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나, 울지 않아요.
"제가, 요리를 좀 하거든요.."
3년 전 초여름 어느 주말, 친척언니 집에 초대를 받았다. 나이는 오십이 조금 넘었으니 큰 언니벌에 해당하고 엄마와 같은 수영장에 다니셨고 수영이 끝나면 같은 사우나에서 한사코 싫다하는 엄마의 등을 밀어주었단다. 엄마는 나를 늦게 낳으시는 바람에 외가의 조카들을 많이 키우셨는데 그러니까 이 언니는 엄마의 외조카의 부인으로서 나에게는 외삼촌의 셋째 아들의 부인, 즉 내 외사촌 오빠의 아내, 새언니에 해당되는 다시 말해 그다지 가까운 친척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오빠와 함께 여의도에서 고깃집을 오래 운영해 왔다.
“아가씨,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 우리 언니라 생각하며 살았거든요. 우리 언니는 형부가 일찍 가셨는데요... 형부가
시고 얼마 있다가 급성 백혈병으로 한 달 만에 갔어요... 그 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져서, 사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어
요. 언니 가고 10년이 흘렀는데요... 정말로 하루하루를 이를 악물고 살았어요... 언니 몫까지 열심히 살아보려고 했는데 저도 이거
밖에는 안 되었어요.”
울어야 할 사람은 나였는데 새언니는 나를 보자마자 서론도 없이 자신의 사연을 들려주셨다.
“누구에게 이야기 할 수도 없고, 한다고 한들 나만큼도 아니고, 이사람에게 이야기 하면 저 사람이 걸리고 저 사람에게 말하자니
이 사람에게 미안하고 결국은 나만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는 거구나... 그렇더라구요. 나만 그런 게 아니고 누구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을 때, 잠도 안 오고 밥도 먹을 수 없고 이 순간 내가 죽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겪을 일이 아니라는 생각만 들 때, 세상은 결국 더 많이 가진 자의 것이구나 싶을 때, 저는요 계속해서 내 이름 석 자만 소리
내어 불렀어요.”
그날은 엄마의 사십구재를 마친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다. 우는 것도 어지간히 지쳤을 법 한데 나는 언니의 입에서 ‘이 세상에서 제일 억울한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부터 벌써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라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계셔 보세요.”
언니는 요리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었고 음식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한 나를 위해 갖가지 찬을 마련해 상을 차려 주셨지만 나는 목이 메어 음식을 많이 먹지 못했다. 효자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더니 지나간 청승은 잘도 짝이 맞아 때마침 비까지 부슬부슬 내리는 바깥 풍경은 꼭 엄마를 잃은 나를 알아봐주는 것만 같아 서럽기까지 했다. 나는 ‘아가씨 전복죽 해드릴께요, 드시고 가세요’ 하는 손을 뿌리치며 ‘이제 가봐야죠, 쉬셔야죠’ 하며 나오려는데 아직 멀었다는 언니는 자꾸 ‘잠깐만요, 잠깐만요’하며 한 시간을 넘게 음식을 싸주셨다.
“이건 그대로 이렇게 섞어서 밥에 넣으면 되요. 흑미랑 검은콩이랑, 제가 다 다듬어 놓은 밤이랑, 그리고 이건 말린 표고버섯, 이
건 제가 만든 딸기잼, 이건 잠 안 올 때 한잔 씩 드시라고 복분자술.. 그리고 이건 우거지랑 다시마, 멸치가루를 섞어 놓은 건데 한
개 씩 냉동시킨 거니까 그냥 물에 끓이면 되요.. 이건 고모님이 우리 손주는 냉동 곶감 좋아한다 하셔서 제가 진공포장 해놓았어
요..그리고 이건 갓김치, 이건 며칠 전 담아놓은 열무김치여요...”
“잠시만요, 아가씨, 이건 우리 친정아버님이 그린 그림인데..이것도 가져가세요..장미그림 인데... 아가씨와 잘 어울려요.. 담 주에
도 꼭 오세요... 이제, 울지 마요..아가씨.."
두 손 가득 그림과 음식을 싸가지고 가면서 얼마나 울었던가. 그날을 떠올리면 아직도 내게 차려준 진수성찬과도 같은 밥상이 선해 죽는 날까지 잊지 못할 선물로 기억된다. 실감하지 못했지만 나는 그날 엄마가 해주신 음식 말고도 맛있는 반찬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것들을 내가 맛나게 먹고서 한참이나 배가 불렀다는 사실도 잊지 않고 있다.
#2. 우리, 밥 같이 먹어요.
신경숙의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 보면 주인공인 윤과 명서, 미루 세 사람이 윤의 옥탑방에 모여 아욱국과 깻잎김치를 서로의 밥에 얹어주며 머리를 맞대고 식사를 하는 장면이 있다. 윤은 처음으로 그 밥상머리에서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자신의 상처를 담담하게 알리고 미루는 그 말을 듣고 깻잎을 떼어 밥숟가락에 얹어준다. 깻잎은 바로 작가가 제일 좋아하는 반찬이면서 고향과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할 때 떠올리게 되는 음식이라 고백한 적이 있다. 나는 그때 엄마가 없는 빈자리에서 엄마가 자주 해주시던 반찬을 권하며 엄마의 죽음을 말하는 윤의 어깨를 말없이 안아주고 싶었고 엄마만큼은 아니겠지만 향이 진한 깻잎을 담아 그녀에게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데 그런 마음이 생기자 바로 책을 덮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큰소리로 울고 말았다. 바보같이 나 역시 딱 한번만 어머니가 해주시는 찌개와 깻잎, 나물들을 먹어 볼 수 있다면...그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하늘이 무너지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딸아이가 할머니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어느 날 이마트 주차장에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이제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대성통곡을 한 날, 그때도 나는 아이를 달래느라 아이의 현실적인 절망에 아이만큼 공감하지는 못했었다. 그런데 신경숙의 소설을 읽고는 엄마가 간절히 그리워서가 아니라 엄마가 만들어주던 음식을 못 먹게 된 것이 그렇게 절망스럽고 억울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그리운 심정을 뼛속깊이 알고 있기에 그들이 같이 둘러 앉아 밥을 먹을때 마치 내가 밥상을 받은 것처럼 또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신경숙은 누군가에게 손수 음식을 만들어 밥상을 차리고 소중히 대접하는 것을 세상에서 가장 인간적인 치유의 행위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나는 그녀가 차려 놓은 각종 소설속의 밥상에 매번 울고 또 항상 위로를 받는 것 같다.
#3. 당신, 손을 잡아요.
이 책 <모르는 여인들>을 덮고 나니 삼년 전 내게 밥상을 차려준 새언니와 작년에 나를 울린 윤과 미루, 그리고 살면서 나와 같이 식사를 한 모든 사람들이 벅차게 다가온다. 이 마음이 약간 뻐근하기까지 한 이유는 내가 좀 신경숙의 작품으로부터 청승을 그만 떨어야지, 하는 쓸데없는 다짐 같은 게 있어서 였나 싶다. 더 이상 애도하거나 위로받고 싶지 않은 독자로서의 이상한 자존심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가 보다. 그것은 아마도 작가가 누구보다 우리들의 서럽고 누추한 마음 깊은 한 구석을 훤하게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은 아닐까. 아무리 논리로 이해하고 옳다고 동의하고 속상하다 슬퍼했다손 치더라도 어딘가 남아있는 불신과 서운함, 쓸쓸함, 먹먹함, 이런 감정의 찌꺼기들이 모여진 분해되지 않는 쓰레기 창고 같은 마음 그곳을 정확하게 두드리기 때문은 아닐까.
7편이 모두 나의 맨발이고 나의 맨손, 나의 맨몸을 향하는 듯하다. 그 벌거벗은 내 초라한 몸뚱아리에 무언가 엄마의 손길 같은 삶의 보자기 하나를 덧씌워주는 듯하다. 신경숙의 소설은 우리들 각자가 드러내고 싶지 않는 서러운 누추함을 지나치지 않고 따스한 체온으로 감싸주는 고마운 담요와도 같다. 거리의 노숙자는 신문지 한 장으로도 겨울밤을 견딜 수 있다고 하는데 마음이 춥고 가슴이 시려워 도저히 내일이라는 아침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사람에게 기꺼이 내 살 같은 온기를 선사한다. 달리 거창하게 빗댈 것 없이 소설의 힘이고 신경숙의 힘인 것 같다. 하필 한 해를 정리하고 모두가 따스한 온기로 서로가 살아온 한 해를 격려해야 할 이때 분노와 상처로 눈물 흘리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을 부디 권한다. 살면서 먹지도 못하고 말하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사람을 만나지도 못하는 순간들이 누구에게도 닥쳐온다. 그렇게 야속하게 눈 내리는 길바닥에 스스로 버림을 당하는 날이 내게만 오지 말란 법은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지금 이 찬 겨울 어디에서, 왜, 얼마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사람에게 반드시 손을 내밀어 줄 것이다. 소설을 믿고 그녀를 믿고 우리의 연결을 믿기 때문에. 나 또한 그 내민 손을 잡아 보았기에, 감히 전해드린다. 당신도 곧 따스해 질 것이라고. 얼굴도 이름도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모르는 당신이지만 나처럼 다시 웃을 수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