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디스 워튼(1862-1937)의 뒤를 잇는 여성작가는 누구일까란 질문을 던졌는데, 그에 화답하는 듯한 책들이 나왔다.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1966)의 작가 진 리스(1890-1979)의 단편선 <진 리스>(현대문학)와 국내에는 처음 소개되는(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무명?) 주나 반스(1892-1982)의 대표작 <나이트우드>(1936)다.

생년은 진 리스가 앞서지만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는 물론이고 출세작 <한밤이여, 안녕>(1939)도 <나이트우드>보다 늦게 발표된 작품이어서 문학사의 자리는 주나 반스가 앞설 것 같다. 그럼에도 거의 동시대를 살았기에(둘다 90세의 수명을 누렸으니 장수한 편이다) 같이 묶어도 되겠다.

‘여성‘작가나 ‘여성‘문학이란 용어를 쓰는 것은 특히 진 리스의 경우 여성 문제에 대한 예민한 자각과 첨예한 인식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이트우드>는 퀴어문학의 고전으로 지칭되는데 여성문학과 퀴어문학의 차이 혹은 페미니즘문학에서 퀴어문학의 자리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한다. 진 리스의 작품들을 강의에서 다루었고 강의한 내용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숙제를 더 떠안은 느낌이지만, 이런 부담은 언제나 즐거운 비명을 지르게 한다. 그 비명이 앓는 소리와 분간은 잘 안 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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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11월에도 3일과 4일, 양일에 걸쳐서 순천삼산도서관에서 '세계문학 깊이 이해하기' 강의를 진행한다. 11월의 주제는 독일문학으로, 주로 괴테와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소개할 예정이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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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학기에 20세기 미국문학을 다루면서 드라이저에 이어 이디스 워튼을 읽었다. 두 대표작 <기쁨의 집>(1905)과 <순수의 시대>(1920) 강의가 일단락되었는데, 여유가 있어서 더 다루게 된다면 몇권 더 얹을 수 있겠다. 다행히 주요작들이 모두 번역돼 있는 상태인데, <순수의 시대>와 관련해서 같이 읽어볼 만한 작품들은 <암초>(1912), <그 지방의 관습>(1913), 그리고 <여름>(1917)등이다. <이선 프롬>(1911)역시 주요작이지만(<겨울>이란 제목으로도 번역되었다) 워튼이 즐겨 다루는 ‘옛 뉴욕‘과는 무관한 작품이다.

워튼의 작품들은 뉴욕 상류사회의 풍속도를 보여주는 사회소설(더 정확하게는 ‘사교계소설‘)로서 의미를 갖지만 주제적 차원에서는 여성 문제를 다룬 소설로 19세기초 영국의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과 비교된다. 사회 속의 여성의 삶과 그 조건(혹은 굴레)를 두 작가의 소설에서 읽을 수 있는데, 워튼이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결혼뿐 아니라 이혼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당장 <순수의 시대>의 여주인공 엘렌(올렌스카 백작부인)은 남편의 곁을 떠나서 이혼소송을 제기하려 한다. 비록 가족의 압력과 악화된 재정상황에 굴복하여 남편에게 다시 돌아가고 말지만 그런 ‘포즈‘조차도 희귀하면서 파격으로 받아들여지던 시대였다.

‘주체적인 결혼‘이 여성 주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여성문학의 주요 주제라면 그에 이어지는 것은 ‘주체적인 이혼‘이다. 이혼 미수가 아닌 이혼을 다룬 워튼의 작품이 따로 있는지 모르겠지만 워튼 자신은 1913년에 28년간 살아온 남편과 이혼하고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함으로써 하나의 전범이 된다(그녀는 곧장 파리로 건너가서 1937년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23살에 결혼했던 워튼은 이혼 이후에 24년의 삶을 더 살았다). 100년 전의 사례인데 여성문학의 그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21세기의 이디스 워튼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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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군포시 중앙도서관에서 11월 1일부터 22일까지(매주 목요일 저녁 7시) '니체와 문학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라는 제목의 강좌를 진행한다.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에서 네 작품을 골라서 읽는 강좌다(신청은 10월 15일부터 군포도서관 홈페이지에서 가능하다).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 


니체와 문학 -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



1강 11월 01일_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2강 11월 08일_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3강 11월 15일_ 서머싯 모옴, <달과 6펜스>



4강 11월 22일_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8. 10.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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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북사랑 2018-10-11 0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군포가 책 많이 읽도록 분위기 만드는 도시라는 기사 읽었는데 정말 멋집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18-10-11 0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선생님께서 직접 강의하시는구나....^^ 로쟈님의 블로그인지 이제 보았어요
 

점심을 먹고 카페에 들고온 책들 가운데 허수경 시인의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를 아무데나 펼쳐 읽는다. 재작년 가을에 나온 시집이고 내가 구입한 건 올봄에 나온 5쇄다. 시인은 지난주에 세상을 떠났다. 꼭 그렇게 읽을 필요는 없지만 시를 읽는 맥락이 그렇게 만들어져 있기에 ‘푸른 들판에서 살고 있는 푸른 작은 벌레‘에 눈길이 멈추었다. 이렇게 시작하는 시다.

바지에 묻어온 벌레를 털어냈다
언젠가 누군가를 이렇게 털어낸 적이 있었다
털리면서도 나의 바짓단을 누군가는 무작정 붙잡았다
나는 더 모질게 털어내었다
서늘하고 아팠다
벌레여 이 바지까지 온 네 삶은 외로웠나
이렇게 말하는 건 나, 중심적임을 안다네,
사라져가는 생물들이 쉬는 마지막 숨을
적어본 적이 없고
모든 살았던 것들의 눈동자 역사를
적어본 적도 나는 없었으므로

시의 서두이자 전반부이고 후반부는 상상에 맡긴다. 다만 시인이 털어낸 벌레가 ‘날개 달린 벌레‘라는 걸로 보아 풍뎅이 종류가 아닐까 싶다. 고고학 답사 현장에서 묻어온 벌레이지 않을까 싶고. 이 벌레로 인하여 언젠가 벌레인 양 털어낸 한 사람이 생각났고 그 모진 행동에 뒤늦은 자책감이 들었다는 게 골자다.

하지만 똑같은 상황이 반복되더라도 시인은 다시 한번 털어내지 않을까. 그렇지 않는다면 회한이 남지 않을 테고 이런 시도 쓰일 수 없을 테니. 시쓰기는 회한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의 산물이다. 우리는 반복해서 후회하고, 혹은 후회를 반복하고 그 후회를 밑천으로 시를 쓴다. 상실을 시로 보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잃어버려야 하니까. 시인은 잘 잃어버리는 자이고 기필코 잃어버리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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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10-09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할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후회와 회한, 상실을
기필코 부여잡고 있어야 하는게
시인이라면
시인의 운명을 타고나지 않은 것에 감사를~

로쟈 2018-10-10 23:07   좋아요 0 | URL
상실을 피해간다는 게 만만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