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장 여성의 몸을 침략하다

미디어는 낙태를 둘러싼 투쟁을 도덕적이고 생물학적인 논쟁(생명은 언제 시작되는가?)으로 규정하곤 했다. - P591

1986년『남자와 결혼』에서 조지 길더는 여성의 출산의 자유에 대한 남성들의 우려 밑에 깔려 있는 두려움을 가장 솔직하게 표출했다. 그는 책에서 산아제한과 낙태의 자유를 요구한 페미니스트들의 운동이 성공을 거두면 "성적 권력의 균형이 여성에게 더 유리한 방향으로 이동하게 되고", 남성의 가부장적인 "정력"이 고갈되며 페니스가 "한낱 노리개"로 전락하게 된다고 밝혔다.
태아의 ‘생명권’을 둘러싼 1980년대의 투쟁에서는, 가정사를 결정할 가부장의 능력이 퇴색된 데 대한 억울함이 배후에서 격하게 분출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이런 억울함은 낙태 반대 운동에서 말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무시할 수 없는 의제였다. - P592

낙태 반대 운동에 참여한 남성들은 그저 이 나라에서 폭주하는 낙태의 속도를 멈추려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지만 사실 낙태율은 늘어나지 않았다. 최소한 지난 100년간 미국 여성들은 세 건 중 한 건꼴로 임신중절을 했다. 낙태 합법화 이후 차이가 있다면 그건 이제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합법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중단할 수있다는 점뿐이었다. 그리고 1973년부터 1980 년까지 합법적인 낙태가 늘어나긴 했지만 곧 안정세를 유지했고 1980년대 초부터는 심지어 하락했다.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낙태율은 6퍼센트 하락했다.
진짜 변화는 여성들이 위험이나 공포를 감수하지 않고 자신의 생식력을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능력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자유는 낙태율이 아니라 여성의 성적인 행동과 태도 역시 크게 바꿔 놓았다. - P593

낙태 반대 운동은 여성들을 낙태권의 피해자로 규정함으로써 부정적인 이미지를 확산시켰을 뿐만 아니라 반격의 주장을 강화했다. 여성의 자유라는 대의는 다시 한 번 여성의 고통을야기한 범인으로 지목되었다. 낙태 반대 운동 대변인들은 불행한 여성은 ‘낙태 후 증후군’의 유산에 시달리고 있는 것일 거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 신종 질환이 여성들을 괴롭힌다고 목청을 높였다. - P596

‘실수’가 무엇이었든 대가를 치르는 건 여성이었다. - P598

1973년 낙태 합법화 판결 이후 수년간 벌어진 낙태 반대 작전은 이미 유명하다. 낙태 합법화 판결이 있던 바로 그해에만 이 판결의효과를 제한하기 위해 50여 개 법안이 제안되었다. 1974년에는 헌법을 수정해서 낙태를 금지시키려는 시도가 있었고, 1976년에는 연방재정이 낙태에 들어가지 못하게 저지하는 하이드수정안 Hyde Amend- - P604

ment 이 통과되었으며, 1980년대에는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이 점점 적극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수백 건의 입법 작전은 30여 개 주에서 금지 규정과 동의, 고지 규정을 넣는 데 성공했고, 낙태 합법화 판결에도전하는 숱한 법적인 시도들은 1989년 대법원의 웹스터 판결에서 절정을 이뤄 (아이러니하게도 그날은 독립기념일 전날이었다) 결국주 차원에서 낙태에 제한을 둘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1991년 대법원 판결에 힘입어 정부는 연방의 자금 지원을 받는 클리닉들이 임신부와 상담을 할 때 낙태에 대해서는 입에도 올리지 못하게 금지할 수 있게 되었다. - P605

여성들이 아무리 가장 온건한 수준에서 자신의 생식력을 통제하기 위해 노력해도 반대의 불길이 활활 일어나는 건 어쩌면 불가피한일인지 모른다. 교육이든, 일이든, 그 어떤 형태의 자기 결정권에 대해서든 여성의 모든 포부는 궁극적으로 아이를 가질지의 여부와 가진다면 언제 가질지를 결정할 수 있는 능력에 좌우된다. 이 때문에 출산의 자유는 언제나 모든 일련의 페미니즘 의제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주제였고, 반격이 일어날 때마다 가장 거센 공격의 대상이었다. 20세기 초에 페미니즘이 부활했을 때 마거릿 생어가 이끈 산아제한 운동은 계급과 인종 구분을 넘어서 여성운동의 주제 중에서 가장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여성운동가이자 평화운동가인 크리스털 이스트먼Crystal Eastman 이 1918년 당대의 페미니즘에 대한 글에서 밝혔듯 "우리가 특별히 추종하는 사람이 앨리스 폴Alice Paul이든루스 로Ruth Law든 엘런 키Ellen Key든 올리브 슈라이너Olive Schreiner는우린 모두 마거릿 생어의 추종자일 수밖에 없다." - P606

1980년대에 낙태 반대의 상징은 아기 엄마가 아니라 태아였다. 낙태 반대 운동의 문헌, 사진, 영화, 그 외 선전 도구에는 ‘태어나지 못한 아기‘의 전신이 신원을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자궁에 둥둥 떠 있다. 태아는 의식이 있고 심지어 한시도 가만 있지 못하는 꼬마지만 엄마는 수동적이고 형체가 없으며 생명이 없는 ‘환경‘이다. 태아는 거주자고 엄마는 임시 거처다. 어떤 생명권 위원회는 심지어 "태어나지 못한 아기"의 일기를 펴냈는데, 여기서 조숙한 태아는 꽃에 대한 깊은 사색을 펼치고 "난 케이시라고 불리고 싶다"고 고백한다. 윌크의 설명서에서는 운동 참여자들에게 태아를 지칭할 때는 반드시 "이 작은 녀석 같은 인간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엄마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거처’ 같은 표현을 사용하라고 지시한다. - P615

릭스의 남편은 처음에는 아내의 새로운 금전적 능력에 대해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다. "내가 처음 공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땐 모든 게 ‘그의 돈’이었어요."릭스는 이렇게 회상했다. "급여일이 되면 그 남자는 나한테 수표에 서명을 하게 한 다음에 ‘이게 당신이 이번주에 번 돈이군’ 하고 말하곤 했어요. 그리고는 ‘아무한테도 당신이 얼마나 버는지 말하지 마‘ 하고 말했죠." 그는 릭스가 일하는 동안 아들을 보살피길 거부함으로써 가족 내 경제력의 변화에도 맞섰다. 심지어 남편이 실직 상태였을 때도 그녀는 돈을 들여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해야 했다. 그리고 릭스의 회상에 따르면 "남편이 자꾸 베이비 시터에게 손을 대는 바람에 난 계속 새로운 사람을 구해야 했다."
결국 남편은 더 직접적이고 야만적인 전략을 취했다. 그는 릭스를 집에 감금하거나 구타를 해서 사람들 앞에 나서기 힘들 정도로 멍이 들게 만들었다. 어느 날, 릭스는 마침내 행동에 들어갔다. 남편이주방 바닥에 그녀의 머리를 찧어 기절시키고 난 다음이었다. 집을 나와서 이혼 신청을 했다. 하지만 릭스의 탈출에 남편은 더욱 난폭해졌다. 별거에 들어간 직후 남편은 그녀와 같은 공장에서 일자리를 얻어 점점 공포스러운 방식으로 그녀를 괴롭혔다. 어느 날 밤엔 퇴근을 하려고 주차장에 갔더니 차가 불타고 있었다. 또 다른 날엔 야간 근무를 하고 있는데 남편이 안료 부서에 몰래 들어와서 살금살금 그녀 뒤로 다가가 그녀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남편은 릭스의 안경이 깨질 때까지 얼굴을 때렸다. "남자가 한 명 더 있었다"고 릭스는 회상했다. "그런데 그 남자는 멀뚱히 서서 지켜봤어요. 감독은………… 그냥 방에서 줄행랑을 쳤어요. 증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녀는 회사의 안전 담당자에게 폭행에 대해 보고했지만, 이 안전 담당자는 남편에게 ‘말로 경고‘를 하는 데 그쳤다. - P645

이 여성들에게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었다. 형편 때문에, 믿을수 없는 남자들 때문에 반드시 해야만 했고 자립과 자존감의 기본적인 원천이기도 했다. 이들은 일을 해야만 했고 또 원했다. 하지만 이들이 상대해야 하는 고용주들도, 옆에서 함께 일해야 하는 남성 노동자들도, 혹은 같은 침대를 쓰는 남성들마저도, 그 누구도 이들이 일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일을 계속하면 사무실에서 모욕을 당했고, 샤워실에서 공격을 당했고, 집에서 구타를 당했다. 하지만 사회적 신호에 복종하고 집으로 돌아가려 했다면 굶어 죽었을 것이다. - P655

에필로그

반격의 1980년대에는 여성의 진보를 좌절시키기 위한 운동이 끈질기고 고통스럽게, 부단히 전개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반격이 뉴라이트의 맹비난을, 레이건 시절의 법적인 퇴보를, 미국 재계의 강력한 저항을, 미디어와 할리우드의 무한 영속하는 신화 생성 기계를, 매디슨가의 ‘신전통‘ 마케팅을 동원해도 여성들은 절대 굴복하지 않았다. - P657

심지어 어떤 여성들은 반격의 제방을 쌓아올리는 데 조력하는 동시에 그 제방을 무너뜨리고자 했다. - P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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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검진 대기시간 동안 읽으려고 다운받은 알라딘 무료 ebook.

김초엽 작가의 [책과 우연들]이 알라딘 기획 책에 있던 에세이인줄 몰랐네.

김초엽 작가가 다닌 포스텍 근처에 있는 서점. 달팽이책방 반갑다.
김초엽 작가는 정작 학교 다닐 때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 달팽이책방을 자주 가지 못하다가
학사를 마치고 박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하며 짐을 빼는 날 서점을 방문하며
비로소 이 서점을 좋아하는 마음을 알게 되고
나중에 작가가 되어 작가로 서점을 방문하게 되었다는.

내가 처음 서점에 간 게 언제일까. 시내에 있는, 그 당시 기준으로는 큰 서점(무려 2층). 
ㅇㅇ사라던가, ㅇㅇ서림이라던가 하는 이름의.
처음은 아니지만,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여름방학에 동네 아주머니들이 하는 오징어잡이 낚시줄 정리 부업을 도와드리다가 아주머니들이 직접 해보라고 하셔서 혼자서 하루에 1개씩 1주일 작업해서 4900원(700원*7)을 벌어서 내가 번 돈으로 혼자 서점에 가서 책을 한 권 샀다. 책값이 아마 2500원 정도였던 것 같고 나머지는 마을금고에 저금했다. 착한 어린이 ㅎㅎ 
그때 산 책 제목은 기억 안나는데, 초등 여자아이가 우연히 마법 구두를 발견하고, 그 구두를 신으면 10대 후반? 20대? 성인으로 변신하여 저녁마다 집을 몰래 빠져나가는 이야기였던 것 같다. 좋아하던 오빠랑 데이트도 하고 자기 무시하던 언니도 골탕 먹이고.


어린 시절 또는 어른이 된 후 서점에 관한 추억들. 
책, 서점 얘기는 누가 해도 재밌는 법이지.

책과 우연들 - 김초엽 
생의 한가운데 - 신유진 
미쳤지, 미쳤어 - 심완선 
자꾸만 서점에 간다 - 심채경 
석양이 진다 - 원도 
서점, 불가사리 그리고 풍경들 - 재영 
더 라스트 북스토어 - 정지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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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곡 2023-09-22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이 책 읽었습니다 가볍게 읽기 좋았죠 / 오 알바로 책 산 대단한 어린이셨군요! 건강검진 잘 받으셨길 바랍니다~

햇살과함께 2023-09-22 19:03   좋아요 1 | URL
서곡님 읽으셨군요~
저 책 살 때 상당히 신중하게 골랐던 기억이 ㅎㅎㅎ
건강검진은 다행히 새로 생긴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원래 문제만 유지 중이요 ㅎㅎㅎ
주말 잘 보내세요!
 


어제 밤 늦게 온, 아침에 확인한 <영장류, 사이보그 그리고 여자>
<페이지보이> 펀딩하느라 이 책은 안하고 나중에 사려 했는데,
(다락방님이 리스트에 추가할 때^^ 추가 하실꺼죠??)
독보적 적립금 10000원 들어왔길래 홀라당 사버렸다.

그리고 이번주에 도착한 <한편 12호 우정>
아직 알라딘에 안뜸…
주제에 맞추어 편지지 세트 ㅋㅋㅋ
손편지 써본지 백만년인데, 누구에게 써볼까?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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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22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덕분에 다음 도서도 지정되었네요. 잊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한 달 더 늘어가네요, 우리가 함께 읽을 시간이..
샤라라랑~

햇살과함께 2023-09-22 08:39   좋아요 1 | URL
와아! 바로 지정!! 좋아요!!
아르떼 필로 시리즈 다 읽고 싶어요~

미미 2023-09-22 08:4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머싯 몸의 저 말 마음에 드네요!
리스트에 책이 한 권 더 추가된 점도요ㅋㅋㅋ ^^

햇살과함께 2023-09-22 08:54   좋아요 1 | URL
그죠 그죠 야금야금 추가해요 ㅋㅋㅋ

은하수 2023-09-22 1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아르떼 필로스 시리즈 다 읽고 싶어요
다 사고 싶어요
딸램 찬스 써서 다 구비 할래요~~~^^
전 펀딩은 패스했지만 오늘 딸램이 보냈다니까
내일이면 제 손에 오겠죠?^^

햇살과함께 2023-09-22 19:01   좋아요 0 | URL
오 훌륭한 딸램을 두셨군요^^
한꺼번에 구매하면 안 읽을테니 한 권씩 사야겠어요~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쓰고읽고고친다.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
되풀이만이 사랑할 만하다.
되풀이만이 삶이다. - P162





<초급 한국어>의 마지막 장면에서 문지혁은 미국 뉴욕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학기가 끝난 후 탑승 비행기 안에서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접하며 한국으로 돌아온다.


<중급 한국어>에서는 문지혁이 결혼을 하고아이가 태어나고아이를 양육하며강의를 하고글을 쓰는 되풀이되는 일상과 강원도 한 대학교의 글쓰기 강의에서 다루는 문학작품 이야기와 코로나를 겪으며 나로 돌아가는 소설을 쓰는 과정이 담담하게잔잔하게소소한 웃음과 함께(주로 딸 은채가 주는^^) 펼쳐진다.





"지혁아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선생님은 내 말을 잘랐는데말을 잘랐다는 사실보다 이 말은 보통 정말로 기분 나쁜 말을 하기 전에 하는 말이라는 점에서 나는 긴장했다.
"난 솔직히 걱정된다니가 책 낸 사람이 될까 봐."

솔직히 나는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무슨 말이지난 이제 책 낸 사람이 될 건데그가 말한 ‘책 낸 사람 ‘작가의 반대편에 있는 멸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책을 내면 작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적어도 그의 세계에서책을 낸 모든 사람이 작가는 아닌 것이다제대로 등단해서제대로 된 출판사에서제대로 된 작품(아마도 장르문학은 아닐)을 내지 않는 사람은 책을 낸다 하더라도 작가가 아닌 책 낸 사람에 머문다책 낸 사람과 작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 P150


지혁은 그가 낸 소설에 대해 애매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의 위치에 대해 애매하다는 말을 듣는다. 등단하지 않은 작가로서 작가 책 낸 사람’ 사이의 경계에 선 애매한 위치넘을 수 없는 벽을 마주한다.



제가 추천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일상을 쓰는 거예요. 우리가 글을 쓸 때 실패하는 이유는 자꾸만 멋지고 근사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플롯을 짜고, 비유를 고민하고, 문장을 다듬고………… 이런 게다가 아니에요. 좋은 글은 거기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좋은 글은 뭐예요? 내가 잘 아는 글입니다. 나를 잘 드러내는 글입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글이에요. 그러러면 어쩔 수 없이 나 자신, 내 주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곧 텍스트예요. - P154


에세이 같은 소설이다. 문지혁이라는 이름으로, 주변인을 반영하여 소설을 쓴다는 건, 본인과 주변인을 소설 속에 가둘 수 있는, 소설적 이미지에 고착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는 작업이다. 그러나, 문지혁 작가는 본인의 삶을 텍스트화하여 마침내 경계를 넘어 '작가'의 세계로 이동한 것인가.




문지혁의 글쓰기 강의 과정에서 다루는 문학작품들에 대한 얘기가 좋았다특히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도움이 되는], [A Small, Good Thing]에 대한 이야기가 좋았다거기 나오는 세가지 빵에 대한 해석첫번째 빵인 케이크와 두번째 빵인 시나몬롤은 기억이 나는데 검은 덩어리 빵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인상이 깊지 않은 빵이지만 문지혁이 설명하듯우리 인생을 구성하는 다수의 시간을 나타내는 것 아닐까특별한 생일 케이크나 달디단 시나몬롤처럼 강렬한 인상을 주지 못하지만 매일 무난하게 특별한 맛없이 그냥 먹는 검은 빵이 우리 인생이라고이게 인생이라고되풀이되는 일상 같은 빵이라고.


두 번째 빵은 늦은 밤 앤과 하워드 부부에게 빵집 주인이 대접하는 시나몬롤빵입니다찾아가지 않은 스코티의 케이크를 두고 부부와 감정 대립을 벌이던 빵집 주인은 스코티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부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죠그리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오븐에서 갓 구운 따뜻한 시나몬롤빵과 방금 내린 커피를 대접합니다이렇게 말하면서요.
"아마 뭘 좀 먹는 게 좋을 겁니다여기 갓 나온 따뜻한 롤빵을 드셔 보세요계속 먹고 힘을 내야 합니다이럴 땐 먹는 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요."

어 스몰 굿싱(A Small, Good Thing)‘이라는 소설의 원래제목이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우리말로는 이렇게 번역할 수 있겠죠작지만 좋은 것대단치 않지만쓸모가 있는 것이 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시나몬롤빵인 셈이죠. - P215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위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단 걸 많이 먹으면 물리거든요롤빵으로 잠깐의 배고픔을 해결한다 해도 결국은 더 큰 허기와 갈증이 찾아옵니다이전보다 더 공허해지기도 하죠그렇다면 그 다음 단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거기에 검은 덩어리가 있습니다.
뜯어 먹기 힘들지만맛은 풍부한 인생 그 자체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이 단계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행운도 불운도 쾌락도 고통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그러니까 좋다싫다가 아니라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희망도 절망도 없이그냥 사는 것입니다일어난 일을 두 팔 벌려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부부는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은 이 빵을 먹죠더 이상 먹지 못할 정도로 먹습니다먹는다는 건 그걸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거잖아요이 검은 덩어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그건 바로 - P220


<초급 한국어>를 쓸 때는 후속편에 대한 생각 없이 썼지만, <중급 한국어>는 후속편을 생각하고 있다고아마 <고급 한국어>는 아니고 <실전 한국어>가 되지 않을까 한다고제목 진짜 한글 교본 같지만ㅎㅎ <중급 한국어마지막 페이지에서 잉태된 둘째 이야기가 펼쳐지지 않을까.



한 학기 글쓰기 수업을 같이 들은 듯한 재미난 소설이.


문지혁의 강의에서 다룬 소설들과 수강생이 선물한 그림책 첨부.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

안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트 보니것의 소설 <5도살장>

카프카의 <변신>
요르크 슈타이너요르크 뮐러의 그림책 <난 곰인 채 있고 싶은데…>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폴 오스터의 짧은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도움이 되는]


* 문지혁 작가는 오스카 와일드를 상당히 좋아하는 것 같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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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9-21 16: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ㅋㅋ그러게요 제목은 정말 교본 같은데
표지가 두 권다 너무 예뻐요

햇살과함께 2023-09-21 17:05   좋아요 1 | URL
알라딘에서 소설 제목 검색하면 한글 교본이 검색된다는 문제 ㅋㅋ
표지 이쁘죠? 저는 책 실물 보기 전까지 <초급 한국어> 표지 사람이 아니라 나무인 줄 알았어요 ㅎㅎ
 

한 학기 글쓰기 수업을 같이 들은 듯한.

문지혁의 강의에서 다룬 소설들 외.

제임스 조이스의 단편 [애러비]
안톤 체호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
카프카의 <변신>
요르크 슈타이너, 요르크 뮐러의 그림책 <난 곰인 채 있고 싶은데…>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폴 오스터의 짧은 소설 [오기 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인생이란 고약한 농담을 즐기는 친구 같아서, 예기치 못한 순간에 예기치 못한 표지를 과거로부터 길어 올려 눈앞에 가져다 놓는다. 너, 이거 아직 기억하니? 하고 묻는 것처럼.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맥베스」의 대사를 떠올리던 2012년의 여름에도 나는 그 단어를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은 날마다 아주 느린 속도로 기어가 기록된 마지막 음절에 다다른다는 그 대사에서, 셰익스피어가 쓴 ‘마지막 음절‘이란 구절의 원래뜻은 죽음이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나의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나의 ‘세월의 책‘에 기록된 마지막 음절은과연 뭘까?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 몇십 분이 나에게는 영원히 흐르지 않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 P14

그렇다면 한국어에서는 어떨까요?
생명과 인생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한글 단어 ‘삶‘을 보면 흥미로운 자음들이 보입니다. ㅅ,ㄹ, ㅁ인데요. 미국에서 한국어 수업 시간에 이 단어를 처음 알려 주었을 때 학생들이보였던 반응이 생각납니다. 간단한 단어에 뭐가 이렇게 많이 들어 있냐는 거였죠. 어떤 학생은 그러더군요. 압축파일 같아요! 맞습니다. ‘생(生)‘이라는 한자어도 있지만 ‘삶‘은 보다 복잡하고 복합적이죠. 정보값이 많습니다. 네모 칸을 꽉 채우잖아요. 이걸 풀어 볼까요? - P21

만약 A가 제대로 된 여행을 다녀왔다면 아마 A는 A‘가 되어 있을 거예요. 작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게 되는 거죠. 진짜여행은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좋은 이야기는 결말에 변화가 들어 있어야만 해요. 작품의 주제,작가의 최종 메시지가 거기 들어 있으니까요. 왜 직접 말하지 않냐고요? 작가는 하고 싶은 말을 직접 하지 않습니다. 그래선 안 돼요. 그저 주인공의 마지막 변화를 통해 자신의 메시지를 독자와 관객에게 ‘보여 주는‘ 거죠. 돈텔, 벗 쇼. 앞으로 지겹게 듣게 될 말일 거예요. 말하지 말고 보여 줘라. 직접 들이밀지 말고 간접적으로 넌지시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소설이란 하고싶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거예요. 다른 좋은 예술도 마찬가지고요. 설명하거나 가르치려 들면 끝나는 거죠. - P38

우리의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을 쓰는 한 우리는 모두 영웅이에요. ‘써야 한다‘는 소명을 갖고 책상 앞에 앉지만, 언제나 써야 하는 이유보다 쓰지 말아야 할 이유가 더 많죠. 소명을 거부하다가 어찌저찌 ‘문지방‘(학교 다닐 때 제 별명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참 못됐죠.)을 넘어 글 속으로 들어가면 거기에서부터 진짜 고난과 시련이 시작됩니다. 세상에 술술 써지는 글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우리의 영웅, 나의 글 쓰는자아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옛 용사들이 용과 싸워 이긴 것처럼 용보다 더 무섭고 포악한 ‘하얀 여백‘ 혹은 ‘데드라인‘ 아니면 ‘성적‘ 같은 괴물들과 맞서 싸운 다음 승리를 거두죠.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나면 여러분은 문지방을 넘어 다시 일상의 공간으로 돌아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빈손이라고요? 아닙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영약이 여러분의 두 손에 쥐어져있어요. 쓰기 전의 나와 쓴 다음의 나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말했잖아요? 우리는 A에서 A‘가 되었으니까요.
..... 저기, 저기 자고 있는 영웅 좀 깨워 주시겠어요? - P47

2주 차 수업에서 나는 앞으로 다시 말할 기회가 많지 않을 글쓰기의 기본 원칙들을 강조한다. 그중 하나는 문장부호에 관한 것인데, 이를테면 느낌표(!)나 물음표(?), 말줄임표(………), 심지어는 쉼표(,)조차 너무 많이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 P48

것은 문맥을 통해 의미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부호를 통해 손쉽게 ‘말해 주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반복하거나(!!!!!!) 섞어 쓰는 것(?!?!)은 당연히 더욱 좋지 않고, 이런일이 반복되면 글의 수준은 처참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허락된 유일한 문장부호는 마침표뿐입니다. 제가좋아하는 말이 하나 있어요. ‘제자리에 찍힌 마침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 P49

나는 내가 해야 할 말을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전달했다. 공은 학생들에게 넘어갔고, 이제 이해하고 말고는 그들의 영역이 되었다. 못 알아들으면 니네 손해지 뭐. 나는 생각했고 실제로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수업의 주제이자 목표이자 모든 것인 ‘한국어와 한글‘에 있어 내가 그들 누구보다 권위 있는 존재라는 점도 도움이 됐다.
그런데 여기에선 아니었다.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했고, 같은 문화를 공유했다. 무슨말을 하면 학생들은 내 말에 숨겨진 희미한 뉘앙스, 여백, 서브텍스트까지 모두 파악했고, 심지어는 말하지 않은 것까지 알아차렸다. 서울에서 오느라 늦었다는 내 변명을 듣고 어느 학생은 말했다.
선생님, 저희도 서울에서 와요. - P53

이 짧은 소설의 자서전적 요소들과 그 레퍼런스를 발견해내는 것은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사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닐 겁니다. 중요한 건 이 글을 쓰고 있는 작가, 즉현재의 조이스가 자신의 유년 시절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하는 문제일 거예요. 어린 소년을 화자로 선택해서 조이스가 보여 주려고 하는 것은 단순한 기억의 나열이 아닙니다. 사실관계의 확인도 아니죠. 그때의 나는 몰랐지만 지금의 나는 알고 있는 어떤 것에 대한 통찰, 깨달음, 더 나아가서는 내 과거에 대한 해석과 논평일 겁니다. 커넥팅 더닷츠, 인생이란 점을 선으로 잇는 과정이라고 하잖아요? 과거를 돌아본다는 것은 그런 겁니다. 점과 점을 잇는 것. 선을 그리는 것. 그 선이어디서 와서 어디로 향하는지 알아내는 것.
…… 여러분의 점은 어디에서 시작되었나요? - P62

물론 2021년의 시선으로 본다면 이 소설이 적어도 안나에게만큼은 불공평하게 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때마다 나는 1899년이라는 ‘시대 보정‘이 필요하며, 이제 여러분이 안나의 이야기를 써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느 학기 강의 평가를 열어 보았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이런 문장이었다.
- 여혐 가득한 빵은 텍스트를 골라 놓고서 변명만 주구장창 늘어놓는 수업. - P94

사춘기 시절 내 주된 괴로움 중 하나는 부모가 나에게 각자 털어놓는 서로에 대한 비방이었다. 아빠는 엄마의 집요함과 강박과 히스테리컬함을, 엄마는 아빠의 게으름과 무심함과 계획 없음을 비난했다. 이런 비방들은 부엌에서, 문 앞에서, 조수석에서, 엘리베이터에서, 서점과 목욕탕에서, 아무런예고와 맥락 없이 이뤄졌다. 내 반응은 대개 심드렁했는데(당시 나는 이러한 태도가 내가 취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중립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야기를 마친 엄마와 아빠는 신기하게도 꼭 같은 말을 했다.
-넌 꼭 니 아빠/엄마를 닮아 가지고.
나는 늘 중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별거 아닌 일 - P114

은 별거 아닌 일로, 보통 일 아닌 일은 보통 일 아닌 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중간 네모나 동그라미 말고. 세모 삼각형.
나이가 들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난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들이 끝내 이혼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직선이 아니라 삼각형이었고, 내가 몰랐던 그들의 세 번째 꼭짓점은 바로,
나였다. - P115

조금 오래된 영화지만 셰익스피어 인 러브라는 영화를 보면 이 과정이 다소 과장되기는 했으나 잘 드러나 있습니다. 게다가 당시 무대에는 여자가 올라갈 수 없었어요.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할 일이죠. 여러분의 동심을 파괴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러니까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은 남자였다는 겁니다. 「햄릿」의 오필리어도, 「십이야」의 바이올라도, 「리어왕」의 코딜리어도 모두모두 남자 배우가 연기해야 했어요. 소년이거나, 여자 흉내를 잘 내거나, 운좋게 변성기를 피해 간 배우들이 이런 역할을 맡았죠. 그래서 셰익스피어 인러브」에서는 무대에 올라가고 싶어서 남장을 하는 허구의 셰익스피어의 여자 친구가 등장합니다. 남장을 한번 하고, 무대에 올라가 다시 여자를 연기하는 거죠. 그러다 누군가에게 발각되는데요, 그가 여자라는 것을 알아챈 관객이 소리를 지릅니다. "저 여자, 여자예요! (That woman, is a woman!)" - P116

커트 보니것의 소설 『제5도살장』에는 ‘평온의 기도‘로 알려진 신학자 라인홀트 니버의 기도문이 두 번 등장한다.

하나님, 우리에게
바꿀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바꿀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언제나 이 둘을 분별하는 지혜를 허락하소서. - P122

라이언은 과묵해 보이는 거구의 사내였지만 실제로는 달변이었고, 심지어 서툰 한국어도 한두 문장씩 섞어가며 능숙하게 이야기를 이끌었다. 미국에서 끝까지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바로 스몰토크였는데, 저렇게 별것 아니면서 무해한 이야기를 처음 만난(그것도 말이 잘 안 통하는) 사람들과 두 시간 넘게 계속할 수 있다니 한편으로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31 - P141

"지혁아, 기분 나빠하지 말고 들어."
선생님은 내 말을 잘랐는데, 말을 잘랐다는 사실보다 이말은 보통 정말로 기분 나쁜 말을 하기 전에 하는 말이라는점에서 나는 긴장했다.
"난 솔직히 걱정된다. 니가 책 낸 사람이 될까 봐."
솔직히 나는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무슨 말이지? 난 이제 책 낸 사람이 될 건데? 그가 말한 ‘책 낸 사람‘이 ‘작가‘의 반대편에 있는 멸칭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 후의 일이었다. 책을 내면 작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어도 그의 세계에서, 책을 낸 모든 사람이 작가는 아닌 것이다. 제대로 등단해서,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제대로 된 작품(아마도 장르문학은 아닐)을 내지 않는사람은 책을 낸다 하더라도 작가가 아닌 책 낸 사람에 머문다. 책 낸 사람과 작가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벽이 존재한다. - P150

제가 추천하는 방법 중 하나는 일상을 쓰는 거예요. 우리가 글을 쓸 때 실패하는 이유는 자꾸만 멋지고 근사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플롯을 짜고, 비유를고민하고, 문장을 다듬고………… 이런 게다가 아니에요. 좋은글은 거기서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좋은 글은 뭐예요? 내가 잘 아는 글입니다. 나를 잘 드러내는 글입니다. 거짓말하지 않는 글이에요. 그러러면 어쩔 수 없이 나자신, 내 주변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이 곧 텍스트예요. - P154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쓰고, 읽고, 고친다.
되풀이하는 것만이 살아 있다.
되풀이만이 사랑할 만하다.
되풀이만이 삶이다. - P162

팩트 체크 :
사실 내 책상에는 다른 문구가 붙어 있다.

"이 세상에는 오직 두 가지 비극만이 존재하네.
하나는 자기가 원하는 걸 갖지 못하는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마침내 갖는 비극이지.
두 번째가 훨씬 나빠 이게 진짜 비극이라고!"*

*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중에서. - P167

두 번째 빵은 늦은 밤 앤과 하워드 부부에게 빵집 주인이대접하는 시나몬롤빵입니다. 찾아가지 않은 스코티의 케이크를 두고 부부와 감정 대립을 벌이던 빵집 주인은 스코티가죽었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부부에게 진심으로 사과하죠. 그리고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오븐에서 갓 구운 따뜻한시나몬롤빵과 방금 내린 커피를 대접합니다. 이렇게 말하면서요.
"아마 뭘 좀 먹는 게 좋을 겁니다. 여기 갓 나온 따뜻한 롤빵을 드셔 보세요. 계속 먹고 힘을 내야 합니다. 이럴 땐 먹는게 별것 아닌 것 같아도 도움이 되는 법이니까요."
‘어 스몰 굿싱(A Small, Good Thing)‘이라는 소설의 원래제목이 바로 여기서 나왔어요. 우리말로는 이렇게 번역할 수있겠죠. 작지만 좋은 것. 대단치 않지만, 쓸모가 있는 것. 이제목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시나몬롤빵인 셈이죠. - P215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위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단걸 많이 먹으면 물리거든요. 롤빵으로 잠깐의 배고픔을 해결한다해도 결국은 더 큰 허기와 갈증이 찾아옵니다. 이전보다 더공허해지기도 하죠. 그렇다면 그다음 단계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거기에 검은 덩어리가 있습니다.
‘뜯어 먹기 힘들지만, 맛은 풍부한 인생 그 자체를 발견하게 되는 거죠. 이 단계에서는 기쁨도 슬픔도 행운도 불운도쾌락도 고통도 모두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니까 ‘좋다, 싫다‘가 아니라 ‘풍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희망도 절망도 없이, 그냥 사는 것입니다. 일어난 일을 두 팔 벌려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부부는 이름조차 정해지지 않은 이 빵을 먹죠. 더 이상 먹지 못할 정도로 먹습니다. 먹는다는 건 그걸 내 몸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거잖아요? 이 검은 덩어리를 내 안에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에게는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되는데, 그건 바로…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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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9-20 10: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중급보다 초급이 더 좋기는 했어요. 훗.

햇살과함께 2023-09-20 13:34   좋아요 0 | URL
저는 문학 얘기가 많아서 중급이 조금 더 좋네요^^
좋아하는 카버 단편이 자세히 나와서 더 좋아요.
세 번째 검은 빵은 잘 기억이 안나 다시 읽어봐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