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와 역사의 정치 딕테 시리즈 3
조앤 스콧 지음, 정지영 외 옮김 / 후마니타스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논문 모음집이라 역시 어렵다. 특히, 최다 인용 횟수를 기록 중이라는 2장 젠더는 너무나 어렵다. 4부 평등과 차이가 가장 좋았다. 그나마 알쏭달송한 와중에도 물음표를 던지면서도 이해가능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장이었다.


평등과 차이를 대립적으로 보는 프레임을 벗어나고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것. 우리가 당연시하는 범주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특정 역사적 맥락에서 살피는 것. 이분법적 구조를 거부하고 의문을 던지는 것.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이러저러한 독서에 집중하지 못한 핑계들만 가득한 요즘. 그나저나 산불이 빨리 잡혀야 할 텐데 걱정이다.



평등과 차이가 이분법적으로 대립할 경우 선택은 불가능해진다. 평등을 선택하면, 차이가 그것에 대립된다는 관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차이를 선택하면, 평등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바로 이 장의 시작 부분에 인용된 루스 밀크맨이 말한 딜레마다. 페미니스트들은 "차이"를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차이"는 우리가 고안해 낸 가장 창의적인 분석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민주적인 정치 체계의 원칙과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한은 말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기존 범주들 안에서만 주장을 펼치도록 제한한다거나, 페미니즘의 정치적 논쟁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 이분법으로 특징짓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차의 개념을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면서도 평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이중적이다. , 평등을 차이의 대립항으로 제시함으로써 구축된 권력관계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적 선택의 이분법적 구조를 거부하는 것이다.
평등론 대 차이론은 페미니즘 정치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런 대립은 두 용어 사이의 관계를 잘못 재현하고 있다. 평등이란, 권리의 정치이론- 배제된 집단들이 정의를 요구하는 근거의 맥락에서 보면 특정목적을 위해 혹은 특정 맥락에서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99


내가 보기에 평등과 차이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사고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대개의 경우 당연시하는 범주들 - 역사, 여성, 남성, 평등, 차이와 같은 정치 이론의 용어들 그 자체 -을 비판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이 용어들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할 것이 아니라 그것들이 발생하고 사용된 특정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하며, 문화적·정치적·시간적 산물로서 이 용어들을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일한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것이 보편적 주체에 대한 허구이며 그 보편성은 암묵적 차별, 주변화, 배제의 과정을 통해 획득되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성을 역사에 포함할 수 없다. 바꿔 말하자면, 남성man은 한 번도 진정으로 보편적 형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남성의 보편타당성을 확립한 것은 차이화를 통해 이루어진 배제의 과정들이었다. 이전과 다른, 더 비판적인 역사학을 위해서는 우선 남성의 보편타당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과정의 한 측면은 "남성과 대립되는 특징, 특성, 역할을 부과함으로써 "여성"을 정의해 온 것과 연관돼 있다. 수많은 여성사에서 역사가들이 기록해 온 그 차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이지 여성의 성에 내재하는 어떤 본질적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성의 경험" 또는 "여성 문화"는 오로지 남성적 보편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회적 삶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개념들이다. 차이화 과정의 다른 한 측면은 평등과 차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것과 연관된다. 평등이 절대적으로 실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등은 특정 차이에 대한 배제가 특정 맥락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유예된 것이라고 보는 게 차라리 맞다. 역사적으로 시기에 따라 어떤 차이는 다른 차이보다 더 문제가 되었다. – P338~339



댓글(8)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5-03-26 16: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독서를 가로막는 핑계들이 요즘은 너무 현실적이죠 ㅠㅠㅠㅠ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는 아직 좀 많이 남아있사옵니다!

햇살과함께 2025-03-26 17:14   좋아요 0 | URL
산불까지 말이에요. ㅠㅠ
뒷 부분이 앞 부분보단 읽기 수월했습니다~ 화이팅!

다락방 2025-03-26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도 진도가 너무 안나갑니다. 읽느라 수고하셨어요.

햇살과함께 2025-03-26 17:15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진도 안 나가서 3주 이상 붙잡고 있었네요.
뒷 부분은 좀 빨리 읽으실 수 있을 겁니다!!

독서괭 2025-03-26 17: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 축하드립니다!! 저도 오늘 4부 들어갔는데 그나마 잘 읽히더라고요 ㅎㅎ

햇살과함께 2025-03-26 17:16   좋아요 1 | URL
감사해요! 괭님도 많이 읽으셨네요. 저도 4부가 그나마 ㅎㅎ

건수하 2025-03-26 2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이제 2부 들어갑니다…. 😅

햇살과함께 2025-03-27 09:05   좋아요 0 | URL
1부가 제일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화이팅!
 

평등과 차이

4부 8장

밀크맨이 조심스럽게 정식화한 내용은 평등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향임을 함축하지만, 그녀는 또한 차이를 전적으로 거부하고싶어 하지는 않는다. 그녀는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할 필요를 느끼지만, 그것이 어느 쪽인지가 문제다. 밀크맨의 양가적 태도는 법이론가인 마사미노우가 다른 맥락에서 "차이의 딜레마"라고 부른 것의 일례다. 종속 집단에 관해 이야기할 때 차이를 무시한다면 "잘못된 중립성을 방치하게"되며, 차이에 집중하면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강조하게 될 수 있다고 미노우는 지적한다. "차이에 집중하는 것이나 무시하는 것 모두 차이를 재창조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차이의 딜레마다."" 미노우에 따르면,
평등과 차이가 서로 대립한다는 생각을 거부하는 등 차이에 대해 새로운방식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이분법적 한 쌍이 영원불변의 진리인 - P292

것처럼 분석하고 전략을 세우는 대신, 우리는 평등과 차이가 양분된 한 쌍이 되는 일 그 자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해 질문해야 한다. 기존 정치적 담론의 용어들을 유지하는 대신, 그 용어들을 비판적 검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개념들이 특정 의미들을 제한하고 구성하는 방식을 이해한 후에야 우리는 그 개념들을 활용할 수 있다. - P293

이에 따르면, 차이는 실제적이고 근본적이기때문에 시어즈의 고용에서 나타난 통계적 격차를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별은 (그것이 아무리 역사적·문화적으로 생산된 것이라 할지라도) 단순히 "자연적인" 차이를 인정한 것으로 재정의되었다. 이는 레이건의 보수주의 논리와 잘 어울렸다. 불평등을 대신해 차이가 평등의 반대말이 되면서 차이는 불평등을 설명하고 정당화했다. 이 판결은 문학 연구자 나오미쇼어가 다른 맥락에서 설명한 "차이를 본질화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자연화하는 과정을 잘 보여 준다. - P298

평등과 차이가 이분법적으로 대립할 경우 선택은 불가능해진다. 평등을 선택하면, 차이가 그것에 대립된다는 관념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차이를 선택하면, 평등을 달성할 수 없다고 인정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 바로 이 장의 시작 부분에 인용된 루스 밀크맨이 말한 딜레마다. 페미니스트들은 "차이"를 포기할 수 없다. 왜냐하면 "차이"는 우리가고안해 낸 가장 창의적인 분석 도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등도 포기할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민주적인 정치 체계의 원칙과 가치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한은 말이다.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페미니스트들에게 기존 범주들 안에서만 주장을 펼치도록 제한한다거나, 페미니즘의 정치적 논쟁을 우리가 만든 것도 아닌 이분법으로 특징짓는다는 것은 말도안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성차의 개념을 인정하고 그것을 활용하면서도 평등을 주장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유일한 답은 이중적이다. 즉, 평등을 차이의 대립항으로 제시함으로써 구축된 권력관계의 정체를 드러내고, 또한 그 결과로 나타나는 정치적 선택의 이분법적 구조를 거부하는 것이다.
평등론 대 차이론은 페미니즘 정치의 선택지가 될 수 없다. 그런 대립은 두 용어 사이의 관계를 잘못 재현하고 있다. 평등이란, 권리의 정치이론- 배제된 집단들이 정의를 요구하는 근거의 맥락에서 보면 특정목적을 위해 혹은 특정 맥락에서 개인들 사이의 차이를 무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 P299

만약 개인들이나 집단들이 단일하거나 서로 똑같다면 평등을 요구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평등을 특정한 차이에 대한 의도적 무관심으로 정의해도 좋을 것이다. - P300

그래서 평등과 차이를 대립적인 관계로 보는 것에는 이중의 효과가있다. 그것은 평등이라는 정치적 개념과 차이가 오랫동안 관련을 맺어 왔음을 부인하며, 동일성만이 평등을 주장할 수 있는 유일한 토대라고 암시한다. 이는 페미니스트들을 대단히 곤란한 입장에 놓이게 한다. 이 같은대립을 통해 구축된 담론적 조건에서 논쟁하는 한, 우리는 여성이 모든 면에서 남성과 같아질 수 없으므로 남성과 동등해지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현재의 보수적 전제를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유일한대안은 평등을 차이와 대립시키기를 거부하고 계속 차이를 주장하는 것이다. 개인과 집단 정체성의 전제 조건으로서의 차이, 그런 정체성들을고정하려는 시도에 대한 지속적인 도전으로서의 차이, 차이의 작동을 반복된 예시를 통해 보여주는 작업으로서의 역사, 평등 그 자체를 의미하는차이를 주장하자는 것이다. - P303

페미니즘의 역사와 정치 전략은 차이의 작동 방식에 주목하면서도차이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분법적 차이를 다분법적 차이들로 대체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기댈 곳이 모두에게 좋은 다원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차이의 딜레마"에 대한 해결책을 규범적으로 구성된 그대로의 차이를 무시하거나 포용하는 데서 찾을 수는 없다. 대신 비판적 페미니즘 관점은 항상 두 가지 행동을 포함해야 한다. 첫째는, 범주를통해 설정된 차이들의 작동에 대한 체계적 비판, 그것이 만들어 내는 배제와포함의 유형들 - 그 위계의 폭로, 그리고 그 궁극적인 "진실성"에대한 거부이다. 그렇지만 이런 거부가 동일성 혹은 유사성을 내포하는 평등이라는 명목 아래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것이 두 번째 움직임인데) 차이들에 근거한 평등으로 논의되어야 한다. 여기서 차이들이라는 것은 모든 고정된 이분법적 대립항의 의미를 혼란스럽게 하고, 방해하고, 모호하게 만드는 것들을 말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동일성이 평등의 필수 조건이라는 정치적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되는데, 권력은 차이를 토대로 구축되며 따라서 권력에 대한 도전도 그 차이로부터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잘 아는 페미니스트들(그리고 역사가들)이라면 이를 지지할 수 없는 것이다. - P306

9장

내가 보기에 평등과 차이의 딜레마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은 사고의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가 대개의 경우 당연시하는 범주들 - 역사, 여성, 남성, 평등, 차이와 같은 정치 이론의 용어들 그 자체 - 을 비판적으로분석해야 한다. 이 용어들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다고 가정할 것이 아니라 - P338

그것들이 발생하고 사용된 특정 역사적 맥락을 살펴봐야 하며, 문화적·정치적·시간적 산물로서 이 용어들을 검토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단일한 이야기로서의 역사라는 것이 보편적 주체에 대한 허구이며 그 보편성은 암묵적차별, 주변화, 배제의 과정을 통해 획득되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성을 역사에 포함할 수 없다. 바꿔 말하자면, 남성man은 한 번도진정으로 보편적 형상이었던 적이 없었다. 남성의 보편타당성을 확립한것은 차이화를 통해 이루어진 배제의 과정들이었다. 이전과 다른, 더 비판적인 역사학을 위해서는 우선 남성의 보편타당성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그런 과정의 한 측면은 "남성과 대립되는 특징, 특성, 역할을 부과함으로써 "여성"을 정의해 온 것과 연관돼 있다. 수많은 여성사에서 역사가들이기록해 온 그 차이는 이런 과정을 통해 생산된 것이지 여성의 성에 내재하는 어떤 본질적 속성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여성의 경험" 또는 "여성 문화"는 오로지 남성적 보편성과 대비되는 여성의 독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서만 존재한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회적 삶에 대한 특정한 시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개념들이다. 차이화 과정의 다른 한 측면은 평등과 차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조정하는 것과 연관된다. 평등이 절대적으로실천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평등은 특정 차이에 대한 배제가 특정 맥락에서 특정 목적을 위해 유예된 것이라고 보는게 차라리 맞다. 역사적으로 시기에 따라 어떤 차이는 다른 차이보다 더 문제가 되었다. - P339

10장

적극적 차별 수정 정책은 추상적 개인과 개인의 보편성이라는 허구를 전제로 삼았다. 그것은 법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 사이의 격차, 개인의권리와 그들이 어떤 집단에 소속돼 있다고 추정됨으로써 주어지는 한계사이의 격차를 메우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배제의 문제를 끝내기 위해 포용은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에 초점을 맞추어야 했는데, 이는 참으로까다로운 과제였다. "적극적"affirmative이라는 단어는 문제를 인정하고 바로잡는 것을 의미했다. 즉, 개인을 인정하기 위해서 스스로 집단의 구 - P361

성원으로 정체화해야 했고, 차별을 뒤엎기 위해서 (다른-긍정적인 목적을 품고) 차별을 실행해야만 했다. 연방정부가 적극적 차별 수정 정책을 확립하는 과정에 일어났던 언쟁은 이런 차별적 관행을 뒤엎는 개념적 틀을세우는 일이 상당히 어려웠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 P362

옮긴이 후기

이 책은 쉽게 읽히는 편은 아니다. 지식 체계와 권력의 관계를 파헤치며 얽힌 의미를 풀어내는 스콧의 작업은 기존에 통용되는 ‘이해‘의 방식에 끊임없이 개입해 들어온다. 깊이 파고들어 세심히 읽어 내는 과정에서다양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은 우리를 해결 불가능한 모순과 모호함, 불안정과 불안으로 이끌 것이며, 그 통찰 자체가 변화의 가능성과 그 시작을 보여 줄 것이라고 스콧은 말한다. 명료하게 해결할 수 없는 질문들과 그 질문이 만들어 내는 변화의 가능성을 믿기에 스콧은 역사정치 등 기존의 지식 체계에, 그리고 페미니즘에 지속적인 ‘질문‘을 던진다. 책을 읽는 동안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하고 계속 질문이 떠오른다면, 그야말로 대성공이다. - P376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5-03-26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완독하신 건가요!! 너무 멋지시다... 축하드립니다~~

햇살과함께 2025-03-26 10:18   좋아요 0 | URL
어제 밤 졸면서 마무리.. 곱씹어 보아야 할 책인데 소화를 못시키고.. 어려워요 ㅠ
 

‘독신 여성’이라는 용어

3부 5장

1848년에 노동자들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 20년간 그랬던 것처럼 경제적 불만에 대한 보상을 정치 체계의 개혁과 관련지었다. 그들이 정교하게 만들어 낸 노동 정체성들은 공식적이고 법적인 의미로 정부에 참여한다는 정치적 차원을 포함했다. 1848년 이전에 남녀 노동계급 모두 이와 같은 참여에서 배제돼 있긴 했지만, 그 참여와 관련한 조건은 남녀에 따라달랐다. 남성들은 부와 재산에 근거한 차별에 맞닥뜨렸지만, 여성은 하나의 범주로서 명백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시민권을 거부당했다. 권리의요구는 당시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던 젠더 차이를 고려하며 이루어졌다. 공화주의자와 사회주의자 남성 노동자들은 재산의 의미를 재해석해 숙련노동이 그들에게 투표 자격을 준다고 주장했다. 그에 반해 페미니스트 노동자들은 두 가지 주장을 펼쳤다. 첫 번째 주장은 여성은 하나의 범주로서, 생산자로서 남성과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노동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장인들의 정교하고 특출한 기술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숙련도에 따라 구별하기보다는 임금노동자라는 동질성을 강조했다. 두 번째는 남성 노동자들과의 차이와 관련된 주장으로, 여성이하나의 범주로서 투표권을 획득할 만한 고유의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정치적으로 비대칭적인 남성과 여성의 관계, 그 시기 정치담론에 담겨 있던 그들에 대한 상이한 전제들은 여성 봉제사와 남성복 재봉사, 즉 여성 노동자와 남성 노동자들의 상이한 노동 정체성 속에 반영되었다. 이 정체성은 여성과 남성 노동자들에 의해, 또 그들을 위해 발전된것이었고, 이후 1848년에 일어난 집단행동의 기반이 되었다. - P196

7장

‘독신 여성‘이라는 용어가 이 같은 식으로 통용되었다는 것은 모든 - P253

일하는 여성들이 사회적·경제적·도덕적·정치적 질서 정연함이 파괴된, 통제되지 않는 주변부에 사는 성매매 여성으로 간주되었음을 의미한다. ‘독신 여성‘이라는 용어의 양면적 용법은 수사적으로 이중 효과를 발휘했다. 즉, 특정 유형의 일하는 여성과 성매매 여성을 연결 짓고, 성적 방종과빈곤을 동일시했다. 양면적 인과관계(빈곤이 원인인지 부도덕이 원인인지?)는 연상되는 의미 그 자체보다는 덜 중요했다. 왜냐하면 성적 방종에 대한치료책은 하나, 통제뿐이었기 때문이다.
여성 노동자에 대한 기록들에는 다양한 여성 고용의 범주와 형태가나타났지만, 여성 노동자에 대한 저작을 쓰는 사람들은 독신 여성의 상황에만 집중했다. 정치경제학자들은 숙련된 여주인들이 도제들을 감독하고가르치는(모녀 사이와 유사한 관계를 갖춘) 작업장을 칭찬했고, 기혼 여성이집안일과 가내노동을 결합해 임금을 벌어야 할 필요성과 유용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저작들에서는 이런 사례들을 무시하고 빈곤의 문제, 즉 독신 여성의 딜레마로 넘어갔다." 왜냐하면 독신 여성은 여성이 처한 경제적 지위의 냉혹한 현실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독신 여성들의 병리적인 상태를 통해 여성 임금의 "자연법칙을 이해했다. - P254

독신 여성 문제를 제시하는 방식에서 우리는 정치경제학이 부의 생 - P260

산에 대한 담론에 도덕과학을 통합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반나 프로카치는 이런 과정을 훌륭하게 묘사했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19세기 전반기에 이루어진 "도덕과 경제학의 접목"은 "개입을 위한 모든 기술적 수단의 정교한 발달을 가능하게"했다. 그런 기술적 수단이 무엇이고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여기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지만, 그 개입이 경제가 아니라 가족을겨냥한 것이었음에 주목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족은 자연적인 도덕 규제의장치인 반면, 경제는 인간의 통제 영역 밖에서 스스로를 규제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법칙은 서로 연결되어 있었고 "(자석의] 인력법칙이나 중력 법칙"처럼 과학적 관찰에 의해 정치경제학적 언어에서발견될 수 있었다. 이런 정치경제학자들의 저작에서 도덕적 고찰과 경제학적 고찰을 분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31 임금에 대한 분석은 젠더와 경제학을 연결해 가족 내에서 남성에 대한 여성의 "태생적 의존성으로 남성과 여성의 임금 차이를 설명했고, 수요-공급의 "자연법칙"으로 여성이 왜 항상 남성에게 의존해야만 하는지도 설명했다. 일련의 "자연법칙들은 서로를 명백하게 하고 서로를 구성했다. 독신 여성들의 곤경에 대한 논의는 모두 여성이 열등하다는 "사실" 또는뷔레가 이야기한 임금노동자로서의 "불완전함" 그리고 이 때문에 여성이 가족 구조에 머물러야 할 필요성을 전제하는 동시에 재차 강조했다. - P261

여성 노동자! 불경스럽고 더러운 단어. 철의 시대 이전에는 어떤 언어에서도 알려진 적이 없고 어떤 시대에도 이해된 적이 없으며 우리가 진보라고 생각해 온 모든 것을 불확실하게 만드는 단어! - P27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차티스트운동

2부 3장

이 글에서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언어"에 대한 연구와 젠더에대한 연구는, 양쪽 모두 주의 깊게 정의되기만 한다면, 서로 연관돼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인식론적 이론들은 역사가들에게 젠더가 사회적·정치적의미 구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를 분석하는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역사속에서 젠더가 차지하는 위치와 노동계급의 "형성"에서 성차가 작동하는방식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새롭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 준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언어란, 단순히 문자적인 용법의 단어가 아니라 차이화를 통한 의미 만들기를 뜻한다. 또 "젠더"는 단순히 여성과 남성의 사회적역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차에 대한 사회적 해석들이 구체적 맥락속에서 표현된 것을 말한다. 의미가 (어떤 것을 그것이 아닌 것과 명시적 혹은암묵적으로 구분함으로써) 차이를 통해 구성된다면, (문화적·역사적으로 변동 - P110

이 심하지만 자연적·물리적 몸을 참조하기 때문에 언제나 고정돼 있고 반론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여겨져 온) 성차는 의미를 구체화하고 확립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언어"가 의미를 구성하는 방식에 주목할 때 젠더를 발견하는 위치에도 설 수 있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특히 내게 가장 익숙하고또 많은 노동사 연구자들이 연구 중인) 19~20세기 유럽과 북아메리카에서 "언어"와 젠더의 연관성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당시 젠더가 문제적인 쟁점으로 선언되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 P111

노동계급(그리고 때때로 이런 수사 속에서 "민중"이 남성적인 형식에체현되었다는 견해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은 대개 여성들도 운동에 참여하고 이를 지지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지만 앞의 주장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이런 주장은 남성적인 것/여성적인 것과 생물학적인 남성/여성을 혼동하고 있다. 전자는 일련의상징적 준거들이고 후자는 물리적인 신체이며, 둘 사이에 연관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 둘이 같은 것은 아니다. 남성적인 것/여성적인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대립을 통해 추상적인 특성을 정의하는 효과를 낳는다. 강한/약한, 공적인/사적인, 이성적인 감정적인, 물질적인 영적인같은 대립은 계몽주의 시대 이후 서구 문화가 젠더를 코드화한 예들이다. 이런 젠더화된 용법을 사용할 때 성별에 관계없이 개인들이 그런 정의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또한 그들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그 정의들을 재해석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여성들이 "남성적인" 운동을 지지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니며, 오히려 이는 차티스트운동이 가진 특정한 해석을 긍정하는 것이다. - P123

여성노동자의 지위를 본격적으로 옹호하지 못하게 막은 것은 상상력의 결여나 남성 우월주의가 아니라, 생산성과 남성성을 동일시한 계급 개념의 구성이었다. 여성들을 노동조합에 가입시키려는 시도가 이루어질 때조차도, 이는 어색하고 어려웠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계급을 대표하는 적합한정치 행위자로 여겨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여성들은 집안의 남성들에 의해 대표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샐리 알렉산더가 보편적이고 지속적인성적 적대의 탓으로 돌렸던, 1830년대 남성 노동자와 여성 노동자 사이의 긴장과 분노는 바로 이런 계급 개념의 구성 조건과 관련된 다툼으로 이해하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노동계급의 젠더화된 구성을 이해해야 우리는 낡은 문제들 - 여성들과의 경쟁,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 여성 노동자 조직 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문제들은 여성뿐만 아니라 노동계급 운동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 P125

물론 차티스트운동이 19세기 영국에서 노동계급을 "형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차티스트 담론에 대한 충실한 연구를 통해 우리는 그 운동의 독특한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관계들이 표현되고 구성되는 과정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스테드먼 존스가 그랬듯이, 사회관계를 노동자와 고용주 또는 선거권을 박탈당한 자와 국가 등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여지거나문제시되지 않는 범주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차적 갈등으로 국한해 이해한다면 우리의 시야는 협소한 범위에 갇혀 인간 상호작용의 유동성과복잡성을 놓치게 된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이 그랬듯이, "진짜" 스토리는여성과 남성 사이의 투쟁에 대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시 대상의 다수성, 문자적 발화를 넘어선 공명, 다양한 주제와 영역을 넘나드는 움직임을 전제하는 의미론을 통해 우리는 연결성과 상호작용이작동하는 방식을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이론이 모든 정의에 복합적이고 경합하는 측면이 있다는 점을 상정할 때 그것은 변화의 이론이 될 수 있다. 의미는 재해석, 재진술, 그리고 부인의 가능성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와 같은 재정식화가 어떻게, 누구에 의해,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일어나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나아가 우리는 대조와 대립을 통해 의미를 확보하는 방식을 이해해야만 노동계급을 구성하는 데 성차가 이용된 다양한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 P127

4장

이런 질문들에 대해 사회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몇 가지 해답을 제시했는데, 그중 하나는 정신분석 이론에,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의 변형에, 그리고 세 번째는 포스트구조주의 담론 이론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입장은 노동계급의 역사를 계급 사이의 갈등뿐만 아니라 성별 간의 갈등으로 다시 쓴다. 이들은 계급을 기정사실로 간주하며 노동계급 형성에 대한 이야기에 다른 복잡한 갈래, 즉 젠더를 추가한다. 나로서는 세 번째 입장이 좀 더 생산적으로 보이는데, 이 입장은 계급이라는범주를 분석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계급의 역사를 목적론적 관점이 아닌 (푸코가 니체를 따라 이름 붙인) 계보학의 관점에서 다시 쓴다. - P161

이런 질문에 대한 간접적인 답변은, 젠더와 계급 사이의 연관성을
"이중 체계" 분석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것이다. 이 접근에서 가부장제는자본주의와 나란히 존재하며 상호 교차하는 사회 체계다. 각각의 체계에는 특유의 조직과 관계, 동학, 역사, 이데올로기가 있다. 흔히 가부장제의 "기원"은 가구 내 생산·재생산관계를 비롯한 가족과 친족 체계에 위치한다. 자본주의적 관계는 생산수단의 발전과 더불어 생겨나며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몰성적"sex-blind이거나 젠더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경제적 실천을 수반한다. 45 이런 분석에 따르면, 자본주의의 도래와 더불어 가부장적
"젠더 이데올로기"가 경제적 실천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한 영역 - P162

(물질적 관계로 설명될 수 있었던)에서 다른 영역으로 관념의 유입이 발생한것이다. 이중 체계 분석은 정신분석학이 빠질 수 있는 몇 가지 분명한 함정들을 피할 수 있다. 왜냐하면 때때로 남녀가 서로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젠더 이데올로기"가 작용한 것이라고 설명할 수 있기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질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왜 젠더 이데올로기는 그토록 강력하게 지속되는가? 그것은 계급적 이해관계의 명확한 표현과 어떻게 연관되는가? 사회학적으로 유사한 집단임에도 계급 관계와 젠더 관계와 관련해) 서로 다른 정치적 전략을 취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중 체계 분석은 결국 유물론적 분석 논리 안에 머문 채로제시된 기계적인 해법으로, 사회학적 명령 - 젠더 이데올로기를 궁극적으로 사회적·물질적 조직의 직접적 산물로 설명해야 할 필요을 따르면서젠더 이데올로기를 자본주의 분석의 독립변수로 도입하는 방법이다. - P16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렵네.. 많이 어렵네..

1부 1장 여성의 역사

"허스토리"와 사회사 모두 여성을 역사적 주체로 설정한다. 실제로, 여성사 연구자들의 작업 속에서 이 두 가지 접근법은 종종 중첩되거나 서로 교차한다. 그러나 이 둘은 궁극적 함의에서 차이가 있다. 분석의 관점이 상이하기 때문이다. 사회사는 기존의 (경제적) 설명틀 안에서 젠더 차이를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젠더는 그 자체로 연구가 필요한 대상은 아닌 것이다. 결과적으로 사회사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은 너무 통합론적인 경향이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허스토리"는 여성과 남성의 서로 다른역사를 젠더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젠더가 역사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을 이론화하지는 않는다. 이 때문에 허스토리의 이야기들은 여성들만의 이야기처럼 보이며 지나치게 분리주의적인 방식으로 읽힐 소지가있다. - P54

2장 젠더

가장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덧붙이자면, 여성의 학문 활동이 학제의 패러다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던사람들이 제안한 용어가 바로 "젠더"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학자들은일찍이 여성 연구가 단지 새로운 주제를 학문세계에 추가하는 것일 뿐만아니라, 기존 학술 연구의 전제와 기준들을 비판적으로 재검토하도록 할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여성사의 문제에서 세 명의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은 "우리는 역사 속에 여성을 기록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전통적 관념을 재정의하고 확장해, 공적이고 정치적인 활동뿐만 아니라 사적이고 주관적인 경험까지도 역사서술에 포함하는 일이 반드시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배우고 있는중이다. 비록 그 방법론을 실제로 도입하는 데 있어 머뭇거림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새로운 여성사뿐만 아니라 새로운 역사학을 시사한다는 것은분명하다"라고 썼다. 이 새로운 역사학이 어떤 식으로 여성들의 경험을포함하고 설명하게 될 것인지는 젠더가 분석의 범주로서 어느 정도까지발전될 수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이는 계급이나 인종 같은 범주들과 확실히 비슷하다. 실제로 정치적으로 가장 폭넓은 관점을 가진 여성학자들은이 세 가지 범주 모두가 새로운 역사를 쓰는 데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을자주 언급했다. ‘계급·인종· 젠더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은 첫째, 피억압자 - P67

들의 이야기와 그 억압의 의미와 본질에 대한 분석을 담은 역사학에 전념하겠다는 뜻이며, 둘째, 최소한 이 세 개의 축을 따라 구조화되어 있는 권력의 불평등을 학문적으로 이해해 보겠다는 뜻이다. - P68

우리는 이항대립이 가진 고정적이고 영속적인 성질을 거부할 필요가 있다. 이는 성차의 조건들을 제대로 역사화하고 탈구축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자신이 사용하는 분석적 어휘와 분석의 대상을 좀 더 의식적으로구별해야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범주들을 비판의 대상으로 삼고우리의 분석에 대해 자기비판의 방법들을 (그것이 아무리 불완전한 방법이라 하더라도 찾아내야 한다. 탈구축에 대한 데리다의 정의를 가져와 이야기하자면, 이런 비판이란 어떤 이항대립이든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을 맥락 속에서 분석하고, 그것을 실재적이거나 자명한 것, 사물의 본성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위계적 구성을 역전시키고 전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어떤 면에서 페미니스트들은 오랫동안 이런 작업을 해오고 있었다. 페미니즘 사상사는 구체적인 맥락들 속에서 남녀 관 - P85

계의 위계적 구성에 대한 거부의 역사이자, 그 작동을 역전시키거나 전치하려는 시도의 역사였다. 이제 페미니스트 역사가들은 그와 같은 자신들의 실천을 이론화하고 젠더를 분석적 범주로서 발전시켜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 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