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연_반려빚
정현은 다 때려치우고 싶다거나 죽고 싶다가도 그래도 저건 다갚고 죽어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죽으면 어차피 다 끝인데그걸 왜 굳이 다 갚으려는 건지 스스로가 이해 안 되기도 했지만그래도 정현은 빚진 것 없이 깨끗하게 죽고 싶었다. 자신의 부채를 언제나 부모에게 떠넘기고 싶지도 않았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해도 상속 포기를 하면 그만이겠지만 아무것도 모르는가족들이 자신의 속사정을 낱낱이 알게 되는 것이 싫었다. 늘 저거 어디 가서 사람 구실은 하고 살려나,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변변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그동안 갖은 노력을 다 했는데 빚이 일억 육천이나 있다는 사실을 들켜서는 안 됐다. 다른 가족들보다 장수를 하든가 빚을 다 갚든가 둘 중 하나는 해야만 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죄로 과로하며 살고 있으니 장수는 이미물건너간 것 같고 살아 있는 동안 빚을 다 갚는 수밖에 없었다. 빛이야말로 정현이 잘 돌보고 보살펴 임종에 이르는 순간까지지켜봐야 할 그 무엇이었다. 빚 역시 앞으로 수년간은 정현의 옆자리를 떠나지 않을 것이고, 정현이 죽었나 살았나 그 누구보다도 두 눈 부릅뜨고 계속 지켜볼 것이다. 빚이야말로 정현의 반려였다. - P206
해설 전청림_망한 삶의 천재
반려빚 시대에는 누군가에게 얼마만큼 특정한 빚을 졌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 빚을 지는 일 없이는 꾸려질 수 없다는 성찰이 중요하다. 우리의 모든 미래는 돈이 든다. 청년의 좌절과 N포를 거쳐 2020년대의 한국사회는 그야말로 희망의 불모지에 진입했다. 이 희망의 사막 속에 사는 청년에게 저출산이라는 단어는 서투르고 부족한 사회의 설명일 뿐이다. 마침내 ‘자낳괴(자본주의가 낳은 괴물)‘와 ‘돈미새(돈에 미친 새끼)‘라는 자조적 멸칭에 도달한 청년은 이제 ‘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을 냉철하게 직시하며 삶 자체가 끝없는 경제적 불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의식(食)을 갖출 돈, 집, 그 안을 채울 가구와 살림뿐만 아니라 가성비와 가심비를 만족시켜줄 온갖•정서적이고 감정적인 안정감조차 이해타산적 계산 없이는 상상될 수 없다. - P236
해설 성현아_반항하는 자는 부조리가 있나니, 그 가짜가 참되도다
알베르 카뮈에 따르면, 인간은 명확함에 대한 갈망을 지니고 있으며 이는 세계 앞에서 생겨나는 무의식적인 감정이다. 반면, 세계는 인간이 결코 이해할 수 없으며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으므로 인간의 입장에서 언제나 불명확하다. 여기에서 바로인간의 비통한 열망과 그에 응해주지 않는 세계 사이의 영원한대립이 생겨난다. 부조리란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 것 같은 열망의 맞대면"이다. 카뮈는 삶이 가치 없다고 판단하여하는 자살은 부조리를 해소해버리므로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부조리를 살려놓고 직시하며, 이에 ‘반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의 반항이란 인간이 "자신을 넘어서는 현실을 부둥켜안고 대결"하는 것이며, 이는 역설적으로 "삶에 가치를 부여"한다. 부조리를 끈질기게 인식하며 그와 집요하게 싸워내려는 열정적인 태도야말로 삶의 위대함을 회복시킨다는 것이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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