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나온 당혹스러운 책은 제럴드 레빈슨이 엮은 <미학의 모든 것>(북코리아)이다. ‘옥스포드 미학사전‘을 옮긴 것인데 이 분야의 유익한 교양서(라기보다는 전문서에 더 가깝겠지만)가 출간된 사실이 당혹스러울 건 없다.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문제는 5년전에 책의 일부가 <미학의 모든 것1>로 출간됐었다는 점.

나처럼 책을 구입하고 오랫동안(물론 어느 사이에 잊고 있었지만) 2권을 기다려온 독자에게는 2권 대신 등장한 완역본이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건 뮌가. 1권은 내다버리라는 얘긴가? 간혹 1권만 나오고 그 이후는 함흥차사가 된 책들이 없진 않다. 하지만 이렇게 같은 춘판사에서 책을 내면서 1권은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완역본을 내는 경우는 처음 본다. 5년전에는 무슨 생각이었던 것일까.

완역본이 980쪽이고 1권이 462쪽 분량이니 대락 절반이다. 이 경우에는 520쪽 정도 분량의 2권을 내고, 나중에 합본판을 내거나 하는 게 온당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책값이 두권 값보다는 싸다는 것. 2권짜리 분권 형태였다면 5만원 정도는 했을 텐데 완역본은 3만7천원이다. 하지만 이걸로 위안을 삼아야 할는지는 좀더 계산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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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저녁에 잠이 드는 바람에 밤 2시에 잠이 깨어 누워있다가 급기야는 3시에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에서 아무 책이나 빼서 읽기 시작했다. 아무책이라고는 하지만 지난주에 빼놓은 책들 가운데 하나로 밥 버먼의 <ZOOM 거의 모든 것의 속도>(예문아카이브)다. <바이오센트리즘>의 공저자이기도 하다는 건 지금에야 확인했는데, 여하튼 ‘거의 모든 것의 속도‘ 내지는 ‘속도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책으로 꽤 흥미롭다. 동어반복인데 애초에 흥미로울 것 같아서 손에 든 책이고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강의차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다시 읽으며 ‘빅히스토리‘ 얘기를 곁들이려다 보니 자연스레 빅뱅과 우주론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거의 모든 것의 속도> 서두는 바로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에 관한 이야기다. 매우 비인간적인 속도를 주로 다루지만(광속의 절반이 넘는 속도로 멀어지고 있는 천체들) 그런 사실을 발견하기까지의 과정 이야기는 그래도 인간적이다. 덕분에 우주팽창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는 암흑에너지(대단한 에너지가 아니라 아직 모르는 에너지라는 의미라고)에 관한 책들도 장바구니에 넣었다(이미 구입한 책들도 있건만).

그러면서 한밤중에, 아니 새벽에 주문한 책은 데이비드 아이허의 <뉴 코스모스>(예문아카이브)다.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에 대한 오마주이면서 업데이트 버전. 새삼 업데이트된 내용이 궁금해서 주문했고 당일배송을 기다리는 중이다. 평소에 읽기 어려운 역사서와 과학서들을 읽자니 방학 기분이 좀 나는 것도 같다. 그럴 여유가 있느냐는 마음 한쪽의 질타에 대해선 폭염에 이런 낙도 없으면 어떡하냐고 변명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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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가 아니어도 폭염을 핑계로 휴가도서에 손을 댄다. 배상열의 <조선 건국 잔혹사>다. 조선의 건국 과정을 되짚어보고 있는데, 저자의 발상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미심쩍다는 것. 사실 그럴 만한 게 태조실록만 하더라도 실시간 기록이 아니라 개국 이후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하에 쓰였기에 여러 가지 변조와 미화의 여지가 있다. ‘실록‘을 곧이 곧대로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는 공민왕과 신돈에 관한 기술이 그러하다.

그렇다고 저자가 뚜렷한 대안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정황상의 추론에 많이 의존하고 있어서 흥미롭기는 하지만 역시나 확실한 견해로 수용하기는 어렵다. 진실은 그러한 기록과 의혹 사이 어딘가에 묻혀 있을지도.

<조선왕조실록>은 한번도 눈여겨 본 적이 없다. <노회찬과 함께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구입한 것도 한 계기인데, 이제는 읽어보려 한다. 박영규의 <한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과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 같은 베스트셀러 외에 최근에는 역사저술가 이덕일도 <조선왕조실록>을 펴내기 시작했다.

<조선 건국 흑역사>가 다루고 있는 시기이기도 하고 나로선 태조실록부터 태종실록까지가 일단은 관심의 대상이다. 막상 실록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되면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는데, 그건 다른 한편으로는 승자가 아닌 패자, 가령 이성계나 이방원이 아닌, 정몽주나 정도전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선 건국 잔혹사> 덕분에 조선사를 조금 삐딱한 눈으로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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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2018-07-31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덕일 역사책 논란이 많던데 어떤가요 읽어볼만 하나요? 왜곡이 심하다는 지적도 있고 창조적인 역사 해석이라는 평가도 있던데?? 인문학자가 보시기에?

로쟈 2018-07-31 19:49   좋아요 0 | URL
논란이 된 책들(정조나 노론 관련)은 제가 읽어보지 않아서요. 조선왕조실록은 창조적인 해석이 필요한 것 같지 않고,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듯합니다...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어젯밤부터 찾았지만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데(매주 못 찾는 책이 있기에 이젠 놀랍지도 않다) 대신에 예정에 없던 책들에 손이 닿아 들춰보고 있다. 이정우의 <세계철학사1>(길)도 그 중 하나다. 세계철학사나 고대 그리스철학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매우 편하게 읽어볼 수 있는 책이다.

그런데 저자가 참고하고 있는 책으로 프랑스의 고전학자 장 피에르 베르낭의 책을 나도 읽어보려고 검색해보니(소장도서들이지만 역시 찾는 건 난망하므로) 모두 절판된 상태다. 소위 ‘기본서‘에 해당하는 책들이 이렇듯 절판되는 건 비록 드물지 않더라도 당혹스럽다. 더 나은 책으로 대체되었는데 나만 모르는 것일까. 그게 아니라면 우리 곁에 좀더 있게 할 필요가 있다. 비단 베르낭의 책들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지만 관심을 환기할 겸 페이퍼로 적는다.

<세계철학사1>에서 인용한 책은 <그리스 사유의 기원>이며 저자는 베르낭이 그리스 귀족정에서 민주정(데모크라티아)으로의 이행과정에 대한 빼어난 분석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핵심은 요약돼 있지만 내가 확인하려던 건 그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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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폭염 속에 있고 여름도 한달 여 더 남겨놓고 있지만 강의 일정은 반년을 앞서 가기에 겨울학기까지 커리큘럼을 짜두었다. 이번 가을겨울에는 주로 20세기 전반기 미국문학과 19-20세기 프랑스문학, 그리고 하루키 이후의 일본문학 등을 강의할 계획이다. 처음 강의하는 작가와 작품들도 꽤 되는데 그렇듯 레퍼토리를 확장해나가는 것이 강의의 한 목표이면서 보람이다. 앞으로 10년 안으로 세계문학에 대한 강의책을 10권 정도 더 펴내고 나대로의 문학론과 문학사까지 쓰는 게 괴제다(거창하게 말하면 생의 과업이 되겠다).

8월 강의의 주력은 독일문학으로 헤세의 <유리알 유희>와 제발트의 소설들이다. 그리고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에 대해서도 다시 강의하게 되는데 겸사겸사 역사학 관련서들을 읽고 있다. 유시민의 <역사의 역사>(돌베개)와 김기봉의 <내일을 위한 역사학 강의>(문학과지성사)는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사이에 두고 비교해서 읽어도 흥미롭다(그렇게 하는 중이다).

그리고 조 굴디와 데이비드 아미티지의 <역사학 선언>(한울)은 아직 초반이라 정확히 가늠이 되지 않지만 역사학에서 장기와 단기의 문제, 그리고 빅데이터 문제를 다루고 있어서 구입한 책이다. 학기중에는 읽을 여유가 없었는데, 소위 ‘방학‘이어서(강의를 30퍼센트 줄인 수준이지만) 손에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내달에는 ‘문학으로 읽는 세계역사‘도 강의할 참이다. 선택인 줄 알았더니 필수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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