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비평가 테리 이글턴의 셰익스피어론, <셰익스피어 정치적 읽기>(민음사)가 다시 나왔다. 애초에 <셰익스피어 다시 읽기>로 나왔던 책이다. 무려 22년만이다. 번역이 달라진 것 같지는 않으나 하드카바에서 소프트카바로 바뀌고 표지와 제목도 달라지면서 마치 새책 같은 인상을 준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지만 그때는 셰익스피어를 강의하기 전이었다. 지금은 주요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었고 나대로의 견해도 갖고 있는 처지라 독후감도 달라질 듯하다. 이글턴의 견해와 견주어볼 수도 있겠다.

셰익스피어론으로는 셰익스피어 전문학자 폴 캔터의 <맥베스: 양심을 지닌 아킬레스>(에디투스)도 정색하고 읽어볼 만한데 아직 시간을 못 내고 있다. 캔터는 특히 셰익스피어의 로마사극에 정통한데, 그에 관한 연구서들을 <맥베스> 덕분에 구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에 관한 나의 요즘 관심주제는 로마사극과 이탈리아 배경의 작품들이어서 조만간(그래도 빨라야 겨울이다) 읽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 전에 먼저 이글턴의 셰익스피어와 재회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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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문학을 강의하면서 고전 작가들과 정전들을 대략 훑고 있는데 마땅한 번역본이 없어서 불가불 건너뛴 경우도 몇 된다. 호손의 <주홍글자>를 강의하러 지방에 내려가는 길에 떠올라서 적자면, 스티븐 크레인도 그 가운데 하나다. <붉은 무공훈장> 같은 대표작이 번역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유감스럽게도 세계문학전집판으로 나와 있지 않다.

검색해보면 <현대 미국작가들의 선구자>라는 희한한 제목의 번역본에(알라딘에서는 역자가 저자로 탈바꿈해 있다) <붉은 무공훈장>이 들어 있긴 하지만 확인해보지 않아서 완역인지는 모르겠다. 크레인 작품은 단편 하나가 창비의 미국문학 단편선에 수록돼있고 자연주의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받는 <매기: 거리의 소녀>가 한 대학출판부에서 나온 바 있다. 모두 강의에서 다루기에는 미흡하다. 국내에 영미문학 전공자가 결코 드물지 않음에도 이런 ‘공백‘이 생기는 건 미스터리한 일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별도의 사정이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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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디스 워튼에 관한 페이퍼를 몇차례 쓰면서 자연스레 <순수의 시대>도 노출하게 되었는데, 강의에서 주로 쓰는 건 민음사판이지만 잘못된 선택이었다는 걸 최근에 알았다. 번역에 오류가 많다. 강의를 이미 진행중이라 되물릴 수도 없어서, 그리고 혹시나 이 작품을 읽으려는 독자들에게 참고가 될까 싶어 적자면, 현재 가장 나은 번역본으로 추천할 만한 것은 열린책들판이다. 문예출판사판이 그 다음이고, 민음사판과 펭귄클래식은 최악을 두고 다툰다. 그래도 골라야 한다면 최악은 펭귄클래식이다(내가 검토한 게 이 네 종이다).

세계문학전집은 작품마다 편차가 있어서 일률적으로 어느 출판사 전집이 낫다고는 말할 수 없다. 민음사전집과 펭귄클래식에도 좋은 번역본들이 있다. 그렇지만 <순수의 시대>는 평균 이하이고 두 전집에 민폐라고 생각된다. 여하튼 번역자의 경력을 고려하면서 가장 많이 읽히는 판본을 보통 교재로 쓰는데 그래도 함정이 있다는 걸 확인한다. <순수의 시대> 번역본 문제는 나중에 시간이 날 때 좀더 자세히 적도록 하겠다(장담은 못하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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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과학서로 꼽음직한 스티븐 실버판의 <뉴로트라이브>(알마)의 부제다. 정확히는 부제의 절반이다. 전체 부제는 ‘자폐증의 잃어버린 역사와 신경다양성의 미래‘. 제목과 부제로는 독자가 한정될 듯싶지만 자폐증을 다룬 책으로는 최고라는 평판이다.

작고한 올리버 색스도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이 책은 보기 드문 공감능력과 감수성으로 이 모든 역사를 넓고 깊게 그려낸다. 이 책을 읽는다면 자폐증에 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뀔 것이다.˝

자폐증에 관한 갖고 있는 생각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봐야겠지만 여하튼 자폐증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도 하니까 한번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몇년전인가 자폐증 관련서를 구한 적이 있는데 대개 전문서들이었다. 교양수준에서도 읽어볼 만한 책인 듯싶어 반갑다(저자는 의학자가 아니라 저널리스트다).

색스는 서문에서 자신의 책도 은근히 소개하고 있는데 회고록 <엉클 텅스텐>과 <화성의 인류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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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책장 공사를 하며 식당과 거실의 책을 얼추 정리했지만(그래도 거실 바닥에는 아직도 쌓여 있는 책들이 있다) 아직 서재로 쓰는 두 방의 책들은 철옹성을 자랑한다. 무질서하지만 빈틈없이 쌓여 있어서 터무니없는 비유를 쓰자면 마치 도요토미의 오사카성 같다. 강의에 필요한 책을 찾다가 이번에도 허탕을 치고 대신 <2018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을 손에 들었다. 기억에 대상작인 박민정의 ‘세실, 주희‘를 읽다 만 것 같다.

다시 손에 든 건 마저 읽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에 붙인 작가노트를 읽기 위해서였다. 어쩌다 연휴 초반에 손에 들게 돼 그럭저럭 읽어버린 게 박상영의 첫 소설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문학동네)여서 일종의 디저트로 읽었다. 예상대로 그의 많은 이야기가 경험담으로 보이는데, 공식적인 분류는 아니지만 나는 이런 작가군을 자멸파라고 부른다. 자기 삶을 창작의 불쏘시개로 쓰는 작가들이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가 다자이 오사무. 내 식으로 분류하면 박상영은 다자이과에 속한다. 하위분류로는 ‘퀴어 다자이‘.

<자이툰 파스타>의 첫 단편 ‘제제‘(제목이 너무 길어서 ‘제제‘라고만)에 이끌려 한편 더 읽어보자는 계산으로 읽어나갔는데 나로선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그 짝이 되는 ‘부산국제영화제‘까지가 재미있었고 ‘자이툰 파스타‘에 이르러서는 벌써 물린다는 느낌이 들었다(뒤에 이어지는 단편들은 현저하게 힘이 빠졌다). 작가 자신의 토로대로 감정 과잉은 독자를 오래 붙들지 못한다. 술 마시고 택시를 탈 때마다 울었다는 고백도 두번, 세번 듣다 보면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소설집 이후에 발표된 작품으로 <자음과모음>(2018 겨울호)에 실린 ‘재희‘가 나로서는 박상영의 한 시기를 결산하는 것으로 읽힌다(대학시절 특별한 절친이던 재희의 결혼식에 참석한 ‘나‘가 그들의 파란만장한 과거를 되돌아보는 이야기인데, 현재 시점의 ‘나‘는 갓 등단한 신인작가로 나온다). 믿거나 말거나 그 자신의 민낯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편인데, ‘패리스 힐튼‘과 ‘부산국제영화제‘와 3종세트로 따로 묶어도 좋겠다 싶다.

한번 적었지만 문제는 이 작가에게 더 쓸 거리가 있을까, 라는 것. 자멸파 작가들은 자기 생을 탕진해가며 쓰기에 소재가 한정될 수밖에 없다. 다작이 가능하더라도 대개 반복이고 재탕이다. 다자이 오사무가 몇몇 작품으로만 기억되는 이유다. 이런 작가가 무얼 취재해서 3인칭 시점의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얼른 상상이 가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건 다른 종류의 작가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이리라. 두번째 소설집에는(짐작컨대 2-3년 안으로 나옴직한) 어떤 작품들이 실릴지 궁금하다. 작가로서의 생산력을 가늠하게 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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