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가죽소파 표류기 - 제3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정지향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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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향이 누구지? 대학소설상은 뭐지? 낯선 이름들이 주는 무기대 속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을 덮을 즈음에는(사실 전자책으로 봤다) 이 책이 좋아졌다.
자취방에 혼자 남은 막막함을 그린 문장을 보면서, 내 자취시절을 생각했다. 그때 내게 돌아갈 가족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지금 내가 얻은 것들은 운좋게 내가 갖고 있던 것들의 지지가 없었다면 과연 내 것이 될 수 있는 것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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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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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망설임 없이 추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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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이 멋지다거나 잘 직조된 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데, 아 이런 방식으로 바라볼 수 있구나 싶은 반짝이는 통찰이 있다. 번지르르한 겉모습에 관심 없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인 듯.
한국에서 가장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김혜리 기자라고 답했다는 부분이 있어서 김혜리 기자 책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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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언어 없음이 아니라 세상은 언제나 잘 굴러가고 있다고 스스로 안심시키는 심리, ‘고상한 삶’을 추구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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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미 배드 미 미드나잇 스릴러
알리 랜드 지음, 공민희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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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만을 기대하고 책을 펴들었는데, 읽어가며 점점 가슴이 아파졌다.

 

아이 아홉 명을 차례로 납치, 학대 살해한 엄마와 함께 살며 지속적인 학대를 받았던 열다섯 살의 애니. 경찰에 엄마의 범죄사실을 신고한 후 이름을 밀리로 바꾸고 심리학자인 마이크 아저씨의 집에서 마이크의 부인인 사스키아 아줌마, 그리고 동갑내기인 딸 피비와 함께 살게 된다. 밀리는 가정사를 숨긴 채 학교에 다니면서 마이크와 상담치료를 받고, 엄마의 재판에 증인으로 설 준비를 시작한다.

 

이것은 마음 속의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 이야기다. 인디언의 전설이라는데, 내 마음속에는 착한 늑대와 나쁜 늑대가 살며, 언제나 이기는 건 내가 먹이를 주는 쪽이라는 이야기.

아주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너를 기억해>에도 늑대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날 이현(서인군)의 강의를 듣고 난 한 학생이 이현에게 묻는다. 싸이코패스는 유전되나요? 그 학생은 자신도 아버지처럼 살인마가 될까봐 두려워하며 살아가는데, 이현 역시 자신이 싸이코패스가 아닌지 의심하며 살아왔기에 그 마음을 안다. 이런저런 사건 후 입원한 학생에게 이현이 선물해준 책이 바로 그 책이다. 늑대이야기(드라마에 나온 동화책을 찾아봤는데 검색이 안 된다ㅠㅠ).

 

이것은 유전적 요인보다 환경적 요인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유전은 늘 생각보다 많은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100퍼센트는 아니다. 80퍼센트가 아니라 99퍼센트라 할지라도, 1퍼센트의 희망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그러니 이것은 1퍼센트의 희망을 붙잡고 싶은 사이코패스 살인마의 자식에게, 지지 말라고, 넌 이겨낼 수 있다고, 포기하지 말라고 외치는 격려의 메시지다.  

사람들은 아름다움에 눈이 멀어 끌려들게 된다. 밝은색 청개구리에게 거미가 달려들 듯, 머리 부분의 아름다운 푸른색이 먹잇감을 끌어들이듯. 거미줄은 끈끈하고 굵직하다. 알아차린 뒤에는 너무 늦다. ‘뭘 알아차려요, 엄마?’ 엄마는 미소 지으며 내 허벅지를 세게 꼬집고는 이렇게 말했다.

도망칠 곳은 없어.’

엄마의 목소리. 엄마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은 매혹적이고도 두렵다. 나는 도망치지 못하는 눈먼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난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101)

 

사이코패스의 뇌는 보통 사람과 다르다. 나는 내게 주어진 확률을 생각해보았다. 80퍼센트가 유전이고 20퍼센트는 환경적 요인이다.

 

그러니 나는,

100퍼센트다.

 (104)

 

법정에 나가서 엄마를 마주하는 일은 엄마가 죽인 아이들을 돕는 내 방식이다. 책임을 지는 나만의 방식이다. 아저씨는 생존자의 죄책감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것이 실제보다 더 비난받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고 알려주었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너는 아이들이 죽은 게 네 탓이라고 여기는 것 같아. 그렇지?”

잘 모르겠어요.”

난 이어서 대답했다.

가끔은 그래요.”

(중략)

어린 시절의 네게 위로가 될 만한 말을 건넨다면 뭐라고 하겠니?”

모르겠어요.”

생각해봐. 어떤 말을 듣고 싶어?”

난 엄마와 다르다는 말이요.

언젠가는 끝날 날이 온다고요.” 

 (189)

 

그러나 15년을 함께 살며 세뇌와 학대를 당해 온 밀리가 엄마에게서 벗어나는 게 쉽겠는가? 애정에 굶주린 아이는 아주 작은 애정표현을 얻기 위해서라면 인생을 걸기도 한다. 학대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해 엄마를 신고했고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로 엄마를 그리워하고, 또 그러면서도 엄마를 그리워하는 자신을 질책하는 밀리의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밀리는 늘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밀리가 누구의 딸인지 아는 사람들에게는 자칫 역시 그 엄마에 그 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까봐 늘 조심해야 하고,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을 필사적으로 숨겨야 한다. 그건 십대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외롭고 버거운 시련이다. 어쩌면 학대받으며 살아온 세월에 비견될 만큼이나. 밀리의 시선에서 일인칭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독자는 어느 한순간 밀리가 무너져 버릴까봐 조마조마해진다. 밀리는 위태위태하게 새로운 생활을 이어간다.

 

 

 런던이라는 큰 도시에서 넌 그냥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일 뿐이란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누구에게도 네가 누군지, 네 엄마가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말해선 안 된다는 거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겠니?”

난 알겠다고 말했고 지금도 그 약속을 지키고 있지만 그때는 그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 몰랐다.

(197)

 

난 부끄럽고 바보가 된 듯하면서도 엄마에 대한 욕망을 극복한 것 같았다. 드물게 기분이 좋을 때 엄마는 내 머리를 곱게 빗어주며 내가 얼마나 예쁜지 말해주었다. 그러면 나도 내가 예쁘다고 느꼈다. 엄마가 좋은 것을 해줄 때면 항상 내가 더 예뻐진 것 같았다.

어디서 혼란이 생겼는지 알겠구나. 켐프 선생님을 몇 번 만나봤는데 정이 많고 아주 친절하셨어. 하지만 선을 긋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도 중요해. 아저씨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니?”

(중략)

전 그냥 선생님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었어요.”

선생님한테 엄마가 되어달라고 한 게 아니에요.

선물한 것은 아주 사려 깊고 착한 행동이지만 그냥 고맙다고 말만 전하는 게 나았을 거야.”

난 혀를 깨물어 날카로운 아픔을 척추 아래로 보내 몸속에 연결된 신경으로 전달했다.

밀리, 아무도 널 책망하지 않아. 네가 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당연하거든.”

그렇게 또 내가 남과는 다르다는 점이 부각되고 말았다.

네가그런 기분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니.

  (240-241)

 

밀리는 자신이 겪은 끔찍한 일들로 인해 자신이 사랑받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상냥한 마이크 아저씨에게 의지하지만, 마음을 솔직히 내보이지 못한다. 재판이 끝나고 나면 떠나야 할까봐 불안에 시달린다. 고작 열다섯 살의 아이에게서 나는 지쳤다. 너무 지쳤다.” (357)라는 말이 나오게 한 엄마, 그들을 내버려두고 떠나버린 아빠, 엄마로부터 먼저 도망쳐버린 오빠에게 분개하게 된다.

 

난 한동안 바닥에 앉아 별 하나만 덩그라니 떠 있는 겨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쳐다보니 별은 사라지고 없었다.

별은 내가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

  (246)

       

나는 아저씨가 날 고칠 수 없다고, 이런 내가 싫고 내 속에 나쁜 내가 있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었다.

(360)

 

특이하게도, 이 소설에는 가해자로서의 남자가 등장하지 않는다. 마이크 아저씨는 중요한 인물이고 상냥하지만, 무능하다. 그는 심리학자이지만 아내와 딸의 마음도, 밀리의 마음도 제대로 대면하지 못한다. 이것은 자신들 사이의 문제를 어른들에게 숨기는 청소년들의 이야기이지만, 또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밀리는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남자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 그녀는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애쓰고, 강간과 원치 않는 임신으로부터 모건과 클로딘을 구원한다.

 

밀리는 자기 자신도 구원할 수 있을까? 엄마에게 지배당하던 자신의 마음을 되찾을까? 착한 늑대를 살찌울 수 있을까? 이 모든 질문에 대해 답을 하기에는 밀리는 아직 너무 어리다. 앞으로 밀리가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하고 응원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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