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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부장제와 자본주의 - 여성, 자연, 식민지와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 ㅣ 아우또노미아총서 45
마리아 미즈 지음, 최재인 옮김 / 갈무리 / 2014년 1월
평점 :
자본주의가 가부장제를 탄생시킨 것은 아니지만, 자본주의의 옷을 입은 가부장제(또는 가부장제의 옷을 입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여성, 식민지/제3세계, 자연에 대한 폭력과 원시적 축적을 통해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각각을 또는 그 연결을 강화시키는지 낱낱이 파헤치는 책이다.
제3세계의 ‘가정주부화’라는 개념을 통해 성별노동분업과 국제노동분업, 신국제노동분업의 관련성을
설명하고, ‘가정주부’의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반론과
‘생산적 노동’에 대한 재개념화를, 과개발국가 중산층 여성의 ‘가정주부’로서의 ‘소비노동’과 저개발국가의
여성(남성 포함) 노동자들의 착취적인 노동 현실을 연결한다.
인도 사례들을 통해 인도 여성이 처한 끔찍한 지참금 살해, 양수천자와 여아 낙태, 강간, 희생자
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하는 문제들을, 소년, 중국, 베트남 사례를 통해 공업-남성과 농업-여성이라는 이분법, 공식 노동과 비공식 노동, 임금 노동과 무임금 노동 등 ‘이중 경제’에서의 여성이 처한 착취 환경은 사회주의 국가라고 해서 다르지 않음을 설명한다. <자본론>의 노동/계급에 대한 협소한 정의, 자본주의를 따라가는 사회주의 국가의 경제정책은
여성이 배제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전쟁 등 필요할 때만 이용되고 활용되고 평화기에 접어들면 팽
당한다. 언제까지 당하고 살아야 하나.
또, 실비아 페데리치의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를 통해서도 살짝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유럽에서 유럽의 식민지에서 마녀사냥이 얼마나 조직적이고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들의 단합된 힘을 보았다. 마녀 재판은 ‘인간의 피에서 금을 만들어낸 새로운 연금술’이라니.
마지막 장에서 언급한 대안적 삶은 과연 실현될 수 있을 것인가. 저자가 이에
대해 개정판 서문에서 언급한 대로 초인을 기다리는 대신 지금 당장 뭐라도 해봐야겠다. 착취적인 글로벌기업의 -한국기업을 포함하여 - 제품 불매운동부터 시작해서.
그들은 또한 제기된 새로운 방법이 도덕적이거나 금욕적인 것이 아니라 해방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들에게 덜 해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 혹은 덜 하는 것을 통해 삶의 질과 행복까지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웠다. 이는 기독교 혹은 개신교 윤리가 세속화된 자본주의 세계관에 깊이 뿌리박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한편, ‘해방‘은 일종의 영적 혹은 도덕적 마음 상태, ‘청렴결백‘한 감정을 의미하는 것으로만 이해되었다. 이런 윤리는 ‘깨끗한 옷 운동(노동조건개선운동)‘과 여러 공정무역 운동들 배후에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내가 해방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좋은 삶‘에 대한 규정을 바꾸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사회적·경제적 관계들이다. - P32
대안은 없다는 티나TINA 증후군에 사로잡히는 대신, 하늘에서 떨어지는 초인을 기다리거나 기술을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여기며 기다리는 대신, 자급적 삶이라는 대안SITA, Subsistence Is The Alternative[자급이 대안이다]을 가능한 지향점으로라도 검토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P35
이 책의 최대 장점은 서문부터 본문 끝까지 책 전체가 명료하게 이해되는 쉬운 문장으로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읽은 페미니즘 책 중에서 단연코 가장 잘 이해되는 책이다.
그러나, 최대 단점은 동어 반복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강조, 반복, 사례 인용
등을 통해 저자의 주장을 이해시키려는 목적이겠지만 - 대부분의 비문학 책이 저자의 주장이 반복될 수밖에
없겠지만 - 이 책처럼 거의 같은 문장, 거의 같은 설명이 반복적으로 나오는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잦은 동어 반복으로 500페이지에
육박하는 분량이 과연 필요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올해의 책으로 꼽을 수 있는 훌륭한 책을 한 권 읽었다고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