욘 가브리엘 보르크만
헨리크 입센 지음, 조태준 옮김 / 지만지드라마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간 왜 사는가? 부부 왜 사는가?


은행장이 되기 위해, 부와 명예, 위대함을 얻기 위해 공금 황령으로 투자를 일삼다 실패하고 8년간의 감옥살이 이후에도 자신의 집 2층에서 8년간 스스로를 가둔, 과대망상에 사로잡힌 남편 보르크만과 그 남편으로 인해 철저한 염세주의자가 된 보르크만 부인. 그리고 파산한 그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8년 동안 얼굴을 마주한 적 없는, 그의 옛 연인이자 그녀의 쌍둥이 언니인 엘라 렌트헤임.


그들은 8년만에 처음으로 마주한다.


보르크만에겐 자신이 여전히 유일한 희망이고, 보르크만 부인에겐 아들 에르하르트가 유일한 기대이고, 엘라에겐 수양아들 같은 그 조카가 유일한 사랑이다.


보르크만은 끝까지 자신의 헛된 상상의 왕국 속에서 살았다. 그의 망상은 알면서도 저버릴 수 없는 것인가보르크만 부인에게 아들은 남편에 의해 실추된 보르크만이라는 성의 명예를 회복시켜 줄 기대였으나 아들은 어머니의 명예가 아닌 자신의 행복을 찾아 그녀를 져버린다. 어쩌면 그녀는 애초에 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쉽게 극복할 것이다. 아니 그저 더 염세적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녀와 언니 엘라 렌트헤임의 마지막 손잡음과 화해의 제스처는 너무 쉬운 것 아닌가. 그녀들에게 쌓인 그 세월이, 보르크만이라는 남자의 죽음으로, 에르하르트라는 아들의 배신(?)으로 그렇게 쉽게 회복될 수 있는 것인가.


연극은 원작에 충실했으며, 원작의 무거움과 비관적 분위기에 약간의 애드립으로 웃음을 자아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마찬가지로 생상의 교향시는 교회 종소리를 연상케 하는 소리로부터 시작된다. 이 소리가 하얀 해골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이어서 평화로운 잠에서 깨어난 망자들이 기이한 왈츠를 춘다. 입센의 시 ‘죽음의 춤‘에서도 정확히 같은 패러다임의 모티브가 발견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마지막 작품인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899)에서 다시 한 번 이 모티브를 재현한다. 죽은 자들은 자정을알리는 교회 종소리에 의해 소환되어 한바탕 기이한 춤을춘다. 그러고는 다시 종소리가 울리면 무덤으로 돌아가 ‘살아 있는 망자‘로서의 존재를 끝낸다. - P200

숫자 ‘8‘
이 희곡엔 유독 8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반복되어 나타난다. 엘라와 군힐은 8년 만에 처음 만났다. 보르크만의주장에 따르면 그에게 단 8일의 시간만 더 주어졌더라면횡령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예금자들의 대대적인 피해로 비화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으로 8년 동안 투옥되었고 출소한 뒤 8년 동안 칩거에들어간다. 그리고 플롯이 마무리될 즈음 그는 8년 만에 처음 집을 나선다. 성경에서 숫자 8은 부활, 새 출발, 새 생명의 상징이다. 예수라는 이름의 헬라식 숫자는 888이며, 예수는 안식일이 지난 후 첫날, 즉 여덟 번째 날 부활했다. 이외에도 8이라는 숫자는 모든 시대, 모든 문화권과 신화에서 완성, 낙원의 회복, 부활, 지복, 완전한 리듬, 전체, 모든 가능성, 질서, 안정 등을 상징한다. - P22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스 마카브르

보르크만 부인 (강하고 확고하게) 에르하르트는 그럴 거야! 난 확실히 알고 있어!
엘라 렌트헤임(고개를 저으며) 넌 그걸 알지도 못하고 그걸 믿지도 않아, 군힐.
보르크만 부인 난 그걸 믿지 않아!
엘라 렌트헤임 그건 그저 네 꿈일 뿐이야! 왜냐하면 거기에라도 매달리지 않는다면, 넌 절망에 빠져 버릴것만 같거든.
보르크만 부인 그래, 난 진정 절망에 빠질 거야. (격해져서) 어쩌면 그게 네가 바라는 거겠지, 엘라! - P31

빌톤 부인 (가볍게 그리고 무심하게) 난 살면서 네, 아니요 대답을 수없이 해 왔답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요. 이모님께서 방금 막 오셨다는데 그냥 두고 떠나시려고요? 부끄러운 줄 아세요, 무슈 에르하르트…아드님께서 그러시면 되겠어요? - P42

위쪽 응접실에서 음악 소리가 더욱 커진다.

보르크만 부인 (한동안 가만히 서 있다가 움찔거리더니 몸을 움츠리면서 무의식적으로 속삭인다.) 늑대가 다시 울부짖는군・・・ 병든 늑대가. (잠시 그대로 서있다가 카펫 위에 풀썩 쓰러지더니 몸을 뒤틀면서 슬퍼하며 속삭인다.) 에르하르트! 에르하르트... 내게 충실하거라! 오, 집에 와서 네 어미를 도와야지! 난 더 이상 이런 삶을 견딜 수가 없구나! - P54

보르크만 자넨 내내 나한테 거짓말을 해 왔어.
폴달 (고개를 저으며) 난 거짓말을 한 적이 없네,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 여기 앉아 내게 거짓으로 희망과 믿음, 신뢰를 얘기한 거 아닌가?
폴달 자네가 내 소명을 믿어 주는 만큼 거짓은 아니었네. 자네가 날 믿어 주고 내가 자넬 믿는 한 말이야. - P78

보르크만 의심을 품는 순간, 추락하고 마는 거야.
폴달 바로 그것 때문에 여기 와서 신념으로 가득 찬 자네한테 나 자신을 의지하는 게 그토록 위안이 됐던 거야. (모자를 쓰며) 하지만 이제, 자넨 내게 낯선 사람 같군.
보르크만 내게 자네도 마찬가지야.
폴달 잘 있게, 욘 가브리엘
보르크만 잘 가게, 빌헬름. - P80

엘라 렌트헤임(미소를 지으며) 당신은, 승리를 추호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죠.
보르크만(조급하게) 인간이란 게 그런 거요, 엘라. 동시에 의심하면서 믿는 거지. (자기 자신에게) 그래서난 내 풍선 안에 당신과 당신의 재산을 싣고 싶지않았던 거요.
엘라 렌트헤임 (긴장하여) 왜죠, 난 그걸 묻는 거야! 이유가 뭔지 말해 봐요!
보르크만 (그녀를 쳐다보지 않고서) 그런 여행엔 가장 소중히 여기는 걸 가져가는 게 아니야.
엘라 렌트헤임 당신은 가장 소중한 걸 가져갔잖아요. 도래할 당신의 인생... - P88

엘라 렌트헤임 (휘청거리며 황망하게) 보르크만・・・ 에르하르트는 이 폭풍 속에서 좌초되고 말 거예요. 당신과 군힐 서로가 이해를 해 줘야 해요. 우리 당장 군힐한테 내려가야 돼요
보르크만 (그녀를 바라보며) 우리라니? 나도 말이오?
엘라 렌트헤임 당신이랑 나랑 함께요.
보르크만 (고개를 저으면서) 저 사람은 단단한 여자야. 한때 내가 산에서 캐내고 싶어 했던 광석처럼 단단하지. - P107

엘라 렌트헤임 먼저 친구분을 안으로 모시도록 해요, 보르크만.
보르크만 (매정하게) 내 얘기했잖소, 이 집엔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엘라 렌트헤임 하지만 이분 넘어지셨단 얘기 당신도 들었잖아요!
보르크만 오, 우린 다 넘어지는 거야. 적어도 인생에서 한 번쯤은. 하지만 다시 일어나야지. 그리고 아무일 없는 척하는 거야. - P149

해설

그러나 스캔들 및 파산에 대한 입센의 집착은 어린 시절불행한 가족사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입센이 일곱 살 때, 그의 아버지는 투자 실패와 낭비벽으로 파산을 경험한 적이 있다. 이 일로 입센 가족은 경제적 궁 - P175

핍뿐만 아니라 가정 파탄의 위기에까지 내몰리게 되는데, 불화의 중심에는 항상 껍데기 권위의식에 사로잡혀 술과 폭력을 일삼던 아버지가 있었다. 훗날 입센은 그의 아버지가 "자신에게 맞는 사회적 지위를 되찾게 될 날을 꿈꾸었다"고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입센의 아버지 크누드는 욘가브리엘 보르크만의 가장 오래된 모델이라 할 수 있다. - P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마누엘레 피오르 그림,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 유명한 자기 앞의 생을 이제야 읽었다(그런 책이 어디 한 두 권?).


뭐야 이 책 이런 내용이었어? 내가 상상한 이야기와 전혀 다른 스타일이네. 나는 뭔가 좀 더 진중하고 심오한(이라고 쓰고 지루한 이라고 읽는다) 줄거리와 문장일 거라 상상했다.


나는 이 책을 읽기 전에 이 책의 내용을 들어본 적도 읽어본 적도 없다고 생각했다. 독서괭님에게도 내용 전혀 모른다고 댓글도 달고 말이다....


그런데 충격적이게도 - 10년 전이긴 하지만 - 나는 <빨간책방>에서 자세하게 다뤄진 방송을 들었고, 심지어 3년 전에 <라디오 북클럽 김겨울입니다>에서도 들었네? 어떻게 이렇게 하나도 기억에 남지 않을 수가! 에밀 아자르/로맹 가리 작가 자신의 삶이 너무 흥미로워서 책 내용 따위 전혀 남지 않은 것인가. 나의 기억력의 심각함에 다시 한번 심각함을 느낀다(음주 자제 필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두 방송 편을 다시 들었는데 흥미롭게도 두 방송에서 다뤄지는 소설의 느낌이 사뭇 달랐다. 말하는 사람의 감상이나 방송의 분위기, 방송 시간 등등 여러 상황들 때문이겠지만. 역시 100명이 책을 읽으면 100가지 감상이 나오는구나 싶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문장이 가슴을 아프게 한다.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닌 것이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아파트에서 그를 사랑으로 키워준 로자 아줌마나 가난하지만 서로에게 기대어 사는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종교 그러나 동일한 비천한 계급의 이웃들.


모모에겐 어떤 생이 펼쳐질까. 모모는 그들과 다른 생을 살 수 있을까. 그에겐 그럴 기회와 의지가 있을까.



그림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말 그대로 치부를 드러내는, 인물들의 특징을 잘 살린, 특히 로자 아줌마가 서서히 죽어가며 변해가는 모습을 너무도 탁월하게 묘사한 그림이 이야기가 가진 슬픈 여운을 각인시킨다.



모모가 말한다. 사랑해야 한다고.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파랑 2024-03-12 16: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도 에밀 아자르 최고 작품은 <자기앞의 생> 이죠~!
저도 이 일러스트로 추가 구매했는데 다시 읽어보고 싶네요~!!

햇살과함께 2024-03-13 09:37   좋아요 0 | URL
다른 거 안 읽어봤지만, 새파랑님이 최고라니.
일러스트 너무 좋습니다^^ 다시 읽어보세요~

독서괭 2024-03-12 21: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우 저는 모모가 달걀을 손에 쥐고 멍하니 있던 장면이랑 사람은 사랑이 없어도 살 수 있나요? 라고 묻는 장면 아직도 생각나요 ㅜㅜ 넘 마음아픔 ㅠㅠ

햇살과함께 2024-03-13 09:39   좋아요 1 | URL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요?
모모의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들이 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세 자매 읽기

세 자매

마샤 난 벌써 엄마 얼굴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은 우리도 기억하지 못할 거야. 잊을 거라고.
베르쉬닌 그래요. 잊을 겁니다. 그게 바로 우리의 운명입니다. 어쩔도리가 없어요. 우리에게 심각하고 의미심장하며 매우 중요한것처럼 보이는 것도 시간이 흘러가면 잊히거나 중요하지 않은것처럼 보이게 되는 겁니다. - P562

안드레이 내가 아는 사람도 없고, 나를 아는 사람도 없이 모스크바에 있는 레스토랑의 거대한 홀에 앉아 있으면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 그런데 나도 모든 사람들을 알고, 그들 모두도 나를 아는 여기는 연고도 없는 것처럼 낯설어…… 연고도 없고 고독해. - P580

베르쉬닌 그래요...... (웃는다) 어쩐지 이 모든 것이 이상하군요!

사이.

화재가 시작됐을 때 나는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다가가서 보니까 우리 집은 멀쩡하고 무사해서 위험하지 않더군요. 그런데 사람들이 뛰어다니고, 개와 말이 질주하는데 두 딸이 어머니도 없이 속옷만 입고 문지방에 서 있더군요. 애들 얼굴에는 뭐랄까 불안과 공포, 애원이 서려 있었습니다. 그 얼굴을 보자니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기나긴 인생행로에서 이 아이들은 또 무엇을 참아야 할 것인가! 그것을 생각했습니다. 아이들을 붙잡고 달렸어요. 그리고 내내 한 가지만 생각했습니다. 얘들은 이 세상에서 또 무엇을 견뎌야 할 것인가! - P614

투젠바흐 쓸데없는 것들과 어리석고 사소한 것들이 아무 까닭도 없이 갑자기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때가 가끔 있지. 예전처럼 그것들을 조롱하고, 그것들이 쓸데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계속 걸어가면서도 중단할 힘이 없다는 걸 느끼는 거야. 아, 그런얘긴 그만두자고! 난 즐거워. 이 전나무와 은행나무 그리고 자작 - P640

나무를 인생에서 처음으로 보는 것 같아. 그것들도 나를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며 기다리는 것 같아. 정말로 아름다운 나무들이야. 그리고 분명히 나무들 옆에는 아름다운 삶이 있을 거야!

"어이! 호프-호프!" 하는 고함소리.

가야겠어. 갈 시각이야....... 이 나무는 바싹 말랐지만 여전히 다른 나무들과 함께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그래서 내 생각에는 만일 내가 죽더라도 여전히 나는 이런 저런 식으로 삶에 참여하게될 거야. 안녕, 내 사랑....... (두 손에 키스한다) 당신이 나한테 준 당신 서류는 내 책상에 있는 달력 아래 있어. - P641

이리나 (올가의 가슴에 머리를 기댄다) 때가 오면 이 모든 것이 무엇 때문인지, 무엇 때문에 이런 고통이 있는지 모든 사람들이알게 될 거고, 아무런 비밀도 없을 거야. 하지만 지금은 살아야해…… 일해야 해. 오직 일해야 해! 내일 나는 혼자 가겠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내 모든 인생을 바치겠어. 지금은 가을이고 곧 겨울이 오겠지. 눈으로 길이막히겠지만, 나는 일하고 또 일할 거야…… - P6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