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책이 좋아서 - 책을 지나치게 사랑해 직업으로 삼은 자들의 문득 마음이 반짝하는 이야기
김동신.신연선.정세랑 지음 / 북노마드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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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 책이 좋아 책과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은 세 작가의 다정하면서도 예상보다 더 비판적 사랑이 담겨, 그 세상을 오래오래 유지하고픈 절절한 맘이 느껴진다. 북디자이너인 김동신 작가의 다양한 시도가 들어간 책의 만듦새도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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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24-04-14 14: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전히 꾸준하신 햇살과함께 님!! 저 냥이는 댁에서 데리고 있는 냥이인가요?? 아님 저번처럼 길거리에서 만나? 목에 하얀 털이 꼭 목걸이를 한 것 같아요. 눈도 동그래가지고. 암튼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하시는군요!!! 늘 햇살처럼 한결같이 따뜻하고 자상하신 분.^^

햇살과함께 2024-04-14 16:49   좋아요 0 | URL
절에서 만난 고양이에요 ㅎㅎ
 

정세랑

언제나 생산자 쪽이 움직여야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을 거라고 여겨왔는데, 생산자들은 대개 치열한 경쟁 상황에 있어 원래 하던 방식을 내려놓는 데 거부감이 큰것 같다. 소비자의 선택이 모이면 더 큰 영향력이 있을수 있겠다는 생각을 위의 경험으로 하게 되었다. ‘사은품 선택하지 않음‘에 함께 체크하고, 이미 소장한 책의리커버는 눈으로만 즐기고 패스하는 분들이 늘고 있어반갑다. 독서가와 장서가가 갈리는 지점이 분명하다. 좋아하는 책의 모든 판본을 모으는 장서가 분들께는 요새의 흐름이 죄송스러울 뿐이다. - P24

여행 겸 강연을 위해 방문한 곳이었던 구미의 책방 ‘책봄‘이 특별히 기억에 남아 있다. 그날따라 독자 분들과의 대화가 유난히 물 흐르듯이 편안했고, 마지막으로 가져오신 책들에 서명을 하는 동안 보통은 자신의 책에 사인을 받으면 자리를 뜨시기 마련인 독자 분들이 모두 남아 계셨다. 왜 남아 계시나, 뒤에 다른 행사가 있나싶었는데 내가 떠날 때 다 같이 환송해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런 환송을 받아본 적은 처음이었다. 사실 화장실에 들르고 싶었지만 극히 다정한 환송이라 감격하여 그대로 나왔다. 독립 출판물도 출판하시고, 친환경 마켓도여시고, 장기적인 테마의 독서 모임도 꾸리시고 여러모로 탁월한 공간이라 서점이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덕분에 명확히 인식하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갔 - P60

던 대구의 ‘책방 이층‘에서의 기억도 뜻깊은데, 대화의흐름이 좋았던 공간은 오래 마음에 남는 듯하다. 가을저녁에 들렀던 청주의 ‘휘게 문고‘도 환하게 머릿속에남아 있고, 풍성한 시집 코너가 최고인 경주의 ‘어서어서‘도 인상 깊었다. 속초의 문우당서림과 동아서점도 여러 번 다시 가고 싶은 곳이다. 속초에 관한 책들을 속초의 서점에서 만나는 경험은 완전히 달랐다. 수원의 ‘탐조책방‘은 탐조인이라면 꼭 한번 가보실 만한다. 방문한서점마다 핀을 꽂아 전국 지도를 가득 채우고 싶어진다. - P61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때 마침 《인문360>의 <이달의 인문 쟁점 - 질문과 답변> 코너의 질문 쪽을 쓰게되어, 나오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책들에 대해 질문해보았다. 답은 표정훈 선생님이 해주셨는데 헌법 관련 조항에서부터 국내외의 사례를 망라하며 함께 고민해주셨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시면 좋을 글이다. 결론은 "시민들의 건전한 판단력"과 "문화 자정 능력"을신뢰하며 "안전한 통제"보다는 "위험한 자유"를 택하자는 것이어서 알고 있었던 답이었지만 신중한 문장들을읽으며 마음은 다소 편안해졌다.
시민사회가 지금보다 성숙한다면, 끔찍한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앞으로도 범죄에 닿은 책들이 나오기야 하겠지만 시민들의 외면을 철저히 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미래를 상상하면서 삼키기 어려운 괴로움을 소화해내고 싶다. - P78

김동신

우리에게 익숙한 책의 형태, 종이 여러 장을 겹쳐서 한쪽 변을 묶고 표지로 감싸는 코덱스(Codex) 형식은 역사상책이 취했던 여러 형태 가운데 한 가지이지만 다른 경쟁자들을 제치고 지금까지 살아남아 책의 대명사가 되었다. 오랜 세월 사람 가까이에 자리했기 때문일까. 책의 세부를 일컫는 명칭을 살펴보면 신체 부위를 뜻하는 말에서 가져온것이 많다. 책머리, 머리띠, 책배, 책발………… 앞표지는 자주 ‘책의 얼굴‘로 비유되며, 표지 종이를 판형 폭보다 길게 내어 안쪽으로 접어 넣은 부분은 ‘날개‘라고 부른다. 디자인 저술가 엘런 럽튼(Ellen Lupton)은 「책의 몸」이라는 글에서 책과 타이포그래피 관련 용어에 몸과 관련된 것이 많은 것은 글쓰기가 신체의 확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눈이 볼 수 없는 영역을 카메라를 통해 보고 발로 갈 수 없는 거 - P110

리를 자동차로 쉽게 도달하듯이 글은 생각을 그 소유자로부터 시간적·공간적으로 분리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해준다. 글이 생각의 몸이라면 책은 글의 몸이다.
신체와 관련된 책의 세부 명칭 가운데 가장 절묘하다고생각하는 것은 책등이다. 등에는 인체를 지탱하는 기둥인 척추가 있기 때문이다. 코덱스의 구조적 정수가 종이를 엮었다는 점인 만큼 엮인 부분들이 모여 만들어진 면을 등이라고 일컫는 것이 퍽 적절하게 들린다. 영어권에서는 직접적으로 spine이라고 부르는데, 실제로 노출 바인딩으로 제작한 책에서 표지를 입히지 않은 책등을 보면 종이 묶음을실로 엮은 모습이 뼈마디와 닮아 보이기도 한다. - P111

로고를 미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통제할 수 없는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인의 실행은 내가 만든 형태, 내가 고른 색깔, 내가 선택한 글자가 내가 세운 질서에 따라비어 있던 지면을 채우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하나의 이미지를 있도록 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이 순간 느껴지는 감정가운데 모종의 전능감이 없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로고는 디자이너의 개입 이전에 이 책에 태생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다. 내가 만들지도 선택하지도 않은 이 조그만 아이콘은 디자이너의 얄팍한 뿌듯함에 쉽게 균열을 냈다. 로고가 표지 안으로 들어오면 요소들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이 맥없이 풀리면서 아까까지는 썩 괜찮았던 표지가순식간에 진부하게 바뀌어버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넣지 않을 수는 없었다. 자본이 자신에 기반하여 만들어진사물에 지울 수 없는 인을 찍어 넣는 것이 로고의 본질이니까. 이 위력에 반항해보겠다며 이런저런 시도를 했던 몇 년이 있었다. - P119

책이라는 사물의 차원에서는 작가와 출판 노동자의 관계에서 비슷한 구도가 반복된다. 물론 최근 여성 작가의약진이 눈부시긴 하지만 여전히 저명한 저자의 다수는 남성이고 그와 소통하며 책을 만드는 편집자 역할은 여성이맡는 경우가 많다. 편집자들은 종종 원고 내용이나 제작에관한 업무적 소통을 넘어 저자가 글쓰기를 잘할 수 있도록심리적·생활적 돌봄에 가까운 일까지 떠맡기도 한다. 드물지만 편집자가 작가가 써낸 글을 책이 될 만한 수준으로 만들기 위해 거의 새로 쓰는 것에 가까운 작업을 하는 경우도있다(물론 이런 경우에도 책은 저자의 이름으로 나온다). 백번 양보해서 창작이라는 정신적 노동의 특성 때문에 공과 사의 영역을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고정된 성역할에서 비롯한 압력, 즉 ‘천사‘의 속삭임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 P143

디자이너가 늘 수동적인 약자 혹은 피해자라고 보는 것도 타당하지 않을 것이다. 어제까지의 관계가 내일은 달라질 가능성이 완전히 닫혀 있는 것만은 아니고, 때로는구조에 기꺼이 순응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사실진정한 천사는 후자에 가깝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그렇게해야 내 마음이 편하다는 내면의 소리. 눈에 띄지 않기를원하는 마음. 큰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할 때 느껴지는 수치심과 죄책감. 이것의 어디까지가 타고난 성격이고 어디부터가 권력이 내재화된 결과일까.
버지니아 울프는 그래서 천사와의 싸움에서 어떻게 했을까. 목을 졸랐다고 한다. 끊임없이 속삭이는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그 목을. 아마 그래봐야 천사는 다음날 또 살아날 테지만 그때는 다시 목을 조르고, 또 썼을 것이다. - P148

신연선

책의 민망하리만치 소소한 판매부수를 보면 알 수 있다. 언젠가 책에 별달리 관심 없는 친구에게 "책이 한 권 나오면 몇 권이나 팔릴 것 같은지" 물은 적이 있다("참고로 인구가 5천만이라는 점을 기억해봐......"). 친구는 잠시 고민한 뒤 답했다. "한...... 10만 권?" 약간 서러워지는 얘기였다. 그러니 출판계에 있는 친구들과 "이거 어차피 다만든 사람이 사고, 쓴 사람이 사고, 산 사람이 만들고, 쓰는 거 아니냐고!"라면서 자주 눈물 섞인 웃음을 짓는 것이다. - P185

"우리는 필요 이상으로 친절을 베풀어야만 합니다. 특별히 이 말, 이 개념을 좋아하는 까닭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지니고 살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 주기 때문입니다. 여유가 있어서 친절을 베푸는 게 아니라, 친절을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RJ 팔라시오 <아름다운 아이>

일터에서 친절은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분명한업무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내가 일터에서 여러번 자리를 바꾸어가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도 변함없이 반갑게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은, 그들과 불필요한 불안감이나 긴장감, 쓸데없는 에너지 소모 없이 수평적으로 일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내가 나의 긍지를 위해 삼았던 친절과 다정의 태도 덕분이라고 믿는다.
나는 동료들과 친절로 호감을 나누었고, 그 호감은을 잘 해내고 싶다는 마음, 즉 책임감으로 돌아와 사회생활의 양분이 되었다. 실제로 그렇게 일할 때 일의 결과도 좋았다. - P190

집집마다 김치 맛이 다르듯 책마다 의미가 다르다는 것도 중요하다. 같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해도 어떤 삶의 맥락을 가진 사람이 그 이야기를 하느냐에 따라 전혀달리 읽힌다.
이에 관해 생각할 때 나는 오드리 로드의 "새로운 아이디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을 느끼는 새로운 방식이 있을 뿐"이라는 문장을 떠올린다. 이 말은 얼마나 진실인지. 예를 들어 「나의 가련한 지배자」 「작별 일기」「엄마는 행복하지 않다고 했다』는 모두 딸이 엄마를 써내려간 책이지만, ‘딸이 엄마를 써내려간‘이라는 수식어를 빼면 도무지 하나로 묶이지 않는, 제각각의 의미가 아주 남다른 책들이다.

오드리로드, 「시스터 아웃사이더 (후마니타스, 2018), 44쪽 - P220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나는 ‘자기효능감‘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일을 할 능력이 있다고 믿는 마음. 타인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다는 확신.
이때 자기효능감은 많은 사람의 관심이 집중되는 유명하고 커다란 프로젝트를 해야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닌것 같다. 아무리 하찮게 느껴지는 일도 그 일이 필요한 맥락을 충분히 이해하고 수행한 뒤 끝내 완수하고 나면 차곡차곡 쌓이는 것이 자기효능감이다. - P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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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의 발명 - 은근하고 다정한 마음의 방문 쓰는 존재 6
김병수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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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흔한 일상의 풍경, 사물, 단어, 존재, 관계에서 ‘의미’를 ‘발명’해가는 다정하고 섬세한 시선과 마음이 가득 담긴 책이다. 세상에 거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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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생각했다. 세상 흔한 것들이 나를 돌보고 있다. 항상곁에 있어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는 것들. 이를테면 나무와풀과바람, 흙과 물과 공기, 바위 같은 것. 흔한 것이 흔한 이유는 오히려 꼭 필요해서 흔해지지 않으면 큰일이니까 흔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우리가 무시하는 흔한 것들 덕에 무사히 살 수 있다는 사실을. - P49

왜 여유에는 ‘찾는다‘는 말을 붙일까? 술래가 "여기 있네!"하고 찾아내면 머쓱하게 튀어나오는 숨바꼭질처럼, 여유는 여기저기 들추어 찾아내는 능동적 감정이라서 그런 걸까? 시간이 아무리 많거나 넓은 공간에 혼자 있어도 여유는 그냥 생기지 않는다. 백조의 여유로운 모습을 물아래 수많은 발길질이 만들어내듯, 여유는 거만하게 ‘부리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찾는‘ 것이다. - P53

수월하지 않은 상황은 언제든 나타난다. 그럴 때 중요한 것은 대처하기 위한 힘을 바깥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불씨는 항상 내부에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그 불씨가 불꽃이 되도록 모으는 것이다. 힘은 항상 내면에서 출발하며 모여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얼음과 펭귄에게서 배운다. - P67

손톱, 발톱, 그리고 머리카락 같은 털. 매번 적절히 깎아줘야 하는 것들이라서 그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게 된다. 거울을 보거나 키보드를 누르다가 또는 양말을 신다가 문득 벌써 깎아야 할 시간이 되었네, 한다. 남성 듀오 ‘어떤 날‘의 노래 <출발>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하루하루 엇비슷하게 살아가다가 은근히 자라난 손톱을 보니 뭔가 달라져 가고 있음을느끼게 된다고. 자라는 손톱을 보며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아닌 듯싶다. - P74

소통 관련 강연 전문가 김창옥 씨의 강연 영상을 보았다. 무뚝뚝한 아버지와의 소통을 이야기했는데, 그동안 하지 않던 배웅을 하겠다고 공항에 나온 아버지에 대한 어색함, 그리고 그때 새롭게 보인 아버지의 뒷모습에 대해 말하며 그는 덧붙였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사랑이 시작된거라고. 아이들의 뒷모습이 보이면 엄마가 된 것이고, 학생들의 뒷모습이 보이면 선생님이 된 것이고, 남편과 아내의 뒷모습이 보이면 부부가 된 것이라고 했다. - P83

국어시험에 곧잘 나오는 문제가 있었다. ‘~로서‘와 ‘~로써‘의 구별 문제. ‘~로서‘는 자격을, ‘~로써‘는 수단을 나타내는말이라서 ‘판사로서 재판하고 판결로써 결론을 낸다‘와 같이써야 맞다. 그런데 ‘부모로서‘라는 말이라면 느낌이 좀 다르다. 자격이라기보다는 의무에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 P138

아침에 일어나서 시작하는 하루는 어제의 내가 패스한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몽사몽 패스받은 시간을 몰고 나가 이리저리 뛰다 보면, 어느덧 내일의 나에게 시간을 패스해야 할 밤이 찾아온다. 시간을 잘 패스해 보내는 것이밤에 할 일이라면, 엉뚱한 곳에 질러놓았을 때 내일의 내가 고생하겠다. 그렇게 자주 후회하고 가끔 기대하며 밤과 아침 사이 패스가 연속되는 삶을 살아간다. - P141

내 생활이 밝을 때는 다른 이의 어둠이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밝음에 익은 눈에는 어둠은 그냥 컴컴하게만 보인다. 어둠 - P162

속에 있는 많은 사물은 같이 어둠 속에 몸을 담가야 비로소제 모습을 드러낸다. 어두운 길에 천천히 적응하며 한참 걷고 나면 알게 된다. 어둠은 솔직함과 통한다는 것을, 어둠 속에서는 시각 외에 다른 모든 감각이 더 예민해지며, 사람의 마음도 마찬가지로 어둠 속에서 더 열린다는 것을. - P163

살면서 맺는 관계도 가만히 보면 숨은 그림이나 다른 그림을 찾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처음엔 눈에 잘 띄지않지만 계속 들여다보면 문득 드러나는 숨은 그림처럼, 어떤이와 오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발견하게 되는 그림이 있다. 이런 성격이 있었는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지 미처 몰랐던. 잘 살피지 않으면 발견할 수 없었을, 당신에게 숨은 여러 모습의 그림들. 나는 그것들을 얼마나 찾아냈을까, 또 아직 남은 그림들은 얼마나 될까? 어쩌면 나는 내 안에 감춰진 숨은그림조차 못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내가 그리고 있는 그림은, 옛날에 생각했던 그림과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는 일 역시 나 자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 P176

대학 때 받은 교양 미술 수업 생각이 났다. 담당 강사가 두장의 슬라이드 그림을 보여주었다. 먼저 르누아르의 <무도회>그림. "매일 같이 열리는 이런 무도회. 옷이 참 화려하죠? 혹시 이런 옷들은 매일 누가 세탁하는지 생각해 봤나요?" 그다음 슬라이드, 도미에의 <세탁부>가 나타났다. 강가에서 빨래를 마친 후 아이의 손을 잡고 돌아가는 어머니의 고단한 모습이 무채색으로 투박하게 그려져 있었다. 무도회의 화려한옷은 아마 저 커다란 빨래 꾸러미 안에 있겠다. 동시대의 두화가는 색채만큼이나 서로 다른 세상을 보고 있었다.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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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도쿄
임진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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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 도쿄 생활자인 작가와 함께 골목길을 따라 킷사텐과 노포식당을, 서점과 문구점을, 미술관과 공원을 산책하는 소소하고 다정한 여행이 귀여운 그림과 함께 한다. 그런 발길 닿는 여행이, 원하는 곳에 맘껏 머무는 여행이 좋다. 여행 에세이를 좋아하지 않아 살짝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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