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링크로스 84번지 (20주년 기념판 양장본)
헬렌 한프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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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날 수 없었기에, 아니 만나지 않았기에 이런 책이 나올 수 있었겠지. 헬렌은 낯선 영국인에게 어쩜 이런 친절을 베풀 수 있는지. 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마음과 소포가 가득한 서간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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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5-12-07 00: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너무 아름다운 책이죠!
제가 이 책 읽고 반해서 이 서점 자리 찾아갔는데 맥도날드로 바뀌었더라고요. ㅠㅠ

햇살과함께 2025-12-08 08:55   좋아요 0 | URL
앗 맥도날드 ㅠ 너무 아쉽네요.
어쩜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을 수 있죠?
 

런던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저는 임항 열차에서 내려 지저분한 보도를 이 두 발로 직접 밟을 그날을 꿈꾸며 살아간답니다. 걸어서 버클리 광장까지 올라갔다가 윔폴 거리로 내려오고,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 탑 입성을 거부하고 앉았던 세인트폴 성당의그 계단, 존 던‘이 앉아 연설하던 바로 그 계단을 저도 한 번 밟아보고 싶어요. 대전 중에 런던 주재원으로 나갔던 신문기자 한 사람을 아는데, 그 사람 말이 관광객들은 영국에 어떤 고정 관념을가지고 가기 때문에 늘 자기가 원하는 것만을 찾는대요. 전 영국문학 속의 영국을 찾아 갈 거라고 그랬더니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렇다면 거기에 있어요."
안녕을 빌며-
헬렌 한프 - P28

제가 뭘 썼는지 아세요? 월턴의 생애에서 고용주의 딸과 눈이맞아 달아난 존 던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만들었지요. 텔레비전을보는 사람들은 존 던이 누군지 알 리가 없지만, 헤밍웨이 덕분에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하나의 섬은 아닐지니는 삼척동자도 줄줄 꿸 정도죠. 이 구절 하나 집어넣으니까 곧장 팔리더라고요. - P93

* 헤밍웨이의 작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17세기 영국 시인 존 던의 설교문을 모태로 태어났다. 인용문은 이 설교문의 한 구절이다. "어느 누구도 그 자체로서 온전한 하나의 섬은 아닐지니, 무릇 인간이란 대륙의 한 조각이요, 또한 대양의한 부분이어라. 한 줌 흙이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 땅은 또 그만큼 작아질지며, 작은 곳 하나가 그리 되어도, 그대 벗들이나 그대 자신의 영지가 그리 되어도 마찬가지어라. 그 누구의 죽음이라 할지라도 나를 축소시키나니, 나란 인류 속에 포함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이를 알고저 사람을 보내지는 말지어다.
좋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리기에......" - P94

친애하는 캐서린 -
1969년 4월 11일
책장을 정리하다가 사방에 책으로 둘러싸여 앉아 순풍에 돛단여행을 기원하며 몇 자 끼적입니다. 브라이언과 런던에서 멋진시간을 보내길 빌어요. 브라이언이 전화로 ‘여비만 있다면 우리랑 같이 가시겠어요?‘ 그러는데, 하마터면 울음이 터질 뻔했어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쩌면 이대로가 나을지도. 너무나 긴세월 꿈꿔온 여행이죠. 단지 그곳 거리를 보고 싶어서 영국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고요. 오래 전에 아는 사람이 그랬어요. 사람들은 자기네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러 영국에 간다고. 제가, 나는영국 문학 속의 영국을 찾으러 영국에 가련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더군요. "그렇다면 거기 있어요."
어쩌면 그럴 테고, 또 어쩌면 아닐 테죠. 주위를 둘러보니 한가지만큼은 분명해요. 여기에 있다는 것.
이 모든 책을 내게 팔았던 그 축복 받은 사람이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그리고 서점 주인 마크스 씨도요. 하지만 마크스서점은 아직 거기 있답니다. 혹 채링크로스가 84번지를 지나가게 되거든, 내 대신 입맞춤을 보내주겠어요? 제가 정말 큰 신세를 졌답니다.
헬렌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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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 종소리 - 김하나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고전 읽기
김하나 지음 / 민음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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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나 작가가 들려주는 고전 문학 이야기. 고전을 다시 읽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에는 총 5편의 고전 문학이 담겨있다.


<아우라> ─ 카를로스 푸엔테스
<순수의 시대> ─ 이디스 워튼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맥베스> ─ 셰익스피어
<변신‧시골의사> ─ 프란츠 카프카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 외의 4편은 이미 읽은 책이다.


이 책 덕분에 <아우라>를 다시 읽었다. 이렇게 짧고 강렬한 소설이라니.

이 책 덕분에 사두고 읽지 않았던 이디스 워튼의 <환락의 집>을 읽었다.

<환락의 집>은 1권이 참~ 속 터지고 답답해서 읽기 힘들었는데, 익숙해져서인가 체념해서인가 2권은 생각보다 잘 읽혔다.

<순수의 시대>도 다시 읽고 싶다. 이디스 워튼의 번역된 작품을 다 읽어야지.

이 책 덕분에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회상록>을 구매했다(마침 이번 달 민음사 패밀리데이에서). 남성 작가의 책이라면 절대 손이 안 갈 제목의 책이지만 여성 작가가 썼다니, 오랜 시간을 들여 쓴 책이라니 궁금해졌다. 5권 중 독서 난이도가 가장 높은 책이 아닐까 싶다. 과연 40페이지 허들만 넘으면 될지.

<맥베스>와 <변신>까지 다시 읽진 못했지만 또 기회가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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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5-11-29 0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읽었던 책을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라니 김하나 작가의 이 책 참 좋은 책이네요.
저는 일단 김하나 작가 책을 먼저 읽어야겠어요^^

햇살과함께 2025-11-29 09:42   좋아요 0 | URL
이 책도 좋고 고전 다시 읽기도 좋고요~

독서괭 2025-11-29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한동안 김하나작가 팟캐스트 열심히 들으며 좋았었는데, 이 책은 나온 건 알지만 못 읽었어요. 책 좋은가 봅니다. 책 읽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

햇살과함께 2025-11-29 10:37   좋아요 1 | URL
책읽아웃 끝나고 요즘 달릴 때 여둘톡 정주행 중이라. 이 책 출간할 때 방송 듣다가 바로 샀어요. 역시 김하나 작가는 책팔이 장인 ㅎㅎ
 

현대의 어떤 실감 나는 VR 매체도 책만큼 우리를 개입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책은 보여 주면서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보여 주지 않음으로써 보여 주기 때문이다. 독자는 글이라는 뼈대에 자신의 상상으로 살을 붙이는데 그 상상은 독자만의 것이고 어찌 보면 그것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돌연변이와도 같다. 그렇다고 해서 독서가절대적으로 개인적이고 고유하기만 한 경험이라는 말은 아니다. 모든 독자의 정신 속에는 또한 같은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와 두뇌의 공조가 신비한 추진력을 발생시키고, 이 추진력이 어느 정도 강해지면 우리의 정신은 작품을 둘러싼 궤도에 진입하게 된다. 작품이 그 인력과 척력을 조화롭게 운용하면서 이야기를 길게 끌고 나가면 우리는 그만큼 궤도를 많이 돌게 되는 셈인데 거기서 긴 글만이주는 독특한 힘이 생겨난다. 『회상록』을 다 읽으면 다른 시간, 다른 나라에서 여러 해 머무르다 온 듯한 느낌이 드는것은 그래서일 것이다. 40페이지를 읽어 냈다면, 여러 날을들여 계속 읽을 것. 장담하건대 이 책을 다 읽어 내면 당신의 독서력은 비약적으로 증진한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경험과도 비슷할 것이다. - P161

우리는 앞서 하드리아누스가 배역을 수행하는 배우이자 나라는 극장의 연출가처럼 스스로를 묘사하는 것을 보았다. 셰익스피어에게도 이 개념은 아주 중요하다.
『좋으실 대로』의 우울한 환경주의자라 할 제이퀴즈(자크)는 이렇게 말한다.

온 세상이 무대이지,
모든 남자 여자는 배우일 뿐이고.
그들에겐 각자의 등장과 퇴장이 있으며
한 사람은 일생 동안 많은 역을 하는데
나이 따라 칠 막을 연기하네.

온 세상은 무대이고 인생이란 등장인물이 분장을 하고 배역을 맡아 연기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의극에는 유독 변장이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는지도 모른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희곡과 소네트이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들은 소설이 아니라 모두 희곡이다. 그는 배우이자 작가이자 극장주였으니 쉰네 살에 생을 마감하기까지연극과 무대는 그의 삶에서 가장 거대한 은유가 될 법하다. - P220

『회상록』에서 인생을 연극에 빗대었던 문장들이 『맥베스』를 읽을 때 생각나듯, 『회상록』의 잠과 죽음의 유사성에 대한 문장들이 『맥베스』를 읽으며 되살아난다. 연이어책을 읽을 때 생겨나는 이런 감각은 독서만의 미묘하고 독특한 즐거움의 한 요소이므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보겠다. 앞서 읽은 텍스트는 후에 읽는 텍스트에 겹쳐지고, 마치지금 눈이 따라 흐르는 문장의 물결 아래로 시간이 지나 조금은 더 흐릿하게 일렁이는 심층의 문장들이 함께 흐르는것과도 같다. 또는 예전에 읽었던 문장들이 잘게 조각나 마치 모자이크처럼 어떤 단어는 더 또렷하게, 어떤 표현은 더 - P246

아스라하게 기억 속에 뿌려져 있는 듯하다. 새로운 문장을읽으며 비슷한 모티브가 환기되면 이전의 문장들이 가라앉아 있던 기억의 물속은 한번 헤집어진다.
독서가 쌓이면 이런 현상들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수많은 문장들이 팔림세스트처럼 겹쳐 쓰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책 수다를 떨기 시작하면 끝이 안 나는 이유다. 책을 두고 나누는 대화는 마치 서로의 안에 든 스노우글로브를 살짝살짝 건드리는 것처럼, 가라앉았던 단어와 문장을 헤집어 다시 천천히 반짝이며 허공으로 떠오르게 하고, 그렇게 다시 끄집어낸 말들이 이번에는 상대의 또 다른 기억의 바닥을 긁어서 일렁이게 한다. 책 수다가 아니라 혼자책을 읽을 때에도 독자는 자신의 내면에 새롭게 흘러든 언어와 이미 들어와 있던 언어가 뒤섞이는 작용을 겪는다. ‘샘물이 합류하는 것이다. 그것은 소리 없이 흐르는 저자와 독자의 대화이고, 그렇게 내면의 언어적 샘물은 다시 흐른다. 독서가 다른 독서를 불러오고, 그 흐름이 풍부하고 빈번할때면 독자의 내면은 스노우글로브의 반짝이는 눈이 내내 일렁이는 듯이 움직이며 고이지 않고 흐를 것이다. 독서가가자연스럽게 다음 책을 찾게 되는 것은 다름 아닌 이 움직임과 반짝임이 아름답고 기분 좋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 P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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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에서 아우라와 환락의 집을 꺼냈다.

순수의 시대

『순수의 시대』에서 주의 깊게 읽어야 할 부분이 바로 엘렌 올렌스카의 작은 집에 대한 묘사다. 벽난로 장식 위에 놓인 작고 섬세한 그리스 청동상, 낡은 액자에 넣은 이탈리아풍 그림 두 점과 그 위에 못으로 박아 드리운 붉은색 다마스크 천, 자크미노 장미가 두 송이 꽂힌 날씬한 꽃병, 멀리떨어진 곳에서 풍겨오는 듯한 터키산 커피와 용연향과 말린 장미가 어우러진 향....... 이제 여러분은 붉은색 다마스크 천의 문양과 그것이 어떤 붉은색인지에 대해 상상해 보기 바란다. 자크미노(jacqueminot) 장미를 검색해 보고 가드닝과 꽃에도 박학했던 이디스 워튼이 왜 엘렌의 집에 다른 장미가 아닌 그 장미를 두 송이 꽂았을까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용연향(ambergris)은 어떤 향인지 알아보고, 그것과 터키산 커피와 말린 장미의 향이 어우러지면 어떤 느낌이 들지도 그려 보기 바란다.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상상 - P107

해 보는 동안 우리는 웨스트 23번지의 작은 집에 들어가 그집 주인의 ‘아우라를 숨 쉬게 된다. - P108

자기가 사슴이 된 줄 모르는 악타이온은 두려워 달아나면서도 자신이 그처럼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데 놀랐다가,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괴성을 지른다. 사슴이 된 악타이온은 제 손으로 기른 충직한 사냥개들에게 쫓기다가 물어뜯긴다. 사냥 친구들은 고함을 지르며 개들을 부추기면서 악타이온이 이 사냥 구경을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디아나 여신은 악타이온을 직접 처단하지 않고 그의 가장 가까운 존재들이 그를 갈가리 물어뜯어 죽여 버리도록만든 것이다. 메이 웰랜드는 확실히 디아나 여신 같은 면모가 있다. 놀라운 타이밍과 치밀함으로 그녀는 뉴욕의 관습과 사람들의 시선, 평판을 절묘하게 이용해 원하는 것을 쟁취해 낸다. ‘우아하고 순수한 모습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뉴랜드는 그녀가 숨을 다하는 날까지도 메이가 그의 머리 위에 있다는 것을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다. 『순수의 시대』는 엘렌과 뉴랜드의 사랑 이야기를 베일처럼 덮고 있지만 또한 노란 장미와 은방울꽃의 대결이기도 하다. 이디스워튼은 놀라운 솜씨로 이 두 가지를 완벽히 균형 잡히게 직조해 낸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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