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85가지 얼굴 - 후설 현상학의 주요 개념들
조광제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안녕, 친구들? 철학 꼬꼬마들을 위한 숨은 명저 소개 시간이야. 나는 알라딘에서 분노의 포도알갱이를 맡고 있는 syo라고 해. 사람들은 나를 미친 개론서 덕후, 줄여서 미개덕이라 부르나 봐. 미개하고 좋은 별명이야. 신난다.

 

오늘 syo가 여러분에게 팔아먹을, 아차차, 소개할 책은 바로 조광제 선생님의 2008년 작, 의식의 85가지 얼굴이란다! 어때? 제목부터 섹시하지? 해리 포터 쌈 싸먹을 아광속으로 전 세계를 돌며 실컷 팔아먹은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떠오르지 않아? 하지만 슬프게도 그 책과는 달라. 달라도 너무 다르단다. 조금이라도 비슷했다면, 그레이처럼 5페이지마다는 아니더라도 한 50페이지 정도에서 한 번이라도 해줬(?)으면, 그랬다면 친구들아, 친구들도 알았겠지, 이 책이 세상에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근데, 친구들, 어때? 몰랐지? 처음 보지, 이 책? 각설하고,

 

제목을 보면 무슨 심리학책이거나 정신분석학을 다룬 책인 것 같지만 사실 이 책은 현상학이라는 철학 분야의 창시자인 에드문트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에 대한 개론서야. 현상학이란 말, 다들 한 번씩 들어봤지? 이런, syo가 우리 친구들을 너무 무시했구나. 이런 쪼다같은 질문이나 던지고. 당연히 다 알겠지, 현상학. 상식이잖아? 초등학교에서 구구단 9단까지 다 배우고 나면 선생님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9단까지 외웠으니 이제 현상학을 배워볼까? 하면서 다 가르쳐주시잖아. 구구단 배우고 현상학 배우고 나눗셈 배우잖아. 그 다음에 분수 배우고…… 표정들이 왜 그래? 내가 무슨 천하의 개소리라도 하는 것처럼…… , 안 돼. 농담이었어. 돌아와 친구들아! 각설할게…….

 

그럼 우리, 현상학이 무엇인지부터 이야기해 볼까? 현상학이란 말이야, 현상에 관한 학문이야. , 친구야, 지금 노려봤어? 더 말해 줄게. 현상한다는 것은 어떤 사물이나 사태가 우리 의식에 뿅! 하고 등장한다는 뜻이야. 아야, 던지지 마. 더 말해 줄까? 그렇다면 Insert Coin…… 역시 농담이었어. 이제 안 가는구나? 그럼 우리 의식에 뿅! 하고 등장하는 것에 대해 우리는 뭘 배워야 하는 걸까? 그게 현상학의 핵심 질문이지. 예를 들어, syo가 코를 잘 파서 둥글고 노릇노릇한 코딱지 하나를 꺼냈다고 생각해 봐. 물론 실제로 파지 않았어. 믿어 줘. 못 믿겠다고? 맞아. 못 믿을 노릇이야. 내 앞에 파놓은 저 코딱지가 진짜 코딱지야? 코딱지라 부르기 위해 응당 갖춰야 할 것들은 무엇이지? 이 코딱지의 윗면, 아랫면, 좌우 측면을 확인할 수는 있는데, 코딱지의 전체적인 실체는 한 번에 지각할 수 없잖아. 그렇다면 내가 의식하는 코딱지와 지금 눈앞의 코딱지가 일치할까? 코딱지를 판다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이지? 내 의식은 대체 어떻게 생겨먹었기에, 방금 코딱지를 판 놈이 지금 나하고 같은 인간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지? 뭐 이런 것들이 현상학에서 생각할 수 있는 질문 가운데 극히 일부분이라고 할까. 재미없었지? 재미없으면 각설하자.

 

후설 선생님 같이 배운 분이 저런 고민들을 해결하는 데 한평생을 바치는 걸 보면, 뭐랄까, 식자우환이랄까, 무서워서 코도 함부로 못 파겠어. 손가락에 묻은 코딱지를 보며 세 시간씩 사색에 잠기는 모습을 상상해 봐. 차라리 못 배우고 고민 없이 살다 가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까지 해. 그렇지만 뜻밖에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저런 질문들은 수천 년을 이어온 핵심질문들이었나 봐. 그 질문들에 대해 독창적인 해석을 만든 철학자들이 모여 하나의 분야를 이루거든. 구조주의니, 포스트모더니즘이니, 분석철학이니 하는 무시무시한 것들 있잖아. 그 가운데 하나인 현상학이 후설 쌤에서부터 시작됐다고 하니, 엄청 위대한 사람 아니겠어? 데리다라는 사람 알아? 그거 아주 무서운 인간이야. 읽다 보면 책을 완전 해체해버리고 싶게 만들거든. 그 사람이 학위논문 겸 최초 저작으로 낸 책이 후설 철학에서 발생의 문제라는 제목이야. 레비나스라고 들어봤어? 데리다보다 한 세대 정도 위의 철학자인데, 이 사람은 실제로 후설쌤 밑에서 배웠나봐. 이 사람은 후설 현상학에서의 직관 이론이라는 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고 해. 사르트르라는 또 다른 유명한 사람이 있지. 어느 날 친구 레몽 아롱이랑 여친 보부아르랑 카페에서 수다를 떠는 중이었는데, 이노무 레몽 아롱새끼아차, 미안 미안, 이 친구 레몽 아롱이가 자기보다 먼저 현상학이라는 것에 대해 배우고 거들먹거리더래. 자존심이 상해가지고 아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서점에 달려갔다지. 현상학에 관한 책을 싹 다 내놓으시오! 그랬더니 점원이 뭐지 이 찐따는, 하는 표정으로 서점을 뒤지고 뒤지더니 꼴랑 레비나스의 저 책 하나 주더래. 사르트르는 그 후 1년을 꼬박 현상학에 목을 맸대나 봐. 어지간히 지기 싫었나 봐. 헤겔, 후설과 함께 3H(반드시 3 Hell의 약자일 거야)이라 불린 하이데거가 후설의 조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유명하지. 후설 쌤의 위상이 뭐 이 정도야. 근데 우리 친구들은 후설 쌤을 잘 모르잖아. 그치? 헤겔이나 하이데거는 다들 한 번씩 들어봤을 거야, 그치? 그런데 3H로 함께 묶인다는 후설 쌤은 왜 이렇게 인지도가 떨어지는 걸까? syo도 그것이 알고 싶어. 각설하기 전에,


이런저런 책을 읽다보면 말야, , 이제 내가 철학에 관한 책도 좀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은 때가 오잖아. 그런 기분, 한두 번 무시하고 넘어갈 수는 있지만, 마주칠 때마다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 오고 그러지 않아? 그러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면 울며 겨자 먹기로 철학책 서가를 기웃기웃 거리게 되는데 말야, 책 고르기가 너무 어렵잖아! 철학자 고르기도 너무 어렵고! 누구를 읽으려면 누구를 읽어야 한다는데, 그 계본지 족본지 그것도 잘 모르겠고! 그럴 때 친구들아, 너희들의 곁에는 알라딘의 미개덕, 누가 미더덕이래? 알라딘의 미개덕, syo가 있잖아. 알려 줄게. 내가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큰 관심은 없다, ! 내가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시간은 없다, ! 내가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의지는 없다, !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철학에 관심은 있는데 기본 소양이 없다, ! 손든 친구들아, 개론서의 세계로 온 것을 환영해. 한국에서 개론서로 공부하기 좋은 철학자 세 명을 알려줄게. 바로 마니프야.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순서대로, 마르크스-니체-프로이트지. 마니프에서 시작하렴. 얘들 관련해서는 정말 배운 거 하나 없이 밑바닥에서 시작해도 꽤나 높은 곳까지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많은 책들이 나와 있거든. 수준별 단계별 학습도 가능한 실정이야. 물론 이 세 명을 권하는 것이 단지 개론서가 많다는 이유 때문은 아냐. 자체로 중요한 사람들이거든. 철학사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가는 시점에 위대한 아이디어를 제공한 세 명이지. 그래서 개론서도 많은 거고. 알겠지? 이 세 명에서 한 명을 더 덧붙인다면 우선 푸코를, 그리고 한 명 더 권할 기회를 준다면 후설 쌤을 추천할게. 푸코는 뜻밖에 푸코만 가지고도 웬만큼 읽어지고, 후설은 앞이 없거든. 후설이 시작이야. 현상학의 시작. 선행학습이 없어도 되는 철학자라는 게, 야매로 철학공부 하는 사람들한테는 굉장히 메리트 있는 특징이거든.

 

물론 눈을 가늘게 뜨고 찾아보면 후설 앞도 있어. 현상학을 똑바로 이야기하려면 후설에 앞서 브렌타노라는 사람을 이야기해야 한다더라. 브렌타노라니, 들어는 봤어? syo는 미취학 아동일 때 그런 이름의 상표가 붙은 티셔츠를 입었던 기억이야. 노랑색 갈색 줄무늬였는데, 참 아끼던 티셔츠였지……. 브렌타노 검색하면 책 한 권 나와. 의미 없다는 이야기야. 그게 의미 있는 사람들한테는 의미가 있겠지만, 우리한테는 그 사람들조차도 의미가 없는 게 현실이야. 대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겠어? 또 플라톤이야? , 생각해 봐. 내가 내 여친 하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단군할아버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싸그리 사랑하는 게, 과연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이겠냐고. 각설하고,

 

사실 후설에 대해 땅바닥부터 공부하기에 좋은 책이 거의 없다시피 한 실정이야. 후설 냄새 좀 맡아본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은 생각보다 탄탄하게 구비되어 있어. 심지어 후설의 자신의 저작은, 헤겔이나 하이데거보다 훨씬 더 많이 번역되어 있는 것처럼 보여. 주저라 할 만한 것들은 거의 다 번역이 되어 있지.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알려줄까? 그 많은 후설의 저서들을 이종훈 선생님이 거의 도맡아 번역하고 있다는 거야. 검색해서 이걸 찍어도 이종훈, 저걸 찍어도 이종훈, 이종훈, 이종훈, 이종훈이야. 사물과 공간이라는 책만 빼면 전부 이종훈 선생님의 이름을 달고 있지. 이종훈 선생님께 보약이라도 한 첩 지어 올리고 싶은 심정이야. 왜냐고? 그 이유는 더 놀라워. 바로 후설이 범인이지. 후설은 생전에 4절지 크기 4만장의 원고를 남겼대. ~ 4만 장. 하루에 한 장 쓰기도 빡센데. 229일은 쉬어주고 하루에 한 장씩 쓰면 4만 장 쓰는데 109.589년이 걸리지. 심지어 4절지는 한 장 넓이가 A43장도 넘어. 심지어 잡소리 없이 철학적 내용을 담은 원고로만 그랬대잖아. 지금 이 A4 3장정도 되는 뻘소리를 쓰기 위해서 syo가 얼마나 낑낑대고 있는지, 친구들아 아니? 지금도 세계 모처의 어둠 속에서 후설 전집이 30권인지 40권인지를 돌파하고 계속 간행되고 있대. 하늘이시여, 제발 이종훈 선생님의 120살 생신잔치에 축하 떡을 보낼 수 있게 허락해 주소서……. 각설하고 다시,

 

사실 후설에 대해 쌩판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기에 좋은 책들이 그다지 없는 실정이야. 이 책 역시 그런 면이 있어. syo에게는 말야, 국내 출간된 이런저런 개론서들을 뒤지고, 그러다 개론서한테 뒤지고, 이해가 안 되는 개론서들을 내동댕이치고, 그러다 이해가 안 되는 자신을 내동댕이치고, 정신이 들면 다시 또 읽고, 그러다 정신이 나가면 다시 또 울고, 이런 애달픈 반복을 통해 근본은 없지만 알게 모르게 확보해 놓은 후설에 대한 선이해가 있었어. 그 덕에 이 책 의식의 85가지 얼굴이 얼마나 좋은 책인지를 느낄 수 있었지. 이 책은 후설의 개념들을 따박따박 개념 단위로 설명을 해 주거든. 뭐랄까,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참고서 같달까? 철학 분야에는 뜻밖에 그런 식으로 다소 유치할 정도로 조목조목 알려주는 개론서가 드물어. 일본에서 건너온 애들이 그런 건 잘하지. 이것이 핵심이다! 이것만 알면 5분 안에 철학사를 정리해서 발표할 수 있다! 이걸로 당신은 승진과 사랑을 모두 쟁취할 수 있다! 뭐 그런 멘트들이 표지나 띠지에 떡 박혀있는 책들 말이야. 낯부끄러운 줄도 모르나, 어디서 약을 팔어 팔긴- 싶으면서도 사실 도움이 될 때가 있긴 하거든. 잘 모를 때는 더욱 그렇지. 이 책은 당연히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서, 후설이 사람 이름인줄도 몰랐던 친구들에게는 이 책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일거야. 그런 친구들은 준비운동이 조금은 필요해. 도서관에 가면 한 권에 여러 명의 철학자들을 짧고 간단하게 다루는 종류의 철학책들이 많아. 그런 책들에서 후설이나 현상학에 관련된 꼭지들을 발췌해서 읽으면 조금은 친해질 수 있을 거야. 도서관에 들를 때마다, 잠깐씩 시간을 내서 한 꼭지 읽고 돌아오는 여유를 부리면 어떨까? 지금 이 글이 페이퍼였으면 그런 책들을 주욱 나열해 줄 텐데, 이 모양 이 꼴이라도 이게 지금 리뷰란다. ~~ ~~

 

이 글에서 후설의 이론에 대해 조금이라도 개론해주기를 바랐던 친구들이 있다면, 반성의 댓글을 달도록 해. 그러지 않을 거야. 개론서를 개론하는 건 슬픈 일이거든. 그게 가능하다면 개론의 개론의 개론도 가능하겠지. 개론의 개론의 개론의 개론도 가능할거야. 그러다 결국 딱 한 줄로 줄어들어 버리면 좋을까? 아마 싫을 걸? 봐봐. 현상학이란 말이야, 현상에 대한 학문이야. 어때? syo가 아까 이렇게 말했을 때 친구들, 날 죽일 듯이 노려봤잖아? 이 말을 사전이 그러는 것처럼, 현상학은 세계와 그 내부의 다양한 실재적 또는 상상적인 대상의 존재를 세계가 그러한 것으로서 우리들에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과 그 구조를 통해서 연구해가는 학문이다- 라고 길게 말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어, 친구들아. 나아지려면, 우리가 읽어야 해.

 

오늘은 이쯤에서 각설할까? 하도 여기저기 각설했더니 각설이라도 된 기분이야. 앞으로는 미개덕보다 각설이라고 불러줘도 좋겠다. 별명이 많이 생기는 건 좋은 일이잖아? 야구판에는 별명이 하도 많아서 별명이 김별명인 선수가 있는데 말이야, 각설할까?

 

그럼 철학 꼬꼬마 친구들, syo는 다음 시간에 다른 책을 팔러, 아니아니, 소개하러 다시 돌아올게. 죽지도 않고 또 오는 각설이처럼. , 인사할까? 친구들, 안녕~~~~~


 

나라고 해서 이렇게 살고 싶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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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과도기 2019-10-23 0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설의 이름은 철학 입문서에서 두어번 접한 적이 있습니다만, 후설의 철학적 위상을 이토록 간명하게 이해시켜 주시다니... 정말 탁월한 글이어서 다른 읽을 책을 제쳐두고 도서관에서 언급하신 책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문체와 글의 흐름이 너무 맛깔나고 자연스러웠서 좋았습니다. 유튜브 클립을 보는 듯한!

(쓰고 보니 낄끼빠빠 못하는 비평가처럼 적었습니다만... 그만큼 좋은 syo님의 글 중 유독 좋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syo 2019-10-23 08:50   좋아요 0 | URL
과도기님 과찬이십니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겉핥기 정보를 잔재주로 부풀려서 쓴 리뷰예요. syo의 글이 언제나 그렇듯이요 ㅎㅎㅎㅎㅎ

좋은 책인데, 폐가 아닐지ㅎ

반유행열반인 2019-10-23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 기립 박수 치고 눈물 닦고...) 출판사님, 무덤에 계신 후설 선생님, syo에게 입금하세요. 계좌는 이 아래에 달릴 겁니다.
(지금 수많은 알라디너가 주문하기를 누르고 절판 서적을 찾아 도서관으로 달려가 후후후후후설이요! 를 외치고 있습니다. 판매 인센티브 좀 떼 줘야죠)

syo 2019-10-23 08:51   좋아요 1 | URL
후설 쌤이 보면 입금은 커녕 현상학적으로 혀를 찰 겁니다ㅋㅋㅋ
우리 철학 꼬꼬마 친구들이 꼬꼬마라서 넘 다행이야 ㅎㅎ

수연 2019-10-23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_ 짱이야. 철학 꼬꼬마 아줌마는 막 물개 박수 쳤잖아요, 아침부터.

syo 2019-10-23 08:52   좋아요 0 | URL
아침 나절에 작은 미소 한 방 실어 나를 수 있었으면 된 거죠 ㅎㅎㅎ

페넬로페 2019-10-23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샘!
철학 꼬꼬꼬마 학생인 저!
강의 잘 들었어요^^
다시오는 각설이~~
기다릴께요**

syo 2019-10-23 08:53   좋아요 0 | URL
사실 아무도 안 만들어주는 별명 지가 스스로 만들어서 퍼뜨리네요ㅎㅎㅎㅎ
각설이는 돌아옵니다!! 감사합니다^-^

다락방 2019-10-23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다..

그리고 나 미더덕하고 각설하고 가지고 댓글 쓸랬더니 쇼님이 다 선수쳤네요? ㅎㅎ

syo 2019-10-23 08:55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예상 범위 안에 포획되셨어요? 사실 미더덕은 놓칠 뻔 했습니다.....

bookholic 2019-10-23 0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을 소개하지 마시고
책을 쓰시라니까요^^

syo 2019-10-23 08:56   좋아요 1 | URL
북홀릭님 오랜만입니다 ㅎㅎㅎ
아차, 생각해보니 이건 북홀릭님 리뷰스타일을 훔쳐낸 셈이군요.....

다락방 2019-10-23 0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저거 공부한 종이... 너무 좋다. 나는 저런 사진에 페티쉬 있어요, 진짜. 너무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syo 2019-10-23 08:59   좋아요 0 | URL
공부한 종이라기보다, 공부하기 싫어하는 종이에 가까워요. 정신차려보니 똥그란 얼굴 막 그리고 있더라니까.....

다락방 2019-10-23 09:02   좋아요 0 | URL
저거 사진이 옆으로 누워있잖아요. 그래서 내가 저거 사진 클릭해서 막 고개를 구십도로 꺽고 읽으려고 시도했다. 몇 번이나..
수학 문제였으면 저는 벌써 기절했을거에요.. 너무 멋져서.........

syo 2019-10-23 09:05   좋아요 0 | URL
알라딘이 사진을 자꾸 제 맘대로 돌려요. 무조건 옆으로 긴 사진만 올라가나봐.... 다음 번에는 수학 푼 거 올려 볼까? 구몬 수학이지만.....

단발머리 2019-10-23 1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 너무 쉬운 여자인가. 첫 줄부터 웃음보 터져 버렸어요. 끝까지 읽으면서 줄어드는 문단들이 넘넘 아쉽네요.
얼른 다시 돌아와요, 각설씨!!!

syo 2019-10-23 22:09   좋아요 0 | URL
각설이 never die.....

stella.K 2019-10-23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리뷰를 이렇게도 쓸 수 있군요.
철학 특히 현상학 공부 안 해도 밥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고 생각하는데
스요님이야 말로 알라딘을 넘어 진정한 독서계의 미개덕이로군요.
그런데 이 책이 품절이라니.
이달의 리뷰로 점 찍고 싶은데 과연 알라딘이 품절된 책에 그런 영광을 주기도 할런지
그걸 잘 모르겠네요. 암튼 훌륭합니다!!

syo 2019-10-23 22:11   좋아요 0 | URL
안 하면 밥 먹고 사는데 지장 있는 게 세상에 뭐가 있을까요 ㅎㅎㅎ
요즘은 어떻게든 밥은 먹고 살아지는 세상이잖아요.

이 책이 품절이었다니, 몰랐네요.
사 놓길 잘했지......

스텔라님이 재밌게 읽으셨으면 그걸로 됐습니다. 이달의 리뷰 그런 거, 각설할게요.
 
미루기의 천재들 -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찰스 다윈에서 당신과 나에게로 이어지는 미루기의 역사
앤드루 산텔라 지음, 김하현 옮김 / 어크로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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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다닐 즈음해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의 남자아이들은 대개가 공룡 덕후지만, 유독 공룡에 대해 더 잘 아는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에서 같은 반으로 한 번 스치고 중학교 때 다시 한 반에서 만났는데 여전히 두꺼운 하드커버 공룡 도감을 지참하고 다녔으며, 쉬는 시간이면 짤짤이나 판치기를 하는 아이들의 열기로 교실이 라스베이거스가 되건 말건 책상 위에 도감을 펼쳐 놓고는 애틋한 눈빛으로 각종 사우루스들을 어루만지곤 하는 조용한 친구였다. 아이들은 그를 사우루스 지니어스라는 4·4조 민요 율격의 라임 쩌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한 번은 그에게 나이 열다섯에 그따위로 불리는 기분에 대해 물은 적이 있다. 싫거나 짜증나지 않느냐고. 그는 이파리 뜯어먹는 아파토사우루스라도 되는 양 특유의 느릿느릿한 동작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만 아쉬울 뿐이라고 했다. 공룡에는 꼭 사우루스만 있는 것은 아니라며......

 

우리 시절 남자 중고등학교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또 다른 유형의 천재로는 삼국지 천재를 들 수 있겠다. 세상에는 삼국지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상대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대체로 삼국지 회독수를 쌓은 사람들은 언변과 지략이 축적되어 있으므로 덤벼봤자 물리치기 어렵다는 식으로 해석되는 듯한데, 실제로 겪어보면 삼국지 빠들은 삼국지에 관한 견해충돌 앞에서는 마더빠더도 없는 독종들이라고 해석하는 쪽이 적확한 듯하다. ‘삼국지연의만 읽고 정사 삼국지를 읽지 않은 인간을 아예 삼국지를 모르는 사람보다 더 하자로 취급하는 이 성골 삼국지 천재들은, 전투 한 번 없이 일주일이 지나면 그게 더 이상한 난세 속 그 모든 크고 작은 싸움의 시간 순서, 지휘관, 참여 병력, 승패를 가른 전술 패턴을 개략적으로나마 숙지하고 있었다. 삼국지가 농구나 축구보다 더 재미있고, 인간은 자신에게 더 큰 효용을 주는 재화를 선택하는 것이 이성적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체육시간에도 벤치에 앉아 적벽대전을 논했다. 특히 우리가 와룡봉추라고 불렀던 두 삼국지 천재들은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면서 황건적의 난을, 준비운동을 하면서 군웅할거를, 벤치에서 삼국정립을, 마침내 교실로 돌아와 다시 교복으로 갈아입으면서 진나라의 통일을 복기하며 한 시대를 마무리 짓는 그야말로 삼국지 비르투오소들이었는데, 어느 날인가는 뜻밖에 와룡은 농구를 봉추는 축구를 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3점 슛을 당연하고도 장쾌하게 실패하며 실점의 빌미를 제공한 와룡을 붙들고 도대체 오늘은 왜 늘 하던 대로 봉추와 함께 난세를 종횡무진하지 않고 코트에 들어와서 민폐질이냐고 따졌더니 분한 얼굴로 대답해왔다. 아니, 봉추 저 새끼가, 장료가 장합보다 훌륭한 장수라고 하더라고. , 정말 상종 못할 새끼 아니냐. , 너야말로 정말 그런 새끼 아니냐. 와룡은 당당하게 두 손으로 드리블을 치면서 또 다른 실점을 이끌어냈지만 막상 본인은 도대체 무얼 그리 잘못했는지를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장룐지 장합인지 하여튼 그 양반이 무덤을 박차고 나와 서슬 퍼런 청룡언월도로 뎅겅 네놈의 목을 쳐주면 내가 그걸 주워서 덩크를 넣겠는데 싶었다. 그날 이후로 그들은 다시는 함께 삼국지를 논하지 않았다. 이후, 와룡인지 봉추인지 둘 중 한 천재가 이제 삼국지는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며 하산을 선언한 뒤 일본 전국 시대에 대해 깊은 연구에 돌입했다는 소문이 돌았고, 그걸 끝으로 그들과는 더 이상 인연이 이어지지 않았다.

 


 

2

 

어른이 되기 전까지 syo가 만난 천재란 대체로 저런 귀엽고 무해한 녀석들이었다. 지방 도시의 교육열이 맹렬하지 않은 학군에 모인 꼬꼬마들은 고만고만해서 다정했다. 먹고 먹히는 독한 등수 싸움 없이 학교생활이라는 게 끝났고, 기어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다. 학기 시작 전에 미리 상경해 하숙집을 계약하고는, 땅 위로 달리는 지하철(!!)을 타고, 강인지 바다인지 한참 아리까리한 거대한 한강(!!)을 건너면서 촌놈은 생각했다. 이 넓고 높고 빠른 곳에는 또 어떤 소소하고 다감한 천재들이 있을까?

 

그런 천재들은 없었다. 혹은 숨었거나. 그 대신, 진짜 천재들이 있었다. 재수 없지만 감탄스럽고, 꼴 보기 싫지만 존경스럽고, 친하게 지내고 싶지는 않지만 조별 과제는 함께 하고 싶은, 사전적 정의 그대로의 천재들이 서울엔 잔뜩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딱히 숨기려 하지 않았고, 줄줄 흘리고 다녔다.

 

누가 봐도 파마머린데 그게 제가 타고난 머리라 주장했던 김천재는 분신술이라도 배웠는지, 150명 정원인 동기들이 몇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벌이는 모든 술자리에 빠짐없이 등장했다. 그는 숙취 상태에서 한 과목 중간고사를 뚝딱 해치우고, 비어 있는 한 시간 반 동안 해장국 집에 들러 해장국 한 그릇에 소주 한 병 반을 마시고 돌아와 다음 과목 시험을 치렀다. 그러고도 꽤 잘 본 눈치였다. 다른 아이들은 말아먹은 중간고사를 벌충하려고 기를 쓰는 기말고사 기간에, 김천재는 같이 술 마실 사람이 없어서 대신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새벽이슬을 맞고 교실에 기어들어와 엎어져 자곤 했다. 넌 공부 안하냐? syo가 물었다. 김천재는 고개도 들지 않고 대답했다. 당연하지, 그런 거 안 해. 그랬는데 2학기 개강하고 확인해보니 김천재의 1학기 성적표에는 16학점 A+, 2학점 A0가 찍혀 있었다. 넌 그렇게 술 마시고 PC방 다니면서 무슨 수로 이 학점을 받았냐. syo 카트라이더가 바나나를 슬쩍 흘리면서 물었다. 책 잠깐 봤지. 김천재 카트라이더가 바나나를 회피하며 시크하게 대답했다. 게임속의 syo가 드리프트를 시도하는 동안, 내면의 syo는 주머니 속에서 쟤를 찌를 칼을 꺼낸다. , 너 공부 그런 거 안 한다며. 김천재는 지금 너의 말을 나는 이해할 수 없노라- 하는 말투로 반문한다. , 물리, 화학, 미적, 논리회로설계, C언어 기초, 그런 과목을 공부라고 할 수가 있어? 걔들은 그냥 소양아니냐? , 제발 장료든 장합이든 누구든 뭐든 좋으니 무덤에서 튀어나와 이놈의 목을 뎅겅 쳐 줘요. 뚜껑 열고 뇌 꺼내서 내거랑 바꾸게...... 그러나 syo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어느새 나를 추월해 앞서가는 저 천재의 뒤통수에 물폭탄을 던지는 것 말고는 딱히 없었다.

 


 

3

 

무슨 일인지, 어느 순간 김천재는 학교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이천재는 수능을 다시 봐 의대생이 되고, 노천재는 스위스에 있는 어머어마한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가고, 쟤는 천재라고 부르기는 좀 빠지지 않나 싶었던 홍수재는 카이스트로 적을 옮기고, 하여간 이 좁은 물에서 더는 놀 수 없다며 세상 여기저기로 흩어지는 무수한 천재들이 있었다. 천재들이 나타났다 사라진 자리에서 syo는 왜 나는 천재로 태어나지 못한 걸까를 고민하면서 그저 syo로 늙어만 갔다. 그러다 인생이 삐끗, 군대가 늙은 syo를 냉큼 삼키고 말았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 나비 꽃나비 담장 위에 날아도 국방부 시계는 잘도 돌고 돌아갔고, 때가 되자 군대가 이제 더 늙은 syo 너는 필요 없다 퉤, 하고 뱉어냈는데, 그렇게 사회로 돌아온 syo는 자신에게 어떤 종류의 천재성도 없다는 슬픈 결론을 등에 얹고 씹어놓은 껌 같은 인생을 살기 시작한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고, 나는 드디어 내 천재성을 찾아냈다.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이 천재성.

 

그렇다. syo는 천재였다.

 

미루기의 천재.

 

 

 

4

 

마감이 눈앞에 닥쳐 있을 때 내 아파트는 언제나 최고로 깨끗하고, 내 파일은 가장 꼼꼼하게 정리되어 있고, 냉장고는 썩어가는 음식 없이 말끔히 치워져 있다. 반드시 해야 할 무언가가 있을 때, 나는 바로 그 일만 아니라면 무엇이든 용감무쌍하게 해내겠다고 결심한다. (21-22)

  

? ?


  내 패턴은 보통 이렇다글을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다가 내게 정말 간절히 필요한 건 방금 내린 커피 한 주전자라는 결론을 내린다커피를 내리려면 부엌으로 가야 한다일단 부엌에 가면 싱크대 위의 전구가 나갔다는 걸 알아채지 않을 수 없다전구를 갈려면 모퉁이에 있는 가게에 가야 한다그러나 새 전구를 사러 모퉁이까지 걸어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전구를 파는 가게는 정말 훌륭한 베이글을 파는 가게 바로 옆에 있고커피를 내리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베이글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반박이 어렵다또한 전구 가게와 베이글 가게가 있는 바로 그 블록에는 선집을 훑어보며 약간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서점이 있다그래서점이 글쓰기에 영감을 불어넣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막다른 골목으로 끌고 가는 바로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행하고 있는 자기기만을 인식하고 있다하지만 그게 다 무슨 상관인가물론 일은 나를 바른 길로 이끌어줄 유일한 방법이다하지만 때때로 일은 내가 무슨 일을 해서든 피하고 싶은 유일한 것이기도 하다. (59-60) 

  

진짜 난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책을 썼나?

 

  내 낙관주의는 아침에 일어난 직후 거의 정점을 찍는다나는 늘 아침을 사랑해왔다아침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 자기 연민과 심술이 덜하다아침에는 모든 게 가능해 보인다아이디어로 넘쳐흐른다가능성타인을 향한 사랑아무도 나를 멈출 수 없다하지만 오후 4시쯤 되면 나 자신과 인류에 대한 기대를 깨끗이 단념한다그렇게 미루기는 늦은 오후에 정점을 찍는다자포자기한 상태로 하루를 내려놓고 모든 걸 내일로 미루는 시간그때쯤 되면 예외 없이 현재에서 빠져나와 내일 아침을 위해 산다.

  내일을 향한 믿음은 일종의 신앙이다내일까지 살아남을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고 희망이 부활할 것이다일을 미루는 사람에게 있어 희망은 언제나 경험을 이긴다내 생각엔 이것이야말로 꽤 적절한 신앙의 의미다. (91-92) 


이제 그만해..... 이렇게까지 속속들이 알려줄 필요까지는 없잖아.

 

  그러는 사이 마감은 다가왔고나는 점점 더 깊은 구덩이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텅 빈 구덩이로 떨어지며 당장 해야 하는 일에서 필사적으로 멀어져갔다갑자기 트위터 프로필 업데이트야말로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업무처럼 보였다그동안 수집한 디지털 음원들을 정리하며 하루를 다 보내기도 했다요즘은 그런 일을 '큐레이팅'이라고 하던데.

  일을 꼭 끝마치겠다고 다짐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집중력을 잃어갔다일을 못 하니까 우울해졌고(여러분이 아는 그 악순환의 고리가 맞다우울하니까 더욱더 일을 할 수가 없었다업무를 회피하고 다른 자잘한 일들로 시간을 보내느라 몇 주의 노동시간이 통째로 사라졌다나는 이 책에 넣을 인용문을 찾느라 책장을 뒤지다가 그동안 읽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던 음악 평론집을 발견했다찾던 책은 전혀 아니었지만 선반에서 그 책을 꺼내 들었고얼마 지나지 않아 1980년대 뉴질랜드의 개러지팝garage-pop을 재검토하는 일에 푹 빠져들었다.

애초에 내가 뭘 찾고 있었는지는 영영 알 수 없게 되었다.

  더 이상 미루는 짓은 그만두고 일에 착수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이 지점에서 또다시 죄책감을 느끼곤 한다이름하여 메타-미루기라고 부를 법한 행동인데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증발해버리고 아무것도 안 하는 스스로의 태도에 다시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것이다. (100-101) 


내 이야기를 이만큼 잔뜩 하려면 뭐 허락이라도 미리 받아야 되는 거 아닙니까.....

 

 

 

5

 

저자는 달인을 넘어, 이미 미루기의 천재다. 심지어 이 책에 실을 인터뷰를 위해 뉴올리언스까지 날아갔지만, 막상 거기에 도착하자 인터뷰를 미루고 관광을 하다 그냥 돌아오기까지 한다.

 

그런데 미루기라면 syo도 어디서 꿀리지 않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설국리뷰를 준비 중이라는 사실을 여러 명에게 알렸다. 그와 동시에 그 리뷰에 대한 생각을 미뤘다. 설국5월에 읽었다. 5151944분에 생성한 설국.hwp 파일을 지금 열어봤는데, “국경의 긴 터널을 빠라고 쓰여 있다. 이게 syo가 두 달에 걸쳐 써 놓은설국리뷰의 전문입니다. 일주일에 한 글자 기세로 썼네요. 인정? 미루기 천재 인정? 이걸로 부족한가요?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월요일에 도서관에서 10권의 책을 빌려온다. 수요일 쯤 되면, 읽은 4권을 다른 도서관에다 반납하고 거기서 다시 10권을 빌려 온다. 그 즉시 월요일에 빌려온 남은 6권 읽기를 미룬다. 새로 빌려온 책부터. 그렇게 금요일 쯤 되면, 월요일 책 1, 수요일 책 4권 정도를 읽게 되는데, 그걸 다시 다른 도서관에 들고 가 반납한 다음 거기도 또 9권을 빌려온다. 그 즉시 남아 있는 월요일 책 5권과 수요일 책 6권 읽기를 미룬다. 역시 새 책 first. 그렇게 두 주가 지나면, 결국 월요일에 빌린 책의 반절은 읽지도 못하고 바로 반납이다. 그럼 수요일 책은 다 읽는가 하면, 금요일 책 때문에 걔들도 대충 그냥 반납이다. 그럼 금요일 책은 읽는가 하면, 천만에요, 그 다음 주 월요일 새로 들고 온 책들 때문에 걔들도 대체로 그냥 반납이죠. 그럼 새 월요일 책들의 운명은 뭐가 다를까요..... 인정? 미루기 천재, 이번에는 인정?

 

 

 

6

 

좁은 의미의 천재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유해할 때가 있다. 그들이 특별히 나쁜 짓을 해서가 아니다. 가끔 그들은 그냥 숨만 쉬는데도 저도 모르게 주변 범재들의 가슴을 할퀸다. 내 무딘 손이 아무리 애를 써도 가 닿지 못하는 것들을 숨 쉬듯 당연하게 움켜쥐는 이들을 볼 때 마음은 비가역적으로 멍든다. 오랜 열등감만큼 무서운 것이 없다. 저 인간이 내뿜는 이산화탄소조차 부러워진다.

 

최초로 만난 천재들이 공룡이나 삼국지 천재였다는 것은 사실 내가 제대로 찾아먹지 못한 엄청난 행운이었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촘촘한 시선으로 돌아보았으면 뜻밖의 천재들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었을지도. 그랬다면 날카로운 천재들을 만났을 때도 찔리거나 베이지 않았을 텐데. 지금 돌아보면 그냥 숨만 쉬어도 아름다웠던 그 좋은 시절을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오염시키지 않을 수 있었을 텐데.

 

지금도 풀꽃 천재라든지, 정량 배식 천재라든지, 제설 작업과 눈사람 만들기의 천재, 알람 없이 제 시간에 일어나기의 천재, 이에 팥 끼지 않고 팥빙수 빨리 먹기의 천재 같은, 무해하고 크게 부럽지 않은 수많은 천재들이 발견되지 않은 채 조용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그들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세상을 해독하는 사람들이다.

 

미루기의 천재란 어쩌면 한낱 말장난에 그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무해한 천재라는 사실이 기껍다. 장난의 경계선에 아슬아슬 서서, 소소하다 못해 하찮아 보이는 특징에다가도 천재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 증거가 되서 뿌듯하다. 뭔가 더 좋은 사람, 한줌이나마 세상을 맑게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아니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서 기쁘다. 진부하고 뻔한 결론이겠지만, 나는 내가 좀 좋다.

 

 

 

7

 

이런 이유로, 앞으로도 꾸준히 미루겠습니다. 서른 해 넘게 살며 하나밖에 못 찾아낸 천재성인데, 꽉 잡아야죠.


다른 사람의 미루는 습관을 얼마나 나쁘게 보느냐와는 상관없이 내가 일을 미뤄야 하는 그럴듯한 이유는 언제나 찾아낼 수 있다.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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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07-05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을 만나기 전까지는 저도 몰랐습니다. 제 안에 천재성(?)이 있을거라고는.;;
근데 그거 진짜 천재성 맞을까요. 너무 많은 것 같은데요?

syo 2019-07-05 23:46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뭐 어때요. 여기서 우리가 이게 천재성이 아니라고 한들, 앞으로 안 미룰 것도 아닌데요 ㅎㅎ

서니데이 2019-07-05 23:47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거 하나는 너무 잘 할 수 있을 거예요.^^

2019-07-06 02: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7: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감은빛 2019-07-06 05: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진정한 미루기의 천재는 바로 저라고 우겨보고 싶습니다.
아마 syo 님은 제게 상대도 안될거라 자부합니다. ㅎㅎ

저는 본문에 나오는 김천재 같은 인물은 절대 아니었지만,
늘 시험기간만 되면 술을 마시러 다녔고(세상에 시험 기간만큼 술 마시기 좋은 때는 없죠!),
술을 먹다가 시험을 후다닥 치루고 다시 술 마시러 가기도 했지요.
물론 성적은 학사경고를 받기도 하고, 선동렬 방어율이 얼마인지 궁금한 이들이 찾아볼만한 수준이었지만요.

그랬어도 항상 저만 보면 ˝공명아, 너는 어찌 세상을 잘 못 만나 이러고 사느냐?˝라고 안타까워 해주신 선배도 있었답니다.

덕분에 한참 옛날 생각에 빠져봅니다. 고맙습니다!

syo 2019-07-06 07:52   좋아요 0 | URL
미루기에 대해서라면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을 거라고 짐작해보았습니다.
감은빛님의 과거사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면 감은빛님은 음주천재이시기도 한 듯.....ㅎㅎㅎ
감은빛님의 페이퍼를 읽어보면, 마시고 계시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술에 대해 깊은 애정이 느껴지는 언급이 등장하잖아요^-^

별 거 아닌 글인데 슥 지나치지 않으시고, 늘 댓글까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2019-07-06 0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11: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7-06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9-07-06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패턴은 보통 이렇다.- 로 시작되는 이 부분 인용, 저 syo님이 본인 얘기 쓰신 건 줄 알았잖아요 ㅋㅋ
미루기의 천재들 이 책, 너무 찔려서 못 읽는 사람 많을 듯요..

syo 2019-07-06 22:30   좋아요 0 | URL
보세요. 독서괭님조차 syo의 천재성을 인정하고 계신거라구요 ㅋㅋㅋㅋㅋ

AgalmA 2019-07-12 15: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 읽었고 리뷰 쓰려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다가 도서관 반납 기일 왕창 밀리고 리뷰 못 쓰고 울면서(얘 때문에 다른 책도 같이 보내려고 반납을 못하고 있었는데ㅜㅜ) 왕창 대출 정지 10일 먹은... 저도 미루기 대천재에 비비적...할게요.

syo 2019-07-12 15:21   좋아요 1 | URL
미루기천재들의 천재성 간증 사례가 폭주하고 있네요. 아 아름다운 세상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9-07-12 16:26   좋아요 1 | URL
하하하! 아갈마님 10일~전 일주일 지나고 있습니다 ㅜㅜ내일은 꼭 반납하리라~ㅋㅋ공감 꾸욱 눌르고 갑니다 동질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세상! 쇼님 나 지금 페이퍼 쓰다가 또 미루는 중~ㅋㅋ

카알벨루치 2019-07-12 16:27   좋아요 1 | URL
참고로 전 연체먹어도 가족카드가 있어 애들껄로 또 빌리고 연체먹고 또 빌리고 연체먹고 그래요 ㅎㅎ

syo 2019-07-12 19:28   좋아요 1 | URL
다같이 미루고 또 미룹시다.
그렇게 미루고 미루고 죽는 것도 미루고 계속 미뤄서 우리 영생을 노려요....

AgalmA 2019-07-13 03:38   좋아요 1 | URL
한 달 동안 책을 못 빌려서 신간 책을 열심히 산 적도 있어요ㅋㅠ);;;
미루고 있는 거 나열하자면 눈물이 삼 만리ㅠㅠ
 
소설을 쓰고 싶다면
제임스 설터 지음, 서창렬 옮김 / 마음산책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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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소설을 쓰고 싶은 욕심이라곤 개불 새끼발가락만큼도 없지만 제임스 설터처럼 쓸 수 있게만 해준다면야 소설 그거 몇 만 번이고 시도해 볼 수 있다- 뭐 이런 주의다. 설터를 향한 나의 사랑이 이렇게 맹목적이다.

  

-1.1  나도 이 사람처럼 쓰고 싶다- 라는 욕심에 부질없이 몸부림치게 만드는 작가가 누구에게나 하나씩은 있는 줄만 알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심지어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은 확고하지만 딱히 워너비 작가가 있는 것은 아닌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또 어른 쪽으로 씁쓸하게 한 발짝 더 밀려가는 느낌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다르구나. 너는 내가 이상하겠지. 내게 네가 이상하듯이.

 

 

2  나는 언제나 나의 글이 싫었다. 대체로 하찮고, 그래서 늘 보잘것없어 보였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하찮고 보잘것없을 예정이다. 예정이란 말은 살짝 비겁한 것 같고, 그러면 운명이라고 할까? 그러나 그걸 다 알면서도 쓸 일만 생기면 썼고, 쓸 일이 생기지 않으면 쓸 일을 만들어서 썼고, 쓸 일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그냥 썼다. 쓰레기를 만드는 일에는 늘 양심의 가책이 뒤따르지만 한 가지 강령만 준수하면 그런대로 견뎌낼 만하다.

 

-2.1  지금 쓰는 문장이 지금까지의 내가 고민 없이 써낼 법한 그저 그런 문장이라면, 미련 없이 내다버릴 것.

 

-2.2  하지만 재능 없는 사람에게 그건 결국 아무것도 쓰지 말자는 다짐이나 같다. 보채듯 깜빡거리는 커서를 마주하고 앉아서 자신 있게 누를 수 있는 키라고는 스페이스와 백스페이스밖에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는 시간들이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다. 타협의 때가 왔다. 살아야 했으니까.

 

-2.3  딱 한 문장, 한편의 글 속에 어제까지는 결코 이 세상에 없었을 문장을 더도 말고 딱 하나만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기꺼이 스스로를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

  

-2.4  세상은 넓고, 냉혹하리만치 좋은 문장들이 많고, 그 결과 스스로를 용서해줄 설득력 있는 변명거리가 될 딱 한 문장을 찾는 것조차 한없이 불가능에 가깝다.

 

-2.5  결국 나는 철저하고 처절하게 물러선다. 내가 뭐라고. 내 깜냥에 뭐 안나 카레니나를 만들 거야, 토지를 만들 거야. 유별나게 굴지 말고 그냥 생긴 대로 살자. 세상 사람들 다 그렇게 살아.

 

 

3  한 인간의 삶과 또 그가 스스로의 삶을 묘사하기 위해 갖춰야 할 글 솜씨를 놓고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삶에 비해 글이 부족한 사람, 글에 비해 삶이 부족한 사람, 그리고 삶과 글이 서로에게 충분하고 충만한 사람.

 

-3.1  어느 시점까지는 모든 사람들이 넘치는 삶과 그 삶을 다 표현하기에 너무도 미흡한 글을 지니고 산다. 그러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특정한 경계선을 넘어서는 때가 찾아오고, 인간은 세 갈래 길 가운데 한 쪽으로 떠밀려 나아간다. 삶이란 지칠 줄 모르고 덤벼드는 짐승 같아서, 대부분의 경우 삶이 축적되는 속도는 몸 가누기 어려울 만큼 빠른데 비해 글이 단련되는 속도는 느리다


-3.2  또 어떤 이들은 삶에 실컷 물리고 두들겨 맞은 상처를 품에 안고 골방으로 숨어들어 죽은 체하거나 와신상담한다. 숨어버린 그들을 찾는 삶의 이빨이 닿지 않는 동안 그들은 조용히 그러나 치열하게 자신의 글을 단련하는데, 그런 기간이 길어지다 보면 간혹 글이 삶을 넘치는 인간이 탄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나 같은.

 

-3.3  돌을 맞은 호수의 파문이 수면보다 높이 섰다 낮게 앉았다를 반복하다가 잠잠해지듯, 삶과 글이 서로에게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인간이 되는 일은, 둘 중 어느 하나가 나머지 하나를 초과하는 국면이 교대로 일어나는 파도 위에서 실컷 자빠져가며 긴 서핑을 끝내고 난 뒤에야 겨우 이를 수 있는 드높은 경지다. 빼어난 글을 욕심내는 데 주저하지 않아야 하며, 훌륭한 삶을 갈구하는 데 지치지 않아야 한다. 훌륭한 삶을 빼어난 글로 드러내는 것. 훌륭한 내용과 빼어난 스타일, 그런데 그것은 우리가 소설을 사랑할 때 놓치지 않고 손에 꼽는 조건들이다. 그리하여 한 인간이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그대로 한 권의 소설책처럼 여겨진다면, 좋은 소설을 쓰는 방법은 좋은 인간이 되는 방법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삶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3.4   삶이 한 편의 소설이라면.


-3.5   

사심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그건 기교의 문제가 아니에요나는 솔기가 터져서 나 자신이 적절히 드러나게 하려면 어느 정도까지 고백을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어요동시에 소설처럼 읽히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내 삶에 관심을 가지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_ 77

 

4  어디서든 흔히 들을 수 있을 것처럼 널리 알려져 있지만 현실세계에서 듣기란 의외로 쉽지 않은 말 가운데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내 인생 역정을 소설로 쓰면 대하소설 한 편은 거뜬하다고같은 대사가 있다. 그래서 이 말은 주로 인간사보다는 인간됨을 드러내는 용도로, 그가 없는 자리에서 타인의 입으로부터 또 다른 타인의 귀로 넘어가는 방식으로 소비된다. 하지만 조롱으로 쓰고 버리기에 아까운 어떤 진실의 작은 파편 같은 것들을 저 말이 지니고 있어서 한 번 쪼개 본다.

 

-4.1  잘 된 소설들을 뒤져보면 의외로 역정이라고 이름붙일 만한 어마어마한 사건의 연속이 없이도 단단한 서사와 설득력 있는 서술로 책 한 권을 꽉 채운 좋은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는 이제 초현실적/비현실적 사건들을 만나면 소설 같다라기 보다는 영화 같다고 표현하는 쪽을 즐긴다. 소설 같은 이야기의 문턱은 예상보다 낮다. 소설 속 사건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훨씬 더 겪음직하고, 실제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어 넘기는 사건들은 우리의 짐작보다 훨씬 더 소설적이다. 대체적으로 보면 우리의 삶에 이야기는 충분하다. 그리고 이야기에 우리의 삶은 충분하다(물론 아닌 인간도 있다. 예를 들면 나 같은.)

 

-4.2  그러니까 자신의 자리에서 충실히 하루의 삶을 이어나가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혹은 더 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더 세심하게, 혹은 더 아름답게 묘파할 수 있는 글 솜씨일 수 있다. 가만 두면 허공에 흩어져버릴 뿐인 삶을 잡아채 고정시키면 우리는 그것으로 서랍을 만들어 과거를 보관하고, 거울을 만들어 현재를 살피고, 비료를 만들어 미래를 가꿀 수 있다. 그렇다면 소설을 쓰지 않는 이에게 역시 소설을 쓰는 법은 불필요하지 않다.

 

 

5 

  물론 하나하나의 단어가 모두 다 완벽한 단어일 수는 없습니다모든 방이 다 강이 바라보이는 방일 수는 없잖아요수많은 평범한 단어들이 한 권의 책을 만듭니다수많은 평범한 군인들 사이에 가끔씩 영웅들이 있는 군대처럼 말입니다하지만 잘못된 단어들또는 문장이나 해당 페이지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단어들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우리는 우리가 쓰고 있는 글에 대한 감식력이 있어야 합니다글이 나빠졌을 때 그걸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해요.

실은 올바른 단어는 없을 겁니다완벽한 단어는 더더욱 없을 테고요어쩌면 우리는 마음을 바꾸어서 두 단어를 바꾸거나 혹은 그 문장을 다시 써야 할지도 모릅니다모든 책이 모든 문장모든 단락에 대해 그렇게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모든 작가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좋은 정도가 있는 거예요.

  하지만 문체style는 그와는 다른 것입니다문체는 철저히 작가인 것이지요독자가 몇 줄 또는 한 페이지의 일부만 읽고 나서 작가가 누구인지 알아차릴 수 있다면그때 그 작가는 문체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플로베르는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없애려 노력했지요마치 자신의 태도자신의 아이러니 감각자신의 취향 등이 작품의 일부가 아니라는 듯 자기 자신 없이 작품이 존재하게 하려고 노력한 겁니다하지만 그는 작품에서 자신을 없앨 수 없었습니다작품에는 다른 어떤 것이 있으니까요나는 '문체'라는 말에 저항감을 느낍니다왜냐하면 그 말은 '장식'이나 '양식같은뭔가 긴요하지 않은 것을 떠올리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죠그래서 나는 종종 문체 대신 '목소리'라는 말을 선호하곤 합니다문체와 목소리는 정확히 똑같은 것은 아니에요문체는 선택적인 것이고 목소리는 거의 유전적인 것전적으로 독특한 것이지요다른 어떤 작가의 글도 이사크 디네센처럼 들리지 않습니다그 누구의 글도 레이먼드 카버나 포크너처럼 들리지 않습니다그들은 끊임없이 고쳐 씁니다바벨플로베르톨스토이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 말입니다그들에게 작가가 된다는 것은 고쳐 써야 하는 형벌을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그들이 쓰려고 했던 것은 그게 아니니까 말이에요혹은 쓰려고 했던 게 잘못 생각한 것이었으니까요또는 고치면 더 좋아질 수 있을 테니까요너무 길거나 단조롭거나 요점을 벗어났거나 좀 엉성한 것 같아 보이니까 말이에요그렇지만 그 작품은 언제나 그들이 한 말처럼 들립니다그것이 그들의 문체입니다그들의 목소리인 것입니다. _ 30-31

 

-5.1  세상엔 목소리가 너무나 많고, 그 가운데는 아찔할 정도로 아름답거나 부러울 정도로 힘 있는 목소리들도 있어서, 초라하고 약한 내 목소리 하나를 세상에 풀어 놓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오히려 뭔가를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늘 걱정한다. 그럼에도 뭔가를 계속 쓰는 이유는, 아무리 아름답고 힘 있는 목소리라도 세상 모든 곳에 닿는 것은 아니라는 것, 아예 소리를 내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이 삶이라면 내 목소리가 미치는 좁은 영역을 들어 줄만한 소리로 채워나가는 것은 내 책임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내 목소리를 가장 크게 듣는 귀는 바로 내 귀라는 것 때문이겠다.

   

-5.2  목소리는 힘이 세다. 잘 들리기만 한다면. 목소리를 잘 들리게 하는 것은 오로지 귀의 책임만은 아니다. 목청을 가다듬고, 혀를 부드럽게 하자. 웅얼거리지 말고, 진실한 눈빛과 따뜻한 표정으로, 목소리 뒤에 숨지 말고 목소리 앞을 가리지도 말고, 그저 목소리 위에 올라타서.

 

 

6  , 그리고 부록도 있다. 잘 들리게 말하는 사람은 잘 듣는다. 잘 듣지 않고 잘 들리게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6.1  써놓고 생각해 보니 부록이라고 부르기엔 너무 큼직한 선물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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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3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3 13: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5-1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책 읽고도 이렇게 멋있게 쓰시면...아니 게다가 설터보다 더 “-쓰고 싶다면”에 적합한 글을 이리 쓰시면...읽는 저는 감사합니다. 오늘은 (비루하게) 쓰는 저도 함께 감사드립니다.

syo 2019-05-13 13:11   좋아요 1 | URL
왜 또 이러세요ㅋㅋㅋㅋㅋㅋ 또 저하고 민망배틀 한 판 뜨실 거예요?? ㅋㅋㅋㅋㅋ

반유행열반인 2019-05-13 15:28   좋아요 0 | URL
솔직히 이 정도 잘 쓰신 글은 서재 올리면서 흠 나 좀 잘 쓰는 듯-하고 으쓱 하시지 않나요? ㅋㅋㅋ 계속 으쓱 하는 글 올려주세요. 저는 계속 으둠의 영역을 맡을게요. (넌 못 쓰고 너도 못 쓰고 난 더 못 써! syo는 잘 써!하는ㅋㅋ)

syo 2019-05-14 07:52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 으쓱으쓱 아니랍니다.
올리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늘 삐꾸같은 데가 많아서 글 하나 올리면 ‘수정‘ 버튼을 평균적으로 5~6번은 누른다구요.
으둠의 영역도 좋지만, 밝은 세상 함께 만들어요.....?

반유행열반인 2019-05-14 10:06   좋아요 0 | URL
고치고 고치라는 설터 할배의 가르침을 성실히 따르고 계시군요. 짝짝짝. (으둠이 있어야 밝음이 더 짙어지지요ㅎㅎ)

2019-05-14 14: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3 14: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0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4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식쟁이 2019-05-13 1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적고뇌 중이신 쇼님. 👍👍

syo 2019-05-14 07:57   좋아요 0 | URL
작가적 고뇌 같은 무시무시한 고뇌 아니에요 ㅎㅎㅎㅎㅎ
우우

칼르페디엠 2019-05-13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공무원 시험 준비중이셨군요. 제가 보기엔 쇼님은 작가를 하시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재능이 아까워요.
공무원이라니요..T..T
제가 잘 아는데 공무원의 삶은 정말 쇼님하고 잘 안맞을 듯요.
재고하시고 쇼님의 재능을 살려보세요~!

syo 2019-05-14 08:04   좋아요 0 | URL
칼르페디엠님은 저를 항상 좋게 봐 주시지요. 늘 작가를 권하시구요 ㅎㅎㅎ
이것 참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항상요 ㅎㅎ

저는 공무원의 삶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지만 제 재능에 대해서는 좀 알 것 같거든요. 전 그냥 알라딘 서재에 이런 저런 잡글이나 쓰면서 즐거워하면 될 딱 그 정도 깜냥이에요^-^

아직 공무원이 되지도 못했고, 운 좋게 공무원이 되어도 공무원으로 제 인생이 끝날지는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 것은 작가의 길을 걷기에는 제 재능이 비루하다는 거? ㅎㅎㅎㅎ 칼르페디엠님의 말씀은 정말 기분 좋은 칭찬으로 듣고 만족하겠습니다.

2019-05-14 14: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5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길담 2019-05-15 06: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자주 쓰게 되는 대학원생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한 편의 글 속에 결코 이 세상에 없었을 문장을 딱 하나만 만들어내기. 이것만 할 수 있어도 참 감사할 것 같아요.

syo 2019-05-15 09:53   좋아요 1 | URL
길담님 반답습니다.
꿈의 한 문장, 재능 없는 사람에겐 정말 꿈 같은 이야기인데요. 요즘은 이번 생을 통틀어 딱 한 문장 건지는 걸 희망하며 살아야하나 싶습니다.....
 
파리의 생활 좌파들 - 세상을 변화시키는 낯선 질문들
목수정 지음 / 생각정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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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0년대 초반, 60명의 코흘리개들이 모여 앉아 코를 흘리는 어느 시골 국민학교학급에서, 차별 혹은 부당한 대접을 받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최악의 소수자는 다름 아닌 왼손잡이였다.

 


2  오른손은 그야말로 옳은 손이었다. 실제로 우리 할머니는 오른손을 바른손이라 부르셨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왼손은 틀린 손, 그른 손이 되는 것이고 결국 그 시절, 코흘리개 syo는 왼손잡이가 아니라, 틀린 손잡이였다. 정의는 국가와 사회가 나서서 세우고 바로잡아야 하는 초월적 가치였으므로, 틀린 손잡이 아이들은 필연적으로 교정과 훈육의 대상으로서 나름의 고된 삶을 살아내야 했다. 국민학생 syo가 겪은 몇몇 사건들을 통해 그들의 고난을 짐작해보자.

 


3-1  syo(8, 경남 창녕 거주). 학교라는 곳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조약돌처럼 조그만 아이들이 빽빽이 들어찬 교실, 각자에게 주어진 정말 작은 책상 위에 커다란 네모 칸이 그려진 공책을 펴놓고 아이들은 한글을 배웠다. 칸 속에 희미한 색깔로 그려져 있는 선 위를 연필로 따라 그으면 가갸거겨를 쓸 수 있었다. 그게 또 재미있어서 몰두하는 그야말로 애기들이었다. syo는 집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왼손에 연필을 쥐고 칸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담임선생이라는 작자는 학부모가 순서를 정해서 사 바치게 되어 있는 지시봉이라는 물건을 들고 책상 사이사이를 거닐며 아이들이 글자를 그리는 모습을 감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틀린 손으로 연필을 쥐고 있는 syo를 발견, 지시봉으로 손을 탁 때리며 말한다.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는 거야.” 그런 규칙이 있다는 사실을 syo는 처음 알았다. 그래? 그렇다면 그래야지. 즉시 오른손으로 연필을 고쳐 잡았으나 글씨는 삐뚤빼뚤해지고, 무엇보다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주어진 시간이 다 지나갔고, 공책 한 바닥을 다 채우지 못한 아이들은 교탁 앞으로 나가 줄을 서서 손바닥을 맞고 자리로 돌아갔다. 생전 처음 맞아본 손바닥이 너무 아팠다. 그리고 억울했다. 내 실력이 이 정도 가 아닌데. 심지어 난 집에서 받아쓰기도 맨날 백점인데! 그리고 다음날, ‘나냐너녀가 시작되었다. 또 손바닥을 맞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syo는 왼손으로 연필을 쥐고는 제 기량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냐너녀에 몰입하여 주변도 잊고 네모 칸을 채우고 있었는데, 느닷없이 귀싸대기가 날아왔다. 너무 놀라 아픈 줄도 모른 채 올려다보니, 담임이라는 작자가 무슨 공산당 빨치산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으로 syo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는 거라고 했지!”

 


3-2  syo(9, 아직도 경남 창녕 거주). 천운으로 이번 선생은 좀 더 온건했다. 온건했지만 그녀 역시 글씨는 오른손으로 쓰는 주의였고, 그런 주의를 syo에게 주입시키기 위해 자주 주의를 주었다. 그럼에도 syo는 요지부동이었다. 싸대기를 맞아가면서도 선생이 안 볼 때는 몰래 다시 연필을 옮겨가며 지켜낸 왼손이었으니 주의를 주는 정도의 약한 처방으로는 syo틀린 손을 고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선생은 제 딴에 자기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징벌을 내렸다. 국민학교 2학년 1학기 syo의 통지표에는 이런 식의 문구가 쓰여 있었다. “성격이 활달하여 교우관계가 폭넓고 학업 성취도가 뛰어나지만 왼손으로 글을 씀.” 이건 플러스-마이너스 제로를 말하는 것일까? 활달한 성격 + 넓은 교우관계 + 뛰어난 학업성취도 왼손잡이 = 0? 그것이 궁금했던 아버지는 통지표를 들고 학교에 찾아가 선생과 면담한다. 그 자리에 syo도 있었다. 왼손잡이라는 이유로 1년 내내 얻어터지고 돌아올 때는 콧방귀도 안 뀌더니 통지표에 한 줄 적혀 있다고 당장 학교에 찾아가는 아버지의 교육관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선생의 당당함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님, 이유야 어찌 되었든 왼손으로 쓰는 건 교육상 고쳐야 합니다.”만 주구장창 반복되다보니 결국 아버지도 열이 받은 것이다. “이보세요, 선생님. 우리 애 교육은 제가 결정할 문제지 이제 반년 더 보고 말 선생님이 이래라 저래라 하실 건 아니지요. 목욕탕에서 짜장면을 시켜먹건, 똥밭에서 수박화채를 말아먹건 그건 우리 자유니까 선생님이 간섭하지 마세요.” 뭐 이런 식의 대꾸를 남기고 아버지는 돌아섰는데, 결국 아버지 입장에서도 아들이 왼손으로 글을 쓰는 건 똥밭에서 수박화채를 먹는 것과 유사한 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 왼손으로 쓰고 싶으면 그냥 써. 지들이 뭔데 지랄이야.” 이랬던 걸 보면, 경상도에서 태어나 경상도 남자로 경상경상 살다 가신 우리 보수 아버지(지지정당 민자당)에게도 뜻밖의 반골기질은 있었던 것 같다.

 


3-3  syo(10, 대구시 거주). 과연 대처의 선생은 달랐다.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해서는 틀린손잡이들을 교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는 화전양면전술을 구사, 친구들이 보는 데서는 때렸고 친구들이 없는 데서는 얼렀다. 굳이 왼손이 이유가 아니더라도 맞거나 단체기합을 받거나 하는 일이 여사였던 개 같은 시절이었으므로 3년쯤 국민학교를 다니고 보니 체벌은 피해야 할 일이 되었을 뿐, 행동양식을 교정하는 데는 이미 영향력을 소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어르고 달래는 것은 참신했다. 물론 참신하다고 효과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syo, 오른손을 쓰라는 건, 다 너를 위해서 그래. 봐봐, 우리 반에 너 말고 왼손으로 쓰는 애가 있니? 친구들 다 오른손잡이잖아. 너만 왼손으로 써서 되겠어?” “선생님, 우리 반에 저 하나 손 씨라고 제가 성을 갈 수는 없잖아요.” “syo, 그게 아니라, 우리 반에서 너만 왼손잡이인 것처럼, 온 세상에는 왼손잡이보다 오른손잡이들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물건들도 다 오른손잡이 기준으로 만들어져 있단다. 가위만 해도 봐봐, 네가 가위질을 잘 못하는 게, 가위가 오른손잡이용으로 만들어져서 그래요.” “선생님, 왼손잡이용 가위를 만들면 되잖아요.” “그런 건 못 만들어. 세상 사람들이 다 오른손잡인데 왜 왼손잡이용 가위를 만들겠어. 왼손잡이들이 오른손으로 바꾸면 일이 훨씬 쉬운데.” “선생님, 사람들은 TV도 만들고, 게임기도 만들고, 심지어 비행기도 만드는데, 왜 왼손잡이 가위를 못 만들어요?” 화전양면전술은 끝났다. 철없는 syo는 이제부터 친구들이 보건 말건 얻어터지기 시작한다.


 

3-4  8, 9세의 syo가 겪은 일도 돌아보면 참 인상적이지만, 마지막 선생의 대응이야말로 놀랍도록 많은 것을 시사한다.

 


4  어떤 생각을 품은 사람들은, 그 생각이 다수의 것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하고 교정의 대상이 된다. 세상은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들에게 불편한 곳이고, 그 불편을 해소할 역량이 충분하고도 남음에도 되레 불편을 강조하고 강요하는 방향으로 작동함으로써 소수자를 교정하려 한다. 심지어 이게 다 너를 위한 거라는 말까지 덧붙여 가며. 그 부당한 불편함(‘다른 생각에게 주어지는 불편함은 왼손잡이가 당해야 될 소소한 고통 따위에 비할 바가 아닐 만큼 다면적이면서 거대하다) 혹은 불편한 부당함에 맞닥뜨리면 많은 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거나 수정하여 세상과 보폭을 맞춰 살아간다. 그건 비난할 일이 아니라 그저 자신의 삶을 어느 방향으로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개인의 선택일 뿐이다. 그래서 행복하다면야. 그러나 끝내 세상과 다투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 세상은 얼른 표정을 바꾸고, 어르고 달래기를 포기한다. 낙인찍고, 탈락시키고, 빼앗고, 모욕한다. 이렇게 되면 여기서부터는 싸움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일방적인 폭행의 국면이 열린다. 그 안에서 꿋꿋이 자신을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방식의 싸움을 모색하고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이 책 안에 있다. 귀 기울여 들을 만한 노하우들을 잔뜩 던져주면서.

 

좌파의 최종진화형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생활좌파는 이론좌파보다는 한 발 더 나아간 입장인 것 같다. 세계는 우리의 이론이 아니라 생활에 침투한다. 그들은 우리의 태도, 자세, 언어, 관계, 생계를 건드린다. 이런 판국이라면 우리는 마르크스의 말씀보다 더 적실한 무기를 찾아내 무장해야 한다. 그 무기를 어떻게 발명하는가, 인터뷰이들은 그 무기의 레시피를 담담하게 서술한다.

 


5-1  첫째, 시련이 필요하다.

 

나는 이전까지 신체적으로 완전히 건강하고내가 건너뛸 수 없는 역경은 없으며내가 원하는 일은 무엇이든 노력을 통해 얻을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그러나 유도를 하다가 부딪힌 그 단순한 사고로 나는 잠시나마 오직 죽기만을 열망하는 시간을 겪었고거기서 날 구해준 사람들은 비제도권의 의사였다이 사회가 내쫓은 사람들인 것이다내가 견고하다고 믿었던 이 세상의 모든 겉모습이 일순간에 와르르 무너져내렸다나는 진정으로 무엇을 알고 있는지내 삶이 잠시라도 헛된 일에 소모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기 시작했다그러자 자본의 논리로만 굴러가는 이 세상의 어리석음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아무것도 손으로 만들어내지 못하고 오직 돈을 내고 뭔가를 사서 소모하고또 뭔가를 소비하기 위해 돈을 번다는 현대 자본주의사회의 모델이 역겨워졌다. _ 92


 

5-2  둘째, 시련을 벽이 아니라 시련으로 바로 볼 수 있는 더듬이가 필요하다.

 

그들(지배계급)이 이 모든 것을 '문화'라고 분류하는 순간 우린 그것으로부터 소외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어쩌면 문화부가 생겨나지 않았던 시절그들이 팔 걷어붙이고 달려들어 한류며 케이팝이며 관광단지며 무형문화재 따위를 만들어내지 않았던 시절아니 문화라는 단어가 제도와 자본 사이에서 이토록 역겹게 나뒹굴지 않고 우리가 그런 개념을 머릿속에 떠올릴 수조차 없던 시절우린 익숙하게 문화를 걸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_ 63

 


5-3  셋째, 내 시련이 아닌 남의 시련은 없다는 것을 알아채는 감수성이 필요하다.

 

Q. 당신에게 좌파는 어떤 사람인가?

A. 다른 먼지들이 진정한 자유를 갖지 못하고 있을 때 ''라는 먼지만 홀로 자유로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_ 204


 

5-4  넷째, 나의 방식을 찾기 위해 누구보다 나를 잘 들여다보는 눈이 필요하다.

 

  자크 제르베르의 아름다움을 향한 예찬은 단지 예술작품에 그치지 않는다길에 서서 이야기를 하다가도 서쪽 하늘에 석양이 걸릴 때면 "저길 좀 봐정말 아름다워"라며 말을 끊기 일쑤다길을 같이 걷다가 건물 벽에 조각된 여신상을 보면 그것을 벌써 300번쯤 보는 것일지라도 "제발 저것 좀 보라고저 곡선의 아름다움을"이라고 말하며 감탄의 신음을 연신 내뱉는다이제 예순을 조금 넘긴 이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포착하느라 분주하다.

  이 같은 열정은 파리에서 열리는 거의 모든 집회에 얼굴을 들이밀고 권력의 거대한 힘에 저항하는 소수자들 속에서 한 뼘 더 성장하고 싶어 하는 그의 욕망과 관련이 있다언제나 첫사랑을 만난 듯 밝게 상기되어 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따뜻하고 싱그러운 농담을 건네려고 애쓰는 그를 보면 곳간에 장작이 쌓여 있지 않아도 지금 가진 초 하나로 눈앞에 서 있는 사람의 차가운 손을 녹이려고 애쓰는 사람 같다그가 집회장과 전시장영화관을 하나의 단상에 나란히 올려놓고 그곳을 갔다 올 때면 자신이 한 뼘 움직였음을 느낀다고 말할 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그것이 바로 그가 말한 일상적 실천과 제도적 혁명을 양손에 쥐고 가는 그의 방법이라는 사실을유토피아는 결코 지옥의 끝에 문득 다가오지 않을 것이며더 많은 미소와 환희희열들이 일상에 쌓이고 쌓였을 때어느새 옷처럼 우리에게 입혀지리라는 것을. _ 80-81


 

5-5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활이 끝나기 전까지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므로 끊임없이 스스로를 벼려 나가는 끈기가 필요하다.


대학은 굳은 지식을 전하는 곳이야거기서 배운 지식은 사람들을 해방시키기보다 가두는 경우가 더 많아하지만 운동가는 자신이 꾸는 꿈과 현실에서 마주하는 문제들로 인해 열심히 연구하고 공부하고 방법을 모색하게 되지토론하고 선언하고 실천해 나가면서 온전히 우리에게 피와 살이 되는 지식과 지혜를 삶 속에서 얻고그것은 우리를 더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해방의 열쇠를 제공하지. (...) 그러니 질문을 멈추지 말 것질문의 노마드로 계속 살아가는 것그것이 활동가의 첫 번째 사명이야. _ 28 


 

6  좌파에게 좌파라는 것은 별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지니고 있는 태도고, 세상에 대응하는 방법이고, 삶을 만들어가는 자세다. 왼손을 틀린 손으로 만드는 것은 오른손을 옳은 손으로 드높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치사한 말장난일 뿐이다. 내가 좌파인 것은 우파에게만 경천동지할 일이다. 왼손잡이는 오른손 가위만 있는 세상에서도 그럭저럭 살아냈다. 그러나 오른손만이 바른 손인 이들에게 왼손 가위의 등장은 바른 손의 권위를 나눠줘야 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때로는, 생활 차원에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왼손 가위를 발명하는 것이, 이념 차원에서 저들의 견고한 성벽에 뜻밖의 포탄을 날리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생활 좌파라는 것은 아름답지만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개인의 개인적 투쟁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추상적 집단을 위해 동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또 다른 개인을 위한 옹호가 될 수 있는 것. 옹호 받은 개인 역시 자신만의 개인적인 방식으로 생활 속 전쟁을 이겨나가는 중에 서로가 서로의 든든한 동지가 되는 것. 21세기형 좌파는 이렇게 앞으로 가는 것인가 보다. 이념의 거대한 깃발을 잘 나누어 각자의 방으로 가지고 들어간다. 그 조각을 나의 개성에 맞게 리폼한다. 다시 광장에 나온다. 광장은 이제 백만 개의 저마다 다른, 그럼에도 어딘지 닮은 깃발들의 바다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깃발을 올려다보기보다는 깃발을 든 서로의 표정을 마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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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2 17: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02 17: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해목 2019-05-02 1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훌륭한 글을 읽고나서도 제가 궁금한 건 그래서 syo님은 글씨를 여전히 왼손으로 쓰는건가.. 입니다. ㅎㅎㅎ;;;
저도 왼손잡이입니다. 아빠에게 왼손이 묶여 하루를 굶기도 하고 syo님처럼 아이들 앞에서 선생한테 손등을 엄청 맞고......
저는 결국 선생에게는 굴복하여 글씨만 오른손으로 쓰고 그 외의 손으로 하는 모든 건 왼손으로 하지요.
명절때 모인 어른들의 왼손으로 밥먹으면 시집 못간다는 말을 꿋꿋하게 무시해가면서 버텨온 긴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갑니다. ㅋㅋㅋ
한때는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왼손잡이의 역사> <왼손이 만든 역사> <왼손잡이 여인> <왼손잡이> 뭐 이런 책들도 좀 봤더랬지요. ㅋㅋ

각자의 개성에 맞게 리폼한 21세기형 좌파라..... 이거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
고민하던 부분이었는데 한결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 것 같다고 해야할까요. ^^

syo 2019-05-02 17:57   좋아요 3 | URL
네. 저는 왼손으로 글씨를 씁니다.

심지어 패면서 고치라는 게 너무 기분이 나빠서 더 엇나가야겠다는 생각에 발까지 왼발로 바꿨습니다. 어린 syo는 그래도 고집과 강단이 있었지요.

지금 같으면 아마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좌파는 이념이 아니라 자세라고 합니다. 물론 이론과 개념들이 자세를 바로잡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은 자세와 태도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무식하지만 힘내서 열심히 살아보려구요 ㅎㅎㅎ

설해목 2019-05-02 18:35   좋아요 0 | URL
부럽습니다. 그때 고통에 굴해 오른손으로 옮겨간 것이 무지 후회가 되네요, 두고두고.

그 자세와 태도에 대해 고민 아닌 고민이었거든요. 좋은답 얻었습니다. ^^

레삭매냐 2019-05-0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을 읽다 보니 예전 학창 시절,
좌장면만 먹고 좌전거만 타고
좌측통행만 한다던 선배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그나저나 쁘띠부르주아 지식인
의 글은 왠지 불편하게 다가오네요.

어느 삐딱선의 투정일까요...

syo 2019-05-02 18:0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제가 저간의 사정을 잘 몰라서 달리 말씀드릴 건 없지만, 이 책은 인터뷰집이라서 아무래도 사정이 좀 낫겠다 싶습니다.

그나저나 좌장면 좌전거라는 표현은 살짝 옛스럽지만 되게 좌밌습니다ㅋㅋㅋ

stella.K 2019-05-02 18: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랍네요.
제가 어렸을 때 오른손, 왼손에 대한 가르침과 눈총이 심하지만
스요님 때는 그런 게 거의 사라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그랬네요.
전 오히려 이해 받는 쪽에 속했던 것 같습니다.
외국은 오히려 왼손을 더 쳐준다면서 말이죠.

저도 스요님과 같은 생각을 했더랬죠.
바른손이라는 것도 왼손이 있어야 가능한 거지 혼자 바른손이면
뭐하겠습니까? 순간 그렇게 나누는 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요즘엔 왼손잡이도 많아졌고 오히려 왼손으로 글씨 쓰면 멋있지 않나요?ㅎㅎ
참고로 저도 왼손으로 글을 씁니다.

근데 오늘은 3-1, 3-2. 3-3....으로 나눠 쓴 게 인상적이군요.
무슨 기준으로 나눈 건가요?
마치 반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때 3-4반이었는데...ㅋㅋ

syo 2019-05-03 00:42   좋아요 0 | URL
많은 왼손잡이님들이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하였음을 증언하고 계시네요 ㅎㅎㅎ 저도 억압의 막차를 탔던 것 같습니다. 중학교에 들어가니까 선생님들이 마치 짠 것처럼 아무도 제 왼손을 터치하지 않더라구요.

3-1, 3-2 이렇게 나눈 건 그냥 내용상 병렬로 구성되는 게 맞겠다 싶은 문단을 나란히 배열하고 싶어서 그런 겁니다 ㅎㅎㅎㅎ

그리고 전 3학년 2반이었지요 ㅎㅎ

수연 2019-05-02 21: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잔나비 들으면서 읽다가 저도 모르게 아 좐나비 좋다...... syo님은 더 좋아요......

syo 2019-05-03 00:43   좋아요 0 | URL
요즘 수연님이 잔나비에 흠뻑 빠져 계시다는 걸 제가 익히 알고 있는데, 무려 more than 잔나비라니, 신납니다^-^

독서괭 2019-05-02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귀싸대기를 맞다니.. 그 이유만이 아니라도 있어서는 안 될 일이건만요. 정말 폭력적인 시절이었네요... 그나저나 그 어릴 때 이미 syo님의 좌파적 앞날은 예고되어 있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ㅎ

syo 2019-05-03 00:4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어릴적부터 이미 될성부른 빨갱이였던 것입니다!! ㅎㅎㅎ

요즘은 저렇게 패지는 않겠지만, 제도권 교육이라는 것이 소수자에 가하는 교정 압박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어떤 부분에서는 알게 모르게 소수자고, 전 제가 낳은 아이들에게 이런 제도 하의 교육을 시키면서 분노하지 않을 자신이 없어서 아이를 낳지 않으려 하고 있답니다. 물론 전적으로 교육환경 때문만은 아니겠습니다만......

반유행열반인 2019-05-0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왼손과 오른손이 공생하는
세상이 오길...올까요? (오른손잡이 대표 겸 못난 선생 대표로 반성하며 오른뺨 철썩철썩)

syo 2019-05-05 12:06   좋아요 1 | URL
탄압받다가 탄압받지 않게 된 왼손잡이 입장에서는 이 정도면 공생하는 세상이 왔다고 말하겠습니다만,
사실 저건 비유적인 말씀이셨겠으니, 대답이 되지 않겠죠? ㅎㅎㅎㅎ
답이 없으니 대답이 없는 걸로 할까요.

오른뺨 말씀이 나와서 말씀인데,
내 부어 오른 오른뺨을 자연스럽게 만져줄 수 있는 상대방의 손은 그의 오른손이 아니라 왼손임을 오른손잡이들이 알게 된다면 세상이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여기서 ‘오른손잡이들‘은 당연히 비유고요 ㅎㅎ

공쟝쟝 2019-05-05 1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왜 때려요 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저도 그시대를 살았지만 ㅠㅠㅠㅠ 정말 ㅠㅠㅠ 말도 안되는 시절이었어ㅠㅠㅠㅠㅠㅠㅠ

syo 2019-05-05 20:14   좋아요 1 | URL
하도 맞다 보니 맞는 사람도 맞을 만해서 맞는다고 착각할 정도였잖아요 ㅎㅎㅎ 저도 심지어 왼손으로 쓰면 얻어터진다는 건 당연히 깔고서 ‘그럼에도‘ 쓴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공쟝쟝 2019-05-05 20:18   좋아요 0 | URL
전 맞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맞을때 최대한 안아픈척 하는 것이 복수하는 거라 생각했던 아픔을 잘 참는 (서늘한) 어린이였어요... 어린이날 맞이 독한 어린시절 배틀 같네요 ㅋㅋㅋㅋ

syo 2019-05-05 20:35   좋아요 1 | URL
전 별로 독한 아이는 아니었어요 ㅋㅋㅋㅋ 기꺼이 패배를 인정합니다. 쟝쟝님이 이 구역의 독한 어린이세요.

공쟝쟝 2019-05-05 21:41   좋아요 0 | URL
맞을 줄 알면서도 왼손으로 쓰는 그 마음이 더 독한거예요☝️전 맞을 상황을 최대한 피했다구요.. 독한어린이!!

문모운 2019-05-11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창녕이 이상했던 건가 대구가 이상했던 건가 아리송하구만. 왼손잡이 탄압이 버킷리스트에라도 들어있는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어찌 그리 많이 만났어? 나는 왼손잡이들을 동경했었는데~

syo 2019-05-12 13:29   좋아요 0 | URL
특별히 골라서 만난 건 아니고 그냥 그땐 다 그랬던 것 같은데.
하도 다들 그러니까 특별히 그 사람들이 이상한 사람이라는 느낌도 받지 못했어.
내가 이상한 놈 같았지.

근데 알다시피 나는 이상한 놈 취급 받는거 은근 즐기는 변태였잖아. 그런 이유로 퉁쳐서 그럭저럭 살만 했어.

문모운 2019-05-13 10:09   좋아요 0 | URL
@syo 엄청 변태였네 몰랐어☺️

syo 2019-05-13 11:21   좋아요 0 | URL
뭐래, 남의 매력포인트 함부로 비하하지 마라.

문모운 2019-05-13 13:42   좋아요 0 | URL
syo 변태혐오 안 하겠습니닷😑
 
보통의 식탁 - 조동범 산문집
조동범 지음 / 알마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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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같은 하루를 여느 때처럼 정리하고 돌아와 당신은 저녁 식탁을 차린다. 어제 꺼냈다가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어 놓은 반찬은 그대로 식탁에 올려놓는다. 그저께 부친 계란말이의 냄새를 한 번 맡아보는 당신의 미간에 살짝 주름이 잡힌다. 계란말이는 그대로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려지고 그 빈자리는 지난 주말 당신의 어머니가 볶아 보낸 멸치 반찬으로 메운다. 밥은 새로 지었다. 부지런히 수저를 놀리며 당신은 오늘을 생각하고 어제를 생각하고 이내 내일을 생각한다. 모든 것이 닮아 있었다. 어제를 오늘에 붙여 넣는 삶이 그저 깜깜하게만 느껴졌던 시기가 당신에게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요즘 당신은 가끔 생각한다. 오늘 같은 내일이 기다린다는 사실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고, 그렇게 느끼는 것을 보면 나도 행복이라는 정체 모를 존재의 그림자쯤은 밟고 선 것이 아닐까 하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면 산다는 것은 가령,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사람은 식탁을 차린다는 그 거대한 일상성에, 어제의 계란말이가 오늘의 멸치볶음으로 바뀌는 정도의 소소한 변화가 버무려져 만들어지는 한 끼 식사 같은 것은 아닐까 하고.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우리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삶의 진실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가족과 함께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하거나 홀로 식탁에 앉아 텅 빈 벽을 바라보는 것이야말로 삶의 진짜 모습이다우리가 삶에서 얻고자 하는 깨달음은 바로 그런 순간 느끼는 사소한 것들로부터 비롯된다삶이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를 만든다. _ 189 

 

그래서 당신은 늘 타인의 식탁이 궁금하다. 당신의 오늘이 당신의 내일과 닮았듯이, 당신의 오늘이 타인의 오늘과 닮았는지를 당신은 늘 알고 싶다. 이 저녁 식탁에 면한 거대한 벽을 넘어가면 건너편 가정에도 누군가의 식탁이 있을 것이다. 그 위에는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미소를 생각하며 끓여낸 미역국이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슬픈 마음을 위로하려 사 들고 온 치킨이나 족발 같은 것들이 놓여 있을 수 있다. 당신의 입에 젓가락이 물려 있는 지금 이 순간 벽 너머의 누군가는 숟가락을 물고 있을 것을 생각하는 당신은 타인의 식탁이 몹시 궁금하다. 그 식탁을 둘러싼 사연을, 식탁 위에 올라와 반찬과 함께 체내 흡수되는 말들과, 차마 말해지지 못하고 냉장 보관되어 다음 식탁까지 유예되고 마는 말들을 당신은 알고 싶다. 식탁을 차린 이의 마음과 식탁을 받는 이의 마음이 어디서 어떻게 무엇이 되어 만났는지 당신은 알아야겠다. 설령 그 식탁에 앉은 이가 단 한사람뿐일지라도, 꼭 지금의 당신처럼.

 

당신의 식사 시간은 길어야 십오 분을 넘기지 않았다숟가락을 들고 묵묵히 음식을 먹는 당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도서관 식당에서 혼자 먹는 밥은 언제나 고요하고 쓸쓸하다어느 밤창밖으로 비가 왔는지 눈이 내렸는지 당신은 그것에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여전히 혼자 밥을 먹을 것이다당신 앞에 놓인 빈 그릇이 서늘하게 당신을 바라보는 것만 같다당신의 저녁이 쓸쓸하게 저문다그때 창밖으로 비가 왔는지아니면 눈이 내렸는지 당신은 여전히 알지 못한다. _ 28-29

 

이웃의 문을 두드려 당신의 식탁은 어떻습니까,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라서 당신은 결심한다. 타인의 식탁을 당신의 손으로 만들어보기로. 당신의 손은 밥보다 글을 잘 짓는 손이라서 당신은 결정한다. 식재료 대신 단어를 손질해보기로. 당신은 깨끗이 치운 식탁 위에 하얀 종이 한 장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식탁의 주인들을 상상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혼자다. 4인용 식탁을 혼자 쓰는 남자를 만든다. 그는 오래전 헤어진 애인을 잊었는지 잊지 못했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다. 당신은 지난여름, 노르웨이 여행에서 계획 없이 들렀던 현지 식당에서 받았던 감동을 떠올린다. 여행지의 현지 식당을 들르는 데서 여행의 의미를 찾는 익명의 여행자를 만든다. 그는 할 말이 많다. 당신이 그 식당에 들어갔을 때, 이주노동자로 보이는 사람들이 허겁지겁 밥을 먹는 장면을 보았던 기억도 생생하다. 당신은 고국을 기억하는 일이 힘인지 짐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고단한 이주노동자를 만든다. 그리고 당신은 생각한다. 일찍 죽은 친구의 장례식장, 어쩐지 씁쓸했던 서른 살의 생일 케이크, 한국에도 실제로 있을 거라 믿고 찾아다녔던 일본 드라마 속의 심야식당, 선임병의 괴롭힘 끝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어느 군인에 대한 뉴스 같은 것들을 계속 생각한다. 생각의 꼬리를 무는 생각을 따라 백지 위로 볼펜을 휘갈겼고, 마침내 40번째 이름을 적으며 당신은 펜을 내려놓는다. 밤이 깊었다. 그러나 당신의 밤은 이제 시작이었다.

 

당신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를 아쉬움을 느꼈지만 다음을 위해 아쉬움을 담아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차창 밖으로 평화롭고 고요한 휴일 밤이 펼쳐진다나는 문득 내일쯤 세차를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그리고 세탁소에 들러 맡겨놓은 세탁물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어느덧 밤은 완벽하게 어둠을 풀어놓고집으로 돌아온 나는 책상 앞에 노인 지구본을 돌리며 리투아니아아이슬란드비엔나아른험 등의 낯선 이름을 불러본다그러나 그곳들은 너무 멀리 있다닿을 수 없는 세계처럼 낯설게그러나 그 어떤 그리움처럼 있구나아주 먼 그곳에. _ 45

 

당신은 종이 위 40개의 자아를 내려다보며 그 안에 당신이 얼마나 들어있는지를 생각한다. 40명의 주인공들은 당신의 조각인가? 그렇다. 40개의 조각을 모두 합치면 온전한 당신이 되는가? 그렇지 않다. 당신은 이 40개의 자아를 모두 사랑하는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온전한 당신도 아니고 온전한 사랑도 아니라면 당신이 만든 40개 자아의 현실감이나 생동감은 그만큼 부족한 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당신은 당신이 낳은 인물들이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리라 확신하는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당신의 전략은 무엇인가?

 

나는 문득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이 당신들의 어깨라는 것을 깨닫는다당신들의 어깨는 움츠린 듯 힘없이 나를 등지고 있다당신들의 어깨는 고단한 이민자의 삶을 이야기하면 흐느끼고 있는 것 같다저물녘 해변과 퇴근길의 적막함을고요하게 잠든 아이들을돌아갈 수 없는 그 어떤 날들을 말하려는 것만 같다당신들의 어깨는 다른 듯 삶았다이제 곧 당신들의 어깨는 식당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겠지현관문을 열고 거실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눕는 당신들은 이제 마지막 술잔을 끝으로 오늘 밤을 마무리하려 한다술자리의 왁자함이 잦아들고 적막함이 밀려든다당신들은 저편의 테이블에서나는 이편의 테이블에서... 그렇게 오늘 밤이 침몰하기 시작한다. _ 55

 

당신은 당신이 만든 40개의 자아를 당신이라고 혹은 라고 부르기로 결정한다. 그것이 읽는 이의 마음을 직접 두드려 여는 좋은 전술이라고 당신은 믿는다. 일리가 있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이라 호명한다. 우리는 당신에게 당신이라 호명됨으로써 당신이 건넨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로 받아들일 준비를 시작한다. 당신이 40개의 자아를 만들어 낸 것 역시 신통한 작전이다. 우리가 당신의 호명에 응답할 수 있는 가능성을 40배로 늘림으로써 당신은 우리에게 40배 촘촘한 그물을 던진 셈이다. 이 중 최소한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생각을 당신은 하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합리적인 생각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겉보기엔 굉장히 다양한 방식의 삶을 허용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40개의 올가미만 던지면 그 안에 우리 모두를 잡아넣을 수 있을 만큼 톤다운 된 삶을 우리에게 강요한다. 그리고 당신은 어쩌면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른다. 우리의 삶이 당신의 삶이고, 당신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이라는 뻔하고 뻔뻔하지만 울 뻔한 말을.

 

보름과 그믐을 반복하며 시간이 지나간다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이십 대가 지나가고 서른이 펼쳐진다그러나 이십 대의 마지막 날인 어제와 서른의 시작인 오늘은 아무 차이도 없는 어제와 오늘일 뿐이라고 당신은 생각한다오늘 밤이 지나가면 당신은 이십 대 때보다 조금 더 멀리 나아가겠지탁자 위에 놓인 생일 케이크가 물끄러미 엄마와 당신을 바라본다텔레비전 불빛에 드러난 엄마의 얼굴이 왠지 더 친숙하다당신의 모습인 것 같기도 한 엄마의 얼굴이 텔레비전의 희미한 불빛을 따라 서글프게 일렁인다오늘은 당신의 서른 번째 생일이다언제나 그렇듯 시간은 무심하게 흘러 기억 저편으로 사라질 것이다상현인지 하현인지 알 수 없는 오늘 밤 달빛이 서른이 된 당신과 삼십 년 전 엄마의 얼굴을 희미하게 내려다본다. _ 83

 

당신이 만든 40개의 자아를 내가 끝까지 40명의 주인공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이 당신에게 사과할 일인지 아닌지를 나는 계속 생각한다. 그러나 당신이 쓴 40개의 짧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님을 실망 없이 실감한다. 우리로확장시키는 것은 당연히 섣부른 이야기겠으나, 그래도 무리하여 말해 본다면, 우리는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다. 단지 주인일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도 우리 삶의 주인이 아니다. 단지 우리 식탁의 주인일 뿐이다. 우리는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인생이나 행복이라는 이름의 전차가 그 위로 달려가기 위해 깔아놓은 철길이 아니다. 행복한 삶을 추구하는 일은 투여하는 노력에 상응하는 보상을 항상 던져주지는 않는다. 행복은 때론 행복할 자격이 없어 보이는 이들의 품에 안기거나, 더 행복할 필요가 없는 이들에게 쓸데없이 한 스푼 더해지느라 올바른 자리로 찾아드는데 게으름을 피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행복의 도움 없이 우리가 우리의 행복을 차리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식탁을 차린다. 가끔 마지막 달걀로 만든 달걀찜을 홀랑 태워먹기도 하고, 김치와 물김치와 김치찌개를 한 상에 올려야만 하는 희한한 날도 있으며, 또 아주 가끔은 무슨 조홧속인지 상다리가 휘어지게 갈비를 뜯었는데도 냉장고에는 여전히 양념갈비가 잔뜩 절여져 있는 복된 날이 오기도 한다. 우리는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식탁에 앉아 수저를 들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생각을 한다. 이 식탁을 차리기 위해 통과해왔던 사건과 감정의 고리들이 반찬으로 차려져 있고, 우리는 그걸 집어 오늘을 배불리고 내일을 준비한다. 어디를 어떻게 무엇이 되어 지나왔든, 일단 식탁이 차려지면 우리는 식사가 끝날 때까지는 그 식탁의 주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식탁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식탁 앞에서 행복을 생각하는 일이 식탁을 서운하게 하지 않도록, 식탁 앞에서만큼은 행복을 식탁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불러도 좋겠다.


여기식탁이 있다수많은 식탁 위에는 분주했던 월요일 저녁이 웅성거리기도 하고주말 오후에 한가롭게 내리쬐는 햇살이 서성이기도 한다식탁 앞에서 당신들은 사랑이나 슬픔 혹은 고단한 저녁에 깃든 쓸쓸함과 마주하며 지나온 날들을 추억하기도 한다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들은 언제나 따스한 기억으로 남는다그것이 설령 슬프고 서러운 기억일지라도 식탁을 둘러싼 이야기는 비극만을 풀어놓는 법이 없다슬픔조차 추억이 되게 하는 시간그것이 바로 식탁이 주는 힘과 감동이다. _ 10

 

당신이 만든 이야기로 저녁상을 차렸다. 새벽까지 먹었다. 나쁘지 않은 식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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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해목 2019-01-11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글 읽고나니까 오늘 저녁 밥상에는 계란말이와 멸치볶음을 같이 올려놓고 싶어졌어요.
내가 누릴 수 있는 호사스러운 저녁 밥상을 차려 혼자여도 맛있게 먹고 싶어졌어요. ^^
늘 그렇듯 밥상 맞은편 티비에서 나를 마주한 고로 아저씨와 각자의 식사를 즐기면서요.~

syo 2019-01-11 16:10   좋아요 1 | URL
우리 모두의 밥 친구지만 누구의 밥 친구도 아닌 고로 아저씨.....

설해목님의 오늘 저녁 행복한 식탁을 기원할게요 ㅎㅎㅎ

2019-01-11 17: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1 17: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붕붕툐툐 2019-01-11 1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syo님, 올해 목표하신다던 ‘한 권을 깊게 읽기‘를 실천하신 겁니까? 축하드립니다^^

syo 2019-01-11 17:0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아닙니다. 깊게 읽지 않고 평소처럼 읽었어요^-^ 그냥 리뷰를 하나 써 본 것 뿐이지요.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 님의 인기는 굉장히 두루뭉실하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그냥 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라는 마인드‘죠.
이 마인드를 존중하기는 하지만 조금 비열하기는 하죠. 이런 식으로 표를 모으는 게 정치인이듯이
쇼 님도 그런 것을 향한다는 게 조금 불편하긴 합니다.
그냥 좆같은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하세요...
너무 주변 사람들 눈치를 보는 것 같아요...

이 글에 대한 반응이 아니라
평소 느낀 생각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08   좋아요 0 | URL
아마. 이 댓글에 대해서도 쇼 님은 굉장히 달콤한 덧글을 작성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만.....
이 댓글 읽고 당황하셨죠 ? ㅎㅎㅎㅎ 알리딘의 재롱둥이가 되지는 마세요.

syo 2019-01-11 17:18   좋아요 6 | URL
어제도 다른 데서 비슷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평소에 나쁜 말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인데 후지다고 해서 놀랐다는 이야기였는데요.

오프라인에서는 호불호가 되게 쎈 인간이면서, 온라인 공간에서는 말씀하신대로 두루뭉수리하게 지나가는 일이 잦은 것 같습니다. ‘좋은 게 좋은 거 아닙니까‘ 까지는 아니고 ‘분란 만들면 귀찮잖아‘ 정돈데 사실 그 두개는 별로 큰 차이가 없긴 하지요.

그게 비열한 마인드라는 말씀에 공감하기도 하고, 실제로 그래서 고민도 많이 합니다. 말로는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해놓고 막상 행동은 흐지부지하게 하니까요. 곰발님이 그렇게 읽으셨다면 제대로 읽으신 거고, 제대로 읽으신 거라면 관심있게 읽어주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대응하는 것도 불편하시겠지만, 좆같은 것에 대해서는 욕을 하라고 하셨는데, 지금 곰발님 말씀이 좆같지 않아서 욕하지 않는 거니까 이해하세요 ㅎㅎ

소심하게 태어났고 소심하게 자라나서 미움받는 일을 굉장히 겁냅니다. 인기까지는 욕심내지는 않지만 미움받는 일에는 상처를 크게 입을만큼 멘탈이 두부라서, 최대한 피하고 싶은 게 본심입니다. 그래서인지, 그런 거 신경쓰지 않고 좋은 것에 칭찬하고 싫은 것에 욕을 날리는 곰발님이 항상 부럽고 멋있습니다.

좆같은 것에 대해 욕하는 제게 맞는 방법을 찾도록 노력해 볼게요. 저한테 그게 필요하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9-01-11 17:34   좋아요 1 | URL
언제부터인가 쇼 님은 알리딘의 재롱둥이가 되었어요.
의성어와 의태어 남발하면서 누님들 사랑 받는 것에 굉장한 희열을 느끼는 듯합니다만...
아니, 왜 그러세요 ? 저는 그냥 쇼 님이 좋아요 클릭 얻기 위해 희노애락 중에 희‘를 남발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게 굉장히 추합니다... 물론 인기쟁이 쇼 님을 공격해서 가뜩이나 알라딘 밉상인 제가 받을 타격이 더 심하긴 하겠지만... ㅎㅎㅎㅎ 뭐. 초심을 찾으세요.. 내 지적질이 존나 역겹겠지만...

syo 2019-01-11 17:55   좋아요 1 | URL
아닙니다. 완전히 틀린 말씀 아니시구요.
평소 느낀 생각이시라니 많이 참다 참다 꺼내신 말씀일텐데요.

저는 곰발님 많이 좋아합니다. 제가 미움받기 싫은 대상에는 당연히 곰발님도 포함되어 있구요. 그건 제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서 하신 말씀이 각별히 의미가 있습니다. 표현하신 것처럼 보였다면, 추하다는 표현도 별로 부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구요.

해주신 말씀이 ‘공격‘이라 할 만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곰발님께 무슨 타격이 있겠어요. 그럴 만한 일도 아니고요. 그리고 그런 거 1도 신경 안 쓰시잖아요. 하셔야 될 말씀이라 생각하면 누가 뭐라고 해도 하시는 거 다 압니다ㅎㅎㅎ. 일러 주신 대로 초심 생각 많이 하겠습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01-11 2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스포일러를 되게 싫어해서 발췌 부분은 안 읽고 리뷰어의 코멘트만 봐요. (그러면서 저는 정작 따옴표로 스포일러 남발ㅋㅋ내로남불) 결국 안 볼 책들도 그래요. 이 리뷰도 늘 그러듯 syo님 목소리만 골라 읽고 난 소감은...짝짝짝 내 맘대로 이 달의 우수 리뷰로 선정하였습니다. 누구는 그 많은 책을 집어 먹고 나서 집요하게 파고 드는, 그러면서도 깨끗하고 정리된 문장들을 쏟아 놓는구나 했어요(syo님 얘깁니다). 반면에 그만큼 집어 먹고도 그저 그런 식상한 말들을 풀어 놓거나 (저처럼) 개똥 같이 마구 갈겨 놓았네 하는 글도 많이 보네요. 지적하고 비판하고 친밀한 척 걱정하는 척 하는 것은 쉽지만 그런 것들 안 하면서 남에게 리액션하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책깨나 읽었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더 한 것 같습니다. 그 어려운 걸 하고 계시니 저는 그저 리스펙트...하면서 세상의 균형을 위해 계속 (개똥같이) 이 모냥으로 살겠습니다. (말은 이래 놓고 감화되어서 점점 착하게 읽고 쓰려고 애쓰는 중인 듯...)

syo 2019-01-11 21:0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칭찬해 주신 만큼의 대단한 글도 아니고, 역시 칭찬해 주신 만큼의 대단한 인간도 아니에요. 그냥 제가 읽던 대로 읽고 쓰던 대로 쓴다고는 하고 있는데, 자기도 모르는 방향으로 자기도 모르게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입니다.

열반인님의 마음에 드는 글이었다는 사실로 이 글은 크게 만족합니다. 제게도 완전하게는 아니더라도 썩 흡족한 글이었거든요. 짧은 이야기들을 40개 모은 책이고, 제가 옮겨 적은 문장이 크게 스포일러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제가 적은 것보다는 훌륭한 글들이 실려 있는 책이니, 일독하실 만한지 발췌 부분을 통해 한 번 확인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열반인님이 제가 쓰는 것들을 꼼꼼하게 읽어주시고, 성의있게 댓글을 달아주시는 것을 압니다. 항상 힘이 납니다. ㅎㅎㅎㅎ 저도 열반인님께 그런 서재친구가 되면 좋겠어요. 감화 같은 건 넣어두시구요. 지금 열반인님의 글이 얼마나 맛깔나게요 ^-^

북다이제스터 2019-01-11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모르지만 제겐 이렇게 솔직한 글 쓰기가 참 어렵더라구요. ^^ 부럽고 항상 응원합니다. ^^ 화이팅^^

syo 2019-01-11 21:04   좋아요 1 | URL
그렇지만 북다님의 글이야말로 항상 제겐 부러운 글입니다. 잘 읽고는 댓글도 하나 없이 훌쩍 가버려서 항상 죄송스럽습니다. 이렇게 저한텐 응원 말씀도 해주시는데 ㅎㅎㅎ

원더북 2019-01-11 2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댓글 자주 안 달지만 오늘은 꼭 보태고 싶네요. syo님의 글은 쎈 척 안 해서 좋습니다. syo님만의 방식이 있는걸요^^

syo 2019-01-11 23:12   좋아요 1 | URL
syo의 글이 이렇다 말씀해 주실 수 있을만큼 읽어주신 것 자체가 저는 감사합니다. 그게 힘이 됩니다^-^

원더북 2019-01-11 23:34   좋아요 1 | URL
syo님과 다른 몇몇 이웃님들의 좋은 글들 읽으며 항상 감사하고 있어요. 읽기만 해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어 저도 뭔가 읽을 만한 글로 보답해야 하는데 생각하면서도 자주 글을 못 써서요^^; (아~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비루한 인생;;;) 저도 syo님 글 읽으면서 힘내고 있습니다. 제가 감사해요^^

카알벨루치 2019-01-12 00: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자요 Syo님! 이불 걷어차지 말고, 바지 벗지 말고 굿밤!^^

syo 2019-01-12 00:13   좋아요 0 | URL
어제도 벗었더라구요... 벗어서 던지진 않고 발목에 걸치고 있던데ㅎㅎㅎㅎ

카알님도 좋은 꿈 꾸세요^-^

카알벨루치 2019-01-12 00:33   좋아요 0 | URL
난 쇼님의 이전모습 보다 지금 모습이 더 익숙해서 그런데...다양한 얼굴을 가진 분이시구만요 포커페이스의 달인 이시네! ㅋㅋ

syo 2019-01-12 00:41   좋아요 0 | URL
ㅎㅎㅎ 이전 모습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지금 모습만 있는 건데, 단지 이전부터 되고 싶어했던 모습이랑 지금 모습이랑 사이의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죠 뭐ㅎㅎㅎ

아직 여러모로 미흡합니다, 제가요ㅠ

2019-01-12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12 0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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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01: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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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0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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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2 01: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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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1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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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1-13 14: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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