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 없는 마음 - 양장
김지우 지음 / 푸른숲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정하는 유튜버 구르님의 책. 장애가 있는 몸도 스스로를 돌보며 살 수 있는, 어떤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다는 것에 의심 없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환경, 우리는 그런 환경에 언제쯤 도달할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애 학생의 참여 방식을 함께 고민하기보다 눈꼬리를 한껏 내리고 염려하는 얼굴로 "네가 갈 수 있겠니?" 묻는 학교에서 늘 가슴을 펴고 당당히 자신의 참여를 주장하기는 어렵다. 어떨 때는 이 거부가 거친 말이나 명백한 배제보다 더 무섭다. 불명확한 형태로 공기처럼 존재하는이 차별은 때때로 거부하는 사람과 거부당하는 사람 모두 - P130

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다. 그것이 반복되면 거부와 배제는 스펀지에 스며드는 물처럼 장애 학생을 적셔서, 그의 몸과 마음은 둔하고 무거워진다. - P130

나는 그곳에서 의심하지 않는 마음을 발견했다. 누구도내 참여를 의심하지 않는 순간, 나는 파도 위에 엎드려보기로 결심했다. 유일하게 나를 믿지 못했던 나조차 "한번 시도해 볼게요!‘ll try it" 라고 말할 수 있었던 분위기가 나를 파도 위에서 활주하게 했다. 아주 오랜만에 내 허리를붙들던 현미와 태균의 손이 떠올랐다. 그 둘이 내 뒤에 몸을 꾸역꾸역 숨기면서까지 내게 알려 주려고 했던 것들이무엇이었는지 이제 알겠다. 장애인의 참여를 의심하지 않는 마음. 나의 몸과 욕구를 믿는 마음.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이 내게 손을 내밀 것이라는 마음.
두 사람이 손을 모아 내 허리를 받치며 알려 주어야했던 마음들을 호주 토르케이 해변에서 다시 만났다. 이제는 그들이 몸을 웅크리고 내 뒤에 서 있지 않아도 괜찮았다. 파도가 세차게 밀려가듯이, 마음속에서 새 지평이넓어지고 있었다. - P135

부끄럽지만 빨래 모으기부터 세탁한 뒤 개어 정리하는 일까지 모두 혼자 한 것은 이번 호주 생활이 처음이었다. 혼자 호주에 가기로 결정한 이후 가장 먼저 든 걱정은빨래는 어떻게 하지?‘였다. 휠체어를 타고 여행하겠다고 - P137

하면 비행기, 이동 수단, 장애차별 같은 거대한 걱정을 건네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게는 샤워, 빨래, 요리, 캐되어 끌기 같은 사소한 일상이 걱정이었다. 내가 나를 잘돌볼 수 있을지가 가장 무서웠다. - P138

장애를 가지고 살면 얼마간 모두가 도움요청 아티스트가 된다. 내가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 자체가 수치스럽던 시기도 있었다. 모든 것을 내가 해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그러지 못했으므로 그때마다 실패자가되었다. 대뜸 도움을 준다고 다가오는 사람들이 불편하기도했다.
이제는 안다. ‘도움 요청 예술‘이 매끄럽고 우아하게공연될 때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우리 둘 다 무대에 올랐음을 알고 있지만 옳은 타이밍을 살필 때의 분위기를. 그공연의 또 다른 연기자에게 첫 대사를 던지고 그에 화답하는 대사를 받을 때 얼마나 기쁜지를 여전히 대사의 호흡이 맞지 않으면 민망하기도 하고, 내가 준비되지 않았는 - P182

데 즉흥 연기를 시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당황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의 예술이 매끄럽게 흘러가면 나는 공연을 무결하게 끝낸 배우라도 된 듯 안도와 기쁨을 느낀다. 무대 위 단둘뿐인 배우인 우리는 이 단막극을 오래 기억할것이다. - P18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는 나와 우는 우는

프로그램은 열흘간 제네바에서의 숙박과 식사만을책임져 주었다. 항공편은 스스로 마련해야 했으므로, 나흘 먼저 파리로 날아가 프로그램 시작일에 기차를 타고 스위스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것도 아쉬워서 이후에는 독일도가 보기로 계획을 세웠다. 혼자서 국내 여행도 해본적없으면서 그냥 그렇게 되었다. 장애를 가지고 살아오며얻은 한 가지 문장이 있다면, 어떻게든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미리 안 될 이유를 생각하자면 끝도 없이 나쁜 상황이떠오른다. 아무튼 못 하는 것이 많았기 때문에 하고 싶은것이 있다면 더 많이 시도해야 했다. 그러면 그중 절반은어떻게든 할 수 있었다. - P23

올해로 19호를 맞은 <디스에이블>에서 장애-비장애 연인의 이야기를 다룬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디스에이블> 4호에 실린 ‘빈‘의 ‘동이를 부탁해‘가 그예이다. ‘빈‘의 장애인 애인, ‘우‘의 휠체어인 ‘동이‘의 시점으로 쓰인 이 글은 일본 여행에서 휠체어 충전기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겪어야 했던 험난한 과정을 이야기한다. 그글 중 몇 개의 문장을 읽으며 나는 불에 덴 것처럼 화들짝놀라곤 했다. - P43

하지만 동시에 안심했다. 그가 ‘나는 그런 돌봄을 눈치채지 못했어‘라든가 ‘너를 돕는 일쯤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고 말하지 않아서. 그가 일반적이고 과중하다는 감각을 신경쓰고 있다고 이야기해서 좋았다. 왜냐하면, 돌봄은 정말로 우리 관계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이의 돌봄은 때때로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먼 타지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도 하지만 또 그만큼 엉뚱하고 즐거운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나는 그가 내 옷을 입혀 줄 때, 옷 가게의 점원 행색을 하며 "손님 이거 걸쳐 보세요~"라고 호들갑을 떠는 모습이 좋다. 게으름을 피우며 침대에 널브러져 있을 때 그가 나를 번쩍 안아 화장실에 가져다 두는 것도 좋다. 정말로 존재하는 것을 없는 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을 뺀 우리는 우리가 아닐 테니까. 그런 마음이 들수록 똑바로 눈을 뜨고 마주해야 했다. ‘빈‘이 기어코 모든 것을 내던지고 떠나고 싶었다는 마음을 글로 똑똑히 남긴 것처럼. - P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경상의 말들 - 만다꼬 그래 쌔빠지게 해쌌노 문장 시리즈
권영란.조경국 지음 / 유유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말 맛! 살아있네! 경상도라도 지역마다 사투리가 조금씩 달라 경남 사투리 중에는 처음 들어보는 단어도 많다. 어릴 적 할머니의 말이 생각나는 책이다.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하고 읽고 말하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언젠가 새롭던 봄날은 펼치기도 전에 제목에 이미 마음을뺏긴 책이다. 새롭다, 새칩다는 경상도에서 흔히 쓰는 입말이다. 쌀쌀맞으면서 얌전하다는 뜻의 ‘새초롬하다‘와 헷갈리기 쉬운데 ‘새롭다‘는 작고 예쁜 상태를 말한다. 논밭에 뿌린 씨앗들이 움틀때 농부는 "이리 새칩은 기 참말 장하다"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것들에는 새촙은 시절이 있다. 우리에게도. - P147

마구 소리를 지르며 울었나 보다. 잠에서 깨니 목이 잠기고 눈물이 채 마르지 않았다. 어떤 꿈을 꾸었던 걸까. 아무리 애를 써도떠오르지는 않는다. 뭔가 가슴을 짓누른다. 가끔 내 잠에는 누군가가 댕겨간다. 나는 댕겨가는 누군가를 만나지 못한다. 그런날이면 자면서도 엉엉 울었다. 기다림이 허망하고 서러워서 제풀에 우는 것이다. ‘댕겨가는(다녀가는)‘ 건 늘 이런 것이다. 차마 잡을 수 없이 바라만 보거나 몰래 왔다가 가버린다. 댕겨오다, 댕겨왔다가 아니다. 댕겨오는 건 원점으로의 회귀이고 누군가의기다림이 가서 닿은 말이다.
그래서일까. 소설가 김연수는 자신도 가끔 김기림의 시「길」을 흉내 내 "그 강가에는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나의나이와 함께 여러 번 댕겨갔다"라고 혼자 노래 부를 때가 있다며 "댕겨가는 것들의 절망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이제 영영 다시만날 수 없다"라고 했다. 나는 김기림의 시구절보다 김연수가 풀어놓은 "댕겨가는 것들의 절망"에 꽂히고 말았다. 아니 사실은댕겨가는 것들의 절망은 헤아려지지 않았다. 다만 수없이 댕겨가고 이제 영영 다시 만날 수 없는 댕겨간 것들의 흔적을 바라만보는, 남은 자의 지독한 열망에 내내 마음이 저렸다.
시인 허수경은 그래서 잊혀진 상처의 늙은 자리는 환하다고읊조렸을까. 「공터의 사랑」에서 허 시인은 "썩었는가 사랑아/ 사랑은 나를 버리고 그대에게로 간다"라며 애달픈 마음을 노래했다. 어딘지 모를 길 한가운데서 버려지기보다는 때로는 ‘댕겨오는 것들‘을 다정하게 혹은 격렬하게 맞이하고 싶다.
……그래요, 당신. 댕겨와요, 꼭요. - P1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