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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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시도 아니고 소설도 아니고 에세이도 아니고 그 모든 것이며 사진과 영상 등 다양한 장르가 포함된 예술작품이다.

일제시대 분단 이민 디아스포라 모국어 이중언어 아니 다중언어 유관순 잔 다르크 작가의 어머니 신 종교 조국 여자와 남자 페미니즘 등 복합적 정체성을 지닌 작가의 다양한 주제를 넘나드는 예술작품이다.

단어의 반복. 문장의 반복. 반복하며 변형되는 변형되며 반복하는 분열하고 확장되는 이야기들.

머리 속에 그려질 듯 그려지지 않는 영상들 환영들.

독특한 마침표의 위치.

이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최근에 읽은 앤 카슨의 소설, 시로 쓴 소설도 생각난다.


작가의 회고전 전시 도록인 <관객의 꿈> 북펀딩을 하고 2년 전에 북펀딩하고 읽지 않은 <딕테>를 먼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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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이 어렵다는 것, 소통은 될 수 없다는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소통하려고 시도조차 잘 하지 않는다. 그 힘든 걸 굳이 왜? 그렇지만 내가 소통을 특히나 못하는 이유는 ‘자기알기’가 부족해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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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인간은 누구나 공감과 소통을 원합니다. 그런데 간절히 이해받고 싶고, 타인과 대화를 원하고, 자기 삶을 해명해야하는 쪽은 대개 사회적 약자입니다. 이 책에서 계속 강조하는 내용입니다. 기득권층은 자신의 삶과 기존의 언어가 일치하지만,
여성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는 그 두가지가 불일치한다는 것. 그렇다면 사회구조적 약자든 인간관계에서의 약자든(예를 들어 사랑하는 관계에서) 누가 더 소통의 어려움을 겪을까요? 어려움을겪을수록 소통에 대해 고민하고 할 말이 많은 이들은 누구일까요? 이것은 생존의 문제입니다. 약자는 말에 예민합니다. 소통과 새로운 언어 만들기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 P12

차이를 드러내고 다르게 말하는 것,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말하기, 새로운 언어를 찾기 위해 노력할 때 소통의 실마리도 잡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태초에 말씀" 같은 것은 없습니다. 태초에 관계가 있었고, 목소리들이 있었겠죠. 모든 책은 다시 쓰여야 합니다. - P17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 개념들은 모두 백인 남성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를 자각하고 일상에서 억울하지 않게 살 수 있을까요? "인간은 모두 죽는다"라는 사실과함께 "언어의 본질은 권력관계"라는 사실은 평생 각성해야 할유일한 두가지 진실이지요. - P17

대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대화가 평화라면, 그것은 조용한평화가 아니라 격렬한 평화입니다. 서로의 전압이 충돌하고, 말 - P36

이 폭력적으로 느껴질 때 상대를 회피하거나 밀어내지 않고 견디는 상태. 다름을 지탱하는 대화. 저는 그런 의미의 대화만이평등에 가깝고 윤리적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P37

혐오 발언을 일삼는 사람들은 언제나 표현의 자유를 외칩니다. 혐오 표현을 금지하려고 하면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한다며 반박하죠. 이들을 설득할 방법도 필요도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라는 개념은 근대 국민국가 건설과정의 산물입니다.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에 비해 약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비판하고 말할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 등장한 개념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표현의 자유는 국가와 개인 혹은 사회적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로등장한 개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표현의 자유는 역전된 방식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 P44

거듭 말씀드리지만 페미니즘의 목적은 가부장제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부장제의 모순을 극대화하고 틈새를 내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페미니즘은 가부장제와 공존합니다. 물론 가부장제도 여성주의와 공존하려는 태도가 필요하죠. 그렇지 않은 사회를 우리는 파시즘, 전체주의체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사회 일부의 여성주의에 대한 적대와 여성 혐오는 여성의 실존 자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 P81

페미니즘은 자신이 어떤 여성인지 사회적위치성을 드러내고 그 인식의 부분성을 인정하는, 매 순간 자신의 한계를 깨닫는 과정입니다. 그래서 개별적으로 몇몇 여성이남성의 세계에 진입할 수는 있어도, 페미니즘은 주류 사상이 될수 없습니다. 페미니즘은 아무도 뒤에 남겨두지 않는 ‘가장 느‘린 정의‘를 지향합니다. - P83

소통이 ‘자기알기‘에 대한 공부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 과정을 ‘성찰省察)‘이라고 부릅니다. 영어reflexive의 우리말 번역어가 성찰인데 재귀(再歸)라는 뜻도 있지요. 재귀는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반복한다는 의미입니다. 사실, 성찰보다 재귀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정확하지요. 여기서 재귀는 우리가 -self라고 부르는 재귀대명사의 그 재귀입니다. 재귀에는 성찰의 의미도 있지만, 자기만의 세계, 자기충족적(self-fulfillment) 삶을 뜻하기도 합니다. - P90

그러므로 보편의 상대어는 특수가 아니라 차이이고, 예술과 사회운동은 기존의 차이를 문제 삼으면서 보편을 해체하고 경계를 재구획하는 행위입니다. 한때"세계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라"라는 슬로건이 유행했지만, 이는 곧바로 비판받았습니다. 세계적인 것과 지역적인 것은 누가 나누는가? 서구는 글로벌이고 비서구는 로컬인가? 그래서 ‘글로컬‘이라는 협상어가 등장했지만, 이 역시 글로벌과 로컬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지요. - P97

가족 안에서도 돌봄의 비중, 경제력의차이, 나이와 젠더, 심지어 건강 상태에 따라 힘의 저울은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의 인간관계, 연애관계는말할 것도 없습니다(‘친밀성‘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intimacy는 ‘위협하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intimidate의 명사형입니다. 교제폭력이 친밀성의 이중적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상하 위계와 이해관계에따라 우리의 언어는 상대 앞에서 시시각각 그 모양을 바꿉니다. - P132

탈식민주의 이론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통찰 중 하나는, "저 사람은 도대체 왜 저럴까"라는 질문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탕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존재는 지금의 나로서는 끝내‘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 서늘한 이해불가능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거리를 두는 것, 그것이 소통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나를 잃어버리지 않는 단단한 보호막이 될 수 있습니다. - P183

우리는 흔히 대화의 목적을 소통이나 합의라고 생각하는데, 이는 사실도 아니고 바람직한 현상도 아닙니다. 대화의 목적은합의도 맞대응도 아닌 제3의 목소리를 모색하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언어도단과 교착 상태에 있던 언설의 자장(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모색하는 것이 대화죠. 모든 대화는 기존의 논리를 뛰어넘는 변증(辨證)을 위한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대화, 즉 서로의 차이와 적대를 확인하고 증폭시키는대화는 무의미합니다. - P203

극우는 설득 대상이거나 투쟁의 대상도, 더구나 이 세상에서사라져야 할 이들도 아닙니다. 사람의 생각은 비판해도 존재를부정할 수는 없으니까요. 맑스의 말대로 민주주의가 배제 없는사회라면, 공존이야말로 민주주의의 핵심이죠. 평화는 갈등 없는 상태가 아니라 극심한 갈등 상황을 견디는 힘입니다. 새로운말의 가능성을 믿으면서, 새로운 인간성의 출현을 희망하면서말입니다. - P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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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바꾼 페미니즘 강의실 - 장춘익 교수의 여성주의 교육실천 20년을 만나다
탁선미 외 지음, 장춘익교육실천연구회 엮음 / 곰출판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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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간 읽은 페미니즘 관련 책에서 여러 번 인용되어 궁금했던 책인데, 내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처럼 장춘익 교수의 페미니즘 강의를 엮은 책이 아니었다.

장춘익 교수가 돌아가신 후 그의 여성주의철학 교육을 기리기 위해 수업을 이수한 제자들과 동료들이 그 또는 그의 강의가 그들의 삶에 끼친 영향을 말하는 책이다.

강의식이 아닌 토론식의 그의 교수법, 수업 뿐만 아니라 수업 외적인 부분에서도 교수자로서 학생들을 지원하고 응원하는 그의 교육자적, 인간적인 면모.

한 교수자에 의해 한 학교 한 학과에서 전공과목으로 20년간 유지된 (국내 사례로는) 유일무이한 여성주의철학 강좌라고 하니, 이 강의를 지속하기 위한 장춘익 교수의 노력이나 신망이 어떠했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런 강좌가 남자교수자에 의해 유지되다니 아니 남자교수자이니 유지되었을 수도. 수강생의 성비가 반반인 것도 ‘그들’이 존경하는 ‘남자’교수자이니 가능했을 것 같아 읽는 내내 솔직히 씁쓸한 기분도 아주 없진 않았다.

이런 귀한 분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여성주의철학 과정이 명맥을 유지하지 못하여 너무나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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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국회의원 할당제도 계속 논의되고 있었고, 대학 내성폭력 문제가 굉장히 불거졌을 때고, 대학에서도 막 백래시가 있고 그랬는데 선생님이 <사회정치철학> 시간에 그러시는 거예요. ‘요즘역차별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평등이란, 누군가가 역차별로 볼 수 있을 정도의 어떤 조치를 취하면서나아가는 거다, 그게 평등으로 가는 길이다‘ 그런 걸 되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씀하셨어요. 평소엔 단호하게 말씀을 잘 안 하시는 편이잖아요. 그런데 성차별과 관련해선 가끔 명확하고 단호하게 말씀하실때가 있었고 전 그런 게 너무 좋았어요. 왜냐하면... 조심스런 이야기지만, 다른 수업에서 몇몇 교수님들의 보수적인 발언으로 인해 굉장히 짜증 나고 화가 많이 나 있었거든요. - P192

<역사철학> 수업 때 있었던 일이에요. 선생님이 강의하시다가 아이가 울면 엄마가 달려가죠?"라고 말하고는 멈칫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3초 뒤에 ‘내가 말을 실수했다, 정정하겠다. 부모가 달려가야 한다‘라고 하시면서 정중히 사과를 하시더라고요. 남성 교수가 <여성주의철학>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경계심을 품는 이들도 있겠지만, 장춘익 선생님은 한 번도 성차별적인 발언을 한 적이 없어요. 탁월한 젠더감수성을 갖고 계셨어요.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직접 할 수는 없지만, 선생님은 위대한 페미니스트이고, 나는 그분의 가르침을 받고 있다고 느꼈어요. 돌아보면, 저는 선생님을 보면서 내가 어떤 페미니스트로서 살아야 하는지, 어떤 관점으로 페미니즘에 관한 얘기를 해야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제가 이 수업을 들으면서, 여성학 대학원에진학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는데요. 얼마 전에 갑자기 들었던 생각이 있어요. 만약 대학원에 가서 ‘너한테 가장 많은 영향을 주었거나, 네가 닮고 싶은 페미니스트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저는 장춘익 선생님을 얘기할 것 같더라고요."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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