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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데이와 맥스웰 - 전자기 시대를 연, 물리학의 두 거장
낸시 포브스.배질 마혼 지음, 박찬.박술 옮김 / 반니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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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도 더 된 일이지만,


1학년 때는 그래도 할 만했다. syo의 경우, 2학년이 되자 여기가 고등학교가 아니라는 사실을 통렬하게 깨달을 수 있었는데, 주로 <전자기학>이라는 놈으로부터 따가운 깨달음 공격이 들어왔다. 정말 짜증나는 다른 과목도 많았지만, 걔네들이 좀 빠르며 가끔은 묵직한 펀치였다면 <전자기학>은 하이킥이었다. 그게 왜 충격이었냐 하면, 순진하게도 syo는 1학년이 끝나도록 지가 권투를 배우러 온 줄 알았기 때문이다. 세상에, 여긴 뭐지? 뚜닥뚜닥 컴퓨터나 두드리면 되는 곳인 줄 알았는데 이 미친 수식들은 도대체......야, 이거 어떻게 읽냐..... 어어, 뭐야. 왜 인테그랄 쟤네 뭔데 막 세 개씩 붙어 다니는 건데, 이거 반칙 아냐?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표를 초토화시켜 가정 내 분위기를 흉흉하게 만들었다는 죄목으로 <전자기학>의 최대주주를 고소고발하기로 결정, 과연 어떤 놈이 그랬는지 수색하기 시작했다. 수사망이 좁혀짐에 따라 용의자는 둘로 압축이 되긴 했는데, 아뿔싸, 우리는 피고를 도저히 특정할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패러데이를 지목했다. 패러데이가 발로 뛰어서 만든 걸 맥스웰은 수학적으로 정리 정돈 했을 뿐이야. 애초 일을 친 놈은 패러데이라고. 우린 패러데이를 조져야 돼. 그러자 맥스웰 파가 반론을 펼쳤다. 잠깐, 우리가 그들을 법정에 세우려는 것은 다 학점 때문이잖아. 맥스웰 아니었으면 전자기학이 학점을 매길 만한 학문 체계를 갖출 수 있었을까? 우리가 조져야 할 놈은 맥스웰이야. 방정식 이름을 봐 봐, 맥스웰 이큐에이션이잖아. 


패러데이가 개놈이다, 맥스웰이 잡놈이다, 난만한 토론이 오갔지만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공대생들은 울분을 삼킨 채, 결국 다음 의제인 모 여대와의 5:5 미팅에 관한 안건에 대한 토론을 시작했다. 이 지점에서, 아마 미팅 안건이 블랙홀처럼 갈등과 대립을 빨아들여 대동단결을 이루어 냈을 거라고 예측하신 비공대인 이웃들이 계신다면, 미드 <빅뱅이론>을 권해 본다. 우리는 여자 때문에 정말 아무 짝에도 쓸데 없는 학문적 고집을 포기하지 않는, 진성 크레이지 공대남이었으므로, 마무리되지 않은 결론이 모든 걸 망치고 말았다. 미팅의 주선자가 맥스웰 파였으므로, 5:5 미팅은 맥스웰 지지자 3인과 아무 생각 없던 1인, 그리고 패러데이를 지지했던 1인이 참여하는 것으로 결착이 난 것이다. 진짜 미팅이 필요했던 지질이들은 패러데이 지지자 쪽에 잔뜩 있었음에도...... 그 가운데, 외견상 미팅을 위해 지지를 철회한 배반자로 보였던 그 마지막 1인이, 토론장을 나오며 조용히 "그래도 나는 패러데이 때문에 미치고 돈다" 라고 혼잣말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혼잣말이 어떻게 기록에 남았느냐고 의혹을 제기하신다면, 해답은 간단하다. 그 1인이 바로 s...... 다른 이유 때문에 결국 그 미팅에는 안 나갔다고 전한다. 재밌었다고 그런다.


syo가 패러데이 지지자였던 것은, 그의 입지전적 행보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겠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노동자로 살아가며 한 땀 한 땀 자신의 꿈을 향해 불굴의 노력을 쌓아나갔던 패러데이. 반면, 대영지를 물려받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교육과 문화 자본을 듬뿍 들이마시며 자라난 맥스웰. 수학을 모르는 실험의 천재 패러데이와, 앉은 자리에서 수식으로 모든 것을 만들어 낸 책상앞의 천재 맥스웰이라는 편향된 이미지의 대립은 그들의 출생과 성장 환경에서 그 싹이 보인다. 결국 syo는 20대 초반부터 벌써 빨갱이였던 것이다. 패러데이 만세!


사실 아는 사람들은 다 맥스웰 쪽의 우세를 말하긴 했지만, 학부생 입장에서는 쉽게 결론이 나는 싸움이 아니었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하고 싸우면 누가 이겨요? 컨디션 좋은 놈이 이긴다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 중에 누가 더 컨디션이 좋을까요? 전날 저녁 많이 먹고 일찍 잔 놈 컨디션이 더 좋다네. 교수님, 패러데이하고 맥스웰 중에 누가 전날 저녁을 많이...... 그러지 말고, 두 사람 평전을 읽어보는 게 어떤가? 물론 원서라네. 번역본은 없지. 교수님, 쉼없이 진도 나가시죠.


그때는 없었지만 지금은 있다. 도서관 서가에서 이 책을 발견했을 때, syo의 가슴은 이제야 묵은 싸움의 진정한 결말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에 부풀었다. 결론은 맥스웰의 판정승인 듯. 그래도 저자들은 이런 구절을 팡팡 삽입하여 패러데이의 기를 살려주는 것에 조금도 인색함을 보이지 않는다.


이 이론은 10년 이상 지속되었던 엄청난 창의적 노력의 결과물이었으며, 그 영감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클 패러데이의 연구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패러데이가 <전기에 대한 실험적 연구>에 세심하게 기록해 놓은 발견과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맥스웰은 패러데이가 보았던 방식대로 세계를 볼 수 있었고, 패러데이의 비전과 강력한 뉴턴의 수학을 결합함으로써 물리적 실재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제시할 수 있었다. 수학의 강력한 힘을 통해 성취했다고 해도, 기적에 가까운 맥스웰의 직관 없이 수학만으로는 결코 불가능했을 결과였다. 이는 이론에 완벽함을 부여한 변위 전류라는 개념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니 이 이론은 맥스웰과 패러데이 모두의 것이다. (288)


사실, 평전이라는 것은 읽기가 쉬운 장르는 아니다. 철학자의 평전에는 그 철학자가 주창한 철학 지식이, 과학자의 평전에는 그가 만들고 증명한 이론이 기술되어 있기 때문이겠다. 이 책 역시 전자기학, 하다 못해 일반 물리에 대한 기초적인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펼쳐 들면 두 거장의 위대함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따르고, 그것은 곧 감동과 기쁨의 축소나 절제를 의미한다. 그럼에도 전기라는 장르가 갖춘 무시할 수 없는 또다른 매력, 동기 부여와 의욕 고취 관점에서 보면 이 책 역시 쓸모를 충분히 다한다. 과학도 수학도 결국은 인간의 일이므로, 거장은 우리에게 영감을 준다. 그들의 노력, 삶의 행로, 그리고 한계. 이런 것들은 분야의 울타리를 벗어나 모든 독자의 가슴을 때리는 파동이다. 우리가 가진 관심의 망에 포착되지 않는, 전혀 다른 인간들의 삶. 나와 하나도 닮은 게 없는 사람들의 삶과 내 삶이 겹쳐지는 부분이 있다는 소소한 사실이 묵직한 위로와 동력이 된다는 것. 미지의 이웃들과 함께 하는 따뜻한 삶을 위한 비슷함. 그런 것들이 평전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메타적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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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5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5 15: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12-25 15: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과학관련 책을 읽으면 상당한 수식을 인정하고 읽고 있는데, syo님은 어느정도 비판적으로 읽으실 것 같아 부럽습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syo 2017-12-25 15:18   좋아요 1 | URL
저도 인정파입니다 ㅎㅎㅎㅎ 수식을 비판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어요. 숭배하는 법을 배웠지요.
겨울호랑이님도 따뜻한 연말 되시기를^^

토큰 2017-12-26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물리에 한참 푹 빠져있을 때가 생각나네요~^^;

syo 2017-12-26 06:19   좋아요 1 | URL
그런 것에 푹 빠질 수 있으시다니 고수시다....^^

2017-12-26 14: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4: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5: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6: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6: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7 17: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큰 2017-12-28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은 공학도이시지 않으십니까~? 대단하십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나요...)

syo 2017-12-28 23:26   좋아요 0 | URL
공학도는 아니고, 공학도˝였던˝ 백수입니다 ㅎㅎㅎ

깐도리 2017-12-30 1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리학을 물리도록 좋아했던 고딩 친구가 생각 나네요...
고딩 때 대학 물리학 책을 독학했던 아이였는데, 수능을 망처서...

syo 2017-12-30 15:50   좋아요 0 | URL
너무 슬픈 이야기네요......ㅠ

겨울호랑이 2017-12-31 09: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 syo님께서는 진정한 2017년 다독가이십니다. 새해에도 유쾌한 책소개와 일상 페이퍼 기대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17-12-31 09:23   좋아요 1 | URL
겨울호랑이님한테 많이 배운 2017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2018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12-30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적어도 대학 내내 사기 당하신 것 아니잖아요. 전 큰 사기 당해 무척 억울하단 느낌입니다. ㅠㅠ

syo 2018-12-30 20:34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제가 뜻밖의 전공승리를 거두었군요. 그렇네요. 사기라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ㅎㅎ
 



김호기,『세상을 뒤흔든 사상』을 읽다.

사라 밀스,『현재의 역사가 미셸 푸코』를 다시 읽다.

최종규,『말 잘하고 글 잘 쓰게 돕는 읽는 우리말 사전』을 슬슬 넘겨보다.

버지니아 울프,『자기만의 방』을 끙끙 거리며 따라가다.

빌 브라이슨,『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야심을 가지고 읽다가 겸손해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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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이 사라지고 있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해 보면 시국은 상대적으로 평화로운데 마음자리는 오히려 뒤숭숭하다. 어쩐지 올해는 푹 늙은 느낌이다. 다크서클, 피부, 머리카락, 아랫배 등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부위와 증상을 총동원하여 syo 너는 이미 아저씨라고 윽박지르는 이 못돼쳐먹은 사지육신을 어쩐다? 


아무래도 분노는 젊음의 명약이고 체념은 노화의 촉진제인 것 같다. 2016년 연말에는 하루 24시간 가운데 28시간쯤 빡친 상태를 유지한 채, 아작을 내겠다는 기세로 키보드를 두들기고 있었던 것 같은데, 2017년 연말, 그 세찬 분노는 다 어딜 가고, 사는 게 다 그렇지 인생 뭐 딴 거 있나 하는 컨셉으로 조신조신 일기를 쓰고 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어느 어둡고 혼란한 시절에 말야, 백스페이스를 모르는 용맹한 키보드 워리어가 있었지. 그의 이름은 s...... 뭐, 거기까지만 말해두기로 할까. 그에 관해 알려진 사실이라고는 붉고 둥근 얼굴에 걸레를 문 말솜씨와 똥 묻은 글솜씨를 갖고 있다는 것 뿐이지. 백수라는 말도 있고, 거지라는 이야기도 돌고. 정말 거지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거지 같은 데가 있는 인간이었어. 시종일관 붉은 그의 얼굴을 대한 사람들이 넌 왜 그렇게 화가 잔뜩 나 있느냐고 물어올 때면, 그는 입을 꾹 다문 채 그저 손가락을 들어 북악산 어디께를 가리켰다고 해. 그는 허공으로 사라져 갈 말들을 입으로만 뱉어 놓는 졸장부가 아니었지. 대신 바람보다 빠르게 손가락을 놀려 벼락 같은 혐오의 말을 어딘가로 쏳아올리곤 했어. 독은 독으로, 칼은 칼로. 난국이 평정되고, 사람들이 모든 공로를 광장과 촛불에 돌릴 때, 그는 자신이 한 일을 애써 드러내지도, 어떤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어. 마치 뭐 큰 일이 있었냐는 듯 묵묵히 손가락을 접고 다시 어두운 도서관으로 기어들어갔지. 세상은 조용해졌지만 그의 얼굴은 여전히 붉었어. 아직 그가 만족할 만큼 세상이 좋아지지도 않았고, 또 다른 무수한 혐오들이 뛰쳐나와 세상을 흔들어 놓을 기회만 노리고 있었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제 그의 얼굴을 대할 때면 넌 뭐가 그렇게 부끄럽냐고 놀려대지. 그는 역시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아. 하지만 그는 그저 때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야. 언젠가 다시 온갖 똥멍청이들이 등신경진대회판을 벌려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날이 오면, 그의 곱은 손가락이 다시 펼쳐질 거야. 똥멍청이들은 조심하는 게 좋겠지. 어둠 속에 그가 웅크리고 있거든. 이빨은 이빨로, 똥은 똥으로. 


라는 식의, 그지 같지만 멋있는 놈이면 좋겠는데. 2018년에는 오히려 키보드 두드릴 일이 더 줄어들 것만 같다.




2


김호기 선생님의 선한 얼굴을 처음 본 것은 TV 토론회였다. 대선 후보자들을 하루에 한 명씩 불러다가 정견을 듣고, 교수 두 명이 이런 저런 질의를 하는 시스템이었는데, 두 교수 중 좀 더 선한 얼굴, 좀 더 선한 말로 조곤조곤 이야기하던 사람이 김호기 선생님이었다. 뭐지 저 무골호인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박한 얼굴 뒤에 매서운 솜씨를 품고 있었다. 역시 사람이 지식인 소리를 들으려면, 가리지 않고 골고루 읽어야 돼. 멋쟁이.


빌 브라이슨을 읽으면 웃긴 글을 쓰고 싶을 때 더 웃길 수 있을까 싶어서 책 한 권 빌렸는데, 저 사람은 천재로 결론. 참 탐나는 재능이지만 그거 줄테니 저 얼굴과 배도 세트로 가져가라고 하면 좀 망설여진다...... 그냥 당신이 웃겨줘요. 전 웃을테니.


푸코를 알면 알수록 이 사람은 너무 멋있다. 머리에 든 것도 사는 것도 다. 내가 만약 푸코랑 알고 지내는데 갑자기 푸코가 자기랑 사귀든가 안 보고 지내든가 양자택일하라는 식으로 나왔다면 아마 한달은 고민했겠다. 엄마한테 푸코랑 사귀는 거 숨기는 방법 찾느라고. 그 정도로 저 사람이 좋다는 이야깁니다. 역시 대단한 천재. 참 탐나는 재능이지만 그거 줄테니 저 대머리도 세트로 가져가라고 하면 좀 망설여진다...... 그냥 당신이 가르쳐줘요. 전 배울테니.






3


사실 syo가 책을 읽는 것은 비밀 아닌 비밀이다.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고 아직 손에 책을 들고 있다는 사실이 주변인들에게 알려지면 어떤 강력한 제재와 압박이 가해질 지 모를 일이다. 세상은 참, 읽으려는 자들에게 다정하지 못하고, 읽지 않으려는 자들에게 매혹적이지도 못하다. 얼른 시험의 시간이 끝나고, 넉넉히 읽을 수 있는 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다.


그럼 좋겠지만, 아마 그런 날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이제껏 syo가 빈둥거린,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오래 빈둥거리려 했던 이유는 한번 자본주의의 달리는 열차에 올라타면 자력으로는 내려오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물며 syo처럼 젓가락으로도 못 집을 만큼 멘탈이 부드러운 인간이야 더 말할 것도 없지.....


책 읽고 싶은 놈들은 책만 읽어도 살 수 있는 세상, 얼마나 좋아. 어차피 책 읽겠다는 사람도 많이 없는데.




책을 별로 읽지 않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 독서에 지나치게 몰두하는 사람들은 멍청하거나 병든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독자는 이런 훈계를 한번 이상은 들어봤을 것이다. "집에서 책만 읽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살 궁리를 좀 해라!" 아마도 훈계자는 독서와 삶을 별개로 간주한 듯하다. 어쩌면 훈계자는 '독자가 똥과 된장을 구별하지 못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_ 알베르토 망구엘,『은유가 된 독자』 



어느 날 몸젠이 심하게 흔들리는 마차 안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런데 옆에 앉은 아이가 너무 시끄럽게 굴어 독서에 방해가 되었다. 몸젠은 화가 나서 물었다. "애, 넌 이름이 뭐냐?" 아이는 깜짝 놀라서 대답했다. "아빠, 전 아빠 아들 하인리히인데요."

_ 김성은,『근대인의 탄생,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책 좋아하는 분들의 얘기를.들어보면 하나같이 주변에 책 읽는 친구가 없다고 해요. 오히려 책 읽는다고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티 내지 않고 혼자 읽는다는 분들이 많아요.

_ 땡스북스 + 퍼니플랜,『어서오세요, 오늘의 동네서점』 



그는 동굴에서 나왔고, 원주민들애게 마을로 돌아가라고 명령하고는 책을 팔에 끼고 정상까지 기어올라갔다. 그러고 나서 초원에 드러누워 첫 패이지릉 펼쳤다. 그는 그 정상에서 그 책을 읽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공기가 순수했기 때문에 이야기는 공기와 같았고, 영혼을 열어주었다. 거기서,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을 기다리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_ 안토니오 타부키,『꿈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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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12-20 2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맘껏 읽어도 눈치보지 않고 욕 먹지 않는 참된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

syo 2017-12-20 22:40   좋아요 1 | URL
어디서 들었는데 ˝얘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책을 읽고 있네!˝ 라는 말이 우리말로 하면 이상할 게 하나 없는데, 번역하면 그렇게 말도 안 되는 말이 없다네여....

다락방 2017-12-21 08: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빌 브라이슨의 호주여행기 읽고 19금 인용문을 발췌해두었는데, 여기에 가져다 옮길까, 하고 다시 읽어보니 안옮기는 게 낫겠어요. 하핫. 대신 이거 가져왔어요.


˝블루마운틴 산악 지대라도 그럴 걸세. 내가 이미 말한 것 같은데? 이 지역은 아주 비밀스러운 곳이니까 책에다는 쓰지 말게.˝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절대 안 쓰겠네.˝ (p.226)


빌 브라이슨 엄청 웃기죠! 그가 산에 친구랑 걷는 거 그거 엄청 재미있어요. 지금 당장 제목이 생각 안나는데... 잠깐만요, 검색해보고 올게요.

[나를 부르는 숲] !

그거 엄청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 이 페이퍼 보니까 그 책 다시 읽고 싶어지네요. 지금은 팔아서 없숑 ㅋㅋㅋㅋㅋ

syo 2017-12-21 08:4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나를 부르는 숲> 하고 이 책이 정평이 나 있네요. 개그력을 좀 훔쳐야겠어요 ㅋㅋㅋ

고양이라디오 2017-12-22 16:38   좋아요 0 | URL
<나를 부르는 숲> 보고 싶네요ㅎ 빌 브라이슨의 유머력도 최고죠!

cyrus 2017-12-21 13:1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책 좋아하는 사람 앞에 너무 책 좋아하는 티 내는 것도 안 좋아요. 특히 고수 앞에서 나대다가 털릴 수 있어요. 독서모임에 처음 나갔을 때 아는 척하다가 털려서 민망했던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독서모임에 나가면 경청 모드를 항상 유지해요. ^^;;

syo 2017-12-21 13:27   좋아요 1 | URL
좋은 충고 감사합니다. 그나저나 사이러스님이 털리다니......전 요즘도 가끔 사이러스님이 AI가 아닌지 의심하는데 말이지요.

고양이라디오 2017-12-22 16:38   좋아요 0 | URL
cyrus님이 털리다니... 저도 급겸손해지네요.

2017-12-21 15: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1 15: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1 16: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22 15: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17-12-22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보니 푸코와 빌 브라인스의 책을 읽고 싶네요ㅎ 푸코는 아직 만나보지 못했는데 책 한 권 추천부탁드립니다~!

syo 2017-12-22 17:30   좋아요 1 | URL
저도 푸코가 쓴 책은 꼴랑 두 권밖에 못 읽어봐서 추천하고 말고 할 입장이 못 된답니다......ㅠㅠ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한낱 입문서 빠돌이일 뿐이거든요. 요즘은 디디에 에리봉의 푸코 전기를 읽고 있는데, 관심 있으시면 거기부터 시작해 보시는 것은??

고양이라디오 2017-12-22 17:38   좋아요 0 | URL
꼴랑 2권이라뇨ㅎ 좋은 입문서도 좋죠~ 푸코 전기 알겠습니다^^

서니데이 2017-12-22 2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2017 서재의 달인 축하드립니다.^^

2017-12-23 01: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깐도리 2017-12-23 17: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syo님 2017년 서재의 달인 축하합니다.^^

나비종 2017-12-25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어지게 밍기적거리다 푸코 덕분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푸코, 감옥에 가다>라는 아직 읽지 않은 청소년 철학 소설이 책꽂이에 있는데, 이제까지 푸코가 진자 만드신 그분인 줄 알았거든요. 제목만 보고 생각했죠. 그 옛날 갈릴레이처럼 고생 좀 하신 물.리.학.자. 인 줄. .하.하.하^^;;

책읽는 속도가 느려터져서 다독이 불가능하지만 책읽기를 좋아합니다. syo님의 글 덕분에 흥미가 가는 또 다른 미셸도 소개받게 되고, 뽀송뽀송한 내용으로 마음이 가뿐해졌습니다. 좋아하는 대상이 일치하는 분들의 글은 언제 읽어도 즐겁구나 싶었습니다.^^

syo 2017-12-25 12:28   좋아요 0 | URL
물리도 철학도 다른 세계 사정인 대다수의 선량한 일반 대중에게는 과연 장 베르나르 푸코와 미셸 푸코 중 어느 쪽이 더 유명할까요..... 저도 장 베르나르를 교과서에서 배워 먼저 알게 되긴 했습니다만 ㅎㅎ

새해에도 나비종님의 알차고 뜻깊은 독서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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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미즈,『가부장제와 자본주의』에 재도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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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글이 똥이라도, 제대로 똥을 싸는 일 역시 그렇듯이, 글쓰기는 에너지 소모량이 만만치 않다.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밤, 앉은 자리에서 3시간 30분을 쏟아넣어 겨우 A4 세 장 반짜리 글을 지어 올려 놓고는 그 길로 멘탈이 탈탈탈탈탈곡 되어 주말 내내 책이고 북플이고 거들떠도 안 보고 엎어졌다. 엎어진 김에 공부를 좀 했는데 얼쑤 잘 되었다. 하다하다 이제 읽고 쓰다 지쳐 공부로 한숨 돌리는 주객전도의 지경에 이르렀다. 잠깐만, 이거 괜찮은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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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인지 독후감인지 소설인지 회고록인지 뭔지 모를 글을 쓰고 나서, 한 편의 글 안에 부어 넣어야 할 상상의 적당한 함량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이야기와 관계한다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 될 수 있다. 이야기를 기록하는 사람은 먼저 기억의 뼈대를 곧게 세우고, 그 위로 아름다움이나 유쾌함, 혹은 추함과 불쾌함을 자아내는 상상의 겉옷을 입힌다. 그리고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은 상상의 너른 마당 위에 디테일의 꽃을 피우기 위해 기억의 씨앗을 뿌린다. 그러나 이야기를 만지는 사람이 기록자든 창작자든 그와는 무관하게, 상상과 기억은 하나의 글 안에서 몸을 부딪는 가운데 종종 서로의 체액을 교환하여 물들고 변질된다. 슬픈 기억이 상상의 조각을 품고 더 슬픈 모습으로 치환되어 당당히 기억의 자리에 뿌리를 내린다. 상상은 기억이 걸어놓은 목줄 때문에 한없이 자유로웠을 자신의 갈 길로 날아가지 못하고 비틀거리지만 제 몸이 불구가 되었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글은 위험하다. 상상하는 자에게 기억이 무겁고, 기억하는 자에게 상상이 무서우므로, 한 편의 글을 쓰고 나면, 그 글을 통해 우리는 기억과 상상을 모두 다친다. 아팠던 것보다 아팠던 기억이 더 커지면 자신이 더 불쌍해진다. 자신에게 불쌍한 사람의 멍에를 씌우고 나면 상상은 더 검어진다. 글을 쓰면 쓸수록, 나는 그 악순환의 늪에 점점 더 깊이 몸을 담그는 꼴이 되는 것이다. 한 편의 글을 마치고 나면, 그 글의 가치와 함량에 무관하게, 나는 그 글을 쓰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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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에 상경할 예정이다. 고시는 아니지만 준고시 정도로는 쳐 주는 공부를 시작했는데, 기왕 그럴거면 이미 다 죽어가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시의 성지인 신림으로 가야겠다는 희한한 의무감이 생겼다. 바득바득 긁어 모으고 손 벌려도 미워하지 않을 이들에게만 손을 좀 벌리면 작은 원룸 하나 전세로 얻는 일은 어려운 일 아니겠으나, 그냥 고시원이 좋겠다. 좁은 방에 쳐박혀 묵묵히 공부하는 사람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도 오랜만이라 반갑다. 그 공간이야말로 syo를 지금의 syo로 배양해 준 요람이었다. 뭐 그때나 지금이나 별볼일 없긴 매한가지지만.


이번에는 슬픔이 따라오지 않았으면 싶다. 이제 벽하고 대화를 주고 받는 일은 별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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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전차로, 이제 확실히 책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꼬박꼬박 도서관 갈 일도 없고, 서울 도서관은 대구와 달리 야박하게 6권, 7권 요렇게 빌려주므로, 이 참에 두꺼운 놈으로 6권 빌려 3주 내내 읽고 반납하는 깊이 있는 독서의 시간을 가져야겠다. 그래서 뭘 내려 놓고 뭘 그대로 쥐고 있어야 하나 고민을 해 본다. 


아무래도 페미니즘 책들은 포기하기가 어렵겠다. 다정한 책벗과 약속한 것도 있고. 일단 요정도로.



라캉은 좀 읽을 줄 알아야겠다. 라캉 이거 어디 쓰겠노, 했지만 막상 이거 못 알아먹으니까 여기저기서 턱턱 걸린다. 심지어 페미니즘 책 읽을 때도. 요런 것들을 갖추어 놓았다. 하나도 못 읽지만.



철학은 지금처럼 중구난방으로 읽는 습관을 버리고 한 명씩 천천히 해보기로 하자. 스피노자부터 하면 좋겠다. 스피노자는 요런 애들을 들고 있다.




그럼, 잠시만 안녕할 친구들은, 뇌과학 안녕, 진화학 안녕, 루쉰 안녕, 러시아혁명사 안녕, 건축 안녕, 미술사 안녕, 소설 안녕, 정치학 안녕, 그리고 억, 마르.....마르크스 안녕.....어흑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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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괭 2017-12-18 2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림동... 조심하세요. 놀거리가 어마어마하게 싼 신림동.. syo님이야 읽고 쓰다 지쳐 공부로 숨돌리시는 분이니 그런 유혹에 빠지시진 않겠지만요^^ 적게 읽으시겠다는 소식이 자못 아쉽지만 그만큼 깊이있는 서평으로 돌아오실 거라 믿쑵니다~~ 화이팅!!

syo 2017-12-18 21:31   좋아요 0 | URL
아니, 그렇단 말입니까 ㅎㅎㅎㅎㅎ
잘 염두에 두겠습니다^^ 후후후..

다락방 2017-12-18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은 안녕 안하면 안될까요 ㅠㅠ

syo 2017-12-18 22:01   좋아요 0 | URL
잠시만 안녕이에요.... 저 오늘 도서관에서 무려 루시 바턴을 애써 무시하고 고개를 돌렸다는ㅠ

다락방 2017-12-18 22:43   좋아요 0 | URL
아 루시 바턴 ㅜㅜ 나도 아직 안샀는데 ㅜㅜ

2017-12-18 23: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06: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토큰 2017-12-18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6권이 야박하다니.. 대구는 몇 권을 빌릴 수 있는 것입니까!?

syo 2017-12-19 06:37   좋아요 0 | URL
도서관마다 10권씩해서 총 20권이요!
인간의 손가락 발가락이 각 10개끽 20개라서 그런 거 아닐까요?!

2017-12-19 11: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9 2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2-19 21: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신림동에 알라딘 중고서점 있어요. 앉아서 책 읽기도 좋음요. 도서관 귀찮으심 거기 가세요ㅋ 빨리 읽으시니 syo 님에겐 도서관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구만요ㅋ

syo 2017-12-19 22:14   좋아요 0 | URL
망삘.....ㅋ
사실은 이미 그 근처의 모든 피자 돈가스 치킨 햄버거 가게의 위치를 검색하면서 알라딘도 함께 위치파악을 마쳤었드랬지요 ㅎㅎ

토큰 2017-12-19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 편의 글을 마치고 나면, 그 글의 가치와 함량에 무관하게, 나는 그 글을 쓰기 전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다. - 여운이 남는 구절입니다..

syo 2017-12-20 06:32   좋아요 0 | URL
말은 이래놓고 막상 글은 아무렇게나 씁니다
...

2017-12-20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싱글 맨
크리스토퍼 이셔우드 지음, 조동섭 옮김 / 창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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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똑같이 웃으며 해준 잘 자라는 말이 얼핏 잘 가라는 말로 들렸던 그 밤부터 B는 잠 못 이루고 둘의 끝을 가늠해보기 시작했다.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한 번 잘못 들었던 말은 아무리 귀 기울여 잘 들어도 저절로 잘못 들리고 저절로 끝을 가리켰다. B는 많은 밤을 혼자서 고민했다. C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점이 더 비현실적이라 둘은 결국 끝으로 치닫고 말 거라고 불안해하며 B는 잠든 C의 오른손을 좀 더 세게 움켜쥐었다. C는 꼼짝도 않고 잘만 잤다. BC의 손을 놓지 않고 몸만 C 쪽으로 돌려 오른손으로 C의 이마를 만져 보았다. 작고 단단하다. 웃을 때 가로로 얇은 주름이 지는 이마. B는 그 주름지는 이마가 사랑스럽지만 주름이 지지 않아도 어차피 사랑스러울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왜 이 아이가 이렇게 사랑스러운지를 추리하는 데 몽땅 털어 넣었지만,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C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아이, 치명적인 아이가 되어갈 뿐, 뭐라고 딱히 단정한 결론을 낼 수는 없었다. 아무렴 어때, 좋으면 됐지. C의 이마를 짚는 밤이 차곡차곡 쌓여가면서 점점 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고, 점점 더 좋아졌다. 잘 자라는 말이 허방을 짚었던 그 밤이 오기 전까지는. 그 밤 이후에도 C의 이마는 낮에는 밝고 밤에는 어둡고 웃으면 주름이 졌고 B는 그것이 참 좋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렴 어때, 어차피 끝날 걸, 하는 생각을 머릿속에서 쫓아낼 수는 없었다. 잠든 숨소리가 무럭무럭 방을 덥히는 사이, 겨울이 가고 그 자리에 봄이 들고 있었다.


 

처음 본 C는 말없고 잠잠한 성격에 눈치도 부족한 아이였다. B가 지시하면 말없이 움직였으나 몸놀림이 재바르지도, 야물지도 않았다. 손이 많이 가는 타입이었으므로, 자연히 B의 일과는 대부분 C를 훈계하거나 질책하는 데 소진되었다. C는 끝까지 묵묵했고, 가끔 웃으면 이마에 주름이 졌다. 억지로 웃어도 그랬다. 왜 그렇게 웃어? B가 물었다. C의 이마에 주름이 펴졌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똑같은 주름을 잡으며 C가 대답했다. 좋아서요. BC의 그 주름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C는 웃음을 걷지 않고 B의 눈을 오래 바라보았다. 뭐가? 더 참지 못하고 B가 다시 묻는다. 아니...... 잘 가르쳐 주시니까요. 저 땜에 화가 나실 텐데도...... C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인지 주름이 조금 더 두껍게 잡혔다. 그래서인지 B는 자기 마음에도 재바르지도, 야물지도 않은 줄 하나가 그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이후, BC의 시간이 무채색의 훈계와 질책에서 채도가 있는 질문과 대답으로 조금씩 덧칠되었다. 그러자 시간은 쌓이기 시작했다. 초여름이었다.


 

손을 내 놓으라고 먼저 요청한 것은 B였다. C의 손은 작으면서도 두껍고 손가락은 다섯 개가 모두 짧은 편이지만 특히 엄지손가락은 남들보다 한 마디는 짧았다. B는 우연히 그 손을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닁큼 잡고 말았다. 전에 오래 만나던 사람 손하고 너무 닮은 손이야, 네 손이. B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지만 C가 자신의 말을 개수작이라고 여길 거라고 생각했다. CB의 말을 개수작이라고 여겼지만 그 손을 빼거나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 그렇습니까. C는 웃었다. , 정말 그래. 정말 그렇다. . B는 여기서 쉽게 C의 손을 내려놓으면 자신의 말이 개수작임을 인정하는 꼴이 될까봐 오래오래 C의 손을 만지며 구석구석 살폈다. 그런 시간도 역시 차곡차곡 쌓였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B가 대뜸 손을 내밀면, C가 슬쩍 그 손 안에 자신의 작은 손을 넣었다. B는 이제 C의 손이라면 보지도 않고 그릴 수 있을 만큼 속속들이 알고 있었지만, 아직도 더 뒤질 데가 남은 것처럼 착실하게 그 손을 만졌다. 저는 제 손이 참 싫었거든요, 솥뚜껑 같달 지, 자라 같달 지. 그래? 이 귀여운 손이 대체 왜 싫었을까. , 귀엽다고 한 사람은 좀 있었는데. 내가! ? ......내가 젤 귀여워, 아니, 그러니까, 나한테 제일 귀엽다고, , 뭐냐, , 하여튼 내가, 제일 귀여워한다고. ...... , 그런 것 같아요. C가 웃었다. B는 자기 얼굴이 빨개졌음을 너무도 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얘 앞에서 이러는 게 처음이려나. B는 조용히 C의 손을 만지작거리다 슬쩍 고개를 들어 C를 한 번 쳐다본 후 다시 고개를 푹 숙였다. 여름이 깊어가고 있었다.


 

듣기에 따라서 상당히 큰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을 그 말 역시 B로부터 C에게 건네졌다. 마치 저 높은 곳에서 꾸미기라도 한 것처럼 B의 신상에 좋지 않은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던 어느 날, 역시 아무도 없는 둘만의 공간에서 C의 손을 부지런히 만지던 B가 서글픈 목소리로 말했다. , 제대로 잠들어 본 게 언젠지 모르겠어. 요즘도 계속 그래? , 진짜 힘들다. 내가 뭐라도 해 줄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는데. 있어, 이 손, 이거 하나만 떼 주라. ? 이거 하나 가져가서 지금처럼 이렇게 잡고 있으면 잠 잘 올 것 같거든. 농담이지? , 그럼 농담이지, 진짜겠냐? 아무리 이게 좋아도, 손을 어떻게 잘라 가냐 가기를. 아니, 자르는 거 말고, 손 잡아주면 잘 수 있을 것 같다는 말 말야. 글쎄, 그건 진짜 그럴 것도 같은데. 그럼 오늘 하루만 내가 손 잡아줘 볼게. ? 아니, 너무 피곤해보여서, 그렇게라도 해야 될 것 같아. 지금 얼굴이 그래. ......그래, 그럼. 딱 하루만, 신세 좀 지자. 그래, 걱정 마, 손만 잡고 잘게, 오빠 믿지? , 이 새끼는 못하는 말이 없어서 너무 좋아. 늦은 장마가 힘을 다하는 시간이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짐작할 수 있듯, 오늘 하루만이라는 말은 귀여운 기만이었고, 그 기만 위로 세상에 어제와 내일은 없고 오직 오늘만이 있을 뿐이라는 좀 더 뻔뻔한 기만이 덧뿌려지면서, BC의 손을 잡고 잠을 이루는 날은 좀처럼 끝날 것 같지가 않았다. 사실 B를 잠들게 하는 것은 C의 손이 아니라 C의 잠이었다. 잘 자. 한 마디를 남기고 C는 금방 잠이 든다. B는 잠시 C의 이마를 만지며 C의 잠을 내려다본다. 그리고 이내 스르르 잠이 든다. 일어나 보면 B의 왼손과 C의 오른손은 여전히 서로 굳게 맞잡고 있다. B는 누군가의 손을 잠들기 전까지 끝내 잡고 있을 수 있는 자기 자신을 새로 발견하고 적잖이 놀랐다. 가끔 C가 늦게까지 일할 때면 BC가 돌아오며 헤집어 댈 밤의 길과 하늘을 머릿속으로 조곤조곤 그려보다 먼저 잠이 들지만, B가 눈을 뜨면 그의 손은 여지없이 C의 작은 손 안에 구겨져 있었다. 그런 소소한 밤들이 쌓여가는 것이 B는 좋았다. 가을이 깊었지만 BC는 서로의 손과 입에서 머물렀다. 거기서 한 발 더 나가는 데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고, 그런 용기를 어디서 빌리거나 훔쳐와 그 다음을 채울 필요를 느끼지 못할 만큼 좋았고 충분했다. 그래도 둘만 있는 공간에서 손을 잡는 일은 조금 진척이 있었다. 테이블에 마주 앉아 B가 손을 내밀면, C는 그 손을 입가로 가져가 B의 검지를 살짝살짝 깨문다. B는 행복하다. , 꼭 새끼 강아지 같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B의 손가락을 씹으며 C가 대답한다. 귀엽지? 좋지? , 귀여워. 좋아. C가 손가락을 세게 깨물며 말한다. 내가 더 좋아. B는 웃는다. 그리고 창밖으로 멀리 겨울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누구에게나 그렇듯, 그들의 끝 역시 사뭇 진부했다. B의 일과 C의 일이 갈라진 것이 시작이었다. 그들은 더는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손을 잡거나 손가락을 입에 물고 지낼 수가 없었고, 서로의 부재가 각자 다른 방식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내가 네 전화를 얼마나 기다리는 줄 알잖아. 혹시 못 받을까봐 샤워할 때도 욕실에 전화기 챙겨서 들어간다고. 알지. 그렇지만 하고 싶은 만큼 전화하고 그럴 수 없다는 것도 알잖아. 알지. 그렇지만 하려고 들면 어떻게든 할 수는 있다는 것도 알지. 알잖아, 알지, 알잖아, 알지, 알지. 그런 대화들 속에서 그들은 서로 아직 알아갈 것이 많이 남은 상태였다는 것은 알았고, 상대가 나를 모르는 만큼 나도 상대를 모른다는 것은 몰랐다. BB대로 CC대로, 제 나름대로 아팠고 제 멋대로 아프게 했다. B는 한없이 진부했다. 가끔 통화가 닿으면 진부한 추궁의 말을 던졌다. J하고 붙어 지낸다는 이야기가 내 귀에까지 들어왔어. 그런 일 없어. 대체 그런 소리를 누구한테 듣고 다니는 거야. 술에 취하면 빌기도 했다. 나 버리지 마라. 너 없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알아, 그리고 안 버려. 누가 버린대. 그치? 안 버릴 거지? 헤헤, . 그러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니가 당연히 나를 버릴 수가 없지!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네가 사람이면! 진부함이야말로 모든 일을 시궁창으로 처박을 최악의 수라는 것을 B도 알았다. 그러나 자기가 이렇게까지 진부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제껏 몰랐기에 스스로의 실책에 당황만 거듭하고 있는 중이었다. CB의 진부함이 싫고 때론 경멸스럽기까지 했지만, 근본적으로 둘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일이 없었으며, 독특함이 관계의 틈을 메우는 접착제라고 믿었던 적도 없었기에 그저 마음이 식어가는 것이라고, 정해진 수순을 따르고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그것은 B도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잘 자라는 말이 잘못 들을 수 없을 만큼 선명한 잘 가라는 말로 변하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해 온 밤이 이미 꽤 쌓였기 때문이었다. 다시 여름이 돌아왔고,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조용히 서로를 찾지 않게 되었다. 다른 사람을 통해 그나마 이어지던 소식조차 낙엽이 질 때쯤 완전히 들려오지 않았다.


 

둘이 지내던 공간이 여전히 그의 소유였기 때문에, 그렇게 두껍게 쌓아 놓았던 시간의 켜가 속절없이 흩어지는 것을 B는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다. 빈자리는 그대로 흉터로 남았다. B는 말을 잃었다가, 말이 많아졌다. 하루 종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지내다가도, 대답 없는 벽에 대고 무한히 많은 말을 지껄였다. 대답을 머릿속으로 구성하며 미친 대화를 나눴다. 울거나, 웃다가 울었다. 즐거운 기억은 즐거워서 슬펐고, 슬픈 기억은 슬퍼서 슬펐다. 고개만 들어도, 작은 방을 구성하는 여섯 개의 면이 동시에 말을 걸었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C의 목소리, C의 말투, 그리고 C의 주름진 이마였다.



날마다해마다 이 좁은 장소에서작은 스토브 앞에 팔꿈치를 맞대고 서서 요리하고좁은 계단에서 간신히 서로 스쳐 지나가고작은 욕실 거울 앞에서 함께 면도하고계속 떠들고웃고실수든 고의든육감적으로공격적으로어색하게조급하게화너서든 사랑해서든 서로 몸을 부딪고 함께 사는 두 사람을 생각하라두 사람이 곳곳에 남길 수밖에 없는깊지만 보이지 않는 흔적들을 생각하라! (11)



길게 아팠다. 살 수 있을까? 그런 걱정도 하곤 했다.


 

진부한 이별이 다 그렇듯, 몇 년이 지나도 B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조금씩 숨이 트였고, 벽의 말수가 줄어들었으며, 점차 사는 게 쉬워졌다. 지금에서야 B는 생각한다. 사실 정해져 있던 것은 두 사람의 끝이 아니라, 끝이 나도 또 살아야 하고 살아야 하면 또 살아진다는 빤하고 진부한 진실은 아니었을까 하고. 이제 B는 아주 가끔 C를 생각하고, 생각하고 나면 아련하지만 아프진 않다. 그래도 한 때 켜켜이 쌓아놓아 충만하고 충분했던 두 사람의 시간이 흔적처럼 떠오를 때면 생각한다. 잘 자라는 말, 다시 한 번은 듣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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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즈 야스지로,『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를 마무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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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구조차 기온이 영상으로 오르지 않는 매서운 날이었다. 실컷 늦잠을 자고 일어나 책 한 번 읽어볼까 하고 펼쳐들었다가, 뇌가 파업투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총파업 규모는 아닌지라, 활자가 시신경을 때리는 데까지는 뇌가 작동을 하는데, 그 뒷일을 전혀 책임지지 않는 방식이었다. 활자가 문장이 되고 문장이 의미가 되어 대뇌 어딘가에 착착 쌓여야 독서가 될텐데, 글자들이 syo의 뇌를 차분히 견학한 다음, 쿨하게 휙 돌아가버리는 것이다. 가지 마, 돌아 와, 잠깐 쉬었다 가면 안 돼? 아무리 애걸복걸 빌고 구슬려 보아도 글자들은 고개를 저을 뿐, 얼굴 봤으면 됐지 뭘 더 바라냐며 야멸차게 사라져갔다. 망조다. 하루를 탕진할 징조다. 


이 모든 사건의 배후에 태만한 뇌가 도사리고 있었다. 후후, 넌 뇌세포를 소중히 여기지 않았지, 태업이다, 파업이다, 더 이상 활자는 그만, 우리에게 영상을 제공하지 않으면 더 이상 공장은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이 탐욕스런 자본가놈아. 뇌세포들의 강경한 단체행동에 syo는 잠시 당황했으나, 이내 마음을 굳게 먹은 다음, 보통 이런 경우 자본가놈들이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지 생각했다. 답은 간단했다. 노동자놈들에게 베풀 자비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걔네들은 8살 때부터 하루 16시간씩 노동시키며 쥐어짜고 또 쥐어짜도 짤 것이 있는 것들이죠. 


찬바람 부는 영하의 강변을 홀로 걸었다. 아 추워, 야, 누가 문 좀 닫아. 뇌세포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15분을 더 걸었다. 노조원들의 말소리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야, 이 사악한 주인놈아..... 이거 제 살 깎아 먹기 아니냐고..... syo는 귀를 닫았다. 10분을 더 걸었다. 노조의 대표가 협상을 제안해왔다. 협상이라니, 아직 멀었군. 10분을 더 걸었다. 노조가 백기를 들었다. 제발 따뜻한 데 들어가서 책이라도 좀 읽게 해 주쇼, 이거 원 더러워서.....


돌아올 땐 뛰어 왔다.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코코아 한 잔 딱 마셨더니, 눈에 들어온 글자가 뇌에도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게 다 마르크스한테서 배운 거다 이것들아. 마르크스, 과연, 인류 최고의 자본주의 분석자. 우리 편도 쓰고 적도 쓰는 전천후 대량학살무기.





2


책에 위로를 받다니, 정말 오랜만이다.


 벌레 한 마리가 어떤 남자의 시를 삼켰다.
 한 도둑이 어둠 속에서 위대한 말씀을 먹어 치운 것이다. 
 그것도 견고한 반석에 놓인 말씀을 말이다.
 그런 말씀을 날로 먹은 도둑은 미련하다.

 이 격언은 그 이전의 라틴 시를 흉내 낸 듯한데, 독자의 게걸스러움이 부르는 실수를 경계하는 게 분명하다. 그 교훈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다. "말씀에서 어떤 교훈을 얻지 못하고 꿀꺽 삼켜 버린다면, 텍스트는 소화되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게 아니라 입자가 굵은 대변으로 배설되고 만다. 따라서 엄청난 분량의 책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는데도 책벌레는 여전히 바보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 격언의 배경에는 사회에 깊이 뿌리박은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유대와 기독교 사회는 늘 '말씀에서 창조된 세상'을 지향했고, 이는 지적 행위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불신은 말씀에 대한 미신적 두려움으로, '세상은 말씀에서 태어났으므로, 우주와 삼라만상도 말씀에서 유래한다'는 믿음에서 유래한다. 말씀에 대한 두려움은 말씀의 마력에 대한 두려움으로 이해되고, 텍스트 검열·분서갱유·책벌레 조롱 등은 언어 자체의 주술적 힘을 물리치기 위한 행위로 보인다. 따라서 사회는 벽을 쌓아 스스로를 규정하는 동시에 '벽 안에서 뭔가가 생겨나게 해, 그 규정에 저항하게 하거나 정체성을 바꾸려 한다'는 의심도 받는다. 사회는 '창조할 것'과 '보존할 것' 간의 주고받음을 통해 성장하지만, 우리는 언어의 보존력을 자랑스러워하기만 하고 창조력은 부담스러워하기 마련이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언어와 관련된 상상력을 제한하거나 조롱하려고 노력한다.
_ 알베르토 망구엘,『은유가 된 독자』

  

syo는 책을 꽤 많이 읽지만, 많이 읽는 만큼 가볍게도 읽는지라 읽은 양에 비해 머리에 남는 것이 없어서 항상 고민이었다. 이 따위로 읽으면 안 되겠다 싶어 양을 줄이고 한 권을 오래 읽는 독서법을 시도해 본 것도 몇 번인지 모른다. 그러나 마지막엔 항상 제자리. 잘 읽히지 않는 책은 쉬이 포기하고 읽히는 것들만 찾아 서가를 어슬렁거리다보니, 이렇게 딱딱한 것 안 챙겨먹다가 이빨이 물렁해져서 결국 양갱만 씹어 먹어야 되는 꼴이 나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이다. 그러나 마지막엔 역시 제자리. 입문서를 하도 읽어서 가끔은 내가 '인간의 탈을 쓴 입문서'가 아닐까, 피가 땡겨서 자꾸 입문서를 찾아다니는 게 아닐까, 출생의 비밀을 의심하며 엄마를 노려보기도 한다. 그러나 마지막엔 결국 제자리. 


그런 syo에게 희망을 주었으니, 과연 월드와이드책벌레연합회공인 랭킹 1위를 다투는 알베르토 망구엘 선생님. 감사해요! 지금처럼 그냥 막, 아무렇게나 읽고 싶은 대로 퍽퍽 쳐 읽을게요! 


물론 실제로 저러라고 말씀하시진 않았다.




3



임현의「고두」는 『2017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과 단편집『그 개와 같은 말』을 통해 두 번 읽었는데, 과연 문제작이다. 문단 내 성폭력 사건 폭로 거의 직전에 발표되어, 한참 뜨거운 시점에 젊은작가상 대상을 수상했다. 제자와 잠자리를 가진 여고 윤리 선생이 화자로, 그야말로 비루한 자기인식과 변명의 극치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syo는 화자의 그지같음을 바탕으로 하여 이 작품을 '비판'으로 읽었는데, 오히려 이 작품을 비판하는 의견도 꽤 많은 것 같다. 그런 사실을 알고 떠올려 보니 사실 저 작품집을 처음 읽었을 때 좀 의아하긴 했다. syo의 견해에 따라 매긴 순서로는「고두」가 일곱 작품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syo 나부랭이가 뭘 알고 그런 짓을 하느냐 하시면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만, 그래도 지금까지 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판단한 경험에 비추어 보면 항상 수상작은 syo의 세 손가락 안에는 무난하게 안착해 왔었다. 시사성인가, 하고 넘어갔던 기억이다.


그러나 저러나, 황현경 평론가의 옹호는 날이 확 서 있다는 느낌이다. 현재 syo가 가진 역량으로 판단한 범위 안에서는「고두」에 여성 혐오가 깔려 있는지 아닌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그런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일부러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는 정도만 알겠다. 그리고 황현경 평론가가 제시하는 해설 역시 syo에겐 너무 어렵다. 윤리? 도덕? 그 차이나 그 차이를 낳는 근거를 황현경 평론가의 글만 읽고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syo만 멍청한 것이라면 좋겠지만. syo의 입장에서는 좀 쉽게 써줬으면 좋겠다 싶은 바람이지만 그 바람을 수용할 하등의 의무가 평론가에게 없다. syo가 읽어내지 못했을 뿐, 분명히 타당한 해석과 논리가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유독 화가 나 있다는 느낌, 강하게 비난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최근 저런 어투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글을 쓴 사람은 본업으로 돌아간다고 선언했고, 한참 뜨겁던 그의 SNS에서 지금은 산발적인 전투가 벌어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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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13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12-13 22:39   좋아요 0 | URL
저는 안 되나봐요.. 도무지 모르겠어...

짜라투스트라 2017-12-13 22:52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도요

독서괭 2017-12-14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같으면 “아 오늘 책 더럽게 안 읽힌다”하고 끝날 얘기를 뇌세포 파업사태 이야기로 이렇게 재미나게 풀어내시다니.. 역시 syo님^^

syo 2017-12-14 12:29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그대신 코감기를 얻었어요.

2017-12-14 1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4 12: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12-14 2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젝은 정말 대단하죠? 대체 뭔 얘길 하느지 도통, 당최....ㅎㅎ

syo 2017-12-14 21:15   좋아요 2 | URL
근데 뭔가 비유 같은 건 죽이지 않아요? ㅎㅎㅎ 저는 그 사람이 괜히 좋더라구요. 연쇄살인곰처럼 생겨가지고.

2017-12-14 2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4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4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2-14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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