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 북플의 밑줄긋기를 처음 해본다. 서프라이즈! 사진이 텍스트로 이렇게 쉽게 변환되다니. 예전에(10년쯤 전에) 피디에프 파일을 한글파일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을 써본 적은 있지만 사진도 이렇게 쉽게 전환되는 줄은 몰랐다. 아무튼 밑줄긋기 해본 대목은 휘트먼의 ‘나 자신의 노래‘ 가운데 후반부 한 대목이다.

 혹시 있다 해도, 끝나는 지점에서 생명을 막으려 기다리지 않는다.
 죽음은 생명이 나타나는 순간 죽는다.

 모든 것은 앞으로 밖으로 나아가며, 꺾이는 것은 없노라.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죽음은 오히려 복된 것이로다.(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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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여성작가들의 책과 그에 관한 논문들을 읽다가 사이토 미나코의 <문단 아이돌론>(한겨레출판)을 찾으니 또 눈에 띄지 않는다. 행방을 찾아 여러 곳을 탐문했으나 결국 ‘개똥‘으로 잠정 분류하게 생겼다. 책을 본 게 한달쯤 전인 것 같지만 사실 한달 전이면 내게는 백년 전과 같다. 과장을 덜면 반년쯤 전에 본 것이나 다름없다. 이 곳의 지형지세가 그 모양이다. 책들이 숨어 있기에 딱 좋은.

허탕을 치고 퇴각하다가 월트 휘트먼 시선 <오 캡틴! 마이 캡틴!>(아티초크)을 쌓여 있는 책들 가운데서 빼왔다. 20세기 미국시에 대해서 과문한 편이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미국시인은 휘트먼이다. <풀잎> 같은 필생의 시집이자 기념비적인 작품 때문인데 물론 압권에 해당하는 것은 ‘나 자신의 노래‘다. 휘트먼의 <풀잎>은 소로의 <월든>, 그리고 멜빌의 <모비딕>과 함께 19세기 중반 미국문학의 최대치라고 생각한다(미국 르네상스라고 불리는 시기다. 이들은 모두 초절주의의 주창자 랄프 에머슨의 직간접적인 자장안에 있다. 미국문학 바깥에서는 니체가 그러하다).

‘나 자신의 노래‘를 읽자면 자연스레 미소를 머금게 되는데 김수영의 시를 읽을 때 짓게 되는 미소와 견줄 만하다. 안 그래도 침대에는 최근에 나온 헌정 산문집 <시는 나의 닻이다>(창비)와 시 해설집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민음사)가 놓여 있다. 김수영에 대해서는 각각 시선집을 낸 바 있는 두 출판사가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인가, 문득 궁금해진다.

시 해설집은 총 116편에 짧은 해설을 붙이고 있는데 대표시들을 망라하고 있는 것이 강점이다. 하지만 역시 분량이 너무 짧다. 다른 선택지는 더 적은 시에 대해서 더 자세한 분석과 해석을 붙이는 것이리라. 그런 해설집도 나옴직하다고 생각한다. 내게 더 유익한 읽을거리는 헌 정 산문집이다. 백낙청, 염무웅 선생의 특별대담을 필두로 하여 19명의 문인들(주로 평론가와 시인들)이 김수영과의 인연을 풀어놓았다. 직접적인 인연에서 책으로 만난 인연까지. 화보 사진에는 김수영이 외국잡지와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는지 보여주는 사진도 수록하고 있어서 인상적이다. 철학자 하이데거도 숙독했지만 나는 휘트먼의 시도 열심히 읽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시정신의 상통함을 느낄 수 있어서다.

여하튼 김수영의 책들 위에 <오 캡틴! 마이 캡틴!>을 올러놓으니 흡족한 마음이 생긴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 덕분에 널리 알려진 시이지만(휘트먼의 시는 링컨의 암살을 애도하는 시다) 오늘밤에는 죽어도 살아있는 시인들에 대한 예찬으로 들린다...

여기까지 적으니 또 딱국질이 시작되었다. 오전부터였으니 오늘은 최장시간 딱국질을 한 날로 개인 기네스북에 올려야겠다. 이 무슨 패러디란 말인가. 오 딸꾹! 마이 딸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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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주에 강의할 존 더스패서스의 <맨해튼 트랜스터>(문학동네)를 보다가 ‘도시문학으로서 모더니즘‘을 별도의 주제로 다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세기 문학에서 이 주제의 출발점이 되는 건 역시 조이스의 <더블린 사람들>(1914)이다. 그리고 러시아 소설로 안드레이 벨르이의 <페테르부르크>(1916)가 있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더스패서스의 <맨해튼 트랜스퍼>(1925), 프랑스문학에선 얼마전에 번역돼 나온 루이 아라공의 <파리의 농부>(1926)가 뒤를 잇는다. 
















내가 다루고 싶은 건 독일작가 알프레드 되블린의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1929)까지다. 모두가 거대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더블린이 그중 작은 축에 속하겠지만). 파리-페테르부르크-베를린-뉴욕-더블린, 모두 문학의 도시이기도 하다. 이 도시문학의 특징은 ‘사회 속의 개인‘과 그 개인의 투쟁이 약화된다는 점에 있다. 거대도시는 그 규모 자체로 개인의 존재를 압도하며 소외시키기 십상이다. 자연스럽게 도시문학에서는 주인공이 복수화되며 서사는 파편화되거나 다큐멘터리처럼 구성된다. 















나는 이것이 1830년대에 발자크와 함께 시직된 근대문학의 2기 형태라고 생각한다(발자크 패러다임의 리얼리즘 소설이 1기 근대문학이라면 모더니즘은 2기 근대문학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도 좋겠다). 근대문학의 전개양상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은 강의에서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데 도시문학을 주제로 하여 좀더 심화시켜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경우 박태원의 <천변풍경>(1936)도 한국 모더니즘의 대표작으로 다루게 된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그에 견줄 만한 한국문학 작품은 무엇일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거대도시로서 서울 자체가 주인공인 소설이 있던가?..

19. 01.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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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터라이프 2019-01-02 0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에서 나오는 세계문학 시리즈는 이상하게 제 눈에는 표지 디자인이 뭔가 세련되게 보입니다. 디자인팀 열일 하나 보네요 ^^

로쟈 2019-01-02 01:41   좋아요 0 | URL
그런가 봅니다.^^
 

한번에 여러 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게 전업강사이자 서평가의 일상인데 거기에 독서가의 욕심까지 보태지면 읽는 책은 수십 권으로 불어난다. 책상과 식탁, 그리고 침대에 쌓여 있는 책이 그렇게 수십 권이다. 물론 책장과 방바닥에 있는 책들도 언제든 눈에 띄는 대로 소환된다. 손택의 일기와 노트를 묶은 <의식은 육체의 굴레에 묶여>(이후)는 방바닥에 쌓여 있다가 소환된 책. 지난주엔가 주문했던 원서를 받은 참이라 생각이 나서 펴보았다. 첫 문장에서 깼다.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어머니는 자서전을 쓸까, 하는 생각을 열없이 깨작거리기 시작했다.˝

손택의 말이 아니라 엮은이인 아들 데이비드 리프의 말이다(아들이 상속자이자 편집자이니 작가의 운명으로는 나쁘지 않다). ‘깨작거리기 시작했다‘가 무얼 옮긴 것인지 찾아보니 ‘toyed‘를 옮긴 것이다. ‘열없이 깨작거리기‘는 toyed desultorily‘란 옮긴 것이고. 의미야 다의적이어서 번역에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말 ‘깨작거리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만 갖고 있는데 아들이 어머니에게 쓸 수 있는 말인가.

‘toy‘는 동사로는 ‘만지작거리다‘의 뜻을 갖고 있고 ‘desultorily‘는 ‘산만하게‘‘띄엄띄엄‘ 등이 사전적 의미다. 내가 옮긴다면 그냥 ˝자서전을 써볼까란 생각을 이따금 내비치셨다˝라고 했겠다. ˝열없이 깨작거리기 시작했다˝는 너무 강한 문체적 표현이고 뉘앙스도 너무 부정적이다. 이런 번역은 역자를 의식하게 된다. 번역이 자연스럽게 이해되지 않으면 역자의 개입이 있는 게 아닌가 원문을 찾아보게 되는 것. 번역자의 존재를 드러내느냐 마느냐는 번역론의 유구한 문제지만 나는 필요할 때 드러내고 그렇지 않을 때는 물러나 있는 것이 현명하다고 믿는 입장이다. 번역자의 처세술이다.

손택이 깨작거렸다는 문장에 놀라 급하게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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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잘라 2019-01-01 17: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깨작거리기‘라는 제목에 놀라 급하게 읽고 생각없이 좋아요 했다가 급하게 좋아요취소 했습니다. 내용은 공감하지만 새해 첫날부터 이렇게 공개적으로 번역자를 까대시는 것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서재의달인답지 않은 처세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댓글을 남기는 것도 저답지않은 처세입니다만.

로쟈 2019-01-01 20:46   좋아요 2 | URL
네 요즘은 번역에 대해 자주 시비하지 않는데 역자의 선택이 의외여서 다른 의견을 적었을 뿐이에요. 그래도 ‘아침부터‘는 피했습니다.

카키모카 2019-01-02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좋은 지적 같네요. 안지는 별로 안됐지만 서재 잘 보고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19-01-03 22:2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분홍돌고래 2019-01-11 09: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어 선택에 대한 의견 제시는 번역자를 ‘까대는‘ 것과는 층위가 다른 일이라 봅니다. ‘깨작거리다‘는 보통 부모나 선생 등 연장자의 행위를 묘사하거나 설명할 때 쓰는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알라딘 북플에서는 과거 작성글을 리마인드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오늘 아침에는 무려 13년전 페이퍼다('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이란 제목으로 성경의 시편 1편 읽기였다). 그때만 해도 여러 가지 의미로 건강했던 모양이다. 여건이 그맘때 같지 않지만 그래도 자극을 받아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이달에는 신년 벽두부터 고르도록 한다.
















1. 문학예술 


작가들의 산문집이 예삿일처럼 출간되고 있는데, 이달에는 시인들의 산문집을 골랐다. 서효인 시인과 박혜진 평론가의 <읽을 것들은 이토록 쌓여가고>(난다)는 '읽어본다' 시리즈의 하나. 1년간의 독서일기를 모은 것이다. 책읽기이면서 책일기인 것. 제목에 무엇보다도 공감하게 된다. '이토록'이 좀더 쌓이게 되면 '미치도록'이 된다. 


김소연 시인의 산문집은 <나를 뺀 세상의 전부>(마음의숲)다. "저는 제 자신이 텅 비어 있는 자아이기를 바라고, 제가 살아가며 만나는 접촉면들로부터 받은 영향들로 제가 채워지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해서 항상 제가 저에게 낯선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과 타인들을 관성적으로 바라보지 않을 거라 여기면서요." 시인의 기획은 세상에서 나를 뺌으로써 '텅 비어 있는 자아'를 만들고 이를 통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특기할 만한 것은 그것이 바로 산문정신이라는 데 있다. 자아를 최대한 낮추는 데 산문의 미덕이 있기에. 시가 아닌 산문으로 장르를 바꿀 때 몸의 높이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표나게 의식한 산문집이다. 


그리고 이근화 시인의 <고독할 권리>(현대문학). "여성이자 엄마, 시인이자 생활인이라는 무수한 자의식과 씨름하면서도 일상의 소소한 사물과 스쳐 지나가는 장면들을 시인만의 다채로운 감각으로 포착하여 가족과 이웃이 함께하는 생활의 온기를 구김살 없이 풀어낸다." 전형적인 시인의 산문집이다. 그럼에도 시가 아니라 산문집이 되는 것은 '일상'을 다루어서다. 




   












소설은 데이비드 미첼의 책을 고른다. 이미 여러 작품이 번역된 작가인데, 지난 가을에 나온 <야코프의 천 번의 가을>(문학동네) 때문에 주목하게 되었다. 그래서 먼저 읽기로 하고 구입한 책이 데뷔작 <유령이 쓴 책>이다. 영국에서 '뛰어난 재능'이란 어떤 작가를 일컫는 말인지 확인해보려고 한다. 


 














예술 분야에서는 먼저 영화사 책들을 고른다. 국내 연구자들이 쓴 <한국근대영화사>(돌베개)는 "1892년 인천에 우리나라 최초의 극장 인부좌(仁富座)가 설립된 시기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되는 1945년에 이르기까지, 한국영화의 주요 장면과 사건, 인물, 영화운동, 영화이론, 작품, 관련 기록을 포괄적.종합적으로 기술한 책이다." 영화사의 교본으로 쓸 수 있겠다(이효인의 <한국영화역사강의1><한국 근대영화의 기원><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등이 같이 참고할 수 있는 책들이다). 


리처드 라우드의 <영화 열정>(산지니)는 부산의 출판사 산지니에서 펴낸 '영화의전당 시네마테크총서' 1권으로 나온 책으로 시네마테크의 아버지 앙리 랑글루아 평전이다. "앙리 랑글루아의 생애를 담기 위해 그의 지인 및 관계자 76명을 인터뷰해 만들어졌다. 괴짜 영화광에 대한 흥미로운 평전인 이 책은 랑글루아 개인의 궤적을 따라가면서도 무성 영화에서 70년대에 이르는 영화문화사의 형성기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크리스 마커의 <환송대>(문학과지성사). 부제가 '영화-소설'이다. "단 한 장면을 제외하면 전부 사진으로 이루어진 이 영화는, 정치적·미학적으로 획기적인 영상작업을 선보여온 프랑스의 영화감독 크리스 마커의 유일한 픽션 영화로, 영화예술의 새로운 차원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책은 "영화 <환송대>에 사용된 사진과 내레이션을 담은 '영화-소설'"이다. 영화 환송대(La Jetee)는 유튜브에서 찾아볼 수 있다. 
















2. 인문학


<실크로드 세계사>의 저자 피터 프랭코판의 <동방의 부름>(책과함께)이 지난해(날짜로는 어제) 출간됐다. '십자군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가 부제. "저자 피터 프랭코판은 기존의 십자군전쟁사에서 등한시되어왔던 동방 세계에 주목한다. 직접 번역한 12세기의 중요한 역사서 <알렉시아스>를 비롯해 풍부한 동서방 사료와 최신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십자군전쟁이 어떻게 일어났고 전개되었는지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속내와 그들 사이의 상호 관계를 중심으로 세밀하게 풀어낸다." 















우리에게 십자군 전쟁의 화제가 된 건 시오노 나나미의 책 때문이었는데, 좀 다른 시각의 책이 나왔기에 늦게라도 비교해볼 수 있겠다. 















유튜브에서 자주 보여서 몇 편 보게 된 중국드라마가 '사마의'('미완의 책사' 편과 '최후의 승자' 두 시리즈다)인데 아니나 다를까 책으로도 나왔다. 친타오의 <결국 이기는 사마의>(더봄). 드는 생각은 사마의가 시진핑 시대 중국의 새로운 역사 아이콘이라는 점이다(사마의와 마찬가지로 시진핑 역시 명문가 출생이다). "조조를 철저히 속이고 제걀량을 죽음에 이르게 하여,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 사마의 인생과 처세술"이 새삼 조명받는 배경이 궁금하다. 마치 일본 전국시대를 마무리 지은 승자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비견되는 것일까.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을 간과할 수 없는데, 사마의의 손자가 조위(조씨 가문의 위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진은 시황제의 진과 마찬가지로 단명하기 때문이다(드라마가 그 단명의 교훈도 되새기게 해주는지 모르겠다. 혹은 시진핑의 중국은 되새기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마의, 조조, 제갈량을 리더십을 주제로 다룬 책으로는 자오위핑의 <사마의><조조><제갈량>도 나와 있다(<유비>도 포함돼 있다). 중국 CCTV의 '백가강단' 강의를 책을 엮은 것이다. 
















3. 사회과학


먼저 읽어볼 만한 책은 2017년부터 출간되고 있는 <한국의 논점>이다. 올해는 <한국의 논점 2019>(북바이북). '현재와 미래를 바꾸기 위한 42가지 제언'이 부제. 연차가 쌓이게 되면 트렌드 추이도 가늠해볼 수 있는 자료가 되겠다. 



이정환 '미디어오늘' 대표이사의 <투기자본의 천국>(인물과사상사)은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2006)의 개정판이다. 12년만에 개정판이 나오면서 분량은 두 배 가까이 증면되었다. '론스타와 그 파트너들의 국부 약탈작전 전모'라는 부제는 '국가부도와 론스타 게이트'로 바뀌었고. "투기자본의 국부 침탈 과정과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헐값에 매각되었는지 그 민낯을 가감 없이 기록했다. 또 ‘신자유주의의 세계화’와 ‘투기자본의 천국’의 실체를 드러내는 역사적 기록이다. 제일은행과 한미은행, 외환은행 매각에서 출발해 IMF 이후 공적자금 투입과 환수, 국부 유출의 역사, 그 과정에서 유사 로비스트 집단 김앤장법률사무소의 역할과 정부 관료들의 회전문 현상,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과 글로벌 투기자본의 역학관계 등을 다룬다." 연말에 개봉되었던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입문편이라면 책은 심화편에 해당한다고 할까. 마땅히 나왔었야 할 책이고 필히 읽어볼 만한 책이다. 


덕분에 상기하는 책은 10년 전(2008)에 나온 나오미 클라인의 <쇼크 독트린>(살림Biz)이다. " 세계 경제를 쥐고 흔드는 소수와 그들을 둘러싼 부의 거품 내부에서 흐르는 급격한 자본의 순환, 민영화, 자유시장, 규제 완화로 대변되는 은밀한 시스템의 추악한 욕망을 해부한다. 세계 경제가 어떤 방식으로 흘러왔으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분석한다." 저자의 분석대상에는 1997년 아시아의 금융위기도 포함된다. 


또 한 권은 안드레아스 와이겐드의 <포스트프라이버시 경제>(사계절)다. '빅데이터 시대, 잃어버린 프라이버시를 가치로 바꾸기 위한 대담한 제안'이 부제. 빅테이터 시대, 소셜 데이터 혁명시대에 더이상 프라이버시의 보호가 가능하지 않다면 어쩔 것인가. "더 이상 데이터를 생성하고 공유하지 않을 도리가 없는 시대라면, 주지 않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내준 만큼 혹은 그 이상을 받아내는 편이 낫지 않을까?"라는 게 저자의 제안이다. 

















정치 분야에서는 변호사이자 시민교육센터 이한 대표의 <철인왕은 없다>(미지북스)를 고른다. 저자가 심의민주주의에 오래 숙고해온 결과물이다. "이 책은 촛불 시위 이후 한국 사회에서 대의제 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라는 두 방향으로의 뚜렷한 분화를 아우르고, 조화시키려 시도했다는 점에서 중요하고도 큰 문제를 제기한다"고 최장집 교수가 추천사에 적었다. 그리고 일본의 나다 이나다의 <권위과 권력>(웅진지식하우스). 1974년에 출간돼 일본 정치교양서의 고전이 된 책이라 한다. '혼돈의 시대를 헤쳐가기 위한 정치학 수업'이 부제. <무명의 말들>(포도밭)은 일본의 한국사 연구자 후지이 다케시의 칼럼집이다. "2014년 여름부터 시작해 2017년 겨울까지 3년여 동안 <한겨레>에 연재한 칼럼 44편과 사진집에 실은 해설 1편, 문학지에 실은 글 1편을 엮은 것이다." 박노자를 연상시키는 비판적 문제의식과 문체를 읽을 수 있다. 
















4. 과학


가상현실의 아버지로 불리는 재런 러니어의 책들을 고른다. <가상 현실의 탄생>(열린책들)은 'VR의 아버지 재런 러니어, 자신과 과학을 말하다'가 부제. "과학자이자 철학자로서 기술 발전에 대한 예의 날카로운 시각을 견지함과 동시에 자신의 독특하고 풍부한 개인적 경험을 버무려 가상 현실을 마주한 인간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  
















알라디너들에게 예고돼 있던 <서민 교수의 의학세계사>(생각정원)가 지난달에 나왔다. 띠지에는 반팔 차림의 저자 사진이 실렸는데, 여름에 책을 썼다는 뜻인지 모르겠지만, 올여름까지 책이 롱런해야 한다는 뜻으로 읽힌다. 그리고 일본 과학자 군기 페기오-유키오의 <무리는 생각한다>(글항아리). '개미에서 로봇까지, 복잡계 과학의 최전선'을 다룬 책이다(저자의 전작으론 <생명이론>이 소개되었다). "단독으로 배양되었을 때는 의식이나 마음의 편린조차 보여주지 못하는 신경세포가 수천억 개의 신경세포 집단이 될 때, 바로 거기서 단순한 집단을 넘어서는 의식이 출현한다. 바이오컴퓨팅, 인공지능, 인지과학 등 폭넓은 분야에서 독자적인 이론과 모델을 제시해온 군지 페기오유키오는 ‘무리’라는 개념을 통해 연구실의 개미에서 바닷가의 병정게, 컴퓨터그래픽과 로봇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구 사례를 소개하며 의식의 문제를 파헤친다."


그리고 청소년들도 읽어볼 만한 책으로 마이노 올드 고타로의 <메뚜기를 잡으러 아프리카로>(해나무). '젊은 괴짜 곤충학자의 유쾌한 자력갱생 인생 구출 대작전'이란 부제대로 젋은 곤충학자의 논픽션 분투기다. "비정규직 곤충학자이자 메뚜기 박사인 저자 마에노 울드 고타로는 메뚜기를 연구하기 위해 메뚜기 떼가 출몰하는 아프리카의 모리타니로 떠난다. 메뚜기 떼 연구로 정규직 곤충학자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그렇게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에 인생을 내맡겼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인생을 걸고 아프리카에 도착했지만, 정작 맞닥뜨린 것은 메뚜기 떼가 출몰하지 않는 냉혹한 현실! 이 걱정스러운 상황 앞에서, 저자는 청춘의 열정과 패기를 무기로 3년을 아프리카 땅에서 보낸다. 이 책은 머나먼 아프리카 모리타니에서 보낸 좌충우돌 격동의 3년을 유머와 해학이 넘치는 문체로 재미있게 써내려간 과학자 에세이이다. 메뚜기 연구로 정규직 곤충학자가 되려는 젊은 연구자의 좌충우돌 리얼 모험담!" 정규직 곤충학자 대신에 프리랜서 작가가 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5. 영국기행


이달에는 '책읽기/글쓰기' 카테고리 대신에 영국과 관련한 책들을 고른다. 올봄에 영국문학 강의를 진행하고 가을에는 영국문학기행도 떠나야 해서 그 준비에 해당하는 것이기도 하다. 알렉산드라 해리스의 <예술가들이 사랑한 날씨>(펄북스)는 영국 시인과 작가들이 사랑한 날씨를 종횡으로 엮은 책이다. "영국인들의 가장 흔한 화제가 날씨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변화무쌍한 날씨의 나라답게 날씨에 대한 영문학의 묘사와 기록 역시 섬세하고 풍족하다. 이 책은 셰익스피어부터 브론테 자매를 거쳐 버지니아 울프와 이언 매큐언에 이르기까지 영국의 대표 문학가들이 날씨를 어떻게 경험하고 또 묘사하고 있는지 소개한다. 날씨를 빼놓고 영국을 이야기할 수 없다면 영문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 책을 빼놓고는 영문학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가 내가 거든 추천사다. 


<문학의 도시, 런던>(올댓북스)은 런던 여행과 문학을 결합한 책. "저자들은 런던 곳곳에 숨어 있던 문학, 작가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그들만의 위트와 유머로 버무려낸다.' 일정상 극히 일부만 따라가보게 되겠지만 요긴한 참고로 삼으려 한다. 그리고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21세기북스)은 내가 아직 구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19. 01. 01.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역시 개인적으로 일정과도 관련하여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을 고른다(번역본은 여러 종이다). 다수의 이탈리아 여행기와 견문기가 나와있지만 이탈리아 여행기의 표준을 만든 저작이다. 두 차례에 걸쳐 3년 가까운 기간 동안 이루어진 그의 여정을 다 따라갈 수는 없지만, 이번 3월에 일부 흉내는 내보려 한다. <셰익스피어의 이탈리아 기행>이란 책도 나와 있지만 셰익스피어의 여행에 대해서는 작품 이외의 물증이 없는 터라 작품 이해에 참고가 되는 정도다. 그래도 이탈리아 몇몇 도시들을 유명하게 만드는 데 셰익스피어 또한 한몫한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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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1-01 1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올 해도 좋은 책 소개 많이 부탁드립니다! 항상 감사드려요!ㅎ

로쟈 2019-01-01 19:50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2019-01-02 00: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1-02 0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