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회의(267호)에 실은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 레이몬드 고이스의 <공적 선 사적 선>(기파랑, 2010)을 다루고 있다. 짐작엔 이 책에 대한 유일한 서평일 듯싶은데, 책에 대한 평가보다는 내용을 간추리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책의 의의는 공과 사, 곧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에 대해 한번 다시 생각해보도록 한 데 있다.  

기획회의(10. 03. 05)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 

인문서에 대한 관심은 보통 저자에 대한 관심이거나 책의 주제에 대한 관심이다. 레이몬드 고이스의 <공적 선(善) 사적 선(善)>의 경우는 후자인데, 책을 읽고 난 감상으론 전자로 이행해도 좋겠다는 쪽이다. 얇은 분량이지만 여러 모로 유익했다는 판단에서다. 얇다고는 해도 저자가 일반 독자들을 고려한 것 같지는 않다. 학술서의 문체에다 많은 각주를 거느리고 있어서 예상보다는 읽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책의 맨 앞에 배치된 ‘옮긴이의 말’이 일단은 전체적인 윤곽을 잡아준다. 저자가 케임브리지 대학의 철학과 교수로 정치철학이 전문분야라는 것과 니체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 “그는 니체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이 지극히 당연하고 필연적인 것이라고 받아들이는 교리나 이데올로기들을 해체하는 데 주력했다. 니체에게 그것이 기독교였다면 고이스에게 그것은 바로 자유주의다.” 말하자면 ‘자유주의라는 교리’의 비판과 해체가 저자의 주된 관심분야라는 것이다.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교리는 무엇일까? 공과 사, 곧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 아닐까? 거기에 덧붙여 개인의 프라이버시는 최대한 보호받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 한데 “고이스는 이 책에서  이러한 우리는 태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것은 타인을 경쟁자로 인식하도록 요구하는 자유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그리 깔끔하게 구분되지 않는다는 것도 저자의 주된 논지다. 저자가 서론에서 밝히고 있는 입장은 이렇다. “나는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 그렇게 분명하게 구분되지는 않으며, 일련의 대조적인 사항들이 중첩되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늘날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분은 생각과는 달리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 

 

공과 사의 명확한 구분이라는 환상을 해체하기 위해서 저자가 동원하는 것은 니체식 계보학이다(실제로 그는 니체의 <비극의 탄생>과 <초기 유고>의 비평판 편집에도 관여한 바 있다). 미셸 푸코도 방법론으로 이용한 적이 있지만, 계보학적 고찰이란 어떤 사상이나 관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그것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며 역사적 우연이라는 걸 보여주는 식이다. 니체가 <도덕의 계보>에서 기독교적 선/악이라는 것이 나쁨/좋음이라는 귀족적 윤리가 전도된 것에 불과하다고 폭로한 것이 좋은 예이다. 고이스는 공(公)사(私)구분의 역사성과 우연성을 드러내주기 위해 세 가지 인물의 사례를 검토한다. 디오게네스와 카이사르,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들이다.  

 

기원전 4세기 사람인 디오게네스는 아테네의 시장 한복판에서 자위행위를 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아테네는 그런 행위가 통제되지 않는, 문화적 진화의 수준이 낮은 사회가 아니었다. 사람들이 디오게네스의 행위에 불쾌감을 느끼고 그를 비판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디오게네스 자신은 그러한 행위가 배가 고프면 배를 쓰다듬어서 허기를 달래는 것처럼 단순한 행위일 뿐이라고 답했다 한다. 여기서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은 ‘못 본 체함의 원리’의 적용 유무에 따라 결정된다. 즉 공적 공간은 못 본 체함의 원리가 적용되는 곳이고, 사적 공간은 반면에 사적 공간은 못 본 체함의 원리를 어겨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곳이다. 당시 아테네에는 공적/사적이란 개념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었지만, 디오게네스는 사적으로 해야 할 일을 공적으로 행함으로써 비판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아테네인들과는 달리 로마인들은 공적인 것(Publicus)과 사적인 것(Privatus)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구분을 갖고 있었다(영어의 구분 자체가 라틴어에서 유래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로마 공화국 말기였던 기원전 50년 말 원로원은 갈리아(골)의 총독 카이사르를 소환했다. 여러 정치적인 변칙행위를 문제삼은 것인데, 만약 지휘권을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사적인 시민’으로 돌아와 재판을 받지 않으면 카이사르는 ‘공공의 적’으로 선포될 처지였다. 이때 ‘공공의 것’을 뜻하는 ‘레스 푸블리카(res publica)’란 말이 흥미롭다. 오늘날 ‘공화국(republic)’이란 말의 어원이기도 하지만, 저자에 따르면 당시 로마인들에게는 공동선에 대한 관념만 있었지 추상적 권력구조로서 국가라는 개념은 없었다(즉 ‘로마 국가’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이라 한다).  

일단 publica는 populus(인민)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수액이 풍부한 나무처럼 활기찬 성인 남자와 소년, 곧 군대에 갈 수 있었던 남자를 가리켰다. ‘군단을 형성할 남자들’ 혹은 ‘무장할 수 있는 남자들의 집합’이 인민이었다. 그리고 공적인 것이란 ‘전체 인민에게 속하는 것’이란 뜻이었다. 거기서 차츰 ‘공공의 것’이 갖는 다의적 의미가 형성되는데, 저자는 네 가지로 간추린다. (a)군대의 재산 (b)로마인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현상유지 (c)로마인의 공동관심사 (d)로마인이 공동선.  

  

여기서 공동관심사라는 것은 군대 모든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군대라는 집단에도 영향을 미치는 걸 뜻했다. 그리고 공동선은 각각의 시민이 소유한 가축의 수가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사원과 교량의 수가 늘어나는 걸 의미했다. 공동의 관심사가 존재한다면 특수한 개인이나 집단을 지명하여 그 문제에 전념하도록 할 수 있다. 로마인들은 그런 공직을 맡은 사람을 ‘정무관’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사적인(priuatus)’란 단어는 그런 정무관직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서 공적 권위나 권력이 없는 사람을 가리킬 때 쓰였다. 원로원의 소환에 맞서 카이사르는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한다. “내가 이 강을 건너지 않는다면, 나는 곤경에 처한다. 내가 이 강을 건너면, 세계가 곤경에 처한다.” 그는 공동선에 앞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선택한 것이었다.   

한편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사적인 것은 내면의 삶을 뜻했다. 디오게네스의 경우에 사적인 것이란 다른 사람들을 역겹게 하지 않기 위해서 피해 들어가야 할 장소였다면,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자기 마음에서 찾아낸 존재론적으로 특권적인 장소였다. 카이사르에게서 지위가 공동선과 갈등을 빚어내는 사적인 내용을 품고 있었더라도 아우구스티누스의 내면성과 같은 의미에서의 사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내 은행 잔고”이다. 요컨대 공과 사에 대한 단 하나의 구분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공적인 것/사적인 것의 계보학적 고찰을 통해서 현대 자유주의가 사적 영역의 핵심으로 침해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유재산권 등을 상대화한다. ‘민주공화국’에 사는 시민으로서 숙고해볼 만한 문제다.  

10. 03. 12. 

 

P.S. 저자의 책으론 프랑크푸르트학파를 다룬 <비판이론의 이념>(서광사, 2006)이 먼저 출간돼 있다. 'Raymond Geuss'가 '레이몬드 게스'라고 표기됐고 얼추 그렇게 읽음 직한데, '레이몬드 고이스'가 맞는 표기인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리뷰를 기획하면서는 미조구치 유조의 <중국의 공과 사>(신서원, 2004)도 같이 읽어보려고 했지만, 사정의 여의치 않았다. 윌리엄 시어도어 드 배리의 <중국의 '자유' 전통>(이산, 1998)까지 관심권에 두었지만 책을 구해놓는 데 그쳤다. 실상은 마감에 쫓겨 쓰느라 <공적 선 사적 선>의 문제제기도 충분히 다룬 건 아니다(마지막 아우구스티누스에 대해서는 조금 더 자세히 말할 수 있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이란 주제는 찰스 테일러의 <근대의 사회적 상상>(이음, 2010)에서도 한 장을 할애하고 있기 때문에, 기회를 보아 한번 더 '공부'해볼 참이다. 게스/구이스와 같이 읽을 저자는 같은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정치사상사를 강의하는 퀜틴 스키너이다. 그는 <자유주의 이전의 자유>(푸른역사, 2007)에서 이사야 벌린 등의 '자유주의 자유론' 대신에 '공화주의 자유론'을 옹호하는데, '자유주의 비판'이란 점에서 게스/구이스와 입장을 같이한다(역자도 같다). 두 사람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나오는 '정치사상사' 시리즈의 공동 편집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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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 사회적 상상>(이음, 2010)이 출간된 김에 마이리스트를 만들어놓긴 했는데, 책은 아직 본격적으로 읽진 못했다. 며칠전 도서관에서 원서를 대출하고 오늘은 2002년 방한시 강연문들을 모은 <세속화와 현대문명>(철학과현실사, 2003)을 대출했다. 사정을 보아 따로 서평을 쓰게 될지도 모르겠다(다음주 한겨레21의 서평 후보이기도 했는데, 결국은 <16세기 과학혁명>만을 다루었다). 한겨레 고명섭기자의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10. 03. 13) 근대 시민사회의 도화선 ‘새로운 상상’  

<근대의 사회적 상상-경제·공론장·인민주권>은 정치철학자 찰스 테일러(1931~)의 2004년 저작이다. 테일러의 저작 활동은 ‘철학적 인간학’과 ‘서구 근대성 탐구’라는 두 축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 책은 서구 근대성을 ‘사회적 상상’(social imaginaries)의 관점에서 살피는 저작이다. 지은이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을 특징짓는 세 가지 형식으로 ‘시장경제’ ‘공론장’ ‘인민주권’을 제시한다. 이 세 가지 형식에 대한 탐구가 이 책의 본론을 이룬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테일러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철학·경제학·정치학을 공부했다. 캐나다로 돌아온 뒤 맥길대와 옥스퍼드대 교수를 지냈으며, 현재는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로 있다. 그는 일찍부터 학문활동과 정치실천을 함께 한 다소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영국에 유학하던 시절에 신좌파 정치운동을 했으며, 귀국한 뒤에는 사회민주주의 계열 신민주당의 핵심 이론가로 활동했다. 자신의 정치적 열정과 경험을 철학적으로 담론화하려는 행동주의자의 면모가 저작마다 깊이 배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정치사상은 흔히 ‘자유주의적 공동체주의’로 요약되는데, 개인의 자율성과 공동체 귀속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주요 고민인 것으로 보인다.

그런 고민의 과정에서 테일러는 ‘서구 근대성’에 대해 집요하게 질문하고 해석하는 작업을 벌였는데,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서 그런 작업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지은이가 제시한 ‘사회적 상상’이라는 말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를 연상하면 다소 수월하게 감이 잡힌다. 지은이 자신도 앤더슨의 그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본문에서 밝히고 있다. 집단적 상상이 현실적인 힘을 행사할 때 그것을 두고 ‘사회적 상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논리정연한 이론이 아니라 모호하고 흐릿한 이미지와 이야기로 퍼져나가기 때문에 ‘상상’이다. 이 사회적 상상 중에 결정적으로 근대를 규정한 세 가지 형식이 경제·공론장·인민주권이라는 것이 지은이의 기본 가정이다. 

먼저 지은이는 ‘사회적 상상’이라는 것이 어떻게 싹터서 자라나는지를 설명한다. 시작은 이론이다. “이론이란 처음에 몇몇 사람들이 주장하다가 소수 엘리트의 사회적 상상 속으로, 이어 사회 전체의 사회적 상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간다.” 지은이는 17세기에 ‘근대적인 사회적 상상’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처음 출현했으며, 그 이론을 제출한 사람이 네덜란드 법학자 휘호 흐로티위스(그로티우스·1583~1645)와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1632~1704)였다고 딱 짚어 말한다. 이 두 사람은 평등한 개인들이 계약을 체결해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는 질서를 만든다는 관념을 이론으로 제시했다.

여기서 결정적인 것은 개인들의 평등성과 상호이익인데, 이것이 바로 근대적 도덕질서의 핵심을 구성한다. 이 근대적 도덕질서가 사회적 상상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 상상 자체를 바꾸고 진전시킨다. 그 결과로 나타난 근대의 사회적 상상체가 ‘평등한 상호이익의 세계’ 곧 ‘시민사회’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이 시민사회 가운데 첫 번째로 등장한 것이 ‘시장경제’다. 경제에 대한 근대적 이미지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18세기 ‘정치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다. 평등한 개인들의 이기적 활동이 전체의 이익을 증진시킨다는 ‘보이지 않는 손’의 질서가 이 경제다.  



지은이가 강조하는 두 번째 ‘사회적 상상’은 ‘공론장’이다. 공론장을 처음 제대로 규명한 사람은 위르겐 하버마스다. 하버마스는 <공론장의 구조변동>에서 18세기에 ‘공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서유럽에 처음 등장했으며,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람들이 일종의 토론 공간 안에서 서로 연결됐다고 말한다. 이때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묶어준 공통의 공간이 책·팸플릿·신문 같은 인쇄물이었다. 인쇄물 자체가 실제의 공간은 아니므로 공통 공간, 곧 공론장은 장소를 초월한 일종의 ‘상상적 존재’다. 그러나 이 공론장은 정치권력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테일러는 공론장이 권력의 외부에 있다는 점이야말로 고대의 아고라와 다른 점이라고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의 토론장인 아고라가 권력을 직접 행사하는 정치 내부의 장이었음과 달리, 근대의 공론장은 정치 외부에서 정치권력에 영향을 주는 기능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론장이 정치에 규범적 힘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배후에 ‘인민주권’의 관념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지은이는 말한다. 공론을 만드는 것은 궁극적으로 인민이며, 이 인민이 주권자이므로 정치권력이 인민의 감독과 견제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인데, 이런 생각을 통해 ‘스스로 지배하는 주권적 인민’이라는 ‘사회적 상상’이 사회 전체로 퍼졌다. 그 결과는 미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이었으며, 이 두 혁명은 인민주권을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테일러는 이 책의 근대성 논의를 더 밀고 나가, 2007년에 펴낸 대작 <세속의 시대>에서 포괄적으로 상술했다고 옮긴이는 전한다.(고명섭 기자) 

10. 0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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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방문자 수가 갑자기 수백 명 늘었다. '체홉'에 관한 포스팅 때문이라면 의외이고 다른 이유가 있는 거라면 나도 모르는 이유다. 여하튼 그건 그렇다 치고, 서평원고에 또 매달리기 전에 잠시 한숨 돌리는 기분으로,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펴내는 월간지 '책&(책앤)'의 청탁을 받고 쓴 글을 옮겨놓는다. '2010년 책 읽는 한국'이라는 권두 에세이인데, 여러 가지 일에 쫓기던 터가 모스크바 체류 시절에 썼던 내용을 바탕삼아 급조해서 보낸 원고였다. 다시 읽어보니 약간 어색한 대목도 있는데, 사람의 표정이 언제나 자연스러운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쳐둔다. 글도 자기 운명과 표정을 갖는 것이니까. 참고로 글의 제목은 편집자가 붙인 것이다.   

책&(10년 3월호) 가장 아름다운 양식의 창고 

대학 안팎에서 강의를 하고 ‘인터넷 서평꾼’ 노릇도 하는 내게 책읽기는 말 그대로 다반사(茶飯事)이고 습관이다. 매일 세 끼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듯이 책을 읽고 또 읽는다. 부지런히 읽기도 하고 게으름을 피우며 읽기도 하지만, 책과 멀어진 적은 거의 없는 듯싶다. 말하자면, 자신이 가장 한심해 보일 때는 곁에 아무런 읽을거리도 없어서 멍하니 앉아 있을 때라고 생각하는 축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인간을 가리켜 ‘자유에 처형된 존재’라고 부른 것에 견주면, 책벌레들은 ‘독서에 처형된 존재’라 부를 만하다. 그렇게 책이라면 차고 넘치는 내게도 책이 ‘고프던’ 시절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한국어 책’이 고프던 시절이었다.  

수년 전 러시아에 일념쯤 체류하던 시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책은 다 러시아어 책들이고, 들고 간 몇 권의 한국어 책마저 거덜 난 이후엔 외지에서 한국음식이 그리운 것처럼 한국어 책이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비유컨대, 언제든 처형당할 준비가 돼 있었지만 단두대가 없었다고나 할까. 이런 시는 어떤가?  

나의 목을 단 일 초의 간격도 두지 않고 내려칠 수 있는  
튼튼한 단두대의 칼날을 얻기 위해
여기까지 오다 

스무 살에 적은 시의 첫 대목인데, 혹 ‘내 인생의 책’ 같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준 책이 있다면, 그건 ‘단두대의 칼날’ 같은 책이어야 하리라. 하지만, 러시아에서는 굳이 어려운 자격이 필요하지 않았다. 한국어로만 돼 있으면 ‘단두대의 칼날’ 비슷한 것으로 용인될 수 있었다. 굳이 ‘내 인생의 책’까지 갈 것도 없었다는 말이다. 그냥 한국어 책이라면 감사할 일이었다. 마치 서울에서 가져온 라면에 김치를 넣어먹을 때처럼. 그때 겪은 일 한 가지가 생각난다.

"책은 인류가 산출해낸 가장 위대한 정신들의 거처이자 가장 아름다운 양식들의 창고”라고 중얼거리며 매일같이 모스크바의 여러 서점에 들러 우리보다는 다소 저렴한 러시아 책들을 구경하고 수집하는 일을 반복하던 때였다. 사르트르 탄생 100주년을 앞두던 차여서 어느 날은 새로 출간된 <존재와 무>를 반갑게 손에 들기도 했다. 두 종의 한국어본에다 영어본, 그리고 러시아어본까지 갖추는 걸 나대로는 컬렉터의 ‘센스’라고 부른다. 정작 책을 완독해보진 못했으면서도 말이다. 그런 걸 책에 대한 ‘페티시즘’이라고 미심쩍게 바라본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사르트르의 데뷔작이자 아마도 가장 유명한 대표작은 <구토>일 것이다. 단편집 <벽>, 대작 <자유의 길>과 함께 사르트르 소설의 트로이카를 구성하는 작품이다. 그가 <구토>를 쓴 건 최소한 31세(1936년) 이전이지만 처음엔 갈리마르출판사로부터 출판을 거부당하는 바람에 1938년에서야 출간된다. 그래도 33세 때의 일이다. 고등학교 때 그의 단편집을 읽고 또 대학에 와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같은 책들을 탐독한 이후로 작가이자 철학자로서 사르트르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래서 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많이 읽고 많이 떠들어대기도 했지만, 특이하게도 <구토>만큼은 읽지 않았다. 헤세의 <데미안>처럼 몇 번 읽다가 그만 두는 식이었다. 그건 소설에서 주인공 로캉탱이 롤르봉에 대한 연구를 포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계산이었고, <구토>는 굳이 다 읽지 않아도 이해되는 소설이라는 논리였다.  

<문학이란 무엇인가>에서 사르트르 자신이 주장하는 바이지만, 산문은 앙가주망의 장르이며 분명한 ‘메시지’를 갖고 있다. 그러니까 그의 소설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이 제시한 6가지 언어 기능 중에서 ‘시적 기능’이 아니라 ‘지시적 기능’이다(물론 사르트르가 이 작품을 헌정한 보부아르와의 관계에서는 ‘친교적 기능’이 지배적이겠지만). 메시지의 언어적 구성 자체에 주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시하는 상황에 주목하도록 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산문이고 산문의 임무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달’만 보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가리키는 ‘손가락’(언어)은 볼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안면이 있는 한국인 가정에 들렀을 때 서가에 한국어로 된 <구토>가 꽂혀 있는 걸 보고 며칠 빌려보겠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초반 몇 페이지를 다시 읽어보았다. 한국에서 많이 읽히는 판본은 아니었지만, 번역서는 갈리마르와 정식으로 판권계약을 맺고 1999년에 초판이 나온 것이었다. 다른 출판사들에서 나온 <구토>의 판권은 어떻게 되는 것인지 일단 궁금했지만, 내가 관여할 바는 아니었다. 또 정식 판권계약을 맺고 나온 책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신뢰할 만한 번역서가 되는 것도 물론 아니고. 러시아어본과 대조해보니 유감스럽게도 번역서에는 셀린느로부터 따온 제사와 보부아르에게 바친다는 헌사부터가 빠져 있었다. 객지에서 같은 한국인을 만날 때 보통 ‘반갑거나 불편하거나’인데, 책은 후자 쪽으로 급격하게 기울었다. 초장부터 역자나 출판사나 몰상식하다는 걸 알게 된 이상 사시(斜視)로 책을 읽게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다. 

아니나 다를까, 곧 사단(事端)이 벌어지고 만다. 드 롤르봉 후작의 행적과 관련한 대목들에서 번역서는 줄곧 ‘표트르 1세’(표트르 대제)를 들먹이고 있는데(가령, “그는 러시아에 모습을 나타내고 표트르 1세의 암살 사건에 약간 가담했다” 등), 1750년생인 롤르봉이 1725년에 죽은 표트르 대제(1672-1725)의 암살 사건에 어떻게 가담할 수 있는가? 더군다나 표트르 대제는 암살된 게 아니고 나름대로 장수하다가 죽었는데 말이다! 다시 러시아어본을 확인해보니, ‘파벨 1세’를 ‘표트르 1세’로 오역한 것이다. 파벨 1세는 예카테리나 2세의 아들로 1796년 제위에 오르지만 1801년에 암살당하며 그의 뒤를 잇는 이가 아들 ‘알렉산드르 1세’(재위 1801-1825)이다. 참고로, 1812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게 되는 알렉산드르 1세의 별명은 ‘스핑크스’였다. 내심을 알 수 없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사실 파벨 1세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는 룸메이트가 갖고 있던 <이야기 러시아사>를 참고한 것인데, 이 한국어 책은 러시아 인명들을 줄곧 영어식으로 표기한데다가 ‘파벨1세’를 ‘바벨1세’로 오기하고 있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고 책들이 하나같이 그 모양이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롤르봉이 표트르 1세의 암살에 참가했는가 안했는가? 그것은 오늘의 문제다. 나는 여기까지는 처리해 왔으나 그것을 결정하지 않고서는 더 계속할 수가 없다.”는 대목에 이르면, 이걸 계속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결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나는 아쉽지만 책을 덮었다. 그만한 사실 확인이나 상식 없이 작품을 번역한 역자라면 주인공 로캉탱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건지 별로 관심이 없다는 얘기인데, 그런 그에게서 로캉탱 얘기를 듣는다는 것은 로캉탱에 대해서도 예의가 아닐 것이다.  



결과적으로 나는 또 한 번 <구토>를 다 읽지 않았다. 아니 읽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설의 테마는 이미 읽었다. 시작부터 등장하니까. 시작부터 등장하는 건 ‘잉크병’에 대한 명상이다. “이제 생각이 난다. 지난날 내가 바닷가에서 그 조약돌을 손에 들고 있었을 때 느꼈던 것이 뚜렷하게 생각난다. 그것은 시크무레한 일종의 구토증이었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던가! 그런데 그것은 그 조약돌 탓이었다. 확실하다. 그것은 조약돌에서 손아귀로 옮겨졌었다. 그렇다. 그것이다. 바로 그것이다. 손아귀에 담긴 일종의 구토증.”

이런 구토증이야말로 작품의 주제이자 핵심이 아니던가! 내게 로캉탱에게 구토를 불러일으키는 조약돌에 해당하는 건 ‘엉터리 책’이다. 그 얼마나 불쾌한 것인가! 그런 책들은 독자를 화려한 ‘정신의 맨션’으로 안내하는 것이 아니라 ‘맨땅에 헤딩’하게 만든다. 하여 “책은 인류가 산출해낸 가장 위대한 정신들의 거처이자 가장 아름다운 양식들의 창고”라고 한 발언은 사실이 아닌 당위에 대한 진술이다. 즉 모든 책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책이라면 모름지기 그러해야 한다는 취지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환기하고자 한 글이 읽지 않은 책에 대한 푸념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책에 대한 뒷담화도 결국은 책 얘기다. 읽지 않고도 이렇게 떠들어댈 수 있으니 정작 읽고 나면 얼마나 할 말이 많겠는가. 거의 목을 매달고 싶은 지경에 이르지 않을까. 하여 부러운 것은 책읽기가 ‘옵션’인 사람들의 여유로운 시간이다. 책만 읽기에도 인생은 너무 짧다. 자자손손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책들이 아닌가. 앞에서 적은 시의 나머지 두 연을 마저 옮긴다. 

생명은 진실한 고백
하여 나의 머리카락 한 올에서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당신을 향한 나의 순수 

절대를 지키는 스핑크스의 비애로
하여 나는 튼튼한 단두대의 칼날을 얻기 위해
여기까지 오다
 

거창하게 생각할 것 없이, 이런 시는 고등학교 때 카뮈와 사르트르를 읽은 ‘후유증’이라 할 만하다. 그리하여 스무 살이 됐을 때, ‘존재’ ‘무’ ‘부조리’ ‘구토’ ‘실존’ ‘책임’ 같은 유행어가 치어들처럼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나는 한참동안 ‘자유’니 ‘의미’니 하는 문제와 씨름했던 듯싶다. 그렇게 책은 사람을 마음을 움직이고,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직업을 갖겠다는 생각은 뒷전으로 하고 내가 문학을 전공으로 택한 것도 어쩌면 ‘책’을 너무 읽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마냥 좋기만 하겠는가. 삶이 때로 싫증나는 것처럼 책도 물릴 때가 있다. 등짝을 발로 차주고 싶을 때가 왜 없겠는가.   

하지만 돌이켜보면 가장 두려웠을 때는 책에 짓눌려 있을 때가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없을 때였다.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읽어도 머릿속에 한 글자도 남지 않을 때였다. 책장을 갉아먹고 사는 책벌레에게 책이 맛없어질 때보다 더 끔찍한 순간은 없지 않겠는가. 그럴 때마다 나는 ‘단두대’를 향한 나의 자세를 상기한다. 신은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지만, 유감스럽게도 그것은 책을 읽을 자유였다. 그리고 분명 책은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나는 가끔 책이 인간보다 위대해 보인다.   

10. 0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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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0-03-11 02: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곤 역 <구토>에도 표트르 1세로 되어 있는 걸 보면, 그 정식 계약본은 아마도 방곤 번역본을 표절한 모양입니다... 물론 이 책에도 제사와 헌사가 빠져있습니다. 언젠가 영미명작 번역본들에도 표절의 문제가 제기된 바 있는데 프랑스 명작에도 비슷한 사례들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로쟈 2010-03-11 08:47   좋아요 0 | URL
<구토>에 대해선 5월에 강의가 있는데, 그때 자세히 검토해봐야겠어요...

비로그인 2010-03-12 10:43   좋아요 0 | URL
'로쟈의 인문학서재' 읽다가 사르트르도 다시 보고 있었어요.. 철학쪽 책은 혼자 읽어나가기가 좀 어려운데.. 문학작품은 선생님 강의를 따라가며 읽다보니 더 수월하고 재미있어요..

5월 강의가 구토라니 급! 흥분하게 됩니다.
어디서 하시는 거예요? 못봤는데...

2010-03-12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3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4 0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1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가진 방곤 번역본(삼중당 문고)에는 폴1세로 나와 있군요.파벨의 프랑스어 표기법인 것 같습니다.

푸른바다 2010-03-11 23:15   좋아요 0 | URL
제가 가진 판본은 중앙문화사에서 사르트르의 <구토/더러운 손>과 카뮈의 <이방인>을 실버세계문학전집 15번째 권으로 묶어 낸 판본입니다. 1988년 간행된 초판입니다. 방곤 교수의 <구토> 초역이 언제인지 모르겠군요. 삼중당 본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군요^^ 전 사르트르의 글들을 주로 방곤 교수의 번역으로 접했습니다. 방곤 교수가 번역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뒤에 사르트르와 카뮈 간의 논쟁 글들이 실려있는데 최근에 나온 <시대의 초상>에 새로 번역되어 있는 사르트르의 글과 비교해본 결과 방곤 교수의 번역이 문제가 많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2 17:23   좋아요 0 | URL
75년 초판,85년 중판 세로줄이군요.헌책방에서 300원인가 주고 10년전 무렵에 산 겁니다.

푸른바다 2010-03-12 21:28   좋아요 0 | URL
10년 전에 300원 주고 산 책이라는 것을 기억하시다니 놀라운 기억력입니다^^
 

이번달 예술의전당 소식지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안톤 체홉의 삶과 문학에 대한 짧은 소개글이다(예술의 전당은 '체호프' 대신에 '체홉'이란 표기를 쓴다). 예술의전당에서는 오는 5월 러시아의 연출가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를 초청하여 국내 배우/스태프와 함께 <벚꽃동산>을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체홉에 관한 기사는 그런 계기로 마련된 것이고, 이후에 작품 <벚꽃동산>과 연출가에 대한 글이 이어질 예정이다. 내가 맡은 건 아니고 이 작가 소개도 필자의 사정으로 '대타'로 쓴 것이다.  

  

예술의전당(10년 3월호) 체홉의 삶과 문학 - 소외된 삶들의 진실을 담아내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은 1860년 러시아의 조그만 항구도시 타간로그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는 농노 출신이었지만 장사를 통해 부를 축적했고, 아버지도 잡화상을 운영했다. 하지만 가게가 파산하자 가족은 모스크바로 이주하게 되고 막내인 체홉은 고학으로 중학교를 마친 후 모스크바대학 의학부에 입학한다. 이후 체홉은 의대에 다니면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유머 잡지들에 글을 기고하기 시작한다. 이때 쓴 콩트와 단편들로 그는 인기를 끌었고, 안토샤 체혼테 등의 필명으로 400여 편 이상의 작품을 쓴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그는 개업을 하는 대신에 문학에 전력을 기울였다.    

단편작가로 확고한 명성을 얻던 1890년 체호프는 사할린 섬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시베리아철도가 개설되기 이전이라 마차로 시베리아를 횡단해야 하는 힘든 여정이었다. 그는 4월에 길을 떠나 7월에 사할린 섬에 도착하고 3개월간 체류하면서 당시 유형지였던 사할린 섬의 실태를 조사하고 주민들과 일일이 만나 면접카드를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때 작성한 카드만 8,000장 이상이었다. 바닷길을 통해 다시 모스크바에 돌아온 것이 그해 12월이었고, 이후 그는 <시베리아 여행>이란 기행문과 <사할린 섬>이라는 객관적인 인류학적 보고서를 발표한다. 이 보고서는 하루키의 소설 <1Q84>에서도 언급된다.  

문학사가들은 이 여행을 통해서 사회적 현실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더욱 넓어지고 깊어진 것으로 평가한다. 그의 작품에서 ‘코믹’과 ‘우수’는 여전했지만, 그것은 저울에 추를 단 것처럼 다소 무거워진 형태였다. 한 시골 자선병원 의사가 자신의 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차에 정신병동에서 유일하게 총명한 청년을 만나 자주 대화를 나누다가 미친 걸로 간주돼 감금되고 결국은 맞아 죽은 이야기를 그린 <6호실>. 자신을 외부로부터 끊임없이 보호방어하기 위해 애쓰다가 결국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허무한 죽음을 맞은 시골학교 교사를 그린 <상자 속의 사나이> 등이 그 예다.   

단편소설을 꾸준히 발표했지만, 정작 체홉이 좋아하고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쪽은 희곡이었다. 이미 1886년에 첫 완성희곡인 <이바노프>를 썼지만,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와 낙담의 시기를 거치게 되었고, 그가 극작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은 <갈매기>(1895)부터이다. 초연에는 실패했지만 <갈매기>는 스타니슬라프스키와 네미로비치 단첸코가 세운 모스크바예술극장에서 재공연되어 대성공을 거둔다. 새롭게 힘을 얻는 체홉은 이후에 <바냐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 등의 걸작을 연이어 발표하고 모스크바예술극장의 무대에 올리게 된다. 이 작품들에 대해선 특히 영국의 비평가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보여 체홉은는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극작가’란 찬사를 얻는다.   

흔히 체홉의 드라마에는 주제도 플롯도 사건도 없다고 한다. 그것은 주로 작품의 중심에 놓인 주제가 ‘잘난 사람들’의 이념이나 행동이 아니라 ‘못난 사람들’의 무능력과 불가피한 회한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콩트에서 시작하여 단편과 중편을 썼지만 체홉이 장편소설로까지 자신의 집필을 발전시키지 않은 것은 장편을 지탱할 만한 이념이나 행동을 인물들에게 부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 같은 ‘설교적인’ 작가가 아니었다. 단지 세상을 관찰하고 그가 보고 느낀 것을 정확하게 기록하고자 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체홉이 쓴 드라마들이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드라마’라는 건 전혀 이상하지 않다. 그의 주인공들은 모험에 나설 만한 용기도, 여자를 꼬여낼 만한 재간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렇다고 사색가나 사상가도 아니다. 대학교수인 처남을 숭배하면서 25년간 뒷바라지를 하느라 ‘도스토예프스키’(잘난 소설가)도 ‘쇼펜하우어’(잘난 철학자)도 되지 못한 ‘바냐 아저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체홉의 인물들은 주로 삶의 결정적인 기회들을 두 눈 다 뜨고 놓쳐버린 가련한 ‘등신들’이다. 그걸 확인한 이상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면 ‘비극적’일 테지만, 이들은 다시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무런 희망 없이 담담한 회한만을 가슴에 안은 채 예전의 일상적 삶으로 되돌아간다. 그러한 인물들이 체홉이 남긴 전 작품 속에 무려 2,355명이나 등장한다. ‘러시아 전체’나 다름없는 인물 군상이다. 그러므로 작품이나 무대를 통해서 체홉을 읽고 감상하는 것은 주인공들의 나약함과 회한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결핵을 지병으로 앓던 체홉은 1904년 6월에 의사의 권유에 따라 독일의 바덴바일러로 연극배우인 아내 올가 크니페르와 함께 요양을 떠났다. 건강이 약간 호전되는 듯했지만, 7월 2일 새벽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세상을 떠났다. 샴페인을 마시고 싶다는 것이 그의 마지막 유언이었다.  

10. 03. 10. 

P.S. 한편, 본문에는 편집자의 자잘한 손길이 묻어있는데, '잘난 놈들' '못난 놈들'이 '잘난 사람들' '못난 사람들'로 교정된 식이다. 서두의 한 문단은 아마도 분량상 편집됐는데, 하루키와 레이몬드 카버, 그리고 체홉의 커넥션을 다룬 대목이었다.  

일본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좋아하는 작가에 미국의 단편작가 레이몬드 카버가 있다. 하루키는 카버의 단편전집을 일본어로 직접 옮기고 작품해설까지 붙였다. 바로 그 카버가 “가장 위대한 단편소설 작가”라고 경탄한 이가 있으니 바로 러시아 작가 안톤 체홉이다. 그 자신이 ‘아메리칸 체홉’이라고 불리기도 했던 카버는 체홉을 자신의 모델로 삼았고, 문학적 유언이라 할 마지막 단편소설 <심부름>에는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기까지 했다. 신병 치료차 독일의 한 휴양도시에 갔다가 숨을 거두게 되는 체홉의 임종 장면을 다룬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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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바다 2010-03-10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에 올려주신 삭제된 서두의 한 문단 중 무라카미 하루키'를'은 무라카미 하루키'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첫번째 문단 "가족은 모스크바로 이주하게 되고 막내인 체호프는"에서 '체호프'는 '체홉'으로 해야 일관성이 있지 않을까요?^^

로쟈 2010-03-10 08:28   좋아요 0 | URL
퇴고도 못하고 보낸 원고라 티가 나네요.^^;

푸른바다 2010-03-10 08:58   좋아요 0 | URL
편집자에게도 일을 주셔야죠^^ 안톤 체홉은 이름 외에는 잘 모르는 작가였는데, 그의 단편집과 희곡들을 최근 구매했고 앞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가능하면 연극도 관람하고 싶네요. 지난번 바냐 아저씨 공연에 가려고 계획을 세웠다가 갑자기 생긴 다른 일 때문에 결국은 못하고 말았네요^^

로쟈 2010-03-11 08:47   좋아요 0 | URL
이제부터 아셔도 충분합니다. 시간은 많으니까요.^^

2010-03-12 16: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2 21: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2 16: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2 21: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민음사의 세계문학판으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가 번역돼 나왔다. 소설가이기도 한 김연경 역, <지하로부터의 수기>(민음사, 2010). 개인적으론 <지하생활자의 수기>란 제목을 더 좋아하지만, 열린책들의 전집판 이후로 <지하로부터의 수기>가 대세인 모양이다. 딱히 그렇게 '직역'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자유로부터의 도피'와 비슷한 듯하면서도 사정이 다르다). 참고로 일어본의 제목은 <지하생활자의 수기> 혹은 <지하실의 수기>, 중국어본 제목은 <지하실수기>이다. 어차피 강의 때문에 이번 학기에도 4월말쯤에는 읽어야 하는 작품이지만, 미리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원작과는 무관해 보이는 이미지이지만, 가장 폼나는 표지는 아래의 펭귄 레드 클래식판이다...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2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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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조혜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9년 1월
9,000원 → 8,100원(10%할인) / 마일리지 4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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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로부터의 수기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계동준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9,800원 → 8,820원(10%할인) / 마일리지 4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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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생활자의 수기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이동현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12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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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03월 08일에 저장



9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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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09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1 08: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델러웨이부인 2010-03-09 01:34   좋아요 0 | URL
정말 폼나는 표지네요.

로쟈 2010-03-11 08:48   좋아요 0 | URL
그렇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