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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처럼 문지 스펙트럼
다니엘 페낙 지음, 이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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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변경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와 지금 이곳 어딘가를 지나고 있다는 남자의 손에 지팡이도 물통도 아닌 책 한 권이 들려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철물점 집 사내놈이 봤다는구먼.” 사람들은 마을에 하나뿐인 술집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다들 알다시피, 그 멍청한 놈이 아직 글을 못 깨쳤잖아. 그래서 그 나그네가 들고 있는 책이 뭔지, 그 중요한 걸 알아내지 못하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는 거야.” “세상에!” 몇몇 사람들이 동요하며 발을 굴렀는지, 바닥에 짜넣은 널빤지가 끽- 불길한 소리를 내질렀다. “도대체 무슨 책일까?” “얼마나 중요한 책이면 이 넓은 나라의 끝에서 끝을 가로지르는 내내 손에서 내려놓질 못하는 걸까?” 사람들은 궁금증에 너무도 깊이 매몰되어 제일 중요한 사실, 아직 맥주를 시키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었다. 술집 주인마저 그랬다. 때때로 궁금함은 어떤 독주도 흉내 내지 못할 만큼 확실히 사람을 취하게 한다.

 


러시아 작가의 소설이 아닐까? , 전당포 할멈을 도끼로 잔인하게 내리친 어느 가난하고 비열한 겁쟁이가 죄책감과 자기기만 속에서 벌벌 떠는 이야기로 천 페이지를 꽉 채운 그 유명한 책 말야.” 먼저 입을 연 것은 목수였다. “책 속의 그놈은 결국 도망치지 못하고 치안의 그물망에 걸려들고 말지. 망설였거든. 멍청하게도. 저 나그네인지 뭔지 하는 작자도 어쩌면 국경에서 사람을 도끼로 쳐 죽이고 끈질기게 도망치는 중인지도 몰라. 그건 정말 좆같이 힘든 일이지. 마음에 구멍이 숭숭 나거든. 거기 서 있는 예쁜 언니가 신은 싸구려 검정 스타킹처럼 말이지. 그래 언니, 거기, 거기 말야. , 하여튼 도망치다보면 말이지, 지쳐서 다 포기하고 싶을 때가 온다구. 신체의 자유를 팔고 그걸로 마음의 자유를 사고 싶은 약한 마음이 드는 거지. 그럴 때 다시 한 번 그 책을 읽고는 구두끈을 고쳐 매는 거야. 마음의 자유라는 게 생각보다 꽤 비싸거든. 제 몸을 꽁꽁 묶고, 심지어 전당포 할망구처럼 머리통을 쪼개 도끼를 처박은 채로 경찰서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간대도, 그 망할 마음의 자유라는 놈을 살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야. 재수 없으면 몸은 교도소에 처박혔는데 마음도 계속 지옥 불에 튀겨지는 꼴이 나는 거거든. 결국 몽창 꼬라박고 쪽박만 찰까봐 불안한 거지.” 목수가 아이 머리통만한 손을 탁자에 쾅쾅 내리쳐대며 말을 이었다. 마을에 흘러 들어온 게 두 해도 채 되지 않는 그가 그 전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지 마을 사람 누구도 알지 못했다. 그가 그 크고 투박한 손에 든 연장을 오로지 목재를 다루는 데만 썼다고 보증해줄 이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것이 목수의 가장 친한 이웃조차 그의 과거를 단 한 번도 물어보지 않은 이유였다. “어쩐지 난 알 것 같단 말이지.” 목수는 두꺼운 목을 세차게 흔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에, 그렇게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 책은 아마도 성경이 아닐까 싶은데요.” 다음으로 입을 연 이는 며칠 전에 목사관에 새로 짐을 풀었다는 신출내기 목사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가늘지만 깊은 그의 눈, 마찬가지로 가늘지만 단단해 보이는 그의 목 같은 곳을 훑는 동안 목사는 깍지 낀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작은 소리로 목을 가다듬었다.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가 흙으로 빚어 입김을 불어넣으시고 직접 그 이름을 지으셨으며 다른 모든 것들의 이름을 지을 위대한 권한을 내려주신 아담이 하느님 말씀을 어기고 금단의 과실을 탐하여 낙원에서 쫓겨나는 장면을 떠올려 봅시다. 바로 인간이 정처 없이 걸어야만 하는 운명을 받게 된 그 순간을요. 에덴의 출구에 찍혔을 인간의 첫 발자국부터, 하느님이 지으신 모든 땅을 뒤덮고도 모자라 이제 저 하늘 위에 떠 있는 달에까지 찍어놓은 인간의 수많은 발자국들, 그 모든 발자국은 추방의 순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디로 가려 했던 걸까요?” 목사가 말을 멈추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글쎄, 누더기 하나 걸치고 쫓겨났으니 배가 고팠을 테고, 스컹크 한 마리라도 잡아먹으려고 근처 풀숲을 뒤지지 않았을까?” “두고 온 사과 생각이 절실했겠는데?”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으며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 아버지, 구하소서. 신앙이 약한 마을이로다. 목사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번에는 들으라는 듯이 티 나게 목을 가다듬더니, 외치다시피 했다. “그들은!” 일순 조용해졌다. “죄 사함을 받으러 길을 떠난 것이었습니다. , 바로 그렇습니다. 그 모든 여행이 죄의 길이면서 사죄의 길이었고, 반란의 길인 동시에 반성의 길이었으며, 역경의 길이지만 곧 희열의 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배하신 그 길 위에 어리석은 우리가 범한 죄업들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의 버터처럼 녹아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보세요. 그럴 때마다 점점 가벼워지는 우리의 발걸음, 점점 천사와 닮아가는 우리의 웃음을 상상해 보는 겁니다!” 목사는 자기도 모르게 두 팔을 치켜들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누구도 그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래도 목사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여행이 그런 것이라면, 그 여행의 길이 길고 길수록 가장 잘 어울리는 동반자는 바로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은 지팡이를 들고 있지 않다고 했지요? 그럴 수밖에요. 그는 그 어떤 지팡이보다 훌륭한 지팡이, 바로 거룩한 성경을 들고 다니고 있으니까요! 한 걸음에 한 구절, 말씀을 짚고 발걸음을 옮기는 그 거룩한 여행자가 목사관 앞을 지나만 간다면, , 내가 바로 뛰어나가 꿀처럼 달콤한 물과 그보다 몇 배는 단 기도와 축복을 그에게 부어줄 텐데!” 스스로의 말에 도취되기라도 한 듯, 목사는 두 손을 모으더니 이내 작은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도 이런 유형의 인물은 건드리지 않는 쪽이 낫다는 것을 알만큼은 똑똑했다. 그러는 자기는 빈손이구만. 몇 백 킬로미터를 걷는 사람도 들고 다닐 만큼 훌륭한 책이라지만, 목사관에서 이 술집까지 오는 짧은 거리를 걷는 데는 성경이 별 필요가 없었나 보군. 목수는 고개를 숙이고 기도를 이어가는 목사의 가는 목덜미에 송송 돋아있는 솜털을 내려다보며 속으로 빈정거렸다.


 

우리 젊은 목사님, 기도하는 목소리는 듣기 좋은데 세상 사는 게 어떤 건지 알려면 앞으로 한참 더 마셔야 되겠어요.” 한 사람이 들고 왔다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맥주잔을 테이블에 소리도 없이 내려놓으며, 여인이 말했다. 여인은 왼손으로 허벅지 근처를 문지르고 있었는데, 사람들은 맥주를 옮기다 묻은 거품을 닦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실은 스타킹에 나 있는 작은 구멍을 가리는 중이었다. 숭숭 까지는 아니라고, 숭숭 까지는. 여인은 조용히 목수를 흘겨보았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목수는 누구보다 먼저 맥주잔을 낚아채 단숨에 들이켜는 중이었다. “길에 얹혀 사는 인생이라는 게 있는 거라, 길 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역시 길 위에서 하루를 끝내는 사람들이 제일 욕심내는 게 뭔지 알아요? 그건 바로, 고향이에요, 고향. 그리고 추억이지. 걷고 또 걷는 동안 닳아 없어지는 게 신발 밑창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소리라구요.” 여인은 허벅지에서 뗀 왼손으로 머리를 쓸어올리면서 테이블에 앉은 이들을 낮은 눈빛으로 훑었다. “신발 안에 자꾸 모래나 돌멩이가 들어온다거나, 재수 없을 땐 피를 보고 나서야 신발 바닥에 구멍이 났다는 걸 알게 되는 거잖아, 인간이란 게. 마찬가지예요. 어느 날 문득, 아무리 고쳐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거지. 태어나 처음 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곰 인형이었는지 토끼 인형이었는지, 글도 다 못 뗀 코흘리개 시절 혼자 좋아하느라 밤잠을 설쳤던 그 철자법 선생님의 이름이 뭐였는지. 어느 여름날이었어요. 개울에서 헤엄치고 놀다가 바닥에서 뭘 주워들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살아있는 메기 새끼였어요. 난 그때 내 손에 들어있는 길고 미끈한 그 물건이 너무 징그러워서 얼른 내던져버리고는 엉엉 울었거든요. 그때 사촌 오빠가 제일 먼저 다가와서 세상 모르고 우는 나를 물 밖으로 끌어내 주고 있었는데, 멀리서 뒤늦게 그 모습을 본 우리 아버지가 달려오더니 다짜고짜 오빠의 뺨을 후려치는 거야. 그게 무슨 상황인지 알 턱이 없는 나는 계속 울기만 했고, 아빠는 나를 번쩍 들쳐 매고는 성큼성큼 물 밖으로 걸어 나가는데, 오빠는 너무 놀란 얼굴로 울지도 못한 채 개울 속에 멍하니 서서 뺨을 만지고 있더라구요. 이 모든 그림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도, 그때 그 여름날 내가 몇 살이었는지는 아무리 생각을 해도 모르겠단 말이죠.” 맥주잔 세 개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여인은 물어보지도 않고 손가락을 튕겨 주인의 시선을 끌더니 손가락 세 개를 세웠다. 바 너머에서 주인이 새 맥주잔을 꺼내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실내는 조용한 가운데 사람들은 여인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잃어버린 기억이 얼마나 많을 거야. 그걸 서서히 잃어버리는 건, 그러니까 우물에 빠뜨린 설탕 주머니를 내려다보는 기분이랑 비슷한 거죠. 돌이킬 수도 없는 거고. , 내가 없어지고 있어, 아아 내가 사르르 녹아 사라지고 있어.” 여인은 연극 대사라도 읊듯 텅 빈 눈동자로 공중을 응시하며 말했다. 주인이 새로 채운 맥주 세 잔을 내려놓고 빈 잔을 거둬갔다. “믿을지는 모르겠지만 술집에서 맥주를 나르는 여자도 심심할 때는 책을 읽기도 하죠. 그게 성경도 아니고, 우리 산도적 같이 생긴 목수 씨가 읽었다는 천 페이지짜리 그런 두꺼운 책도 아니고, 그냥 한낱 이야기책에 불과하지만요. 그 이야기책에는요, 오직 사랑하는 남자의 옆에 가고 싶어서 세상에서 가장 고운 목소리를 포기하는 공주가 하나 나와요. 상상할 수 있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고운 목소리라구요.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세상 어느 남자든지 그녀에게 빠져들 수밖에 없는 그런 고운 목소리요. 그런데 그녀는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 있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그 목소리를 포기하는 거예요. 놀랍죠? 그런데 더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바로 내가, 이 작고 초라한 마을에서, 밑바닥 판자가 다 꺼져가는 낡은 술집에서 술이나 나르는 하찮은 여자인 내가, 그 공주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글쎄, 내가 눈물이 다 나더라니까요? 여기 누구, 내가 우는 걸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 있다면, 당신들이 오늘 마신 맥주는 내가 다 사죠.” 그러나 그럴 일은 결코 없었다. “난 공주도 아니고, 이제껏 몇 놈을 만나왔지만 나한테 들러붙은 것들은 죄다 쓰레기였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소리가 다 뭐야, 지금 나를 계속 짜증나게 하는 이 구멍 난 스타킹하고도 바꿀 가치가 없는 그저 그런 놈들뿐이었다구요. 그런 내가, 어떻게 겪기는커녕 냄새도 못 맡아본 그 공주의 경험에 공감을 할 수 있었을까?” 여인이 다시 손가락 네 개를 들어올렸다. 목수는 이번에도 새 잔을 받을 모양이었다. “어쩌면 이게 내가 잃어버린 추억과 관련이 있을지도 몰라, 난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공주가 아니었던 건 확실하지만, 나라고 사랑을 하거나 사랑을 받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건 아닐 거잖아요. 단지 내가 잊은 거야, 기억이 안 나는 거야, 크리스마스 선물이나 선생님의 이름 같은 거야, 울지 않는 오빠를 울면서 바라보던 꼬맹이의 나이 같은 거야, 그렇게 생각했죠. 그러고 나니까 말이에요, 이 개떡 같은 인생도 조금은 봐줄만해지는 것 같았어요. 언제까지 이 허름한 술집에서 찌든내 나는 맥주나 나를지도 알 수 없고, 당장 이번 주말에 새 스타킹을 살 급료를 받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지만요, 그래도 세상에서 가장 귀한 공주의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다음 주까지 꾹 참고 살아도 되지 않겠냐구요.” 여인은 누구라도 대답해 보라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다들 어쩐지 먹먹한 표정으로 먼 데를 응시하거나 자기 발끝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지어 아무도 눈치 채진 못했지만 목수는 입술을 닦는 척 슬쩍 눈가를 닦아내고 있었다. “저 불쌍한 나그네가 들고 다니는 것도, 분명히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가득 찬 책일 거예요. 확실해요. 이야기에 기대지 않고 대체 어떻게 자기를 지키며 끝없이 걸을 수가 있겠냐는 거예요.”


 

이거 뜻밖에 꽤 좋은 이야기를 들었구만.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지.” 백발의 깡마른 노인이 역시 백발인 턱수염에 묻은 거품을 소매로 훔치며 말했다. “하지만 다들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아마도 그건, 그냥 지도책이거나 도감 같은 걸걸?”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 이날 이때껏 살아보니 말인데, 후회되는 게 참 많아. 아직 젊은 우리 마누라 손 놓고 그냥 그렇게 보낸 거, 그러다보니 하나뿐인 자식 놈을 응석받이로 키우게 된 거, 그 응석받이 응석에 못 이겨 결국 새 마누라를 맞이할 수 있었던 유일한 기회를 놓쳐 버린 거...... 심지어 냉장고에 하나 남은 달걀을 어제 부쳐 먹지 않은 것도! 오늘 아침에 깨 봤더니 아슬아슬하게 상했더라고.” 오랜 세월을 살아온 인간이 만드는 안타까운 표정은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만큼 진지하기 일쑤라, 마을 사람들은-특히 목사는-노인이 타조알이나 심지어 공룡 알을 먹지도 못하고 내버렸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동정어린 표정들일랑 넣어 두게. 아직 가장 후회되는 것은 꺼내지도 않았으니.” 노인은 잠깐 혀를 찼고, 말을 이었다. “내 이날 이때껏 살아보니 말인데, 무엇보다 후회되는 건 말일세, 바로 일찌감치 책을 읽지 않은 것일세.” 노인은 지금이야말로 심각한 표정을 지을 때라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할 뿐이었다. 노인은 세상에서 가장 한심한 사람과 그 옆에 서 있는 두 번째로 한심한 사람을 쳐다보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크게 젓더니,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 이날 이때껏 살아보니 말인데, 세상의 모든 문제는 언제나 그에 걸맞은 해답을 준비해놓고 있더란 말이지. 단지 그 해답이라는 놈을, 문제를 맞닥뜨린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모를 수도 있다는 것이 문제야. 내 이날 이때껏 살아보니 말인데, 제아무리 운이 좋은 인간이라도 태어날 때부터 모든 답을 입에 물고 날 수는 없더라 이거지. 그 답들은 우리가 얼른 발견해주기를 바라면서 세상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데 말이야, 내 이날 이때껏...... 근데 내가 이 말을 너무 많이 하고 있나? 아니지?” 두어 명이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직 이 마을에는 희망이 있군. 목사가 생각했다. “하여튼, 지나고 보니 내가 틀렸던 모든 문제의 답들이 책에 다 들어있더라고. 내 이날 이때껏 살아보니 가장 비참한 순간이 언제인 줄 알아? 그건 바로 아, 내가 이 책을 이십 년 전에만 읽었더라면 오늘 이 모양 이 꼴이 되진 않았을 것을, 하고 후회하며 읽던 책을 바닥에 내던지는 순간이야! 그것보다 더 비참한 순간이 딱 하나 있다면, 그건 똑같은 꼴의 후회를 하되 이십 년 전이 아니라 두 시간 전에 읽지 않은 스스로를 원망하게 되는 순간이지.” 흥분하여 밭은기침을 내뱉느라 이야기가 자꾸 지연되었으나, 사람들은 아무 내색도 없이 끈기 있게 기다려주었다. 목사는 점점 희망이 커져가는 것을 느끼는 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노인은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그가 들고 있는 건 그냥 장거리 여행에 필요한 각종 정보들이 들어있는 책일 확률이 높아. 그랬으니 그 사람이 이렇게 먼 길을 아무 탈 없이 계속 걸어올 수 있는 거라니까. 알겠으면 다들 책 좀 읽으란 말이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내가 이때껏 살아보니 말인데, 책과 노인은 그야말로 지혜의 보고라고.” 노인은 주의를 집중시키려는 듯 손을 들어 테이블을 두드렸지만 그 손이 너무도 가냘파서 테이블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왜 우리 집 영감이 책을 못 읽는지 알겠구만. 일단 책을 손에 들 수가 없겠는걸. 청년이 고개를 저었다. 그는 노인의 수많은 후회 가운데 하나인 응석받이 아들의 되바라진 아들이었다. “어떤 지혜의 보고에는 내가 이때껏 살아보니 말인데라는 말이 끝도 없이 적혀있나 보네요. 할아버지, 여기까지 어떻게 걸어오셨는지 모르겠지만, 또 술집에 오신 걸 아버지가 알면 잔소리를 세 시간은 쉬지 않고 들으셔야 할 거예요.” “차라리 네 어미한테 말하려무나. 그래도 똑같이 잔소리 세 시간이겠지만 최소한 네 어미는 나를 훌쩍 들쳐 업고 집까지 갈 만한 힘과 배짱은 갖췄잖니? 징징거리기만 하는 네 애비랑은 다르게.” 주점에 웃음소리가 가득 들어찼다. “엄마가 됐든 아버지가 됐든, 아마도 두 사람 중 누군가는 할아버지를 잡으러 여기로 오고 있을 거니까, 기다리는 동안 우린 그 책 이야기나 더 하는 게 좋겠군요.” 청년이 말을 이어갔다.


 

여러분들의 의견이 다 그럴듯하고 또 좋은 말씀들이었어요. 그렇지만 다들 책을 크게 과소평가하고 계신 것 같아요. 책은 그러니까 그야말로 불꽃같은 것이라구요.” 급하게 달아오르는 것은 어느 시대나 청년의 미덕이자 단점이었다. “꼬마야, 네 말대로라면 책 한 권이 다른 책들을 홀랑 다 태워 먹겠구만? 그럼 누가 책 한권만 가지고 와 봐, 나 담뱃불 좀 붙여야겠어.” 목수가 빈정거렸다. 그러나 청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럼요! 태우고 말구요. 책뿐만 아니라 사람도, 집단도, 한 나라나 심지어 온 세계도 다 태워버릴 수 있는 게 책인데요. 봐요. 어떤 인간을 다른 인간보다 못한 인간으로 취급하던 관습들이 있었어요. 그 관습들을 싹 불태우는 데 책이 몇 만 권이나 필요했을까요? 아니에요. 몇 권이면 충분했어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할 수 있었던 기생충 같은 무리들을 모조리 화형시키는 불쏘시개로 쓰려고 몇 백 권의 책을 찍어내야 했을까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꿈꾸는 좋은 세상, 모두가 배부르고 행복한 세상으로 가는 열차를 움직이기 위해 몇 권의 책을 태워야 하냐구요? 딱 한 권! 딱 한 권이에요.” 청년은 목이 말랐지만, 어쩐지 아무도 그에게 맥주를 가져다주지 않았다. “책에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어요. 사람들은 그래서 책을 읽는다구요. 저는 어쩐지 그 사람이 여행하는 혁명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무런 의지도 없이 그 먼 길을 그저 걷는다구요? 그게 더 말이 되지 않죠. 그 사람은 지금 어딘가로 가서 그곳의 뭔가를 바꾸려고 걷고 있는 게 틀림없어요. 그런 사람의 손에 들린 책이 뭐겠어요. 그게 뭐가 되었든, 얼마나 크고 위험한 책이겠어요. 나는 우리도 그 책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마을 사람들도 다 그 책을 읽어야 한다구요.” 말을 마친 청년이 주인 없는 맥주잔에 손을 뻗는데 목수가 테이블을 쾅 치더니 맥주잔을 가로채며 말했다.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가 어디서 헛바람만 잔뜩 들었군.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개소리야. 떠들 힘이 있으면 손에 연장이나 쥘 일이지.” 목수의 말을 시작으로 사람들의 분분한 의견이 주점을 온통 뒤흔들었다. 주인은 조용히 빈 술잔을 세어 보았다. 이야기가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았고, 술은 더 많이 필요할 것이었다. 책이야 어찌 되었건, 주인에게 오늘은 좋은 날이었다.


 

"다들 그렇게 궁금하면 그 여행자인지 뭔지 하는 사람을 붙잡고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출입구에 작업복 차림의 여인이 팔짱을 낀 자세로 서 있었다. "엄마가 오셨네요. 할아버지, 이제 들쳐 업힐 차례예요." 청년이 노인을 보며 말했다. 노인이 채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작업복 여인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와 팔에 낀 검정색 토시를 걷어붙였다. "입 닫고 너도 얼른 따라 나오는 게 좋을 거다. 내가 몇 번을 말해. 이런 데 들락거리려면 넌 아직 한참 더 자라야 된다고, 이 천하에 불효자식놈아." 여인이 옆에 다가서자 청년은 유독 작아보였고, 침묵을 지키고 있는 노인은 아예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어이, 얼른 데리고 나가서 젖이나 더 먹이라고. 그리고 여긴 어른들 말씀 나누시는 곳이니까 앞으론 얼씬도 하지 말라고 그래." 이미 다섯 잔이나 비운 목수의 말이 조금씩 꼬이고 있었다. "지랄하네. 뚫린 입이라고 아무 말이나 지껄이고 있군. 내일도 무사히 대패질 하고 싶으면 입은 맥주 마시는 데나 쓰는 게 좋을걸. 이놈이나 저놈이나 팔뚝이나 가슴팍에 그 징그러운 털만 달면 제가 뭐라도 되는 줄 안다니까." 목수는 딸국질을 시작했다. "여기 있는 당신들, 죄다 똑같아. 술집에 모여 앉아 맥주잔만 비우면 나라에서 남자 자격증이라도 주는 줄 아나 본데, 천만에. 당신들이 진짜배기라면 여기 모여 주접떨 시간에 그 사람 발걸음을 붙잡고 직접 물어봤겠지. 대체 뭐가 겁이 나서 이 음침한 소굴에 모여서 쑥덕공론이야? , 내 말이 틀려? 여기 오는 길에 보니까 지금 그 그넨지 나그넨지가 광장 벤치에 앉아서 신발을 말리고 있더군. 오늘은 이 마을에서 묵으려는 모양이지. , 당신네들이 진짜 남자임을 증명할 시간이 앞으로 반나절 정도 남았다는 거야. 내 말 알아듣겠어? 특히 당신, 그 솥뚜껑 같은 손을 달고 다니는 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박차고 일어나서 어디로 가야 되는지 생각해 보란 말이다, 이 양반아." 여인이 한 손에는 청년의 손목을 쥐고, 다른 한 팔로는 노인을 옆구리에 끼우듯이 들고 술집 밖으로 나갔다. 솥뚜껑 손을 한 목수가 비틀거리며 뒤를 따랐고, 그 뒤로 모든 사람들이 따라 나오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술값을 받지 못한 주인이 바 너머에서 자신도 광장으로 가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고민은 잠시였다.


 

아직 해가 다 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어둑어둑한 광장 한 귀퉁이에서, 여행자는 벤치에 등을 대고 길게 누운 채 책을 잘도 읽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책을 읽는 일에 꽤나 익숙한 모양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발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그네는 상체를 일으켜 책을 내려놓고는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앉았다. 그리곤 고개를 숙여 벤치 아래에 벗어둔 신발을 들고 모래를 털어냈다. 양쪽 신발의 뒤축이 부딪히는 소리 사이를 광장의 바닥돌을 지치는 발소리가 난폭하게 밀고 들어왔다. 나그네는 신발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 있었다. "우리는 당신에게 특별한 것을 원하지 않소." 사람들 사이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말하는지 알기가 어려웠다. "당신이 들고 왔다는 책 말이오, 그게 뭔지 알고 싶을 뿐이오. , 그리고 우리 마을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다른 목소리였다. 역시 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기는 어려웠다. "당신이 읽는 그 책의 제목을 우리에게 알려준다면, 오늘 밤 우리 중 하나가 당신에게 지붕과 바람 막을 벽, 따뜻한 찌개가 있는 저녁을 제공할 의사가 있어요." 비교적 다정한 목소리였지만 나그네에게 그건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나그네는 눈을 가늘게 뜨고 눈앞에 서 있는 거대한 한 덩어리 목소리들의 윤곽을 짚어보려 했으나 그사이 하늘은 많이 어두워져 있었다. 광장의 가로등을 켜는 이가 자기 일을 잊은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것도 나그네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나그네가 입을 열었다. "저는 세 권의 책을 가지고 다닙니다. 당신들은 어떤 책을 말하는 건가요?" "오늘 우리 마을에 들어설 때 당신이 들고 있었던 그 책의 이름을 원하오." "다른 두 권의 책은 관심이 없으신가요?" "그건 알려주어도 나쁠 건 없지만 우리가 알고 싶은 바로 그 책만큼은 반드시 알아야겠소." 가로등에 불이 들어왔다. 나그네는 고개를 들어 사람들을 보았다. 비로소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구분할 수 있었지만, 나그네에게 그들의 얼굴은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나그네는 다시 고개를 숙여 광장의 바닥돌을 적시고 있는 사람들의 그림자를 보았다. 그것은 하나의 검은 덩어리였다.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검은 덩어리였다. "당신들도 책을 읽으시나요?" "그렇소. 즐기진 않소만." 나그네가 벤치 위에 내려놓았던 책을 손에 들었다. "댁에도 책을 가지고들 계신가요?" ". 아쉽게도 큰 책장 하나를 가득 채울 만큼 가진 사람은 없지만요." 나그네가 다른 손으로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냈다. "오늘도 책을 읽으셨나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제는 어땠나요?" 그저 웅성거리는 소리만 들렸다. "이번 주 중에 책을 한 권이라도 읽은 분이 계신가요?" 질문하는 나그네의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그런 게 무슨 상관이에요. 우리가 원하는 건 그저 당신이 들고 다니는 그 책의 이름이라구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달칵, 라이터 뚜껑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그 말이 끝났을 때, 나그네의 손에 든 책에 불이 붙었다. 가로등 불빛은 비교도 안될 만큼 밝은 빛이 불타는 책에서 뿜어져 나왔다. 광장이 순간 환해졌다. 나그네는 어어, 하는 소리를 들었다. 누군가는 손을 뻗는 듯도 했지만 꼭 닿으라고 뻗은 것 같지는 않았다. 책은 금세 재가 되었고, 재는 나그네가 벗어놓은 신발 위로 한들거리며 떨어졌다. 나그네는 신발에 발을 집어넣고 일어섰다. "제겐 지붕도 바람 막을 벽도, 따뜻한 저녁 식사도 별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방금 제가 불태운 책의 이름이 당신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처럼요." 나그네는 사람들을 헤집으며 걸어 나갔다. "그 책은, 애초에 별다를 것 없는 책이었어요. 흔한 책이었지요. 어쩌면 당신들 중 몇몇의 책장에도 그 책은 이미 꽂혀 있을지도 모르죠." 나그네는 변경으로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바로 그 속도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광장을 가로질러 마을 밖으로 길을 잡았다. 나그네의 그림자가 광장 끄트머리를 스치고 사라졌을 무렵, 사람들은 하나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누구도 말을 하지 않았다. 말이 별다른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도 오랫동안, 사람들은 나그네가 불태운 그 책이 무엇인지를 궁금해 했다. 단지 그 궁금함을 입 밖으로 꺼내는 일이 없었을 뿐. 약속이라도 한 듯 그들은 다시는 나그네도, 그 책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혼자 있는 시간이면 자신의 책장에 꽂힌 책을 하나씩 꺼내어 먼지를 털고, 책등을 어루만져 보기도 하고, 그러다 때로는 그 자리에서 몇 페이지씩 읽기도 했다. 처음에는 마치 그런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침묵하는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들도 몇 있었으나, 차츰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그저, 다른 사람들이 나그네가 불태운 그 책과 같은 책을 자기들 책장에서 찾아냈기 때문에 입을 다무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가끔 주점에서 마주치면, 답을 알아낸 사람들의 얼굴에는 뭔가 다른 빛이 도는 듯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더 지나자, 그 빛은 모든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 드리우는 모두의 빛이 되었다. 각자의 것이 다 다른 듯 또한 닮아있는 그 빛이, 이제는 그들에게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몇몇 사람들을 추궁해 마침내 답을 얻어낸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그리고 그 답이 무엇인지, 나그네가 불태운 책의 제목이 무엇인지를 당신들에게 알려주려는 의도로 나는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쓰고 보니, 이제 그 답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는 언제나 정답보다 의미 있는 오답들이 있는 법이다. 그럼에도 굳이 정답을 알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도 같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동물이니까. 그래서 이제 당신에게 말하겠다.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 등 뒤에 있는(혹은 옆이나, 다른 방일수도 있겠다) 당신의 책장에 서서 눈을 감아 보라. 그리고 손가락으로 책을 짚어 보라. 첫 번째 짚은 책은 그냥 넘길 것이다. 두 번째 짚은 책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세 번째로 짚은 바로 그 책을 그대로 뽑아 들라. 그리고 다시 책상에 앉아 그 책을 펼치라. 지금 당신의 눈앞에 첫 번째 문장을 열어놓는 그 책이, 나그네가 광장에서 불태운 바로 그 책이다.


 

그리고 당신이 내가 말해준 정답을 믿건 말건, 그건 내겐 별다른 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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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01-28 1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좋은 글 공짜로 읽어도 되나 모르겠네요. 숨도 못 쉬고 읽었다구요. 기왕이면 종이에 인쇄해서 예쁜 책 표지까지 달아서 두고두고 책장에 꽂았다 뽑았다 하며 읽고 싶네요. (거기에 자괴감까지 드네요...내 글은 미세먼지 수준이야 공해야....이 글은 청정 고원의 태초의 공기야...너무 좋아서 고산병 걸리겠어 엉엉)

syo 2019-01-28 10:42   좋아요 1 | URL
아니, 이거 왜 이러세요.

열반인님이 이러시면 제가 좋아할 줄 아셨어요? 아셨군요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19-01-28 1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죠?? 이거 책에서 발췌하신 거 아니죠? 단편소설 하나 읽은 것 같네요. 오~~ 넘 좋아요!!

syo 2019-01-28 10:43   좋아요 0 | URL
리뷰라고 올려 놨는데 정작 책에서 한 줄도 발췌하지 않았네요.
저도 가끔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요.....

다락방 2019-01-28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 리뷰 쓰지 말아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것보다 더 재미있게 쓸 자신이 없다고 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아직 안읽었지만.

syo 2019-01-28 11:51   좋아요 0 | URL
아무튼 일단 읽어봐요. 그럼 생각이 또 바뀔 수도 있거든요!! ㅎㅎㅎㅎ

나무처럼 2019-01-28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정말 좋았어요.

syo 2019-01-28 15:22   좋아요 0 | URL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칭찬 말씀두요^-^

무식쟁이 2019-01-28 14: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잊고 있던 내 안의 파란 돌, 개미 눈꼽 만 한 파란 돌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그랬어요.

syo 2019-01-28 15:23   좋아요 0 | URL
궁금하다 그 파란 돌.....
어떤 돌인지 페이퍼로 한 번 써주세요 ㅎ

책읽는나무 2019-01-28 16: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극 한 편 본 듯한~~^^
고도를 기다리는 듯한 기분으로 책 제목을 알고 싶어하는 인물들???
재치있는 재능을 겸비한 자!!
역시 놓치기 아까운 사람이어라~~^^

syo 2019-01-28 18:0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별말씀을요. 엉망진창이에요. 다시 볼 때마다 손댈 데가 자꾸 튀어나와서 곤란한 상황입니다^-^

카알벨루치 2019-01-28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길어 나중에 다시 읽어야겠다 발췌를 안했다고 오오~축구하고와서 넘 피곤해서 나중에 다시 읽고 댓글 달아야겠소

syo 2019-01-28 18:0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그냥 스킵하세요. 피로에 양보하세요ㅎㅎ

cyrus 2019-01-28 17: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나 에세이를 써볼 생각은 없어요? ^^

syo 2019-01-28 18:10   좋아요 0 | URL
없어요.
겨우 이런 거 쓰는 것도 벅찹니다 ㅎ

stella.K 2019-01-28 18:1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내 말이. 그런데 이 양반은 너무 욕심이 없어.
그나저나 너는 출판사 낼 생각없니?
좀 어떻게 해 봐야되지 않을까?ㅎ

syo 2019-01-28 18:22   좋아요 1 | URL
사이러스님이 출판사를 열어서 스텔라님 책을 내시는 구도로군요.
윈윈이로다.....

stella.K 2019-01-28 18:2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말이나 못하면...흥!
 
보통의 식탁 - 조동범 산문집
조동범 지음 / 알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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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여느 때처럼 정리하고 돌아와 당신은 저녁 식탁을 차린다. 어제 꺼냈다가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 놓은 반찬은 그대로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저께 부친 계란말이의 냄새를 한 번 맡아보는 당신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힌다. 계란말이는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그 빈자리는 지난 주말 당신의 어머니가 볶아 보낸 멸치 반찬으로 메운다. 밥은 새로 지었다.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며 당신은 오늘을 생각하고 어제를 생각하고 이내 내일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닮아 있었다. 어제를 오늘에 붙여 넣는 삶이 그저 깜깜하게만 느껴졌던 시기가 당신에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 당신은 가끔 생각한다. 오늘 같은 내일이 기다린다는 사실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고, 그렇게 느끼는 것을 보면 나도 행복이라는 정체 모를 존재의 그림자쯤은 밟고 선 것이 아닐까 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산다는 것은 가령,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람은 식탁을 차린다는 그 거대한 일상성에, 어제의 계란말이가 오늘의 멸치볶음으로 바뀌는 정도의 소소한 변화가 버무려져 만들어지는 한 끼 식사 같은 것은 아닐까 하고.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삶의 진실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거나 홀로 식탁에 앉아 텅 빈 벽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짜 모습이다우리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깨달음은 바로 그런 순간 느끼는 사소한 것들로부터 비롯된다삶이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를 만든다. _ 189 

 

그래서 당신은 늘 타인의 식탁이 궁금하다. 당신의 오늘이 당신의 내일과 닮았듯이, 당신의 오늘이 타인의 오늘과 닮았는지를 당신은 늘 알고 싶다. 이 저녁 식탁에 면한 거대한 벽을 넘어가면 건너편 가정에도 누군가의 식탁이 있을 것이다. 그 위에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미소를 생각하며 끓여낸 미역국이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슬픈 마음을 위로하려 사 들고 온 치킨이나 족발 같은 것들이 놓여 있을 수 있다. 당신의 입에 젓가락이 물려 있는 지금 이 순간 벽 너머의 누군가는 숟가락을 물고 있을 것을 생각하는 당신은 타인의 식탁이 몹시 궁금하다. 그 식탁을 둘러싼 사연을, 식탁 위에 올라와 반찬과 함께 체내 흡수되는 말들과, 차마 말해지지 못하고 냉장 보관되어 다음 식탁까지 유예되고 마는 말들을 당신은 알고 싶다. 식탁을 차린 이의 마음과 식탁을 받는 이의 마음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되어 만났는지 당신은 알아야겠다. 설령 그 식탁에 앉은 이가 단 한사람뿐일지라도, 꼭 지금의 당신처럼.

 

당신의 식사 시간은 길어야 십오 분을 넘기지 않았다숟가락을 들고 묵묵히 음식을 먹는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서관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은 언제나 고요하고 쓸쓸하다어느 밤창밖으로 비가 왔는지 눈이 내렸는지 당신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여전히 혼자 밥을 먹을 것이다당신 앞에 놓인 빈 그릇이 서늘하게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당신의 저녁이 쓸쓸하게 저문다그때 창밖으로 비가 왔는지아니면 눈이 내렸는지 당신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_ 28-29

 

이웃의 문을 두드려 당신의 식탁은 어떻습니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라서 당신은 결심한다. 타인의 식탁을 당신의 손으로 만들어보기로. 당신의 손은 밥보다 글을 잘 짓는 손이라서 당신은 결정한다. 식재료 대신 단어를 손질해보기로. 당신은 깨끗이 치운 식탁 위에 하얀 종이 한 장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식탁의 주인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혼자다. 4인용 식탁을 혼자 쓰는 남자를 만든다. 그는 오래전 헤어진 애인을 잊었는지 잊지 못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다. 당신은 지난여름, 노르웨이 여행에서 계획 없이 들렀던 현지 식당에서 받았던 감동을 떠올린다. 여행지의 현지 식당을 들르는 데서 여행의 의미를 찾는 익명의 여행자를 만든다. 그는 할 말이 많다. 당신이 그 식당에 들어갔을 때,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장면을 보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신은 고국을 기억하는 일이 힘인지 짐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고단한 이주노동자를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한다. 일찍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 어쩐지 씁쓸했던 서른 살의 생일 케이크, 한국에도 실제로 있을 거라 믿고 찾아다녔던 일본 드라마 속의 심야식당, 선임병의 괴롭힘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어느 군인에 대한 뉴스 같은 것들을 계속 생각한다. 생각의 꼬리를 무는 생각을 따라 백지 위로 볼펜을 휘갈겼고, 마침내 40번째 이름을 적으며 당신은 펜을 내려놓는다. 밤이 깊었다. 그러나 당신의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당신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지만 다음을 위해 아쉬움을 담아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차창 밖으로 평화롭고 고요한 휴일 밤이 펼쳐진다나는 문득 내일쯤 세차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세탁소에 들러 맡겨놓은 세탁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어느덧 밤은 완벽하게 어둠을 풀어놓고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노인 지구본을 돌리며 리투아니아아이슬란드비엔나아른험 등의 낯선 이름을 불러본다그러나 그곳들은 너무 멀리 있다닿을 수 없는 세계처럼 낯설게그러나 그 어떤 그리움처럼 있구나아주 먼 그곳에. _ 45

 

당신은 종이 위 40개의 자아를 내려다보며 그 안에 당신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생각한다. 40명의 주인공들은 당신의 조각인가? 그렇다. 40개의 조각을 모두 합치면 온전한 당신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은 이 40개의 자아를 모두 사랑하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온전한 당신도 아니고 온전한 사랑도 아니라면 당신이 만든 40개 자아의 현실감이나 생동감은 그만큼 부족한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당신이 낳은 인물들이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확신하는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당신의 전략은 무엇인가?

 

나는 문득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당신들의 어깨라는 것을 깨닫는다당신들의 어깨는 움츠린 듯 힘없이 나를 등지고 있다당신들의 어깨는 고단한 이민자의 삶을 이야기하면 흐느끼고 있는 것 같다저물녘 해변과 퇴근길의 적막함을고요하게 잠든 아이들을돌아갈 수 없는 그 어떤 날들을 말하려는 것만 같다당신들의 어깨는 다른 듯 삶았다이제 곧 당신들의 어깨는 식당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겠지현관문을 열고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는 당신들은 이제 마지막 술잔을 끝으로 오늘 밤을 마무리하려 한다술자리의 왁자함이 잦아들고 적막함이 밀려든다당신들은 저편의 테이블에서나는 이편의 테이블에서... 그렇게 오늘 밤이 침몰하기 시작한다. _ 55

 

당신은 당신이 만든 40개의 자아를 당신이라고 혹은 라고 부르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읽는 이의 마음을 직접 두드려 여는 좋은 전술이라고 당신은 믿는다. 일리가 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이라 호명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당신이라 호명됨으로써 당신이 건넨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한다. 당신이 40개의 자아를 만들어 낸 것 역시 신통한 작전이다. 우리가 당신의 호명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을 40배로 늘림으로써 당신은 우리에게 40배 촘촘한 그물을 던진 셈이다. 이 중 최소한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생각을 당신은 하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합리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겉보기엔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삶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40개의 올가미만 던지면 그 안에 우리 모두를 잡아넣을 수 있을 만큼 톤다운 된 삶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리고 당신은 어쩌면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당신의 삶이고, 당신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라는 뻔하고 뻔뻔하지만 울 뻔한 말을.

 

보름과 그믐을 반복하며 시간이 지나간다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십 대가 지나가고 서른이 펼쳐진다그러나 이십 대의 마지막 날인 어제와 서른의 시작인 오늘은 아무 차이도 없는 어제와 오늘일 뿐이라고 당신은 생각한다오늘 밤이 지나가면 당신은 이십 대 때보다 조금 더 멀리 나아가겠지탁자 위에 놓인 생일 케이크가 물끄러미 엄마와 당신을 바라본다텔레비전 불빛에 드러난 엄마의 얼굴이 왠지 더 친숙하다당신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한 엄마의 얼굴이 텔레비전의 희미한 불빛을 따라 서글프게 일렁인다오늘은 당신의 서른 번째 생일이다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상현인지 하현인지 알 수 없는 오늘 밤 달빛이 서른이 된 당신과 삼십 년 전 엄마의 얼굴을 희미하게 내려다본다. _ 83

 

당신이 만든 40개의 자아를 내가 끝까지 40명의 주인공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사과할 일인지 아닌지를 나는 계속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쓴 40개의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님을 실망 없이 실감한다. 우리로확장시키는 것은 당연히 섣부른 이야기겠으나, 그래도 무리하여 말해 본다면, 우리는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다. 단지 주인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도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니다. 단지 우리 식탁의 주인일 뿐이다. 우리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인생이나 행복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그 위로 달려가기 위해 깔아놓은 철길이 아니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일은 투여하는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항상 던져주지는 않는다. 행복은 때론 행복할 자격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품에 안기거나, 더 행복할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 쓸데없이 한 스푼 더해지느라 올바른 자리로 찾아드는데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행복의 도움 없이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차리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식탁을 차린다. 가끔 마지막 달걀로 만든 달걀찜을 홀랑 태워먹기도 하고, 김치와 물김치와 김치찌개를 한 상에 올려야만 하는 희한한 날도 있으며, 또 아주 가끔은 무슨 조홧속인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갈비를 뜯었는데도 냉장고에는 여전히 양념갈비가 잔뜩 절여져 있는 복된 날이 오기도 한다. 우리는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각을 한다. 이 식탁을 차리기 위해 통과해왔던 사건과 감정의 고리들이 반찬으로 차려져 있고, 우리는 그걸 집어 오늘을 배불리고 내일을 준비한다. 어디를 어떻게 무엇이 되어 지나왔든, 일단 식탁이 차려지면 우리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는 그 식탁의 주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식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식탁 앞에서 행복을 생각하는 일이 식탁을 서운하게 하지 않도록, 식탁 앞에서만큼은 행복을 식탁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불러도 좋겠다.


여기식탁이 있다수많은 식탁 위에는 분주했던 월요일 저녁이 웅성거리기도 하고주말 오후에 한가롭게 내리쬐는 햇살이 서성이기도 한다식탁 앞에서 당신들은 사랑이나 슬픔 혹은 고단한 저녁에 깃든 쓸쓸함과 마주하며 지나온 날들을 추억하기도 한다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다그것이 설령 슬프고 서러운 기억일지라도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비극만을 풀어놓는 법이 없다슬픔조차 추억이 되게 하는 시간그것이 바로 식탁이 주는 힘과 감동이다. _ 10

 

당신이 만든 이야기로 저녁상을 차렸다. 새벽까지 먹었다. 나쁘지 않은 식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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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1-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읽고나니까 오늘 저녁 밥상에는 계란말이와 멸치볶음을 같이 올려놓고 싶어졌어요.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저녁 밥상을 차려 혼자여도 맛있게 먹고 싶어졌어요. ^^
늘 그렇듯 밥상 맞은편 티비에서 나를 마주한 고로 아저씨와 각자의 식사를 즐기면서요.~

syo 2019-01-11 16:10   좋아요 1 | URL
우리 모두의 밥 친구지만 누구의 밥 친구도 아닌 고로 아저씨.....

설해목님의 오늘 저녁 행복한 식탁을 기원할게요 ㅎㅎㅎ

2019-01-11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1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9-01-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syo님, 올해 목표하신다던 ‘한 권을 깊게 읽기‘를 실천하신 겁니까? 축하드립니다^^

syo 2019-01-11 17:0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닙니다. 깊게 읽지 않고 평소처럼 읽었어요^-^ 그냥 리뷰를 하나 써 본 것 뿐이지요.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 님의 인기는 굉장히 두루뭉실하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라는 마인드‘죠.
이 마인드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조금 비열하기는 하죠. 이런 식으로 표를 모으는 게 정치인이듯이
쇼 님도 그런 것을 향한다는 게 조금 불편하긴 합니다.
그냥 좆같은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하세요...
너무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이 글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평소 느낀 생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08   좋아요 0 | URL
아마. 이 댓글에 대해서도 쇼 님은 굉장히 달콤한 덧글을 작성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 댓글 읽고 당황하셨죠 ? ㅎㅎㅎㅎ 알리딘의 재롱둥이가 되지는 마세요.

syo 2019-01-11 17:18   좋아요 6 | URL
어제도 다른 데서 비슷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나쁜 말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인데 후지다고 해서 놀랐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오프라인에서는 호불호가 되게 쎈 인간이면서, 온라인 공간에서는 말씀하신대로 두루뭉수리하게 지나가는 일이 잦은 것 같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까지는 아니고 ‘분란 만들면 귀찮잖아‘ 정돈데 사실 그 두개는 별로 큰 차이가 없긴 하지요.

그게 비열한 마인드라는 말씀에 공감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래서 고민도 많이 합니다. 말로는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해놓고 막상 행동은 흐지부지하게 하니까요. 곰발님이 그렇게 읽으셨다면 제대로 읽으신 거고, 제대로 읽으신 거라면 관심있게 읽어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대응하는 것도 불편하시겠지만, 좆같은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곰발님 말씀이 좆같지 않아서 욕하지 않는 거니까 이해하세요 ㅎㅎ

소심하게 태어났고 소심하게 자라나서 미움받는 일을 굉장히 겁냅니다. 인기까지는 욕심내지는 않지만 미움받는 일에는 상처를 크게 입을만큼 멘탈이 두부라서,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게 본심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좋은 것에 칭찬하고 싫은 것에 욕을 날리는 곰발님이 항상 부럽고 멋있습니다.

좆같은 것에 대해 욕하는 제게 맞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 볼게요. 저한테 그게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34   좋아요 1 | URL
언제부터인가 쇼 님은 알리딘의 재롱둥이가 되었어요.
의성어와 의태어 남발하면서 누님들 사랑 받는 것에 굉장한 희열을 느끼는 듯합니다만...
아니, 왜 그러세요 ? 저는 그냥 쇼 님이 좋아요 클릭 얻기 위해 희노애락 중에 희‘를 남발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게 굉장히 추합니다... 물론 인기쟁이 쇼 님을 공격해서 가뜩이나 알라딘 밉상인 제가 받을 타격이 더 심하긴 하겠지만... ㅎㅎㅎㅎ 뭐. 초심을 찾으세요.. 내 지적질이 존나 역겹겠지만...

syo 2019-01-11 17:55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완전히 틀린 말씀 아니시구요.
평소 느낀 생각이시라니 많이 참다 참다 꺼내신 말씀일텐데요.

저는 곰발님 많이 좋아합니다. 제가 미움받기 싫은 대상에는 당연히 곰발님도 포함되어 있구요.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서 하신 말씀이 각별히 의미가 있습니다. 표현하신 것처럼 보였다면, 추하다는 표현도 별로 부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구요.

해주신 말씀이 ‘공격‘이라 할 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곰발님께 무슨 타격이 있겠어요. 그럴 만한 일도 아니고요. 그리고 그런 거 1도 신경 안 쓰시잖아요. 하셔야 될 말씀이라 생각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하시는 거 다 압니다ㅎㅎㅎ. 일러 주신 대로 초심 생각 많이 하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1-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포일러를 되게 싫어해서 발췌 부분은 안 읽고 리뷰어의 코멘트만 봐요. (그러면서 저는 정작 따옴표로 스포일러 남발ㅋㅋ내로남불) 결국 안 볼 책들도 그래요. 이 리뷰도 늘 그러듯 syo님 목소리만 골라 읽고 난 소감은...짝짝짝 내 맘대로 이 달의 우수 리뷰로 선정하였습니다. 누구는 그 많은 책을 집어 먹고 나서 집요하게 파고 드는, 그러면서도 깨끗하고 정리된 문장들을 쏟아 놓는구나 했어요(syo님 얘깁니다). 반면에 그만큼 집어 먹고도 그저 그런 식상한 말들을 풀어 놓거나 (저처럼) 개똥 같이 마구 갈겨 놓았네 하는 글도 많이 보네요. 지적하고 비판하고 친밀한 척 걱정하는 척 하는 것은 쉽지만 그런 것들 안 하면서 남에게 리액션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책깨나 읽었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더 한 것 같습니다. 그 어려운 걸 하고 계시니 저는 그저 리스펙트...하면서 세상의 균형을 위해 계속 (개똥같이) 이 모냥으로 살겠습니다. (말은 이래 놓고 감화되어서 점점 착하게 읽고 쓰려고 애쓰는 중인 듯...)

syo 2019-01-11 21:0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칭찬해 주신 만큼의 대단한 글도 아니고, 역시 칭찬해 주신 만큼의 대단한 인간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읽던 대로 읽고 쓰던 대로 쓴다고는 하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방향으로 자기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열반인님의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는 사실로 이 글은 크게 만족합니다. 제게도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썩 흡족한 글이었거든요. 짧은 이야기들을 40개 모은 책이고, 제가 옮겨 적은 문장이 크게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제가 적은 것보다는 훌륭한 글들이 실려 있는 책이니, 일독하실 만한지 발췌 부분을 통해 한 번 확인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열반인님이 제가 쓰는 것들을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성의있게 댓글을 달아주시는 것을 압니다. 항상 힘이 납니다. ㅎㅎㅎㅎ 저도 열반인님께 그런 서재친구가 되면 좋겠어요. 감화 같은 건 넣어두시구요. 지금 열반인님의 글이 얼마나 맛깔나게요 ^-^

북다이제스터 2019-01-1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제겐 이렇게 솔직한 글 쓰기가 참 어렵더라구요. ^^ 부럽고 항상 응원합니다. ^^ 화이팅^^

syo 2019-01-11 21:04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북다님의 글이야말로 항상 제겐 부러운 글입니다. 잘 읽고는 댓글도 하나 없이 훌쩍 가버려서 항상 죄송스럽습니다. 이렇게 저한텐 응원 말씀도 해주시는데 ㅎㅎㅎ

원더북 2019-01-1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자주 안 달지만 오늘은 꼭 보태고 싶네요. syo님의 글은 쎈 척 안 해서 좋습니다. syo님만의 방식이 있는걸요^^

syo 2019-01-11 23:12   좋아요 1 | URL
syo의 글이 이렇다 말씀해 주실 수 있을만큼 읽어주신 것 자체가 저는 감사합니다. 그게 힘이 됩니다^-^

원더북 2019-01-11 23:34   좋아요 1 | URL
syo님과 다른 몇몇 이웃님들의 좋은 글들 읽으며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읽기만 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저도 뭔가 읽을 만한 글로 보답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자주 글을 못 써서요^^; (아~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비루한 인생;;;) 저도 syo님 글 읽으면서 힘내고 있습니다. 제가 감사해요^^

카알벨루치 2019-01-1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자요 Syo님! 이불 걷어차지 말고, 바지 벗지 말고 굿밤!^^

syo 2019-01-12 00:13   좋아요 0 | URL
어제도 벗었더라구요... 벗어서 던지진 않고 발목에 걸치고 있던데ㅎㅎㅎㅎ

카알님도 좋은 꿈 꾸세요^-^

카알벨루치 2019-01-12 00:33   좋아요 0 | URL
난 쇼님의 이전모습 보다 지금 모습이 더 익숙해서 그런데...다양한 얼굴을 가진 분이시구만요 포커페이스의 달인 이시네! ㅋㅋ

syo 2019-01-12 00: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전 모습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모습만 있는 건데, 단지 이전부터 되고 싶어했던 모습이랑 지금 모습이랑 사이의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죠 뭐ㅎㅎㅎ

아직 여러모로 미흡합니다, 제가요ㅠ

2019-01-12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3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3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참한 날엔 스피노자 필로테라피 1
발타자르 토마스 지음, 이지영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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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십 년도 더 전의 일이다.

 

여덟 살 터울의 동생은 반은 오빠고 반은 아빠인, ‘와빠같은 오빠 때문에 제 방을 가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다. 가난을 탓할 수도 있겠으나, 작은방은 syo겐 늘 내 방이었고, 그 안에 자기 책상도 놓여있지만 동생에겐 늘 오빠 방이었다. 제 오빠가 대학을 다니러 서울로 올라갔을 때, 동생은 얼마나 좋았을까. 공식적으로 방의 점유권을 양도하는 절차는 없었지만, ‘실효적 점유를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실효적 점유는 굉장히 실용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으니, 방학을 맞아 돌아왔더니 이미 우리 집엔 내 방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이제 그건 누가 봐도 동생의 방이었다. 여전히 내 방이겠거니 하고 방문을 벌컥 열었는데, 방을 둘러친 포스터 속, 도합 서른두 개의 눈동자가 거란족 오랑캐를 바라보는 고려군마냥 기세가 등등하여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인데, 당혹스러운 마음에 , 저것들 다 뭐야.” 소리를 질렀더니 덤벼들 듯 대답하는 동생. “여봐요, 저것들이라니. 우리 동방신기 오빠들한테!” ..... 니 오빠는 동방신기가 아니라 syo잖아.....

 

syo는 동방신기의 다섯 멤버를 정확히 구분하고 동생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포스터 속 인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0.5초 안으로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 앉지도 못하고 서서 치열하게 교육을 받아야 했다. 그네들의 이름은, 보수의 심장이라는 도시에서 남중 남고 생활을 포함, 가부장가부장 스무 해를 살아온 남자가 입에 올리기에는 뭔가 낯부끄러운 구성이라서 교육시간은 자꾸만 길어졌다. “봐봐, 이 분은 누구셔.” “준수....” “무슨 준수셔.” “.....시아준수.” “그럼 저기 저 분은 누구시라고?” “.....키 유천” “?” “.....미키.....” “, 진짜! 미키 아니라 믹키라고, 아직도 모르겠어? 오빤 왜 이렇게 배우는 게 느려?” ..... 그러니까 이건 모르고 느린 게 아니잖아.....

 

어느 날인가는 물었다. “, 너는 나랑 동방신기랑 물에 빠지면 누굴 먼저 건질 건데?” 동생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내가 무슨 수로 건져. 내가 죽는다.” 역시 syo의 동생. “그럼, 나랑 동방신기랑 물에 빠졌어. 그래서 니가 기도를 한 거야. 하느님이 바다를 갈라준다네? 그럼, 내가 빠진 데를 가를 거야, 동방신기가 빠진 데를 가를 거야?” 동생은 잠시 고민했다. 그리고 대답했다. “몇 명 빠졌어?” “?” “동방신기 오빠들, 몇 명 빠졌냐고. 다섯 명 다 빠졌어?” 세상에, 동생년 업어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잖아.....

 

그런 이유로 syo는 일찌감치 아이돌이라는 존재가 싫었다. 애기 땐 참 귀여운 아이였는데, 저런 되바라진 초6이 되고 말다니. 내 동생을 돌려주고 동방으로 꺼져버려, 이 한류스타들아...... 그러나 한류스타들은 꺼지지 않는 불꽃처럼 자꾸자꾸 태어나더니, 어느 시점부터는 아이돌이 아이돌 아닌 가수보다 많아졌고, 어어어 하는 사이에 이제 가수하면 기본적으로 아이돌(최소한 아이돌 출신)을 떠올리게 되는 시점에 도달했는데, 그런 내내 syo는 꾸준히 아이돌을 멀리했다. 다른 젊은이들이 아이돌에 열광과 환장을 바치는 동안 꿋꿋이 저항운동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가장 잘 팔리고, 구하기도 쉬우며, 스스로를 취향 있는 인간으로 보이도록 도와주는 편견을 하나 주워 얼른 장착했다. 저게 노래냐, 저게 가수냐, 하는 스타일의,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오만하고 자기중심적이며 보수적인 관념이지만, 그땐 그걸로 충분했다. 사실 누군가를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싫음 그 자체일 때가 많다. 왜 싫으냐면 싫어서 싫은 것이므로, 벗겨놓고 봤을 때 중요한 건 그저 내가 쟤네를 싫어한다는 것, 그것뿐인 셈이다.

 

인간은 사물의 범주를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없다. 상당히 축약시킨 유사성의 함수를 이용해 경험을 분류하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유사성이 사실 지나간 경험에서 결정적이었던 정서의 핵심에 거의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른 어떤 사람을 닮았기 때문에 한 사람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러나 사랑의 정서를 이끌어냈던 바로 그 속성을 새로운 사람이 가졌을 때만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미움의 정서에도 또한 분명하게 이와 동일한 구조가 있다. 과거에 한 사람의 어떤 특별한 성격이 우리에게 미움을 불러일으켰다. 나중에 우리가 싫어했던 바로 그 특성은 아니지만 그 사람이 가졌던 또 다른 특성을 가진 사람을 만나게 되었을 때 그 새로운 사람 역시 우리에게 미움을 불러일으킨다. 과거에 알았던 어떤 인물의 특성 중 우리가 싫어했던 바로 그 특정한 속성을 새로운 사람이 가진 것이 아닌데도 그 사람을 미워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61쪽)


싫어하는 것도 역시 관심이 있어서일까. 나이를 먹다보니 세상에는 근거 없이 싫어할 아이돌 말고도, 정말 싫어할 이유가 명백해서 싫은 인간들도 천지였고, 싫은 것들의 이름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에너지와 시간이 듬뿍 낭비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아이돌에 대한 흥미가 완전히 사라졌다. 허허허,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요.

 

최근 방탄소년단은 온 세계를 진동시키고 여기저기서 존재감을 드러내더니 심지어는, 한국전쟁 통에 어린 시절을 보내고, 거친 개발독재시대의 풍랑을 헤치고 이 나라 경제를 반석에 올려놓는데 이바지하였으며 이제는 하루 종일 종편 정치 시사 프로그램만 보는 배 모 할아버지(70, 대구 북구 거주)의 눈에도 그들이 UN에서 연설하는 모습이 포착될 정도의 위상을 갖춘 것 같다. 방탄소년단 멤버들 가운데 오빠도 있지만 동생도 있을 정도로 나이를 먹어 버린 동생과 함께 TV를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쟤들은 왜 저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난 늙어서 그런가, 쟤네 좋은지를 모르겠던데.” “잘 하긴 잘 하는데, 쟤네만큼 하는 애들 되게 많은데, 왜 쟤네만 저렇게 잘 되는지, 난 그게 궁금해.” “난 쟤네 누가 누군지도 몰라. 누가 누군지는커녕, 쟤네 여섯 명 이름 자체를 다 몰라.” “......오빠, 쟤네 일곱 명이야.”

 

그러니까, 여기가 모순과 편견이 숨어있는(사실 대놓고 있는) 지점이었다. ‘쟤네 좋은지를 모르겠어쟤네가 몇 명인지도 몰라가 양립할 수 있을까? 누군가가 좋은 가수인지 아닌지, 어떤 대우를 받을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려면(그 판단이 주관적이든 객관적이든 어쨌거나), 기본적으로 판단 대상에 대해서 알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최소한, 이름도 멤버 수도 모르는 상황에서 쉽게 판단을 내려버리면 안 되는 게 아닐까? 그것은 스치듯 노래를 한 번만 들어봐도 답이 나올 정도로 내 식견이 탁월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내가 이미 형성된 취향이나 관점에 매몰되어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면서도 스스로는 그걸 모르는 꼰대가 되고 있는 징후가 아닐까? 이런 비극은 어디서 시작된 걸까? 그건 아마도 싱글 포스터와 단체 포스터를 포함 도합 서른두 개의 눈알로 syo를 포위공격 했던 동방신기와, 그네들의 신기하고도 놀라운 이름들을 구구단 외듯 읊어야 했던 트라우마, 그리고 그 모든 공포를 조장했던 지옥에서 온 초6 내 동생의 탓도 있겠지만, 면역 없던 어린 시절 편견에 노출되어 열심히 그 편견에 복무했던 내 무지의 발로라고 보는 것이 옳겠다......

 

 

 

2

 

사물을 진정으로 안다는 것, 즉 적합하게 안다는 것은 그 대상을 어떻게 다룰지, 대상의 자극에 어떻게 대응할지, 대상을 어떻게 포용할지를 안다는 말이다. 진정한 읾은 우리의 진정한 필요에 부적합하게 사물의 어떤 측면을 자의적으로 이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진정한 앎은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성과 해당 사물의 적합한 관계를 아는 것이다. (171-172쪽)

 

라는 말에 기대어 꽤 긴 시간 유튜브를 방랑하면서 방탄소년단의 뮤비며, 공연이며, 팬들이며, 팬들이 자지러지는 모습이며, 팬이 아닌 사람들이 입덕하는 모습이며를 열심히 찾아본 것이다. 저러는 데는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이고, 어쩐지 그 이유를 모르고서는 21세기가 나를 용서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하지만 syo는 춤을 모르고 음악을 몰라서, 저 잘생긴 소년들이 되게 잘한다는 것은 알겠지만 다른 다수의 잘생긴 소년 소녀들에 비해 유독잘하는 것인지를 알아보기가 힘들었고, 그것은 곧 왜 수많은 소년 소녀들 가운데 바로 저 소년들만이 세계를 진동시키는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물음의 큰 의미는 답에 도달하는 데 있다기보다 대체로 물음 자체에 숨어있기 마련이라, 나는 왜 이런 걸 묻고 있지? 하며 스리슬쩍 나란 놈은 대관절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가를 되새겨보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먼저 syo는 도대체가 춤을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예술을 판단하는 데 예술적인 감각이 얼마만큼 필요한지와 관련된 문제다. 그리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무엇인가에 대해(특히 싫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감정과 채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식견을 갖추고 있으리라 자연스레 가정하는 오만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예술은 언제나 평가되어야 한다. ‘함부로 평가하지 마세요라는 실은 평가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욕하지 말라는 말이고, 누구도 칭찬에 대한 대답으로 저 말을 하진 않는다. 인간은 세상 모든 것을 평가한다. 땅바닥에 구르는 낙엽을 보고도 환경미화원의 근무 태도를 평가하는 평가의 동물이다. 예술이 무슨 용 빼는 재주 있다고 저 혼자 저울에서 달아날 수 있을까. 단지 평가 전에 우리가 어디까지 알아야 하고, 어디까지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지가 논의의 대상이 될 뿐이다. ‘니가 한 번 해 보세요라는 말을 피하기 위해, 평가대상보다 우월함을 갖춘 이후에야 평가 자격이 주어지는 것일까? 거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소위 전문가소리를 들을 만한 경험, 실적, 혹은 학위 따위가 필요한 것일까? 어쩌면 그냥 아무나 해도 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도 소설을 평가하려면 최소한 어느 정도의 문해력, 알레고리를 읽어내는 눈치, 내가 캐 낸 주제를 뒷받침하는 최소한의 배경지식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음악에 대해서, 춤에 대해서는 뭘 얼마만큼 알고 있어야 판단할 수 있을까? 방탄소년단에 대해, 칭찬이든 아니든 syo가 뭐라고 할 수나 있는 걸까?

 

두 번째로, syo성공의 큰 요인으로 자연스럽게 실력을 지목하는 인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절대 그렇지 않더라는 사실을 무수히 경험하고 살아왔음에도 여전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실력을 쌓기가 어렵긴 해도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실력이 없으면 성공하기 어렵긴 해도 완전히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고, 심지어 이놈의 세상은 이걸 오히려 가능 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끌고 가는 중이다. 실력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이 실존한다고 해도 그건 그야말로 추상이라 수치로 구체화하거나 깔끔하게 서열을 매기는 일이 불가능하다. 그 틈새를 그냥 행운, 시대변화에 동반된 행운, 각양각색의 연과 맥들, 심지어 채점자나 면접관, 바이어의 그날 아침 밥상에 고기반찬이 올라왔는지 아닌지 따위의 돌발변수들이 개입하여 성공 방정식에 미묘한 나비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큰 성공일수록 그렇다. 작은 성공은 큰 노력으로 이루어지지만, 큰 성공은 큰 노력으로 부족하고 하늘의 뜻이 조금은 필요한 법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공사례를 보면서, 성공한 이가 노력으로 성공을 일구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자동추측의 밑바닥에 실은 그랬으면 좋겠네가 깔려있다. 노력이, 그게 아니라면 최소한 실력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세상이 옳은 세상이고, 이 세상이 바로 그런 세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여기서 세 번째로, syo는 당위와 현실, 법학자들이 좋아하는 말로 SollenZein을 혼용 또는 혼동하는 경향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방탄소년단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그들이 얼마나 <피 땀 눈물>이 흐르다 못해 말라버릴 정도로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아이돌 들이 과연 그들보다 피, , 눈물을 적게 흘렸는지를 비교해 보기 전까지는, 그들의 노력과 성공을 일차선 도로로 연결시키기는 어렵다. ‘방탄소년단은 노력했고 성공했다라는 명제는 엄연한 현실이지만 이를 끊임없이 노력하면 언젠가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의 사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 무수한 피해자만을 양산할 뿐이다. 100만 명이 노력하던 세상에서 1000만 명이 노력해도, 왕좌는 하나에서 열 개로 늘어나지 않는다.

 

요컨대,

노력으로 성공했다에 살짝 손을 대어

노력만으로 성공했다로 치환하는 작은 무심함이,

노력하는 이가 성공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 은근슬쩍

노력하는 이가 성공하는 세상 이 좋은 세상으로 바뀌는 데 힘을 보탤 수도 있는데,

그 메커니즘에 복무하지 않도록 좀 더 꼼꼼하게 생각하고, 그 꼼꼼함을 위해 더 많이 찾아보고, 듣고, 느낄 여지가 syo에게 아직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3

 

생존하기 위해 수다한 다른 것들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스피노자가 욕망을 "그 자신 안에서 존속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정의내리는 코나투스로 언명한 까닭이다. 그 자신인 것으로 존재하려면 그 자신인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 정체성은 다소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능한 것들, 그것들과의 결합, 만남에 의존해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자신으로 존재하기란 단순하게 말할 수 있는 것아 아니라 노력과 탐색, 욕망을 함축한다. (40-41쪽)


조금 더 메타적으로 바라보면, syo라는 놈은 저렇게 묻는 인간이라는 사실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내달리는 의문의 꼬리를 잡고 몸통 위로 기어올라 그 얼굴을 확인하면, 언제나 저렇게 생긴 의문들을 따져 묻는 인간이라는 것. 똑 떨어지지는 않지만 언제나 비슷한 과녁을 노리고 있고, 그 과녁을 바라보며 화살을 거는 활줄이 마르크스였다가, 루쉰이었다가, 소로였다가, 때로는 방탄소년단이기도 한 셈이다. 날아가는 화살의 궤도가 활 쏘는 이의 몸과 마음에 달렸듯, 활 쏘는 이의 몸과 마음이 또 활에 달려 있기도 하다. 어쩌면 과녁은 그냥 그 자리에 있는 물건 이상의 그 무엇도 아니고, 진짜는 오로지 활을 들고, 화살을 메기고, 시위를 당기고, 숨을 멈추고, 보고, 놓고, 날아가고, 보고, 숨을 들이쉬는 과정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만나고, 그로 인해 생각을 하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몸가짐을 한 번 더 추스른다면 그 만남이 충분하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4

 

그리고 그 와중에 또, 이런 생각이 드는 건 피할 수가 없다. 난 저 아이들만큼 치열하게 살지도 못했고 못할 것이므로 이번 생은 안 되겠지. 우주가 생긴 그 날부터 계속, 무한의 세기를 넘어서 계속, 나는 전생에도 아마 다음 생에도 영원히 안 되겠지. 이 모든 건 우연이 아니니까...... DNA.



아무래도 전 <DNA>가 제일 좋더라구요.


그것은 또한 새로운 기쁨으로 열리는 것, 즉 우리에게 낯설어 보이는 대상과의 적합성을 찾아낸다는 것을 함축한다. 이를 위해 우리는 신체에 더 많이 익숙해져야 하고 신체가 더 많이 민감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신체가 다른 사물의 행위와 동일한 것을 더 많이 만들어낼수록 다른 사물의 본성과 공통된것을 더 많이 가질 수 있게 된다. 신체가 더 많이 민감해질수록 셀 수 없이 많은 정서를 구분하고 느낄 수 있게 되며 더 많이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스포츠 훈련, 여러 기예를 닦는 것, 악기를 다루는 일, 식당이나 양조장에서 그러하듯 미각이나 후각을 훈련하는 일, 감각적 즐거움의 경험, 사막을 횡단하는 일이나 만년설을접하는 등의 극단적 상황이나 전혀 낯선 상황에 처하는 일 등은 신체가 새로운 현실에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이는 그 신체에 새로운 역량을 부여한다. 경험하기 이전에 무서웠던 일, 사막의 건조함이나 만년설과 같은 것이 우리와 조화로운 공통된 접점을 가지게 되고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든다. 우리가 더 많은 사물에 익숙해질수록, 그것들을 더 편하게 느끼게 될수록 우리가 슬픔의 희생양이 되는 경우는 줄어들고 경험한 것만큼의 기쁨을 얻게 된다. (187-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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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18-11-29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요컨대, 문단 너무 좋아요. 노력한 사람의 문장이예요.

2. 저도 방탄의 인기 요인이 궁금하기는 해요. 가사, 도전적이고 사회비판적인 가사나 프로듀싱 능력 등을 이유로 대기도 하던데요.
글쎄요. 제 생각엔.... 워낙 한류 시장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그런 애들, 잘하는 애들이 나오지 않았나 싶어요.
다른 그룹에 비해 특별히 잘한다기 보다는 서로 경쟁하다가 잘하게 되었다는....
그리고 케미? 멤버간의 케미가 다른 그룹에 비해 좋은 것 같아요. 그리하여 시너지효과... 제가 보기엔요.

3. 전 <아이돌>이 좋아요. You can call me artist. You can call me idol. 아님 어떤 다른, 뭐라해도 I don‘t care!
그리고 RM (하트뿅뿅!) 스피노자는 안 보임. 방탄 땜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8-11-29 15:10   좋아요 0 | URL
단발님의 요런 댓글을 대충 예상은 했습니다만, 왜 갑자기 RM인가요. 최애가 바뀌셨나요 ㅎ

소년 소녀들 전부 예쁘고 악착같이 열심히 하는데 다들 잘 됐으면 좋겠지만요, 이 세상은 또 그런 게 아니니까요....

카알벨루치 2018-11-29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이 사람!!! 대형사고쳤네 ㅋㅋ

syo 2018-11-29 15:11   좋아요 1 | URL
방탄을 깐 것도 아닌데 무슨 대형사고씩이나.... 이러다 사람들 오해해요. 살려주세요 ㅎ

stella.K 2018-11-29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입니다.
저도 방탄은 뭐가 좋은지 모르겠더군요.
뭐 걔들 뿐이겠습니까?
대중 음악은 자기 시대에 들었던 음악 그 이상을 넘어가지 않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저는 이문세 음악을 듣고 자란 세댄데
지금도 그 이상으로 좋은 가수를 못 찾겠더군요.
물론 성량이나 환경이 그때의 가수들 보다 월등이 좋아졌는데도
정서가 다르다고 보는 거죠.
지금 방탄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앞으로 10년 20년 뒤에도 좋아할 겁니다.
그러면서 방탄 같은 가수들이 안 나온다고 아쉬워하며 꼰대가 되어가겠죠.
사람은 그런 것 같아요. ㅋ

syo 2018-11-29 16:29   좋아요 1 | URL
저는 방탄 좋던데요? 나는 살고 싶다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뭐 걔들 뿐이겠습니까?‘ 에서부터는 모든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특히 마지막 세 줄은 최고 ㅎ

stella.K 2018-11-29 16:33   좋아요 0 | URL
야하~! 제가 스요님께 칭찬도 들어보고
이거 앞으로 댓글 더 잘 써야겠는데요?ㅋㅋㅋ

syo 2018-11-29 16:35   좋아요 1 | URL
무슨 말씀이세요 ㅋㅋㅋ 제 칭찬이 무슨 의미가 있다고요ㅎㅎ
스텔라님은 글도 댓글도 항상 잘 쓰시는데요.

설해목 2018-11-29 17: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퇴근을 기다리며 조금 여유가 있는 이런 날엔 syo!
오늘 글도 느므 좋습니다!
그나저나 귀여운 여동생은 요즘은 누굴 좋아하려나요? 설마 아직도 동방신기????

syo 2018-11-29 20:27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감사합니다!
동생의 덕질족보는 제가 샤이니까지는 따라갔는데 그 이후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psyche 2018-11-29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락 싸면서 간만에 북플에 들어왔다가 방탄이라는 말에 눈이 확 떠졌습니다. ㅎㅎ

방탄의 인기가 워낙 폭발적이니 그 원인을 한두가지로 말 할 수는 없겠지만 저와 제 주변의 의견은 무엇보다 가사의 힘!입니다. 가사가 예술이에요. 자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려줘서 그런 가 구절구절이 가슴을 찌르고 희망과 위로를 주거든요. 사실 저는 아들뻘 청년들이 해주는 말에 위로받는 다는게 좀 민망하기도 했는데 뭐 어쩌겠어요. 그게 사실인걸. 요즘처럼 사는 게 참 힘들다 싶을 때, 마구마구 우울속으로 파고 들어갈 때 조금이라도 몸을 일으킬 힘을 주더라고요.

저는 좋아하는 방탄 곡이 너무 많아서 한개만 뽑는 것은 불가능하고 요즘 제 맘을 울리는 곡으로 RM 의 ‘지나가‘

syo 2018-11-30 10:14   좋아요 0 | URL
프님의 방탄사랑은 익히 알고 있던 부분이지요 ㅎㅎㅎㅎ

말씀하신대로 정말 가사가 좋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저는 주로 사랑노래를 좋아하지만요 ^-^

입덕까지는 못 돼서 미친듯이 들어대지는 않겠으나 한 번 들을 때 흘리지 않고 집중해서 음미하게는 되었지요 ㅎ

쟝쟝 2018-12-01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먹나봐요.. 저도 지난 명절때 유튭보면서 방탄 공부했는데.. 랩몬 빼고는 지금도 얼굴 구분을 잘 못하겠어요.. 하지만 역시 dna는 좋구.. 몇년 전에 동생분이 상심이 크셨겠네요.. 동방신기라니... 이젠 아련한 믹키...읍읍..😷😷

syo 2018-12-02 15:12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ㅎ
그 전에 이미 털고 나와서 믹모 남성의 사건에 아무런 충격을 받지 않았던 동생입니다.

그리고 원래부터 시아준수 팬이었더라구요.

백진호 2018-12-0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얼마 전에 봄날이라는 노래를 듣고 꽂혔어요. 그런데 그 노래가 방탄소년단 것이더라고요. 유튜브에서 뮤비를 봤는데 그 안에 세월호, 젊은 세대가 겪는 아픔에 대한 공감 등이 담겨 있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방탄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철학을 가진 사람들 같아요. 물론 다른 연예인들이 그렇지 않다는 게 아니지만요.

syo 2018-12-02 15:13   좋아요 0 | URL
많은 분들이 다양한 관점으로 방탄의 성공 요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 다 공감이 가더라구요. 백진호님의 말씀 역시 그렇구요.

입덕한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그 소년들이 승승장구했으면 좋겠네요.
 
강원국의 글쓰기 - 남과 다른 글은 어떻게 쓰는가
강원국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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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는 달변이었다. 중학교도 제대로 못 마친 시골뜨기가 아무리 악바리처럼 일을 했대도, 그 혀가 능란하지 않았다면 짧은 한 때의 영화나마 누려보지 못했을 것이다. 아버지는 결혼도 그 혀에 꿀을 발라 해치웠다. 그러나 내가 태어나 말을 알아듣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의 말 속에 예전에는 있었다던 그 단맛은 이미 온데도 간데도 없었다. 엄마의 넋두리 속에 화석처럼 남아있는 단서를 통해 그 말들의 거대했을 몸집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결혼이라는 송곳에 찔려 허망하게 쪼그라든 말의 외피. 지켜지지 않은 약속의 흔적이 낳는 통증. 나는 애증이 난무하는 부모의 삶을 지켜보며 두 가지를 배웠다. 말을 잘 하는 사람이 되어야 얻는다. 그리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을 조심해야 잃지 않는다.

 

뜻밖에도 아버지의 약점은 글이었다. 말을 겁내지 않는 아버지가 쓰는 일을 두려워했다. 아버지의 펜은 항상 느렸고, 자주 절뚝거렸고, 가까운 곳에도 한 걸음에 도달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의 책상에서는 가로로 세 개의 줄을 그어 써놓은 단어를 덮는 세 줄기 소리가 자주 들렸다. 간택 받지 못한 활자들의 시체가 동그랗게 말려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꼴을 지켜보며 나는 역시 두 가지를 배웠다. 결국은 글을 잘 써야 한다. 그리고 말을 잘 하는 사람이 한글을 안다고 해서 곧바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꽤 어릴 적부터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아이였다.

 

 

 

2

 

나는 아버지를 닮아 말을 곧잘 하는 아이였다. 게다가 누굴 닮았는지 책을 좋아했으므로 자연히 글을 곧잘 쓰는 아이기도 했다. 시작과 동시에 이미 말과 글은 나의 힘이었다. 일상 바깥으로부터 무언가를 따서 가져올 만큼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아이가 되진 못했으나, 일상의 안쪽 영토에서 결코 손해를 보지 않을 만큼은 혀와 손을 놀릴 줄 알았다. 그 정도면 조그만 욕심을 채우고도 남음이 있었으므로, 말과 글을 손에 쥐고 세상 밖으로 나갈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말의 날을 갈지도, 글의 녹을 닦아내지도 않았고 자라는 대로 그저 내버려 두었다. 그러다 벼락처럼 이런 글을 만났다.

 

마음도 한 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마 동무 삼아 따라가면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 나고나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저것 봐저것 봐네보담도 내보담도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 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가는 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박재삼,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전문행갈이 제거.

 

그리고 이틀 밤낮을 말 그대로 앓았다. 앓고 나서 알았다. 세상에는 사람을 앓게 하는 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욕심이 났다. 저 글을 가지고 싶다. 내 이름 박은 글을 누군가의 마음에 집어넣어 그를 아프고 앓고 열이 나게 만들고 싶다. 어떤 벼락은 인간의 내면을 뒤집고, 어떤 소년은 그 벼락에 맞아 사춘기를 시작했다. 그때 나는 매일 다섯 시간 수학 공부를 했고, 세 시간 과학 공부를 했고, 그리고 다른 과목들을 공부하느라 수학보다 적고 과학보다는 많은 정도의 시간만 잘 수 있었기 때문에, 박재삼이 되는 일을 어른의 일로 미루어 두었다. 독서도 사랑도 할 만한 여유가 없는 껍데기뿐인 사춘기가 바삐 지나갔고, 나는 문제집이나 시험지 속 아름다운 시를 만나면 잠깐 일렁였다가 다시 샤프를 고쳐 잡으며 그 시간을 보냈다.

 

 

 

3

 

어른이 되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나는 박재삼이 아니었고, 박재삼의 글은 박재삼이 쓰니까 박재삼의 글인 것도 또한 당연했고, 박재삼이 아닌 내가 박재삼이 될 수 없는 것 역시 당연한 일임을 깨닫는 데 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으나 결국은 받아들일 수 있었고, 내 마음에 남은 것이라곤 박재삼이 던진 벼락에 불탄 자국뿐이었다. 그러나 불 놓은 밭에서 이듬해 풀이 돋듯, 내 글은 그 흉터에서 시작되어 그 흉터의 모양대로 자라났다. 인간은 누구나 한번은 자기가 평생 쫓아가 안길 아름다움의 모양을 결정하는 순간을 맞닥뜨린다. 자의든 타의든, 벼락처럼 결정된 아름다움은 그보다 더 거대한 벼락을 만나도 쉽사리 색을 바꾸진 않는다. 취향이라 부르기도 하고, 감각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그것을, 나는 첫 문신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살며 두 번째, 세 번째 문신이 다시 새겨지겠지만, 그 아이들은 모두 첫 문신에 복종하며 태어날 것이다.

 

 

 

4

 

좋은 글은 어떤 글일까를 항상 생각한다. 흔히 말하는 진선미를 고려해보면, 진실한 글, 선한 글, 아름다운 글이 좋은 글일 것 같다. 글의 진실함을 판단하는 잣대는 글, 글쓴이, 읽는 이의 바깥에 있다. 글의 선함을 판단하는 잣대는 글쓴이와 읽는 이의 마음에 있고 바깥세상에도 있다. 그러나 글의 아름다움을 재는 저울은 오로지 한 군데, 읽는 이의 안에만 있다. 내게 아름다운 글이 내게 아름다운 글이고, 네게 아름다운 글이 네게 아름다운 글이다. 두 사람이 말하는 아름다움은 어떤 글에서는 겹치기도 하고, 또 어떤 글에서는 서로 등을 돌리기도 한다. 아름다움의 영역에서만큼은 내게 아름다운 글이 네게 아름다운 글보다 훨씬 좋은 글이다. 내게만 아름답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답지 않은 글은, 내게는 아름답지 않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글보다 덜 좋은 글이 아니다.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를 판단할 때, , , 미를 각각 어느 정도의 비중으로 고려할지는, 글의 장르에 따라 정해지는 바가 어느 정도는 있겠으나, 결국은 개인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박재삼에서 태어난 독자와 리영희에서 태어난 독자가 글을 보는 눈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좋은 글을 쓰는 법에 대해 알려주는 책은 가끔씩 다른 곳에서 태어난 이들에게 피할 수 없는 불쾌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자기가 평생 추구하며 살아온 삶을 좋은 삶이라 주장하며 당신들도 나처럼 살라고 충고하는 책에 맞서 내 삶을 옹호하기 위해 반대하듯이, 나는 내 글을 지키기 위해 대단히 많은 글쓰기 책을 반대하며 살고 있다. 그게 다 박재삼 때문도 아니고, 박재삼에서 나온 사람들이 다 이러지도 않겠으나, 어쩐지 나만큼은 평생 내 글의 목을 죄는 좋은 글지침서들에 맞서 싸우며 살아야 하는 운명 같다.

 

 

 

5


글을 읽는 사람은 글쓴이가 얼마나 잘 쓰는지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는지 관심 없다그들이 관심 갖는 것은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얘기가 뭔지그 얘기가 내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하는 것이다그러므로 내가 글에서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그것이 독자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에 집중하는 게 맞다. (23쪽) 

 

아니다. 나는 내가 읽을 글이 잘 쓴 글이기를 바라고, 내가 읽은 글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이의 손끝에서 나온 글이길 바란다. 내가 읽은 글이 말하고자 하는 얘기가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하는 것만큼이나, 글의 아름다움에 감정이 들썩들썩하기도 하고, 글에 묻어나는 글쓴이의 지성에 자극받아 더 열심히 책을 읽기도 한다. 요컨대, 저자는 글을 읽는 사람이라는 집단을 굉장히 편협하게 보고 있다. 그 역시 한명의 글쓴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할 때,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을 얼마나 얕보고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독자들이 오로지 자신이 하고자하는 말, 그리고 그 효용만을 따지며 읽을 거라고 예측하는 저자는 얼마나 궁핍하고 무책임한 글을 쓸까. 애초에 독자들이 글쓴이가 얼마나 잘 쓰는지에 관심이 없다면, ‘글 잘 쓰는 법을 강론하는 이 책은 대체 뭐지?

 

무엇보다 아는 체하고 싶은 욕심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은 단순 반복의 미니멀리즘으로 성공한 경우다글쓰기도 미니멀리즘을 지향할 수 있다단문으로 쓴다복문포유문중문을 지양한다수사적인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수사법 사용을 절제한다최대한 짧게 쓴다군더더기 없이 할 말만 쓴다독자에게 잘 보이겠다는 생각을 자제한다그것도 소유욕이며 미니멀리즘에 역행하는 일이다. (26쪽)

  

문화평론가들이 욕을 먹는 이유는, <강남스타일>이 그렇게 성공할 것임을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으면서, <강남스타일>이 어떻게 성공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누구도 입을 다물지 않고 한 마디씩을 거든다는 데 있지 않을까. 하물며 문화에 대단한 식견을 가진 전문가도 아니면서, 미니멀리즘으로 성공했다고 단언하는 글이 우습다. 우습다고 단정적으로 내가 말할 수 있도록 도와준 것은 저자 자신이다. 이런 말씀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선생님, 무엇보다 아는 체하고 싶은 욕심을 자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설령 정말 그렇다 하더라도, 세상에는 <강남스타일>보다 더 성공한 노래가 얼마든지 있고, 그 노래들이 죄 미니멀리즘을 지향한 것도 아닌데, 어째서 우리는 글쓰기에 미니멀리즘을 지향해야 할까? 미니멀리즘에 역행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일까? 단문으로 쓰라는 이야기는 어떤 글쓰기 책을 펼쳐도 피하고 지나가기 어려운 말인 것을 보니 진리인가 싶다가도, 그런 말을 하는 이들보다 이름난 대가들이 길고 긴 문장을 아무렇지도 않게 써대는 걸 보면 또 아닌가 싶기도 하다.

 

세상에는 정말 더없이 아름다운 단문으로 이루어진 글들이 많이 있다. 더 이상 적확할 수 없으리만큼 제 자리를 맞게 찾은 단어들로 이루어진 짧은 문장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그런 문장들을 눈앞에 놓고 있으면 정말 수사나 기교는 벗어던져야할 넝마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글을 만났을 때 느끼는 짧은 글은 정말 아름답다는 감정은 참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명제가 참이라고 해서 곧바로 그 명제의 역이 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짧은 글은 정말 아름답구나!’ 하고 경험할 수는 있지만, 그 경험을 곧바로 정말 아름다운 글은 짧은 글이다로 변환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짧은 문장이 정말 아름답듯이, 아름다운 긴 문장 역시 정말 아름답다. 아름다움은 문장의 길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아름다운 문장이 아름답다.

 

긴 문장을 추구하는 이들은 짧은 문장의 아름다움을 부인하는 일이 적다. 그러나 짧은 문장을 다루는 이들은 긴 문장에 눈살을 찌푸린다. 편견이다. 그리고 짧은 문장을 쓰면 누구나 아름다운 문장에 도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면, 오만이다. 정말 아름다운 짧은 문장을 만드는 일은, 정말 아름다운 긴 문장을 만드는 것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글쓰기 책에서 짧은 글을 강조하는 이유를 안다. 긴 문장은 다루기 어렵고, 쉽게 읽히도록 다루기는 더더욱 어렵다. 실수는 빈발할 것이고, 욕심을 부려놓은 흔적은 글 잘 쓰는 이들의 눈에 어설프게 칠해놓은 화장처럼 흉하게 보이기도 할 것이다. 짧은 글은 안전하다. 꼭 필요한 문장요소들의 자리만 비워두고 몇 가지 선택지에서 잘 고르면 읽기도 좋고 보기도 좋은 문장이 태어난다. 초심자들에게 가르칠 만하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긴 문장을 도외시하고 사문난적 취급하는 성향까지 심어준다면, 그건 초심자들이 나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향을, 결코 열등하지 않은 방향을 삭제하는 만행이 된다. 긴 문장을 쓰는 힘과 긴 문장을 읽는 힘은 서로 무관하지 않다.

 

 군 시절내무반 고참 서넛은 취침 소등 후에 당직사관의 눈을 피해 라면을 끓여 먹었다물론 그들은 먹기만 했다나는 국물 맛이라도 볼지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라면 끓이기를 자청했다전열 기구 사용이 금지돼 있던 터라 들키면 '외박 금지정도는 불사해야 했지만 라면을 끓여 갖다 바쳤다설거지를 명분으로 주변을 서성거리는데 고참이 불렀다.

 "강 일경이리 와봐."

 드디어 올 게 왔구나나도 한 젓가락 할 수 있겠구나 싶어 한걸음에 달려갔다그런데 다짜고짜 머리를 박으란다.

 "대가리 박고 앞으로 전진넌 살인미수야."

 깜깜한 내무반에서 끓이느라 스프 봉지 쪼가리가 라면에 들어간 것이다.

 

 일명 원산폭격이라는 얼차려를 받고 있는데도 웃음이 났다머리를 박으라고 하는 고참이나 라면을 탐하다가 머리를 박고 있는 나나 웃기기는 마찬가지였다그 사건은 재밌는 추억이 되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웃음을 자아낸다.

 

 재미는 글의 첫 번째 요건이다. (100-101쪽)


내겐 정말, 너무 재미가 없어서 웃어야 되는 포인트를 짐작하기 어려운 글이다. 술자리에서 윗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고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오싹하다. 애를 써 본다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웃음을 자아낸다.’ 부분에서 어이없음을 모아서 조금쯤 웃을 수 있을 것 같기는 하다. ‘재미는 글의 첫 번째 요건이다라는 문장은 반전이 있어서 조금 더 높은 점수를 줄 수도 있겠다.

 

결국 좋은 글을 쓰는 것은 식견에 달려 있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무리 웃긴 글을 쓰고 싶어도, 아직까지 최불암 시리즈에 빵빵 터지는 수준의 감을 가지고서는 21세기 이 살벌한 개그판에서 1초도 생존할 수가 없다.

 

전체적으로 저자는 자신의 미적 감각도 개그 감각도, 일절 의심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내게 좋은 글이 좋은 글이고, 내게 웃긴 글이 웃긴 글이라고 생각하며 이 책을 지은 것 같다. 글쓰기와 관련하여 저자가 지닌 눈부신 경력이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그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글, 그가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글이 점령한 세상을 생각해보면, 난 왜 앞이 캄캄할까.

 

 

 

6

 

진과 선에 비해, 미는 낮고 하찮고 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어떻게 되먹은 일인지는 몰라도, 사적인 것이 사적인 것으로 남도록 지켜주기보다, 사적인 것이므로 함부로 고치고 교정해도 괜찮다는 풍조가 있다. 그렇게 살지 말라고 충고하는 일이 무례를 동반함을 잘 아는 이들도, 그게 뭐가 예쁘냐는 말은 아무렇지 않게 한다. 아 물론 네 개인의 취향이니까 존중은 하지만, 이라는 마음에도 없는 예쁜 말을 덧붙여 도덕성을 확보해가면서.

 

좋은 삶을 말하는 책처럼, 좋은 글을 알려주는 책 역시 월권이 되기가 쉽다. 이런 글이 좋은 글입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으려면 다양한 제반사항을 미리 한정해야 한다. 장르를 밝혀야 하고, 상황을 상정해야 하고, 예상 독자도 지정해야 한다. 그 모든 제한을 통해 좁고 세밀해진 범위 안에서만 좋은 글을 조심스럽게 주장해볼 수 있다. 만능열쇠처럼 모든 경우에 들어맞는 좋은 글은 없다. 아름다운 글은 더 그렇다.

 

글은 개별적이고, 각자 다른 지문을 지닌 것처럼 우리는 각자 다른 글을 쓴다. 자기의 길을 걷는 물줄기가 사방으로 뻗을 것이고, 그래야 온 세상을 고루 적실 수 있다. 내 글에 좋은 글의 왕관을 씌우는 것이 타인의 글을 불모지로 만들 수 있음을 알면 좋겠다. 사막은 사막 밖의 세상도 한소끔 더 건조하게 만든다. 자신의 글을 지키는 사람들이 오늘도 조용히 세상의 사막에 물을 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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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17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17 1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18-09-17 1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부터 나이가 들어서인지, 주변과 생각이 달라서인지 웃음코드가 이상해요ㅜㅜ 남들이 웃을 때 난 왜? 이러고, 남들이 읭? 할 때 전 막 웃고... 갑자기 라면 일화를 보다보니 생각이 나네요. 저 상황이 우습지 않은 건 syo님하고 같아서 조금 안심입니다. 나이보단 생각의 차이인가... 싶네요. 젊게 살기도 힘들어요. (갑자기 얘기가 삼천포로..^^;;)

전 syo님 글이 좋아요. 재밌어요. 길어도 다 읽게 만드는 매력이 있어요. 부러워요.^^

syo 2018-09-17 10:51   좋아요 0 | URL
자기의 웃음코드를 지켜가면서, 내 코드 안에서 더 잘 웃길 줄 알고 더 잘 웃을 줄 아는 사람이 되면 그걸로 좋을 것 같아요. 개그는 사실 기세인 것 같더라구요. 재미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한 번 형성된 사람은 별 말 안 해도 재미있고, 한 번 재미없다고 인식된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해도 재미가 없고 ㅎㅎㅎ

긴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긴 글 읽기가 긴 글 쓰기보다 더 쉬운 일이 결코 아니잖아요^-^

카알벨루치 2018-09-17 1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에 읽었는데 넘 좋아요~syo 님 생각하게끔 하는 글입니다 또 읽어봐야겠네요 ㅎ

syo 2018-09-17 10:53   좋아요 1 | URL
부족한 글이라 한 번 읽고 지나가는 것도 낭비입니다, 카알님.
안 그래도 읽으실 책이 산더미실텐데, 시간 낭비는 최소화하시는 것이? ㅎㅎ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09-17 11:09   좋아요 1 | URL
쉬엄쉬엄^^ 굿뜨~

stella.K 2018-09-17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의욉니다. 스요님이 이런 책을 읽다니...
이미 남과 다른 글을 쓰고 있는데.
이런 책은 나 같은 사람이 읽어야하는데
대통령의 글쓰기도 읽다만 저는 언감생심입니다.ㅠㅋ

syo 2018-09-18 00:53   좋아요 0 | URL
항상 자기 글은 못마땅한 법이니까요 ㅎㅎㅎㅎ
버젓한 작가님께서 이게 웬말씀이세요.
저같은 나부랭이는 어떻게 고개를 들라고 이러십니까.....

stella.K 2018-09-18 14:14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고개를 들 것을 허하겠습니다.ㅋㅋㅋㅋ

모름지기 책은 비판 정신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데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책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특히 내가 잘 모르고 저자는 그 분야에 전문가일테니
처음 읽을 때부터 먹히고 들어가요.

솔직히 저자의 <대통령...>는 좋긴한데 이 사람은 연설문 전문가잖아요.
근데 뭔가 좀 답답한 게 있었는데
스요님 글 읽으니까 벙 뚫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달의 당선작으로 점쳐봅니다.
아니면 제 손에 장을 지지겠습니다.ㅋㅋㅋ

syo 2018-09-18 15:09   좋아요 0 | URL
뭘 또 장까지요 ㅎㅎㅎㅎㅎ
글 쓰고 욕 안 먹기도 어렵지만, 글 쓰기 책 내고 욕 안 먹는 건 더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제가 너무 악독하게 굴었나 싶기도 하구요 ㅎ

stella.K 2018-10-11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 보십쇼. 이거 이달의 당선작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지난달 저는 특별히 열심히 쓴 리뷰도 페이퍼도 없어
신경도 없다가 이제야 봤네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저도 이제 나이를 먹나 봅니다.ㅠㅠ

syo 2018-10-11 15:43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의 당첨 예측 시스템이 신묘합니다......

그나저나 그 없으셨다는 ‘이런 적‘은 ‘확인을 늦게 하신 적‘이랑 ‘특별히 열심히 쓴 리뷰도 페이퍼도 없던 적‘이랑 ‘당선이 되지 않은 적‘ 가운데에서 어떤 적을 말씀하신 걸까 궁금해집니다 ^-^

stella.K 2018-10-11 16:0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굳이 말하자면 확인을 늦게 한 적과
당선되지 않은 적과 관련이 있는 거죠 뭐..
제가 지난 달 좀 바빴거든요.
바쁘니까 누가 당선이 됐는지 스캔하는 것도 잊고,
페이퍼나 리뷰도 별로 공들여 쓰게되지 않더군요.
하지만 갠적으로 바쁜 게 저한텐 좋았습니다.
좋은 일이 생길 것만 같아서.ㅎ
그리고 전 알라딘과 좀 거리를 둬야해요.
너무 사랑하는지라...ㅋㅋ

북프리쿠키 2018-10-11 16: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신묘하네요 ㅎㅎ

syo 2018-10-11 16:4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신묘하네요 정말 ㅎㅎ
그 신묘함에 힘입어 장바구니를 또 한 번 비웠습니다.
 
책에 빠져 죽지 않기 - 로쟈의 책읽기 2012-2018
이현우 지음 / 교유서가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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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고생대 데본기에 다양한 생선들이 어슬렁어슬렁 육상으로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는데, 그와 유사한 양태로 2015년 초의 서울에서는 그저 읽는 syo가 읽고 끄적거리는 syo로 진화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중이었다. 그해 이전의 syo는 서평 같은 게 왜 있는지, 서평과 독후감의 차이는 무엇인지, 뭐 이런 기초적인 것들을 1도 이해하지 못하는 한 마리 무지몽매한 척추동물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무덤이 있으면 반드시 핑계가 있는 법. 핑계 1. 아니, 지금 지구에 책이 몇 권이나 있는 줄 알아? 그리고 걔네가 앞으로도 태어나길 그만 둘 것 같아? 책 읽은 책 읽을 시간 있으면 책 읽어. 핑계 2. 네가 읽은 책은 네가 읽은 책이고 내가 읽은 책은 내가 읽은 책이다. 그러므로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와 네가 읽은 셰익스피어는, 내가 읽은 셰익스피어와 내가 읽은 도스토예프스키만큼 다르지. 핑계 3. 너는 내가 네 반찬 다 씹어서 밥상 위에 뱉어놓으면 소화 잘 되겠다고 신나서 주워 먹겠다?

 

아 세상 깝깝한 2015년의 syo. 나 이놈, 내 죄를 내가 알렷다......

 

그렇게 무식하면 용감한 법이라는 명제가 진리가 되는데 아낌없이 몸 바치던 syo에게 계몽의 빛, 진화의 구름판이 되어준 이가 있었으니, 이 책은 바로 그가 2018년에 쓴 책이다.

 

 

 

2


또 다른 책이 있었으니 그 이야기부터 하자면, 


그 책의 표지는 차갑고 자비 따윈 모를 것 같은, 어쩐지 구치소 쇠창살을 떠올리게 하는 색깔이었다. 이걸로 사람 한번 툭 치면 그 구치소 쇠창살 안에서 내다보는 바깥 풍경이 어떤지 뼈저리게 알게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두껍고 무거운 책이었다. 제목을 비롯하여 표지에 인쇄된 글귀들은 결국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그 책으로 무고한 시민의 둔부를 가격, 현장에서 적발되어 구치소에 갇혀 살던 한 남자가, 임종 전날 바스러져가는 멘탈을 가까스로 부여잡고 손톱으로 시멘트벽을 긁어 남긴 유서 스타일로 디자인되어있었다. 그 모든 시각적 정황증거와 전혀 합이 맞지 않는, 뻔뻔하다 싶을 정도로 역설적인 제목이 syo로 하여금 그 책을 펼칠 수밖에 없게 하였으니, 그 책의 제목은 책을 읽을 자유였다.

 

당시 벌써 나온 지 5년이 다 된 책이었지만 그런 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 감옥 같이 생긴 자유의 책을 통해 syo가 깨달은 것은, 서평이 되었건 독후감이 되었건, 책 읽은 글은 버젓한 하나의 장르라는 사실이었다. 인터넷 공간을 방황하다 가끔씩 마주친 서평이나 독후감으로부터 늘 실망만을 얻어왔다는 불행한 우연 때문에, 내가 이 어엿한 아이들을 근거 없이 괄시했구나. 문제는 질이구나. 그리고 양이구나. 우와, 이 양 좀 보소.

 

이런 사연이 있었으므로, ‘로쟈라는 인물의 자취를 좇던 syo가 알라딘에 유입된 것은 필연적인 귀결이었다. 와서 보니, 이 인물은 구텐베르크 은하계에 존재하는 모든 책의 3/4 쯤을 읽고, 그 반절에 길고 짧은 코멘트를 다는 그야말로 탈 갤럭시 급 독서가였다. 이 책 재밌겠다 싶어 검색하면 로쟈의 코멘트가 있다. 저 책 재미없겠다 싶어 검색하면 거기도 있다. 도대체 어느 구석으로 드리블을 해야 저 거대한 관음보살의 물샐 틈 없는 손바닥 바깥으로 도망칠 수 있을까 잠깐 고민하다 관뒀다. 뭐하러 그래. 그럴 바엔 그냥 친구 추가나 하자. 딸깍.


 

 

3


그해 여름, syosyo의 친구 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로쟈님의 강의를 들으러 다녔다. 우리 두 백수는 교통비 말고는 지불여력이 없었으므로 강의료가 없는 강의 밖에는 선택지가 마땅치 않았다. 노원구에서 19세기 러시아 문학 강의를 들었고, 남산에서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 강의를 들었다. 노원구 강의는 평일 오전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그 시간에 참석한 젊은이는 우리 말고는 없었으므로, 맨 앞줄에 앉은 우리는 첫날부터 다른 분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에 등가죽이 뜨뜻했다. 짧은 자기소개의 시간이 있었는데, 이 말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입니다. 혜화동에 살구요, 저는 옆에 이 친구를 따라왔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박수 짝짝. syo의 차례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옆에 이 친구 syo입니다. 저도 혜화 살구요, 저는 앞에 저 분 따라 왔습니다.” syo의 손끝이 강단 책상에 앉아 있는 로쟈님을 향했다. “저는 저 분 선생님 따라다닙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짝짝짝짝짜자자자짝짝. 웃음 하하하호호하하호호. , 보았니, 이 해일 같은 박수와 웃음의 앙상블을? 이것이 너와 나의 눈높이다......

 

1시간 강의가 끝나고 잠깐 쉬는 시간, 강의실 뒤쪽에 비치된 녹차 티백을 가지러 나왔는데 50대쯤 되어 보이는 참가자 한 분이 syo를 보고 웃으며 물으신다. “선생님 매니저세요?” “?” “아니, 선생님 따라 다닌다길래, 호호호.” syo가 웃으며 대답한다. “, 아닙니다. 전 그냥, 사생팬인걸요.” 대답하고 아차 했다. 사생팬까지는 아닌데. 정정할까? 넌지시 그분의 표정을 살피고 syo는 안심하며 돌아섰다. 아무래도 사생팬이 뭔지 모르시는 눈치였으므로. 자리에 앉았는데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사생팬이 뭔지 아는 나이대의 사람이, 평일 이 시간에 구립도서관 강의실에 앉아 푸쉬킨, 고골, 레르몬토프 중에 누가 형인지 생각하고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런 전복적인 자기소개에도 로쟈님은 옅은 미소만 보일 뿐 미동조차 않으셨다. 며칠 뒤 그해 노벨상을 발표하는 날, 남산에서 강의 초입에 로쟈님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수상을 은근히 바라시는 투의 말씀을 하셨다. 네이버에 노벨문학상을 입력하고 5초 단위로 새로고침을 하고 있던 syo,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그 우크라이나 작가가 수상을 한 것 같습니다.” 하고 말씀을 드렸을 때도, “그렇습니까? 우크라이나 태생이지만, 벨라루스 작가입니다.” 하시며 안경을 살짝 올리셨을 뿐, 안경 너머로 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 아주 잠깐 찾아들었을 뿐, 이내 더 이상의 언급 없이 다시 강의 주제로 돌아가셨다.

 


 

4


간결함, 정확함, 세세함. 개인적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강의를 수십 번 들은 것도 아니지만, syo가 눈으로 보고 느낀 로쟈님의 이미지는 그의 책에서, 특히 서평을 모은 책에서 읽고 느낀 것과 아찔할 정도로 비슷했다. 글과 말이 서로를 벗어나지 않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그리고 흔치 않다. 그놈들은 하루아침에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성질 순한 아이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취향을 자극하지 않는 음식은 폭발적으로 팔려나가지 않는다. 누군가 눈물 나게 매운 치킨을 먹을 때, 다른 곳의 누군가는 단짠단짠이 절묘한 치킨을 먹고 있다. 치킨의 알파요 오메가는 후라이드임을 설파하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가장 맛있는 음식은 뭐냐고 물어보면, 시간을 많이 줄 테니 오래오래 생각해보라고 하면, 그들은 무취향한 음식들을 떠올릴 것이다. 마지막 순간에 그걸 고르진 않더라도, 돈을 주고 사 먹을 수 없기에 팔지도 팔리지도 않는 어떤 기본적인 요리들을 생각해 볼 것이다.

 

물론 세상에서 제일 잘 팔리는 서평을 쓰는 로쟈님에게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하여튼 그런 이유만으로, 양념 팍팍 친 맵고 짜고 달고 때로는 쓴 문장을 사랑하는 syo가 삼삼하고 때론 심심하기까지 한 그의 글을 좋아하는 것일까?

 

역설적일 수 있지만 좋은 서평은 서평에 대한 부담을 줄이는 데서 시작될 수 있다서평을 쓰는 일 자체에 대해 과도하게 흥분할 필요가 없으며 너무 많은 기대를 갖는 것도 조지 않다멋진 문장보다는 간결하고 명료한 문장이 바람직하며 화려한 수사에 대한 고민도 자제하는 것이 좋다예술적인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읽을 만한 책을 감별하고 권장하는 일이 서평의 주된 역할이라면 그것은 한두 사람의 몫으로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독자라면 모두의 일이고 모두가 나서서 자기 몫을 거들어야 하는 일이다서평은 자발적인 품앗이에 가깝다. (94)

 

그의 글이 지닌 품성이 어디서 발원하는지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 편의 글을 읽을 때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는 어떤 강인한 마음 같은 것이, 책 전체를 이어 읽으면 느껴진다. 더 화려하고 멋스럽게 쓸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도록 자신을 붙잡는 마음. 더 세고 따가운 분노의 표현을 휘두를 수 있음에도 춤추는 손을 꼭 붙잡고 가라앉히는 힘. 있는 대로 수사를 갖다 붙이고, 10만큼 건드리면 12만큼 분노하는 syo는 하려해도 도저히 되지가 않는 절제와 자제......

 

그리고 그런 굳센 지지점을 건설해 두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스스로 자기 안에 세운 기준으로부터 뻗어 나온다는 점이 찬탄을 던져 넣을 바른 자리이다. 좋은 글의 기준이 내 안에 있다는 것, 타인의 평가나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글을 쌓아올린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쓰듯이 그렇게 말한다는 것. 내가 쓰는 글이 자꾸 내가 되는 것.

 

 

 

5


읽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읽기를 위해 쓰는 것은 배우고 싶지 않다. 나는 삶을 직조하는 쓰기가 부럽다.

 

읽기와 쓰기는 상호보완적인 동시에 독립적인 역할을 가진다. 읽기로 삶의 내용을 기르고 쓰기로 삶의 형태를 세워 올리는 것이 독서의 양 날개라면, 이 책을 비롯한 이현우의 모든 책이 그 날개를 펼쳐 흔드는 법을 보여준다.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나 이 책 속의 수백 권 다른 책들이 다 낡아져 시간의 저쪽으로 치워지는 날이 와도, 이 책은 서가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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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8-31 14: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땜에 이 책 질렀다는....ㅋ

syo 2018-08-31 14:57   좋아요 1 | URL
아니, 영업당하셨군요 ㅎㅎㅎ

좋은 책입니다.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으니, 아마 저보다 카알님께 훨씬 더 좋은 책일 거예요.

설해목 2018-08-31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로쟈님 강의 몇 번 다녔었는데 그렇다면 어쩌면 혹시라도 syo님을 만나지 않았을까요. ㅎㅎㅎ

syo 2018-08-31 19: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로쟈님 강의 듣는 알라디너들이 적지 않을 것 같아요.

단발머리 2018-08-31 1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syo님의 이 글을 꼭 읽으셨으면 좋겠네요. 사생팬이 아닌데도 이렇게 멋진 헌사를 쓰는 이 한 사람의 멋진 팬이라니....
syo님 글 읽다보니까 로쟈님 뵈었던 그 해 여름도 떠오르고요.
의도치 않게 로쟈님의 진짜 사생팬분들(월화수목금, 매일 로쟈님의 강의를 들으시는 분들)에게 둘러싸여 로쟈님 옆옆 자리에 앉아 콜라를 홀짝였던 바로 그 여름이요.
아.... 나는 이걸 말할 데가 여기 밖에 없네요. 여기, syo님 방밖에...... ㅠㅠ

syo 2018-08-31 19:22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로쟈님과 얽힌 사연이 다들 하나씩은 있는 것 같아요.
역시 로쟈님은 알라딘의 기둥뿌리시로군요.

로쟈 2018-08-31 23: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와 그런 인연까지 있으신 줄은 미처 몰랐네요.^^ 즐독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데, ˝세상에서 제일 잘 팔리는 서평˝을 쓴다고 하신 건, 흠, 오해의 소지가 있겠습니다. 저는 일개 서평가일 뿐이에요.^^;

syo 2018-09-01 00:34   좋아요 3 | URL
좋은 글 써주셔서 독자로서 제가 감사할 일이지요. 즐독할 수 있는 책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람없이 농담하는 스타일이라 과장이 과했던 부분이 많은데, 모쪼록 불쾌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수정이나 삭제의 필요성을 느끼시는 부분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별 거 아닌 글이라 걍 슥슥 지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일개‘ 서평가라는 말씀에는 저도 동의할 수가 없고, 계속 그렇게 주장하신다면 아마도 수많은 성토의 댓글이 달릴 걸로 예상합니다. ^-^

마태우스 2018-11-04 1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syo님 마태우스라고 합니다. 제가 이 책의 리뷰를 지금사 읽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서평이 바로 이런 서평이에요. 개인적인 에피소드가 들어가서 재미를 더하는 그런 서평이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존경을 바칩니다.

syo 2018-11-04 20:30   좋아요 1 | URL
생각도 못한 방문과, 받아들 도리가 없는 거대한 칭찬 말씀에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제가 대체 뭘 썼다고, 알라딘의 양대거성 동사서독 와룡봉추 로쟈님과 마태우스님의 댓글을 다 받고 말았네요. 영광입니다, 마태우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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