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필로테라피 1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이지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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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은 반은 오빠고 반은 아빠인, ‘와빠같은 오빠 때문에 제 방을 가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난을 탓할 수도 있겠으나, 작은방은 syo겐 늘 내 방이었고, 그 안에 자기 책상도 놓여있지만 동생에겐 늘 오빠 방이었다. 제 오빠가 대학을 다니러 서울로 올라갔을 때, 동생은 얼마나 좋았을까. 공식적으로 방의 점유권을 양도하는 절차는 없었지만, ‘실효적 점유를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실효적 점유는 굉장히 실용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니, 방학을 맞아 돌아왔더니 이미 우리 집엔 내 방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건 누가 봐도 동생의 방이었다. 여전히 내 방이겠거니 하고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방을 둘러친 포스터 속, 도합 서른두 개의 눈동자가 거란족 오랑캐를 바라보는 고려군마냥 기세가 등등하여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데, 당혹스러운 마음에 , 저것들 다 뭐야.” 소리를 질렀더니 덤벼들 듯 대답하는 동생. “여봐요, 저것들이라니. 우리 동방신기 오빠들한테!” ..... 니 오빠는 동방신기가 아니라 syo잖아.....

 

syo는 동방신기의 다섯 멤버를 정확히 구분하고 동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포스터 속 인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0.5초 안으로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앉지도 못하고 서서 치열하게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네들의 이름은, 보수의 심장이라는 도시에서 남중 남고 생활을 포함, 가부장가부장 스무 해를 살아온 남자가 입에 올리기에는 뭔가 낯부끄러운 구성이라서 교육시간은 자꾸만 길어졌다. “봐봐, 이 분은 누구셔.” “준수....” “무슨 준수셔.” “.....시아준수.” “그럼 저기 저 분은 누구시라고?” “.....키 유천” “?” “.....미키.....” “, 진짜! 미키 아니라 믹키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오빤 왜 이렇게 배우는 게 느려?” ..... 그러니까 이건 모르고 느린 게 아니잖아.....

 

어느 날인가는 물었다. “, 너는 나랑 동방신기랑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건질 건데?” 동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무슨 수로 건져. 내가 죽는다.” 역시 syo의 동생. “그럼, 나랑 동방신기랑 물에 빠졌어. 그래서 니가 기도를 한 거야. 하느님이 바다를 갈라준다네? 그럼, 내가 빠진 데를 가를 거야, 동방신기가 빠진 데를 가를 거야?” 동생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몇 명 빠졌어?” “?” “동방신기 오빠들, 몇 명 빠졌냐고. 다섯 명 다 빠졌어?” 세상에, 동생년 업어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잖아.....

 

그런 이유로 syo는 일찌감치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싫었다. 애기 땐 참 귀여운 아이였는데, 저런 되바라진 초6이 되고 말다니. 내 동생을 돌려주고 동방으로 꺼져버려, 이 한류스타들아...... 그러나 한류스타들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자꾸자꾸 태어나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아이돌이 아이돌 아닌 가수보다 많아졌고, 어어어 하는 사이에 이제 가수하면 기본적으로 아이돌(최소한 아이돌 출신)을 떠올리게 되는 시점에 도달했는데, 그런 내내 syo는 꾸준히 아이돌을 멀리했다. 다른 젊은이들이 아이돌에 열광과 환장을 바치는 동안 꿋꿋이 저항운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가장 잘 팔리고, 구하기도 쉬우며, 스스로를 취향 있는 인간으로 보이도록 도와주는 편견을 하나 주워 얼른 장착했다. 저게 노래냐, 저게 가수냐, 하는 스타일의,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보수적인 관념이지만, 그땐 그걸로 충분했다. 사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싫음 그 자체일 때가 많다. 왜 싫으냐면 싫어서 싫은 것이므로, 벗겨놓고 봤을 때 중요한 건 그저 내가 쟤네를 싫어한다는 것, 그것뿐인 셈이다.

 

인간은 사물의 범주를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상당히 축약시킨 유사성의 함수를 이용해 경험을 분류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유사성이 사실 지나간 경험에서 결정적이었던 정서의 핵심에 거의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사람을 닮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의 정서를 이끌어냈던 바로 그 속성을 새로운 사람이 가졌을 때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움의 정서에도 또한 분명하게 이와 동일한 구조가 있다. 과거에 한 사람의 어떤 특별한 성격이 우리에게 미움을 불러일으켰다. 나중에 우리가 싫어했던 바로 그 특성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가졌던 또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새로운 사람 역시 우리에게 미움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에 알았던 어떤 인물의 특성 중 우리가 싫어했던 바로 그 특정한 속성을 새로운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닌데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61쪽)


싫어하는 것도 역시 관심이 있어서일까. 나이를 먹다보니 세상에는 근거 없이 싫어할 아이돌 말고도, 정말 싫어할 이유가 명백해서 싫은 인간들도 천지였고, 싫은 것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와 시간이 듬뿍 낭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이돌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졌다. 허허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요.

 

최근 방탄소년단은 온 세계를 진동시키고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심지어는, 한국전쟁 통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거친 개발독재시대의 풍랑을 헤치고 이 나라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는데 이바지하였으며 이제는 하루 종일 종편 정치 시사 프로그램만 보는 배 모 할아버지(70, 대구 북구 거주)의 눈에도 그들이 UN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포착될 정도의 위상을 갖춘 것 같다. 방탄소년단 멤버들 가운데 오빠도 있지만 동생도 있을 정도로 나이를 먹어 버린 동생과 함께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쟤들은 왜 저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난 늙어서 그런가, 쟤네 좋은지를 모르겠던데.” “잘 하긴 잘 하는데, 쟤네만큼 하는 애들 되게 많은데, 왜 쟤네만 저렇게 잘 되는지, 난 그게 궁금해.” “난 쟤네 누가 누군지도 몰라. 누가 누군지는커녕, 쟤네 여섯 명 이름 자체를 다 몰라.” “......오빠, 쟤네 일곱 명이야.”

 

그러니까, 여기가 모순과 편견이 숨어있는(사실 대놓고 있는) 지점이었다. ‘쟤네 좋은지를 모르겠어쟤네가 몇 명인지도 몰라가 양립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좋은 가수인지 아닌지, 어떤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려면(그 판단이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판단 대상에 대해서 알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이름도 멤버 수도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판단을 내려버리면 안 되는 게 아닐까? 그것은 스치듯 노래를 한 번만 들어봐도 답이 나올 정도로 내 식견이 탁월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이미 형성된 취향이나 관점에 매몰되어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면서도 스스로는 그걸 모르는 꼰대가 되고 있는 징후가 아닐까? 이런 비극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그건 아마도 싱글 포스터와 단체 포스터를 포함 도합 서른두 개의 눈알로 syo를 포위공격 했던 동방신기와, 그네들의 신기하고도 놀라운 이름들을 구구단 외듯 읊어야 했던 트라우마, 그리고 그 모든 공포를 조장했던 지옥에서 온 초6 내 동생의 탓도 있겠지만, 면역 없던 어린 시절 편견에 노출되어 열심히 그 편견에 복무했던 내 무지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2

 

사물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 즉 적합하게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 어떻게 다룰지, 대상의 자극에 어떻게 대응할지, 대상을 어떻게 포용할지를 안다는 말이다. 진정한 읾은 우리의 진정한 필요에 부적합하게 사물의 어떤 측면을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앎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성과 해당 사물의 적합한 관계를 아는 것이다. (171-172쪽)

 

라는 말에 기대어 꽤 긴 시간 유튜브를 방랑하면서 방탄소년단의 뮤비며, 공연이며, 팬들이며, 팬들이 자지러지는 모습이며, 팬이 아닌 사람들이 입덕하는 모습이며를 열심히 찾아본 것이다. 저러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고, 어쩐지 그 이유를 모르고서는 21세기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하지만 syo는 춤을 모르고 음악을 몰라서, 저 잘생긴 소년들이 되게 잘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다른 다수의 잘생긴 소년 소녀들에 비해 유독잘하는 것인지를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그것은 곧 왜 수많은 소년 소녀들 가운데 바로 저 소년들만이 세계를 진동시키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물음의 큰 의미는 답에 도달하는 데 있다기보다 대체로 물음 자체에 숨어있기 마련이라, 나는 왜 이런 걸 묻고 있지? 하며 스리슬쩍 나란 놈은 대관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를 되새겨보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먼저 syo는 도대체가 춤을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을 판단하는 데 예술적인 감각이 얼마만큼 필요한지와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무엇인가에 대해(특히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감정과 채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으리라 자연스레 가정하는 오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예술은 언제나 평가되어야 한다. ‘함부로 평가하지 마세요라는 실은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욕하지 말라는 말이고, 누구도 칭찬에 대한 대답으로 저 말을 하진 않는다.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을 평가한다. 땅바닥에 구르는 낙엽을 보고도 환경미화원의 근무 태도를 평가하는 평가의 동물이다. 예술이 무슨 용 빼는 재주 있다고 저 혼자 저울에서 달아날 수 있을까. 단지 평가 전에 우리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고, 어디까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지가 논의의 대상이 될 뿐이다. ‘니가 한 번 해 보세요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 평가대상보다 우월함을 갖춘 이후에야 평가 자격이 주어지는 것일까? 거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소위 전문가소리를 들을 만한 경험, 실적, 혹은 학위 따위가 필요한 것일까? 어쩌면 그냥 아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소설을 평가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문해력, 알레고리를 읽어내는 눈치, 내가 캐 낸 주제를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배경지식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음악에 대해서, 춤에 대해서는 뭘 얼마만큼 알고 있어야 판단할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에 대해, 칭찬이든 아니든 syo가 뭐라고 할 수나 있는 걸까?

 

두 번째로, syo성공의 큰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실력을 지목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 그렇지 않더라는 사실을 무수히 경험하고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실력을 쌓기가 어렵긴 해도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긴 해도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고, 심지어 이놈의 세상은 이걸 오히려 가능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끌고 가는 중이다. 실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실존한다고 해도 그건 그야말로 추상이라 수치로 구체화하거나 깔끔하게 서열을 매기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틈새를 그냥 행운, 시대변화에 동반된 행운, 각양각색의 연과 맥들, 심지어 채점자나 면접관, 바이어의 그날 아침 밥상에 고기반찬이 올라왔는지 아닌지 따위의 돌발변수들이 개입하여 성공 방정식에 미묘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큰 성공일수록 그렇다. 작은 성공은 큰 노력으로 이루어지지만, 큰 성공은 큰 노력으로 부족하고 하늘의 뜻이 조금은 필요한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공사례를 보면서, 성공한 이가 노력으로 성공을 일구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자동추측의 밑바닥에 실은 그랬으면 좋겠네가 깔려있다. 노력이,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실력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세상이 옳은 세상이고, 이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여기서 세 번째로, syo는 당위와 현실, 법학자들이 좋아하는 말로 SollenZein을 혼용 또는 혼동하는 경향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피 땀 눈물>이 흐르다 못해 말라버릴 정도로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돌 들이 과연 그들보다 피, , 눈물을 적게 흘렸는지를 비교해 보기 전까지는, 그들의 노력과 성공을 일차선 도로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방탄소년단은 노력했고 성공했다라는 명제는 엄연한 현실이지만 이를 끊임없이 노력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의 사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무수한 피해자만을 양산할 뿐이다. 100만 명이 노력하던 세상에서 1000만 명이 노력해도, 왕좌는 하나에서 열 개로 늘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노력으로 성공했다에 살짝 손을 대어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로 치환하는 작은 무심함이,

노력하는 이가 성공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 은근슬쩍

노력하는 이가 성공하는 세상 이 좋은 세상으로 바뀌는 데 힘을 보탤 수도 있는데,

그 메커니즘에 복무하지 않도록 좀 더 꼼꼼하게 생각하고, 그 꼼꼼함을 위해 더 많이 찾아보고, 듣고, 느낄 여지가 syo에게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3

 

생존하기 위해 수다한 다른 것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스피노자가 욕망을 "그 자신 안에서 존속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정의내리는 코나투스로 언명한 까닭이다. 그 자신인 것으로 존재하려면 그 자신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정체성은 다소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 그것들과의 결합, 만남에 의존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으로 존재하기란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아 아니라 노력과 탐색, 욕망을 함축한다. (40-41쪽)


조금 더 메타적으로 바라보면, syo라는 놈은 저렇게 묻는 인간이라는 사실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내달리는 의문의 꼬리를 잡고 몸통 위로 기어올라 그 얼굴을 확인하면, 언제나 저렇게 생긴 의문들을 따져 묻는 인간이라는 것. 똑 떨어지지는 않지만 언제나 비슷한 과녁을 노리고 있고, 그 과녁을 바라보며 화살을 거는 활줄이 마르크스였다가, 루쉰이었다가, 소로였다가, 때로는 방탄소년단이기도 한 셈이다. 날아가는 화살의 궤도가 활 쏘는 이의 몸과 마음에 달렸듯, 활 쏘는 이의 몸과 마음이 또 활에 달려 있기도 하다. 어쩌면 과녁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물건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고, 진짜는 오로지 활을 들고, 화살을 메기고, 시위를 당기고, 숨을 멈추고, 보고, 놓고, 날아가고, 보고, 숨을 들이쉬는 과정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만나고, 그로 인해 생각을 하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몸가짐을 한 번 더 추스른다면 그 만남이 충분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4

 

그리고 그 와중에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건 피할 수가 없다. 난 저 아이들만큼 치열하게 살지도 못했고 못할 것이므로 이번 생은 안 되겠지. 우주가 생긴 그 날부터 계속, 무한의 세기를 넘어서 계속, 나는 전생에도 아마 다음 생에도 영원히 안 되겠지.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DNA.



아무래도 전 <DNA>가 제일 좋더라구요.


그것은 또한 새로운 기쁨으로 열리는 것, 즉 우리에게 낯설어 보이는 대상과의 적합성을 찾아낸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신체에 더 많이 익숙해져야 하고 신체가 더 많이 민감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체가 다른 사물의 행위와 동일한 것을 더 많이 만들어낼수록 다른 사물의 본성과 공통된것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된다. 신체가 더 많이 민감해질수록 셀 수 없이 많은 정서를 구분하고 느낄 수 있게 되며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포츠 훈련, 여러 기예를 닦는 것, 악기를 다루는 일, 식당이나 양조장에서 그러하듯 미각이나 후각을 훈련하는 일, 감각적 즐거움의 경험, 사막을 횡단하는 일이나 만년설을접하는 등의 극단적 상황이나 전혀 낯선 상황에 처하는 일 등은 신체가 새로운 현실에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이는 그 신체에 새로운 역량을 부여한다. 경험하기 이전에 무서웠던 일, 사막의 건조함이나 만년설과 같은 것이 우리와 조화로운 공통된 접점을 가지게 되고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우리가 더 많은 사물에 익숙해질수록, 그것들을 더 편하게 느끼게 될수록 우리가 슬픔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는 줄어들고 경험한 것만큼의 기쁨을 얻게 된다. (187-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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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1-2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요컨대, 문단 너무 좋아요. 노력한 사람의 문장이예요.

2. 저도 방탄의 인기 요인이 궁금하기는 해요. 가사, 도전적이고 사회비판적인 가사나 프로듀싱 능력 등을 이유로 대기도 하던데요.
글쎄요. 제 생각엔.... 워낙 한류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그런 애들, 잘하는 애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다른 그룹에 비해 특별히 잘한다기 보다는 서로 경쟁하다가 잘하게 되었다는....
그리고 케미? 멤버간의 케미가 다른 그룹에 비해 좋은 것 같아요. 그리하여 시너지효과... 제가 보기엔요.

3. 전 <아이돌>이 좋아요. You can call me artist. You can call me idol. 아님 어떤 다른, 뭐라해도 I don‘t care!
그리고 RM (하트뿅뿅!) 스피노자는 안 보임. 방탄 땜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11-29 15:10   좋아요 0 | URL
단발님의 요런 댓글을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만, 왜 갑자기 RM인가요. 최애가 바뀌셨나요 ㅎ

소년 소녀들 전부 예쁘고 악착같이 열심히 하는데 다들 잘 됐으면 좋겠지만요, 이 세상은 또 그런 게 아니니까요....

카알벨루치 2018-11-2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사람!!! 대형사고쳤네 ㅋㅋ

syo 2018-11-29 15:11   좋아요 1 | URL
방탄을 깐 것도 아닌데 무슨 대형사고씩이나.... 이러다 사람들 오해해요. 살려주세요 ㅎ

stella.K 2018-11-2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저도 방탄은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군요.
뭐 걔들 뿐이겠습니까?
대중 음악은 자기 시대에 들었던 음악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이문세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댄데
지금도 그 이상으로 좋은 가수를 못 찾겠더군요.
물론 성량이나 환경이 그때의 가수들 보다 월등이 좋아졌는데도
정서가 다르다고 보는 거죠.
지금 방탄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좋아할 겁니다.
그러면서 방탄 같은 가수들이 안 나온다고 아쉬워하며 꼰대가 되어가겠죠.
사람은 그런 것 같아요. ㅋ

syo 2018-11-29 16:29   좋아요 1 | URL
저는 방탄 좋던데요? 나는 살고 싶다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뭐 걔들 뿐이겠습니까?‘ 에서부터는 모든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특히 마지막 세 줄은 최고 ㅎ

stella.K 2018-11-29 16:33   좋아요 0 | URL
야하~! 제가 스요님께 칭찬도 들어보고
이거 앞으로 댓글 더 잘 써야겠는데요?ㅋㅋㅋ

syo 2018-11-29 16:35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이세요 ㅋㅋㅋ 제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요ㅎㅎ
스텔라님은 글도 댓글도 항상 잘 쓰시는데요.

설해목 2018-11-2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을 기다리며 조금 여유가 있는 이런 날엔 syo!
오늘 글도 느므 좋습니다!
그나저나 귀여운 여동생은 요즘은 누굴 좋아하려나요? 설마 아직도 동방신기????

syo 2018-11-29 20: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동생의 덕질족보는 제가 샤이니까지는 따라갔는데 그 이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psyche 2018-11-2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락 싸면서 간만에 북플에 들어왔다가 방탄이라는 말에 눈이 확 떠졌습니다. ㅎㅎ

방탄의 인기가 워낙 폭발적이니 그 원인을 한두가지로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저와 제 주변의 의견은 무엇보다 가사의 힘!입니다. 가사가 예술이에요.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줘서 그런 가 구절구절이 가슴을 찌르고 희망과 위로를 주거든요. 사실 저는 아들뻘 청년들이 해주는 말에 위로받는 다는게 좀 민망하기도 했는데 뭐 어쩌겠어요. 그게 사실인걸. 요즘처럼 사는 게 참 힘들다 싶을 때, 마구마구 우울속으로 파고 들어갈 때 조금이라도 몸을 일으킬 힘을 주더라고요.

저는 좋아하는 방탄 곡이 너무 많아서 한개만 뽑는 것은 불가능하고 요즘 제 맘을 울리는 곡으로 RM 의 ‘지나가‘

syo 2018-11-30 10:14   좋아요 0 | URL
프님의 방탄사랑은 익히 알고 있던 부분이지요 ㅎㅎㅎㅎ

말씀하신대로 정말 가사가 좋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주로 사랑노래를 좋아하지만요 ^-^

입덕까지는 못 돼서 미친듯이 들어대지는 않겠으나 한 번 들을 때 흘리지 않고 집중해서 음미하게는 되었지요 ㅎ

쟝쟝 2018-12-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먹나봐요.. 저도 지난 명절때 유튭보면서 방탄 공부했는데.. 랩몬 빼고는 지금도 얼굴 구분을 잘 못하겠어요.. 하지만 역시 dna는 좋구.. 몇년 전에 동생분이 상심이 크셨겠네요.. 동방신기라니... 이젠 아련한 믹키...읍읍..😷😷

syo 2018-12-02 15:1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그 전에 이미 털고 나와서 믹모 남성의 사건에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던 동생입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시아준수 팬이었더라구요.

백진호 2018-12-0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 전에 봄날이라는 노래를 듣고 꽂혔어요. 그런데 그 노래가 방탄소년단 것이더라고요. 유튜브에서 뮤비를 봤는데 그 안에 세월호, 젊은 세대가 겪는 아픔에 대한 공감 등이 담겨 있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방탄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 같아요. 물론 다른 연예인들이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지만요.

syo 2018-12-02 15:13   좋아요 0 | URL
많은 분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방탄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다 공감이 가더라구요. 백진호님의 말씀 역시 그렇구요.

입덕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그 소년들이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네요.
 

 

인간의 화석

 

 

1

 

어머니의 말처럼 내가 웃는다면, 돌아간 아버지의 웃음으로 내가 웃는다면,

 

나의 웃음이 아버지의 웃음을 닮았듯이, 아버지의 웃음이 아버지의 아버지의 웃음과 또 닮았다면, 미소 짓는 입꼬리나 웃음의 끝소리를 붙잡고 한없이 하염없이 거슬러 올라 태초의 웃음까지 가 닿을 수 있을까. 말도 없고 불도 없던 시절에 인간이 지닌 단 하나의 도구였을 그 표정까지 미칠 수 있을까. 큰 나무를 미는 바람처럼, 큰 나무를 쪼개는 번개처럼, 인간의 눈가를 밀고 입가를 쪼개고는 한순간에 사라지는 그 신비한 전설을 만져볼 수 있을까. 돌아간 아버지의 웃음을 오래 기억하면, 많이 기억하면, 많이 기억할 수 있도록 많이 웃게 하였더라면 좀 더 수월했을까.

 

많이 웃어야겠다. 행여 누군가 첫 번째 웃음으로 찾아가는 행로를 내 웃음에서 시작할지도 모르니, 최대한 많이, 오래, 웃음을 남겨놓아야겠다. 이 세상과 이 세상에 사는 이들의 마음에다 웃음을 총총 박아놓아야겠다.




 스페인 여행에서 어느 도시가 가장 좋았냐는 물음에 곰곰이 생각하다 마드리드를 꼽았다호안 미로의 작품이 지천이던 바로셀로나나 남부 스페인 바다를 파란 쟁반의 은구슬같이 품은 말라가가 근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내가 마드리드를 선택한 이유는 그곳에서 많이 웃었기 때문이다.

 

 삶이 너절할수록 간절해지는 것이 여행이다.

 여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한 꺼풀 벗겨보면 웃고 싶은 마음에 다름없을 것이다.

정은우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손에 잡히지 않아서이해할 수 없어서다 이해되지 않아서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이 세상엔 있다효율로만 평가하려고 하는 이 세상에 비효율로 남아 있어서 고마운 것들우리를 간신히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실 그런 비효율들이다너무 쉽게너무 자주너무 무심히모든 것에 효율을 들이대는 이 세상에서 누군가는 단 한 번의 심벌즈를 위해 한 시간 넘게 준비하고 있고또 누군가는 0의 존재가능성을 밝히느라우주 탄생의 가설을 세우느라한 문장으로 우리를 구원하느라 밤을 새우고 있다라고 생각하면 마음 어딘가가 편안해진다따뜻해진다.

김민철하루의 취향


야마토, 내일도 만나자그리고 별것도 아닌 얘기를 날이 저물도록 하자.

카와하라 카즈네아루코내 이야기!! 2

 


 

 

 

2



초기의 대포는 가볍고 짧았으며튼튼하지 못했다무게가 130킬로그램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나무 받침대(포대)위에 대포를 올려놓고 쏘았다화통을 만드는 금속이 약해서 옮기다가 몸체가 깨지는 일도 다반사였다이 때문에 대포를 전쟁터로 옮기는 게 아니라 대포를 만드는 장인들이 전쟁터를 따라다녔다즉 전투가 벌어지면 장인들이 전장으로 가서 주변 지역의 종을 징발한 후 그것을 원료로 해서 대포를 만들었다전투가 끝나면 장인들은 대포를 녹여 다시 종을 만들어주었다.

정기문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종을 녹여 대포로 만드는 마음과 대포를 녹여 다시 종으로 만드는 마음의 간격에 대해서 생각한다. 수레에 실려 대장간으로 들어가는 종을 바라보는 마음과, 사람을 죽이거나 성벽을 파괴하고 돌아와 대장간에서 다시 나오는 종을 바라보는 마음의 간격에 대해서 생각한다. 마을의 종루에 걸려 하루의 끝을 알리던 종의 마음과, 한 사람의 끝을 알리고 돌아온 종의 마음 사이에 있을 간격에 대해서 생각한다.

 

인간은 대포 하나 만들 여유가 없어도 기어이 싸우고 무너뜨리고 죽인다.

 

 

 

3



 형단풍이 빨갛게 물드는 거 왜 그런지 알아?

 가을이잖아.

 노폐물이야.

 뭔 소리야.

 노폐물이라고.

 뭐라는 거야.

 나무가 죽어 가면서 배출하는 오물을 보고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관광하고 사진 찍고 그러는 거라고.

 야너는 쫌.

 한창 살아 있을 때푸를 때는 왜 아름답다고 하지 않지?

 말을 알아듣게 해.

 푸를 때는 왜 덥다고 짜증만 내냐고.

 여름은 덥고 더우면 짜증나지당연하잖아.

 다 푸르니까 모르지 사람들은살아 있는 그 함성을시끄럽다고.

 야최신우너도 그래.

 내가 뭐.

 시끄럽다고.

 ......

 너도 푸르고.

 ......

 아름답고.

 ......

 하루만 더 살아 줘.

 뭐 달라진다고.

 제발하루만.

 다를 게 뭐냐고.

 어떻게든 찾아볼게내가.

 뭘 해형이.

 살아야 하는 이유를너한테 꼭 필요하다면.

최진영비상문 

 

잃어버린 친구가 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꼭 필요했을 그 친구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지도 않은 우리들은 무엇을 해줄 수 있었을까. 왜 그랬을 지에 대한 이런 저런 추측들은 금세 추문이 되고, 이내 추억이 되었다. 그러나 가끔 깊은 밤이면, 잠 못 이루고 생각을 뒤적거리다가 우연히 그 추억에 가닿는 밤이면, 나는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그 친구의 것이 되지 못한 이유는 내 것 역시 되지 못했고, 끝내 이유를 찾지는 못했으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없으니 살지 말아야겠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기 전에 잠에 빠지는 통에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아야 하는 데는 이유가 없지 않다. 많은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가 내 이유가 되지 못해서 결국 아무 이유도 없이 우리는 산다. 내가 이유라고 믿었던 것들 역시 불면의 밤을 만나 깊이 해부되다 보면 시체가 되어 새벽과 함께 시궁창으로 휩쓸려 들어가고, 나는 다음날 아침 다시 이유 없는 하루를 위해 이를 닦고 수염을 깎는 것이다.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새로운 이유를 찾아 밖으로 나선다. 하루짜리, 운이 좋으면 한 달, 한 해를 기대고 살 이유를 찾기도 하지만, 불면의 밤은 언제나 다시 온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차피 이유를 찾는 일은 계속 실패하고 궁극적으로 실패한다. 그렇다면 내가 친구를 잃은 까닭은, 그 친구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아나갈 힘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형은 최신우를 살려 놓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결국 살아가게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라는 말은, ‘살아야 하는 이유라는 것을 찾지 못한다는 말로도 읽히지만,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행동을 하지 못한다는 말로도 읽을 수 있다.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건 모두 다르다. 그러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는 고통에 대해서는 안다. 그건 대개 비슷하다.

 

 

 

-- 읽은 --



정기문,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월터 앨버레즈,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비상문

김상현, 이성의 운명에 대한 고백 순수 이성 비판



 

-- 읽는 --



박이문, 하나만의 선택

노회찬, 우리가 꿈꾸는 나라

유상균, 시민의 물리학

움베르토 에코, 0

마르셀 에나프, 진리의 가격

정철현,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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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11-27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을 위한 종을 만든 기술이 대포 만드는 기술로 전이 되었다는 아이러니요...^^

syo 2018-11-27 23:01   좋아요 1 | URL
되게 객관적인 문단이었는데도 이상하게 턱 걸려서 오래 읽게 되더라구요. 대포와 종이라니, 정말 아이러니의 극치 같죠?

북다이제스터 2018-11-28 22:39   좋아요 1 | URL
저도 얼마 전 읽은 <전쟁의 세계사>에서 동일한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읽다가 동일하게 턱 걸렸습니다.
웬일인지 같은 느낌이셨나 봅니다 ^^

2018-11-28 0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8 01: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1-28 13: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만의 선택>이 <하나님의 선택>으로 보여 쇼님이 개종했나 싶어 깜놀~머 눈에 머만 보인다더만 ㅎㅎ

syo 2018-11-28 16:5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알라딘의 신앙인1 카알님이 댓글을 다시고 신앙인2 스텔라님이 좋아요를 누르셨군요!

카알벨루치 2018-11-28 16:58   좋아요 0 | URL
신앙인3 달아도 된답니다~쇼님이!ㅋㅋ

syo 2018-11-28 17:57   좋아요 0 | URL
거룩한 숫자 3을 제가 가질 수가 있나요. 3000000번 번호표 뽑고 기다리겠습니다.

북프리쿠키 2018-11-28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여기 종횡~!! ㅋ

syo 2018-11-29 00:04   좋아요 1 | URL
종횡놀이가 이어지고 있군요. 뿌듯합니다 ㅋㅋㅋ
 

 

추억 이면異面

 

 

1

 

이제는 없는 밤이 오늘은 있다. 수도꼭지를 열면 불이 콸콸 쏟아질 것만 같은 밤이 호수 주위로 겨울을 빙 두르고 있다. 사랑이 늘 그렇듯이 사랑의 추억 역시 아차 하는 사이에 마음을 데우고 태우고 얼른 재가 되었으나, 사람이 늘 그렇듯이 사람의 사랑 역시 그 재를 뒤지고 빚어 겨울처럼 밝고 하얗게 도시를 세운다. 새하얀 도시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날의 첫 키스를 영원히 반복한다. 46억 번, 137억 번의 첫 키스가 끝나면 도시는 다시 재로 무너질 것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서로의 귀를 파 주거나 새치를 뽑아주러 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날의 달뜬 고백이 달로 뜬 하늘을 뒤로하고 그림자 따라 아늑하고 슬픈 성냥갑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서로의 머리를 부딪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두 개비의 성냥으로 나란히 누울 것이고, 불이 쏟아지는 수도꼭지를 잠가 둘 것이다. 밤으로 녹을 것이다. 인화될 것이다. 재 될 것이다. 무한히 되돌아오는 겨울을 기다릴 것이다. 호수가 함께 기다려 줄 것이다.

 



 "좋아." 슈쿠마가 기억을 떠올리며 말했다. "우리가 처음으로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그 포르투갈 식당 말이야난 웨이터에게 팁 주는 걸 잊어버렸어그래서 다음 날 아침에 다시 그곳으로 가서는 그 웨이터의 이름을 알아내서 지배인에게 팁을 맡겼어."

 "단지 웨이터에게 팁을 주려고 서머빌까지 그 먼 길을 다시 갔단 말이야?"

 "택시를 타고 갔어."

 "웨이터에게 팁 주는 걸 왜 잊어버렸는데?"

 생일 양초는 다 타버렸지만그는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얼굴을 또렷이 그릴 수 있었다약간 기울어진 커다란 눈도톰한 포돗빛 입술두 살 때 높은 의자에서 떨어져 턱에 생긴아직도 눈에 띄는 쉼표 모양의 상처슈쿠마는 한때 자신을 압도했던 그녀의 아름다움이 나날이 시들어가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전에는 불필요하게 보였던 화장품이 이제는 필요했다용모를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그녀를 또렷이 드러내려면.

 "식사가 끝날 무렵당신과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묘한 느낌이 들었어." 그는 그녀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처음으로 인정하는 말을 했다. "그게 내 정신을 산만하게 한 것 같아."

줌파 라히리일시적인 문제축복받은 집


한 편의 그림을 이해한다는 건 우리가 그 그림의 공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이 공간이 오히려 먼저 아주 특정하고도 다양한 곳들에서 돌진해 나오는 것이다이 공간은 우리가 아주 중요한 과거의 경험들을 찾을 수 있다고 믿는 각도와 구석에서 자신을 열어 보인다말하자면 무언가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그곳에 있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모스크바 일기

 

연애 9결혼 후 1우리 부부는 많은 부분을 양보했고타협했고조정했다. '바깥세상'에 기대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된다결혼을 정말 잘했구나싶은 순간이 있는데 그건 저녁을 먹고 가볍게 동네를 한 바퀴 돌 때이다두 손을 마주 잡고같은 공기를 들이마시며같이 바람을 맞고나눠 마시는 한 잔의 물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여서 다행이다새벽 3시에 나는 다른 이유로 깨어 있다피가 도는 사람이 옆에서 잠들고나는 책을 읽다 잠든다.

조안나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2



 교토대학의 중세철학 연구실에서는 일주일에 두 번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을 읽습니다라틴어로 쓰인 책인데그 내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방대합니다.

 “다 읽으려면 이백 년 정도 걸리겠지.”

 그렇게 말했던 교수님은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지금도 연구실에서는 그 책을 읽고 있을 겁니다정신이 아득해질 듯한 이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눈앞에 있는 한 행 한 행과 마주하는 시간이고 거기서 얻은 것들입니다다 읽느냐 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기시미 이치로마흔에게

 

뭣이 중헌디는 인생의 화두 급 명언이 틀림없다. 인간은, 아니다, 인간이라고 하면 안 될 것 같고, 그러니까 syo는 가만히 있을 때도 뭣이 중헌지를 모르고 가만히 있지 않을 때는 더더욱 모른다. 질문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질문의 의미가 아니라 질문이라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순간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하는 것, 지금 품고 있는 생각을 계속 품는 것, 지금 쥐고 있는 권리나 권위를 계속 쥐고 있는 것이 뭐가 중요하냐고 물어보는 순간이 자주 필요하다. 물어보는 순간 흩어지는 것들은 흩어지게 두어야 하고, 내가 중히 여긴 모든 것들이 결국 다 흩어지고 나서야, 비로소 무엇인가를 꾸준히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을 지우고, 지우고, 또 지워나가다, 결국 중요한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 자체가 중요하지 않게 되는 순간.

 

 

 

3



지금은 말이야거기 어른들이 많이 힘드실 수 있지 않을까힘드신데 너희들을 보면 강이 생각이 더 많이 날 수도 있어.”

도우는 우유를 마시지는 않고 손가락 끝으로 컵을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러니까 나중에 가는 게 좋겠어.”

세영의 말이 끝나자도우가 있는 힘껏 컵을 잡았다.

나중에...... 언제요엄마시간이 없어요.”

정이현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오늘의 어려운 일을 내일의 어려운 일로 만들 수 있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속이곤 한다. 오늘 전해져야 했던 말, 오늘 나누어주어야 했던 체온, 오늘 지켜주어야 했던 마음, 오늘, 오늘, 오늘, 그 수많은 오늘들은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곳으로 가 외로이 죽고, 우리에겐 내일만이 남는다. 결코 오지 않는 내일만이


사실 누구나 안다. 내일의 우리는 여전히 오늘의 우리일 것이고, 우리가 오늘 외면한 모든 것들은 내일도 외면 받을 것이며, 오늘의 내일은 내일의 내일로 한없이 지연될 뿐, 오늘을 대신할 내일 같은 것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일은, 내일 온다.

 

그리고 제자리를 찾아가지 못한 오늘들의 공백은, 점점 더 무거운 질량으로 쌓이고 덩치를 키워나가다 마침내 폭발하여 날카로운 파편처럼 우리의 일상을 찢어놓곤 한다.

 

그러니까 늦지 말자. 늦추지 말자. 놓지 말고 놓치지 말자.

 

 

 

-- 읽은 --



조홍식, 문명의 그물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김정운, 에디톨로지

기시미 이치로, 마흔에게

정이현,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 읽는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월터 앨버레즈,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유상균, 시민의 물리학

카롤린 엠케, 혐오 사회

정기문,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레이첼 카슨, 침묵의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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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1-26 1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1-26 14: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8-11-2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주에 도서관 가면 [당신을 만난 다음 페이지] 빌릴거에요. 마침 저희 도서관에 있더라고요? 헤헷.

syo 2018-11-27 09:37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이 도서관을 이용하시는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하다.....😂

다락방 2018-11-27 09:53   좋아요 0 | URL
[문맹]과 [아무튼, 방콕]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읽었답니다? 으하하하하

syo 2018-11-27 10:45   좋아요 0 | URL
이제부터 막 막 막 읽는 것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11-27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횡!무!진!짜 넘한다 쇼님! 저만치 앞서 달려가시는구만유

syo 2018-11-27 09:38   좋아요 0 | URL
와, 종횡무진 그거 안 잊고 복수하신다 ㅋㅋㅋㅋㅋㅋ

카알벨루치 2018-11-27 13:00   좋아요 0 | URL
아...뒷끝이...ㅎㅎ

프리즘메이커 2018-11-28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활의 노래에도 추억이면이라는 숨은 명곡이 있죠. 하루에 몇시간 정도 책을 읽으시는지 궁금해집니다.

syo 2018-11-28 18:05   좋아요 1 | URL
슬픈 노래 래디오로~ 흘러 비를 부르면~ 창 밖을 보오던 너의~ ♬ ㅎㅎㅎ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뭔가 읽고는 있습니다.
꼭 독서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요.
 

 

말가락이 닮았다

 

 

1

 

피부가 더 칙칙하냐 인생이 더 칙칙하냐를 놓고 뇌내 논쟁이 한판 벌어졌는데 호각이다. 나이를 먹고 먹다 딱 어느 시점을 지나면 그때부터 한 번 망한 피부는 불로초에 우담바라를 갈아서 팩으로 처발라도 돌아오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번 망한 인생이 결코 되돌아오지 않는 티핑포인트, 오늘은 비록 시원하게 망했지만 내겐 내일도 없다!고 외칠 수밖에 없는 구슬픈 지점은 몇 살쯤일까? 35? 40? 50? 500?

 

그러거나 말거나 날씨가 추워지면 역시 읽는 것뿐인데, 아니 작년까지는 분명 그랬었는데, 올해는 이상하게 자꾸 책 집어 던지고 찬바람 면담하러 나가고 싶어진다. 어디 딱히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니고, 두꺼운 옷 걸치고 나가도 동네 한 바퀴 휘 돌고 오면 얼굴이 김장김치가 될 만치 추위에도 약한데, 그래도 괜히 꾸역꾸역 기어나가고 싶다. 엄마는 너 이제 그러다 감기 걸리면 죽을 수도 있는 나이라며 핀잔을 주는데 그 표정이 사뭇 엄숙하고 진지해서 이쪽은 더 빡친다. 앉아서 머리 말리고 있는데 뒤에 서서 내려다보다 흰머리를 발견하고는 또 쓸데없이 근엄한 표정으로, 너 그 흰머리 뽑지 말고 염색해라, 뽑으면 머리 안 난다, 너 가뜩이나 머리숱도 적은데, 이러면서 걱정하는 척 돌려깐다. 어디서 주워듣고 온 비과학적 발언으로 아들 마음에 생채기를 내다니 이 엄마가 내 엄마가 맞는지 과학적인 의구심이 생겨난다. 엄마, 내 머리숱 적은 거, (동생) 머리숱 적은 거, 그거 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면 거울 한 번 보소서. 그러자 엄마 역시 와, 저게 내 아들인지 후레아들인지 과학적인 의구심이 생겨난다는 표정인데, 그 순간 이쪽에서는 역시 우리는 모자관계일 확률이 99.98% 라는 과학적인 확신이 드는 것이다.

 

완전한 삶이란 없다그 조각만이 있을 뿐우리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태어났다모든 것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다그런데 빠져나갈 이 모든 것들만남과 몸부림과 꿈은 계속 퍼붓고 흘러넘친다...... 우리는 거북이처럼 생각을 없애야 한다결의가 굳고 눈이 멀어야 한다무엇을 하건무엇을 하지 않건 그 반대는 하지 못한다행동은 그 대안을 파괴한다이것이 인생의 역설이다그래서 인생은 선택의 문제이고선택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되돌릴 수 없을 뿐이다바다에 돌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제임스 설터가벼운 나날

 

그래서 침묵이 강요된 이 시간 동안나는 일종의 일기 같은 것을 쓰기 시작하고심지어는 아무도 읽지 못하게끔 비밀 문자를 만들기도 한다나는 일기에 나의 불행나의 고통나의 슬픔나를 밤마다 침대에서 소리 죽여 울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적는다.

아고타 크리스토프문맹

 

손님 혹시 직업에 대해 설명한 책이 있나요딸한테 동기 부여를 해주고 싶어요.

직원 따님이 입시를 앞두고 있나요?

손님 아니요아직요우리 딸 저기 있네우리 공주님이리 와봐. (네 살 배기 아이가 온다우리 딸여기 친절한 언니랑 잠깐 얘기하고 있어나는 어떻게 의사나 과학자가 되는지 알려주는 책을 찾아보고 올게너도 의사나 과학자 괜찮지?

(아이는 아무 말도 없다)

(직원에게금방 갔다 올게요.

(손님은 논픽션 서가로 간다)

직원 이름이 뭐니?

아이 세라요.

직원 세라이름 예쁘다.

아이 고맙습니다.

직원 세라이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

아이 : ...꿀벌요.

직원 참 멋진 꿈이구나.

젠 캠벨그런 책은 없는데요 



 

2



 

오은의 시를 읽으며, 이 사람은 천재적인 데가 있구나, 하고 느꼈던 적이 많다. 성 농담과 쌍벽을 이루며 아재 개그의 영토를 크게 양분한다고 알려진 글자 조작’(말장난?)의 미학을 최대치까지 밀어붙여 시로 만드는 쉽지 않은 재능이랄까. 이런 걸로도 시가 되는구나, 대단하구나, 생각하게 하는 시가 그의 시집 속에는 많았다. 그런데 그러다가도 갑자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어정쩡한 시가 툭 튀어나오기도 했다. 바로 이런 거.

 

어젯밤 꿈에는 네가 나왔다. “잘 지내?”라고 차마 묻지 못했다. “잘 지내라고 서슴없이 대답할까봐누구보다 네가 잘 지내기를 바라면서도 나는 이렇게나 나쁘다꿈속에서도 나아지지 않는다.

오은 표리부동전문

 

syo가 나이 열다섯에 저런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그날 일기에 오늘도 한 편의 시를 썼다.” 라고 기록하곤 했다. , 흑역사.

 

혹시 syo가 뭔가를 똑바로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걸까? 그래도 무려 오은인데. 어쩌면 저 안에 뭔가 숨어 있는 것은 아닐까? 오래 곱씹어 읽으면 그제야 보이는 뭔가가?

 

만약 그런 게 있다면, 그렇게 오래 곱씹어 비로소 저 시가 아름답게 된다면, 그때 저건 오은의 시가 아니라 오은 반, syo , 반반시가 되는 것은 아닐까?

 

 

 

3



하지만 서점에서의 현실은 다르다.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평론가들이 열광적으로 논평한 대부분의 책들은 몇 달 동안 먼지가 쌓인 채 서가에 꽂혀 있다가 결국 휴지조각으로 전락해버리는 반면, 미처 평가도 받지 못하고, 토론이나 추천의 대상도 되지 못했던 그 밖의 다른 책들은 순식간에 팔려나간다. 문득 나는 이런 책들에 관심을 쏟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처음에는 정말 제대로 된 리뷰를 써보겠노라 결심했었다. 각각의 작품들을 문예사조에 따라 분류하고, 책의 성격이나 경향을 규정하고, 이 책이 다른 책보다 나은지 못한지 독자가 냉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가 리뷰를 쓸 줄 모른다는 걸, 게다가 그다지 쓰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본질적으로 나는 독자로, 아마추어로, 그리고 뭔가의 가치를 끊임없이 평가하지 않아도 되는 단순한 애호가로 머물길 원하고 있었던 것이다.

_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 줘서 고맙고, 무려 쉼보르스카와 같은 이야기를 하게 되서 영광이다.


도대체 서평이라는 것은 어디까지 쓰고 어디부터는 안 써야 하는 물건인지를 고민하던 시절이 잠깐 있었다. 잠깐인 이유는, 통용되는 의미로서의 서평장르가 요구하는 함량을 채울 역량이 애당초 syo에게 없었음을 금방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런 고민을 1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잘 된 서평은 그 솜씨가 부럽고, 부럽다보면 가질 수는 없더라도 알기라도 하고 싶어서 꼼꼼히 읽게 된다.

 

쉼보르스카의 이 서평집은 한 편 한 편의 분량으로 미루어보건대, 아마도 syo가 도달할 수 있는 한계치에 가까운 서평의 원형이라고 봐도 되겠다. 꼼꼼히 읽고, 어차피 서평인 듯 서평 아닌 서평 같은 것들만 쓸 팔자라면 이렇게라도 쓰고 싶다.

 



반면 이명현 선생님의 이 서평집은 서평에 과문한 syo의 입장에서는 논문급이다. 학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있으시겠지만. 과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상세하고 친절하며 그 와중에 다정하다. 오죽하면 이명현의 서평을 읽으면 원전을 읽은 것 같은 착각이 드니 읽지 말라는 말이 추천사로 붙었을까.

 

 

 

-- 읽은 --



이명현, 이명현의 과학책방

이영문, 고인돌, 역사가 되다

박병상,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역사미스터리클럽,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사 명장면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

 


 

-- 읽는 --



데이브 레비턴, 과학 같은 소리 하네

월터 앨버레즈,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기시미 이치로, 마흔에게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읽거나 말거나

김상현, 『이성의 운명에 대한 고백 순수 이성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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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라 2018-11-23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흰머리 따위는 그냥 새치로 치세가 세월에 대한 마음가짐입니다ㅠㅠ

syo 2018-11-24 00:37   좋아요 0 | URL
저 같은 경우는 붙어있기만 해준다면 희든 검든 그저 땡큐라는 마음가짐이랄까요.

비로그인 2018-11-24 0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학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있으시겠지만.’ ㅋㅋㅋ 저는 요런 소소한 멘트가 왜 이렇게 웃기죠? ㅋㅋ

syo 2018-11-24 09:19   좋아요 1 | URL
소소한 멘트에서 웃음을 발견하는 사람은 다정한 사람^-^

단발머리 2018-11-24 1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찬바람 면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11-24 12:07   좋아요 1 | URL
저는 잘 모르겠어요. 세상 사람들의 웃음 포인트를. 그래서 그냥 되는대로 던져 본다!!

warmsoul 2018-11-24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서 뭐가 될거냔 질문에 ‘꿀벌‘요 하고 답한 내용을 읽고 갑자기 눈물이 핑도는데 제가 이상한건가요?^^;

syo 2018-11-24 15:56   좋아요 0 | URL
전 그거 읽고 너무 귀여워서 빵 터졌는데, 잘 생각해보니까 정말 눈물이 핑돌 수도 있겠어요.
막, 네살 짜리 여자애가 꿀벌 옷 입고 있는 걸 상상했거든요ㅎㅎㅎ

stella.K 2018-11-24 14: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 가족이란 그런 거예요. 그러려니 해야지 어쩌겠어요?ㅋ

지난 목요일(정확히는 금요일일텐데) M본부에서 하는
<문화사색>이란 프로에 이명헌 씨 나왔는데 맨정신으로
봤어야 하는 건데 한 잠 자고 봤더니 다음 날 기억 나는 게 하나도 없더군요.
이명헌 씨 인상 좋더군요. 털북숭이라서 그렇지.ㅋ
과학엔 잼병인데 저 책은 정말 읽고 싶어지더군요.

눈도 왔는데 애인은 안 만나시나요?ㅎ

syo 2018-11-24 15:59   좋아요 0 | URL
대구는 눈 안 오고 비왔어요ㅎㅎㅎㅎ 여긴 그런 곳이지요.

그나저나, 천문학자 이명현 선생님이요. 저도 저 책을 읽으면서도 이명‘헌‘인 줄 알고 있었거든요? 심지어 저 책이 제가 읽은 이명현 선생님의 첫 책도 아닌데. 이제껏 계속 이명‘헌‘으로 알고 있다가, 페이퍼에 이 책을 추가하려고 이명헌을 검색했는데 책이 안 나온다??? 알고 봤더니 이명‘현‘ 선생님....

심지어 어제 알쓸신잡에서도 자막으로 천문학자 이명‘헌‘이라고 나오더라구요. 두 번이나.
이게 어찌된 일일까요?


이‘병‘헌이라는 이름이 익숙해서 이렇게 된 걸까요?
이병헌 이병헌 이병헌 이병헌 이병헌 이명헌......

stella.K 2018-11-24 16:37   좋아요 1 | URL
헉, 그러고 보니 제가 오타한 건데...
저도 이명현으로 알고 있는데 그게 아니 아니었단 말입니까? 허허.

아, 그러고 보니 스요님 대구에 있죠?
전 서울에 눈이 오면 대한민국 전체가
눈이 오는 줄 순간적으로 착각하고 있어요.
이건 일반화의 오류라고 해야하남요...ㅠ

붕붕툐툐 2018-11-24 2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책을 소개해 주셔서 감사해요~~

syo 2018-11-25 00:43   좋아요 0 | URL
별 말씀을요!! 붕붕툐툐님의 독서생활에 보탬이 되었다니 뿌듯하네요^-^
 

 

겨울름뱅이

 

 

날이 춥다. 슬픈 노래 들으면서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불 속에 숨어서 귤 까먹고, 침대 위에 흘릴까 조심조심 커피나 홀짝이고 싶다. 책 같은 건 다 집어 던지고는 그저 눈 꼭 감고 누워있고 싶다. 누가 듣지 못하게 방문을 꼭 닫고는, 내가 얼마나 다양한 톤과 표정으로 사랑해하고 말할 수 있는지 세어나 보면서. 얼굴 붉히고 이불이나 쾅쾅 발로 차면서. 세상에서 가장 귀찮은 표정으로 뒹굴고 싶다.

 

그러고 싶지만 그래도 읽은 게 있으니 또 기록은 한다이런 게 다 의미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정말 그렇다면 언젠가는 그 의미를 알게 되면 좋겠다.


 

 얼마 전 동갑내기 피아니스트와 함께 시와 음악이 있는 콜라보 공연을 했다.

 나 다음 주에 리사이틀인데 아직도 연습을 못 하고 있어.

 차를 마시다가 그 친구가 문득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매일 치잖아그럼 연습 아니야?

 그건 레슨이고공연에 칠 곡들은 몇 달 전부터 연습해야 해이제는 어느 정도 스킬이나 방법을 알고 있잖아이렇게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알고 있으니까 요령만 늘어서 더 피할 수 없을 때 할 수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아예전엔 서툴고 거칠더라도 진심을 담아 피아노를 쳤거든매번 그래야 했거든그런데 그 마음이 한 번씩 사라져.

 나는 창밖으로 쏟아지는 은행잎에 시선을 두고 대답했다.

 모든 걸 쏟아부어도 계속 가난하고 외로우니까.

 우리는 좀 지친 게 아닐까.

손미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이상합니까?

 

길었던 하루가 끝나면 침묵할 시간이 필요하다난롯불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듯침묵의 미미한 온기를 향해 굳은 손을 뻗어 펼칠 시간이.

한강

 

삶은 살면서 우리가 쏟은 노력의 헛됨으로 정의된다우주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은 두려울 정도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산적한 제약들과 퍼즐을 풀어나가는 것은 단순히 삶의 공허함을 덮으려는 행위가 아니다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텅 비었을 무언가에 온기와 형체를 부여하는 행위다.

로만 무라도프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읽은 --



마이크 비킹, 그들은 왜 더 행복할까

요한 록스트룀, 마티아스 클룸,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엔도 슈사쿠, 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요조, 오늘도, 무사

 


 

-- 읽는 --



박병상,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역사미스터리클럽,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사 명장면

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오은, 왼손은 마음이 아파

정기문,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김정운, 에디톨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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