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자 한겨레에서 박혜영 교수의 '시대를 읽는 문학' 꼭지를 스크랩해놓는다. 톨스토이 단편집에 실린 민담 <악마와 빵 한 조각>을 칼럼의 실마리로 삼고 있다. 안 그래도 국민소득 4만불 얘기가 다시 튀어나와 네티즌들을 불편하게 했는데, 러시아 민담적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악마의 지혜'로 보인다.    

한겨레(09. 10. 10) '물질적 풍요’ 앞에 늑대가 된 인간 

옛날 러시아에 한 가난한 농부가 살았다. 이른 새벽에 밭일을 나간 농부는 아침식사로 빵 한 조각을 가져가 나무 밑에 놓아두었다. 어느덧 쟁기질이 끝나고 시장기가 돌자 농부는 나무 밑으로 다가가 빵을 찾았지만 이상하게도 빵은 감쪽같이 사라지고 없었다. 아무리 찾아도 없자 마음 착한 농부는 이렇게 말하며 맹물로 허기를 달랬다. “할 수 없구나, 어쨌든 한 끼 굶는다고 죽진 않을 테니까. 누구든 그 빵이 필요했으니 가져갔겠지. 그 사람이라도 잘 먹으면 좋겠군.”

그런데 가난한 농부의 아침을 훔친 자는 바로 악마였다. 악마는 농부가 죄를 짓게 만들려고 빵을 훔쳤는데 가난한 농부는 빵도둑에게 욕을 퍼붓기는커녕 오히려 축복을 내리며 자신의 허기를 달랠 뿐이었다. 당황한 악마는 이 일로 대악마에게 야단을 맞게 되었다.

악마다운 지혜가 부족했다는 대악마의 꾸지람에 이번에는 다른 술책을 간구하였다. 악마는 농부의 빵을 훔치는 대신 농부의 빵을 늘려주기로 했다. 농부의 부지런한 하인으로 숨어들어간 악마는 홍수가 들 것 같은 해에는 고지대에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고, 가뭄이 들 것 같은 해에는 습지에 씨를 뿌리라고 가르쳐 주었다. 이렇게 해서 농부는 해마다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곡식을 수확하게 되었다.

풍요로운 수확으로 곡식이 남아돌자 악마는 이것으로 술을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었다. 허기를 달래주던 일용의 양식이 쾌락을 위한 도구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술이 생기자 농부는 친구들을 불러들여 먹고 마시며 놀았다. 이 술친구들은 처음엔 여우처럼 서로들 좋아하며 알랑거렸지만 곧 늑대처럼 변해 서로에게 사납고 거칠게 대하였다. 마침내 술자리가 끝날 즈음엔 인간의 모습은 사라지고 다들 돼지로 변해 모두 여기저기 흘리고, 소리치는 지저분한 짐승이 되어 있었다. 이 모양을 본 대악마는 몹시 흡족해하며 도대체 술에 어떤 악마의 묘약을 넣었기에 그토록 착하던 농부가 저처럼 짐승이 되었느냐고 물었다. 악마의 대답은 이랬다.   



“제가 한 일이라곤 농부에게 필요한 양보다 더 많은 수확을 준 것밖엔 없습니다. 짐승의 피는 인간의 마음속에 항상 있으니까요. 인간에게 꼭 필요한 양밖에 없을 때까진 그 짐승은 잘 묶여 있지요. 한때 저 농부가 마지막 빵을 잃어버리고도 빵도둑에게 축복을 내렸던 것처럼요. 하지만 필요를 넘어 남아돌기 시작하면 인간은 거기서 쾌락을 찾아낼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제가 ‘술’이라는 쾌락을 알려주었죠. 신이 주신 선한 선물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 쓰기 시작하자마자 그동안 묶여 있던 여우와, 늑대와, 돼지의 피가 다 뛰쳐나온 거지요.”  

러시아 농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이 민담은 <악마와 빵 한 조각>이라는 제목으로 톨스토이의 단편집에 실려 있다. 이 이야기에는 ‘잉여’를 바라보는 민중의 오래된 지혜가 잘 담겨 있다. 인간을 타락시키려는 목적으로 악마는 두 가지 수단을 동원하는데 처음엔 결핍이, 다음엔 잉여가 그것이다. 하지만 악마의 예상과 달리 결핍은 농부의 소박하고 검소한 삶의 태도를 더욱 북돋울 뿐이었다. 가난한 시절의 농부는 자신에게 꼭 필요한 것이 부족할 때조차도 스스로의 욕망을 절제하고 달랠 줄 알았다. 오히려 농부가 타락하게 된 것은 너무 많이 생산하여 모든 것이 남아돌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과잉 생산에 취하기 시작하자 농부는 여우처럼 남에게 아첨을 하고, 늑대처럼 다른 사람을 난폭하게 대하고, 돼지처럼 혼자 독차지할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다. 농부의 타락이 바로 결핍이 아닌 잉여에서 시작되었다는 생각, 다시 말하자면 필요를 넘어선 물질적 풍요는 신의 선물이 아니라 오히려 악마의 선물이라는 옛사람들의 믿음은 생산과 잉여를 바라보는 토착적 지혜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아시아경제 김성곤 기자]이명박 대통령은 7일 "경제소득(1인당 국민소득)만 2만 불이 넘었고 곧 3만 불이 된다"면서 "아마 머지않아 3만불이 되고 더 빠른 시간 내에 4만 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반대로 대다수 지배엘리트들은 생산과 잉여야말로 낙원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가난을 치유하기 위해선 더 많은 물질적 풍요가 필요하다고 설득한다. 저개발이나 미개발은 야만이며, 더 많은 식량·석유·자동차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것이 문명이자 진보라고 계몽한다. 아마도 검소한 삶의 방식이 우리 시대만큼 비웃음의 대상이 된 적도 없을 것이다. 또한 우리 시대만큼 필요와 잉여의 기준이 사라지고, 소비와 낭비의 경계가 흐려진 적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지배엘리트들의 주장과 달리 마침내 풍요와 잉여의 시대가 도래하자 오히려 영혼은 타락하고, 사회는 사막처럼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겨레> ‘왜냐면’에 저소득층에 대한 학교급식비 지원이 너무 야박하다는 김호정 교사의 글이 실린 적이 있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 가운데 누구에게 급식비 지원을 해줄 것인지를 오직 몇 가지 규정에만 맞추라는 것도 야만적이지만, 더 나아가 무료급식 대상 인원을 미리 제한하여 그 가운데 누구누구를 골라내라는 식의 정부 방침은 그야말로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짐승 같은 짓이었다.  

물론 예산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재 학교마다 ‘학력향상 중점학교’니, ‘방과후 시범학교’니 해서 많은 지원금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일선교사들이 정부가 정한 인원보다 추가로 올린 서울시내 300여명의 학생들에게 돌아갈 급식비는 없었다. ‘저소득층’이니, ‘무료급식 대상자’니 하는 말도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난폭한 용어지만 그 대상에서마저 일부를 솎아내는 게 정부 방침이라는 기사를 접하고 보니 지금 소위 개발주의자들이 제시하는 풍요사회란 결국은 우리 사회를 지옥으로 이끌 악마의 선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끄러움도 모르고 염치도 없는 그런 풍요사회 말이다.(박혜영/인하대 교수·영문학)  

09. 10. 09,.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10-10 1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10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10-10 19:18   좋아요 0 | URL
단편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읽고 "Don't worry, be happy" 말의 의미를 느낀적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탁석산/창비)'와 비슷하네요. 교육행정관료의 소신있는 업무수행이 필요하겠는데요.

로쟈 2009-10-10 23:14   좋아요 0 | URL
한국인의 현실주의를 지적했는데, 때론 천박함과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관심을 모았던 올해 노벨문학상은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 시인 헤르타 뮐러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올해는 물망에 오르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에게 상을 주기로 한 모양이다. 한국 작가들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물론 앉아서만 기다릴 순 없는 일이기도 하다. 40년 간의 겸재 정선 연구를 갈무리하여 펴낸 최완수 선생을 봐도 그렇다. 20대에 시작한 연구를 매듭 짓기 위해 평생 빈둥거릴 새가 없었다는 이 미술사학자의 고백을 그의 자부심과 함께 스크랩해놓는다. 이번에 나온 <겸재 정선>(현암사, 2009)은 고가본이어서 내겐 말 그대로 '그림의 책'이지만 형편이 좀 피면 소장해놓고 싶다. 

 

한겨레(09.10. 08) "영광스런 겸재 연구…빈둥거릴 수 없었죠” 

“내가 평생을 걸고 겸재의 삶을 밝히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의 화풍은) 이렇게 밝혀지지도 않았을거야….”  

쪽빛 두루마기 입은 노학자는 환한 웃음을 띄우며 거침 없는 자신감을 내뱉었다. 금강산을 비롯한 이땅 강산의 아름다운 진경을 처음 붓질로 펼쳐 보여준 18세기 대화가 겸재 정선(1676~1759), 이 거장의 200여년전 인생길을 자기 인생에 포개며 평생을 연구한 미술사학자 최완수(67·간송미술관 연구실장)씨의 풍모는 당당하고도 단단했다.  



겸재가 세상을 뜬 지 250주년인 올해를 맞아 그는 약 40년간의 겸재 연구를 집대성한 대작 <겸재 정선>(전 3권, 현암사, 32만원)을 최근 펴내며 마음에 아로새겼던 필생의 숙원을 풀었다. 지난 6일 마련한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 책 속에 겸재 그림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자부했다.

<겸재 정선>은 1971년 간송미술관 첫 기획전으로 ‘겸재전’을 시작한 이래 이 미술관에서 8차례나 펼친 겸재 기획전과 그가 펴낸 관련 저술·논고, 다른 학자들의 연구 성과까지 총망라한 역저다. 1676년 서울 백악산 아래(현 청와대 근처)에서 태어난 겸재가 1759년 인곡정사에서 84살로 타계할 때까지 거장의 일대기를 고증해 되살리면서 <청풍계><해악전신첩>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등의 걸출한 산수, 풍속화 등의 명작들과 더불어 화풍의 변천, 관직 생활 등을 낱낱이 담아냈다. 2년 넘게 집필한 본문만 200자 원고자 3673장에 달하며, 원화처럼 재현한 도판 206장, 참고그림(삽도) 147장이 들어갔다. 저자가 직접 18차례나 교정을 거듭했을 정도로 지극정성을 기울였다고 했다. 겸재의 가계도와 가정 형편, 교우 관계, 학맥 등과 당대 정치·사회 정세까지 철저한 문헌 고증으로 세밀하게 담아내 겸재의 시대를 재구성한 것이다.

“저나 간송이나 겸재와의 만남은 숙명이었어요.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일찍부터 겸재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고 일제 강점기 명작들을 집중 수집했고, 1966년 간송미술관에 들어온 저는 그린 연대가 확실한 간송의 수집 기준작들을 보면서 연구를 거듭했으니 말이죠. 생전 겸재의 문집이 수십권이나 있었다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현실적 제약이 내게 그의 일대기를 복원하도록 만든 셈이지요. 글쎄, 약 40년간 겸재 연구는 한마디로 영광스러웠다고나 할까요. 그건 곧 조선의 문화가 영광스러웠다는 것이겠지….” 

숱한 겸재 기획전과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등의 기념비적 저술로 다진 연구 성과들을 갈무리 하기 위해 최씨는 “알려진 겸재 관련 문집은 거의 독파했다”고 한다. 특히 권섭, 이천보, 이하곤 등 1700년대 초반 태어나 이율곡의 조선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으며 성장한 18세기 선비 세대들이 겸재를 진경산수의 거장으로 등극시킨 핵심 지지세력이었음을 치밀하게 고증한 것도 이 저술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시 준비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해 큰 화제를 모았던 겸재의 풍속 기록화 <북원기로회도첩>에 대한 상세한 분석글도 실려 눈길을 끈다.

“보탤 내용은 여전히 많지만, 올해가 겸재 서거 250주년이라 작심하고 일단 마무리지은 겁니다. 이전에 내가 냈던 겸재 관련 저술들이 그림 성격 등에 따라 작품들이 흩어져 있었다면, 이번에 나온 책은 시기의 흐름에 따라 총체적으로 서술하는 편년체 형식으로 작품들을 배치해 일목요연하게 그림들을 볼 수 있어요. 그림에 한문으로 적은 제시, 제발 등도 빠짐없이 번역했으니 앞으로 겸재 연구자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잘 알려진대로 최씨는 1970년대 이래 간송미술관을 중심으로 조선 왕조 시대의 사상, 문화적 역량을 재조명해온 ‘간송학파’ 학자들의 수장이다. 조선의 문화 르네상스기로 불리는 18세기 문예활동에 대한 집요한 연구의 결실로 ‘진경산수’, ‘진경문화’ 등의 용어를 유행시킨 주역 또한 그다. 특히 70년대초만 해도 ‘서민예술’‘실학의 산물’ 등으로 인식됐던 겸재 진경 그림의 성격과 위상을 재정립한 것은 오롯한 그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문화 중흥기 그 정점에서 진경산수화를 꽃피운 겸재의 인생 전모를 복원한 이번 저술 또한 그런 연구 작업의 한 획을 긋는 열매다.  

서울대 사학과를 나와 국립박물관에서 일했던 그는 자신의 은사였던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소개로 스물다섯 나이에 간송미술관에서 일하게되면서 겸재 컬렉션과 인연을 맺었다. “일제 근대사학의 영향으로 조선 왕조의 문화가 정체됐다는 당시 선입관에 맞서려면 조선왕조 500년 문화사의 절정인 18세기 ‘진경시대’를 조명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그 시각적 실체인 겸재의 그림을 연구하게 됐다”는 회고다. 평생 빈둥거릴 새가 없었다는 최씨는 “후학들이 진경 문화가 나온 시대상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당부도 했다.  

“1970년대 처음 국역 <추사집>을 냈던 추사 김정희의 작품들과 진경 시대 문화의 또다른 산물인 조선왕릉 석물에 대한 연구 성과도 정리하려고 해요. 나이들어 체력이 다하면 제자들이 뒷받침해주겠지요.”(노형석 기자) 

09. 10. 08. 

 

P.S. 형편상 <겸재 정선>을 소장하긴 어려워도 최완수 선생의 <우리문화의 홤금기 진경시대 1,2>(돌베개, 1998) 정도는 이 참에 가까이 두어도 좋겠다.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대원사, 1999)을 따라가봐도 좋겠고. 절판된 <진경산수화>(범우사, 1993)는 도서관에서 한번 찾아봐야겠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유 2009-10-08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틀즈 앨범도 그렇고 뿌리깊은 나무의 판소리 전집도 그렇고 DG 기념반들도 그렇고 이젠 <겸재 정선>까지..소장가치도 가치려니와 정말 듣고 싶은 노래들이고 그림인데..제게도 그것들을 다 갖기엔 벅차요...한꺼번에 이렇게 쏟아지니.

로쟈 2009-10-08 22:22   좋아요 0 | URL
소장용이니 그렇다고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도 없고요.^^;

2009-10-08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8 2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10-08 22: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송학파가 노론 계승의 성격이 강하지요.그 반대파는 정조-남인을 추앙하구요.교과서에 진경산수화라는 용어를 쓰게 한 이가 바로 최완수.이 책 출간은 오늘 거의 모든 일간지들이 다뤘더군요.아마 반대진영 학자들의 반응이 나올 겁니다.흥미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로쟈 2009-10-08 23:13   좋아요 0 | URL
겸재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주장이 있는 건가요? 이 분이 거의 독보적인 업적을 쌓은 듯한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10-08 23:33   좋아요 0 | URL
예...반대파들은 최완수 씨가 진경산수화라는 용어로 당시 화풍을 규정한 데 대해서 반대하는 것입니다.게다가 간송학파는 이이-송시열-등 노론 정통을 주장하기 때문에 거기에 반대하는 학자들이 겸재(물론 겸재나 추사가 노론계열인 건 사실이지요)가 노론인 것을 너무 강조하는 거 아니냐고 지적하지요.원래 영정조 시대가 논쟁거리가 많아요.아마 정조독살설 빼고는 진경산수화를 둘러싼 논쟁이 가장 치열할 겁니다.

네모선장 2009-10-09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등학교 교사로 있습니다만 이럴땐 제가 있는 곳(학교^^)이 좋아요.
학교 도서관에 교사용 도서로 신청해버리면 되거든요~^^
연 예산이 천만원 가까이 되니까요. 어디에 쓸 줄 몰라 쩔쩔매시거든요. 담당선생님이...
^^; 제가 보기엔 사야할 책들이 너무나 많은데....

로쟈 2009-10-09 10:10   좋아요 0 | URL
네, 고등학교 도서관이 대학도서관보다는 아늑할 거 같습니다. '소장'의 의미도 더 날 거 같고.^^

2009-10-09 12: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0-09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펠릭스 2009-10-10 1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라는 말속에는 문화재도 포함되었습니다. 문화재가 잘 보존되었으면 합니다. 첫째는 후대인들의 관심의 정도 같습니다. 최근에 10일간 전시된 '몽유도원도/안견'도 어떻게 일본으로 유출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내것이 벌건 대낮인데도 옆집에 버젖이 자랑스럽게 걸여 있다니,, 문화제가 사설로 유출되어 공공장소에서 빛을 못보고 있는 경우인데, 다른 나라의 박물관에라도 있으면 간접 홍보 효과도 있을텐데요.지성적인 재력가들이 사회환원차원에서 밖의 우리 문화재 수집에 대한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겠는데요. 비싼 그림 놀이공원 창고에 두신다니,,,
 

강의를 위해 쿤데라의 <커튼>(민음사, 2008)을 읽다가 작년 시사IN에 신형철 평론가가 실은 서평기사가 생각이 나서 찾아다 옮겨놓는다. 책에 대한 소개로 간명하면서도 유익하다.  

시사IN(08. 09. 05) ‘先해석’의 커튼 찢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

밀란 쿤데라(1929~)는 <농담>(1967)에서 <향수>(2000, 원제:무지)에 이르는 10여 권의 작품을 쓴 소설가이지만 통찰력 넘치는 고급 에세이의 필자이기도 하다. 체코어로 쓴 초기작까지 포함하면 10여 권에 이르는 그의 에세이집 중에서 가장 중요한 책인 <소설의 기술>(1985, 국역본 1990)과 <배반당한 유언>(1992, 국역본:<사유하는 존재의 아름다움>, 1994)은 이미 국내에 소개됐다. 앞의 책이 두 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재출간을 거듭하는 모습과 뒤의 책이 엉뚱한 제목으로 출간됐다가 절판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그의 또 다른 에세이집을 고대했다. 기다리던 그 책, <커튼>(2005, 국역본 2008)이 나왔다.      



우리는 왜 그의 에세이를 아끼는가. ‘소설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그만의 통찰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그 통찰은 “소설만이 발견하고 말할 수 있는 것”(101쪽)에 대한 깐깐한 사색으로 이어지고, 이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은 왜 진짜 소설인가’를 입증하기 위한 노련한 변호가 된다. 그 변호의 방법론은 “나름의 사적인 소설사”(92쪽) 만들기이다. 그의 에세이를 분해하고 재조립하면 우리는 라블레와 세르반테스라는 위대한 선구자에서 시작해 18세기의 헨리 필딩, 로렌스 스턴과 19세기의 플로베르 등을 거쳐 20세기 초의 카프카, 로베르트 무질, 헤르만 브로흐 등을 지나 20세기 중반 폴란드의 곰브로비치를 찍고 밀란 쿤데라 자신에 이르는 하나의 소설사를 얻게 된다(모든 위대한 작가는 자기만의 문학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왜 그들인가?

서정성의 덫에서 벗어나야 ‘진짜 소설가’

그에 따르면 ‘진짜’ 소설가는 서정성의 덫에서 벗어날 때 탄생한다. 한 개인이 거의 전적으로 자기 자신한테 집중하고 있는 시기, 자신의 고유한 영혼에 대해 말하려는 욕망에 들려 있는 시기가 바로 “서정적 시기”다. “반(反)서정주의로의 개종은 소설가의 이력서라면 반드시 들어 있는 기본 항목이다.”(124쪽) 개종 이후 숙고해야 할 것은 “나는 항상 사물의 핵심에 도달하고자 했다”(86쪽)라는 플로베르의 말이다. “소설의 유일한 도덕은 인식이다. 실존의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떠한 단면도 발견하지 못하는 소설은 곧 비도덕적이다.”(87쪽) 뒤집어 말하면, 실존의 알려지지 않은 단면을 ‘인식’하는 것, 이것이 소설의 임무다.

이어 그는 20세기 초의 모더니즘과 더불어 소설은 ‘소설만이 말할 수 있는 것’에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한다. 우선 사실로서의 역사로부터 독립했다. 소설가가 관심을 갖는 역사는 “역사가 움직이지 않는 평화로운 시기였다면 실현되지 않고 보이지 않고 알려지지 않았을 (실존의) 뜻밖의 가능성에 빛을 던지는 탐조등으로서의 역사”(97쪽)일 뿐이다. 문제는 역사적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실존의 수수께끼이므로, 필요하다면 좁은 의미의 리얼리즘적 개연성도 포기해야 한다. 예컨대 카프카가 그랬다. “카프카가 경계를 뛰어넘은 이후로 비개연성의 국경은 경찰도 세관도 없이 영원히 열려 있다.”(102쪽) 

그 실존의 수수께끼를 어떤 방식으로 말해야 하는가. 헤르만 브로흐와 로베르트 무질의 “생각하는 소설”(98쪽)이 그 대답이 된다. 그들은 과학이나 철학과는 다른 방식으로 “지적으로 매우 까다로운 사색을 소설 속에 통합하는 것, 그리고 아름답고 음악적인 방법으로 그것을 작품의 필수 요소로 만드는”(99쪽) 작업을 해냈다. 이 여담(餘談, digression)의 글쓰기를 통해 소설은 ‘소금장수 이야기’를 넘어서고, 결코 영화가 병합할 수 없는 소설만의 고유한 영토를 얻는다(그 자신 분개하며 말한 대로, <프라하의 봄>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전혀 별개의 두 예술이다). 바로 이것이 밀란 쿤데라 소설의 가장 매혹적인 특징이기도 하다.

그가 “삶이라는 이 피할 수 없는 패배에 직면한 우리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바로 그 패배를 이해하고자 애쓰는 것”(21쪽)이라고, 그러기 위해서 모든 종류의 “선(先)해석의 커튼”(127쪽)을 찢는 것이 소설의 존재 이유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의 나이 이제 팔순이다. 자신이 평생을 바친 일의 가치에 대한 변함없는 이 확신과 애정! 그러고 보면 이 해박하고 우아하고 유쾌한 할아버지는 지금껏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다. (ps.이 책을 읽고 나면 브로흐의 <몽유병자들>(1932-)과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1930-)를 읽고 싶어 근질근질해진다. 전자는 다행히 작년 말에 새 번역본이 나왔으나, 후자는 그간 번역된 바 없고 여전히 별무소식이다.)  

09. 10. 06.  

P.S. 헤르만 브로흐의 <몽유병자들>과 로베르트 무질의 <특성 없는 남자>는 <커튼>뿐만 아니라 <소설의 기술>에서부터 쿤데라가 줄기차게 격찬하고 있는 작품들이다. 나도 두 작가의 이름을 쿤데라 덕분에 처음 알게 되었다. 참고로, "소설의 유일한 도덕은 인식이다"라는 말은 쿤데라가 브로흐를 인용한 것이다. 무질의 대작은 근간 예정이라는 소문이 몇년 전부터 나돌았는데, 올해도 그냥 넘어가는가 보다. 현대 소설뿐만 아니라 쿤데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모쪼록 빨리 출간되면 좋겠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펠릭스 2009-10-07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 마음속의 이상형을 전문(작)가는 눈앞에 실체(문자)화하여
보여주는 능력의 소유자군요. 우리(독자)의 마음은 어떤 전문가이든
우리가 바라는 이상형을 제시해주면 그뿐일까요?
과연 전문가입니다. 실존의 알려지지 않은 단면을 인식하는 범접할 수
없는 인지능력의 소유자, 그 인지력은 날카롭고 민감한 감각 수용체를
경유하여 최고의 조합력을 발휘합니다.
우리의 지루함에 해방구를 만들어 주는 전문(작)가는 문자를 휘두르는 도사,
우리의 기대 범위를 비개연성까지 확장시켜주는 전문가,,, 작가는 '분야의
경계'를 넘어 통합시킨 생산물(책)로 우리를 몰입시키군요.

로쟈 2009-10-07 19:59   좋아요 0 | URL
쿤데라의 말은 저도 자주 인용하고 또 써먹은 말입니다. <소설의 기술>에서부터 강조해온 것이죠...

수유 2009-10-07 1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형철의 서평을 보고 책을 다시 읽는다? 지하 내려가서 <커튼> 들고 올라와야겠네요, 요즘은 가벼운 소설들도 건들기 힘든 지경인데..

로쟈 2009-10-07 19:58   좋아요 0 | URL
오늘 강의할 때 참고자료로 썼습니다. 계속 일이 많으신가 보네요.^^;
 

필요 때문에 기시다 슈의 <게으름뱅이 정신분석>(깊은샘, 1995)에서 '미시마 유키오의 죽음 뒤에 있는 것'을 읽다가 떠올린 책은 지난달에 나온 박규태 교수의 <일본정신의 풍경>(한길사, 2009)이다. 저자가 과거에 기시다 슈의 <성은 환상이다>(이학사, 2000)를 옮긴 적이 있어서다(아울러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문예출판사)도 우리말로 옮겼다). 믿을 만한 일본통의 저작이기에 챙겨놓으려고 한다. 저자 자신도 일본을 이해하는 데 곤란을 느낀다고 하지만, 다양한 고전에 대한 독해만으로도 요긴해 보인다.   

경향신문(09. 09. 26) 모순 ‘가깝고도 먼 나라’의 사유방식 

누가 처음 꺼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일본에 대한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비유는 현재까지도 한·일관계를 묘사할 때 매우 적절하게 사용된다. 북한을 제외하면 일본은 한국에 가장 가까운 나라다. 물론 여기서 ‘가깝다’는 말은 물리적인 거리를 말한다. 양국의 감정적 거리는 물리적 거리보다 멀찍이 떨어져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 도쿄대 대학원 종교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현재 한양대에서 일본언어문화학 전공 교수로 일해 일본에 대해 일반인보다 많이 안다고 할 수 있는 저자 역시 “일본에 대해 알아가다 보면 때때로 알 수 없는 벽을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런 현상의 원인을 한국인으로서 일본에 대해 갖게 마련인 감정적 차원이 아니라 근본 사유방식의 차이에서 찾고 있다. 즉, 생각과 감정을 명확히 구분하는 한국적 사유방식과 달리 “논리적 사유와 비논리적 감정의 영역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점”이 일본의 전통적 사유방식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를 ‘양가적(ambivalence·모순, 반대 감정 병존) 속성’이라고 명명했다.  


 
일찍이 루스 베네딕트가 유명한 저서 <국화와 칼>(1946년)에서 모순되는 양극단에 대해 모순을 느끼지 않는 이중적인 성격을 일본인이 지닌 특성의 하나로 거론했다. 저자는 베네딕트의 이러한 고찰을 확장시켰다. 모순을 모순으로 느끼지 않고 병존시키는 일본인의 내면적 풍경을 가미(神), 사랑(愛), 악(惡), 미(美), 모순(矛盾), 힘(力), 천황(天皇), 초월(超越), 호토케(佛) 등 10개의 창을 통해 들여다봤다.

‘일본정신’을 상징하는 책으로 여겨지는 <고사기>를 보자. <고사기>는 창세부터 일본 황실의 성립과정을 신화적 상상력으로 그리고 있다. 일본 천황가의 조상신으로 불리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가 등장함은 물론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러 신들이 질투와 욕정 등 ‘인간적’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듯 <고사기>에 등장하는 신, 즉 ‘가미’들은 성욕과 권력욕, 복수심 등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일본의 민족신앙인 ‘신도(神道)’ 역시 가미를 인간과 질적으로 상이한 절대자로 여기기보다는 인간과 별반 차이가 없는 존재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저자는 “일본의 인간주의적 가미 관념에서는 현실을 넘어서는 어떤 추상적 이념이나 보편적 법칙 또는 불변성이나 영원성이라는 관념이 뿌리내릴 여지가 없다”고 한다. 일본정신에서 진리란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현실 그 자체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저자가 보기에 상대주의는 양가적 사유를 가능케 하는 일본문화의 핵심적 특질이다. 대표적인 일본 불교 교단인 정토진종(淨土眞宗)을 창시한 신란(親鸞·1173~1262)이 설파한 선악관념 역시 상대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신란은 심지어 “나는 선이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불가지론으로까지 나아갔다.

일본인들이 근대화의 아버지로 추앙하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후쿠자와는 제자들에게 ‘칼보다 펜이 강하다’는 서양 격언을 소개하며 실용적 학문으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의식을 고취시켰지만, 악명높은 ‘탈아론(脫亞論)’으로 중국과 조선 침략의 논리적 기반을 제시한 지독한 패권주의자이기도 했다. 후쿠자와에게 “‘펜의 힘’과 ‘칼의 힘’은 결코 대립적인 것이 아니었으며, 여기에는 모순되는 두 개의 힘이 마치 모순이 아닌 것처럼 뒤섞여 있었던” 것이다. 



책은 이와 같은 일본의 전통적 사유방식이 대단한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 단점으로 나타난다는 시각을 깔고 있다. 지독한 상대주의·현실주의·현세중심주의는 외래적인 것들을 껍데기만 남기고 일본적인 것으로 재빨리 변형시키는 저력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일본이 저지른 침략이나 현대 일본이 안고 있는 모순에 무감각할 수 있도록 만드는 블랙홀로도 작용했다.

저자는 일본정신을 들여다보는 10개의 창에 접근하는 통로로 <고사기> <겐지 이야기> <국화와 칼> <가면의 고백> 등 일본에 대해 논할 때 자주 거론되는 10권의 책을 동원했다. 따라서 제목만 귀에 익을 뿐 직접 읽어보지 못한 유명한 책들의 핵심적인 내용을 파악하기 위한 다이제스트로 이 책을 읽어도 쓸모가 있다.(김재중기자) 

09. 10. 05.  

P.S. 인간은 성본능이 망가진 동물이며 이에 따라 여러 가지 환상을 만들어낸다는 기시다 슈의 '성적 유환론'은 좀 오버다 싶지만(보드리야르의 '하이퍼리얼'론을 떠올리게 한다), 그의 <게으름뱅이 정신분석>은 여러 모로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더불어 유익했다. 미시마 유키오만 하더라도 매우 강압적인 조모와 부모, 세 사람에게 둘러싸여 성장한 독특한 환경으로 인하여 실재감을 갖지 못하는 정신병적 인격구조를 갖게 됐고, 그의 창작활동은 실재감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조직을 구축하기 위한 시도라는 것이 기시다 슈의 해석이다.  

기시다에 따르면, 미시마는 자기 속에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부분, 자신이 알지 못하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못 참아 했는데, 그것은 자기의 일부를 자신이 소유하지 않고 남의 손에 도둑 맞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그가 작품 <가면의 고백>에서 갓태어났을 때의 목욕물이 기억난다고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도, 자기에 관한 일로 자신은 모르고 타인만이 알고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어 했기 때문인 것이다." 내가 찾고자 했던 대목이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펠릭스 2009-10-06 00:30   좋아요 0 | URL
서양의 '이분적 사고'가 아닌 일본은 '신도'의 현세주의를 바탕으로 한 상대주의, 현실주의가 팽배하군요. '마시마'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강한 자존의식 덕에 '사무라이정신' 이 나올법 한데요. 또한 지독한 완벽주의(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성장후 죽기전까지)적 사유로 봐 '한국정신'(?)과는 다를 듯합니다. 과연 '한국정신'은 뭘까 싶습니다.

로쟈 2009-10-06 19:34   좋아요 0 | URL
요즘은 '먹고사니즘'이라고 하잖아요.^^;

드팀전 2009-10-06 09:22   좋아요 0 | URL
가라타니 고진이 <역사와 반복>에서도 다른 측면에서 거론하고 있는 내용이어서 제게 시의적으로 흥미롭군요. 미시마 유키오의 근대적 절대지에 대한 강박이 그가 '자결'이란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 고진의 이야기였지요. 반면 오에는 그걸 안고 늙어 가는 방식을 택한 것이라고.. 독특한 비유였던 것 같습니다.

로쟈 2009-10-06 19:33   좋아요 0 | URL
고진의 것을 포함해서 미시마 유키오론으로 인상깊었던 두 글이었어요...

perky 2009-10-06 13:12   좋아요 0 | URL
박규태 교수님, 언젠간 책 하나내지 싶더랬는데..전 이분 참 좋더라구요. 글 번역(황금가지 등)도 깔끔하게 잘하고 지식도 풍부하고..여러모로 장인정신이 느껴지는..'국화와 칼'도 저는 이분이 번역한 걸로 갖고 있지요. 조만간 저 책[일본 정신의 풍경]도 사야겠어요. 제목부터 근사하군요! (제가 요즘 일본문화에 푹 빠져서리..)

로쟈 2009-10-06 19:32   좋아요 0 | URL
네, 책이 아주 충실합니다. 교재로도 좋을 듯해요...

카스피 2009-10-06 10:54   좋아요 0 | URL
마사미 유키오는 천왕 복귀를 부르짖으며 자위대 쿠데타를 설득학다 실패해서 할복 자살한 그 문학가를 말하는 것인가요?

로쟈 2009-10-06 19:32   좋아요 0 | URL
네, 기사의 마지막 사진이 미시마입니다...
 
사회언약론자가 꿈꾸는 사회

한국출판문화상 50년을 기념하여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책, 미래와의 대화'의 한 꼭지를 옮겨놓는다. 나도 몇 달 전에 서평을 쓴 적이 있는 조너선 색스의 <사회의 재창조>(말글빛냄, 2009)를 다루고 있다. 색스는 다문화주의의 한계를 지적하고 이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의 재창조를 주창한다. 그의 주장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서, 우리도 다문화주의와 '호텔로서의 사회'가 사회적 진보의 지향점이 될 수 있을지 한번 더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일보(09. 10. 01) 다문화주의를 넘어서 

2005년 7월 7일 런던 중심가의 출근시간대 버스와 지하철에서 발생한 연쇄 폭탄테러. 50명 이상이 사망하고 700명이 넘게 부상한 이 테러는 영국 사회를 큰 충격에 빠뜨렸다. 테러 용의자 무슬림 청년들이 해외의 알카에다 조직원들이 아니라, 영국에서 태어나 교육을 받아온 청년들이었기 때문. 이후 영국에서는 무슬림들에 대한 보복 테러가 이어졌고, 무슬림들은 도심지 건물에 '백인 접근금지'라는 팻말을 내걸기도 했다.

이 사태는 다양한 인종·종교 집단의 문화를 인정하겠다는 영국의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정책의 적실성에 대한 논란을 가열시켰다. "우리는 몽유병자처럼 분리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트레버 필립스 영국 평등인권위원회 의장의 발언은 당시 영국사회의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한국 역시 이주노동자, 결혼이민자, 유학생 등 체류 외국인이 이미 2007년에 100만명을 돌파하면서 다문화사회로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인류학, 사회학, 여성학을 중심으로 다문화주의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정부 각 부처는 다문화주의의 이름 하에 다양한 정책을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문화주의의 전통이 강한 서구사회는 급격한 문화적 변동의 과정에서 어떻게 다양한 구성원들을 통합해 갔을까. 갈등은 없었을까. 



종교 갈등으로 인한 문명충돌 가능성을 경고하면서 타자와의 대화를 강조한 <차이의 존중>(2002)의 저자인 영국 철학자 조너선 색스(61)는 <사회의 재창조> (원저 2007년ㆍ2009년 말글빛냄 번역출간)에서 1970년대 이래 미국, 영국, 호주 등 서구사회의 오랜 독트린이었던 다문화주의의 오류를 진단하고, 날로 높아지는 세계화의 파고 속에서 다문화주의가 여전히 사회통합 원리로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유대교 지도자(랍비)이기도 한 색스는 "오늘날 다문화주의는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가왔다"고 선언한다.

다문화주의의 기원
흔히 미국사회를 나타내는 '도가니'(melting pot)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이민자나 소수집단의 문화를 새로운 문화에 용해시킨다는 '문화동화론'은 서구사회를 지배해온 하나의 독트린이다. 그러나 흑인들의 민권운동(미국), 대규모 이민 유입(유럽) 등 격렬한 사회변화는 1970년대부터 서구사회로 하여금 다문화주의 정책에 귀를 기울이게 했다. 이민자 집단이 그들만의 학교와 사회복지기관을 설립하도록 국가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공립학교는 소수집단에 연고를 둔 교사를 채용했다.

조너선 색스의 표현대로 "역사상 최초로 이민자가 사회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이민자에 적응하는 시대"가 열린 셈이다. 20세기초 경험한 독재와 전체주의에 대한 두려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야기한 민족주의에 대한 극단적 반감 등도 다문화주의를 꽃피게 했다고 지은이는 분석한다.

그러나 민족적, 종교적 소수집단이 사회 공동의 언어와 정치체계를 공유하면서도 그들만의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다문화주의는 전면에 부상했지만, 그와 동시에 공동의 사회적 목표 안에서 개인을 하나로 묶어주던 도덕적 유대의 끈도 끊어지기 시작했다. 종교지도자이기도 한 지은이 색스가 보기에 도덕성의 붕괴는 애초 다문화주의의 목표였던 공동체의 '공존' 대신 '분열'을 가속시키는 촉매가 됐다.

■ 실패한 '호텔로서의 사회'
색스는 이 책에서 흥미로운 비유를 통해 다문화주의의 실패 원인을 뜯어본다. 그는 다문화주의 사회를 '호텔로서의 사회'라고 비유한다. 투숙객들은 다른 손님에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으며, 다른 호텔을 찾을 수도 있다. 문제는 투숙객들이 이 호텔에 대해 아무런 애착을 느낄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투숙객들과 얼굴을 익히고 한담을 나눌 수도 있지만, 그곳에 뿌리 내릴 수는 없다. 사회로 말하자면 이는 어떤 주류문화도, 어떤 국가적 정체성도 없는 사회다.

도덕적 상대주의의 횡행, 규칙·훈육·권위·자기절제가 결여되어 있는 문화, 불안정성의 증가로 규정되는 이런 정체성의 공백기에 사회구성원들은 민족적 정체성 혹은 종교적 정체성 같은 '보다 안전한 과거의 흔적'에서 정체성을 확인하려 든다.

색스는 이를 '내적 도피'라고 설명한다. 비(非)유대학교에 자녀를 보낼 때 별 걱정을 하지 않았던 일반 유대 가정들이 최근에는 유대학교에 자녀를 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다른 종교권에서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이를 입증한다는 것이다.

그는 말한다. "내적 도피는 유대인, 기독교인, 무슬림 등 전통적인 정체성의 유지를 중시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모두에게 있어서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다. 그것은 더 이상 우리들 자신이 '함께하는 모두'로 여기지 않게 되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역 혹은 종교 공동체가 사회보다 우위에 서고 국가정체성이 약화되는 시대는 색스에 따르면 '야만과 암흑'의 시대다. 다문화주의는 오히려 사회의 통합이 아닌 분리를 야기시켰다는 점, 차이를 줄이는 대신 극대화시킨다는 점에서 유효성을 상실했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다문화주의는 유효한가
그렇다면 과거처럼 단일문화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가능할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색스는 공동체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과, 사회에 충심을 기울이며 사회를 위해 일하는 것이 양립불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하며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그 모델은 이 책의 원제이기도 한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the home we built together) 모델이다. 이 모델은 모든 사람이 외부인으로 전락하는 '호텔 모델'과는 달리 구성원들이 "나는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다. 구체적으로 인종적·종교적 배경과 상관없이 구성원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공동목표에 기여하는 사회다.

주류문화는 타문화를 자극하는 무의미한 언동을 금하도록 스스로를 엄격히 통제해야 하고, 소수문화는 주류문화의 전통을 존중할 책임을 의식하는 사회다. '동화없는 통합'과 '조화로운 다양성'은 이 사회를 운영하는 원리다.

이현정 한국다문화센터 소장은 "평등하고 개방적인 가치관을 내세우고 서로 다른 가치관을 가진 공동체가 합의해서 함께 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색스의 주장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며 "다만 그가 대안 모델을 설명하면서 그 비유가 유대교의 것을 따르는 등 특정 종교의 원리를 보편화할 때 발생할 문제점은 비판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비록 문화적 맥락은 다르지만, 서구사회의 실패를 분석한 색스의 이론은 본격적 다문화주의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있는 한국사회에도 참고할 부분이 많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다문화주의 이론이나 정책과 관련, 이태주 한성대 교양학부 교수는 "한국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이민자 집단의 문화적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민자들에게 '한국 며느리가 되라'고 하는 식의 동화정책에 가깝다"며 "위로부터의 강제가 아니라 시민사회 차원에서 문화적·사회적으로 통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화서 명지대 사회교육원 교수는 "다문화주의 사회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다른 나라의 정책을 그저 벤치마킹하는 것만으로는 안된다"며 "이민자들의 문화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자생적으로 변화하는지 세세한 부분까지 관찰해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자칫 문화제국주의로 변질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왕구기자)  

"다원주의는 방관적 존중, 다문화주의는 적극적 존중"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다원주의(pluralism)에서 발전한 이론이다. 다원주의가 각 문화를 인정하되 각 문화가 알아서 스스로를 존중하라는 다소 방관자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다문화주의는 문화간의 적극적인 존중을 중시한다

마르크스주의 정치사상가인 비쿠 파렉(74) 영국 헐대 교수의 <다문화주의 다시 보기>(2002)는 다문화주의 이론의 대표 저서다. 문화 간의 적극적 소통이 그 사회 전체의 문화를 풍부하게 만든다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이민자들의 고유문화를 방치할 경우 문화가 사라지는 과정에서 그들의 기본권이 위협 받으므로 국가 차원에서 이민자 문화를 보호·발전시키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담고 있다.   

정치철학자인 찰스 테일러(78) 전 캐나다 맥길대 교수는 <다문화주의>(1994)에서 '존중'의 문화적 관계를 강조하며, 서구문화이건 제3세계 문화이건 상호존중에서 출발해 문화적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론을 펼치고 있다.

윌 킴리카 캐나다 퀸스대 교수의 <다문화주의 시민권>(1995)은 다문화주의적 감수성을 국가나 민족 단위로 한정하지 말고 세계적 단위까지 확대해야 한다며 시민의식의 제고를 주장하고 있다.

조너선 색스는 누구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 영연방 유대교 최고 지도자로 랍비 학교인 런던유대인대에서 랍비 서품을 받았다. <차이의 존중> 등 문화간 차이의 극복에 관한 다수의 저작이 있다. 2004년 <차이의 존중>으로 종교 부문 노벨상으로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수상했으며 앞서 1995년에는 유대인 공동체 생활을 발전시킨 공로로 예루살렘상을 받았다. 현재 영국 유대교협회 공동대표로 활동하고 있다.(이왕구기자) 

09. 10. 03.


댓글(5) 먼댓글(1)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차라의 생각
    from tzara's me2DAY 2009-10-05 10:04 
    다문화주의를 넘어서 http://ow.ly/sEZu 조너선 색스의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고향': 이 모델은 모든 사람이 외부인으로 전락하는 '호텔 모델'과는 달리…인종/종교적 배경과 상관없이 구성원들이 책임의식을 갖고 공동목표에 기여하는 사회다
 
 
philocinema 2009-10-03 10:13   좋아요 0 | URL
'차이는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것이다'라고 되뇌이며 살고 있습니다만,

위의 문구를 의식하지 않고 행동했는데도,
자연스레(부지불식간에) 문구대로 살아가고 있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로쟈 2009-10-03 10:27   좋아요 0 | URL
차이에 대한 존중과 방임도 다른 것이란 걸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호텔로서의 사회' 모델에 대한 비판이 인상적이었어요...

펠릭스 2009-10-05 22:25   좋아요 0 | URL
구성원간에 공동목표을 만든다면 어떤 모델이 있을까 생각해봅니다.
현재 여성(이민자):남성(한국인), 남성(이민자):여성(한국인) 결혼이민자의
구성비 국내 다문화정책수립에 중요하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국내에 취업중인 산업연수생(?)도 함께,,,
* 최근 소설 '도가니(melting pot)'였군요.

로쟈 2009-10-05 22:23   좋아요 0 | URL
그게 문제이긴 한데요. 최근에 '공화주의'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최소한의 합의(언약?)를 마련하는 게 중요할 듯해요...

펠릭스 2009-10-05 22:28   좋아요 0 | URL
예,,들어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