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책 야한 문장, 웃긴 책 웃긴 생활, 귀여운 책 귀여운 인생


 

1

 

syo가 부지불식간(과연?)에 야한 문장을 썼다면, 그건 100% 필립 로스가 시킨 일이다. 전락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죽어가는 짐승』에 연이어 읽었다. 흐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대충 무방하지 않을까.


 

 

 

2



이런 저런 번역을 통해 고골의 를 세 번 읽었더니 이제 확실해졌다. 는 사실 얼굴에 달린 코가 아니라 뭔가의 약자였다. !가 아니라 코(미디)였던 것이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깨닫는데 3회독이나 필요했다는 것이 도리어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앞서 두 번이나 읽을 동안, 한 번을 웃지 않았단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예절을 지키기 위해 남방셔츠 위에다 모닝코트를 입고 식탁에 앉아 파와 빵 위에 소금을 뿌려 식사 준비를 마친 다음나이프를 손에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빵을 자르기 시작했다빵을 두 조각으로 잘랐을 때 빵 속에서 무언가 하얀 것이 눈에 띄자 깜짝 놀랐다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조심스럽게 나이프 끝으로 빵을 헤집은 다음 손가락으로 그것을 살짝 만져보았다.

  “단단한걸.”

  혼자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뭘까?”

  그는 손가락을 쑤셔 넣어 그것을 빼냈다코다......!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양손을 얼른 움츠렸다눈을 비비고 다시 손가락으로 건드려보았다역시 코다사람의 코가 틀림없다게다가 아는 사람의 코 같았다이반 야꼬블레비치의 얼굴에 공포의 빛이 감돌았다하지만 그 공포도 아내가 터뜨린 분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여보어디서 남의 코를 잘라온 거야?”

  그녀는 버럭 성을 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기꾼술주정뱅이내가 직접 경찰에 고발해야지이런 날강도가 어디 있어당신이 면도할 때 남의 코를 얼마나 세게 움켜쥐는지 내가 벌써 세 사람한테서나 들었어......”

니콜라이 고골 지음조주관 옮김

 

모자란 감수성이오나, syo는 저 문단에서 크고 작은 웃음 포인트 10개 정도를 어렵지 않게 감지하였다.

 

  하나. 역자의 주석에 따르면,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멍청한데 감정도 없는 인간이라는 뉘앙스로 읽을 수 있다고 함.

  둘. , , 소금에 불과한 식탁 앞에서도 옷차림은 갖추는 허영.

  셋. 근데 그 옷이 허접함.

  넷. 그 와중에 표정은 또 심각함.

  다섯. 빵 속에서 뭔가 엄청난 게 나왔는데 제일 먼저 한다는 말이 단단한걸’.

  여섯. 코다......, 코다!도 아닌, 코다......! 에서 느껴지는 시간차 벙찜.

  일곱. 눈을 비비는 동작을 통해 진부함과 멍청함이 아름답게 어우러짐.

  여덟. 세상에, 그 코가 또 잘 아는 코.

  아홉. 빵에서 사람 코가 나왔지만 아내의 분노에 비하면 사실 그리 큰일도 아니라하는데서 느껴지는 짠함.

  열. 내가 벌써 세 사람한테서나 들었어......라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갖가지 정서.

 

나는 좋아, 작정하고 웃기려는 작가가 나는 좋아. 그들이 실제로 웃기는데 성공하면 너무 좋아......

 

 

 

3



카모메 식당으로 청년의 출근은 계속되었다그는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치에에게 수다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 돼요지금은 바빠요.”

  평소에는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치에지만일을 할 때는 일에만 몰두했다.

  “아아...... ...... 미안합니다.”

  토미는 시무룩해져서 가게 한구석에 앉았다그리고 손님이 끊길 즈음을 틈타서 또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아버지어머니는 어디입니까?”

  “아버지는 일본에 있습니다요.”

  “일본에 있습니까핀란드에 혼자입니까?”

  토미는 신기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요.”

  “외롭고 슬프지 않습니까?”

  “아뇨.”

  사치에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여자아이 한 사람 위험합니다.”

  “여자아이누구?”

  “사치에 짱입니다여자아이입니다.”

  “아아뭐 넓은 의미에선 그렇겠지만......”

  “넓은 의미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가 필사적인 눈길로 물었다.

  “저기난 여자라는 말이에요.”

  “그렇습니다그렇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몇 번이나 크게 끄덕였다.

  “학교는...... 갔습니까?”

  “갔어요도쿄에서 대학을 나왔어요.”

  “......”

  말문이 막혔다이제야 자기보다 연상이란 걸 명백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

  그가 낙담한 것을 보고 사치에는 직구를 던졌다.

  “나 몇 살로 보여요?”

  “몇 살?”

  “내가 몇 살로 보이냐고요.”

  그는 점점 얼굴이 붉어지더니 작은 소리로 열다섯 살이라고 말했다.

  “열다섯 살?”

  사치에는 깔깔 웃었다토미는 입을 한일 자로 꽉 다물고 긴장한 얼굴을 했다.

  “나는 서른여덟 살이에요.”

  그의 동공이 커졌다순간눈앞이 캄캄해졌는지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서른여덟 살은 삼십팔 개삼십팔 년과 같습니다.”

  “그렇죠.”

  “.”

  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사치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슬픕니다그러나 힘을 낼 겁니다울지 않습니다오늘은 안녕.”

  그는 축 처진 어깨로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갔다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사치에는 중얼거렸다.

  “일찌감치 아는게 그를 위해서 낫지.”

  토미 군이 이제 가게에 안 오는 건 아닐까사치에는 걱정했다.

무레 요코카모메 식당, 44-47 

 

그러나 힘을 내어 가게에 계속 나온다, 귀요미 토미 군.

 

아무 이유 없이 지쳤을 때는 아무 이유 없이 따뜻한 영화나 책으로 충전하는 법이다. 사실 지치는 데 이유가 없기야 하겠는가마는. 하여튼 내가 왜 소진되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도무지 왜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싶은 심심하고 아늑하고 바지런한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는 작품이 좋다. 카모메 식당이야 널리 알려진 힐링 영화니 무슨 말을 덧붙일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는 중이기도 하지만, syo에게 귀여움이 이 세상을 구해줄 거예요라는 문장은 그 권위가 십계명만큼은 된다. 신앙처럼 귀여움을 믿고 있다. 그리하여 멍뭉이를 만나면 환장하며 냥이를 만나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저쪽에서 누군가 아기를 품에 안고 걸어오면, 스쳐 지나면서 반드시 그 아이 얼굴을 보고야 만다. 눈 덮인 산을 등반하는 이들의 조끼 주머니에 비상용 초코바가 들어있듯, syo의 핸드폰에는 비상용 풍산개 새끼 사진이 들어 있다. 한없이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는 하얀 생명체. 이제는 늙고 늙어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이 금방금방 움직여주지 않는데, 귀요미와의 접촉사고만큼은 언제나 감정의 쓰나미를 일순간에 몰고 온다.

 

활자도 syo에게 그런 짓을 한다. 멍청하게 책장을 넘기는 이를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카타르시스가 듬뿍 담긴 귀여운 장면들. 그런 대목을 만나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4



syo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syo가 가장 사랑하는 빨강색으로 표지를 두른 책을 내놓았다. 우산이라 쓰였고 우산이 그려진 그 책은 긴 연휴가 끝났음을 알리듯 도착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 괜히 마음이 벅차기도 했다.

 

표지를 넘기니 하얀 책날개에 오직 여섯 글자만 박혀 있었다. 황정은黃貞殷. 이 책이 황정은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외에 그 어떤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는 듯이.

 

그리고 그 글자들을 오래 바라보면서, 그 이름 석 자가 불러일으킨 신뢰, 추억, 감동, 기대 같은 것들, 다 서술하려면 넉넉히 삼만 자는 필요할 그것들을 세 개의 글자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다 느낄 수 있을 만큼 이미 황정은을 사랑하는 syo를 다시 사랑할 수 있었다.

 

여섯 글자짜리 작가 소개를 읽는데만 5분을 사용하고, 본문은 한 글자도 읽지 않은 채 쓴다.




--- 읽은 ---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 지음 / 안장혁 옮김

전락 / 필립 로스 지음 / 박범수 옮김

물고기들의 기적 / 박희수 지음

 

 

--- 읽는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지음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 이수은 지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이병훈 지음

카모메 식당 / 무레 요코 지음 / 권남희 옮김

캘리번과 마녀 /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황성원, 김민철 옮김

디디의 우산 / 황정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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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목련 2019-02-0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겹치는 책이 있어 더 반가운 페이퍼네요^^
황정은의 소설은 정말 와락입니다!!

syo 2019-02-08 10:41   좋아요 0 | URL
오늘 어쩐지 제 북플은 빨간 바탕의 우산 그림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역시 황정은이지요! ㅎㅎㅎㅎ

다락방 2019-02-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뻬쩨르부르그이야기, 카모메식당,캘리번과 마녀(읽는중), 디디의 우산(읽는 중)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죽어가는 짐승.
후훗. 저는 여섯권 겹치네요. 그런데 전락은 내가 읽었나 안읽었나..모르겠다... 확실한 건 여섯권 뿐이구려.

그나저나 캘리번과 마녀 시작했군요! 저도 주말에 열심히 읽을 참입니다. 후훗. 좋아라. 후후훗.

syo 2019-02-08 11:38   좋아요 0 | URL
뭐든 다 읽으신 다락방님. 다(읽으신다)락방님......

설해목 2019-02-0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syo님은 저와 라이벌이셨군요! 저의 가장 최애작가님도 접힌 우산을 가운데 둔 빨간 표지 책을 내셨는데!
정말 가끔 힐링이 필요할 때 넋놓고 보게 되는 영화가 있네요. 저는 <안경>이란 영화도 좋았어요. <요시노 이발관>도
사실 이 감독의 작품은 다 좋아해요. ㅎㅎㅎ
필립 로스의 글을 읽고 난 후의 syo님의 ‘45초‘ 스멜이 나는 페이퍼를 보고싶다!! ㅋㅋㅋ

syo 2019-02-08 11:39   좋아요 1 | URL
악 ㅋㅋㅋㅋㅋㅋㅋ 아무것도 못들은 척 <안경>이랑 <요시노 이발관> 보러 가야겠네요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0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뭐.... 딴지 걸고 그러는거 아니구요.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래요.
제가 필립 로스 한국어로 나온 책은 다 읽은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거든요.
필립 로스 다 읽어도 <얼굴을 만지는 방법> 같은 글은 안 나와요.
전락, 죽어가는 짐승, 유령 퇴장 또 야한 책이 뭐였더라..... 아, 포트노이의 불평.
연거퍼 연속으로 줄줄이 읽어도 그런 글은 안 나옵니다. 안 나옵디다.
그냥.... 인정해요. 인정하시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쿨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08 11: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진심 필립 로스 마니아 단발님이 이러시면 어떡해요 ㅋㅋㅋㅋ

이 정도 대접(?)까지 받을 건 아니었잖아요 ㅋㅋㅋㅋ 손이랑 볼이랑 머리카락만 나왔는데 뭐가 야하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쿨, 그게 뭔데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08 11:59   좋아요 0 | URL
그게 야한 거예요. 바로 그게.
다 나왔네. 손이랑 볼이랑 머리카락이랑......
어머나, 세상에! 댓글도 야해!!! 진심 못 살겠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08 12:03   좋아요 0 | URL
ㅋㅋㅋ의 갯수만큼 증폭되는 논란.....
이쯤에서 적당히 숙이고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나는 못내 뭔가 억울하다!! ㅋㅋㅋㅋㅋㅋㅋ

무식쟁이 2019-02-10 23:45   좋아요 1 | URL
(조용히.... 보관함에.. 담는다....흠흠;)

stella.K 2019-02-0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코가 코미디의 코 맞습니까?
그건 스요님 개인의 해석 아닌가요?
코를 읽어 본 적이 없으니 이럴 땐 웃어야할지.
암튼 대단한 발견을 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스요님이나 되니까 3번이나 읽고 깨달은 거지 난 죽었다 깨어나도 알랑가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스요님 귀여운데 있어요.
이 황량하고 거친 세상에 스요님의 귀요미로 세상을 구원해 주세요.ㅋㅋ

syo 2019-02-08 16:30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 그 코는 아무래도 진짜 ‘코‘겠지요? ㅎㅎㅎ

세상을 구원하는 귀요미는 저 같은 무뢰배가 후천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타고난 것이 조금은 필요합니다.^-^

책읽는나무 2019-02-0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은 얼마전 도서관에 신간서적 코너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다른 책들 빌리느라 미적거리느라 놓친 것이 못내 안타깝네요ㅜㅜ
알라디너 매니아분들이 황정은의 소설을 올릴때마다 아~~탄식중이네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할테고...
또 구입을 해야하나??
고민중입니다.
그래도 전 그나마 ‘카모메 식당‘저 이야기로 위안 얻고 갑니다^^
전 저 영화로 인해 시나몬 롤케잌을 언젠간 반드시 만들고 말테다!!!굳게 다짐하며 제빵 요리책을 탐독하기 시작한지가 몇 년입니다^^

그나저나 님의 글을 읽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진짜 고골의 ‘코‘가 ‘코미디‘의 코였어요?ㅋㅋ
저도 읽긴 했는데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아서????
인용한 글도 생전 처음 보는 글들이라?????
이래서 책을 재독하라고 하나 봅니다.

ps.필립 로스는 단발머리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합니다.
워낙 영향력 있게 필립 로스를 몇 년 전부터 외쳤었던 분이신지라...ㅋㅋ
전 휴먼 스테인 1권만 읽고,2권은 아직 읽지도 않아 늘 단발머리님께 죄송할 정도에요ㅋㅋ
헌데 많이 야하다니 필립 로스의 책들도 언능 읽어봐야겠습니다^^

syo 2019-02-08 16:32   좋아요 0 | URL
제가 쓸데없이 진지를 떨어놔서 혼란을 혼란을 불러일으켰군요.
짐작하신대로 그 코는 당연히 그냥 코입니다 ㅋㅋㅋㅋㅋ 뻘소리였어요 ㅎㅎ

그런(?) 목적으로 필립 로스를 찾으신다면 결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ㅎㅎㅎ

댓글을 보니, 갑자기 시나몬 롤이 먹고 싶어지네요.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안했었는데??

반유행열반인 2019-02-0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필립 로스책 개인 셀러에게 주문했는데, 했는데!! 연락이 왔어요. 누군가에게 벌써 팔아버렸다고...품절이라고...아직은 저한테 안 다가 오네요 할배책이...나 센 거 좋은데...이누므 할배가 새 책 사 보라고 그러시나...

syo 2019-02-08 16:34   좋아요 1 | URL
그런 신통력을 발휘하는 걸 보니 필립 로스 할배,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셨나보네요.
야하면서 좋은(야하지만 좋은? 야하니까 좋은?) 책을 꾸준히 써낸 보람이 있게 되었네요.

카알벨루치 2019-02-0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군 댓글달기때는 탑/바텀 버튼이 있어야겠네요 스크롤하는게 힘드렁 ㅜㅜㅋㅋ

인제 도끼 읽으라고 준비하는감요?

syo 2019-02-08 16: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눈치가 빠르시군요. 역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를 읽은 분 답습니다.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조용히 도선생님 순례를 시작하려 했는데......

카알벨루치 2019-02-08 16:43   좋아요 0 | URL
나 그거 꽂아두고 눈팅만 하는뎅~<태백산맥>넘어 ‘시베리아산맥’넘다가 도끼로 갈수도, 아님 톨스토이로 갈수도...응원합니다!!!!

syo 2019-02-08 17: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언제든 넘어오시기만 하면 되는 거죠 뭐.
저도 응원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9-02-0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
독서모임에서 <죽어가는 짐승> 너무
야하고 재밌다고 했더랬죠.

다른 분들은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역시 나와 다른 이들의 관점은 다르구나
를 절실하게 느꼈지 싶습니다.

syo 2019-02-08 19:50   좋아요 0 | URL
그 맛에 독서모임 하는 거로군요!! ㅎㅎㅎㅎ 재미는 몰라도, 야하다는 데는 다들 동의하지 않을까요?? ㅎ

북다이제스터 2019-02-08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모메 식당 영화 보고 핀란드 카모메 식당 얼마 전 다녀 왔습니다. 식당은 별거 없었지만 핀란드는 정말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사회 시스탬이...

syo 2019-02-09 08:48   좋아요 0 | URL
역시 북다님 ㅎㅎㅎㅎㅎ 여행지에서 가장 감명받은 것은 그곳의 사람들과 사회시스템!! ㅎㅎ

무식쟁이 2019-02-1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소개: 황정은 댓츠올. 캬! 멋지네요.
저 사실은... 쫌만 있으면 왠지 디디의 우산이라고 쓰여져 있는 뽀샤시한 빨강우산이 굿즈로 나올것 같은 예감에.. 책구매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
어디가서(요기와서) 황작가님 팬이라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 겠어요;;

syo 2019-02-11 00:29   좋아요 0 | URL
세상에 황정은 작가님 샤이팬이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을 작가님이 알아야 되는데.....
저도 여기서 팬심 고백했지만, 다른 분 서재에서 보고 바로 두손 두발 들었거든요.

빨간우산 굿즈, 정말 나올까요? 쟁이님 평소에 이런 거 잘 맞추시는 편이세요? 어떠세요 ㅎㅎㅎ

AgalmA 2019-02-1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골의 『코』를 그렇게나 읽으셨다니 엠마뉘엘 카레르 『콧수염』도 꼭 읽으셔야 할 걸로 사료되옵니다. 엠마뉘엘 카레르가 또 러시아 빠 아닙니까. 『러시아 소설』이라는 자전적 소설도 쓰고 러시아 개혁파 시인 얘기 『리모노프』이야기도 쓰고ㅎ.『콧수염』 은 저도 아직 안 읽었는데 생각난 김에 읽어야 겠어요.

syo 2019-02-11 00:32   좋아요 0 | URL
전 엠마뉘엘 카레르라는 이름도 지금 처음 들어봅니다.....
이렇게 추천까지 똭 해주시니 제가 밀리의 서재보다 아갈마님의 서재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ㅎㅎ

토큰 2019-02-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필립 로스를 읽으러 갑니다..^^

syo 2019-02-12 12:22   좋아요 0 | URL
야하고 유익한 시간이 되시기르흐흐흐흐흘ㅎㅎㅎㅎㅎ
 

 

오늘의 나와 나의 오늘을 위한 책

 

 

1

 

영문도 모른 채 마음 아픈 해질녘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내일 다시 해가 뜰 것임을 아는 게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 불안한 밤, 빈틈없이 밝은 빛 속에서 홀로 그늘진 마음을 숨기느라 끊임없이 초라해지는 한낮 같은 것들이 종종 끼어드는 것이 삶이라서, 때론 그저 산다는 이유 하나면 격려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

 

우주공간에 박힌 별만큼 삶은 많고, 그 많은 삶만큼 책 또한 많기도 많아서, 세상에는 오늘의 나에게 꼭 맞는 한 권의 책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단단히 믿게 된다. 단지 우리가 서로를 스쳐 지나쳤을 뿐. 생각한다. 내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느 한 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순간에서 몇 백만 광년이 지나 그 별에 사는 누군가가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내 손가락 지문에서 태어나 어두운 우주를 헤엄쳐서 마침내 그 별까지 도달한 독특한 파장의 가녀린 빛을 포착하는 일에 대해서. 만났는지도 모르고 만나는 일에 대해서. 모든 결정적인 만남은 회상 속에서만 알아챌 수 있다는 신비한 법칙에 대해서. 그래서,

 

 

 

3


그때 그 책이 내 인생의 골목길에 모퉁이 하나를 점지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책이 나와 다른 장점과 단점과 관점을 가지고 그때와 다른 시점을 살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한낱 종이뭉치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넉넉히 받아들이려면 공간의 도움조차 필요하다. 마음의 넉넉한 공간.

 

 

 

4

 

그 공간 역시 사실은 시간이 열어젖힌다. 결국은 모두 시간이 하는 일이다.

 

 

 

5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도움으로 가끔은, 내게 꼭 필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책을 읽고 있다는 확신에 찬 손길로 책장을 넘기고, 자신감 있게 밑줄을 긋고, 여백에 짧은 글귀를 남기며 스스로 감탄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충만함, 지금 내가 내게 너무도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서 오는 그 충만함에 듬뿍 젖어 있는 사람은 강하다. 깊게 읽고 빽빽하게 쓰며 넓게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삶이 단단해진다. 흔들리지만 흔들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둘러가지만 둘러가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게 된다. 축복처럼 쏟아지는 결맞음의 경험. 그래도 한 번은 겪어봤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6

 

내게 필요한 책을 읽고 싶다.

 

푸슈킨 문학은 기본적으로 밝고 경쾌합니다슬픔에 빠져 있을 때 감정을 끌어올려 줍니다정신 건강에 좋다고 할까요레르몬토프나 고골 같은 작가로 가면 정신 건강에 조금 유해합니다독자에게도 체질에 따라서 맞는 작가들이 있어요평소에 기분이 너무 고양돼 있는 분들은 푸슈킨하고 잘 안 맞습니다같이 가벼우니까요그런 경우에는 끌어내려 줄 수 있는 좀 우울한 작가들이 좋습니다그 대신 평소에 좀 우울하다 싶으면 푸슈킨을 많이 읽으세요그러면 도움을 얻을 수가 있어요물론 푸슈킨의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유해한 작품도 몇 편 있어요청동 기마상이나 스페이드 여왕같은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미치는 걸로 되어 있어요푸슈킨도 미칠 지경일 때 쓴 거라서 그렇습니다.

이현우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56



책은 다방면으로 사용할 수 있다슬플 때 얼굴을 가릴 수 있다얼굴을 가리고 조금 울 수도 있다마음이 펄럭일 때 납작한 돌멩이처럼 배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잡생각이 가득할 때 같은 문장을 반복해 읽으며 생각의 둘레를 걷고걷고또 걸을 수 있다운이 좋으면 생각의 둘레에서 벗어나 책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다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펼치면 아늑해진다나는 운이 좋게도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작가를 여럿 알고 있다내 모습이 싫을 때 가장 먼 곳으로 재빨리 데려다주는 것은 책뿐이다어떤 비행기도 하지 못한다돌아오는 것도 쉽다음악이나 영화에서 빠져나오려면 버튼을 눌러야 하지만 책은 간단하다눈을 떼면 된다내 몸처럼 붙었다 다른 몸처럼 떨어진다혼자 행하지만 외롭지 않은 일이 독서다좋은 책을 읽고 난 뒤 책장을 덮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심심할 땐 책이 좋다내가 책을 읽는 첫번째 이유는 '재미'때문이다신기하게도 모든 재미있는 일은 나를 변하게 하고삶을 변하게 하고세상을 변하게 만든다.

  그러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고 가벼운무기를 사야 한다면책을 사야 한다.

장석주박연준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399-401 

 

나는 어릴 적에 그림을 볼 때 거기에 묘사된 사물이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알고 싶어했음을 다시 떠올렸다예를 들어 우리 집에는 빙하 풍경을 담은 유화가 한 점 있었는데그 그림의 아래 가장자리 부분에 알프스의 움막 농가가 그려져 있었다나는 이 풍경과 움막 농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심지어 화가가 서 있던 위치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그래서 사람들이 이 그림은 상상화일 뿐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그림은 그냥 그림일 뿐그것에 관해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오랫동안 거의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 있곤 했다글자 읽는 법을 터득할 때도 상황은 흡사했다존재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 무언가를 기술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학교에서 배우는 독서교본에 나와 있는 장소는 분명히 존재했다비록 내 소유는 아니지만 근처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소로서 심지어 그곳이 어딘지도 알고 있었다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책들은 항상 일인칭 시점의 이야기들이었으며일인칭 화자가 등장하지 않는 책을 접하면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페터 한트케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122-123 

 

 

7


 

이 소규모 서클의 급성장에 경악한 경찰은 1898년에 트로츠키를 비롯한 회원들을 체포했다트로츠키는 감옥에 갇혀 있는 2년 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썼다그가 처음으로 레닌의 몇몇 저작을 읽고프리메이슨의 역사를 다룬 마르크스주의 저작을 처음 쓴 것도 이때였다그는 또동료 재소자들 사이에서 선동을 하기도 했다비록 효과는 없었지만 극적인 모자 착용 투쟁을 벌였다가 한동안 독방에 갇힌 적도 있었다.

마이크 곤살레스 외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216


우스티카 섬의 교도소에서 다른 공산주의자들이나 반파시즘 투사들과 함께 즐겁게 지낸 몇 개월을 제외하면그람시는 형기 내내 사실상 격리돼 있었다정권의 의도대로 그의 건강은 나빠졌다특히 폐결핵동맥경화증척추카리에스(척추가 차츰 파괴돼 등의 근육을 따라 고름 종기가 생기는 병)가 그의 몸을 점차 망가뜨렸다그람시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몸이 너무 아파서 특별 대우를 해달라고 간청하며 정권에 굴복하는 것이었다그러나 그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그람시는 믿기 힘든 강인한 의지력으로 역경을 헤쳐 나갔고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29년부터 1935년까지 노트에 다양한 글을 썼다그 노트들은 천신만고 끝에 안전하게 밖으로 반출됐다. <옥중 수고>는 엄청나게 어려운 조건에서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고전을 전혀 열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쓰였다(그람시는 순전히 기억에 의지해서 마르크스주의 고전들을 인용했다). 그람시는 노트 33권의 2848쪽을 빽빽하게 채워 넣는 데 성공했다.

같은 책, 318-319


감옥에서 읽거나, 읽어서 감옥이거나. 감옥에서도 읽고 쓰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감옥에서도 밖에서처럼 읽고 쓸 수 있어서 감옥이 감옥이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감옥 밖에서도 감옥에서처럼 읽고 쓸 수 있어서 온 세상이 감옥이었습니까?

 

가끔은 읽는 일이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읽는 일은,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집착을 갖게 한다. 많이 읽어보면 안다. 그 집착은 양에 대한 집착, 질에 대한 집착 따위로 단순하고 추상적이면서 무신경하게 이름붙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이를테면 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읽을 때 총론서와 각론서의 수적 비율과 읽는 순서에 대한 집착 같은 것. 총총각총각각총각총각과 총총각각총각총각각총 중에서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에 대한 벗어날 수 없는 고민 같은......

 

 

 

 

 

--- 읽은 ---

돈 후안 외 / 티르소 데 몰리나 지음 / 전기순 옮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이현우 지음

불교입문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지음

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 마이크 곤살레스 외 지음 / 이수현 옮김

 


--- 읽는 ---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 지음 / 안장혁 옮김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 한민 지음

전락 / 필립 로스 지음 / 박범수 옮김

물고기들의 기적 / 박희수 지음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지음 / 김인순 옮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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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9-02-07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중에 필립 로스의 <전락>만 읽은...;;;;

syo 2019-02-07 14:20   좋아요 0 | URL
<전락>을 2년쯤 전에 읽었다가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거의 처음 읽는 거랑 진배 없더라구요..... 저기 나열되어 있는 다른 애들도 아마 비슷한 운명이겠지요ㅠㅠ

jeje 2019-02-07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어제 급하게 만난이에게 선물했어요. 저에게 너무 좋은 책이었는데, 그 사람은 어떤 느낌으로 읽게 될지 정말 너무너무 궁금했어요. 언젠가 읽게 된다면 어땠는지 꼭 얘기해주기로 했습니다. 내가 좋아한 책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면 더 좋은 책이 될거같아요. 기대됩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syo 2019-02-07 23:56   좋아요 0 | URL
jeje님께서 선물하신 책이 선물 받은 분께서도 좋아할 만한 책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렇지만 내가 좋아해서 권한 책이 다른 이에게 그만큼 좋은 책이 못 되는 경험도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

카알벨루치 2019-02-0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교입문>도 읽으심????? ㅋㅋ

syo 2019-02-08 09:2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호기심천국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2-08 10: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AgalmA 2019-02-11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옥이라서 <주역> 같은 오래 읽을 수 있는 동양철학 책을 봤다는 신영복 선생님 얘기에 제가 감옥에 가면 뭘 읽을까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일단 감옥이나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다 읽을 생각입니다. 그런 데에 곧 들어가진 않을 거 같아서 답답한 심정에ㅎ;

읽고 쓰는 게 감옥이라는 정서는 다들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인 듯요.

syo 2019-02-11 00:35   좋아요 2 | URL
읽고 쓰는 게 감옥이라서 감옥에서 읽고 쓰는 게 더 치열해지는 구조인가요......
오, 생각해보니 비슷한 경험 있다.

감옥은 아니지만, 논산에서 훈련받을 동안 정말 읽을 게 궁해지니까 교회에서 나눠준 포켓 사이즈 신약성경을 불침번 서면서 3회독을 하게 되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ㅋ

무신론자 협회에서 배교자라고 잡으러 오는 거 아닌가 몰라....

AgalmA 2019-02-11 00:38   좋아요 0 | URL
군대가서 책 열심히 읽는 분 많더군요^^ 그래서 거기 책도 많이 비치하잖아요. 자기계발서 같은 거만 많이 읽지 않길 바랄 뿐ㅎ;

syo 2019-02-11 00:42   좋아요 0 | URL
제 때는 1Q84가 들어와 있었는데, 야한 장면 있는 부분만 손때가 타더니 결국 얼마 못가 소실되고 만 일이 있었지요...... 하루키를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제대를 하였는데, 제대 후에도 꾸준히 하루키를 읽어주고 있는가 모르겠다.

무식쟁이 2019-02-1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글 참 좋아요. (아이고 참. 이 답답한 표현력; )
 


얼굴을 만지는 방법

 

 

1

 

행동으로서는 명백하지만 그 의미하는 바가 명백하지 않다는 사실 덕에 역설적으로 명백하게 의미를 갖추는 동작들이 있다. 예컨대 얼굴을 만지는 일.

 

얼굴을 만지는 일은 어떤 관계에서는 단지 동작으로서만 작용하지 않는다. 그 관계 안에 있는 이들에게 사실, 얼굴을 만지는 일은 없다. 오직 얼굴을 만져주는 일과, 얼굴을 만지게 해주는 일만이 존재한다. 오직 주는 일과 주는 일이 마주할 뿐이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생겼거나, 그렇게 생겼다고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몰두한다. 얼굴을 만지는 일에는 불필요할 섬세함이, 얼굴을 만져주는 일에는 요구된다. 그래서 그 일은 충분히 연구의 대상이 되고, 서로는 아무리 연구해도 충분하지 않은 대상이 된다. 우리가 충분히 몰두할수록, 우리는 몰두하기에 충분해진다.

 

가령, 핸들을 잡고 있는 당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갈 때, 나는 연구한다. 손등 방향으로 당신의 얼굴을 스치는 방식이, 손바닥과 붙어 있는 손가락 안쪽 마디를 평행하게 눕혀 당신의 볼을 귀에서 턱 방향으로 스치듯 훑어 내려갈 때 그 동작이 악셀을 밟고 있는 당신의 다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한다. 목 옆쪽으로 떨어지는 머리칼을 쓸어내릴 때, 어느 높이에서 시작해야 할지, 몇 개의 손가락을 동원해야 할지, 손가락 사이사이에 머리칼은 얼마만큼 품어 넣어야 할지, 손이 훑어 내려오는 속도는 벚꽃이 떨어지는 것보다 빨라야 할지 느려야 할지, 나는 천천히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음미한다. 그 모든 경우의 수가 내게서 무엇을 꺼내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살뜰히 짐작하는 일이 기껍다.

 

그 작은 얼굴에 손 하나 닿는 방법이 무수하여 무수한 시간동안 나는 당신을 무수히 생각할 작정이다.

 

내 심장에서

느티나무 같은 밤이 자란다.

너를 향해

내 발바닥엔 잔뿌리들 간지러이 뻗치고

너를 만지고 싶어서

내 모든 팔들에

속속 잎새들 돋아난다.

황인숙밤의 노래」 부분

 

나는 겨우라는 붓에 기대어 날마다 사과 한 알씩을 먹으며 당신을 사랑합니다사랑은 하나의 성냥개비가 척하고 불꽃을 일으켰다가 꺼지는 찰나의 사건이지요내가 '당신의 첫'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라는 첫'은 저 오클랜드 서쪽 바다의 일렁이는 너울같이 내게 연이어 다가오는 첫사랑입니다당신이 첫사랑이 아니라면 옆에 있는데도 이토록 당신을 그리워할까요당신은 옆에 있지만 멀리 있어요당신은 찰나이면서 그 찰나가 품은 영원입니다.

장석주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아내가 뒤척거리며 반대로 돌아누웠다그 바람에 발목이 담요 밖으로 빠져나왔다장길도는 아내의 새하얀 발을 잠시 들여다보았다원래 저리 하얬던가모를 일이었다한 사람의 전부를 알려면 우주만큼 장수해야 할 것 같았다.

박형서당신의 노후

 

 

2


무릇 인간이란 남을 지배하든가 남에게 섬김을 받든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라는 건 잘 압니다누구에게나 맑은 공기가 필요하듯 노예란 필요하지요명령하는 것은 곧 호흡하는 것이니까요여기에 동의하시죠가장 불우한 사람조차도 숨은 쉬게 마련입니다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배우자나 자식이 있고 독신일 경우엔 개가 있지 않습니까요컨대 핵심은상대는 대꾸할 권리가 없으나 자신은 화를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한테 말대답해서는 안 된다'라는 상투적인 말이 있습니다알고 계시죠어떤 면에서 보면이 말은 좀 이상합니다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가 아니면 대체 누구한테 말대답을 한단 말입니까그러나 달리 보면 꽤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누구에게나 대적할 수 없는 상대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그러지 않으면 모든 이유들이 서로 대립할 수 있고결국 끝이 나지 않을 테니까요이와 반대로권력은 모든 것을 단번에 끝내줍니다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이것을 터득했지요가령당신도 알아차렸겠지만우리의 늙은 유럽은 드디어 꽤 쓸 만한 방식으로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습니다우리는 이제 순진한 시절에 그랬듯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다들 냉철해졌거든요대화도 통보로 대체해버렸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요. "이상은 사실이다당신들은 언제든 이것을 검토할 수 있으나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몇년 후경찰이 당신들에게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알베르 카뮈전락, 46-47 

 

내가 도달한 나이는 콘수엘라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어노신사와 사귀는 여자아이들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러는 게 아니야-나이에 끌리는 것이고나이 때문에 그러는 거야왜냐고콘수엘라의 경우 그건 엄청난 나이 차 때문에 자신이 굴복하는 것을 스스로 허용할 수 있어서인 듯해내 나이와 내 지위가 아이에게합리적으로 항복해도 좋다는 허가장을 주고그러면 침대에서 항복하는 게 불쾌한 감각이 아닌 거야동시에나이가 훨씬훨씬 많은 남자한테 친밀한 방식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이런 젊은 여자는 젊은 남자와 성적인 수작을 할 때는 얻을 수 없는 권위를 갖게 돼굴복의 쾌락과 더불어 정복의 쾌락을 누리는 거지여자의 권력에 굴복하는 남자아이그렇지 않아도 매력이 넘치는 존재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하지만 세상을 아는 남자가 오로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의 힘 때문에 굴복한다면완전한 관심을 얻고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접근할 수 없는 남자에게 절실한 열정의 대상이 되고다른 방식으로는 자신에게 열리지 않을 숭배하는 삶에 진입한다면-그것은 권력이야그것이야말로 아이가 원하는 권력이지.

필립 로스죽어가는 짐승, 46-47 

 

두 거장이 각자 자기 책 46-47쪽에서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전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층위에서의 의미, 그 의미를 손으로 가리고 생각하면, 두 거장이 말하는 권력은 기이할 정도로 닮아 있지 않다. ‘권력이라는 것이 현미경을 대고 관찰하기에 좋은(혹은 그렇게 관찰해야 옳은) 단어라는 반증이 아닐까. 정황과 화자와 청자를 모두 고려하면 수백만 가지의 미시적인 의미차이가 발생하는 단어, ‘권력

 

그러나저러나 문장으로 이름난 작가의 책을 연속으로 읽는 일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글쓰기가 싫어지고, 억지로 써놓고 보면 꼴 보기 싫다. 에잇, 다 죽어버렸으면!

 

, 맞다, 죽었지......

 

죄송합니다......

 

 

 

3



현재까지 확보된 수많은 증거에 따르면 낙랑군이 평양 지역에 있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그런데도 낙랑군을 한반도 밖에 있었던 것으로 주장하고 싶어 하는 심리 저변에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식민지 콤플렉스다고대 한반도 내에 외부 세력이 설치한 식민지가 존재했다는 것이 감정적으로 싫은 것이다그러나 고대에 설치된 중국의 군현을 근대의 식민지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더러설령 낙랑군이 평양이 아닌 한반도 바깥에 있었다 하더라도고조선이 기원전 108년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멸망하고 그 자리에 낙랑군이 들어섰다는 역사적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낙랑군이 설치된 곳이 한반도 안쪽만 아니면 돼라는 것은 그야말로 유치한 태도다.

  둘째는 고조선이 대륙에 존재했던 아주 큰 나라였다는 영토적 허영심을 충족하는 것이다사이비 역사가들은 실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광대한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역사를 반도로 축소했다고 열을 올려 주장한다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륙의 역사는 우월하고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과 욕망에 취해 정작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한반도를 혐오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이것이야말로 과거 식민주의 사학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젊은역사학자모임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59-60 

  

물었다. 근초고왕 때 요서지방까지 진출했다는 사실을 아냐고. 대답은 이런 식이었다.

 

- 근초고왕이 누군데?

- 백제가 전라도야 충청도야?

- 요서가 북한에 있는 거야?

 

역사가 내게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를 놓고 다투는 이들의 꼴이 더욱 웃겨 보인다. 저게 뭐라고.

 

잘못된 역사관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어쩌구저쩌구 하는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이 만주벌판의 어디까지 말발굽을 찍고 왔는가 하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지나가는 듯한 CF속에 숨겨져 있는 코드들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게 21세기 자본주의 세계다. 요컨대 저들은 진영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영향력을 너무 과신하고 있다.

 

어차피 모든 역사는 이데올로기다.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고, 출토된 유물은 영토와 영토 사이에 확고한 금을 그어주지 않는다. ‘사실은 없거나 약하고, 최소한 사실을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사람이 사실보다 더 많고 열정적이다.

 

역사로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다 별로고 짜증나지만, 그래도 자기 배 불리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은 차라니 견딜 만하다. 어차피 나는 안 믿을 거고, 그들이 역사로 국을 끓여 제 배를 채운다고 내가 배고플 일은 아니니까. 그러나 역사의식이니 뿌리민족적 정체성이니 하는 소리를 입에 올리는 인간들, 특정한 국가에 태어났으니 받아들여야 옳은 윤리적/사상적 규범조항과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될 의식적 원형이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들, 그걸로도 모자라서 자기네들에게 그 규범과 원형을 발굴하고 해독해 낼 자격이 있다고 믿는 인간들은 혐오스럽다.

 

 

 

--- 읽은 ---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전락 / 알베르 카뮈 지음 / 유영 옮김

맑스주의 역사 강의 / 한형식 지음

죽어가는 짐승 / 필립 로스 지음 / 정영목 옮김

 


--- 읽는 ---

돈 후안 외 / 티르소 데 몰리나 지음 / 전기순 옮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이현우 지음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지음 / 박지영 옮김

불교입문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지음

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 마이크 곤살레스 외 지음 / 이수현 옮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 지음 / 안장혁 옮김

마르크스 평전 / 프렌시스 윈 지음 / 정영목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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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9-02-0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이렇게 읽어대다니 혹시 그대 알라딘 쇼군 AI? 치킨만 먹는 독서AI??? 왕부럽삼

syo 2019-02-04 13:45   좋아요 1 | URL
내일부터 놀 거예요!! 이번 연휴는 이걸로 땡처리ㅎㅎㅎ

stella.K 2019-02-05 19:07   좋아요 0 | URL
지금 놀고 있습니까?
아닐 것 같은데...ㅋ

박형서 소설 끌리는군요.^^

syo 2019-02-05 19:4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그러믄요. 지금도 술판인데요 ㅎㅎㅎ

stella.K 2019-02-05 19:5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어쩐지 거짓말 같아요.
그러면 술판에 집중해야지
이런 훌륭한 댓글을 휘리릭 남기다니...ㅋㅋ

박형서 소설 리뷰 부탁해요.^^

syo 2019-02-06 10:03   좋아요 1 | URL
조만간 다시 읽고 한 번 해보겠습니다만, 그 전에 그냥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권합니다.
장르는 본격국민연금스릴러 라고 할까나요...

2019-02-04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4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쟝쟝 2019-02-0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야하다......... 야하네요. 야해요.. (웅?)
새해 첫날부터 ...

syo 2019-02-05 18:41   좋아요 0 | URL
응???????

단발머리 2019-02-0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야하다......... 야하네요. 야해.
새해 첫날부터..... ^^

쟝쟝 2019-02-05 17:34   좋아요 0 | URL
그쵸!! 야하죠? 저만 그렇게 느낀거 아니죠?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9-02-05 17:4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 야한 경우와 쫌 야한 경우와 와우! 야한 경우가 있죠. 이번 경우는 ..... 으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05 18:41   좋아요 0 | URL
으응????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ㅋㅋㅋㅋㅋㅋ

정말요??😣

쟝쟝 2019-02-06 09:54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쇼님 능청 ㅋㅋ 무슨 사람이 얼굴을 저렇게 야하게 만지나여!!!???🥴

syo 2019-02-06 10: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 건 표정이 중요해요 😃 이런 표정으로 만지면 하나도 안 야함니다ㅎㅎㅎ

독서괭 2019-02-07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 야하다........ 야하네요. 야해.
옆에서 저렇게 만지면 운전할 수 있겠나요? 안전운전!ㅋㅋ
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19-02-07 10:10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우리에겐 갓길이 있잖아요.......응?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독서괭님도 새해 귀여운 애기와 함께 복 많이 받으소서!

AgalmA 2019-02-11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이 다 죽어서 syo님에겐 더 이득인 점도 있죠. 그들이 못쓴 걸 쓰시면(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소!) 나 왜 자문자답하고 있나;

요즘은 역사보다 ‘과학적 증거‘가 더 쟁점 아닌가 싶군요. 과학적으로 증명하면 승자가 되는~ 그러니 창조론자 같은 웃지 못할 세력이 있는가 하면 그들이 미국에서 교과서에 다윈의 진화론 대신 창조론 넣으려고 기를 쓰는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하는; 박근혜 때보다 더 한 거죠. 한 나라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 전체를 날조하려는 음모가!

syo 2019-02-11 00:39   좋아요 1 | URL
어차피 될놈될이니, 그들의 생사여부와 무관하게 전 안 되잖아요 ㅎㅎㅎㅎ 그냥 괜히 맨날 투정만 부리는 거죠 뭐.

‘과학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과학적으로 정의가 된 상태인지, 과학적으로는 정의가 되어있는데 사회적으로 합의가 안 되 있는 건지, 하여간 니 과학과 내 과학이 서로 다른 과학이라 세상에는 과학이 난무하는데 과학적인 세상은 오질 않는 것 같아요.....

AgalmA 2019-02-11 00:43   좋아요 0 | URL
현재로서는 ‘과학적‘이라 하믄 김상욱 박사의 이 표현이 적절하리라 싶네요. “과학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 혹은 방법”, “과학은 불확실성과 확률을 현명하게 다루어 확실성을 얻는 방법이다.”(<떨림과 울림>)
이게 사회적으로는 잘 먹히고 있지 않은 거 같지만;

syo 2019-02-11 00:57   좋아요 0 | URL
앞의 표현은 저도 방송을 통해 들었었는데요. 유시민 작가님도 되게 감동받으신 것 같았구요.

그런데 저는 별로 와닿지가 않았던 게, 앞의 말씀은 ‘삶의 태도‘로서의 과학이고, 뒤의 말씀은 ‘인식론‘이나 ‘지식의 확장‘으로서의 과학적 방법론 같은 건데, 두 가지가 그리 매끄럽게 붙는 것 같지가 않아요. 확실/불확실이 수치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도 쟁점이 되는 문제인 것 같고......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 혹은 방법˝이라는 표현은 철학 입문서에서 맨날 보던 말이라서 식상하기도 했고......

삶의 태도로서의 과학과 인식론으로서의 과학이 따로 있다는 것이, 필드마다 그 필드에 최적화된 과학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져서, 더 혼란스럽다고 할까요;;

2019-02-11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1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명절, 그 낮의 syo와 밤의 syo

 

 

1

 

백수에게 명절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

 

이것은 무게감이 만만하지 않은 화두로서 1년에 두 차례, 정말 징하게도 오랫동안 고민해온 질문인데, 어쨌든 노답이다. 뜨거운 눈총(적당히 하세요, 뜨거워서 정월 초하루에 반팔 입게 생겼잖아요)에 데고 날카로운 충고(라고 부르시니까 그렇다고 쳐드립니다)에 베이는 하루 종일을 10~15회쯤 겪고 나면 이쪽도 어쩐지 무감각해지고 저쪽도 어쩐지 지쳐서, 무승부라기보다는 쌍방이 패배하는 결론이 늘상 도출되는 식이다. 말하지 않아도 이심전심 서로가 아는 것이다. 의미가 농축된 짧은 한 마디 말과, 감정이 쪼르르 새어나오는 능숙하지 못한 눈빛과, 그걸 덮기 위해 던지는 어색한 웃음 같은 것들이 긴 이야기를 단번에 대신한다. 아, 역사란 이렇게나 편리한 것이다. 때리지 않지만 때리고, 얻어맞지 않지만 얻어맞는 기적의 현장. 그런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너의 한 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누군가는 말했다돈은 빵이야.

누군가는 말했다돈은 상품이야.

누군가는 말했다돈은 삶이야.

 

하지만 누가 말할까돈이 당신이라고상품이라고?

오 이런살아 있는 생물이라고?

생명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데?

 

이것은 절대 좋은 거래가 아니다.

국가들은 진짜 살아 있는 것들을 보호하지 않는다.

 

그대 자신이 되어라!

그대 자신이!

 

그 책에 당신의 표식을 할 때에

모든 것이 살아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삶이란 가난한 이들과 영원한 추종자들을 위해

망각을 퍼트리고씨앗을 뿌리고낭비하는 것 아닐까?

에곤 실레영원한 아이, 13-15쪽

 

가끔은어른 흉내를 내고 싶어 애쓰는 나를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어린 나와 맞닥뜨릴 때가 있다.

김정선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194

 

나는 왜 글을 쓰는가내 손가락이 촉침처럼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질문을 추적한다젊었을 때부터 내 앞에 놓인 익숙한 수수께끼언어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놀이와 친구들과 사랑의 계곡에서 한 박자 바깥으로 물러서기.

  우리는 왜 글을 쓰는가합창이 터져 나온다.

  그저 살기만 할 수가 없어서.

패티 스미스몰입, 129


 

 

2

 

백수에게 명절은 도리 없이 그런 것인데, 백수+독서가에도 명절은 일종의 허방이다.

 

휴일이 기니까 이게 다 가능할 거라는 기대로 책상 위에 책을 잔뜩 쌓아놓고 호연지기로 연휴의 문을 열었으나, 나올 때는 쥐구멍으로 나왔던 경험을 서너 번쯤 하고 나니까 비로소 문제의 원인이 드러난다. 핵심은, 백수에게는 평일이 명절이고 명절이 평일이지만 non백수에겐 평일이 평일이고 명절이 명절이라는 점이다. 백수는 명절에 바쁘다. 평일에는 놀아주는 사람이 없다보니, 울며 겨자를 먹든 웃으며 피자를 먹든 어쨌거나 읽는 일 말고는 딱히 할 게 없다. 그러나 명절이 되면 집단수용소에서 해방된 노동자들이 떼로 거리에 몰려나와, 그간 바삐 사느라 녹이 슬었던 우정의 표면에 기름을 칠하거나 함께 돼지껍데기를 뒤집으며 행복했던 어린 시절을 되새김질할 친구, 감정의 배터리를 완충시켜 다시 일상을 헤쳐 나가는데 힘이 돼 줄 25YearAh짜리 대용량 보조배터리를 찾아서 전화번호부를 샅샅이 뒤지는 일이 발생한다. 결국 syo는 이리저리 불려나가고, 늦은 밤까지 너덜너덜해지고, 알딸딸한 표정과 마음을 하고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일 년에 한두 번쯤은 이렇게, 책 대신 사랑하는 친구들의 얼굴을 읽는데 시간을 쓰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좋구나, 감당할만한 행복이구나, 뭐 이런 생각들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요즘도 너는 너하고 서먹하게 지내니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아직도 매일매일 일어나니아무에게도 악의를 드러내지 않은 하루에 축복을 보내니누구에게도 선의를 표하지 않은 하루에 경의를 보내니모르는 사건의 증인이 되어달라는 의뢰를 받은 듯한 기분으로 지금도 살고 있니아직도아직도 무서웠던 것을 무서워하니.

김소연i에게」 부분

 

인생의 고랑에 맺힌

찰나의 수화물처럼

신의 비밀스러운 섭리 따라

한 세대가 싹트고 익고 사라지면,

또 다른 세대가 그 뒤를 잇고......

그렇게 우리 경망스러운 인간은

자라고 요동치고 들끓다가

조상들의 무덤가로 모여든다.

우리의 때도 곧 닥쳐오리니,

그 시간에 후손들은

우리를 상에서 밀어내리라!

 

벗들이여그때까진 이 가벼운 인생을

취하도록 마실지라!

알렉산드르 푸슈킨 지음김진영 옮김예브게니 오네긴 

 

 


3

 

내가 정말 쓰임이 없으며 여러 사람의 얼굴에 불편한 웃음이나 걸어놓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시름하는 낮과, 내가 그래도 쓰임이 있으며 몇몇 사람의 마음에서 진짜배기 웃음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심장이 저리게 느끼며 위안하는 밤이 접붙어 감정의 일교차가 극심한 날. syo에게 명절이란 그런 날이다.


 

그러므로 당신들이 괜찮다면 나는 아주 오랫동안 당신들에 대해 생각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이야기는 계속되고 우리는 그 안에서 자주 만났다가 헤어지며 그리워도 하겠지만 끝내 서로를 다 이해하지는 못할 거라고하지만 그렇게 거듭되는 재회와 헤어짐 속에서도 당신들이 처음 내 마음속에 들어와 헤이라고 스스로의 존재를 각인시켰던 그 눈부신 순간에 대한 감각은 잃지 않을 것이다그것은 떠난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차마 가져가지 못하는누군가를 사랑하고 다정함을 주었던 사람이면 마땅히 차지해야 할 오롯한 빛이니까.

김금희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작가의 말

 

시간은 흐르는데 더 나은 인간이 되기는커녕 예전보다 못한 내가 될까 봐 겁난다그래서 느리게라도 계속해서 읽고 생각하고 듣고 보고 쓴다일단 멈춘다면 예전보다 못한 내가 될 게 뻔하니까시간은 순환한다는 말은 위로일 뿐이다시간은 앞으로 간다우리는 분명히 지금보다 늙은 사람이 될 것이다그러니 지금 이 순간이 시간을 명백히 살아내야 한다나는 나답게 당신은 당신답게.

조경란소설가의 사물, 64

 

 

 

 

--- 읽은 ---

몰입 패티 스미스 지음 김선형 옮김

예브게니 오네긴 /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 김진영 옮김

소설가의 사물 / 조경란 지음

, 영원한 아이 / 에곤 쉴레 지음 / 문유림, 김선아 옮김


  

--- 읽는 ---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이현우 지음

전락 / 알베르 카뮈 지음 / 유영 옮김

죽어가는 짐승 / 필립 로스 지음 / 정영목 옮김

맑스주의 역사 강의 / 한형식 지음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지음 / 박지영 옮김

캘리번과 마녀 /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황성원, 김민철 옮김

불교입문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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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2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단발머리 2019-02-02 1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호~ 죽어가는 짐승
오호~~ 캘리번과 마녀

친구들과의 뜨거운 밤. 좋은 시간 되세요!!!
뜨거운 밤 후기도 올려주셔야 되는거 아니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02 11:50   좋아요 0 | URL
안 뜨거워요. 좀 뜨거웠으면 좋겠는데 친구들이 다 식었어....
식은 건지 삭은 건지 하여튼 막 그래요 ㅋㅋ
사회생활이 그런 걸까요?
저만 백수라서 어린이 같고 ㅋㅋㅋㅋ 재미없어 ㅋㅋㅋ

레삭매냐 2019-02-02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에는 엄청 두터운 책을 읽어 봅시다... 메리 설날입니다.

syo 2019-02-02 11:52   좋아요 0 | URL
그러고보니 레삭매냐님 서재에 명절 인사 드리러 가는 걸 잊었네요.....
레삭매냐님도 메리 설날, 엄청 두터운 설날 되세요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2-02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서관에 짱박혀 책냄새 맡고 싶은 주말이네요~

syo 2019-02-02 12:24   좋아요 1 | URL
따뜻한 주말이네요,
책냄새와 공냄새를 두루 섭렵하시는 양수겸장의 배카알님!

카알벨루치 2019-02-02 12:45   좋아요 1 | URL
근데 진짜 쇼군의 페이퍼는 독서를 자극하게 한다 이런거 넘 좋은거 아냐 근데 난 왜 잠이 올라하노 ㅋㅋ

stella.K 2019-02-02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백수에게 명절이 그렇기는한데 백수를 가격하는 그들도
알고보면 다 고만고만한 삶을 살면서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 거에서 위안삼으려 하는 뭐 그렇고 그런 심리.
명절은 그저 그동안 만나지 못한 일가친척 만나는 날이니
그냥 그런 것에 의미를 두는 거지 별거 있습니까?
그래도 전 오랜만에 조카 녀석들 볼 생각을 하니 기다려지기도 하더군요.
물론 이것도 다 아직 결혼 안한 조카와 아직 비교적 건강하게 살아 계신
울엄니 때문에 가능한 합작품이긴 하지만...ㅋ
암튼 명절 즐겁게 잘 보내십시오.^^

syo 2019-02-02 17:50   좋아요 0 | URL
역시 각자의 고충이 있겠으나 각자가 자기 고충 처리하는 데만 전념하고 남의 일은 남에게 돌려주는 명절이 되면 좋겠달까요.....

스텔라님 복작복작한 명절 보내세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9-02-03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요, 수가 많아서 안 누르려다가 눌렀습니당~~ 킁킁~~
즐거운 설 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syo 2019-02-03 14:13   좋아요 2 | URL
과분한 수의 좋아요가 페크님의 눈쌀을 찌푸리게 하고 말았나요 ㅎㅎㅎㅎ

페크님도 즐겁고 알차고 보람찬 명절 연휴 보내세요^-^

이하라 2019-02-03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러가지로 부담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명절만한 날이 없는 것 같아요.

즐겁고 행복한 설연휴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19-02-03 14:3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ㅎㅎㅎ
이하라님도 걱정 없이 즐거운 일만 가득한 명절, 그리고 새해 되세요^-^

블랙겟타 2019-02-04 01: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평일에는 평일, 명절에는 명절... 공감이가네요 ^^;;;
그런 의미로 안그래도 저도 친구들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ㄷ..(응?)
내일부턴 채..책읽으려구요.. ㅎㅎㅎ
syo님 즐거운 연휴 보내시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yo 2019-02-04 08:4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어느덧 연휴의 후반전이 시작되고 있군요. 독서가 있는 연휴를 기원하면서, 블랙겟타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소서!^-^

무식쟁이 2019-02-09 1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절 이래 이제 쇼님글 복습시작. 어느새 1주일이나 지났다니.. (잘 살아남으셨쥬?)

syo 2019-02-09 21:33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명절 따위에 질 수 있나요!! 적당히 잘 살아남아버렸습니다 ㅎㅎ
 

 

<감자엔 소스닷 토마토케첩 맛>을 먹다가 입천장을 베었다. 따끔하기에 뱉었더니 감자칩에 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당연히 케첩맛 소스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RH+A맛 소스였다.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다. 감자. 내가 그를 아끼는 마음의 반절의 반절만이라도 그가 나를 아꼈다면 이럴 수는 없는 일이지.

 

내 너를 너무도 사랑하여 거침없이 내 안으로 받아들였거늘 너는 어찌 날카로운 비수를 몰래 품고 들어와 내 마음에 한줄기 붉은 상흔을 남겼느냐. 스스럼없이 내 가장 약하고 부드러운 곳을 너에게 맡겼는데 너의 그 매섭고 차가운 칼질에 나는 다쳤고 향후 최소 아홉 끼는 고춧가루 구경도 못하게 되고 말았구나. 내 너를 사랑한 것이 네게 그리도 무거운 일이었더냐. 어찌하여 내게 닝닝하고 밍밍한 아홉 끼를 형벌로 내렸느냐. 대답을 해 보아라. 어서. 입이 있다면 말을 해 보란 말이다. , 너는 입이 없구나. 그것은 나에게 있구나. 너는 입이 없어 변명할 길도 없겠으나 나는 입이 있어 입의 일을 하려한다. 너를 사랑하는 것이 이리 아플 수도 있는 일이었음을 이제 알았으나 그럼에도 내 사랑은 변함없이 사랑의 일을 하려 한다. 피는 내가 흘릴 터이니 너는 즙을 흘리자. 그리하여 나의 것과 너의 것이 한데 어우러져 떠나자꾸나, 멀고 먼 대장 소장 십이지장으로. 혈액은 아랑곳 않고, 가거라, 감자칩아.

 

융털을 만나면 흡수되기 전에 꼭 안부를 전해다오.

 

 

우리에게는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운명이 있다그러나 그 운명은 순순히 응종하면 할수록 점점 증장하여 닥쳐오는 것이다강하게 대하면 의외에 힘없이 쓰러지고 마는 것이다.

나혜석글 쓰는 여자의 탄생


결국 내 입에 느껴지는 맛이란나는 계속해서 숙제를 읽었다내가 가장 최근에 먹은 도리토스 맛에서 기억해낸 것과맛을 내는 일종의 화학물질과그리고 실제로 무슨 맛이 나는지 따위는 별로 관심 없는 나의 의식 없는 마음이 합쳐진 것입니다기억화학물질그리고 의식 없는 마음마술을 만들어내는 삼총사라고 할까요이것들이 합쳐져서 한 봉지를 다 먹고 싶게 만들고 그러고 나서 어쩌면 한 봉지 더 먹고 싶게 만드는 미각의 속임수를 만들어냅니다.

에이미 벤더레몬 케이크의 특별한 슬픔


  

201901 : 44


 

1.고전학 공부의 기초 / 브루스 손턴 지음 / 이재만 옮김

: 정말 목록 제공 수준의 얇은 책이다. 가치와 무가치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2. 책혐시대의 책읽기 / 김욱 지음

: 혐오란 게 그렇더라. 혐오를 없애는 길은 혐오하는 이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뿐인데 요원하다. 혐오하는 이들은 어지간해서는 마음을 돌리지 않고, 대부분은 자기들이 혐오중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누구도 나는 책을 혐오해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그 말이 맞았거나 틀렸거나, 책을 안 읽는 건 맞잖아. 결국 왜 책을 읽어야 하는가를 역설하는 책은 읽지 않는 이들을 설득하는 쪽보다는 읽는 이들의 자위용으로 소비되는 경향이 더 큰 것 같다. 우린 달라. 우린 나아. 그리고 그 말이 맞을 수도 있다. 맞았거나 틀렸거나 그 말은 까딱하면 읽는 이들이 스스로를 망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 읽지 않는 이도 망할 수 있고 읽는 이도 망할 수 있다. 이쯤 되면 책이 인간을 혐오하는 시대 같기도 하다.

 

3. 아무튼 비건 / 김한민 지음

: 천천히 식습관을 교체하기 위해, 일단 일주일에 하루라도 육류 및 유류 섭취를 중지함으로써 조심스레 첫발을 내딛어 보기로 했다. 물론 김한민 선생님은 이렇게 쭈뼛쭈뼛 시작하는 syo를 호되게 야단칠 것이다. 전체적으로 분노와 한탄의 정서가 드러나는 책이다. 치킨의 노예, 시종일관 죄송한 남자 syo는 그저 조아릴 뿐이옵니다......

 



4. 어쩐지 더 피곤한 것 같더라니 / 나카네 하지메 지음 / 류두진 옮김

: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내게 필요한 책을 골라야겠다. 어쩐지 더 피곤한 것 같더라니.

 

5. 최고의 엔지니어는 어떻게 성장하는가 / 다쿠미 슈사쿠 지음 / 김윤정 옮김

: 앞으로는 좀 더 신중하게, 내게 필요한 책을 골라야겠다. 엔지니어는 아니지만 최고의 뭐가 됐건 어떻게든 성장하려면.

 

6. 황인숙이 끄집어낸 고종석의 속엣말 / 고종석, 황인숙 지음

: 고종석이라는 사람을 한 번도 좋아한 적은 없었지만, 한 번은 좋아하게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왔는데, 이제는 이 사람 한 번을 좋아하지 않겠구나 싶어졌고, 그 사실 자체가 하나도 아쉬울 것이 없는 것은 syo나 고종석 선생님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아니 그렇다면 이 책은 대체 왜 읽은 것인가?

 


7. 도시의 발견 / 정석 지음

: 딱딱하다고까지는 하지 않겠으나, 그다지 읽는 재미가 없는 것은 사실이다. 도시에 관해 식견이 없어놔서 내용이 충실한지는 평가하기 어렵다. 사두고 반복하여 읽을 책은 아니라는 것은 확실히 알 것 같다.

 

8. 모두의 내력 / 오선영 지음

: 발견할 때, 그리고 재발견할 때 독자는 발견의 기쁨과 동시에 자신의 안목과 감각에 대한 신뢰를 조금쯤 얻는다. 이런 사람이 있었다니!(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나조차 이제껏 몰랐다는 것은, 그만큼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지!), , 이게 이렇게 좋았다니!(그땐 몰랐는데 이제는 알았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성장했다는 것이지!) 레벨이 더 많이 오르면 이런 발견과 재발견들에도 의연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게 될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오늘의 syo는 아직 발견 앞에 심장이 쿵쿵 뛰고 마음이 들썩거려 내가 이 작품을, 이 작가를 발견했음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서 안달하는 쪼렙일 뿐이다.

: 아니, 그래서 이 책이 그랬다는 건 아니구요...... 이 책을 읽으며 syo는 심장이 뛰었다가 말았다가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다. 역시 이 작가의 새 책 소식을 들으면 마음이 들썩거렸다가 말았다가 할 것이다. 읽게 될까? 결론이 선명하지 않다.

 

9. 마르크스 씨, 경제 좀 아세요? / 이완배 지음

: 제목이 마르크스를 목 놓아 불렀으나, 마르크스 책이 아니라 큼직큼직한 경제학자들을 빠르게 훑어주는 청소년용 책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마르크스를 불렀다면 읽어 줘야 진정한 맑덕후가 아니겠는가.

: 아 참, 책을 평하자면, 어른이 읽기에는 <위대하고 찌질한 경제학의 슈퍼스타들>이라는 만화책이 이 책보다 재미와 깊이 양면에서 월등하다.



10. 나는 왜 이렇게 우울한 것일까 / 김정선 지음

: 좋은 글임을 알면서도 동시에 나와는 맞지 않은 글임을 직감하게 되는 때가 많다. 아름답지만 탐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들어가 자리하겠으나 내 가슴의 문 앞에서는 되돌아서는 글들이 있다. 그런 글에 대해 평하는 것은 비겁한 일이다.

 

11.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 김금희 지음

: 작가로서 김금희의 단점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김연수의 <다시 한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을 처음 읽었던 젊은 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카버의 <대성당>을 읽었던 날 같은, 내 어리고 비린 눈으로는 눈곱만큼의 단점조차 찾아내기 어려운 작가를 만났던 충격의 날들이 있었다. 사실 그런 작가들은 속속 등장했고, 그러다보니 이후의 만남에서는 점차 충격량이 감소하곤 했다. 리스트가 길어지면서, 감동 없는 찬사밖에 할 줄 모르는 인간이 되었지만, 그래서 찬사를 조심성 없이 남발하는 일이 잦아졌지만, 나중에 철회하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 syo의 머릿속에서 김금희는 최은영의 좋은 맞수, 정도로 기억되어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책이 나오고, 결국에는 최은영한테 지는, 그러니까 최은영이 손오공이라면 김금희는 베지터 같은...... 그런데 지금 보면 어쩐지, 결국에는 김금희가 이길 것 같다.

 

12. 보통의 식탁 / 조동범 지음

: 아무리 보통이 아닌 사람이더라도 인생에서 보통이 아닌 식탁보다는 보통의 식탁을 더 많이 마주할 것이다. 하물며 보통 사람들에게라면. 그러나 그 어떤 보통의 식탁에도 저마다의 사연이 있다. 보통의 사연일 수 있고 보통이 아닌 사연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우리는 그 사연들을 건너와 매일 보통의 식탁을 차린다. 당연한 듯이 차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먹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치운다. 그 당연하거나 아무렇지 않거나 어쩔 수 없는 일들이 내일의 식탁에 다시 등장할 것이다. 모레도, 그 다음날도.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식탁과 식탁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조금 더 깊은 눈으로 들여다 보아도 좋지 않을까.

 



13. 사진의 용도 / 아니 에르노, 마크 마리 지음 / 신유진 옮김

: 섹스 전에 벗어 놓은 옷더미를 섹스가 끝나고 찍었다. 그러므로 우리도 섹스가 아니라 그 전과 그 후를 생각하자. 섹스의 주변을 훑어보자. 거기가 생각할 게 많은 장소다.

 

14. 무신론자와 교수 / 데니스 C. 라스무센 지음 / 조미현 옮김

: 거대한 지성들 사이의 빛나는 우정의 사례로써 자주 언급되곤 하는 데이비드 흄과 애덤 스미스. 흄은 그렇다 치더라도 애덤 스미스는 자신의 편지를 몇 남겨놓지 않은 편이라, 이 두 사상가의 교류에 대해 서술하는 책이 과연 얼마만큼의 두께를 지녀야 좋을지(지닐 수 있을지) 궁금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흄과 스미스의 관계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진 것 이상의 특별한 사실을 채굴하진 못한 듯하고, 오히려 두 사람의 사상을 비교 대조하는 데서 뜻밖의 역량을 드러냈다. 특히 흄에 대해서라면, syo는 이 책에서 굉장히 많은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15. 김민주의 트렌드로 읽는 세계사 / 김민주 지음

: 깔끔하다. 지도나 상황도가 거의 인포그래픽에 가깝다 할 정도로 깔끔하여 힙해 보였다. 일단 여기까지만 써 놓고,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이 얼마나 기억나는지 월말에 다시 점검해서 다음 줄을 써 보겠다.

: ......헤헤(머쓱).



16. 철현쌤, 공무원 연봉 진짜 얼마에요? / 조철현 지음

: 그랬구나, 공무원이, 그랬었어.....

 

17. 밥보다 일기 / 서민 지음

: syo는 자기가 쓰는 모든 글을 일기로 규정하는데(독서 일기, 연애 일기, 추억 일기, 일기, 일기, 일기....), 그것은 일기를 너무너무 사랑하여서가 아니라, 도리어 일기를 업신여기기 때문이다. 내가 쓰는 글을 리뷰라고 부르기에는 스스로 떳떳하지 못하므로, 누구나 충분히 떳떳할 수 있는 일기라는 장르를 참칭하는 것이 맞춤했다. 스스로 일기를 미완의 글, 부족해도 되는 글, 제 멋대로 써도 되는 글이라 낮잡아보았던 것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이제 일기를 존중하게 되었다, 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그렇지만 내가 아무리 저를 업수이 여겨도 저 착한 일기 녀석, 항상 내가 내 글과 성품을 함양하는데 알게 모르게 도움을 주고 있었다는 사실만큼은 쿨하게 인정할 수 있었다. 고마워 일기야. 나도 어릴 적에 친구 신발주머니에서 만 원짜리 전화카드를 슬쩍한 적이 있지만, 오늘날 해인사에 쳐들어가 팔만대장경을 훔쳐내는 인간으로 자라지 않을 수 있었어. 이게 다 네 덕분이야.

 

18. 나는 왠지 떳떳하지 못합니다 / 마쓰무라 게이치로 지음 / 최재혁 옮김

: 아주 예전에, 내가 지금 대체 뭘 읽고 있는지 정말 1도 모른 채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 조르주 바타이유의 저주의 몫을 읽었던 적이 있다. 뭘 자꾸 주고 심지어 뭘 자꾸 불태우라는데, 이 양반들이 왜 이러는지 영 알쏭달쏭하기만 했던 기억이다. 오늘 이 책을 다 읽고 났더니 문득 그들이 그리워진다. 나는 이제 어느 사회에 주도적으로 퍼져 있는 재화와 감정의 교환 방식이 인간의 자아와 관계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납득할 만큼의 지성은 갖춘 듯하다. 제목만 보고서는 젠더 문제에 관한 책이리라 짐작하고 집었는데, 뜻밖에 새로운 방향의 독서 길이 열린 듯하다.



19.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 / 리베카 솔닛 지음 / 김명남 옮김

: 1회독 당시 별 5

: 2회독 후 별 5+ 마음속의 추가 별 2(팬심 1, 회독 보너스 1)

: 이런 식이라면 과연 나 죽을 때, 마음속에 몇 개의 별이 나와 함께 질 것인가.

 

20. 인생 직업 / The School of Life 지음 / 이지연 옮김

: 알랭 드 보통의 글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려고 무슨 시도를 하진 않았지만.

: 알랭 드 보통의 지성을 가지고 싶었다. 그러려고 얄팍한 시도를 했을 뿐이지만.

: 알랭 드 보통의 머리(두뇌 말고)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그러지 않으려고 갖은 시도를 다했다. 샴푸, 검은 콩, 검은 콩, 검은 콩...... 내 나이 때의 그의 사진을 보면, 아직까지는 성공적으로 방어를 하고 있다.

: 이런 걸 평이라고 쓰고 앉았으니, 아무래도 앞의 두 가지 항목은 달성이 요원하겠다. 이러니 나는 더욱더 세 번째 항목에 목을 매게 되는 것이다.....

 

21. 딱 이만큼의 경제학 / 강준형 지음

: 진짜 딱 이만큼이다.



22. 글쓰기의 감옥에서 발견한 것 / 위화 지음 / 김태성 옮김

: 제목이 좀 거창한 바가 크다. 선생님은 새로운 말씀을 하시진 않으셨다. 그 감옥을 살펴보았지만 나는 특별히 무엇인가를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선생님이 지금 글쓰기의 감옥 안에 계시지 않기 때문일까. 독서 피라미드의 어느 지점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소용에 닿는 책이 아닐 수 있다. , 모든 책이 그렇긴 하다.

 

23. 요즘 것들의 사생활 : 결혼생활탐구 / 이혜민 글 인터뷰 / 정현우 사진

: 마음이 그리는 여러 그림 가운데, 사랑의 풍속도는 시대가 변하면 가장 빨리 따라 바뀌는 그림일까, 가장 마지막에서야 바뀌는 그림일까? 새로운 형식의 사랑과 결혼이 세상에 만개하였다면, 우리는 그것을 다가올 거대한 변화의 조짐으로 봐야 할까, 이미 세상이 크게 변하였다는 증거로 봐야 할까?

: 각자의 사랑을 지키는 일에 각자의 사랑을 지키고 있는 다른 이들의 행보를 접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면, 우리는 누구나 다른 이들이 지키고 있는 사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꾸짖거나 응원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내가 지키고 있는 사랑을 다시 한 번 비추어 보기 위해서라도.

 

24. 진심의 공간 / 김현진 지음

: 좋은 글 솜씨가 그에 걸맞은 소재를 만나는 것이 훌륭한 작품을 낳는 기초적인 조합이겠지만, 더 크게 보았을 때, 좋은 눈과 좋은 손을 지닌 인간이 사색에 친한 직업을 만나는 것은 훌륭한 작품을 낳는 궁극의 조합이 아닐까. 부럽다. 앞으로 나올 그녀의 모든 책을 나는 읽을 것이다.



25.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 페터 한트케 지음 / 윤용호 옮김

: 이 두 배쯤 되는 분량이었다면 어쩌면 중도에 포기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오늘 포기했어도 언젠가는 돌아와 읽었을 것이다. 페터 한트케가 내게 무슨 짓을 해놨는지 당장은 알 수 없겠지만, 무슨 짓인가 해 놓기는 해 놨다는 느낌이 든다.

: 100자평이 이 따위야. 읽으래는 거야 말래는 거야.

: , 제가 읽고 딱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26. 러시아 혁명사 강의 / 박노자 지음

: 박노자 선생님의 글이 언제나 그렇듯, 이 책도 현재를 향해 있다. 러시아 혁명이 뒤집어 쓴 누명 같은 건 벗겨도 좋고 못 벗겨도 그만이지만, 그 속에 잠들어 있는 영양분만큼은 어떻게든 추출하여 오늘 날 우리 땅에 링거라도 한방 놓고 싶어서 지은 책이라고 보는 게 옳겠다.

 

27. 경제학의 모험 / 니알 키시타이니 지음 / 김진원 옮김

: 무심하게 칼로 툭툭 끊어서 대애애충 던져주는 것 같아서 받아먹어봤더니 꽃등심.



28. 프랑스어의 실종 / 아시아 제바르 지음 / 장진영 옮김

: 내가 두 개의 언어를 할 줄 알았다면 이 책을 읽고서 더 많은 것을 느끼고 이해했을 것이다. 아마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정신적 활동을 이어나가야 하는, 이를테면 외국에서의 유학생활 같은 상황 속이었다면, 아마 울거나 그에 준하는 거센 감정 날씨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외국이 내 모국을 식민지로 삼은 적이 있었더라면 많이 아팠을 것이고, 심지어 내게 식민 치하의 어두운 역사를 겪은, 이를테면 형틀에 묶여 온 몸을 두들겨 맞는 가운데 누군가 내 코에 주전자로 천천히 모래를 들이부은 그런 끔찍한 경험이 내게도 있었더라면, 아마 나는 이 책과 함께 실종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29. 비커밍 / 미셸 오바마 지음 / 김명남 옮김

: 미셸 오바마는 기대 이상으로 글을 잘 썼고, 특히 자기 인생에서 인상적이라 할 순간들을 골라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차림으로 독자의 앞에 가져다 놓을 줄 아는 능력이 있다. 500쪽이 넘는 책을 읽다 보면 긴장감이 떨어지고 차창 너머 지나가는 풍경 보듯 책장을 휙휙 넘기고 싶은 때가 오게 마련이다. 그럴 때, 독자의 눈을 다시 붙들어 매는 닻은 역시 에피소드다. 그런데 자서전은 그대로 에피소드의 연속체라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에피소드로 집중력을 잡아채는 데는 오히려 불리한 면이 있다. 우유 우유 꿀 우유의 꿀은 달지만, 초코 초코 꿀 초코의 꿀은 조금 덜 단 법이니까. 그래서 자서전은 에피소드의 위치, 중량, 밀도를 결정하는 더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다. 그게 이 책에는 있다.

 

30.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 / 정지혜 지음

: 이상하게 syo가 고른 독립 서점, 동네 책방 관련 책들은 대체로 폐업했거나, 휴업하는 걸로 마무리 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무사정도만 무사했지 나머지 책은 어쩐지 늘 슬픈 결말이나 슬플 결말로(그러나 아직 희망의 불꽃은 꺼지지 않았다는 뉘앙스와 함께) 마침표를 찍어왔다. 그렇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 동네 책방이 동네의 공공재에 가깝다는 사실을 더 많은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고, 그 많은 사람들 가운데 현실을 조작할만한 역량이 있는 이가 몇이라도 있으면 더 좋겠다.



31. 소설처럼 / 다니엘 페나크 지음 / 이정임 옮김

: 소설을 예술이나 고전이 아니라, ‘이야기로 읽었던 아름답고 행복한 독서의 때가 syo에게도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아련해서 언제였는지는 흐릿하지만. ,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을까. 언제고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할 게 아니라 응당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32. 키 재기 외 / 히구치 이치요 지음 / 임경화 옮김

: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도련님의 시대를 보면, 히구치 이치요를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 있는 모리 오가이의 아련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나쓰메 소세키가 그려진 장면이 나온다. 20세에 첫 작품, 23세에 마지막 작품을 내놓고 폐결핵으로 스러져야 했던 아까운 천재. 모리 오가이는 아직 읽지 못했으니 나쓰메 소세키와만 비교해 볼 때, ‘안타까운 사랑을 그리는 방식은 나쓰메 소세키보다 히구치 이치요 쪽이 훨씬 아름답고 아련한 데가 있다. 도리어 현대적이랄지. 그것은 히구치 이치요가 여성, 그것도 아픈 몸으로 생계를 책임져야 했으며 정혼자에게 파혼까지 당한 여성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성취였다고 넘겨 짐작해본다.

 

33.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지음 / 류경희 옮김

: 고전이라는 명찰이 작품에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세상에는 고전이라는 말만 들어도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고, 그들에게는 합당한 이유도 있다. 유명 대학이라면 다 하는 짓이 있는데, 그 학교 교수라는 작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등학생이 읽어야 할 고전 100따위의 리스트를 뽑는 일이다. 그걸 보고 있자면, 과연 이 리스트를 만든 인간들이 이 책을 다 읽었는지 묻고 싶어질 때가 여간 아니다. 나 같아도 고전에 경기하게 생겼다.

: 오만과 편견이 고전의 반열에 들었다는 사실 자체도 여러 가지로 의미가 크지만, 고전이라는 타이틀이 불가피하게 가져다주는 편견(, 너무나 지루할 것 같애)을 생각하면, 제인 오스틴은 좀 복잡한 심정일 듯하다. 한 마디만 하고 싶다. 믿을 수 없겠지만 이 책은, 되게 웃기다. 빵빵 웃음이건 실실 웃음이건, 제각각 한두 번씩만 터진 게 아니다.

: 그러나 번역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15년도 더 전에 민음사 판으로 읽었다가 굉장히 지루하여 1부도 못 넘기고 포기한 기억이 있다. 사실 당시 코흘리개였던(추우면 대학생도 코를 흘릴 수 있습니다. 사람은 그럴 수 있습니다.) syo의 역량이 역겨울 지경이었기 때문에 그랬을 공산이 더 크다. 민음사 판을 다시 읽지 않은 상태라 섣부르게 번역 탓을 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문학동네 판은 2017년 번역이다. 민음사는 그보다 14년 앞선다.



34. 마르크스 사용 설명서 / 다니엘 벤사이드 지음 / 양영란 옮김

: ‘사용 설명서라는 이름에서 어쩐지 초심자용 책이라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실제로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근데 그게, ‘마르크스 철학 초심자는 읽기 힘든 책이라기보다는, ‘프랑스 철학자 문체 초심자에게 쉽지 않은 책이라고 보는 쪽이 더 나은 설명이겠다. 좀 과하게 현란한 데가 있다.

 

35. 태도에 관하여 / 임경선 지음

: 십 몇 쇄를 찍고 개정판까지. syo는 임경선 작가님의 매력을 잘 못 느끼는 축인데도 판세가 이 정도로 돌아가면 어떤 아우라에 얻어맞으며 꼼꼼히 읽게 된다. 그리고 판단하건대, 이 책이 이만큼 팔릴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다른 책들이 이 책만큼 팔릴 만한데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한 것이라 생각하는 쪽이 더 안전하며 일견 더 정확하기도 하겠다.

 

36. 유쾌한 이코노미스트의 스마트한 경제 공부 / 홍춘욱 지음

: 못마땅한 데가 없진 않았으나, 믿고 한 번 추천하는 책들을 주욱 읽어보기로 하였다. 내 입장에선 그것이 성과가 있어야 이 책을 평할 수 있겠다.




37. 은근한 잘난 척에 교양 있게 대처하는 법 / 에노모토 히로아키 지음 / 강수연 옮김

: 읽고 나서 이제 5일이 지났는데, ! 다 사라졌지! 감쪽같지?!

 

38. 어둠의 심연 / 조셉 콘라드 지음 / 이석구 옮김

: 코흘리개 대학생 시절 <암흑의 핵심>을 읽었었는데, 이제 허리가 다 굽어 <어둠의 심연>을 읽게 되니 감회가 새롭다. 둘 중 어느 게 더 나은지 비교하기에는, 두 권 사이에 흐르는 세월의 강이 너무도 넓고 깊고 세차게 흐르고 있구나......

: 이 책의 경우, 실은, 책 자체에서 어떤 재미나 감동을 얻는다든지 지혜나 통찰을 챙긴다든지 하는 식으로 읽는 것보다, 이 책이 (결점으로) 지니고 있는 다양한 논점들을 들춰내고, 그것들에 관해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떤 관점을 가지고 지나가는 데 집중하는 방식으로 거꾸러뜨리고 나가는 쪽이 훨씬 남는 장사겠다.

 

39. 외우지 않고 통으로 이해하는 통한국사 1 / 김상훈 지음




40. 오영수 교수의 매직 경제학 / 오영수 지음

: syo는 경제학에 관해서라면 아는 바가 적지만(이렇게 적고 나니까 경제학 빼곤 좀 아는 놈 같아서 좋다. 신나는 자기기만), 이 책 괜찮은 줄은 알겠다. 첫 번째 경제학 책으로 손색이 없(진 않다만-예를 들면 철지난 유머-없는 걸로 해도 거의 무방하겠).

: 위의 유쾌한 이코노미스트께서 제시한 도서목록의 1번 타자인데, 못해도 2루타 정도는 때린 것 같다. 시작이 좋다.

 

41. 노생거 사원 / 제인 오스틴 지음 / 조선정 옮김

: 번역. 오역은 당연히 아니겠으나, 류경희 번역의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의 그 실감, 말맛, 캐릭터의 다채로운 대화들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이 판본 하나만 읽고 뭐라고 하긴 섣부르니 다른 번역을 읽어보고 기회가 되면 언급하기로 하겠지만, 어쨌든 100쪽 더 이상을 읽어나갈 맛이 나지 않아서 중도 포기.

 

42. 예브게니 오네긴 /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 김진영 옮김

: 오랜만에 이 책을 읽으니, 로쟈 선생님의 러시아 문학 강의를 듣던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풋풋한 30대 초반이었는데, 어느덧 이제 몇 해만 더 살면 푸슈킨이 세상 뜬 바로 그 나이가 되는구나. ..... ....

: 이야기는 정말 단출하다. 복잡한 플롯도 없고 갈등선도 한두 개에 그친다. 이야기로서 그다지 매력이 넘치는 책은 아니다. 그런데 이 책은 어떻게 러시아 문학사에 거대한 이름을 남긴 책이 되었는고 하니,

: 푸슈킨은 원래 시인이고, 이 작품은 원래 시다. 러시아어로 읽으면 뭔가 운율과 라임이 쩌는 작품인 것 같다(는 것을 역자 해설을 통해 짐작이나 할 뿐이다). 그런데 그렇게 쩌는지 마는지를 우리는 도무지 알 길이 없는 것이다...... 이야기만 먹고 빠지자면 굳이 권할만하지는 않다.



43. 소설가의 사물 / 조경란 지음

: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 봐도 없기에 놀랐다. syo는 조경란 작가님의 작품을 단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다. 심지어 수상 작품집 속의 단편조차 한 번도. syo는 조경란 작가님이 수상하지 않은 수상 작품집만 골라 읽었고, 조경란 작가님은 syo가 읽지 않은 수상 작품집만 골라 수상하셨다. , 우리의 이 수상한 관계.

: 그리하여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덧칠하고자하는 욕심이 정말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문장을 보고 깜짝 놀랐다. 전반적으로 시인의 산문집보다 소설가의 산문집이 욕심을 덜 부리는 편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이 정도까지 색을 빼고 선으로만, 전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걸 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만 지은 책을 만나는 일은 드물다. 그러면 이 글의 주인이 다른 장르 다른 곳에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알고 싶어지는 마음이 쓱 드는 것이다.

 

44. , 영원한 아이 / 에곤 실레 지음 / 문유림, 김선아 옮김

: 큰 울림이 없었다. 어쩌지...... 어쩐지 저 사람한테 이러면 안 될 것 같아. 근데 어떡해, 글이고 그림이고, 난 저 사람이 그냥 그런 걸......




2월이구나. 2월은 February.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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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9-01-31 17: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아, 나도 아침에 <오만과 편견> 읽었는데... 찌찌뽕!!
우리집엔 민음사판, 펭귄판 있는데, 나두 문학동네로 읽어야겠어요. 아, 기다려진다. 오스틴 읽는 시간^^

syo 2019-01-31 17:05   좋아요 0 | URL
제인 오스틴은 <감자엔 소스닷>과 함께!
하지만 페이지 귀퉁이에 빨간 케첩 소스가 묻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해요.

북깨비 2019-01-31 1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답지만 탐나지 않고. 이거 강렬한데요?

syo 2019-01-31 17:07   좋아요 0 | URL
이상하게 김정선 선생님의 이야기는 항상 저하고는 겉돌더라구요.....

북깨비 2019-02-01 14:30   좋아요 0 | URL
김정선님은 아직 모르는 분이에요 ㅠㅠ syo님 표현이 너무 멋있어서. 아름답지만 탐나지 않는게 저도 있어요. ㅎㅎ

짜라투스트라 2019-01-31 17: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재밌네요
근데 요새 저는 동양철학책을 너무 많이 읽다보니 다시 소설이 이야기처럼 보이며 재미있네요 ㅎㅎㅎ

syo 2019-01-31 17:23   좋아요 0 | URL
어마어마한 책들을 어마어마하게 읽고 계시던데요?
ㅎㅎㅎㅎ 짜라님 곧 동양철학의 거장이 되시겠더라구요.

짜라투스트라 2019-01-31 19:55   좋아요 0 | URL
^^;; 책모임 때문에 열심히 읽고 있습니다 그런데 의외로 모르는 걸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네요ㅎㅎㅎ

syo 2019-01-31 20:22   좋아요 1 | URL
응원합니다. 나중에 제가 동양철학책 읽을 때 짜라님께 많이 배우겠습니다ㅎㅎ

설해목 2019-01-3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번 의견에 저도 동조하며 24번 책은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
35번은 정말이지 왜 쇄를 거듭하는지 저는 여전히 모르겠으며 42번은 몇 년전 친구들과 함께 읽은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감자칩을 어떻게 먹으면 피맛을 볼 수 있나요. @.@
하지불안증후군때문에 저는 오늘 철분제를 처음 먹어봤는데 약간 피맛이 나더군요. -.-

syo 2019-01-31 18:08   좋아요 1 | URL
뭔가를 장바구니에 담으셨다는 말씀은 항상 저를 불안하게 만듭니다 ㅎㅎㅎㅎㅎㅎ 취향이란 무엇인가요.....
35번의 정체는 또 무엇인가요.....

감자칩을 왕창 넣고 씹었는데, 그 중 몇몇이 옆으로 섰더라구요-_-;;;
피맛이 알고보면 혈액속의 철분 맛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쇠맛...

카알벨루치 2019-01-31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44권이라 그 숫자는 나를 향해 죽으란 44한 말!!!!! 아~웜메 기죽어 ㅋㅋㅋㅋㅋ1월도 읽는다고 고생한 쇼군 👏👏👏

syo 2019-01-31 20:23   좋아요 0 | URL
콕 찝어 44라면 노림수 냄새가 물씬나긴 하네요. 올해는 444를 목표로 할까요.....

카알벨루치 2019-01-31 20:26   좋아요 0 | URL
쇼님 매달 44권 목표도 개안네 500권은 족히 넘을거고 ㅎㅎ

syo 2019-01-31 20:28   좋아요 0 | URL
엌ㅋㅋㅋㅋ 올해는 슬쩍 줄여보려 했는데ㅋㅋㅋㅋㅋ 카알님 철벽방어... 골키퍼 아니신데 이러기 있어요?

카알벨루치 2019-01-31 20:32   좋아요 0 | URL
내가 막지 않아도 그대는 그렇게 흘러갈 것을 아니 “쇼군의 쇼군됨”을 지키심이 좋겠다는 ㅎㅎ

stella.K 2019-01-31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난 이제 두 권 읽었는데...
내가 비교를 말아야지. 비교하면 지는 거예요.ㅋ

카알벨루치 2019-01-31 20:41   좋아요 1 | URL
비교불가 쇼군!!!

syo 2019-01-31 22:24   좋아요 0 | URL
다 부질 없는 일입니다...... 허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요.... 어허허....

카알벨루치 2019-01-31 23:08   좋아요 1 | U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