주 캔을 따며 폴란드 하우스메이트에게 이제 정말 이나라를 뜰 땐가 싶다고 얘기했던 것이 기억난다. - P98

대구 이슬람 사원 건립을 둘러싼 갈등에서 눈여겨봐야하는 것은 단지 반대 주민들의 엽기적인 혐오만이 아니다. 글로벌 경쟁력 제고라는 목표하에 학생들을 유치한 후 방치하는 국립대, 일부 주민들의 탄원서 한 장으로 무기한 공사를 중지시켜 갈등을 키운 북구청, 행정 소관의 문제를 운운하며 수수방관하는 대구시 등총체적인 국가의 ‘부작위‘가 배제적인 혐오의 집 만들기를 용인하고 있다. 그간 북구청, 경찰 등은 반대 주민들의 인종주의적 텃세를 정당화하는 역할을 해 왔다. 국가 기관이 극단적인 혐오에 눈 감고 그것을 혐오가아니라 국민들이 당하는 역차별이라고 말하는 순간 반대 주민들의 인종화된 소속감의 정치가 힘을 얻었다. - P105

이슬람 사원 갈등을 취재해 단편 영화를 만들었던 경북대 학생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사원에 대해듣고 싶어 왔다는 그에게 어쩌다 관심을 갖게 됐냐고묻자 해 준 이야기다. 경북대 편입생인 그는 어느 날 자취하는 골목에 걸린 혐오표현 현수막을 보고 큰 충격 - P108

을 받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저런 게 버젓이 걸려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 이틀, 며칠이 지나자 그 현수막 앞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자 카메라를 들었다. 혐오가 나쁜 것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다. 문제는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닐 때는 쉽게 참아 넘길 수있다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배타적이고 위계적인 집만들기, 텃세 부리기도 어느 순간 어쩔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린다. 혐오가 집이 되어 버리기 전에 상호 공존과이해의 집을 만들어 가는, 우리 안 국경을 허무는 실천이 절실하다. - P109

후쿠시마의 주민들_오은정

타라치네는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피폭된 벨라루스 사람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열기도 했다.

사람은 자기가 직접 당하지 않으면 그 심정을 잘 모르잖아요. 방사선이라는 것도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않고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잘몰라요. 마음을 잘 모르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데벨라루스 사람들이 왔을 때 그 사람들과 이야기를나누면서 입장이 비슷하다는 것이 얼마나 서로 간의공통감각을 만들어 내는지 느낄 수 있었어요. 비슷한 경험을 한다는 것이 주는 것, 동료들을 만나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지요. - P126

집이 없어, 하지만!_지수

제너레이션 렌트(generation rent)[2]라는 말이 있다. 평생 세입자로 살아가게 되는 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땅에 머무는 이들 10명 중 4명은 세입자다. 이들은 소유하지 않았으나 점유한 공간에서 잠을 자고밥을 먹고 쉰다. 다양한 공간에서 서로의 노동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관계 맺는다. 곳곳을 공유하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입자들의 머무름이 도시를 구성한다. 세입자의 머무름 없이는 현재를 말할 수 없고, 이 사회E SUAS PR의 존속을 말할 수 없다. - P161

쪽방의 장례식_이재임

이런 현실에서 이웃의 안녕을 함께 고민해 온 사람들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 된다. 소유주의 재산권이주민의 주거권에 우선한다는 이 사회의 공식을 뒤엎고자 하는 사람들, ‘내 집‘ 말고 ‘우리 집‘을 그리는 사람들, 소수의 일확천금이 아니라 나와 이웃들의 공동의미래를 그리는 사람들이 동자동에 있다.
김정호의 장례식은 동자동의 한 교회에서 치러졌다. 동료들과 쪽방 주민들, 사회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이 모였다. 장례식에서 나는 임대주택이 지어져 쪽방을 모두 떠나는 날 쪽방의 장례식을 치르는 상상을 했다. 이웃의 부고가 아니라 낡고 열악한 집의 부고를 알리는 모습을, 더 이상 방에서 죽어 간 이웃의 부고를 듣지 않아도 될 미래를 그렸다. 쪽방 모양 상여를 함께 들고, 우리는 이 도시에서 말끔히 지워지지 않으리라 말하고 싶었다. - P182

마지막 둥지를 찾아서_김호성

인간의 생애주기에서 말기란 적극적인 치료에도 불구하고 근원적인 회복의 가능성 없이 증상이 악화되어수개월 이내에 사망할 가능성이 큰 시기를 의미한다. 이러한 말기에 대다수의 사람은 돌봄을 받고, 마지막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평소 ‘편안하다고 생각한장소‘를 꼽는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응답자의 약60퍼센트는 집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어 한다고 답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40퍼센트나 된다. [6]집은 어떤 사람에게는 편안한 장소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고통의 장소다. 말기 돌봄을 받는 사람의 질병의종류, 돌봄의 사정, 경제적 상태, 주거의 형태에 따라각기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 P199

예를 들어 연명치료를 거부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혼자 작성한 것으로 말기 돌봄 계획은 끝나지 않는다. 그 계획은 단순한 문서 작성이 아니라, 말기 돌봄 주체를 정하고 소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많은 사람이 생의 끝에 자율적이고 존엄한 삶을영위하기를 바란다. 이는 바람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말기 이전까지는 환자 스스로가 삶의 주도권을 갖지만 그 후로는 다른 이와의 관계성 속에서 삶의 이야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환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해 속도와 방향을 제시하는 이들이 있어야환자의 마지막 이야기가 올곧게 쓰일 수 있다. 마지막둥지는 누군가가 만들어 주는 것이다. - 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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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제인 라자르 <분노와 애정>
질 들뢰즈 <스피노자의 철학>
장자크 루소
영화 그래비티
마리아 미스 반다나 시바 <에코페미니즘>

"우리가 집안의 구석에
몸을 피하고 있을 때,
스스로 잘 숨겨져 있다고 믿는
우리의 몸 주위에 하나의
상상적인 방이 건조된다.
이 부동성의 공간은
존재의 공간으로 지적되어야 한다."

가스통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 P3

13호를 펴내며_이한솔(편집자)

엄마가 되고 나서는 혼란이 내 기본 상태다. (짧은 순간 벅차게 느끼는 엄청난 고양감과 행복 (하루의 대다수) 어느 것 하나 제 - P6

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자기 부정과 죄책감 사이에서 몸도 정신도 쪼개진다. ‘빨리 내일이 왔으면 좋겠어. 네가 아이 봐주는날이잖아. 하지만 아침에 애들을 두고 나가는 게 힘들어.‘ 우리는언제나 말이 두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걸 배웠다. 두 번째 문장은 첫 번째 문장과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일관성이 있다. 우리가 양가성을 더욱 잘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제인 라자르, 『분노와 애정』)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일찍 아이 옆에서 잠들어야 하는 중력과 새벽 알람에 총 맞은 것처럼 집을 나서기. 나도 아는 것을찾으려 자꾸 문장을 뒤진다. "저처럼 우울한 엄마들이 진짜 있나궁금해서 왔어요."(수미,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하지만 읽으면 무엇이 달라지나? 다른 엄마들과는 진짜 통하는지? 비혼인 친구, 아이가 없는 동료들, 그리고 아이가 있는 남자들에게 말하는 게무슨 의미가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아주 사적인, 집에서일어난 이 엄청난 일들을 못 참고 터뜨리듯 말한다. 난 친구와 동료들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쓰는 걸까? 그런데 이런 얘기를 집 밖에 해도 될까? 모든 걸 엎지른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홀로 난망함과 수치심에 빠진다. - P7

내 영역_영이

택배 상자를 집 안에 들여놓는 것만으로도 극심한 이물감을 느꼈지만 내 몸을 향해 겨누어진 칼날은 전혀위험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최소한 호르몬 대체 요법을 통해 몸을 자아의 일부로 인식하기 전까지는 내 영역에 내 몸이 존재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신체 보존 의식을 느끼게 해 준 이 트랜지션 과정이란, 어쩌면 내 영역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이물을 내 것으로 빚어내는 과정인 것인지도 모르겠다. - P26

결속하는 동시에 배제하는 무리 동물의 습성에서 벗어나 단독자들 각자가 집과 집 사이 경계에서 만나는 세계를 상상한다. 결국 단독자들 간의 접촉이 모두의 모두를 향한 영원한 적대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단독자들 각자에게 충분히 집이, 신체의 주권이, ‘어머니‘의 영역이 보장되어야만 할 것이다. - P33

장자크 루소, 집 없는 아이_김영욱

루소는 18세기식 부랑아다. 우선 그는 계몽주의의 철학자로서 여러 측면에서 집과 가족을 고찰한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의 인류학, 『사회계약론』의 정치학, 『에밀』의 교육학, 그리고 곧 다시 말할 『신 엘로이즈』의 정념론을 보라. 그는 집 혹은 가족이라는 소우주의 발생, 기능, 한계,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따진다. 그러고서 『고백』에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까지 자전적 문학을 통해 자신이 평생 편력한 집들을 문학사의주제로 제안할 것이다. 그에게는 집이 없었다. 다시 말해 집이 많았다. 제네바에서 보낸 유년기의 집들, 보호자이자 애인이었던 바랑 부인과 누린 짧은 행복의 거처 샤르메트, 세상의 비난과 공격으로부터 그를 잠시보호해 주었던 생피에르 섬의 외딴집, 그가 마지막 몽상의 나날을 보낸 영국식 정원의 은신처 등에는 지금도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P41

21세기 우주인의 귀향_이지선

"우주는 나의 휴식이요 나태다. 결코 사유가 아니다." 그것은 과학적 인식에 적합한 대상과는 다른 하나의 관념, 아니 차라리이미지, 상상과 몽상의 대상이다. 바슐라르는 특히 우주에 관한 상상이 집에서 출발해 집으로 귀결된다고 말한다. 그에게 집이란 지하실, 다락방, 서랍처럼 집안의은밀한 공간 그리고 내밀한 세계 또는 장소의 집합으로, 우리에게 가장 익숙하고 가까운 공간이다. 그런데이것이 곧 우주다. "왜냐하면 집은 우리의 작은 세계이기 때문이다. 집은ㅡ흔히들 말하는 것처럼ㅡ우리의 최초의 우주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코스모스다."
사실 집으로서의 우주 이미지는 동북아 한자 문화권에서 낯설지 않다. 더욱이 우주가 ‘집 우(宇)’와 ‘집 주()의 합성어라는 점은 집이 우주와 관련해 가장 친숙한, 적어도 가장 근원적인 심상임을 전한다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우주(宇宙)는 천지(天地)와 더불어 천자문(千字文)』의 첫 구절을 장식한다. - P64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점은 더는 큰 문제가 아니다. 중심이 어디에도 없거나 아예 어디에나 있으며 또한 경계는 어디에도 없다는 점이 새로운 문제다. 그리하여 우주 안의 모든 대상에 예외 없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것(universal)이 우주적인 것(cosmic)을 대체하게 되었다. - P67

나의 깨끗한 집 만들기_박진영

과학기술과 그로 인한 사회문제와 갈등, 피해를 연구하는 나는 DDT, 글리포세이트, PHMG와CMIT/MIT와 같은 화학물질이 공장과 집 안팎에서 일으킨 피해를 수없이 보고 듣고 읽어왔다. 하지만집에 돌아와서는 그런 일들은 다 모르겠고 다만 집의더러움을 간편하고 빠르게 없애고 싶었다. 편의점에서, 마트에서, 인터넷 장보기에서 익히 들어 온 상표의제품은 과연 편리하고 효과가 좋았다. 생활화학제품이눈앞의 더러움을 없애는 동안 내가 할 일은 마스크를끼고 환기를 잘 시키는 것 정도였다. - P78

유한양행은 긴 글에서 사용자가 화학물질과 위험에 대해 충분히 인지하고 안전하게 사용해야 함을 여러 번 강조했다. 화학물질에 있어서 ‘당연한 상식‘은 안전하게 사용했는데 위험한 물질은 없다는 것, 이와 동시에 위험하게 사용해도 안전한 물질이 없다는 것이다. 사용자와 소비자는 이 상식을 늘 기억해 두고 있어야 할 터였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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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2호 : 우정 인문 잡지 한편 12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3년 9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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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꼭지인 안담 작가의 글이 가장 흥미로웠다. 이슬아 작가를 필두로 90년대생 작가를 여럿 배출한 어딘글방이라는 걸출한 장소에서 ‘작가 되기‘ 뿐만 아니라 ‘작가의 친구 되기‘를 연습하며, 우정과 경쟁, 사랑과 질투 속에서 자기 언어를 찾아 작가 되는 과정을, 글방에서의 우정의 의미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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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수하 2023-11-16 13: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햇살과함께님 <활활발발> 읽으셨나요? ‘어딘‘ 이 쓴 책이랍니다. 이슬아 작가 등 얘기가 많이 나와요.

햇살과함께 2023-11-16 17:54   좋아요 1 | URL
그 책 나왔을 때 알고 읽고 싶었는데, 못읽었네요...
수하님 읽으셨나보네요!

건수하 2023-11-16 18:23   좋아요 1 | URL
네 재밌었어요!! ^^

햇살과함께 2023-11-16 18:56   좋아요 1 | URL
도서관 찾아봐야겠어요!
 

안담, 작가-친구-연습
어딘글방에서 우리는 작가 되기뿐만 아니라 작가의 친구 되기도 훈련했다. 인용하는 연습뿐만 아니라 인용당하는 연습도 했다. 기꺼이 서로의 글감이 되어 줄 수있는가? 글방에서 우정은 그런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다. 어떤 경험과 말에 ‘내 것‘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건치사하고 쩨쩨한 처사였다. 누가 나를 글에 써서 분하다면 나도 그를 글에 쓰면 된다. 공동으로 겪은 하루를한 사람은 글로 써 오고 한 사람은 만화로 그려 오는 풍요가 글방에는 있었다. 아직 쓰이지 않았다면 이야기가 아니다. 따라서 ‘내 이야기였어야 할 이야기‘라거나 ‘내가 쓰려고 했던 이야기‘라는 표현은 틀렸다. 그가 썼다면 그의 이야기인 것이다. - P22

언제부턴가 좋아하는 작가를 물으면 친구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의 뛰어난 문장과 생각을 모셔와내 글의 부족함을 만회한 적이 수도 없이 많다. 그 대가로 나도 내 말을 그들에게 헤프게 준다. 이제는 친구들이 나를 어디서 어떻게 인용하든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공교롭게도 ‘나는‘이라고 너무 많이 쓰다가 그렇게되었다. 원없이 ‘나‘라고 써놓고보니 그 많은 나가 다나일 리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무엇이라고 쓰는 순간 나는 그 무엇으로부터 멀어진다. 나는 무엇도아니다. 그러므로 내말은 너의 말도, 그의 말도 될 수있다. - P29

이연숙, 비우정의 우정
그러나 분명 우호적인 관계를 못 맺는 나 같은 사람들이 맺고 있는 관계 역시도 우정이라는 개념을 경유해 설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글에서 나는 정상적이라 말해지는 사회 규범에 도무지 적응할수 없는 괴짜들(queer)이 속할 수 있는 가장 미약한 공동체를 상상하기 위한 용어로 ‘비(非)우정의 우정‘을 제안한다. 비우정의 우정이란 너와 나의 ‘같음‘이라는 유사성과 동일성에 기반을 둔 우정이 아니다. 오히려 너와 나의 ‘다름‘이라는 불화와 불일치를 기반으로 할 뿐만 아니라, 너와 나의 ‘특별함‘ 또는 ‘유일무이함‘이라는환상이 들어설 자리를 너와 나라는 ‘아무나‘의 우연한마주침으로 채운다. 너와 내가 결코 같지 않고 앞으로도 같을 수 없다는 것은 너와 가까워지고자 하는, 혹은너를 소유하고자 하는 나의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처럼 영원히 반복될 너라는 대상을 향한 나의 오해와 오독에는 일종의 충실성이 있다. - P39

김영민이 『동무론』에서 제시한 비우정의 우정은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사에서 유구하게 반복되어 말해진 주제다. 다시말해 우리가 우정이라 부르는 관계는 ‘나는 그를 안다‘는 긍정이 아니라 ‘나는 그를 모른다’는 부정에서, 혹은 그런 긍정과 부정의 사이 또는 겹침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이 주제에서 가장 유명한 경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다고전해지는 "친구여, 친구가 없구나(O friend, there is nofriend)‘일 것이다. ‘친구‘를 돈호하는 동시에 ‘친구‘의부재를 확인하는 이 수수께끼 같은 경구는 『인간적인너무나 인간적인』에서 니체에 의해, 그리고 『우정의 정치학에서 데리다에 의해 전유된다. 하지만 조르조 아 - P45

감벤에 따르면 그들은 전략적으로 그리스어 원전을 오독했다고 한다. 원전의 의미는 ‘친구가 많은 자는 친구가 없다‘는 뜻이다. - P45

흥미롭게도 푸코의 우정론의 토대가 되는 ‘비인격적 친밀감‘은 로넬의‘커피나 한 잔‘에 대한 혐오, 김영민의 ‘서늘한 관계‘에대한 옹호, 아감벤의 ‘함께-나님‘과 공명한다. 이처럼친구의 정체성도, 과거도, 얼굴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비우정의 우정이 제기하는 문제는, 내가 너를 얼마나 아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서로를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 P51

김정은, 자기 언어를 찾는 방법
1984년 결성된 ‘또 하나의 문화‘는 조형, 조한혜정, 조옥라, 장필화 등이 남녀평등 문제에서 출발해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대안 문화를 모색하고자 한 동인 모임이다. [1] 줄여서 ‘또문‘이라 불린 이들은 계급 담론과 노동자 정체성이 특권화된 1980년대 대항 공론장에서 노 - P57

동 현장이 아닌 가정과 학교 등을 새로운 현장으로 부각했다. 이화여대, 연세대, 서강대 등에 소속된 동인들은 서울 신촌 지역에 사무실을 차리고, 이를 근거지로삼아 여러 모임을 주관했으며 모임의 결과물을 정리하고 다듬어 무크지 <또 하나의 문화》(1985~2003년)를펴냈다. 활자 매체를 통한 운동으로 20여 년 동안 한국사회에 관한 새로운 의제를 발굴했다. - P58

현재 출판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이길보라, 이슬아, 하미나 등 1990년대생 여성 필자들은 모두 같은 글방에서 함께 어울리면서 자기 언어를 찾았다. 어딘글방을 운영한 김현아는 또문이 인큐베이팅한 대안학교하자센터의 교사였으며, 글방은 또문의 사무실을 사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소집단에서 서로의 언어를 찾아가는 우정이라는 방법은 단지 과거의 사실이 아니라 지금도 자기 언어를 갱신하는 구체적 훈련 방식으로 활용된다. - P59

[10] 김혜순은 2002년 『여성이 글을 쓴다는 것은 출간을 기념한 한인터뷰에서 ‘문화권력모임‘과 관련한 질문에 특히 바리데기와 관련해 "김성례 교수에게서 많이 배웠다."라고 말했다. "당시 미셸 푸코가 유행하면서 여기저기 ‘권력‘이란 말이 붙어다녔다. 토론 결과를 책도 내지 말고 세상에 알리지도 말자는 모임이었다. 서강대 종교학과 김성례 교수에게서 많이 배웠다. 바리데기는 기본 뼈대만 같은 이본(異本)이 수십 종이고, 그것들은 각각 연희 때마다 살아 있는 텍스트가 된다는 것도 알게 됐다. 바리데기를 글로 읽지 않고 파동으로 받아들이면서 흡수하게 된 것이다." "강요된 주부엄마의 정체성 벗고 싶었다"」, 《조선일보》, 2002년 1월 3일. - P65

김예나, 털 고르기를 하는 시간
동성애의 생물학적 기원을 설명하는 연구 자료는매우 많고, 실제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서 동성 간 섹스는 많이 관찰된다. 하지만 동성 간 섹스를 하는 동물에게 찾아가 방금 섹스를 한 당신의 파트너가 연인인지그저 친구일 뿐인지 물어볼 수 없는 노릇이니 사랑과우정의 명확한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답을 찾기란 어려워 보인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사랑과 우정은 사람이 만들어 낸 단어에 불과하다. 시공간에 따라 유동적인 개념이며 문화나 개인에 따라서도 차이가 존재한다. - P82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는 타인과의 연대를 추구하고 그러한 연대를 통해 신체적, 심리적 안정을 얻으며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무리 지어 사는 모든 동물에게 공통으로 해당하는 생물학적 사실이다. - P82

김지은, 비둘기와 귀얽히는 영역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어느 날 샤워를 하고 나체로 욕실을 나온 후, 자신을 무심하게 바라보는 검은 고양이의 시선에 돌연 부끄러움을 느낀다. 언제나 발가벗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늘 발가벗고 있지 않은 암컷 고양이 앞에 인간 남성이 전라의상태로 서서 고양이의 눈길을 온몸에 받는 상황은 무어라고 형용할 수 없는 거북함을 자아낸다. 데리다는이 곤란한 만남을 동물적 만남이라고 명명하고, 그 만남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도출한다. - P92

비슷한 맥락에서 호주 페미니스트 생태철학자 발플럼우드가 들려주는 먹이 이야기는 ‘풍요롭고 호의적인 자연‘이라는 안일한 환영이 어쩌면 도시인이 덧씌운 ‘낭만화된 자연‘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그녀는 1985년 2월 호주 카카두 국립공원에서 홀로 카약을 타던 중 바다악어에게 허벅지를 물린채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죽음의 소용돌이‘를 세 번이나 겪는다. 악어의 공격으로부터 기적적으로 생존한플럼우드는 만물의 주인으로 군림해 온 인간이 먹이로 전락한 사건 속에서 일종의 환영을 발견한다. - P101

김경채, 일본인이 되는 문제
식민지라는 극단의 시공간은 마음을 증명하고 판단하는 일이 권력 및 권리의 문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드러낸다. 한국과 일본을 지우고 질문을 이렇게 - P123

바꿔 보자. 우리는 누군가의 마음에 대한 판단을 멈출수 있을까? 마음을 확신할 수 없는 데서 비롯되는 의심과 불안을 견디고 타자와 관계 맺을 수 있을까? 이것은결코 아름다운 우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내 생명에의 위협을 감수하고도 언젠가 나에게 총구를 겨눌지도 모르는 타자의 존재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는 급진적인 물음이다. 나는 이런 물음들과 마주하는 것이 여전히 강력하게 작동하는 국가 혹은 민족의 구심력에 대항하는 방법이라 믿는다. - P124

김민하, 정치에서 우정 찾기
모두가 자기는 책임지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면서 남의 말에는 책임을 지우는 게 오늘날의 온라인 화법인 셈인데, 바로 이 점이 온라인상의 정치적 분쟁을 격화시키는 원인 중 하나다. 이게 대의민주주의에서 유권자가 정치를 인식하는 일반적 방식과 결합하면 부정적 효과는 배가된다. - P159

장현정, 바닷가 동네의 친구들
우정의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의 도움 그 자체보다는 우리 친구들이 틀림없이 우리를 도와줄 것이라는 그 확신이우리에게 더 도움이 된다." 인간은 불안과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나름의 믿음 체계를 구성해 왔다. 먼 옛날에는 종교가, 이후로 국가나 민족이, 요즘에는 돈이라는물신(物神)이 사람들을 불안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믿음 체계 역할을 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종교나 민족이나 돈처럼 거대하거나 창백한 가치보다는 훨씬 구체적이고 살아 숨 쉬는 대상을 믿는다. 사람 말이다. - P178

추주희, ‘호구’가 되는 우정
이후 나는 도시의 공동 주거 경험과 또래 관계에서 새로운 친밀성과돌봄의 지형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내가 사는 광주 지역을 중심으로 다양한 형태의 팸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팸은 가출이 장기화되거나 가족으로 돌아가길 거부하는 탈가정 청소년들이 주거와 생활비를 해결하기위해 또래들과 함께 사는 방식이다. 가출한 후에 생계와 안전 그리고 정서적 유대를 도모하는 유일한 자구책인 셈이다. 그만큼 쉽게 해체되기도 한다. - P188

때때로 어떤 팸은 조건 만남이나 마약성 물품 판매 등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 유지된다. 그러한 불법적인 일로 현재의 삶을 돌보는 관계를 유지한다. 삶의 불법성과 돌봄의 필요성이 교차하는 관계에서 분명한 것은 서로를 돌보는 과정이 의미 있는 삶의 순간으로 경험된다는 점이다. 진짜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닌 관계, 어쩌면 폭력성이 가장 먼저 두드러지는 관계에서돌봄과 친밀성이 구성된다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영지와 그 팸 구성원은 서로 마땅히 돌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팸에서 돌보는 자, 그러니까 호구를 일방적으로 - P198

착취당하는 피해자로만 보면 돌봄과 친밀성의 관계는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돌봄과 폭력은 의존관계에서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물론 폭력을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폭력 속에서도, 폭력을 뚫어 내고서 팸 생활이 끊임없이 재구성되는 이유를 돌이켜 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들은 원가족을 벗어나서 새로운 가족 실천을 통해 자신이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를 매번 몸소 부딪혀서 배우고 결정해 간다. -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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