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를 달려가던 바람이 기억나
바람은 누굴 보고 달려갔던 것인지
세찬 파도가 집어삼킬 듯 밀려오던 날
그럼 바람은 어느 방향으로 달려간 건지
그래도 달려나가던 바람 소리를 들었어
바람은 달려오기도 하고 달려가기도 하나
물어보면 바람의 변덕이라고 하겠지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바다
갑자기 검은 구름이 몰려와 소나기를 뿌리고
바람은 어느 새 비바람으로 돌변했지
바람은 마음먹은 게 있다는 듯이 내달렸지
방파제의 콘크리트 바닥을 쿵쿵 울리며
어쩌면 기합소리도 냈는지 몰라
방파제 아닌 건 모두 다 날려버리려는 것처럼
바람은 방파제를 내달려가고
그런 바람이라면 나도 온몸으로 맞고 싶었지
비바람에 흠뻑 젖고 싶었지
방파제를 내달리는 바람이 되고 싶었지
여기가 세상의 끝이라고 해도
뒤도 안 돌아보고 내닫는 바람이 되고 싶었지
바람은 귀가 없어 듣지 못할까
바람은 바람의 미친 소리를 듣지 못하는구나
그런 바람소리를 들어주고 싶었지
방파제를 달려가는 바람에게 이유가 필요했을까
바람의 사생활 따위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세상의 모든 방파제야
바람이 맨발로 뛰쳐나갈 방파제
내달리는 바람과 함께 몸을 던지고픈 방파제
바람의 발작이 느껴져
바람이 오고 있어
바람이 될 테야
방파제를 달려가는 바람
그래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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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이 넘어 가자
여름밤 매미 소리도 잦아든다
잠시 쉬는 것도 같고
소리 죽여 우는 것도 같다
너도 열대야겠지
너도 잘못 산 일이 있겠지
너도 흘려버린 인연이 있겠지
소리 죽여 우는 소리는
알아들을 것 같다
나도 숨죽여 시를 쓴다
열대야가 아니면
언제 숨죽이며 땀을 흘릴까
네겐 이 여름이 마지막 계절인가
나도 이번 생이 마지막이야
우리는 다시 만날 일이 없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인연
너는 쉬다가도 다시 울고
나는 물 한 잔 마시고 다시
숨죽여 시를 쓴다
어쩌면 네가 쓰고
내가 우는 건지도 모른다
너는 바짝 시를 쓰고
나는 숨죽여 운다
네가 울면 나는 쓰고
네가 쓰면 나는 운다
우리가 무얼 더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네게 내일이 남아있다면
하루치의 울음이 더 남아있다면
나도 힘을 아껴두어야지
너는 한껏 소리 죽여 울고
나는 또 숨죽여 시를 쓰고
여름밤 우리는
그렇게 아무것도 아닌 인연을 완성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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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o0sun 2018-08-07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대야로 새벽에 잠드는 날이 이어지면서
내일치 힘까지 당겨 쓰는 하루하루네요
그럼에도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시를 쓰고
하루치 값도 못하고 사는 못난 1인.

로쟈 2018-08-07 22:40   좋아요 0 | URL
요즘은 그냥 버티는 게 몸값하는 것 같아요.~

로제트50 2018-08-07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연을 향한 감정표현은 울음인가 봐요.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에서 가장 감동받은 부분이
버스로 사막을 지나는 장면이었는데 그 사막에서 김영현은 울었다네요...
작가의 또 다른 수필에서
초목에 대한 감성이 저랑 많이 닮아서, 그에게 남다른 친밀감을 느낍니다.
지난 7월말은 화성이 지구에 가장 가깝게 접근한 날이라 하죠.
이젠 밤하늘이 정답게 보여요^^
칼 세이건에 대한 단상 등이 덧붙여져서요...
이번 달 로쟈쌤 강의 일정표 보고 살짝 놀랐어요. 부산에서 강의하시는 날이
제가 며칠간 휴가 보내고 올라오는 날.
또 제가 사는 동네에 쌤이 오시네요@@ 강의 마치시는 시간이
녹초가 돼 퇴근하는 시간^^
아, 제가 생각하는 인연은 일방적이네
요^^;;
이또한 이 시대의 반영이겠지요*^^*

로쟈 2018-08-07 22:49   좋아요 0 | URL
네, 언젠가 인연이 닿겠지요.~
 

연이은 강의 공지다. 대구현대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이번 가을학기에는 에드거 앨런 포부터 헨리 제임스까지 미국문학 강의를 진행한다. 매월 2/4주 금요일(오후 2시-4시)에 진행되며 구체적인 일정은 아래와 같다(10월 26일은 휴강이다).


로쟈와 함께 읽는 미국문학


1강 9월 14일_ 포, <에드거 앨런 포 단편선>



2강 9월 28일_ 호손, <주홍글자>



3강 10월 12일_ 멜빌, <허먼 멜빌>



4강 11월 09일_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5강 11월 23일_ 헨리 제임스, <헨리 제임스> 



18. 08.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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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나온 묵직한 인류학 이론서는 마르셀 에나프의 <진리의 가격>(눌민)이다. '증여와 계약의 계보학, 진리와 돈의 인류학'이 부제다. 소개에 따르면, "저자는 지구상의 거의 모든 사회에 여러 형태의 증여가 있음을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을 비롯한 인류학 저작에 기대어 논증하고, 모스가 미처 글로 정교화하지 못한 지점들을 찾아내어 보완하는 데에 성공한다. 저자는 엄청나게 다양한 민족지 기록들로부터 일방적이고 대가를 바라지 않은 증여 이외에도 집단 간의 상호 대갚음의 증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힌다."



모스가 <증여론>을 통해서 물꼬를 튼 이 증여라는 인류학적 문제는 영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프랑스의 모리스 고들리에, 그리고 마르셀 에나프에 이르러 정치적 상상력에까지 이른다(일본의 가라타니 고진도 당연히 포함시켜야겠다). 이 계보의 사유를 되짚어보게 해주는 용도로도<진리의 가격>은 도전해볼 만한 저작이다. <증여론>에서 <진리의 가격>까지를 리스트로 묶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진리의 가격- 증여와 계약의 계보학, 진리와 돈의 인류학
마르셀 에나프 지음, 김혁 옮김 / 눌민 / 2018년 7월
38,000원 → 34,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900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8년 08월 05일에 저장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 교환과 가치, 사회의 재구성
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 서정은 옮김 / 그린비 / 2009년 4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8년 08월 05일에 저장

증여의 수수께끼
모리스 고들리에 지음, 오창현 옮김, 오명석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10월
28,000원 → 26,600원(5%할인) / 마일리지 840점(3% 적립)
*지금 주문하면 "8월 21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8년 08월 05일에 저장

증여론
마르셀 모스 지음, 이상률 옮김 / 한길사 / 2002년 7월
23,000원 → 20,7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50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18년 08월 05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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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 기간이기도 해서 8월을 독서에 좋은 달이지만, 올해는 예년 같지 않다. 지구 온난화의 결과라도 하는데 갈수록 기후변화가 난폭해질 거라고 하니까(사피엔스라는 종의 자업자득인 면이 크다) 상황이 나아질 거라는 기대를 갖기도 어렵다. 그렇다고는 해도 냉방이 잘 되는 곳에서는 얼마든지 독서 삼매경에 빠질 수도 있는 게 8월이다. 그런 점까지 고려해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고른다.



1. 문학예술


노벨문학상 강의를 오랫동안 해온 덕분에 친숙하게 느껴지는 이들이 수상작가들인데, 최근에 몇몇 작가들의 작품과 작품집이 연이어 나왔다. 그 가운데 도리스 레싱의 <19호실로 가다>(문예출판사)와 르 클레지오의 <원무, 그 밖에 다양한 사건사고>(문학동네) 등은 소설집이다. <19호실로 가다>는 레싱의 초기 단편소설들로 <사랑하는 습관>이라는 제목의 작품집이 뒤를 이을 예정이라 한다. 르 클레지오의 작품집은 앞서 <배회, 그리고 여러 사건들>(한불문화출판, 1988)이라는 제목으로 나왔었는데(노란색 표지가 기억난다), 이번에 새로 번역되었다. 1988년이면, 르 클레지오 작품으로서는 최초로 소개된 단편집인 것도 같다. 그리고 쿳시의 <소년시절>(문학동네)도 이번에 출판사를 옮겨서 다시 나왔다.   


 

아직 현역 작가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오르한 파묵의 신작 <빨강머리 여인>(민음사), 그리고 노벨상 수상작가 대우라고 해야 할 필립 로스의 자전적 에세이 두 권, <사실들>과 <아버지의 유산>(문학동네)도 따로 챙겨두어야 하는 책들이다. 



2. 인문학


인문 쪽에서는 밀린 숙제로 묵혀 두었던 책을 읽으려고 한다. 고대희랍문학사에 대한 책을 볼 겸,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전3권)을 읽어보려고 하는 것. 찔끔찔끔 읽다가는 읽어내지 못할 것 같아서 목록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저널리스트 로버트 카플란의 루마니아 여행기로서 <유럽의 그림자>(글누림)은 올여름의 여행서로 꼽을 만한 책이고, 바이킹의 역사를 다룬 라스 브라운워스의 <바다의 늑대>(에코리브르)와 래리 고닉의 '만화 미국사'로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미국사>(궁리)는 청소년도 읽어볼 만한 책으로 더 고른다. 



3. 사회과학


제목이 신의 한 수로 여겨지는 에릭 클라이넨버그의 <폭염사회>(글항아리)와 기본소득 문제를 다룬 기본서와 결정판에 해당하는 가이 스탠딩의 <기본소득>(창비)와 필리프 판 파레이스 등의 <21세기 기본소득>(흐름출판)은 좀 무거운 주제의 책이지만, 땀 흘려 읽어볼 만한 책으로 고른다. 



국내서로는 4대강 지킴이 김종술의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한겨레출판), 정욱식의 <핵과 인간>(서해문집),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의 휴가 도서라고 주목받은 진천규의 <평양의 시간은 서울의 시간과 함께 흐른다>(타커스) 등을 모두 한국사회 이슈 도서로 읽어봄직하다. 


 


이론서로는 새로 번역돼 나온 캘리니코스의 <카를 마르크스의 혁명적 사상>(책갈피)과 좀비 현상의 의미를 고찰한 후지타 나오야의 <좀비 사회학>(요다), 그리고 일본의 대표적 페미니스트 사회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은 어떻게 살아남을까>(챕터하우스)를 고른다. 이슈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이슈 이론서'로 시간을 내서 읽어볼 만하다. 



4. 과학


세계적인 한국 수학자 김민형의 수학 교양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인플루엔셜)은 수학적 사고의 본질이 무엇인지 감을 잡게 해주는 책이다. 프랑스 수학자 미카엘 로네의 <수학에 관한 어마어마한 이야기>(클)도 수학 대중화를 겨냥한 책. 영국의 수학자 이언 스튜어트의 <보통 사람을 위한 현대수학>(휴머니스트)은 저자의 지명도로 봐서는 매우 훌륭한 책임에 분명하지만, 필시 저자의 '보통 사람'이 우리가 생각하는 보통 사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달에 읽어야 할 두꺼운 과학서는 단연 제프리 웨스트의 <스케일>(김영사)이다. 한번 소개한 적이 있기에 군말은 생략한다. 그리고 제럴드 폴락의 <물의 과학>(동아시아). 평이한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물에 관해서 우리가 어디까지 아는지 확인해보면 좋겠다. 한겨레의 과학전문기자 조홍섭의 <다윈의 섬 갈라파고스>(지오북)은 따로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분들 위한 책으로도 골랐다. 나부터가 그런 경우다.



5. 책읽기/글쓰기


알베르트 망구엘의 모든 책은 이 카테고리에 들어간다. 이번에는 그가 서재의 책들을 상자에 넣고 포장하며 느낀 소회를 적었다. 나 역시도 이달에 일부 책을 옮겨야 해서 남의 얘기로 읽히지 않는다(솔직하게 말하면 읽기 싫은 책이다!).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북바이북)는 <독서만담>의 저자 박균호의 신작이다. 자신만의 독서와 글쓰기 비법을 알려준다. 조현행의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질문하는 소설들>(이비락)은 '카프카/ 카뮈/ 쿤데라 깊이 읽기'가 부제여서 관심을 갖게 된다. 세 작가에 대해서라면 남못지 않게 많이 강의한 터라 다른 이들의 강의도 읽어보는 편이다. 일반 독자들이라면 고전에 대한 가이드북으로 읽어도 되겠다...


18. 08. 05.



P.S.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으로는 독일 작가 제발트(1944-2001)의 마지막 작품 <아우스터리츠>(2001)를 고른다. 한데, <아우스터리츠>를 읽기 위해서는 제발트의 작가적 여정을 따라갈 필요가 있다. 최소한 <공중전과 문학>과 <토성의 고리> 정도는.




제발트의 초기작과 휴작으로 <자연을 따라. 기초시>와 <현기증. 감정들>, 그리고 <캄포 산토>는 옵션이다. 물론 제발트의 세계에 일단 발을 들여놓은 독자라면, 이 책들에서 발을 빼기가 어렵다. 제발트와의 몇 주를 보내고 나면 폭염이 사그라져 있을까. 우리는 가을에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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