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여성과 남성 현대의 지성 39
조혜정 엮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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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쓴 이런 여성주의 책 너무 반갑다. 세대별 심층설문조사 - 비록 수적 한계는 있지만 - 와 제주 해녀의 삶에 대한 관찰과 추적조사도 흥미롭다. 80년대 나온 책이지만 전혀 촌스럽지 않다(촌스러움(?)은 오직 표지와 남한에서 태어났다는 작가 소개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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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가부장 체제를 넘어서: 생명 존중의 사회를 향한 여성 해방 운동

모성적 체험과 부모-자식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온 이러한 연구가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경험의 이분화가 사고 성향의 이분화를 낳았다는 점이다. 이러한 이분화는 무의식적 사고 구조의 차이에서부터 구체적 관심의 차이에까지 걸쳐 나타나는데 우선 코넬, 터시웰Cornell and Thurschwell (1987)과 버틀러 Butler (1987) 등은 개체의 특.
성을 분리성과 차이성에서 찾는 이분법적 논리 구조가 남성 지배 체제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에 주목해왔다. 그리고 이 이원론 - P390

적 사고 구조는 여성 억압뿐 아니라 자연 파괴적 세계관의 바탕이 되어왔다고 보고 궁극적으로 인간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자연간의관계를 규정해온 이원론의 극복 가능성은 우주 질서를 유기적으로파악하고 상호 의존성을 인식해온 여성들에게서 찾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슬리(B. Easlea, 1987) 역시 그의 논문, 「가부장제, 과학자와 핵전사들에서 현대 문명의 핵심으로 간주되어온·물리학과 그 산물인 핵무기를 가부장제와 관련시켜 논의하고 있다. - P391

이미 간략히 언급했듯이 여성 억압은 크게 두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하나는 상당히 구체적인 물적 토대를 다루는 노동력및 출산력 차원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의 중심적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배제되는 문화적 차원이다. 이 글이 여성의 실천 의지에 관한것인만큼 문화적 차원에서의 배제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아드너 E. Ardener (1975: 21)는 억압 집단이 갖는 하나의 주요 특성을 그들이 지배 집단에 비해 자신의 입장을 제대로 표현할 수 있는구사력을 갖지 못한 점 inarticulateness, 즉 벙어리됨 mutedness에서찾고 있다. 그는 이것을 계급적 억압이든 인종적 억압이든 여성 억압이든 관계 없이 모든 불평등 관계에서 발견되는 공통적 특성으로, 지배적 커뮤니케이션 체제에서 소외되어왔음을 드러내는 증거로 보고있다. 억압적 상황에 놓인 집단은 한결같이 자신을 표현하는 데 있어어려움을 겪는데, 그것은 자신들이 지배 집단의 언어를 빌려서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서 대부분의 여성은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못하는데, 이는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의 사고를 통해 설명할 수 있는 어떤 - P394

언어와 틀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Firestone, 1972:149). 여성적 인성에 관해 30년간 연구를 해온 프로이트가 끝내 "도대체 여성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그가 여성이 처해 있는 이러한 특수한 구조적 조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S. Ardener, 1975: 44). 이런 시각에서 볼 때 ‘지배‘란 곧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의 자체 실현 및 표현의 잠재력을 억제하여 그 집단의 경험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 P395

그러면 여성들이 주체가 되는 사회 운동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전개될 수 있을까? 이를 단계적 작업으로 나누어 살펴보자. 첫번째 과정은 의식화의 단계일 것이다. 두번째는 문제 의식을 심화하여 여성의 체험과 목소리를 더욱 확실한 형태로 만들어가는 단계이며, 세번째는 이를 남녀 모두를 위한 새로운 사회의 원리로 통합, 재구성해나가는 단계이다. - 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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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7-25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앗 394페이지 인용문, 저도 밑줄 그었어요!!

햇살과함께 2024-07-25 23:37   좋아요 0 | URL
오드리 로드가 생각나는 부분이었어요!!
 

우리들의 블루스 생각난다.

6장 ‘발전’과 ‘저발전’: 제주 해녀 사회의 성 체계와 근대화

이들은 주로 마르크스주의 분석틀을 활용하여 현대적 가부장제의 물적 토대를 밝히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그 전제는 "자본주의 생산 양식은 여성에게 사회적 노동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사회적 해방의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으나, 성별 분업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이용 강화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확대·재생산하여왔다"는 데 있다(여성평우회, 1985: 3). 실제로 1970년대 이후 가부장적 유물론 논의를 통하여 "산업화 자체가 곧 발전이며 여성의 지위 향상"이라는신화는 여지없이 깨뜨려졌다. 여성 노동자가 특정 직종에 몰리거나비공식 부문에 대거 참여하게 되는 현상, 가사 노동의 성격과 가치평가, 그리고 여성의 빈곤화 현상은 여성이 가부장제와 자본주의가중첩된 사회 구조 속에서 이중의 질곡을 지고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 P306

제주는 육지의 정치 권력으로부터 많은 제한을 받아왔으며 특히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 위주의 행정력과 비공식적 지도자로서의 귀양 선비들의 활동은 제주도의 삶에 무시 못할영향력을 미쳐왔다. 16세기 이후부터 1900년 전후에 걸쳐 일어난 많은 민란에서 보여주듯이 제주는 외적 권력에서 부단히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역사를 보임과 동시에 외적 권력에 아부하는 역사의 이중적면을 보이고 있다. 제주도의 육지에의 정치·문화적 종속과 지배층과 일반 농민간의 이분화, 그리고 특히 지배 엘리트층의 육지 문화에대한 사대주의적 경향은 이러한 제주도의 과거와 현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변수라 하겠다. - P308

전통적으로 육지가 관개 수리 사업과 가축의 힘을 토대로 한 남성 노동 중심의미작(作) 농업을 발전시켜온 반면, 제주는 생태적으로 특히 토질과강우량 등에 있어 여성 노동 중심의 밭농사 위주로 생업을 발전시켜왔던 것이다. 여기에 해변 지역에서의 잠수업이 첨가되어 제주는 명실공히 여성 노동력 위주의 생산 체계를 이루어왔다. 이것이 제주 사회가 육지와 매우 다른 문화 구조를 형성케 된 주요 기반이라 하겠다. 또한 섬이라는 지형적 변수는 제주 문화의 또 다른 독자성의 근거가 되어왔다. 대중 교통이 편리해지기 전인 최근까지 육지와의 왕래가 매우 한정되어 있었으므로 제주는 외부에 대한 지향성과 폐쇄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문화를 형성해왔다. - P309

이 용마을의 연구가 단지 남녀 관계 연구의 한 흥미있는 사례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마디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인류학이란 실로 "교묘하고 기만적인" 학문이라는 기어츠(1969)의 의견이다. 인류학은 기만적이어서, 우리 자신의 생활과 가장 동떨어진 것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가장 친밀한 것이 되게 하고, 먼 나라 태고적의이상하고 특이한 것을 끈덕지게 이야기하는 듯하면서 실은 현재를가장 가깝고 친숙하고 보편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 P315

기타: 제사 외에는 용마을 남자들이 장기적으로 시간과 정력을 바쳐서 하는 일생의 일 career이란 없다. 국민학교 교사와 면사무소와어협에서 일하는 세 사람을 제외하고는 남자들은 그때그때 적당하게시간을 보낸다. 장년 남자들은 동장으로서 보통 2년간 마을을 대표하여리사무소와 어협과 마을간의 중계자 역할을 한다. 주역(周易)을읽을 수 있으며 장례 등 의식 절차에 밝은 노인들은 일이 있을 때마다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일 년에 한 번 있는 부락제(역시 남성들만 참석할 수 있는 유교적 의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소를 서너 마리씩 기르는 남자들은 소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가계에 크게 보탬이 되기도 한다. 집을 짓는 일, 지붕을 이는 일은 남자들이 맡아한다. 젊은 남성들은 어린애를 보는 데 시간을 보내거나 낚시하기 좋은봄·가을이 되면 낚시로 소일한다. 그 외에는 자유로운 시간을 한담과 술로 보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남성들은 자주 도시에 나들이가거나 장기적으로 2년 내지 10여 년간) 집을 떠나 육지에서 살다 돌아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 P322

용마을에서 강조되는 남성 우위의 이데올로기는 실제로 남성의 우위를 가능하게 한다기보다 여성의 지배를 막는 방어적 역할을 한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일종의 집단 숭배 collective fetishism로서의 문화의 상징적 영역이 남성에 의해 종종 지배되고 있다고 머피 Murphy (1974)가 지적했듯이, 용마을의 남성은 제사와 남성 우위의관념을 토대로 한 상징적 영역을 독점함으로써 스스로를 방어하며최소한의 자치권을 지켜온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이 용마을의 남성과 여성의 세계가 엄연한 분리와 대립의 면에서 이해될 때, 육지에비해 더욱 철저히 행해지는 부계 조상 제사 의식과 그 외 이와 관련된 몇 가지 유교적 가치 체계(학자 숭상, 노동 천시 등)가 왜 그렇게강하게 남아 있는지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 P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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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도로우

5장 ’남성다움‘의 구성과 재구성: 사회적 기능과 존속 기제를 중심으로

‘남성다움‘이란 남성으로 태어난 인간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기질과 자격, 해야 할 도리 등을 가리키는 단어로서 구실의 수행과 직결된 개념이다. 앞에 인용한 교수의 말처럼 남성다워지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인간이 태어났다고 다 인간다워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남자 아이도 저절로 남성다워지는 것이 아니다. 즉 ‘남성다움‘ 이란 어디까지나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문화적 현상으로서 이해되어야 하며 본질론과는 거리가 멀다. - P271

앞에서 논의된 사례들을 토대로 다음과 같은 유추가 가능하다. 첫째, 남아의 남성화가 매우 문제시된 사회들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1) 남녀 역할의 분명한 분리 2) 어머니의 아동 양육의 독점 3) 남성의 역할이 갖는 사회적 비중이다. 역할의 분명한 분리란 남녀 역할이 얼마나 상호 배타적으로 규정되어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남녀의 역할 구분이 덜 엄격한 사회에서는 ‘남성다움‘이란 것이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 반면, 구분이 많고 엄격할수록 ‘남성다움‘이 문제시된다. - P278

이러한 규격화된 관계 구성은 1950년대를 전후로 도전을 받게 된다. "남성의 반란"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어렌리크(1983: 12)는 전 시대를 특징지은 "생계 부양자의 윤리"의 붕괴 과정에 대해 몇 가지 주요한 관찰을 하고 있다. 첫째는 "부양자 윤리"의 붕괴는 일반적으로인지되고 있듯이 1960, 70년대 여성 해방 운동의 여파로 초래된 것이아니고 자본주의의 단계적 진전에 따른 자생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움을 누린 세대가 일으킨, 즉 히피나 ‘역문화counter culture‘ 운동과 더욱 밀접한 상관 관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제적으로는 1970년대 석유 파동을 거치면서 물가가 뛰어오르고 전반적 경제 침체가 예기되는 상황에서 남성들의 부양자 책임은 매우 무거워졌다. 남성들은 자신들에게 부여된 순종적 직장인으로서, 그리고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너무 위험 부담과 긴장이 높은것이라고 느끼기 시작했으며, 이에 ‘성공‘과 ‘책임‘ 보다 ‘신나는 시간‘과 ‘수월한 삶‘을 추구하는 남성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 P282

초도로우의 논의의 초점은 ‘모성적 성향의 재생산‘에 있다. 그는 프로이트가 밝혀낸 대상 관계 이론의 중요성을 인정하고 프로이트가제시한 대로 자아 발달의 과정을 무의식적 · 감정적 심리 구조의원에서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초도로우가 프로이트와 크게 의견을 달리하는 것은 가족을 사회 조직의 한 단위로 보았다는 점과 어린 아이의 자아 형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를 어머니로 보았다는 점이다. 프로이트는 임상을 중심으로 이론을 발전시켰고 또 자신이 남성이었던만큼 한계를 가졌던 것인데, 비교 문화적이지 못했다는 점과 끊임없이 남성, 즉 아버지와의 관계를 분석의 핵심에 놓아왔다는 - P284

점이다. 초도로우는 비교 문화적으로 가족 구조 형태의 다양함을제로 하면서 모성 mothering을 재평가하고 모자 관계를 중심에 놓음으로써 소유적 개인주의 possessive individualism의 전제에 토대를 둔남성 중심적 이론을 넘어서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가 제시한 중심 개념은 자기 사랑 narcissism (Barrett and McIntosh, 1982: 126)으로, 자아형성 과정은 아기가 자기의 주 양육자, 즉 어머니와의 관계에서갖게 되는 일차적 유대 관계에서부터임을 강조한다. 초도로우는 초기에 형성되는 어머니에 대한 일차적 애착 관계에서부터 분리되어개체성을 확립해가는 데에 있어 여아와 남아는 매우 상이한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이에 따라 매우 다른 ‘관계 형성 능력 relational capacity‘ 과자아 정체성을 갖게 된다는 점을 밝혀내고자 하였다. - P285

초도로우의 주장대로 현대적 ‘남성성‘과 ‘여성성‘이 재생산되는 악순환을 중단시킬 가능성은 바로 남성이 자녀 양육에 신생아때부터 부모로서 참여하는 것에서 찾아진다. 이를 통해 남성은 진정한 관계 형성 능력을 기르게 될 것이고, 여성은 자신의 양육 능력을 상실하지 않은 채 자율적 감각을 성숙시켜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작업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미 도구적 이성과경쟁 원리에 깊이 젖어버린 남성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그 성장에 깊이 참여하여 감정 이입적 이해를 토대로 관계를 맺어가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단순히 먹이고 재우며 회사 일을 ‘처리‘ 하듯 육아를 ‘처리‘ 하거나 지적 자극을 주고 놀아주는 역할만을 분담한다면, 그래서 결국 아내의 정서적 관계 형성의 역할과 대비된 면에서육아만을 담당하게 된다면 부성의 참여의 의미는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직업 구조가 변화되지 않는 한 남성이 육아에 참여한다는 것은 구호에 그치고 말 가능성이 높다. 현재의 직장 스케줄을 그대로 따르면서 육아를 나누어 담당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능력있고 특혜를 누리는 소수의 남성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아이와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기 위해서는 갓났을 때부터 아기와의 정규적인 접촉이 중요하며, 따라서 근무 시간과 ‘일‘에 대한 고용주와 피고용인들의 의식 변화와 새로운 제도 도입이 필요해진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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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4-07-23 0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오늘 아침에 이 부분 읽으면서 출근했어요!

햇살과함께 2024-07-23 13:05   좋아요 0 | URL
초도로우도 읽어야 합니다!!
 

박완서 <닮은 방들>
오정희 <비어 있는 들> <어둠의 집>
박노해 [이불을 꿰매면서] <노동의 새벽>
이소산

4장 가족 관계: 여상의 취업 여부와 계층에 따른 비교적 고찰

파슨즈T. Parsons를 위시한 기능주의자들은 이미 이러한 핵가족을산업 사회에서 인간의 욕구 충족과 사회의 발달을 가장 잘 이루어가는 기능적 가족으로 논의한 바 있다. 그는 특히 생산 활동 영역과 소비와 사적 공간으로서의 가정이 엄격하게 분리됨에 따라, 밖에서 돈을 벌어오는 도구적 instrumental 역할과 가족 구성원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정서적 expressive 역할이 중요해지는데 이는 성별에 따라담됨으로써 더욱 효율적으로 해결된다고 보았다. 남편만이 직업에종사하는 성별 분업은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결혼 관계 속에서경쟁을 최소화시키는 메커니즘으로 가족의 결속을 강화하는 기능"까지 한다는 것이다(1964: 242). - P210

한국의 경우, 불행하게도 대다수의 사회가 그랬듯이 급격히 근대화가 추진됨에 따라 "무엇이 인간을 위해 좋으냐?"는 물음은 전혀 무시된 채 "무엇이 경제 성장을 위해 좋으냐?"는 물음이 한국 사회의가장 의미있는 물음으로 제기되어왔다. 이 과정에서 가정은 산업 역군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산업 역군을 생산해내는 장소로 전락하였다. 서구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왔으나, 한국의 경우는계획적으로 추진된 급격한 산업화로 인해 그 정도가 매우 심할 수밖에 없었다. 산업화의 급속한 전개는 극심한 가치관의 혼재라는 또 다른 차원의 갈등적 상황을 빚었다. 즉, 성취 지향적 개인주의. 평등주의 및 합리주의를 근본으로 하는 소위 근대적 구조 원리가 사회의 영역에 따라 각기 다르게 실현되었는데, 특히 가족 생활을 포함한 사적영역은 이러한 가치와는 상당히 무관한 전통적인 혈연주의 · 서열주의와 정의)주의가 지배함으로써 과도기적 갈등을 심화시켜온 것이다. - P221

주부는 경제적 면에서 남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신 자신은 집에 ‘남아서‘ 가사 노동과 육아, 그리고 ‘인간적‘ 가치들-사랑, 개인적 행복, 가정적 안락—에 대한 책임을 맡게 된다. 즉 여성이 남편의 경제력과 그의 사회적 활동에 따른 사회적 신분의 자원에 의존하는 대신 남편은 아내의 정서적자원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공적 자원과 사적 자원 교환의불균형, 특히 매우 불안정한 사적 복지 체제(남편)에 자신의 생을 맡겨야 하는 여성은 이 체제의 희생물이 될 가능성을 항상 안고 있다. - P224

여기서 버나드Bernard (1971)가 말하고 있는 자의식이 얕을수록 행복한 아내가 될수 있다는 ‘행복한 결혼의 패러독스‘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자신의삶에 대해 생각을 하지 않고 바쁘게 지낼 수 있는 주부가 바로 ‘행복한 주부‘인 것이며, 끊임없이 집안 소제를 하는 경우라든가, 에어로.빅·계모임. 꽃꽂이 · 박물관 대학 등의 여가 선용 활동이 주부의 삶에 큰 비중을 갖게 되는 연유도 이와 관련된다. - P231

한편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사랑받는 아내‘로서의 주부상은 젊은세대에게 사랑이 있는 한 갈등도 불평등도 없는 행복한 가정만이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실제로 낭만적 사랑이란 실체라기보다는 산업화와 더불어 대두된 이데올로기이며 배우자의 경제적의존성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샐스비 Salsby (1985)는 밝혀내고 있다. - P232

비취업 주부의 삶의 형태가 갖는 또 다른 사회적 비중은 (1) 그것이 성에 따른 역할 분담을 구조적으로 지속시킨다는 것과 (2) 과잉소비와 과시 성향의 증가 그리고 (3)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찾아진다. - P233

일을 한다는 것에 대한 사회적인 의미와 인간 평등에 대한 새로운자각을 내면화시킨 경우, 상황이 전환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노동자시인 박노해의 시에서 그러한 자각이 짙게 표현되어 있다(1984:26~68).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속옷 빨래를 하면서
나는 부끄러움에서 가슴을 친다.

똑같이 공장에서 돌아와 자정이 넘도록
설거지에 방청소에 고추장단지 뚜껑까지
마무리하는 아내에게
나는 그저 밥달라 물달라 옷달라 시켰었다.......

명령하는 남자, 순종하는 여자라고
세상이 가르쳐준 대로
아내를 야금야금 갉아 먹으면서 - P247

나는 성실한 모범 근로자였었다…………
편리한 이론과 절대적 권위와 상식으로 포장된
몸서리쳐지는 이윤 추구처럼
나 역시 아내를 착취하고
가정의 독재자가 되었었다

투쟁이 깊어갈수록 실천 속에서,
나는 저들의 찌꺼기를 배설해낸다
노동자는 이윤 낳는 기계가 아닌 것처럼
아내는 나의 몸종이 아니고
의문을평등하게 사랑하는 친구이며 부부라는 것을
우리의 모든 관계는 신뢰와 존중과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잔업 끝내고 돌아올 아내를 기다리며
이불홑청을 꿰매면서
아픈 각성의 바늘을 찌른다. - P248

그러나 현상적으로는 대부분의 취업 주부들은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경제 사회적 자원을 공평한 권력 분배를 위한 협상에 사용하려는 시도를 하지않고 있다(조혜정, 1981a). 그 직접적인 요인은 그들이 전통적 교환의규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치 지향의 차원에서 찾아진다. 로드먼 Roadman (1972)은 부부간의 권력 관계가 그들이 가진 자원의 비중에 따라 재조정될 가능성은 부부 관계를 규정하는 문화적 규범이자유로운 협상을 허용할 만큼 융통성이 있는가의 여부와 직결되어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즉 가부장적인 규범이 그 사회의 절대적 가치기준일 때 권력 분배는 자원 소유와는 관계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협상 시도가 어려워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전통적규범과 태도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 P249

1926년 동아일보에 난 이소산의 <현하 조선이 요구하는 여성>에서 이 문제는 매우 명료하게 표현되고 있다.

현모양처란 이름좋은 도덕은 누가 만든 것이며 사람다운 사람은 기르지 않고 남자에게 형편좋은 현모양처를 만들어내는 현대식 교육 제도는 누가 만든 것인가? 이것이 모두 선조 이래의 남성들이 만든 도덕이며 현대 자본주의가 낳은 제도이다.
여자로 남에게 품팔이하는 것은 비천한 일이라고 하다가 자본주의적 상업이 점차 발달됨에 따라 값싼 여공이 필요하게 되매 직업 부인이란 미명하에 그를 장려하는 자도 그들이며 문전 출입도 자유롭게 못하게 하다가 생활이 곤란하게 되면 그 아내를 심상하게 품팔이시키는것도 그들이며 여자가 공부해 무엇해 하다가 현금 와서는 공부한 여자가 아니면 장가 안 가자는 것도 그들이며 여자에게 대하여 정조와 수절을 요구하면서도 기생과 과부를 필요로 하는 자들도 그들이니 이것이 무슨 모순이냐, 요컨대 현대 여자에 대한 도덕과 법률은 모두 남자들의 생활상 형편 좋도록 여자를 사역하자 함에 불과한 것이다.

이 글에서와 같이 여성의 노동은 나라의 경제, 남편의 편리에 따라 때맞추어 이용되어왔으며 이는 지금까지도 크게 변함이 없다. - P262

이러한 여성에 대한 문화적 횡포에 의해 많은 현대 여성들은 자아분열을 경험하여야 했다. 문화적 표현을 빌리면 여성은 ‘미치거나mad‘ ‘바보 dull‘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V. Wolf), ‘인형 doll‘ 이거나무작정 남자를 밀어붙여 파괴하는 ‘황소 같은 존재 bully‘가 될 수밖에 없었다(Lawrence, 1932). 여성은 여전히 ‘대화의 상대‘와 ‘잠자기상대로, 또는 어머니와 창녀로 이분화된 채 대상화되어오고 있는 것이다. 여성들은 이러한 역사적 과정의 정확한 파악을 통하여 비로소 자신들의 진정한 소리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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