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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쓰러울 정도로 줄어든 통장 잔고를 제외하고 2017syo2018syo로 바뀌면서 변한 것은 다음과 같다. 숫자는 변하지 않았으나 부위별 집적도가 달라져 기묘하게 뵈기 싫어진 육신. 이제는 전기방석을 풀 파워로 가동해야 추위를 버틸 수 있게 된 육신. 조금만 잠을 잘못 자도 다음날 목이 뻐근한 육신. 육신. 육신. 야 이 비루한 육신 놈아...... 이런 저런 것들을 죄다 상실의 범주에 밀어 넣고 나니, 과연 얻은 것은 무엇인가, 그런 것이 있기나 한가를 따져보게 되는데, 책이..... 그 와중에 책꽂이에 꽂힌 책의 수가 쬐끔 늘었다..... 하지만 세상의 보편적인 시선은 그것을 상실로 친다. 돈도 없는 놈이 또 책을 샀니. 책이 저렇게 많은데 또 샀니. 그래야만 했던 거니. 왜 대답이 없니...... 그래야만 했던 것일까? 2018syo2017syo보다 더 많은 책을 책꽂이에 꽂아 놓아야만 했던 것일까?

 

울어봐야 글만 길고 축축해진다. 어차피 답 없다. 답 없는 인생이다. 인생은 짧다. 긴 말 않겠다.

 

 

201812 : 42

 


1. 아침의 피아노

벤야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에 대해 설명하시던 김진영 선생님의 표정과 목소리가 떠오른다. 5년쯤 된 것 같다.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멀어지는’, ‘천사는 머물고 싶고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또 산산이 부서진 것을 모아서 결합하고 싶지만, ‘폭풍은 그가 등을 돌리고 있는 미래 쪽을 향하여 간단없이 그를 떠밀고’ 있는파울 클레의 바로 그 천사가김진영 선생님의 부고를 들은 날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선생님은 벤야민을 보듯이 그 천사 그림을 보시는 듯했다그리고 나는 이제 벤야민을 보시는 선생님을 보듯이역사의 천사를 본다이제 폭풍을 피하여 날개를 편히 쉬이시기를.


2. 시민의 물리학

: 시민의 물리학이라는 말은 시민을 위한물리학이라는 뜻이겠으나, 솔직히 말해서 시민이라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할물리학이라는 뜻이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그래서 시민들이 다들 이만큼의 물리학 지식은 알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없진 않다. 과학에 대해 아는 것은 과학 바깥을 보는 눈을 크게 바꾼다. 물론 지나치게 나이브한 생각이겠지만, 어쨌든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에 대한 굉장히 기초적인 개념만 가져도 타인을 보는 방법, 타인의 사상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객관적인 관찰이 불가능하고 모든 판단이 근본적으로 개입이 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받아들이게 되고, 그에 따라 해서는 안 될 짓과 해서는 안 될 말들이 늘어나며, 결과적으로 뭐라도 더 나아진다. 과학 알아서 나빠질 일은 없다.

 

3. 슌킨 이야기

: 혹자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 중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꼽는다고 하지만, 대저 아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다니자키 준이치로가 그리는 사랑은 늘 지극하면서도 어딘가 기묘하게 뒤틀린 모양새인데, 그 뒤틀림 속에 뒤틀린 아름다움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이 사랑이 굽고, 꺾이고, 왜곡되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네가 소중히 품고 있는 사랑의 이데아가 그야말로 이데아라서 그런 것일 뿐이지. 눈을 크게 뜨고 네 육체를 둘러친 사랑을 세밀히 보라. 많이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이 사랑이 기괴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그건 그저 너 자신이 기괴하다고 인정하는 일에 그칠 것이다. 이런 설득력 있는 윽박지름에 쫓겨 인정하게 되는 그런 아름다움 같은 것.......

 

4. 만화로 배우는 곤충의 진화

: 이런 책은 실력만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곤충이라는 희귀하고 널리 인정받지 못하는 장르에 자신의 역량과 애정을 쾌척할 수 있는 참인재가 태어나야 하는 것인데 고맙습니다. 재미있었어요.

 



5.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철학 수업

: 과연 그렇게 자신 있단 말이지? 하는 마음으로 굳이 잠들기 전에 침대에 누워서만 읽은 syo의 삐딱함도 삐딱함이지만, 정말 이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시리즈의 어느 책도 읽다가 잠에 빠지지 않은 적이 없으니, 너희도 참 너희다.

 

6. 단어의 발견

: 이것이 하나의 이야기라면 아마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 그게 뭔지 알아채지 못하겠다. 이것이 하나의 그림이라면 아마도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었을 텐데 그게 뭔지 알아채지 못하겠다. 그저 말하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마음만을 감지하였다. 그건 알 수 있었어요. 당신의 글은 아름답고 당신의 말은 훌륭하네요. 결국 당신이 전하고 싶은 말, 당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 제가 알아 챈 딱 그것이었으면 참 다행이겠네요.

 

7. 인류세

: 인류세를 맞이하여 우리가 무엇을 하자- 이런 걸 기대하고 읽었으나, ‘인류세라는 단어의 정체성을 지정하고, 그 단어의 참된 저작권을 주장하며, 인간이라는 특별한 종의 위대함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데 9/10의 분량을 할애한다. 나머지 1/10은 참고문헌 목록이다. 전혀 설득되지 않았고, 틀린 생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지만, 필요한 생각이라고도 느껴지지 않았다.

: , 은근히 잘 안 읽힌다.

: , 저자는 되게 아는 게 많은 것 같다.

 

8. 하나만의 선택

: 박이문 선생님의 인생 행로를 세밀하게 따라가 볼 수 있는 자서전이다.

: 사실 이건 자서전의 정의를 중언부언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인데, 왜 이렇게 써야 했을까? 엇흠. 엇흠.

 


9. 나는 회사 다니면서 공부하기로 했다

: 첫째, 인간은 무엇이며, 무엇까지 할 수 있는지를 알게 된다.

: 둘째, 그렇다면 나는 결국 인간이 못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0. 근방에 히어로가 너무 많사오니

: dcdc! dcdc!

 

11.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1

12. 한국 현대 문학사를 보다 2

: ‘현대 문학을 좋아라 읽고 역사도 좋아라 읽는데 한국’ ‘현대 문학’ ‘에 대해서는 무지몽매에 가깝다. 그것은 아무래도 현대 문학에 대한 애정이 한국에 대한 감정과 상쇄되면서.....

 


13. 같이 걸어도 나 혼자

: 꼭 두 여주인공의 우정에 관한 소설로 독해할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그럴 필요가 없는 수준을 넘어서서, 사실 여성의 우정에 대해 유쾌하고 치밀하게 포착해 낸 근사한 소설이라는 정세랑 소설가의 추천사가 붙어있지 않았다면, ‘우정이라는 제재는 syo에게 포착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그런 것 없이 봐도 여러 모로 읽을 만한 소설이다. 읽어야 할 소설까지는 결코 아니겠으나.

 

14. 10년 동안의 빈 의자

: 오랜만에 시집이나 한 번 읽어볼까, 이러면서 서가에서 뽑아서는 음음 새롭군 새롭도다 그러면서 읽었는데, 다 읽고 북플에 읽은 책으로 등록하려고 보니까 5월에 읽은 책이었음. 5월은 올해 5월이었음...... 과연 이런 것도 한줄평으로 기능할는지......

 

15. 어린 당나귀 곁에서

: 팟캐스트를 진행하시던 시절 들었던 김사인 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다정하고 정갈하며 물이 깊고 물살이 급하지 않은 시를 생각했다. 아무것도 몰랐던 거지, 그 호수 같은 소리와 말에 이르기까지 시인이 밟아온 길들에 대해서. 어떤 시인은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 시 뒤로 숨어드는데, 또 어떤 시인은 시를 읽고 나서야 진짜 이 사람을 알겠구나 하는 외람된 생각을 들도록 하며 시 앞으로 나선다. 다시 한 번 외람되지만, 그렇다면 그 시인은, 혹은 시는 외설적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16.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잘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 그런데 그게 언젠데? 3년 뒤? 6달 뒤? 다음 주?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 요런 마음으로 사람들은 쓰기 책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일단 나보다 잘 쓰는 것이 분명한 이가 쓴 쓰기 책은 뭐라도 건질 게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위장하였지만 실은 노력을 최대한 아끼면서 실력을 얻고 싶은 도둑놈 마음)으로 syo는 이런 책을 자꾸자꾸 열어본다. 그리고 별 게 없다는 사실을 재확인하면서 아쉬운 동시에 안심한다. 휴우, 최소한 나만 빼놓고 다들 몰래 보고 있는 글쓰기 비급 따위는 없겠구만.

 


17. 전공이 보이는 미분적분학

: 미분적분으로 젊은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되살려 보려는 이를 보통 변태라고 부를 것이다. 그래도 이과 출신에다 한때 공대에 몸을 담았던 사람으로서, 10년도 더 전에 만났던 어떤 난관들을 돌이켜 다시 한 번 젊음을 소환하려는 시도를 한 것인데, 변태라고 손가락질하기 보다는 따뜻한 마음으로 보듬어 주시길. 옛날의 금잔디 동산에 메기 같이 앉아서 놀던 추억을 되살리는 데 쓸 만한, 그 정도의 미분적분학 책이라 하겠다.

 

18. 마르크스의 특별한 눈

: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평생을 바친다면 한두 가지, 진짜 천재들은 많이 쳐줘서 다섯 가지 정도의 주제에 관해 전공자가 될 수 있지만 그 대가로 5721582051020개의 분야에 대해서는 기껏해야 문외한만 면할 수 있는 운명이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이 필요하다. 강의자. 그들을 축복해야 한다. 개론서 저자. 경외하자. 입문서 저자. 그 축복의 만신전에는 과연 만 개의 이름이 올라가겠지만, 그 가운데는 더욱 신심을 다해 감사해야 할 이가 있으니, 빌자, syo. 고병권 선생님의 불로장생을.

 

19 두 사람 : 마르크스와 다윈의 저녁 식사

: 한때 같은 도시에 살았던 두 사람이, 역사의 바퀴에 돌이킬 수 없는 거대한 충격을 안겨준 걸로 치면 TOP 5 안에 너끈히 들어갈 두 혁명쟁이가 전혀 교류 없이 저마다 살다 저마다 죽은 이유는 다윈의 무지나 오만(혹은 오판) 때문이라고, 마르크스 평전은 말한다(다윈 쪽에서는 신경도 안 쓰는 분위기다.) 만나지 못한 그들을 픽션의 저녁 식탁에 둘러앉혀 보았는데, 결국 그들의 만남은 안 만남과 하나도 다르지 않게 흘러갔다. 아쉬울 건 없지만 뿌듯할 것도 없는 만남이어서, 아쉬울 것도 없지만 뿌듯할 것도 없는 책이 태어났다.

 

20. 백석 평전

: 최고의 시인이 아니고서야 시로 기억되지 못하겠지만, 시로 기억될 수 있는 최고의 시인들 역시 완전한 한 명의 시인으로 기억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와, 평전, 평전이 필요하다.

 


21. i에게

: 누구에게나 나와 맞춘 듯 잘 맞는 시인이라는 축복의 존재가 하나쯤은 있을 거라고 믿었다. 충분히 찾아보지 않아서 발견하지 못했을 뿐, 세상에 별처럼 넉넉히 뿌려진 저 많은 시인들 가운데 반드시 하나는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열심히 시를 읽었다. 그런데 막상 읽다보니 하나쯤 있을 거라는 생각은 틀렸고, 되게 많았고, 많은데 그들은 저마다 다 달랐고, 그들의 시가 제각각인 것으로 미루어보면 어쩐지 그들 저마다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을 것도 같았고, 희한했지만 하여간 기뻤고, 기쁜 마음으로 그 시인들의 이름을 마음에다 적어놓았다. 시를 읽으면 마음에 적어놓은 그 이름에 불이 들어온다. 그 불이 이름을 더 깊고 선명하게 새긴다. 더 깊고 선명하게 시를 좋아하게 된다.

 

22. 밥벌이의 미래

: 는 어둡습니다. 어두워요, 여러분. 제가 이런 책을 꽤나 열심히 읽었는데요, 무슨 책을 읽어도 어둡고 어둡고 또 어둡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 어두워질 거예요. 밝은 미래는 오로지 부동산에만 있습니다. 오직 부동산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 이 책 이야기를 하자면, 그래도 다른 책들에 비하면 밝은 면을 선명하게 그려주는 좋은 책이다. 예를 들어, 이 책 이전까지의 syo는 읽으면서도 그냥 도로를 싱싱 달리는 자율주행차의 모습만 추상적으로 상상하고 말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까 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는 동안 차 안에서 노래 연습도 하고, 요리도 하고, 섹스도 하는 구체적인 그림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보세요 여러분, 자율주행차가 대중화되면 이제 숙박업도 멸망하는 겁니다......

 

23. 나는 이름이 있었다

: 12년 교육과정이 가르쳐준 시인이라는 놈을 기준으로 생각해 볼 때, 오은이란 사람은 정말 시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고, 오은의 시는 이게 이긴 한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그런데 바로 그 알 수 없음과 의심스러움이야말로 오은이 시인이고 오은의 시가 시인 이유를 증명한다.

: 라고 믿으며 넘어가기로 했다. 원래 오래 박힌 생각은 고쳐먹는 데 오래 걸린다.

 

24. 아마추어

: 프로라는 새끼들이 나를 속이고 내 지갑을 털어가고 있으니 마땅히 분개하자! 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기보다 오히려, 프로가 되면 남을 속여 그의 지갑을 털어먹게 되는 것이 순리이므로 마땅히 경계하자! 쪽에 가까운 것 같다. 이러나 저러나 아마 입장에선 참 드러운 세상이 아닐 수 없다.

 


25. 웃기는 과학책

: 부족하다! 웃기는 것도 부족하고 과학도 부족하다!

 

26. 이제는 순수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솔직히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다.

: 그럼에도 이렇게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잘 알겠다. 어떤 시는 작품이 아니라 교보재가 되기도 한다. 시를 쓰지 않는 사람에게도. 제일 참신한 시집인가 하면 그건 모르겠다. 이 시집 밖에서는 구할 수 없는 표현들인가 하면 그것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이 이 시들의 말맛을 조금이라도 배워야 할 바로 그 때라는 것은 알겠다.

 

27. 마우나케아의 어떤 밤

: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마음을 지닌 사람이 별을 관측하는 일을 하게 된 것인지, 별을 관측하는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일을 사랑하게 되는 것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별은 아름답다. 사진으로 봐도 아름답다. 거실에서 TV를 보던 엄마에게 이 책을 펼쳐 마우나케아의 밤하늘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엄마가 TV를 껐다. 집은 조용해졌고, 엄마는 별을 헤는 속도로 조용히 조용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마우나케아의 밤하늘에 뜬 별이 채 다 들어있지도 않을 그 사진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28. 공격성, 인간의 재능

: 1968년에, ‘공격성이라는 물건의 이로운 기능만큼은 꼭 지키고 싶었나보다. ‘공격성이라는 어휘의 외연을 과하게 키우는 느낌이 없진 않아도, 전체적으로 논조에 설득력이 있다. 그래, 공격성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지, 좋은 점도 있지, 그건 건질 수 있으면 건져야지.

: 그렇지만 2018년에, 공격성의 나쁜 점이 온 세상에 만연한 2018년에도 공격성의 좋은 점 자체가 없어진 건 아니니까 저자는 똑같은 주장을 계속 하겠고, 계속 해도 되겠지만, 그 주장을 하는 목소리의 크기는 어떻게 변했을까 생각해본다.

 


29. 운동 미니멀리즘 : 짐마일로 클래식

: 운동에 꽂혀서 읽은 게 아닙니다. 미니멀리즘 때문이에요. 안할 수 있을 최대한도로 안한다는 말이잖아요, 미니멀리즘이. 그런데 제가, 미니멀리즘이라는 것이 최소지향이지 소멸지향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했네요......

: 생각보다 집요하게, 그러니까 이게 미니멈이라는 압박을 팍팍 가해오고 있다. 양심을 건드리는 전략을 사용하다니. 똑똑하다.

 

30. 유령

: 이 이야기만이 가지는 대체 불가능한(불가능까지는 아니더라도 대체비용이 막대한) 한 방, 그건 뭘까? 어디 있을까?

 

31. 교양인을 위한 화학사 강의

: 여기서 말하는 화학사는 화학의 정사正史가 아니라 야사野史. 모름지기 정사보다 갑절은 재미있다는 점이 야사의 장점이겠다.

: 단점이라면, 야사만 가지고 행세하기는 쉽지 않다는 점. 그리고 야사의 재미를 오롯이 누리려면 정사를 알아야 한다는 점 등등. 화학사까지는 아니더라도 얼마간의 화학 지식을 갖추고 읽으면 훨씬 더 매력적일 책.

 

32. 나는 울 때마다 엄마 얼굴이 된다

: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 책을 덮으며 제일 먼저 한 일 = 이슬아 수필집 검색 및 주문결제. 눈 한번 깜짝하기도 전에 이슬아가 2만원을 털어갔다. . 루팡.

 


33. 민트의 세계

: 듀나의 발꿈치라도 되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열정이 다 사라져 추억으로만 듀나를 기억하는 오늘이 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변한 것은 듀나가 아니라 syo일 것이고, 어쨌든 이제 syo는 듀나의 책에 크게 요동하진 않는다. 늙어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syo가 그러거나 말거나 듀나는 듀나의 일을 한다. 새롭고 신비로운 세계를 만들고 부수고 또 만들고 또 부순다. 이 땅에서 듀나만큼 많이 세계를 짓고 부순 사람이 또 있을까? 열정이 가신 눈으로 보아야 더 경이로운 작가가 있다. 공정한 찬사를 바치고 싶다.

: 뭐야, 나 뭔데 이렇게 진지해.....

 

34. 좋아하는 것을 함부로 말하고 싶어질 때

: 어떻든 당신의 시는 시가 될 수 없겠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아무래도 당신의 시는 나의 시가 될 수 없겠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 당신의 시는 당신의 시로서 가치 있고 그 가치를 나는 나로서 잘 알 것 같습니다만, 어쩐지 함부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좋아하지 않는다고 함부로 말하고 싶어졌습니다.

 

35. 작별

: 의외로 심심했던 한강과, 역시나 불안해 미치게 만드는 강화길과, 분명 누워서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나면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하는 권여선과, ? 하는 사이에 끝나버린 김혜진과, 인문에세이로 문학상을 타 버린 이승우와, 언제나처럼 오늘도 도저히 못 읽겠는 정지돈과, 뭐지? 일곱 명인데 누가 빠졌지? 하고 살펴보니 바로 정이현이었던 정이현과.

 

36.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 크리스마스 직전의 어느 저녁, 오래 안 친구 몇을 만나 커피 한잔 때렸는데 걔들은 제 앞가림을 그럭저럭 하며 살고 있었다. 나는 조금 부끄러웠지만 조금도 부끄럽지 않은 척, 물욕 없는 척, 이렇게 사는 게 반쯤은 내 의도인 척, 도서관 사서나 돼서 큰 돈 못 벌어도 책이나 실컷 읽으며 살다가고 싶구나- 라는 식의 말을 했다. 그리고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켜며 상상했다. 도서관 카운터에 앉아 유유히 책장을 넘기며 머그에 든 커피를 마시는 내 모습을. 충만하였다.

: 며칠 후 이 책을 읽었다. 쌈싸다구를 얻어맞는 마음으로 그저 조아리며 읽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나의 장래희망을 포기당했다. 박탈감이 조금은 있었지만, 주변의 매서운 질타를 받으며 장래 희망 장동건을 포기당했던 초1 시절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것보다 제발 그날 그 카페 그 공간에 사서 노동자가 없었기를 빌 뿐이다...... ‘사서나라니, 명실상부 2018 망언 대상.



37. 차별의 언어

: 따뜻하고 다정한 책이지만 어쩐지 분량에 비해 얻은 게 별로 없는 것 같다. 훌훌 넘어갔지만 어쩐지 훌훌 사라져버릴 것 같은...... 뒤통수를 뽜악 때리고 스스로의 인간성을 반성하게 하는 크리티컬 히트가 없었다. 훌훌.

 

38. 글쓰기가 뭐라고

: 겨냥하는 독자가 명확한 책인데 그게 나는 아니었다...... 이 책에서 가르쳐 주는 방법들을 동원해야 할 글쓰기는 내가 하지 않고 하지 않을 논증과 설득의 글쓰기. 그러면 이 책은 내게 무슨 쓸모인가 생각하다가, 그냥 인생살이 지침서로 받아들이며 읽기 시작했는데, , 의외로 도움이 되었다. 글쓰기는 인생이라더니, 글 잘 쓰는 방법을 살짝 꺾으면 그대로 삶 잘 사는 방법이 되는 것인가.

 

39. 시사IN 588

 

40. 그림으로 설명하는 개념 쏙쏙 통계학

: 평하고 싶은 말이 없으니 평하지 않기로 한다.

 


41. 오늘도 가난하고 쓸데없이 바빴지만

: 앉았다. 읽었다. 끝났다. 일어났다. 우와?

: 망원동은 알지도 가보지도 못하는 곳인데도 작가의 맛 묘사가 사람 마음에 불을 지른다. 방금 저녁 먹은 인간을 배고프게 만들어버린다. 하루키조차 나를 이렇게 대하지 않았는데!! 체포하고 싶은 솜씨가 아닐 수 없다.

: 귀엽고 다정한 "하수구가 막혔다" 꼭지를 널리 알리고 싶다. 통째로 긁어다 올리고 싶었지만, 그래도 되는 건지 몰라서 포기.

 

42. 이토록 두려운 사랑

: 사랑에 관해서라면 시작도 과정도 끝도, 머리도 몸통도 꼬리도, 두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잘나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그런 거니까. 사랑은 조금 불안하긴 해도 두려운 것은 아니고, 조금 겁나는 때가 있어도 역시 두려운 것은 아니고, 조금 아프긴 해도 두려울 만큼 아픈 것은 또 아니니까. 사랑은 그냥, 좋은 거잖아.

: 라고 믿고 살 수 있었던 것 자체가 실은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 특권은 때로는 무지에서, 때로는 무심함에서, 때로는 무분별함이나 무턱대고 밀어 붙일 수 있는 입장에서 나왔던 것인데,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이쪽의 입장일 뿐이었다. 사랑으로 사랑에 역경과 어려움이 없었으므로, 나는 사랑을 알지만 사랑을 잘 모르는 이상한 인간이 되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두려움이 기본적으로 내장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형태의 사랑을 할 일이 없었으므로, 나는 내가 하는 사랑을 알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하는 사랑을 모르는 반편이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어디 가서 한 사람 10년 만났다고, 사랑과 연애에 대해 아는 척은 하지 말아야겠다. 나는 내 옆에 있는 사랑, 내 사랑과 엮여 있는 사랑조차 해보지 못했다는(해보지 않아도 되는 입장이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아직 신에게는 이틀이 남아있사옵니다만 여기서 일찌감치 12월의 독서를, 그리고 2018년의 독서를 접는 데는 사실 하찮은 이유가 있는데, 그 하찮은 이유는 다음 이 시간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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쟝쟝 2018-12-29 21: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율주행차............. 미국에서는 택배도 드론이 나른다던데.. (물론 한국은 인건비가 더싸니까.. 한동안은 그럴리 없겠지만..)... 그 생각만 하면 아득해져요. 퇴직하고 택시기사한다는 제가 만난 그 많은 분들의, 노년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하고.. 또르르... 정말 부동산만이 답인건가요? // 이슬아 수필집은 제가 먼저 읽고 있습니다만! ㅋㅋ 2만원 안아깝사옵니다 // 줄어든 잔고 만큼 차오른 책장, (그리고 아마도 책 땜에 좁아졌을 집까지) 저와 같은 syo님 연말 소식에 어쩐지 동류으식을 느껴버리며..// 저 페미사이드 읽으러갈게여.. 쿨럭!

syo 2018-12-30 11:16   좋아요 0 | URL
1. 그런 옛 말씀이 있잖아요.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없다˝ 인걸 다 필요없어요. 4차건 40차건 부동산만 의구하다......
2. 보물이지요, 이슬아. 그거 곧 인터넷 서점에도 풀린다는 이야기가 돌던데요
3. 이 짠한 동류의식..... 아, 쟝쟝님과 syo의 2019는 어떻게 될 것인가!!
4. 힘내세요!! 여성주의 책읽기 동아리 항상 응원합니다.

반유행열반인 2018-12-30 0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찮은 이유가 하찮지 않을 것 같은 이 기분은...뭐지요. 올 한해도 정말 열심히 읽으셨네요. 리스펙트!

syo 2018-12-30 11:17   좋아요 1 | URL
정말 하찮게 하찮은 이유라ㅎㅎㅎㅎ

전 그냥 읽어‘제끼는‘ 수준이지만, 알라딘에는 1년에 1500권을 읽고 하나 하나 리뷰를 남기는 무서운 분들도 많으니 리스펙트는 그분들을 위해 아껴두심이^-^

bookholic 2018-12-30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엄청나십니다..^^ 행복한 연말 되세요~~~

syo 2018-12-30 15:30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제겐 북홀릭님의 다정하고 따뜻한 독서편지들이야말로 엄청나 보입니다 ㅎㅎㅎㅎ
내년에도 북홀릭님 글 꾸준하게 읽고 배우겠습니다^-^

설해목 2018-12-30 14: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찮은 이유 빨리 알고 싶어요! ㅎㅎ
올 하해 syo님의 글을 읽을 수 있어 여러모로 제겐 기쁨이었어요. ^^
내년에도 좋은 글 많이 많이 써주셔요. ^--^

syo 2018-12-30 15:33   좋아요 1 | URL
말씀 덕분에 올 한해 완전 헛짓거리만 하고 산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 좋아라 ㅎㅎㅎㅎㅎㅎ

모쪼록 내년에도 뚜벅뚜벅 읽고 쓰시는 설해목님 되시어, syo의 하찮은 독서생활에도 지금처럼 영향력을 미쳐주소서^-^

독서괭 2018-12-30 17: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입니다 syo님! 올해의 댓글왕 축하드려요. 둘째 임신으로 인한 입덧과 졸음으로 좀비같이 회사와 집- 그러니까 업무와 육아를 오가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동안 댓글도 못 달았네요 ㅜㅠ 그래도 syo님 글은 최대한 챙겨 읽고 있었답니다.
새해에도 맛깔나는 글 많이 부탁드려요~^^

syo 2018-12-30 18:07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이 뜸하셔서 뭔가 일이 생긴 것은 아닐지 염려했었는데, 일은 일인데 경사가 있으셨던 것이로군요!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ㅎㅎㅎ

그렇다면 독서괭님과 복중아기씨의 정신건강에 해롭지 않은 글들만 썼어야 하는 건데, 돌이켜보니 그랬다는 자신이 없네요......

syo에게나 독서괭님과 독서괭님 패밀리에게나 신명나는 2019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레삭매냐 2018-12-30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어마어마한 독서량이란 당최...

게다가 올해의 댓글왕까지 !!!

새해에도 멋진 모습 기대해 보겠삽니다.

syo 2018-12-30 20:35   좋아요 0 | URL
열심히 따라가겠습니다 ㅎㅎㅎ 레삭매냐님께서 앞서서 훨훨 달려나가주세요^-^

transient-guest 2018-12-31 0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세상이 참 신기해요. 제가 매년 꽤 많은 양의 책을 삽니다. 당장 12월에만 해도 다섯 건이나 주문을 넣었어요. 근데 님께서 주문하신 위의 책과 겹치는 것이 한 권도 없습니다. 정말 많은 책이 매년 나오고, 쌓이니 그런 것이겠지만, 참 신기합니다.ㅎㅎ 주머니는 가벼워지고 책을 둘 곳은 점점 없어지니 이 고민은 책을 사들이는 걸 즐기는 한 계속될 것 같습니다. ㅎ

syo 2018-12-31 09:05   좋아요 1 | URL
신기하면서도 바람직하기도 하고 일견 아름답기조차 한 일인 것 같아요. transient-guest님의 글을 읽을 때마다 전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잠시나마 생각해보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ㅎ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제 주머니는 더 많이 가벼워지고 공간은 더 협소해졌겠지요?? ㅎㅎㅎ

페크(pek0501) 2018-12-31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길다 길어...ㅋㅋ
좋은 책 많이 소개받은 한 해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님 덕분입니다.
좋은 글도 재밌는 글도 많이 봤습니다. 글을 이렇게도 쓸 수 있구나, 하며 읽었죠.

물론 새해에도 좋은 이웃으로 왕래하겠습니다. 굿데이...

syo 2018-12-31 15:43   좋아요 1 | URL
ㅎㅎㅎ 칭찬 말씀에 스스로도 고개가 끄덕여질만큼 만족스러운 한 해였다면 좋았겠지만, 그저 부끄러울 뿐입니다. 페크님과의 왕래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2019를 기대합니다^-^

카알벨루치 2019-01-07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엔 나도 페이퍼 많이 썼는데 요즘은 내가 보지 못한 글이 막 있군요 허참!!!!

syo 2019-01-07 09:23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카알님의 시야를 벗어났다!! 모든 글을 다 발견하고 읽기란 어렵잖아요. 알라딘에 좋은 글이 얼마나 많이 올라오는데요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1-07 10:26   좋아요 0 | URL
다 찾아낼꺼임!!!! 오홋!!!
 

 

투명한 유리잔에 끓인 물을 따라 부으면 금세 사라지는 물방울 만들며 천천히 잔은 차오르고, 수면의 키가 자라면 잔은 조금씩 다른 소리를 내고, 아쉽게도 물은 금방 가득 차고, 잔 너머 쌓아놓은 책들과 그 등에 박힌 이국 작가의 이름들이 굴절되어 일렁이고, 잔의 꼭대기에 올라선 물은 하염없이 머리칼을 풀며 흩날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면 그 따뜻하고 진 머리칼들 안경알에 칭칭 휘감겨 사물이 온통 희부옇게 번지고, 고개를 들면 성에는 새처럼 얼른 날아가 세상은 다시 자기 자리를 잡고, 손잡이가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것처럼 손바닥으로 잔을 감싸 쥐고, 뜨겁고, 한 모금을 마시고, 잔의 옆구리를 손톱으로 두드려 보고, 한 모금을 더 마시고, 잔의 옆구리를 다시 두드려 소리가 옷을 갈아입었는지 확인하고, 또다시 한 모금, 이번에는 더 큰 한 모금을 마시고, 그러는 사이 뜨거움은 눅어 견딜만한 따뜻함이 되고, 나도 모르게 뜨거웠던 이름과 견딜 만큼 따뜻했던 이름들을 떠올리는 사이 조금씩 잔은 제 몸을 비우고, 잔의 안쪽으로부터 밖을 내다보며 눌린 손가락, 눌린 손바닥의 지문이나 손금 같은 것을 오래 들여다보기도 하고, 무언가 오래 뒤로 밀어 놓았던 이야기들이 슬쩍 보이는 것도 같고, 이제 도리어 내 손이 온기를 빌려주어야 할 정도로 잔은 식어버리고, 내려놓고, 그 너머로 여전히 굴절중이지만 그래도 이제는 눈에 마음에 힘을 빼고도 읽을 수 있는 작가들의 이름이 보여, 나는 다시 그 책을 펼치어 읽었습니다.

 

 

그때나는 묻는다왜 너는 나에게 그렇게 차가웠는가그러면 너는 나에게 물을 것이다그때너는 왜 나에게 그렇게 뜨거웠는가서로 차갑거나 뜨겁거나그때 서로 어긋나거나 만나거나 안거나 뒹굴거나 그럴 때서로의 가슴이 이를테면 사슴처럼 저 너른 우주의 발을 돌아 서로에게로 갈 때차갑거나 뜨겁거나 그럴 때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그럴 때나는 내가 태어나서 어떤 시간을 느낄 수 있었던 것만이 고맙다.

허수경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181116 181130 : 28 권



1. 아무튼, 트위터

: syo같은 애정결핍범은 SNS의 압력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겠더라. 일찌감치 포기하고 살았는데, 이 책을 읽어 보니, 하는 이들의 삶 역시 하는 이유가 있는 삶이었고, 그에 따라 조금은 불안해졌다. 나만 멍충멍충 사는 건 아닐까. SNS를 해서 생기는 이해득실의 문제가 아니라, 하는 이들의 생활, 문화, 사고를 이해할 수 없게 되어 버리는 게 아닐까 하고.

 

2. 나는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상합니까?

: 시인의 산문은 얕보기 어렵다. 벌컥벌컥 읽다가도 덜컥덜컥 멈추고, 되짚고, 뒤늦게 탄식을 하기도 한다. 손미 시인의 이 산문집을 휘감은 제일 큰 정조는 아무래도 외로움이겠고, 외로운 이야기는 종종 외로운 이들을 더 외롭게 만들기도 하므로 우리는 아무쪼록 이 책을 조심해야 하겠다.

 

3. 심야의 철학도서관

: 인물들의 대화가 일어나는 장소가 도서관의 철학서가라서 이런 제목이 붙었지만, 철학책은 아님.

: 톨렌스와 포넨스라는 두 인물이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인지를 놓고 치열하게 토론하는데, 마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는 것 같다. 끝까지 읽었지만 고도는 오지 않았고, ‘의식역시 끝내 오지 않았다......

 

4. 사회주의 사상가들이 꿈꾼 유토피아

: 마르크스를 다룬 부분보다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이나 엥겔스에게 할애한 데가 더 의미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뭐 되게 상세하지는 않지만. 마르크스 파트는 되레 부실한 데가 있고, 한형식 선생님의 <맑스주의 역사 강의>에 비하면 전체적으로 가볍다. 어쩌면 그런 이유로 많은 독자들에게 이 책이 외려 더 나을 수도 있겠다.

 


5. 혼자를 위한 미술사

: 혼자가 되어 그린 그림 앞에 선 인간은 혼자가 된다. 사적인 그림일수록 그린 사람 이외의 그 무엇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 같지만, 우리는 오히려 그런 그림에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우리 자신에 대해 배우게 되기도 한다. 미술사의 시기시기를 작풍이나 기술로 구분하지 않고 개인에 깊이 침잠해들어가는 과정으로 파악하는 관점이 의외로 유익하다.

 

6. 오늘도, 무사

: 책방 하는 모든 이들의 무사를 기원한다. 이들은 존재 자체가 사회를 위한 헌신인 고귀한 사람들이다. 책방 많은 사회가 모든 면에서 나은 사회다. 그보다 더 나은 사회는 딱 하나다. 그 많은 책방이 잘 살아남는 사회.

 

7. 지구 온난화 이야기

: 균형 있는 입문서라는 것은 이런 것이로구나. 단지 10년 된 책이라는 것, 작금에 심화되고 있는 환경 문제에서는 10년이 말도 못하게 긴 기간이라는 것이 좀 아쉽다.

 

8. 위대한 사상들

: 뻔뻔하다. 뻔뻔할 만도 하달 만큼 좋은 글이 아니었다면 중간에 집어던졌을 것이다.

: 위대한 사상가 10, 위대한 시인 10, 최고의 책 100,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애초에 인류라는 개념을 보는 틀이 좁다. 동양의 사상가나 동양의 시인도 들먹여는 놓았지만, 정말 들먹인다는 느낌, 자신이 개방적이고 동양까지 아우르는 시야를 가진 인물이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들러리로 세워놓았다는 느낌, . 그러니까, 틀렸다는 게 아니라 틀렸으면 좋겠다 싶다.

: 읽고 있으면 같은 사피엔스의 1인으로서 뿌듯함이나 벅차오름 같은 걸 느끼기도 해야 할 텐데, 전혀 그렇지 못했다. 광대한 우주를 맞닥뜨려 스스로의 먼지스러움을 자각하게 만들려고 했나 싶은 느낌인데, 그렇지, 우주 앞에 선다면 그럴 수도 있었겠지. 근데 당신이 우주는 아니잖아요. 글은 정말 잘 쓰시네요. 정말 글 잘 쓰는 먼지시네요. 부러워요.

 


9. 애덤 스미스 국부론

: 이상하지. 국부론에 관련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진짜 읽어봐야 될 건 국부론 아니라 도덕감정론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상하지, 참 이상하지.

 

10. 이제 나부터 좋아하기로 했습니다.

: 엔도 슈사쿠의 책이 줄지어 나오고 있다. 엔도 슈사쿠의 동물기를 되게 재밌게 읽었던지라 되게 기대하고 되게 빨리 빌려서 되게 빨리 읽기 시작했는데 되게 빨리 실망하고 엔도 슈사쿠에 대한 흥미를 되게 잃었다.

 

11. 그들은 왜 더 행복할까

: 다 읽었는데 그들처럼 행복하기 위해 내가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민 말고는. 그 사실 자체가 그들이 행복한 제일 큰 이유 같다.

 

12. 지구 한계의 경계에서

: syo는 오늘날 우리 지구가 이 모양 이 꼴인 게 우리가 한계를 몰라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수백 수천의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현재 보유한 기술로 도달할 수 있는 최고 한도로 정밀하게 고안해 낸 지구 한계치가 이미 나와 있었다. 그러니까 몰라서 그런 게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모른 척 하거나 우물쭈물 하다가 망하는 것이다.

 


13. 이명헌의 과학책방

: 한 권을 읽으면 수십 권을 읽은 꼴이 되는 무거운(무서운) 책이다. 진도를 쭉쭉 빼지 못하는 까닭도 같다. 소개된 책들 가운데 너무 옛날 책이 많은 것도 이유겠지만, 어쩐지 이것만으로도 너무 배가 부른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원전들을 찾아보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데, 이건 장점인가 단점인가.

 

14. 고인돌, 역사가 되다

: 갑자기 왜 고인돌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갑자기 알고 싶었던 만큼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아버렸다. 까먹겠지만. 그래도 어느 날 또 갑자기 고인돌에 대해 알고 싶어지면, 망설이지 않고 손에 들 책을 알았으니 그걸로 된 거지.

 

15.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 해야 할 이야기가 명확하고 그 말을 뒷받침하는 명분이 충분하면 글은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뻗어나갈 밖에. 환경 문제는 심각하지만 그래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의외로 선명하다. 단지 먹고사니즘에 치여 그 길을 가지 못할 뿐. 진단과 처방이 잘 버무려진 글들이지만 문제는 진단을 받으러 찾아오는 사람조차 없다는 점이겠다. 이 책을 읽은 사람이, 너무 적다.

 

16. 지도로 읽는다 한눈에 꿰뚫는 세계사 명장면

: 역사책을 읽을 때면 무의식적으로 영화를 기대하는 것 같다. 이 책은 스틸사진이다. 장면은 더없이 선명하고 세밀하게 포착되었지만, 그만큼 서사가 빈곤하다. 남는다면 지식으로 남겠으나 남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겠다.

 


17. 왼손은 마음이 아파

: 퇴보일까, 건성일까? syo는 마음이 아파.

 

18. 문명의 그물

: 유럽의 역사를 씨실로 꿰었다. 질이 좋은 씨실이다. 최고의 씨실이 갖추어졌으니 이제 날실을 준비해야 한다. 그러면 아름다운 직물이 될 것이다. 그래야 아름다운 직물이 될 것이다. 더 읽어야 한다.

 

19. 과학 같은 소리 하네

: 생각해보면, ‘4차산업혁명시대라는 굉장히 공학적이고 과학적인 단어를 공학자나 과학자보다 입에 더 많이 올렸던 이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것도 모르거나 대충 아는데도 모르는 게 없거나 완전히 아는 것처럼 말했고, 우리 사는 모양새는 이 모양 이 꼴이다. 과학과 공학이 정치인의 입에 오르내리기 전에, 혹은 그러기 시작할 때, 우리가 그것들을 다 알고 있으면 참 좋겠으나 녹록치 않다. 모르니까 우리는 잘 속을까? 의외로 그렇지도 않다. 속이는 놈들도 잘 모르는 건 매한가지기 때문이다. 결국 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실을 검증하는 법, 믿을만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소스, 통계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을만한 기초적 안목, 뭐 이런 간단한 지식들 아닐까? 이 도구들은 생각보다는 얻기가 쉽다. 성의의 문제에 가깝다.

 

20. 에디톨로지

: 표지에는 창조는 편집이다라고 쓰여 있지만, 실은 편집은 창조다정도를 겨우 증명한 책이 아닐까? 다양한 지식들로 편집된 이 책이 창조되었다는 것이 그 증거. 그리고 그게 끝인 것 같다. 읽는 내내 아, 결국 저 말인데 뭘 이렇게까지-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들었다.

 


21. 마흔에게

: 뭐 그다지 눈에 띄는 이야기도, 마음에 확 들어오는 이야기도 없는 단순한 에세이집. 주제는 늙는 법이고 원제 역시 마흔이라는 똑 떨어지는 숫자와 상관이 없는데도 번역하면서 제목에다 굳이 마흔을 타겟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이렇게까지 드러내는 이유를 알고 싶다.

 

22. 알지 못하는 모든 신들에게

: 늦게야 정이현에 눈뜬 것 같다. <낭만적 사랑과 사회>랄지, <달콤한 나의 도시> 같은 작품으로 명성 떠르르하던 시절에는 그렇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데, 요즘은 그의 건조한 문장이 왜 이렇게 좋은 걸까. 언제든 추락할 것 같은데 추락하지 않고 가늘게 떨리기만 하는 문장 위에서 아슬아슬 줄을 타다가 불시에 뚝, 하고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23. 비상문

: 인간은 언제나 다른 인간에게 하나의 질문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인간의 죽음은, 또한 그 죽음이 스스로에게 선사한 죽음이라면, 그건 정말 거대한 질문이 된다. 그 질문을 마주하여 결국은 통속적이거나 자조적인, 혹은 자기계발적인 대답만 내놓고 다시 바쁘게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 syo처럼 별 볼일 없는 인간의 한계겠다. 그래서 이 책에 대해서는 말할 수가 없겠다.

 

24. 이성의 운명에 대한 고백 순수 이성 비판

: <순수이성비판>을 읽은 다음 <실천이성비판>을 읽고 <판단력 비판>을 읽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다. 실제로 그래야 하는지 정확히는 모른다. 얼추 알기로 실천은 순수를 깔고 앉았다고는 하던데. 근데 이놈의 순수는 정말 순수하게 어려워서 잘 따라가는 것 같다가도 자꾸 허방을 짚게 만든다. 원전 번역본은 사놓았지만 읽는 것은 다음 생의 과업으로 미루어 놓은 상태고, 결국은 이런저런 입문서나 개론서를 전전하다가 슬그머니 헤겔로 넘어갈 생각인데, 잘 될지 모르겠다. 좋은 책인지 아닌지 선명하게 판단하려 다른 책을 몇 권 더 읽어 봐야하겠다. 일단 지금까지 읽은 책 중에는 제일 좋았다. 지금까지 읽은 책은 무려 두 권. 한 권이 아닙니다.

 


25.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 빅 히스토리는 정말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 따로 과학적 기본지식을 갖추고 와서 읽어야 하는 건지, 읽고 나서 과학적 지식을 갖추어야 하는 건지 항상 헷갈리게 한다. 사실 이건 독자의 딜레마인 동시에 저자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빅 히스토리의 가장 큰 변별점은 과학과 역사의 오묘한 배합 속에서 드러나기 마련인데, 과학 독자와 역사 독자의 간격은 기실 유대교 신자와 이슬람 신자 사이의 간격과 유사하여 서로를 꽤나 알 것 같으면서도 생각보다 잘 섞이지는 않는다. 결국 과학에 힘을 주면 역사 독자가 성화고 역사에 힘을 주면 과학 독자가 아우성을 칠 테니, 저자는 야훼와 알라 사이에서 망설이고 독자는 타나크와 꾸란 사이에서 방황하는 것이다.

 

26.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 에피소드식 역사 지식은 잘난 척 할 때나 쓰는 거라는 인식을 오래 쥐고 있었다. 실제로 그렇게 쓰곤 했다. , 그런 건 어떻게 알아? , 어쩌다 보니(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시크한 표정을 짓는다.) 그래놓고 막상 책을 평가할 때는 에피소드식 역사책을 하급으로 취급하는 요 양면성, 이중 잣대. 하지만 알고 보니 그저 syo가 멍청한 것이었을 뿐, 에피소드의 이면이나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했을 뿐, 역사책은 언제나 옳다!(짝퉁 역사만 아니라면) 심지어, 재미난 이야기로서의 역사책이라면? 옳고도 옳은 거지.

 

27. 우리가 꿈꾸는 나라

: 그가 없는 세상에 우리에게 부족한 세상이듯, 그가 남긴 말만으로 우리는 부족하다. 다시 살아 돌아오실 게 아니라면, 그의 평전이라도 만나고 싶다. 1주기쯤 이와 관련된 어떤 일이라도 벌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28. 침묵의 봄

: 고전이 얼추 다 그런 면이 있지만, 과학의 고전은 유독 더 읽어 볼 명분이 적다. 왜냐하면 책 속에 든 주장과 증명들이, 책이 나왔던 시점에는 놀랍도록 혁신적이고 심지어 급진적이었던 그 이야기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식이 되어 대중지식 속에 자리를 잡고, 같은 분야를 다루는 후발 주자들이 그 지식들을 당연한 전제로 깔고 뒷이야기를 이어나가기 때문이다. 더는 천체학에 대해 알기 위해 코페르니쿠스나 갈릴레이를 읽지 않고, 물체의 운동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 뉴턴을 읽지 않는다. 독서의 왕국에서 그 책들은 기념비처럼 존재하며 유독 부산스런 독서가들의 순례지가 될 뿐이다. 이 책이 그렇다. 이 책은 수많은 일을 하고 수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는 데에 채 반 세기의 시간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곧장 기념비가 되었다. 뒤는 다른 책들이 맡았다. 50년 전에 나온 이 책을 오늘날 다시 읽는 것에 가치가 없지 않겠으나, 오늘은 오늘의 문제를 다룬 오늘의 책을 읽어야 한다.

 




이만하면 올해도 할 만큼 했으니, 12월부터는 적게, 오래 읽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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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11-3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같게 읽어 본 책 딱 한 권이 있으며, 소감도 같게 공감합니다. ^^

syo 2018-11-30 21:02   좋아요 1 | URL
4, 8, 20, 28 중에 그 한 권이 있나요?? ㅎㅎㅎㅎ 찍기

북다이제스터 2018-11-30 21:07   좋아요 0 | URL
역시 무서운 분 ㅎㅎ
신기도 있으세요. 20번요~~~~^^

syo 2018-11-30 21:15   좋아요 1 | URL
북다님이 읽으실 만한 것들, 딱히 읽으실 것 같진 않지만 읽으셨다면 저랑 같은 반응이실 것 같은 책 위주로 한 번 골라봤습니다 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1-30 20: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5일동안 30권의 책을 읽는 사람! ㅜㅜ 계속 읽어주세요 도전 늘 팍팍 받고 있으니~ㅎㅎ

syo 2018-11-30 21:03   좋아요 1 | URL
이제 30일동안 15권 읽는 사람으로 거듭날 겁니다. 맨날 다 날라가고 없어ㅠㅠ

카알벨루치 2018-11-30 21:26   좋아요 1 | URL
난 16번, 20번 읽는중인데 두권다 용두사미 되는거 아닌가 싶네요 ㅎ

syo 2018-11-30 22:55   좋아요 2 | URL
카알님의 용두용미를 기원합니다.

북프리쿠키 2018-12-0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8번 딱 한권 겹칩니다..흐흐;; 전 카알벨루치님과는 다르게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않을 껍니다~!!! ㅠ.ㅠ

syo 2018-12-01 14:40   좋아요 1 | URL
그렇다면 누구든 오르려는 사람은 오를 수 있는 나무로 거듭나는 12월의 syo가 되겠습니다 ㅎㅎㅎ

레삭매냐 2018-12-02 11: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침묵의 봄, 마저 다 읽어야 하는데...
사실 사서 서문 정도만 읽은 것 같네요.

읽을 책들이 주변에 너무 많은데도
우선 순위에서 밀려 나는 통에 ㅇㅇ

이제 한 달 남았네요,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syo 2018-12-02 15:10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의 꾸준한 독서와 기록이 항상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12월도 2018년도 알찬 독서로 마무리하시기를 ^-^

페크(pek0501) 2018-12-02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게 오래 읽기. 저도 동참합니다.

syo 2018-12-02 15:10   좋아요 0 | URL
동지! 2018년을 천천히 오래 마무리하자구요^^

cobomi 2018-12-09 1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독서량에는 못 미치지만, 저도 최근 ˝좀 적게 읽자. 거듭 읽자.˝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침묵의 봄>에 대한 의견에는 공감해요. 고전이지만, 따분하기도 하고 낡은 인상을 받기도 하고요.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제목에서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고 했음에도 가장 인기 없는 책이기도 해서 살짝 심란했는데 syo님도 읽으셨다니 반갑네요 ㅎㅎ

syo 2018-12-09 11:30   좋아요 0 | URL
많이 그리고 빠르게 읽는 일이 쉽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적게 거듭 깊이 읽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운 것 같아요. 에너지 소모도 크구요.

사실 <침묵의 봄>과 <어쩌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 중 한 권을 고르라면 오늘날 우리는 당연히 후자를 골라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북플은 이 책을 읽은 이가 저밖에 없다고 알려주네요. cobomi님처럼 읽으셨지만 표시하지 않은 분들이 실제로는 더 계시겠지만 그래도 어쩐지 씁쓸하네요^-^
 

 

도서관을 다녀왔다. 곰인간을 만났고 햄버거를 먹었다. 오는 길에 빵 두 개 사왔다. 지금 하나 뜯어먹으면서 쓴다. 빵부스러기가 책상에 떨어지고 키보드는 미끈거린다. 제길.

 

커피를 먹겠다고 작은 주전자에 든 물을 끓였는데 부어보니 제길, 숭늉이다. 우유 한 방울 없이 커피는 라떼 색, 맛은 그윽하다. 아메리카노에서 조상의 얼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그 조상은 과연 어느 대륙 누구의 조상인가. 상관 있나, 어차피 we are the world인 것을. 코리아메리카노라고 부르면 될까.

 

책방에 대한 책을 읽다가 왠지 책방이 잘 어울리는 친구가 생각나 책방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막상 그 친구는 책방도 좋지만 밤마다 술을 마시고 싶다고 했다. 어쩐지 목이 칼칼해져 syo는 조상의 얼을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한다.


갑작스럽지만 참새는 너무 귀엽게 생겼다. 참새. (귀엽게)(ㅇ긴동물). 머리도 둥글, 몸도 둥글. 배는 하얗다. 아침 담벼락에 떼로 앉아있었다. 손가락으로 머리를 한 번 만져보고 싶었는데 파다닥 날아갔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열라 빨라. 쟤넨 비둘기 같지가 않다. 걔들은 만질 수 있어서 만지기 싫은데


그러고 보면 요즘은 비둘기들도 옛날처럼 쉽게 컨택트가 되는 것 같진 않다. 비둘기 나는 장면을 심심찮게 목격하곤 한다. syo가 도련님 댕기머리 하고 학당 다니던 옛날에 비둘기는 새라기보다는 돼지였다. 사람들도 욕지거리 없이 걷기 힘든 그 학교 캠퍼스를 걔네들은 숨소리 하나 안 내고 잘만 걸어 다녔다. syo가 모자 쓰려고 머리 달고 다니듯, 얘네는 노트북 가방 메려고 날개 달아놓은 듯. 공학관 뒤쪽 편의점에서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이놈의 비둘기가 영장류 고귀한 줄 모르고 자꾸 알짱거리길래, 저리 안 꺼져? 하며 발길질을 했는데, 세상에, 제대로 맞았다. ! 평화의 상징 비둘기는 잘 감아 찬 손흥민의 프리킥 궤도를 그리며 잠깐 날아가더니 이내 착지하여 이쪽을 매섭게 노려본다. 굉장히 놀란 눈치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너는 안 찰 줄 알고 맞았겠지만, 나는 안 맞을 줄 알고 찬 것이다. 서로 간에 오해가 깊었다. 그러나 어쩌면 그건 이해일 수도 있다.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니까 안 찰 거야. 새는 나니까 안 맞을 거야.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에 기대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였다. 그 결과는 공학관 옆 허공을 가르는 비둘기빛 좋은 궤도였다. 그리고 너에겐 날개가 있고, 나에겐 발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서로 서로 알려주었지. 좋은 추억이다. 어쩐지 목이 칼칼해져 syo는 조상의 얼을 한 번 더 느껴보기로 한다. 다 식었네.

 

왜 이런 흐름의 글을 쓰게 되었는지 나도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냥 의식이 가고 싶은 대로 가도록 두었을 뿐인데. 아직도 내 머릿속에 뭐가 들었는지 도통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뻥 차준다면, 나도 예쁜 프리킥 궤도를 그리며 접힌 날개의 기동방식에 대해 조금 더 잘 알게 될까? 모를 일이다. 코리아메리카노의 맛도 그렇다. 식어도 그윽하다. 하지만 모르겠다. 이 맛이 뭔지. 컵 바닥에 가라앉은 저 기이한 색깔의 물질이 콩인지 쌀인지.

 

, 코리아메리카노 이것은 커피계의 콩밥인가?

 

 

 

181101 181115 : 32

 

1. 페소아

: 페소아 전기의 도입이 시급하다. 한 줄에 별로 많은 활자가 들어가지 않는 판형의 300쪽 남짓한 책으로는 성에 안 찬다.

: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좋은 300쪽짜리 책이다. 아무리 주제 자체가 매력적이라 해도, 그것에 관해 더 알고 싶게 만드는 데는 저자의 역량이 반드시 필요하다. 페소아를 전파하는 활동으로 보자면 한국의 안토니오 타부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김한민 선생님은 실제로 안토니오 타부키가 입던 스웨터를 입어 본 적도 있다고. 허허, 그것 참.

 

2. 로봇수업

: 로봇의 약진을 둘러싸고, 인간이 생각해야 할 가장 큼지막한 질문들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는 단단하고 의미 있는 책. 과연 MIT Press. 공학인의 성지.

: 표지에는 인공지능 시대의 필수 교양이라고 쓰여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인공지능을 로봇의 한 부분으로서만 서술하고 있을 뿐, ‘로봇자체에 대한 서술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구분하지 않는 경향이 널리 퍼져 있는데, 저자에게 걸리면 큰일 날 수 있겠다. 로봇은 로봇, 인공지능은 인공지능. 걔네는 완전히 떼어낼 수 없는 관계긴 하지만 뭉뚱그릴 만큼 한 몸도 아니다.

 

3. 회색 노트

: 2500페이지짜리 장편 대하소설의 반쯤 열린 포문 되시겠다. 이 작은 책 속에 들어 있는 인간들의 앞뒤 정황이 참을 수 없이 궁금하여, <티보 가의 사람들>을 나는 읽기로 했다. 영업을 당한 것이다. 깨끗하게.

 

4.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 스케치로 그려진 공간은 친숙하지 않아서, 좋았다. 내게 저런 금손이 있다면, 나도 볼펜 한 자루 들고 친숙한 공간의 친숙하지 않음을 찾아서 여기저기 다니지 않았을까,

: 하고 생각하고 나니, 다 핑계 같다. 그림이 아니라 글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내가 부족할 뿐이지.

 


5. 다시 자본을 읽자

: 제목이 다시를 포함하는 것은, 진짜 자본을 한 번 읽은 적 있는 사람들만 덤비라는 뜻이 아니다. 권위와 권위자가 내 눈에 가져다 댄 렌즈를 벗어던져 버리고, 우리의 시간과 입장에 맞춰, 우리를 위하여 자본을 읽자는 의미겠다.

: 그런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미리 갖춘 것 없이 덤벙 덤벼들 만큼 만만한 책은 아니다. 독자가 몇 가지 기본적인(?) 철학적 개념들(변증법이랄지, 유물론이랄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당연히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서 글을 풀어나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책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고병권 선생님 해석의 탁월함을 인지하려면 통상적이고 전통적인 마르크스 해석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 그러니까, 수도꼭지가 달려 있는 집에 태어난 사람은 그 물건의 위대함을 모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물에 두레박을 한번 던져 봐야..... 정말 처음이 아니라 다시읽는 이들에게 좋은 책인 것 같다.

: 그래서 syo는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이런 책이 11권이 더 나온다니! 12권 다 꽂아놓고 매년 1회독씩 해야지. 1월에는 1. 2월에는 2......

 

6. 데이비드 흄

: 압축적이다.

: 압축을 풀어야 되는데, syo의 뇌에는 그런 기능이 없었다.

: 따라서 이 책을 읽으며 근력을 만들어서 흄을 읽으려는 syo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흄을 읽고 와서 이 책의 압축을 풀어볼까 한다.....

 

7. 인형

: 비겁한데, 분명 비겁한데 웃긴다. 문장은 굉장히 정교한데, 어느 정도냐 하면, 읽고 있자면 화자의 태도가 기분 나쁘고 후지다는 걸 분명히 느낄 수 있는데도 웃기긴 웃길 만큼 정교하다. 초반의 탐색전을 끝내고 나면, 어느 지점부터는 한 페이지에 한 두 번씩 피식 웃게 된다. 뭐 이런 희한한 작가가 다 있지?

: 싶었는데, 다 읽고 났더니 맨 뒤쪽 작가 소개에 이렇게 쓰여 있다.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을 담은 작품세계로 독특한 문학적 영토를 일궈온 세계문학의 거장. 세상에, 정말 더없이 적확하다.

 

8.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 과연 포구의 제왕 곽재구 선생님. 이분이 쓰신 포구 기행문을 읽고 있으면 이것이 곽재구의 포구기행인지 곽포구의 재구기행인지 헷갈릴 정도니, 이미 포구 기행문에 관해서는 일가를 이루셨다 할만하다. 이름 장난 죄송합니다. 저질이네요......

 


9. 실력과 노력으로 성공했다는 당신에게

: 따분할 틈이 없다. 이걸 에세이로 봐야 하나, 사회학 책으로 봐야 하나 헷갈릴 정도다. 통계나 세금제도와 같은 이야기가 등장하여 아, 내 체력이 방전되고 있어, 싶을 때쯤 어떻게 알고 자기 인생 이야기가 똭! 수업듣기 싫어서 좀이 쑤실 때쯤 첫사랑 이야기가 똭!

: 실제로 첫사랑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지만요.

 

10. 빨강 머리 여인

: 파묵은 파묵이다. 한결같이 파묵같다.

: 그럼에도 내 이름은 빨강같은 대작(얘는 정말이지 걸작이지요)을 바라고 읽으면 반드시 실망할 수밖에 없겠다. 사실 그 책은,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작가라도 평생 한 번 써낼 수 있는 인생작에 가까우니까...... 이 책은 노벨상급 작가의 범작쯤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그 급의 작가가 컨디션이 좋지도 나쁘지도 않을 때, 그냥 기본 실력만 발휘해 볼까, 하는 마음으로 쓰면 나오는? 물론 실제로 그랬을 리야 있겠습니까마는......

 

11. 당신의 행복이 어떻게 세상을 구하냐고 물으신다면

: 자기계발서 같은데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우긴다. 문체는 파워풀하고 우격다짐의 기세로 몰아붙이는데, 그래서 더 자기계발서 같지만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주장한다. 어쨌든 행복하기 위한 방법을 선명하게 제시하는데, 그래서 더 자기계발서 같구만 저자는 상호계발서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개인의 노력으로 뭘 하라는 단계는 넘어서서 구조를 함께 바꿔나가자는 것이 주제긴 하니, 완전한 자기계발서는 아니라고 인정해도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하다. 그래, 그렇다니까? 저자가 팔짱을 끼고 선한 미소를 지으며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것 같다.

 

12. 대한민국 독서사

: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독서의 역사가 역사의 독서만큼이나 재밌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독서의 역사의 독서인가? .....뭐래.

: 정치색이 있다. 정치색 없는 책도 있나? 싫어할 사람 있을 수 있다. 싫어할 사람 없는 책도 있나?

 


13. 게임의 심리학

: 게임과 관련해서 벌어질 수 있는 다양한 심리학적 사태들에 대한 지식의 나열. 내용이 알차고 말고는 syo같은 무지렁이가 판단하기 어렵겠으나, 저자는 딱히 글 잘 쓰는 사람도 그렇다고 글 못 쓰는 사람도 아닌 것 같다.

 

14. 종횡무진 서양사 2

: , 이제 몸을 풀만큼 풀었으니, 10권짜리 프랑스 혁명사나, 홉스봄의 2000쪽짜리 시대’ 3부작이나, 하다못해 1200쪽짜리 미국 민중사나, 그것도 아니면 1000쪽짜리 러시아 혁명사나...... 꿀꺽.

 

15. 잘돼가? 무엇이든

: 이런 진부하면서 무책임한 단어는 쓰고 싶지 않았지만, 어쨌든 누구에게나 저마다의 슬픔이라는 것이 있는데, 게 중에는 가끔, 그 슬픔을 잘 조리하여, 크게는 다른 슬픔을 위로하고 작게는 한 순간의 웃음이라도 전해주는 이들이 있다. 참 고마운 사람들. 그들의 인생에 저마다의 슬픔이 계속되기를 바라야 하는 건가 아닌 건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쁜 건가 미친 건가, 뭐 이런 죄책감을 들게 하는 참 고마운 사람들.

 

16. 선망국의 시간

: 기본소득, 직접민주제, 호혜적 경제 공동체, 탄소배출을 줄이는 환경 공동체..... 거의 모든 영역의 최전선에서 담론의 장을 형성하고 계신 조한혜정 선생님. 어느 하나 전 지구적 의제가 아닌 것이 없다. 나는 열심히 읽어야겠다. 그리고 힘닿는 대로 뛰어다니기도 해야겠다.

 


17. 나쓰메 소세키 평전

: 나쓰메 소세키에 환장한 syo는 스스로 이럴 줄 예상을 못했다. 열라 재미없는 평전이었다......

 

18. 마구로 센세의 본격 일본어 스터디

: 귀엽다. 초밥 같이 생긴 주인공이 일본 식당을 다니면서 일본어를 배우는 내용이다. 귀엽다.

 

19. 루쉰 : 청년들을 위한 사다리

: 저자의 견해가 그다지 많이 함유되어 있지 않아 깔끔하고 담백한 루쉰 전기.

: 실은 루쉰이란 인물의 인생은 원체 공개적인지라, 어느 전기를 읽으나 내용 자체가 크게 다르다는 느낌은 없다. 단지 전기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도에 따라 루쉰의 어느 글을 인용하여 어디에 포진하는가가 다르게 결정되거나, 혹은 저자의 당성에 따라 루쉰의 업적에 대한 평이 조금씩 달라지는 정도라고 하겠다. 써 놓고 보니, 원래 전기 문학이 다 그렇지...... 죄송합니다.

 

20. 녹색평론 통권 163

: 반도체 집적도가 높아지는 속도로, 인공지능이 똑똑해지는 속도로 지구가 망하고 있다. 반도체랑 인공지능이 지구를 망친다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나 관계자의 눈으로 보면 되게 빠르게 망하고 있는데도 우린 잘 모르고 그저 산다는 뜻이다. 그러다 덜컥 일이 터지면, 언제나 그렇듯 그땐 늦었다. 그래서 녹색 책을 좀 읽어둬야 하는데,

: 그럴 때 녹색의 최신 동향을 살피기 위해 우선 손에 들어야 할 나침반 같은 잡지.

 


21. 조선에서 백수로 살기

: 고미숙 선생님의 책에는 좋은 말, 훌륭한 말이 잔뜩 들어있는데도, 그걸 분명히 알겠는데도, 그 말들이 피부를 뚫고 스며들어 오는 경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유를 모르겠다. 늘 따뜻하지만 겉도는 느낌이고, 아름답지만 허망한 느낌이고, 든든하지만 먹고 앞으로 나아가지지 않는 느낌이다. , 연암도 백수였구나, 백수였는데 훌륭했네, 와 부럽네, 멘탈 갑 오브 갑이네. 그러고 끝이다.

 

22. 피로 물든 방

: 오늘의 관점에서 전복적이라고까지는 하기 어렵겠으나, 아직 급진성의 불씨가 다 꺼지지는 않은, 거장의 동화 재해석.

: 못 쓰는 이들의 글은 어느 것을 읽어도 구분이 힘들어서 지치는데, 잘 쓰는 이들의 작품은 읽어도 읽어도 또 독창적인 문체를 지닌 애들이 숨어있다 튀어 나와서 지친다. 다 좋지만, 특히 숲, 세상에 다시없을 몽환적이면서도 아름답고, 포근하면서도 위태로운 숲을 문장으로 만들어냈다!

 

23. 사무 인간의 모험

: 아무 것도 아니다. ‘사무인간이라는 표현에서 조금의 연관성이라도 찾을 수 있는 인문학적 영역들에 문어발을 뻗어 끌어 모은 책. 살짝 어거지면서 심히 얕다. 소재의 폭을 줄이고 더 깊이 팠다면 너무 좋은 책이 나올 수도 있었을 컨셉인데, 이렇게 소진되고 마는가......

 

24.

: 자꾸 페미니즘 소설만 쓴다는 희한한 비난(?)으로부터 최은영을 옹호하고 싶다. 물론 여성이 겪는 다양한 고통을 제제로 한 작품을 최은영이 근래 많이 써내고는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밀한 눈으로 읽어 보면 그 작품들이 겨냥하는 데가 (당연히) 제각각 다름을 알 수 있다. 이를테면 공감 자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있고, 공감을 위해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이야기를 하는 작품도 있고, 그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아닌지를 조심스레 두드려 보는 작품도 있는 식이다. 페미니즘은 거대한 영역이고 굉장히 많은 소재들이 그 안에 포섭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골라서 작품을 썼다고 해서 그 작품의 주제 또한 그저 페미니즘이라고 후려쳐서 명명하고 말 것은 아니다. 여성 이야기가 등장하는 순간 아, 또 페미니즘이야, 하는 선입견에 따라 읽던 책을 집어던지는 일은 좀 공정치 못한 것 같다. ”얜 또 살인이야, 살인 말고는 쓸게 없나? 아니면 전작에서 살인으로 재미를 보더니만 이번에도? 아주 그냥 뽕을 뽑으려 하네?“ 라며 읽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집어던지는 경우가 상상이 되는지? <죄와 벌>에서 죽이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죽이면, 도스토예프스키가 살인 소설에 편향된 살인 소설가 대접을 받아야 할까? 그게 아니라면 그저, 그 소재가 페미니즘이라서 문제인 건가?

 


25. 진실 사회

: 진실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 우리가 찾아낸 진실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고 누군가 만들어 놓은 진실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 진실을 만들어 낸 이들이 어디서 무얼 먹고 사는지를 주시해야 한다. 그들이 몸을 눕히는 장소, 그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들이 때로는 진실의 진실을 가리키기도 한다. 뭐 이런 다소 뻔한 지혜를 다시 얻었다.

: 짧은 책이면서도 뒤쪽에 진실사회를 위한 10계명을 요약 첨부해놓으셨다. 친절하셔.

 

26. 헤겔

: 낡았다. 맞고 틀리고의 문제라는 게 아니라, 서술, 관점, 지향이 낡았다. 좋은 책은 많다.

: 문장도 후지다. ”체계로 포착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한 것은 우리들의 생과 사를 건 진리와는 관계가 없는 사이비 진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163)“ 이 문장 속에는 구조상 없어야 할 게 있고 있어야 할 게 없다. 이런 구린 문장이 가뜩이나 사변적으로 느껴지는 헤겔의 철학을 더욱 알 수 없는 쪽으로 몰고 가는 주범이다. (사실 저건 키에르케고르의 헤겔 비판에 관한 문장이긴 하지만......)

 

27. 빅팻캣의 영어수업 : 영어는 안 외우는 것이다

: 순전히 귀여워서 읽었다. 저 빅하고 팻한 캣 좀 보라지...... 시종일관 화가 나 있어..... 나도 그래. 영어만 생각하면 너처럼 시종일관 화가 나지.....

 

28. 우리는 차별하기 위해 태어났다

: 굉장히 공격적인 제목이지만 펼쳐보면 시종일관 다정한 책. 맞아. 원래 그렇게 생겨먹은 게 인간이니까, 가만 냅두면 그렇게 굴러가는 게 인간이니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서로를 지탱해야 한다.

: 그러고보면, 오늘날 인간 교양의 측정 방법 가운데 하나는 뇌과학이나 진화심리학적 지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에 있는 것 같다. 뇌과학적(진화심리학적)으로 보면 이런 이런 성향이 자연스러운 거니까 그냥 그렇게 해야 해, 이지랄 하는 놈들이 21세기 찐따의 왕좌를 차지할 것이다.

 


29. 목양면 방화 사건 전말기

: 왜 그냥 그렇지..... 난 왜 이기호가 그냥 그렇지......

: 그렇지만, 역시 등장인물의 대사는 가장 실감나는 구어체로 구사하는 이기호 답게, 녹취록 형식의 이 책은 그야말로 이기호의 기량이 빛을 발하는 책이라 하겠다.

: 근데도 왜 그냥 그렇지..... 난 왜 그냥 그렇지......

 

30. 너무 재밌어서 잠 못 드는 심리학 사전

: 신랄하다. 군더더기는 모른다! 예비 동작 없이 바로 쑤신다! 쑤신 구멍에서 유익함이 콸콸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었느냐 하면,

: , 잘 잤다.

 

31. 실은 무언가를 하고 있는 고양이처럼

: 단어의 위치가 맞춤하여 탄력은 있고 부담은 없는 문장들. 크게 튀지 않지만 식상하지 않은 어휘 구사. 그런 문장에 잘 녹아나는 일러스트,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한다는 개념이,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내 삶도 더 느긋하고 다정하게 들여다보게 한다.

: 그리고 산책. 산책 가고 싶다.

 

32. 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심리학 수업

: 박홍순 선생님은 도둑님이셔. 이분 책 읽고 나면 장바구니가 자꾸 두둑해지고, 그에 반비례하여 지갑이 얇아진다..... 책 뽐뿌, 샘플 제공의 달인.....

 

 

+ 내 이야기!! 1~13

: 여주도 그렇지만, 남주는 여주가 뭘 해도 좋아한다. 여주가 눈앞에 나타나면 일단 좋아해!’라는 내적 환호를 크게 올리고 시작한다. 나도 따라해 보기로 했다. 왜냐하면 어떤 마음은, 자꾸 확인하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종종 변명되는 어떤 마음은, 자꾸 확인하지 않으면 모서리부터 차츰차츰 닳아 정말로 없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 있는 줄 알았는데 어디 갔지? 이러면서 깨닫는 일이 생기면 이미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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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11-15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야기 감상이 제일 좋네요. 내 이야기 남주도 무척 마음에 들고요.

syo 2018-11-15 18:13   좋아요 0 | URL
되게 좋은 책이었어요. 만화를 읽다가 생활양식에 변화를 겪은 것이지요.

카알벨루치 2018-11-15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이야기>읽고싶네요 ㅎㅎ

syo 2018-11-16 00:42   좋아요 1 | URL
기회 되면 기분전환 삼아서 한 번 읽어보세요. 가끔 만화 보면서 말랑말랑해지는 것도 좋더라구요^-^

idahofish 2018-11-17 06: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따라 하나 하나 실감 나는 리뷰라는 생각에 재밌게 읽었어요! 평소에도 그랬을 텐데 왜 그렇지... 평소보다 꼼꼼히 읽었나봐요, 제가. 오늘도 책뽐뿌 잔뜩~~
근데 쇼님은 이걸 다 사서 읽으시나요? 신간을 매번 어쩜 이리도 잔뜩~~@.@

syo 2018-11-17 08:59   좋아요 0 | URL
실감은 idahofish님의 마음 속에서 나는 거지요!! 실감력이 대단하세요 ㅎㅎ

이걸 다 사서 읽으면 참 좋겠는데, 여의치 않아서 대부분 도서관의 힘을 빌린답니다. 정말 대애애애애애부분이요. ㅎ
 

 

벚꽃이 피면 어김없이 차트에 모습을 드러냈다가, 날이 좀 더워진다 싶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버스커 버스커의 <벚꽃엔딩>, 되게 지겹다는 느낌이지만 실은 아직 열 살도 안된 애기다. 그러나 30년을 넘게, 딱 하루 불꽃처럼 차트를 불사르고 사라지는 역주행의 화신이 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지금 이 시점에도 지니차트 64위의 기염을 토하고 있는 이용의 <잊혀진 계절>syo에게 10월이 십월이 아니라 시월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려준 고마운 노래기도 하다. 경상도 사투린줄 알았지. 시월. 하여간, ’잊혀진 계절이 이중피동 꼴로 틀린 말이라는 사실이 어느 정도 알려진 오늘날에도, 매년 시월의 마지막 날이 오면 대한민국에 사는 그 누구도 이용의 애타는 고백을 피해갈 수가 없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길거리에서, 버스에서, TV에서......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이쪽도 30년을 넘게 살았지만, 뭐 특별히 기억할만한 시월의 마지막 밤이 없어서, 뭔가 헛산 것 같아가지고, 저놈의 고백은 나이가 들수록 더 아련하면서 더 거슬린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요......그래, 댁은 좋겠구나, 매년 기억할 만한 게 있다니. “지금도 기억할 걸 못 만들고 있나요......나한테 대체 왜 이래...... “지금도 거역하고 있나요......

 

어제는 잠자리에 들면서 올해는 한 번 저 포기를 모르는 기억꾼의 마수로부터 벗어나 이용 없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조져보겠노라 다짐했다. 두문불출. TV도 라디오도 보지 않는다. 실시간 검색어도 보지 않는다. ’이용이라는 단어조차 이용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시월의 마지막 밤이 3시간 남은 시점까지도 이용의 습격을 용이하게 막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방에서 인터넷으로 플레이오프4차전 경기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30년째 듣는 너무너무너무너무 익숙한 멜로디가 들려온다. 둥땅둥땅둥땅둥땅 띠리링 띵띵띵 디리리리링 딩디리리리리리딩 띵디리링띵 우우우우..... 우우우우.... 우우 우우우.....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 내가 여기 숨어있는 걸 저 노래가 어떻게 알았지?

 

문을 박차고 거실에 나가보니 이용은 우리 엄마 핸드폰에서 솟아나고 있었다. , 정말 문틈까지 꽁꽁 싸매는 느낌으로 이용의 기습공격에 대비했건만......

 

요즘, 엄마가 유튜브에 빠져 있다.

 

 

181016 181031 : 27


  

1. 부산 이후부터

: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다니며 주인공들과 함께 빙빙 돌았다. 그들이 아버지를 가슴에 묻는 길이었다. 책을 덮고 나도 죽은 아버지를 만났다. 참 오랜만이었다.

 

2. 아무튼, 딱따구리

: 따뜻하고 귀엽고 사람한테나 자연한테나 끝없이 다정한 부부의 지속가능한 알콩달콩에콩에콩 에코 생활기.

: 저자는 딱따구리와 직박구리가 어떻게 생긴 애인지 잘 알고, 1년간 정든 동네를 떠나며 슈퍼 아저씨 앞에서 퐁퐁 울기도 하고, 68년도에 생산된 자전거를 고치고 귀여운 이름도 지어주며, 2018년에 50세 생일잔치를 해 주겠다고 약속하는 그런 사람. 남편도 비슷한 사람. 지향하는 삶의 모양새가 닮은 사람이 서로 아끼며 살아가는 삶에서 쑥쑥 자라는 행복은 아, 부럽다. 읽고 있으면 뜨끈한 커피를 큰 컵에다 마시는 기분이 든다. 물론 그 컵은 머그컵이다. 종이컵은 안 돼.

 

3. N. E. W

: 나이 좀 더 먹어서, 이것저것 더 배우고 알게 되면, 김사과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줄 알았지. 그땐 왜 몰랐을까. 김사과도 같이 나이를 먹는다는 걸. 한없이 도망치는 김사과.

 

4. 어린 왕자, 진짜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

: 이론 꼭지는 부족하고, 토론 꼭지는 작위적인데, 그걸 정리한 짤막한 꼭지는 어쩐지 좋은 희한한 책. 책이란 것은 정말 자유롭게 읽을 수 있구나. 그리고 그 모든 자유로운 읽기에다가, 정신분석(과 분석심리학. 다릅니다)은 자유롭게 지분을 주장하는구나. 와 정말 자유롭다.

 


5. 사진관집 이층

: 어쩐지 입 밖으로 나온 말이 그대로 시가 되어 땅바닥에 뚝, 떨어져 고일 것 같은 신경림 시인. 그만큼 읽기도, 느끼기도 쉬운 시들.

 

6. 무인도의 이상적 도서관

: 진짜, 명성으로 전 세계를 진동시킨다는 이 196명의 작가 가운데 거의 100명은 이름도 처음 들어봤고, 50명은 이름은 알지만 그들이 쓴 책을 한 권도 읽어보지 않은 마당이니, syo 같은 놈은 아직 나라면 무인도에 무슨 책을 가지고 가지?’ 하고 생각할 만한 자격도 경험치도 없는 놈이 아닌가! 읽어 본 것들 중에 고르기에, 난 너무 안 읽었던 거야....... 진짜 대책 없이 사람 부끄럽게 만드는 책이다.

 

7. 쌤통의 심리학

: 표지 속의 남자는 정말 고 새끼 고거 쌤통이다하는 마음에 더없이 걸맞은 표정을 하고 있다. 이런 경우 읽게 된다. 표지에 낚여 읽지 않아도 될 책을 읽은 경험을 밤하늘에 별처럼 수놓고 싶은 때가 있다.

: 그렇다면 이 책은 별자리가 될랑말랑 하는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요약하자면 남들 망하는 거 보면서 내심 좋아하는 너 자신을 그냥 받아들여라. 일단 그런 심보를 상수常數로 놓고 그 다음에 대책을 마련하는 게 똑똑한 짓이라니까정도라 하겠는데, 으하하하, 찌질이로 10년 넘게 살아온 syo에게 샤덴프로이데는 이미 상수가 된지 오래였다! 난 이 책이 필요가 없었어! 눈을 감고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면......

 

8. 한권으로 보는 마르크스

: 이 한권으로는 정말 택도 없다. 그렇다면 이 책은 허당인가? 그렇지도 않다. 원제는 “Why Read Marx Today?”인데, 원제에 중점을 두고 평가하자면 충실한(최소 작가 자신이 충실하다고 생각할) 책이라고 볼 수 있겠다.

: 작가의 말을 그대로 빌려와 한 줄 요약도 가능하다. “우리는 마르크스 자신이 인지한 문제들에 대한 해법에 전폭적인 신뢰를 보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 문제들이 폐기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두 줄이었네요. 죄송합니다.

 


9. 로봇 시대에 불시착한 문과형 인간

: 요즘 이 분야의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자기계발 붐으로 뭔가를 얻은 사람들이라고는 자기계발서 저자들뿐이었던 그 엄혹한 시대의 기억이 고스란하다.

: 이 분야의 책들을 펴면 항상 사라질 직업들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을 주의 깊게 읽는데, 책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 책에서 쉽게 없어지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는 직업이 저 책에서는 옐로우카드를 받고 퇴출의 기로에 서 있는 식의 불일치가 팽배하다. 많이 읽다보면 결국 모든 직업이 싸그리 없어질 것도 같다. 여기서 나는 지혜를 얻는다. 이런 것이다. “많은 일을 로봇이 대신하게 될 거라고 말하는 부지기수의 책들 가운데, 과연 이 책 자체는 로봇이 대신해서 쓰기 어려운 책인가?” 이 책은 별로 그럴 것 같지는 않다.

 

10. 무기력한 날엔 아리스토텔레스

: 무기력한 날에 읽으래서 이때다 싶어 며칠을 두고 꼼꼼히 읽었으나 무기력에서 탈출하지는 못했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시리즈 제목도 필로테라피라면서.

: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전혀 힘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무기력한 이유는 간단한데, 철학에 의해 플러스 된 기운과, 그 철학을 이해하느라 용쓰는 데 소모한 기운의 마이너스 값을 합했더니 제로가 되고 만 것이다...... 이 책에서 소개한 정도라면 그렇게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어쩐지 잘 읽히지 않았다.

: 이렇게 무기력을 그대로 달고, 이제 비참(스피노자)과 우울(니체)과 절망(키에르케고르)이 남았다.

 

11. 수학이 필요한 순간

: 마지막 챕터까지 수학책인 듯 수학책 아닌 수학책 같은 너였다가, 추가 챕터에서 우힛, 속았지? 나 열라 수학책!’ 하는 책. 수학책 주제(?)에 불티나게 팔려나갔다기에 기분 좋은 당혹감을 안고 읽었는데 심지어 좋기까지 해서 당혹.

: 각 꼭지를 들어가면서 아니, 이게 수학이라고?’

: 각 꼭지에서 나오면서 아니, 이것도 수학이었다니.’

: 책 여기저기에서 분야의 경계를 종횡무진하는 저자를 보며 아니, 이게 사람이라고?’

: 그리고 거울을 보며 아니, 이것도 사람이었다니.’

: 책을 덮으면서 아니, 세상에 수학인 것도 없고 수학이 아닌 것도 없나 보구나.’

 

12. 존 롤스 정의론

: 그냥 정의론을 읽을까.

 


13. 페터 비에리의 교양수업

: 곱씹어 보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 지혜의 말씀에 가까운데도, 처음 딱 대면하면 말을 너무 멋지게 해서 소름이 돋는다. 그 정도 멋지니까 문장을 곱씹어 보게 된다. 그렇게 곱씹어 보면 의외로 별다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곱씹기 전에는 쉽게 파악할 수 없어서 곱씹게 된다. 그렇게 곱씹어 보면 이 말이 독특하지 않은...... 이런 순환을 문단 단위로 만들어내 독자가 꼼꼼히 읽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 페터 비에리의 글쓰기.

 

14. 숫자 갖고 놀고 있네

: 본격 산수교양서. 작대기로 수를 세던 시절부터 현대의 아라비아 숫자 표기법과 계산법에 대한 이야기만으로 전반부 150페이지를 끌고 가는 다정함이 매력적이다.

: 더하고, 빼고, 자리 올리고, 내리고, 우리에겐 기계적으로 당연하여 생각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없는 이런 산수의 과정들을 오래 보여주면서 그 속에 숨어 있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오래 보아야 예쁜 법이다.

: 그러니까 이 책은, 구몬이나 눈높이 선생님이 그 살풍경한 문제지를 들이밀며 다음 시간까지 다 풀어내지 않으면 결코 아름답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 아닌 으름장을 놓기 전에, 우리에게 한 번쯤 다정하게 알려줬어야 할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그랬다면, 산수의 문턱을 이렇게 다정하고 흥미롭게 넘어섰다면, 우리가 수포자로 전락할 확률이 절반까지는 떨어졌을 것이다.

 

15.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 일상의 그림자에 숨은 철학 포인트를 끄집어 내 그걸로 다시 일상의 녹는점을 낮춘다. 그러는 동시에 일상의 뒷모습을 표본으로 삼아 철학의 안쪽을 이해할 수 있게 돕는다. 철학과 일상이라는 두 서먹서먹한 친구가, 한때는 서로가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힘껏 도왔던, 서로에게 필수적인 사이였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책.

 

16. 첫 문장

: 주인공은 세상을 빙빙 도는데 이야기는 조금도 돌아가지 않는다. 어떤 이유에서건 빙빙 돌아본 사람은 안다. 생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어디를 헤매 본들,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우리는 다시 점령당한다는 것을. 아프지 않은 눈으로 살피면 여분과 잉여로 보이는 것들이, 당사자에게는 한 치의 남음도 모자람도 없는 정확함일 수 있다.

 


17. 철학자 플라톤

: 특색은 없지만 딱히 단점도 없는 고만고만한 개론서.

 

18. 정치

: 글을 정말 고급지게 쓴다는 느낌. 보수적 정치학자의 명맥을 이어가는(이어가다가 가신) 분이라는데, 과연 글에 품격이 있다.

: 그러나 syo처럼 일종의 입문서를 대하는 기분으로 이 책에 손을 댔다가는 손이 덴다. 이 시리즈가 다 그렇다. 옥스퍼드의 ‘a very short introduction’인가 하는 시리즈를 번역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과연 옥스퍼드 다니는 인물쯤 되면 이 정도는 베리 숏 인트로덕션으로 숙지해 주어야 하는가 보다...... 사노라면, 참 사람 하찮은 기분 들게 만드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19. 오늘도, 녹색 이슈

: ‘환경은 지켜나가야 한다는 명제가 참임은 너무도 명백하기 때문에, 오히려 환경 문제에 세심한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어차피 옳고 당연한 이야기가 들어 있겠지 싶은 선견이 환경에 관한 책에 손을 댈 기회를 줄이고, 그 결과 이렇게 청소년을 대상으로 쓴 쉽고 다정한 책에서조차 새롭게 알게 된 사실들이 너무나 많은 지경에 이르렀다.

 

20. 보통 사람을 위한 현대 수학

: 보통, 사람, 그리고 위한. 이 세 단어 가운데 최소 어느 한 곳에는 거짓말이 숨어있다. 그 거짓말이 새빨갛다.

: 곱셈을 뜻하는 기호인 가운뎃점(·)과 소숫점 기호인 마침표(.)를 모두 마침표로 찍어 놨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3곱하기 3.5를 쓴다치면 3.3.5라고 표시되는 셈이다. 이러면 이게 3곱하기 3.5인지, 3.3 곱하기 5인지, 그것도 아니면 3곱하기 3곱하기 5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21. 방구석 미술관

: 이슈로 시작한다고 해서 다 잔재주라고 할 수는 없다. 예술가라는 종족은 대체로 그들이 만드는 작품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가 되곤 하니까, 미술 공부의 문은 작품보다 화가로 열어가는 게 더 좋을 수 있다.

 

22.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 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처럼 콘텐츠를 흐름에 얹어서 풀어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이 책처럼 키워드 단위로 챕터를 구성해 사전식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이렇게도 읽고 저렇게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읽기가 편해지는 것이 마르크스. 뭔들 안 그렇겠느냐마는.

 

23. 내가 사랑한 물리학 이야기

: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할지 정말 애매하다. 아는 사람에게는 단편적일 것이고,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는 맥락 없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추천할 만한 책은 못 되겠다.

 

24. 독일철학사

: 일단 어렵다.

: 이단 번역이 번뇌다.

: 삼단 독일 철학은 원래 지루하다.

: 결론. 누구를 위한 책인가. 최소한 그게 syo는 아니었다.

 


25. 고요한 폭풍, 스피노자

: 편집상에 자잘한 단점(혹은 실수)들이 있긴 해도, 이만한 스피노자 입문서가 없다. 프랑스 사람이 쓴 어떤 책이 좋긴 한데, 다들 아시잖아요, 프랑스 철학자들의 문장이 어떤지. 아름답고 정교하지만 빡치는..... 이 책은 그야말로 한국 스타일이다. 기본적으로 거두절미고, 그냥 거두절미하면 딱딱하니까 딴엔 기교를 부리지만 안 하던 짓이라 어색한, 그러니까 되게 친근한 우리네 이웃이 설명해주는 것 같다..... 

: 뭘 또 폭풍까지야.

 

26. 수학에 관한 어마어마한 이야기

: 구석기 주먹도끼부터 시작해서 역사의 시간축 위에 얹힌 수학의 크고 작은 흔적들을 조명한다.

: 수학 교양서는 크게 두 가지 스타일로 분류할 수 있다. 수학에 특별한 소양이 없는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만 수학 좀 한다는 사람들은 시간낭비라며 읽던 책을 툭 던지게 하는 스타일이 첫째요, 반대로 수학 좀 하는 이들의 흥미를 끌지만 수학을 잘 모르는 이들을 진절머리 나게 하는 스타일이 둘째다. 그런데 이 책은 1.5째인 것 같다.

: 뭘 또 어마어마까지야.

 

27. 종횡무진 서양사 1

: 작년, 남경태 선생님의 <개념어 사전>을 다시 읽고서 첫 번째 독서에서 감지하지 못했던 빨강이의 향기를 느끼고 좋아했다. 그런 긍정적 선입견을 두르고 책을 손에 들었는데, 표지에 가장 독창적 역사 읽기라는 욕심 가득한 부제가 붙어있다. 독창적이면 독창적이지 뭘 또 가장 독창적이야, 얼마나 독창적이면 가장 독창적인지 한번 볼까?

: 하는 배배 꼬인 마음으로 읽으면, 뭐 그리 전복적인 역사관이다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특별히 겁내지 말고, 그냥 남경태 선생님이 늘상 잘 하셨던, 함량 있는 개론서 스타일이라고 보면 되겠다.

: 뭘 또 종횡무진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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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8-11-01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숫자와 제목에 붙여진 색깔의 의미는 뭘까... 혼자 막 그런 생각하면서 읽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ㅋㅋㅋ
저는 어제 이용 아저씨 노래 안들었어요! ㅎㅎ 너무 일찍 자버려서 그런가봐요. 내년에는 꼭 성공하시길! ㅎㅎ
syo님의 알찬 솔직 후기 덕분에 오늘도 장바구니에 몇 권의 책을 담았네요. ^^

syo 2018-11-01 12:30   좋아요 0 | URL
특별한 의미가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냥 색을 넣고 싶다는 느낌이 드는 제목에만 색을 넣었고, 기왕 넣으려면 이 색깔로 넣어야겠다 싶은 그대로 색을 골라서ㅎㅎㅎㅎ

설해목님 11월도 활자로 묵직하고 끈적끈적한(?) 한달이 되시기를 ^-^

북깨비 2018-11-02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혀진 계절. 저도 나이가 좀 있어서 아는 노래인데 syo님 덕분에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가사가 이제 귀에 들어오네요. 유투브에 찾아보니 해마다 10월 31일날 들으시는 분들이 꽤 되시는 것 같아요. 저도 이제 해마다 찾아 듣게 될 것 같습니다. 뭔가 기분좋은 그리움. 💕

syo 2018-11-03 09:13   좋아요 1 | URL
저는 희한하게 매년 시월의 마지막 날에 이 노래를 꼭 듣게 되어서 남들도 다 그렇겠더니 했는데 꼭 그렇지는 않은가 봐요. ㅎㅎㅎㅎ 가사나 멜로디나 다 좋은 노래잖아요. 사실 1년에 하루쯤 듣고 아련해질만한 노래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죠.

페크(pek0501) 2018-11-03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녹색 평론에 꽂혔어요. 예전에 선집을 구입한 적이 있는데 내용이 다 좋더라고요.

이젠 선집을 구할 수 없어서 두 달에 한 번 나오는 책으로 읽고 있어요. 163호가 나와서 사려고요.
162호에도 좋은 내용이 많아요. 격월간지입니다.
<오늘도 녹색 이슈>를 보니 생각났어요.

syo 2018-11-03 15:20   좋아요 1 | URL
말씀 듣고, <녹색 평론>을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좋은 잡지라는 이야기야 접한 지 오래되었습니다만.....
목덜미까지 차 있던 구매욕구가 페크님의 울대 때리기에 당해서 왈칵 쏟아지고 말았네요 ㅎ
 

 

 

: 싱크대 근처에서 쥐똥이 발견되어 엄마가 와들와들 공포에 떨고 있다. syo가 거대한 끈끈이 쥐덫을 사와 부엌에 깐다. 그리고 이튿날, 도대체 어떻게 저럴 수 있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커다란 쥐 한 마리가 끈끈이의 한 복판에, 마치 거기서 돋아나기라도 한 양 떡하니 앉아있다. 그리고 헉, 우리는 눈이 마주친다. 쥐돌이가 화들짝 놀라 발버둥을 친다. 그러나 쉽지 않지. 끈끈이는 끈끈해서 끈끈이다. 하지만 쥐돌이는 포기하지 않는다. 온몸을 뒤척이며 어떻게든 끈끈이를 벗어나려 하는데, 급기야, ! 하는 소리와 함께 쥐돌이가 상-하체로 찢어진다...... syo도 놀랐지만 분리된 자신의 하반신을 바라보는 쥐돌이도 상당히 놀란 눈치다. syo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쥐돌이의 상 하체가 바들바들 진동하더니 이얍! 하는 소리와 함께, 쥐돌이의 상체 찢어진 부분에서 새로운 하체가, 하체 찢어진 부분에서 상체가 돋아난다! 두 마리가 된 쥐돌이가 휴우~하고 한숨을 돌린다. 그리고 쥐돌이들은 다시 발버둥을 치는데, 그러다가 또 쩍! 이번에는 쥐덫 위에 두 개의 상체와 두 개의 하체가 놓여 있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부들부들 이얍! 소리가 이어지고, 쥐돌이는 네 마리가 된다. 그리고 뭐, 그런 식이다. -부들부들-이얍-휴우--부들부들-이얍-휴우...... 그렇게 쥐돌이들이 한 사이클 당 두 배로 증식하는데, 그로부터 10분 후, 끈끈이 위에는 몇 마리의 쥐돌이가 있을까요? 하는 등비수열의 일반항 구하는 문제가 생각날 때쯤, 드디어 광활한 끈끈이가 쥐돌이로 모두 덮이고 말았다. 여기서 한 번 더 쩍-부들부들-이얍이 이어진다면, 그때는 그저 휴우-로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 끈끈이에서만 놓여 나면 당장이라도 syo를 덮쳐서 쩍! 하고 찢어놓을 기세다. 철근도 씹어먹을 것 같은 저 맹수의 앞니를 좀 보라지...... 그리고 그때, 다시 한 번 쩍! 하더니, 으아아아, 2n승 마리의 쥐돌이들이 또 일제히 부들부들을 시작하는데.....

 





해몽 : 읽을 책은 자꾸 늘어 가는데 읽을 시간은 자꾸 줄어든다.

 


 

181001 181015 : 20



1. 예의 없는 새끼들 때문에 열받아서 쓴 생활 예절

제목에서부터 거대한 힘이 느껴진다. 아니나 다를까 몇 쪽을 읽었더니, 막강하다는 느낌이다. 과연, 예의 없는 새끼들에게 예의를 가르칠 땐 예의가 필요 없다는 것인가.

: 그렇지만 그런 말투가 시종일관 이어지는지라 50쪽쯤에서 식상해지기 시작하더니 거기서 100쪽을 더 읽었더니 이제는 보기도 싫어졌다. 내용 역시 윽박지르는 식이지 딱히 납득할만한 근거로 떠받치진 않았다. 그냥 다들 예의 갖추고 살아서 이런 책까지 나오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2. B급 철학

: 철학 강연 여러 편을 엮은 책이라 그런지, 강연자에 따라 재미나 난이도의 차이가 어지간하다. , 철학이 머릿속에 들어 있으면 만화/드라마/영화를 이렇게도 보게 되는구나, 하는 느낌은 든다. 과연 아는 것은 힘일까, 병일까?

 

3. 청소년을 위한 소크라테스와의 대화

: ‘청소년을 위한 고전컨셉으로 발간되는 여러 시리즈 가운데, 이 시리즈를 제일 좋아한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도 좋지만, 그쪽은 이게 과연 청소년 읽으라고 만든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어려운 책이 몇 권 있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쉽게 읽으라고 어려운 부분을 생략하는 전략을 취하지 않고, 대신 분량을 많이 투여해 씹기 좋을 때까지 길고 우직한 설명을 곁들여준다는 데 있다.

: 이 책만 해도 그렇다. 예를 들어, 보통의 입문서 같았으면 소크라테스는 책을 남기지 않았으므로 우리는 주로 플라톤의 저작 속에 등장하는 모습을 재료로 삼아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재구성한다, 하고 서술하고 말겠지만, 이 책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크세노폰, 아리스토파네스 등의 저작에 등장한 소크라테스의 면모를 비교 설명하고, 각 저작을 연구하는 학자들 간의 논쟁에 대해서도 짧게나마 언급하는 주도면밀함을 보인다.

 

4. 숀 세이어즈의 플라톤 국가 해설

: 나쁜 책은 아니지만, 굳이 이걸 읽었어야 했을까?

 


5. 플라톤의 예술노트

6. 플라톤의 몸 이야기

: 5<국가>에서, 6<향연><파이돈>에서 예술과 관련된 일부분을 발췌하여 약간의 설명을 곁들여 놓은 책이다. 책의 면적은 손바닥 두 개쯤 되고, 페이지는 각각 120, 150 쪽쯤 되는데, 앞부분 40페이지가 완전히 동일하다. 그리고 그 부분에 이 두 권 전체가 요약이 되어 있다. <국가>, <향연>, <파이돈>을 읽을 생각이라면 이 두 권은 전혀에 한없이 가깝도록 불필요한 책이다.

 

7. 철학의 고전들

: 10권의 고전을 골라 원전을 쉽게 재미있게 재구성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쓴)책이다. 화자를 바꾼다든지, 시점을 바꾼다든지, 가상 인물을 등장시켜 대화의 현장을 증언하게 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독자에 따라서는 조악하다고 느낄 수 있겠다.

: 그러나 확실히 재미는 없고, 어쩐지 별로 매력이 없다. 그냥 원전 읽고 말지- 싶은 생각이 든다는 게 과연 이 책의 단점일까, 아니면 거대한 장점일까?

 

8. 갱부

: 앞쪽 절반을 갱도까지 가는 길에서, 나머지 절반은 갱도 안에서 쓴다. 정말 거의 반반인데, 체감상, 앞쪽 절반을 따라가느라 눈물이 후두둑 떨어지다가, 뒤쪽 절반은 후루룩 마셔버렸다! 왜 소세키 선생님은 항상 전반전에 설렁설렁 뛰다가 후반만 되면 폭풍 드리블을 치는가.

: 재미있었냐고 물어오면 차마 너무 재미있었다고는 못하겠다. 주제가 뭐냐고 물어오면 내 주제에 차마 아는 척도 못하겠다.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와중에 서재친구 헤르메스님의 리뷰를 읽게 되었는데, 아 맞다, 그러고 보니 헤르메스는 신이었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지라, 불민한 syo는 그냥 여기서 찌그러지기로 한다.

 


9. 나를 부르는 숲

: 이 책을 꼼꼼히 읽고 나면 나조차도 웃긴 놈이 될 수 있을 줄 알았지. 결국 웃은 놈만 되고 말았다. 언제나 나의 사랑 나의 빌 아저씨. 보고 싶은 엉클 빌, 하우 아유...... 아임 빠인 땡큐.....

 

10. 행복의 정복

: 표지만 봐도 부들부들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서양철학사>에 트라우마를 가진 syo가 어떻게 러셀빠가 될 수 있었는지, 지금은 그 경로를 추적하기 어렵지만, 하여튼 syo는 러셀의 글이 다 좋았다. 자서전 최고, 정치 이야기 최고, 종교 이야기 최고, 심지어 <행복의 정복>은 누가 봐도 자기계발 장르겠지만 어쨌든 이것도 최고. 자신을 지어 올리는 데 벽돌이나 철근, 시멘트로 사용한 작가들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냉정하게 평가하기가 어려운 법이다.

 

11. 연애의 기억

: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절이었다. 줄리언 반스의 <10 1/2장으로 쓴 세계 역사>를 읽으며, 무슨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하여간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고, 어쨌든 꾸역꾸역 다 읽어냈다. 그리고 거울을 보았는데, , 생각을 너무 했더니 호모 에렉투스가 되고 말았어! , 그런 기억이다.

: 그리고 그때까지는 분명히 아는 사람만 아는(우리나라에선) 작가였던 줄리언 반스가, 어떻게 된 일인지 승승장구를 거듭하면서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는 요즘에 이르기까지, 이건 또 어떻게 된 일인지 syo는 줄리언 반스를 하나도 읽지 않고 있었다. 그렇게 다 건너뛰고 오늘날 이 책을 읽었다. 얘네가 왜 이러는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고 알쏭달쏭 했지만, 그렇게 책을 다 읽고 났더니, , 이것 봐라,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네? 역시 사피엔스는 그냥 막 되는 것이 아니지. 사랑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되는 거라.

 

12.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

: 에세이겠거니 하고 열었는데 버젓한 실용서.

: <독서만담>의 후속작일 거라는 짐작은 알게 모르게 기대를 키우는데, 그러면 아마 다소의 실망이 따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독서만담>에게 배꼽을 사정없이 도난당한 기억과 작가의 드립력에 대한 존경어린 애정이 남아있으므로, 결론적으로 뭐, 그래도 역시 재미있었어요, 와 같은 희멀건 반응을 남길 수밖에...... 무려 박균호가 등판해도, 역시 실용서로 웃기는 데는 장르적(혹은 제도적) 한계가 있는 법인가 보다.

 


13. 어느새 운동할 나이가 되었네요

: 아직 운동으로 자신을 지킬 수 있을 때, 어서 시작해야 한다. 거창하게 마라톤이나 철인3종을 뛸 수는 없겠지만, 다리를 분주히 움직이는 일의 대차대조표가 아직 이득을 가리킬 때, 바로 지금이 시작하기 가장 좋은 때입니다.

 

14.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 세계를 좁혀 한 평도 안 되는 요가 매트 위에 올려놓고, 곰곰이 요리조리 뜯어보고 뒤적거려 글을 만들었다. 작가라면 단 한 평의 영토를 글로 완전히 정복하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야 할지도 모른다. 세계는 그만큼 꺾기 어렵고 글 또한 길들이기가 만만치 않으므로, 작가의 처음은 그저 한 평 안에서 벌어지는 전쟁일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작가는 그 한 평의 땅에 수백만의 독자를 들여놓고 그들의 마음을 배불릴 수 있다. 아직 다 개간하지는 못하였겠으나, 첫 삽을 박아 넣고 자신의 영토를 선포한 어느 작가의 행보를 오래 지켜보게 되겠다.

 

15. 모두를 위한 아리스토텔레스

: 아리스토텔레스가 뭐하는 놈인지 알고 싶은 생각이 있긴 한데 어떻게 알아가야 될지조차 아직 잘 모르는 당신께 제일 처음 필요한 단 한권. 쉽고, 후려칠 건 과감하게 후려쳤다. 이 콘셉트, 이 설정으로 모두를 위한 칸트, 헤겔, 하이데거 뭐 이런 시리즈가 줄줄 이어졌으면 참 좋겠으나 저자는 금세기 벽두에 별세.

 

16. 전효진의 독하게 합격하는 방법

: 나는 왜 이렇게 느적느적 살고만 있을까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때, 이런 책을 읽는 습관이 있다.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24시간이 다 같은 24시간이 아니다. 자신의 밑둥까지 남김없이 태워 본 사람들은 좀 존경받아도 된다. 방향이나 목적지와 무관하게.

 


17.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 해몽보다 좋은 꿈이 있다. 꿈이 맑고 밝으면 그렇다. 기쁜 꿈이든 슬픈 꿈이든, 왜 그런 꿈을 꾸었는지를 따지기 이전에 먼저 좋은 꿈이 있다. 시도 그렇다.

 

18. 정선

: 아직 내 눈이 닿지 않은 곳에, 꿋꿋이 자기의 글을, 좋은 글을 잘 쓰는 소설가와 시인들이 이렇게 많다. 눈을 더 크게 뜨고 많이 읽자.

 

19. 결심만 하는 당신에게

: 짧은 데도 주술호응이 맞지 않는 문장. 중언부언하며 분량 만들기. 정말 딱딱한 사실들, 그저 글자들의 나열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문장. 이걸 '문장' 또는 '문체'라 부르기도 뭐한 수준의 그야말로 의미 전달만을 위해 만들어진 개성 없는 책이 가져오는 체온 없음.

 

20.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 번다한 마음이 글을 쓴다. 그 글을 번다한 마음으로 읽었을 때, 우리는 어디쯤에서 만난다. 몸과 몸으로 만나 온몸으로 상대를 더듬는 듯 나를 더듬는다. 번다하지 않은 마음으로 읽었을 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이제는 누구에게든, 죽음보다 늦게 도착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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