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21호 : 소년 ㅣ 인문 잡지 한편 21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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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을 읽는 이유. 다양한 필자의 다양한 관점을 접하기 위해. 다소 주제에 억지스럽게 끼어맞추는 감이 없잖아 있지만. 그럼에도 새로운 필자의 발견은 반갑다. 이번 호는 조경숙의 발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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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숙
청소년 범죄의 이해
돌이켜 보면 그건 내가 처음으로 겪을 뻔한 피해자가해자 중첩(Victim-Offender Overlap) 경험이었다. 범죄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피해자가해자 중첩이라 부른다. 범죄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데, 대표적인 예가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를 살해하는 경우다. 오랫동안 아내를 학대했던 남편이 아내를 폭행하다가 도리어 자신이 죽임당하는 것이다. 1950년대에 이미 자주 발견되곤했던 이러한 유형의 사례를 피해자 유발 살인(Victim-Precipitated Homocide)라 부른다. - P39

이길호
순서가 다시 문제가 된다. 참여 이전에 소년이 있어 광장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게시물에 이끌려 올림픽공원에 흘러든 이들은 참여의 연쇄 속에서 비로소 참여자가 되고, 그 연쇄가 끊기면 참여자이기를 그친다. 사람이 먼저 있어 관계를 맺는다기보다 관계에 참여함으로써 사람이 된다는 것. 멜라네시아 민족지들이 오래전 포착했던, 동일자로서의 ‘개인(individual)‘과 차이화하는 참여적 인격으로서의 ‘분인(dividual)‘의 형상이 여기서는 게시물과 발걸음의 속도로 일어난다. [2] 이름은 그다음에, 대개 바깥에서 온다.
광장이 유지되는 동안 이들은 규정에서 빠져나온익명으로 있다. 소년은 녹아 흩어진다. 참여함으로써만존재하는 익명의 마디. 나이도 성별도 좌우도, 그 자리에서는 잠시 불이 꺼진다. - P85

임지선
영화제는 각종 행사 현장을 채운 20대 여성의 노동을 기반으로 매끄럽게 돌아간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은 좀처럼 노동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첫 번째는 이들에게 부여되는 ‘자원봉사자‘라는 이름 때문이다. 자원봉사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하는 일이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20대 초중반의여성들이 봉사 활동에 자원하기는 하지만, 영화제에서봉사 활동은 축제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구조적으로 단기간 동원되는 노동이다. 통상 자원봉사자는 무급으로또는 소정의 활동비를 받고 하루 8시간 정도 일한다. 점점 더 많은 영화제가 ‘자원봉사자‘ 대신 ‘자원활동가‘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러한 표현의 변화는 결과적으로 20대 여성이 수행하는 무급 노동을 보지 못하게 한다. 남을 위한 ‘봉사‘가 아니라 나 자신의 주체적인 ‘활동‘으로 격상시키는 표현의 변화는 영화제에서 20대 여성에게 요구되는 다양한 업무와 노동 특성을 가린다. 여성이 집중 포진된 무급 노동은 ‘노동‘이 아닌 것, 따라서 어렵거나 중요하지 않은 일로 평가절하된다. - P113

최배은
자연스럽게 갈등을 회피하게 되며, 가능하다면 갈등 요인을 미리 예측하여 피한다. 그렇게 도달하는 상황은 ‘고립‘이다.
최근 청년들 사이에 나타난 ‘엄미새 (엄마에게 미친자식새끼)‘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친구나 애인을사귀기보다 엄마와 일상을 공유하고 여가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이 늘어난 첫 번째 이유는 엄마가 가장 안전한존재라는 데 있다. 이때의 안전함은 물리적, 경제적, 심리적, 정서적인 측면 모두를 포괄한다. 엄마와 친밀한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문제 될 게 없지만 엄마만을 신뢰하는 것은 문제다. 자기동일성을 확인하는 관계에서만안전함을 느낀다면 결국 사회적 관계에서는 고립적 상황에 놓일 수 있다. - P137

이예성
비극은 아파하는 사람과 그를 위로하는 사람, 도움을 받는 사람과 도움을 주는 사람을 선명하게 갈라 놓는 사건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함께 휘말리게 하는 일이었다. 물론 그 휘말림의 깊이와고통, 책임까지 같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사람들은 사건의 안과 밖에 단단히 나뉘어 서 있기보다 서로의 삶에조금씩 흘러들고, 접촉하고, 흔적을 남긴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 역시 각자의 시간이 나란히 흘러가는 것만은아니었다. 서로 다른 물결이 만나듯 사람들의 시간은 접촉하고 뒤섞이면서 때로는 서로의 방향을 조금씩 바꾸어 놓았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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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20호 : 로봇 ㅣ 인문 잡지 한편 20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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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도 업무를 위해서만 최소한으로 쓰고 개인적으로는 거의 쓰지 않는 late adopter인데 언젠가 반려인간이나 반려동식물이 아닌 반려로봇과 함께 하는 삶을 준비해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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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한

사람을 닮은 사람을 대신하는 기계는 언제나 많은예술가의 작품 소재가 되었다. 그중에서 로봇과 사회의관계에 관해 인상적인 작품을 꼽으라면 마블 스튜디오의 「어벤저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2015)이다. 이 영화는 외부의 침략으로부터 인간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은인공지능이 결국 인간을 멸망시키기 위해 활동하면서이를 저지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비결정성 인공지능(Non-deterministic AI)과 에이전틱 인공지능(agentic AI)이다.
비결정성 인공지능은 같은 입력에도 서로 다른 출력을 내놓는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현재의 인공지능은 확률을 기반으로 동작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난수가 발생하기때문이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인공지능 모델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왜 그런 결과가 나오는지 알기 매우 어려운 블랙박스이기 때문에 예측 불가능하며때로는 인공지능 환각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영화에서 보듯 하나의 질문에 대해 전혀 엉뚱하고 위험 - P35

한 답이 나올 수 있는 것이 현재의 인공지능이다.
에이전틱 인공지능에는 인공지능 모델, 특히 언어모델을 기반으로 나온 결과를 시스템과 연결해 각종 명령을 실행하고 결과를 받아 수정하는 기능이 있다. 현재는 주로 클로드 코드나 제미나이 코드, 코덱스처럼언어모델을 이용한 코딩 도구에서 많이 사용한다. 이도구를 이용하면 언어모델이 만든 코드를 실행하고, 오류 코드를 받아 스스로 그 부분을 수정해서 코드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간편하게 코딩 작업이 가능하다. 아직 컴퓨터에만 적용되고 있지만, 영화에서 인공지능 울트론이 몸을 얻었던 것처럼 물리적인 능력을얻어 사람에게 위해를 끼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그치지 않는다. - P36

전자영

비슷한 시기에 자기이론(autotheory)은 일인칭 주체가전면에 등장해 "작가가 직접 겪은 것을 정직하게 혹은 ‘진정성 있게‘ 재현하려고 하는 문학적 논픽션에 대한급진적인 접근 방식[91을 기치로 내건다. 이때 진정성이란 개인의 경험과 허구적 이야기 사이의 간극을 좁히고, 사사로운 것과 감정적인 것을 읽고 쓰는 행위에 복구시키려는 시도로 읽힌다.
자기이론은 신체에서 발생하는 경험과 개인의 피부에 새겨진 기억을 재료로 삼기 때문에 직접적이다. 그리고 이를 여러 방법론을 거쳐 비판적으로 사후 성찰해 지식으로 전환하기 때문에 자기 인식적이다. 이렇게얻어진 지식이 삶과 예술의 작동 방식에 일정한 형태를부여하여 무언가를 설명하는 틀을 갖춘 이론이 된다.
왜 하필 ‘이론‘일까? ‘자기‘와 ‘이론‘이 나란히 쓰이게 된 것은 서구 지성사의 흐름에서 이해해야 한다. 철학은 외부 세계와 구별되어 사고할 수 있는 주체를 필 - P93

요로 한다. 사고와 행동이 그 자신에게서 유래하기 때문에 이 주체는 하나의 단일체다. 그러나 이론에서는주체 대신 사상이 더 중요하다. 작가 대신 텍스트가 서로를 인용하고 보완한다. 이후 이론은 높은 이론과 낮은 이론으로 갈라진다. 낮은 이론은 주체가 경험하는주관적 특수성과 지역적이고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여성으로서의 경험에서 사유한다.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은 여기에 피식민 경험을 추가한다. - P94

강민욱

결론적으로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을 대신할 때 비용이 얼마나 절감되는지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새로운 존재를 경제적 관점에서 어떻게 분류해야 하는가에 있다. 인공지능은 자본일까 아니면 노동일까.
지금까지는 자본을 인간이 만들어 낸 생산 수단으로, 노동은 인간의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활동으로이해해 왔다. 인공지능은 이 두 범주를 동시에 가로지른다. 인간이 설계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는 자본에 가깝지만, 스스로 학습하고 판단하며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는 노동의 속성을 지닌다. 만약 인공지능이수행한 판단과 생산을 하나의 노동으로 본다면, 그 대가는 누구에게 귀속되어야 하는가. 반대로 이를 자본으로 본다면, 그 수익이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는 것은정당한가. - P115

이 질문은 단순한 분류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인공지능이 어떤 지위를 갖는가에 따라 소득이 분배되는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동이 줄어드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보상을 정당화할 것인가. 그리고 인정과 평가를 생산하는 존재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으로 이동할 때 그 평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기술은 이미 선택의 조건 자체를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경제는 단순히 더 많은 것을 생산하는문제가 아니라, 누구를 생산의 주체로 인정할 것인가를묻는 문제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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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9호 : 혼자 ㅣ 인문 잡지 한편 19
민음사 편집부 엮음 / 민음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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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하기 위해서는 연결되기 위해서는 혼자가 필요하다. 나는 혼자인 시간이 좋다. <우는 나와 우는 우는>의 하은빈을 다시 만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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