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코 좀 뚫어주세요 - 수면장애, 두뇌발달 저해, 성장장애의 원인과 치료법
기카와다 토오루 지음, 요시타케 신스케 그림, 황미숙 옮김 / 예문아카이브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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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한 이후 아이가 콧물을 달고 산다. 밤에는 코가 막히고 목 뒤로 코가 넘어가는지 기침을 하느라 잠을 잘 못 잔다. 병원 가서 약 처방 받고 먹어도 좀 나아지는가 싶으면 다시 새롭게 시작이고.. 어린이집과 콧물은 함께라더니. 열이 안 나고 폐렴이나 후두염 등 문제만 없으면 큰 걱정은 아니지만, 잠을 푹 못 자서 아이도 부모도 힘들다.

 산책 중 도서관에 들러 신착도서 코너를 훑는데, 이 책이 딱 눈에 띄었다. 음? 이 귀여운 그림체는? 익숙하다 싶었더니 요시타케 신스케다. 오호! 바로 대출.

 비염으로 대표되는 코막힘의 원인, 문제점, 해결방법까지 쉽게 설명해 주는 가벼운 책이다. 정말로 가볍기 때문에 가볍게 읽히지만 별로 특별한 건 없다.

 낮에는 괜찮더라도 밤에만 코가 막혀 수면에 방해를 받는 '숨은 코막힘'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수술까지 갈 정도가 아니라면 코세척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

 그러고 보니 나도 입 벌리고 자는 경우가 꽤 있는 것 같은데 숨은 코막힘인가.. 남편이 비염이라 나는 괜찮다고만 생각했지 숨은 코막힘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안 그래도 어린이집 엄마들이 코세척기를 추천했는데 한번 써봐야 하나.

 아이는 아직 너무 어려서 코세척은 못하는데 그렇다면 가습밖에 답이 없는 듯.. 환절기 지나고 나면 좀 나아지길 빌 수밖에. 제발 좀 떨어져라 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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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9-04-18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비염을 달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코감기에 걸렸을 땐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정말 괴로워요. 이 책 속에 있는 내용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져요. 이 책을 봐야겠어요. ^^

독서괭 2019-04-19 07:30   좋아요 0 | URL
음.. 부모를 대상으로 “성장기 아이의 코막힘이 얼마나 많은 문제를 가져오는지, 그러니 조기 발견과 치료가 얼마나 중요한지”을 강조하는 책이라 별로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비염.. 환절기에 특히 괴로우시겠군요 ㅜㅜ
 
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한은경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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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름다운 책이다.

팟캐스트 책읽아웃 삼천포책방을 듣다가 김하나 작가가 좋아하는 책이라고 언급하고 지나가서 보관함에 담아두었는데, 절판되었고 마침 도서관에 있어 빌려보게 되었다. 내용도 전혀 몰랐는데, 공교롭게도 이 소설의 주인공은 직전에 읽은 <악의 해부>에서 다루고 있는 홀로코스트에서 살아남은 유대인이다.

레오폴드 거스키는 나치를 피해 고향을 떠나 3년이나 없는 존재처럼 숨어 지낸다. 그는 사랑을 잃고, 혈육을 잃고, 고향을 잃고, 첫 작품을 잃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된 것 같은, 자신이 죽어도 누구도 알지 못할 것만 같은 불안 속에서 살아간다.
또다른 화자 알마는 십대 소녀다. 그는 자신의 이름의 유래가 된 <사랑의 역사> 속 주인공 알마가 실존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찾아나선다.
한편에서는 레오폴드가 이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분투하고, 한편에서는 알마가 죽은 아빠를 그리워하는 엄마를 위해 두사람의 사랑의 증거인 <사랑의 역사>에 대해 파헤친다. 접점에 이르러, 레오폴드는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존재를 회복한다.

그냥 읽어도 좋은 소설이지만, 옮긴이의 말을 보면 나로서는 파악하기 어려운 퍼즐 조각들이 많이 숨어 있는 모양이다. 많이 아는 이는 더 많이 즐길 수 있겠다.

다시 출간되면 사서 소장하고 싶은 책.

엄마는 아빠와 처음 만났던 여름만큼이나 생생하게 아빠에 대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 인생은 포기해 버렸다. 엄마는 복잡한 생명체로서는 유일하게, 며칠 동안 물과 공기만으로 버틸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의 이름을 딴 종(種)의 원조가 될 만도 했다. 조각가이자 화가인 알베르토 자코메티가 머리만 그리려면 전신을 포기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줄리언 외삼촌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파리 하나를 그리기 위해 모든 풍경을 포기해야 한다. 처음에는 나 자신을 한정하는 것 같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하늘을 전부 가진 척하는 것보다는 어떤 것을 아주 조금만 갖는 편이 우주에 대한 특별한 감정을 더 깊이 느낄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엄마는 이파리나 머리를 선택하지 않았다. 엄마는 아빠를 선택했고, 아빠에 대한 그 하나의 감정에 기대고 싶어서 이 세상 전부를 희생했다.
-67쪽

죽음의 두려움은 1년이나 지속되었다. 나는 누가 유리잔을 떨어트리거나 접시를 깨도 울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도저히 벗겨낼 수 없는 슬픔에 빠졌다. 또 다른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니다. 더 절망적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늘 나와 함께 있는 무언가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마치 발목에 돌멩이를 매단 것처럼 난 이 의식을 질질 끌고 다녔다. 어딜 가더라도 따라왔다. 머릿속으로 슬픈 노래를 만들곤 했다. 떨어지는 이파리를 애도하는 노래도 불렀다. 내 죽음을 백가지로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장례식은 늘 같았다. 내 상상력의 어딘가에서 붉은 양탄자가 깔렸다. 죽을 수 있는 모든 방법으로 비밀스럽게 죽지만 나의 위대함은 늘 밝혀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인생이 마감될 수도 있었을 텐데.
-177쪽

한 번은 내가 아무 데라도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전에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이민자였고, 그들이 나를 찾으러 오리라는 두려움을 극복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살수를 저지르면 어쩌나 하고 두려워하며 살았다. 표를 어디에서 사야 하냐고 묻지 못해서 기차를 여섯 대나 놓친 적이 있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그냥 기차에 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은 그러지 못한다. 화장실 물을 내리는 걸 깜빡해도 쫓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편안해지고 싶었다. 자물쇠를 잠그고 여는 게 내 직업이다. 고국에서는 자물쇠를 여는 건 도둑의 일이었다.
하지만 여기 미국에서 나는 전문가였다.
-184쪽

고독할 때 세계의 문이 아무리 잠겨 있다 하더라도 절대로 나에게는 잠긴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되었다.
-186쪽

전쟁이 끝났다. 그는 누이 미리엄과 부모와 다른 네 명의 형제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도 조금씩 알게 되었다.(큰형 안드레의 경우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염두에 두고 추측만 할 따름이었다.) 리트비노프는 진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웠다. 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같이 사는 것이다. 그건 코끼리와 함께 사는 것과도 같았다. 그의 방은 작았다. 아침마다 화장실에 가려면 진실 옆을 간신히 돌아가야 했다. 팬티를 입으러 옷장에 갈 때는 진실이 그의 얼굴에 주저앉지 말기를 기도하며 진실 아래로 기어가야 했다. 밤에 눈을 감을 때면 진실이 위에서 배회한다고 느꼈다.
-219쪽

3년 후에 어머니도 잃었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보았을 때 어머니는 노란 앞치마를 입고 가방에 물건을 싸고 있었다. 집은 난장판이었다. 어머니는 숲으로 가라고 말했다. ˝가!˝ 나는 어머니의 말에 순종하기에는 이미 나이가 많았지만 아이처럼 따랐다. 어머니는 다음 날 오겠다고 했다. 우리 둘 다 아는 숲 속의 장소를 골라두었었다. 인간적인 면이 있다면서 아버지가 좋아했던 커다란 호두나무였다. 굳이 안녕이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나는 더 쉬운 쪽을 믿기로 했다. 기다렸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어머니가 스스로 짐이 되리라 생각했다는 것을 너무 늦게야 깨닫고 그 죄의식에 억눌렸다. 빌뉴스에서 공부하던 프리치도 잃었다. 오, 하느님, 누군가를 아는 누군가가 말하기를 그가 기차에 탄 것을 본 게 마지막이라고 했다. 사리와 한나는 개들에게 잃었다. 헤르셸은 비에 잃었다. 요세프는 시간의 틈에 잃었다. 웃음소리를 잃었다. 신발을 잃었다. 헤르셸이 준 신발을 잠결에 벗었는데 일어나 보니 신발이 사라졌다. 며칠 동안 맨발로 다니다가 남의 것을 훔쳤다. 사랑하고 싶었던 유일한 여자를 잃었다. 시간을 잃었다. 책을 잃었다. 내가 태어난 집을 잃었다. 그리고 아이작을 잃었다. 그러니, 살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정신까지 잃는 지경에 이를지도 모른다.
내 책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를 알리는 표식이라고는 오직 나뿐 이었다.
-237-2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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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읽어야 할 한국대표소설’이라 하여 단편 한편씩 실린 이북을 권당 100원에 90일 대여를 하고 있다. 오! 그렇다면 1부터 쭉 읽어봐야지 하고 일단 1-5까지 대여해서 모두 읽었다. 휴대폰으로 틈틈이 읽을 수 있고 3-40쪽 정도라 부담없어 좋다.
그런데 참.. 어쩜 다섯 편에 나오는 남자들이 하나같이 한심스럽고 여자들의 운명은 한숨 나오게 답답한지. 읽다보니 고등학생 때 다 읽었던 작품들인 것 같은데 지금 읽으니 또 느낌이 다르다.

<벙어리 삼룡이>의 삼룡이네 주인나리 아들은 버릇없고 못났으면서 그 탓을 아내에게 돌리며 폭력을 일삼은 개쓰레기다.

<술 권하는 사회>의 주인공은 공부한다고 아내를 몇년씩 독수공방 시켰으나 결국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절망에 빠져 술만 마시는 사람,
<치숙>의 화자의 고모부는 아내 버려두고 첩이랑 바람피우고 사회주의 하다가 감옥 다녀와서 몸이 아프니 아내 수발이나 받으며 집에 드러누워 있는 사람.
아니 신념 다 좋은데 그럴 거면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내가 아주 싫어하는 부류가 입으로만 정치 비판 사회 비판 진보가 어쩌고 하면서 술 퍼마시고 집에서 혼자 애보며 기다리는 아내는 생각 안 하는 인간들. 인권이니 평등이니 하면서 가정 내 평등에는 아무 개념도 없는 인간들이다.

<감자>의 복녀네 남편은 위에 두 사람처럼 무슨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게을러서 일을 안 한 채 복녀가 몸 팔아 버는 돈으로 희희낙락 하는 말종이다.

<깨뜨려지는 홍등>의 여인네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고 포주에게 피를 빨리며 살아간다.

사진 중 앞 2장은 <치숙>의 일부분, 뒤 2장은 <깨뜨려지는 홍등>의 일부분이다.

그래도 놀라운 건 이 시대 작가들이 여성이 받는 취급에 대해 상당히 부당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었다고 느껴지는 것.
관심이 생겨 도서관에서 <조선의 페미니스트>를 빌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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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의 독서 중독자들 사계절 만화가 열전 13
이창현 지음, 유희 그림 / 사계절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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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자가 아니지만 꽤 재미있게 읽었다. 마들렌 에피소드가 제일 재밌었음. 막판 스토리가 황당하긴 한데.. 독서+병맛 코드의 신선함만으로도 별 네개는 충분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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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4-11 1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반에는 창대하였으나 후반으로 갈수록
병맛이 파도처럼 몰려 들더군요.

그냥 처음 페이스 대로 갈 것이지...

독서괭 2019-04-11 17:2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냥 독서중독자인 거 빼면 평범한 캐릭터들로 쭉 갔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배틀그라운드 - 낙태죄를 둘러싼 성과 재생산의 정치
성과재생산포럼 기획, 백영경 외 지음 / 후마니타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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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1일, 바로 내일 낙태죄 헌법소원에 대한 헌재 결정이 내려질 예정이다.

급히 다른 책을 미뤄두고 이 책을 펴들었는데, 12명의 저자가 쓴 12개의 글 중 6개를 읽었으니 딱 절반이다. 낙태죄를 둘러싼 논의들을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보여주고 있어 아주 흥미롭다.

 

1. 백영경, 프롤로그 -  낙태죄 폐지가 시대의 상식이 되기까지

 

결국 재생산권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구체적인 맥락이나 현장을 두고 지금 여기에서 이 여성이 스스로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억압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를 묻는 데 있다.

- 17쪽

 

2. 이유림, 낙태죄를 정치화하기

 

 낙태죄가 과연 고결한 생명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지고 유지되어 온 것인가. 이 글은 거기에 정면으로 반박한다. 생명 보호라는 절대적 윤리를 내세우기에는 얼마나 많은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지. 낙태죄가 결국 여성과 성에 대한 억압, 가족계획을 통한 인구 관리 등의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음을 꼬집는다.

 

혼전 임신에 따른 낙태는 문란한 성생활이나 문제적 섹슈얼리티의 기표로 여겨지며, 사문화된 법이 처벌하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응징하고 징벌해야 하는 사건이 된다.  (...) 반면, 이와 다르게 응징하고 징벌해야 할 사건으로 여기지지 않는 낙태도 존재한다. 이 서사에는 주로 기혼 여성의 임신중지가 소환된다. 가정의 경제적인 부담을 덜기 위해, 남편과 가족 구성원의 암묵적 동의를 얻어, 자녀의 터울 조절이나 단산을 목적으로 임신을 중지하는 것이 그 예다.

(중략)

임신중지라는 사건은 동일하게 나타나지만, 이 두 서사는 전혀 다르게 이해되며 실제로 다른 문제로 배치된다. 그러나 만약 여성이 임신을 중지하는 행위가 생명윤리라는 어떤 자명한 준거에 의해 용납할 수 없고 국가가 규율하고 처벌해야 할 사건이라면, 그가 어떤 여성인지, 임신을 중지하는 사유가 무엇인지, 그의 태도가 어떠한지는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 34-35쪽

 

인구 조절을 위해 낙태가 광범위하게 시행되었던 가족계획 운동의 역사가 있는 한국 사회는 사실상 낙태를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환경에 있었다. 앞서 언급했듯, 한국 사회에서는 낙태라는 행위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정상가족주의와 성적 규범을 유지하는 것이 구심이었고, 정말 엄밀하게 모든 낙태를 근절하고 처벌하겠다는 의지가 있다기보다 오히려 '출산이 더 문제가 되는 임신'을 비가시화된 사적 영역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유도해 왔다.

- 41쪽

 

"여성이 완전무결한 피해자가 아닌 이상 법은 여성 편에 서지 않는" 수많은 울분과 치욕 앞에서, 보다 근본적인 정치적 도전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은 임신중절에 대한 규범화된 성적 각본의 폐기로부터 시작될 수 있다.

- 47쪽

 

3. 윤정원, 인권과 보건의료의 관점에서 본 임신중지

 

 산부인과 전문의가 쓴 글로, 낙태죄가 실제 낙태를 줄이는 효과가 없고, 오히려 불법적인 낙태 시술, 낙태죄가 허용되는 외국에서의 낙태 시술을 감행하게 하며 산모의 건강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낙태죄가 폐지된다고 하여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자료를 제시하며 반박한다.

 솔직히, 낙태죄가 폐지되면 낙태가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 이건 여성들을 바보 취급하는 것이다. 아무리 의료진에 의해 안전하게 시술을 받을 수 있다고 해도, 누가 임신중절을 하고 싶어하겠는가? 누가 하던 피임을 그만두고 마구 성행위를 한 다음 아무렇지 않게 임신중절을 하겠는가? 처벌이 되든 안 되든, 여성들은 자기의 온 인생을 걸고 결정한다. 또한 임신중지를 하지 못하고 시간만 보내다가 결국 저지르게 되는 영아살해죄의 건수는, 낙태죄가 폐지되면 줄어들게 되지 않을까?  

 

 

2018년 기준 OECD 36개국 낙태법을 비교해 보면, 한국보다 임신중지가 어려운 나라는 칠레뿐이다. 흔히 임신중지가 쉬워지면 임신중지율이 높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공시적으로나 통시적으로 임신중지의 합법화 정도와 임신중지율은 상관관계가 없음이 밝혀져 있다. 전 세계에서 임신중지율이 가장 낮은 곳은 북미와 북서부 유럽인데(가임기 여성 1000명당 각각 17, 18꼴), 둘다 임신중지가 합법적으로 허용되는 지역이다.

- 58쪽

 

프로라이프는 태아의 생명을 봏해야 한다고 하면서 인공임신중절 클리닉에 폭탄 테러를 하여 의사와 여성들을 죽이며, 그들이 발의하는 법은 여성을 감옥에 가게 하고 여성의 가족이나 태아의 미래는 안중에 없다. 프로초이스의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배아와 태아는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으며, '국가는 내 몸에서 손 떼'라는 슬로건은 안전한 인공임신중절과 재생산 건강을 위해 국가가 가져야 하는 공중보건적 책임을 무화시킨다.

- 62쪽

 

프랑스 보건부 장관 클로드 에벵은 "나는 임신중지 논쟁이 여성에게서 의학 진보의 결과물을 빼앗아 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 지금부터 미페프리스톤은 단지 제약 회사의 상품이 아니라 '여성을 위한 도덕적인 상품'임을 프장스 정부가 보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결국 미페프리스톤은 1990년 2월 '미프진'이라는 상품명으로 병원에서 판매되기 시작한다.

- 71쪽

 

출산이든 임신중절이든, 그것이 진정 여성의 오롯한 선택이었던 적이 있는가. 낙태 근절 비디오가 아니라 월경주기와 가임기 계산법을 학교에서 배우고, 약국에서 약사와 눈 마주치며 "피임약 주세요"라고 말할 수 있고, 파트너의 성기에 내가 좋아하는 향의 콘돔을 끼울 수 있고, 임신했다고 학교에서 퇴학당하지 않고,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출산을 지원받을 수 있고, 임신중절과 출산에 똑같이 건강보험을 적용받고, 무엇을 선택하든 소독된 진료대 위에 누워 경험 있는 의료진에 의해 안전하고 적절한 시술을 받을 수 있고, 아이 걱정 없이 직장에 다닐 수 있고, 내 아이가 엄마만 있는지 부모가 다 있는지에 따라 차별받지 않을 때, 우리는 출산을 '선택'할지 임신중지를 '선택'할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 79-80쪽

 

 

4. 최현정, 낙태와 헌법 논쟁

 

 법 관련 내용이라, 특별히 법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가 아니라면 읽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태아의 보호 여부는 심지어 배우자가 낙태 수술에 동의했는지 여부에 의존한다. 강간이나 준강간으로 인한 임신의 경우에도, 태아의 보호 가치는 윤리적 이유 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동의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여기에서 배우자는 누구일까? 여성의 법적 배우자인가? 태아의 생부(성폭력의 가해자)를 의미하는가? 배우자가 없는 여성은 누구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가?

- 91쪽

 

 

5. 나영, 생육하고 번성하라, 축복인가 명령인가

 

 종교계, 특히 피임과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카톨릭이 얼마나 많은 여성을 위험으로 내몰았으며, 또한 종교가 어떻게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정치를 이용하여 왔는지 보여준다. 가장 흥미롭게, 또한 열받으며 읽은 장이었다. 얼마 전 기사에서 염수정 추기경이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는 글을 읽었다. 낙태 합법화가 여성 위한 배려가 아니라고.. 코웃음 뿡이다.

 

니카라과의 로시타는 코스타리카에서 이주 노동을 하던 중 성폭력으로 임신했으나, 정부와 교회의 압력으로 우여곡절을 겪었다. 로시타와 그의 부모는 인공유산 시술을 받기 원했지만, 두 나라의 정부와 교회가 모두 나서서 압력을 가했기 때문이다. 결국 로시타는 여성단체들의 연대와 싸움을 통해 "치료적 임신중절"이라는 명목으로 겨우 임신을 중지할 수 있었지만, 이후 니카라과의 대주교가 이에 개입한 모든 사람을 파문하겠다고 발표했고, 결국 2006년 니카라과 의회는 치료적 임신중절마저도 금지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 117쪽

 

 

"인간 생명" 회칙에서 교황 바오로6세는 "피임 방법 사용에 습관을 들인 남편은 아내를 존경할 줄 모르며, 아내의 몸과 마음의 균형을 무시하고 아내를 자기 정욕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아, 아내를 존경과 사랑으로 대해야 할 동료로 생각하지 않게 된다"고 경고하지만, 과연 피임과 임신중지를 모두 금지한 대가는 결국 누가 치르게 되는가.

- 119쪽

 

- 피임하는 남편은 아내를 존경하지 않는 거라고? 이런 발상은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레이건은 임신중지 금지를 약속하고 대통령이 되었고, 부시 정부는 임기 내내 임신중지와 피임 문제를 위기 때마다 쟁정화했다. 로 대 웨이드 판결 이후 3년 만에 임신중지에 관한 연방 정부의 기금 사용을 금지하는 하이드 수정안이 통과되었고, 프로라이프 단체들은 레이건 정부에 헌법상으로 임신중지를 금지하는 인간 생명 수정안을 제정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의 막대한 자금력과 정치적 동원력은 오늘날까지도 공화당 정책의 중요한 동력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각 주의 법과 정책을 후퇴시키고 현재 트럼프 행정부에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는 시도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 127쪽

 

성 윤리를 단속하고' 죽여도 되는 생명'과 '절대적인 생명'을 구분하여 처리할 명분을 만들어 주는 일, 출산과 임신중지를 통제하여 특정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금기와 인구 관리를 적절히 관리하는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역사 속에서 종교가 수행해 온 핵심적인 역할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때로는 전쟁을, 때로는 우생학을 지지해 온 역사, 태야의 생명은 절대적인 위치에 두면서 강력한 임신중지 처벌의 혀닐에서는 자가 낙태나 안전하지 못한 시술로 죽어 가는 수많은 여성의 생명은 외면해 온 역사가 마치 불변의 원칙처럼 제시되는 종교적 생명윤리 속에서 모순적으로 공존해 왔다. 어느 시대, 어떤 종교이든 종교계의 입장은 정치적으로 중립적이지 않았으며, 따라서 종교적 입장에 기반을 두고 있는 윤리가 같은 믿음을 지니지 않은 이들에게까지 절대적이거나 보편적인 윤리로 제시되어야 할 이유도 없다.

- 135-136쪽

 

 

6. 류민희, 낙태의 범죄화와 가족계획 정책의 그림자

 

 해외의 사례들, 그리고 역사적 맥락을 통해 태아의 생명권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계속하여 변화해 왔음을 보여준다. 또한 인구정책이 여성의 자율성에 제동을 가해 왔다는 것을 지적한다. 

 

압도적으로 많은 사례에서 배아와 태아의 절대적 생명권을 인정하지 않음에도, 낡은 형법을 두고 '낙태가 범죄인가 혹은 합법적인가'를 다룰 수밖에 없는 법적 논증은 결과와 상관없이 사회적 담론과 언어를 제한해 왔다. 발달단계의 세포인 배아가 실제 비율과 맞지도 않는 큰 사진으로, 혹은 실제 낙태와는 거리가 먼 출산 직전의 태아 사진으로 낙태 관련 언론 기사에 등장하고, 여성은 트라우마적 상황에서 의료인에 의해 구원받는 '위험에 처한 여성'으로 판결문에 등장한다. 생식능력을 개인의 자율성에 따라 통제할 수 있게 된 여성, 함께 그 혜택을 받은 파트너와 다른 자녀들의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 148쪽

 

과연 인구정책과 여성운동은 화해할 수 있을까? (...) 인구정책 자체도 사실은 권리의 문제, 즉 미래의 권리에 입각한 것이며, 집단의 권리에 대한 공리주의적 입장에서 나온 것이다. 이 전제 아래 출산력 제고에만 집착한다면 여성의 자율적 결정은 그가 속한 커뮤니티의 미래를 제한하지 않는 조건에만 정당화되는 것이 된다. 많이 낳아도 안 되고, 적게 낳아도 안 되고.

- 158쪽

 

 

내일 헌재 결정이 어떻게 나올지 몹시 궁금하다. 법조계 예측처럼 헌법불합치 결정이 나올까? 결정 이유는 얼마나 진일보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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