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을 모았던 올해 노벨문학상은 루마니아 출신의 독일 시인 헤르타 뮐러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올해는 물망에 오르지 않았던 의외의 인물에게 상을 주기로 한 모양이다. 한국 작가들에게도 언젠가는 기회가 오겠지. 물론 앉아서만 기다릴 순 없는 일이기도 하다. 40년 간의 겸재 정선 연구를 갈무리하여 펴낸 최완수 선생을 봐도 그렇다. 20대에 시작한 연구를 매듭 짓기 위해 평생 빈둥거릴 새가 없었다는 이 미술사학자의 고백을 그의 자부심과 함께 스크랩해놓는다. 이번에 나온 <겸재 정선>(현암사, 2009)은 고가본이어서 내겐 말 그대로 '그림의 책'이지만 형편이 좀 피면 소장해놓고 싶다.
한겨레(09.10. 08) "영광스런 겸재 연구…빈둥거릴 수 없었죠”
“내가 평생을 걸고 겸재의 삶을 밝히지 않았다면, (지금도 그의 화풍은) 이렇게 밝혀지지도 않았을거야….”
쪽빛 두루마기 입은 노학자는 환한 웃음을 띄우며 거침 없는 자신감을 내뱉었다. 금강산을 비롯한 이땅 강산의 아름다운 진경을 처음 붓질로 펼쳐 보여준 18세기 대화가 겸재 정선(1676~1759), 이 거장의 200여년전 인생길을 자기 인생에 포개며 평생을 연구한 미술사학자 최완수(67·간송미술관 연구실장)씨의 풍모는 당당하고도 단단했다.

겸재가 세상을 뜬 지 250주년인 올해를 맞아 그는 약 40년간의 겸재 연구를 집대성한 대작 <겸재 정선>(전 3권, 현암사, 32만원)을 최근 펴내며 마음에 아로새겼던 필생의 숙원을 풀었다. 지난 6일 마련한 기자 간담회에서 그는 “이 책 속에 겸재 그림의 모든 것이 들어있다”고 자부했다.
<겸재 정선>은 1971년 간송미술관 첫 기획전으로 ‘겸재전’을 시작한 이래 이 미술관에서 8차례나 펼친 겸재 기획전과 그가 펴낸 관련 저술·논고, 다른 학자들의 연구 성과까지 총망라한 역저다. 1676년 서울 백악산 아래(현 청와대 근처)에서 태어난 겸재가 1759년 인곡정사에서 84살로 타계할 때까지 거장의 일대기를 고증해 되살리면서 <청풍계><해악전신첩> <인왕제색도> <금강전도> 등의 걸출한 산수, 풍속화 등의 명작들과 더불어 화풍의 변천, 관직 생활 등을 낱낱이 담아냈다. 2년 넘게 집필한 본문만 200자 원고자 3673장에 달하며, 원화처럼 재현한 도판 206장, 참고그림(삽도) 147장이 들어갔다. 저자가 직접 18차례나 교정을 거듭했을 정도로 지극정성을 기울였다고 했다. 겸재의 가계도와 가정 형편, 교우 관계, 학맥 등과 당대 정치·사회 정세까지 철저한 문헌 고증으로 세밀하게 담아내 겸재의 시대를 재구성한 것이다.
“저나 간송이나 겸재와의 만남은 숙명이었어요. 간송미술관을 세운 간송 전형필 선생(1906~1962)이 일찍부터 겸재 그림의 가치를 알아보고 일제 강점기 명작들을 집중 수집했고, 1966년 간송미술관에 들어온 저는 그린 연대가 확실한 간송의 수집 기준작들을 보면서 연구를 거듭했으니 말이죠. 생전 겸재의 문집이 수십권이나 있었다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져버린 현실적 제약이 내게 그의 일대기를 복원하도록 만든 셈이지요. 글쎄, 약 40년간 겸재 연구는 한마디로 영광스러웠다고나 할까요. 그건 곧 조선의 문화가 영광스러웠다는 것이겠지….”
숱한 겸재 기획전과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 등의 기념비적 저술로 다진 연구 성과들을 갈무리 하기 위해 최씨는 “알려진 겸재 관련 문집은 거의 독파했다”고 한다. 특히 권섭, 이천보, 이하곤 등 1700년대 초반 태어나 이율곡의 조선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으며 성장한 18세기 선비 세대들이 겸재를 진경산수의 거장으로 등극시킨 핵심 지지세력이었음을 치밀하게 고증한 것도 이 저술의 성과라고 강조했다. 최근 국립중앙박물관이 전시 준비 과정에서 새롭게 발굴해 큰 화제를 모았던 겸재의 풍속 기록화 <북원기로회도첩>에 대한 상세한 분석글도 실려 눈길을 끈다.
“보탤 내용은 여전히 많지만, 올해가 겸재 서거 250주년이라 작심하고 일단 마무리지은 겁니다. 이전에 내가 냈던 겸재 관련 저술들이 그림 성격 등에 따라 작품들이 흩어져 있었다면, 이번에 나온 책은 시기의 흐름에 따라 총체적으로 서술하는 편년체 형식으로 작품들을 배치해 일목요연하게 그림들을 볼 수 있어요. 그림에 한문으로 적은 제시, 제발 등도 빠짐없이 번역했으니 앞으로 겸재 연구자들이 많이 나올 겁니다.”
잘 알려진대로 최씨는 1970년대 이래 간송미술관을 중심으로 조선 왕조 시대의 사상, 문화적 역량을 재조명해온 ‘간송학파’ 학자들의 수장이다. 조선의 문화 르네상스기로 불리는 18세기 문예활동에 대한 집요한 연구의 결실로 ‘진경산수’, ‘진경문화’ 등의 용어를 유행시킨 주역 또한 그다. 특히 70년대초만 해도 ‘서민예술’‘실학의 산물’ 등으로 인식됐던 겸재 진경 그림의 성격과 위상을 재정립한 것은 오롯한 그의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의 문화 중흥기 그 정점에서 진경산수화를 꽃피운 겸재의 인생 전모를 복원한 이번 저술 또한 그런 연구 작업의 한 획을 긋는 열매다.
서울대 사학과를 나와 국립박물관에서 일했던 그는 자신의 은사였던 미술사학자 고 최순우(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소개로 스물다섯 나이에 간송미술관에서 일하게되면서 겸재 컬렉션과 인연을 맺었다. “일제 근대사학의 영향으로 조선 왕조의 문화가 정체됐다는 당시 선입관에 맞서려면 조선왕조 500년 문화사의 절정인 18세기 ‘진경시대’를 조명해야한다고 생각했고, 자연스럽게 그 시각적 실체인 겸재의 그림을 연구하게 됐다”는 회고다. 평생 빈둥거릴 새가 없었다는 최씨는 “후학들이 진경 문화가 나온 시대상의 전모를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당부도 했다.
“1970년대 처음 국역 <추사집>을 냈던 추사 김정희의 작품들과 진경 시대 문화의 또다른 산물인 조선왕릉 석물에 대한 연구 성과도 정리하려고 해요. 나이들어 체력이 다하면 제자들이 뒷받침해주겠지요.”(노형석 기자)
09. 10. 08.


P.S. 형편상 <겸재 정선>을 소장하긴 어려워도 최완수 선생의 <우리문화의 홤금기 진경시대 1,2>(돌베개, 1998) 정도는 이 참에 가까이 두어도 좋겠다.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대원사, 1999)을 따라가봐도 좋겠고. 절판된 <진경산수화>(범우사, 1993)는 도서관에서 한번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