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켄슈타인' 다시 읽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글을 옮겨놓고 나니까 지젝의 <잃어버린 대의를 옹호하며>(그린비, 2009)에서 <프랑켄슈타인>을 다룬 부분이 생각나 마저 읽었다. 책의 2장 '이데올로기의 가족신화'의 한 절이 <프랑켄슈타인>을 다루고 있는데, '프랑켄슈타인의 역사와 가족'이 그 타이틀이다. 원문은 'History and family in Frankenstein', 그러니까 '<프랑켄슈타인>에 나타난 역사와 가족' 정도로 이해하는 게 좋겠다. 질 메네갈도가 편집한 논문모음집 <프랑켄슈타인>(이룸, 2004)에 더 집어넣고 싶을 정도로 역시나 명쾌하고 자극적이다.  

  

지젝은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표준적인 맑스주의적 비판(비평)을 재검토한다. 그 비판의 요지는 이 작품이 "진정한 역사적 지시대상을 지우기(혹은 억압하기) 위해 불투명한 가족-섹슈얼리티 네트워크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다. 즉, 역사는 가족 드라마로 외현화되고, 보다 큰 사회-역사적 경향(혁명적 테러의 '괴물성'으로부터 과학기술 혁명의 충격을 향한 경향)은 빅터 프랑켄슈타인이 아버지, 약혼자, 괴물 자식과 겪는 갈등으로 왜곡되면서 반영/상연된다는 것이다."(115-6쪽) 

그러니까 이 작품의 진짜 지시대상은 '역사'이지만, 저자는 그것을 '가족 드라마'로 바꿔치기했다는 것. 이때 역사는 프랑스 혁명 이후의 흐름을 가리키는 "보다 큰 사회-역사적 경향"이다. 이 경향의 내용은 원문이 "larger socio-historical trends(from the 'monstrosity' of revolutionary terror to the impact of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revolution)"이므로 "'혁명적 테러의 '괴물성'으로부터 과학기술 혁명의 충격을 향한 경향'이라고 옮긴 건 부정확하다. 여기서 'from A to B'는 '-로부터 -를 향한'이 아니라 '-에서 -까지'라는 종류를 가리키기 때문이다('trends'가 복수형이니까). 고쳐 말하면, "혁명적 테러라는 '괴물'에서 과학기술 혁명이 가져온 충격까지 당대의 보다 넓은 사회역사적 흐름"이 <프랑켄슈타인>의 원 지시대상이다. 

'표준적인 비판'이란 단서에서 알 수 있지만, <프랑켄슈타인>이 프랑스 혁명이 낳은 혼란(괴물로서의 무질서)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것이다(프랑스혁명에 대한 에드먼드 버크의 주된 시각이기도 하다). 한데, 지젝의 독해에서 내가 배운 것은 이것을 콜리지(코울리지)의 상상력론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는 점. 콜리지는 상상(imagination)과 공상(fancy)을 구분하는데, 그에 따르면 "상상력은 유기적이고 조화로운 신체를 발생시키는 창조적 힘인 반면에 공상은 서로 어긋나는 파편들의 기계적 조합을 표현한다." 따라서 "공상의 생산물은 아무런 조화로운 통일성도 없는 괴물 같은 조합"이며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이야말로 이러한 공상의 산물이다. 그리고 이 '괴물 이야기'로서의 <프랑켄슈타인>에는 괴물성이란 주제가 다양한 차원에서 관통하고 있다.   

(1)첫번째 차원에서 빅터에 의해 생명을 부여받은 괴물은 조화로운 유기체가 아니라 부분 기관들의 기계적 구성물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빅터는 시체 조각들을 짜깁한 후 전기충격을 가해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낸다.    

(2)다음 차원은 소설의 사회적 배경으로, 사회의 괴물적 해체는 사회적 불안과 혁명으로 나타난다. 괴물성의 출현과 함께 조화로운 전통사회는 산업화된 사회로 바뀐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이기적 인간관계에 따라 기계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개인들로 해체되어, 보다 큰 단위의 '전체'를 느끼지 못할뿐더러 가끔씩 폭력적 반란에도 참여한다. 근대 사회는 압제와 무정부 상태를 왔다갔다 한다. 근대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유일한 통일성은 난폭한 권력에 의해 강제된 인공적인 통일성이다. 

즉 사회적 차원에서 근대 사회는 '공상의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다. 한편 이 대목에서 '괴물성의 출현과 함께'라고 옮긴 건 착오인데, 'with the advent of modernity'를 잘못 본 것이다. '근대의 도래와 함께"라고 교정되어야 한다.   

(3)마지막 층위로, 이질적인 파편들과 서사 양식들과 성분들로 구성된, 흉물스런 괴물처럼 비일관적인 소설 자체가 있다.  

즉, <프랑켄슈타인>이란 소설 자체가 이런저런 파편들을 짜깁한 듯한 '공상'의 산물이라는 것. 사실 작품을 읽은 독자라면 <프랑켄슈타인>이 문제적인 작품이긴 하지만 걸작이라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는 걸 느낄 것이다. 어느 연구서에선가는 "영문학사에서 가장 문제적인 B급 소설"이라고 평해놓았다.  

지젝은 이 이 세 가지에다가, 소설에 의해 환기된 해석의 차원을 네번째 괴물성의 차원으로 추가한다. "괴물이 의미하는 것, 괴물이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사회적 혁명의 괴물성, 아버지에 항거하는 아들의 괴물성, 근대 산업의 괴물성, 비성애적 재생산의 괴물성, 과학 지식의 괴물성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지 않고 단지 나란히 병치되는 복수의 의미를 갖게 된다. 즉, 괴물성의 해석은 해석의 괴물성(공상)으로 귀결된다."(117쪽) 다시 말해서, 이 작품에 대한 유기적이면서 정합적인 해석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  

다시 반복하자면,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진정한 초점을 다루지 않았다. 대신 그것을 탈정치화된 가족 드라마 내지 가족 신화로 표현했다." 이미 에드먼드 버크 같은 당대의 보수주의 논객은 프랑스의 혁명 체제를 '집단적인 부친 살해 괴물'이라고 경고했고, 이러한 "혁명의 여파 속에서 메리 셸리는 혁명과 아버지 살해의 상징적 등가를 홈드라마로 축소시켰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축소'의 불가피성이다. "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왜 자신의 진정한 역사적 지시대상을 모호하게 표현해야 했을까?" 

지젝의 대답은 이렇다: "왜냐하면 그 진정한 초점/주제(프랑스 혁명)와의 관련성 자체가 참으로 모호하고 모순적이기 때문에, 가족 신화의 형식 자체가 이런 모순을 중화시켜서 한 가지 이야기 속에 양립 불가능한 관점들을 동시에 환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레비-스트로스적 의미에서의 신화, 즉 실재적 모순의 상상적 해소이다."(119-20쪽) 더불어, 이러한 해소는 <프랑켄슈타인>의 다양한 변주(영화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보리스 카를로프(칼로프)가 괴물을 연기한 가장 유명한 프랑켄슈타인 영화인 제임스 웨일 감독(번역엔 '제임스 웨일즈'로 오기됐다)의 <프랑켄슈타인>(1931)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이지만, 영화화된 <프랑켄슈타인>은 대개 원작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제거했다. '주체화된 괴물'이란 특징이다. 혁명을 괴물로 상징화하는 것, 곧 '혁명의 괴물성'이란 모티브는 전형적으로 보수주의적인 요소이지만,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은 그런 보수주의로만 규정되지 않는다. 이 작품에선 괴물이 직접 말을 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관점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자유주의적 태도이다."  

자신의 창조주이자 아버지인 프랑켄슈타인에게 괴물은 무어라 말하는가? "괴물은 우리에게 자신의 반역과 살인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학습된 것이라고 말한다. 버크처럼 괴물을 악의 화신으로 보는 것과 달리 이 피조물은 프랑켄슈타인에게 "나는 자비롭고 선하게 태어났습니다. 불행이 나를 악마로 만들었습니다"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괴물은 철학자의 말로 항변한다. 그는 전통적인 공화주의자의 논리로 자신의 행위를 변호한다."(122쪽) 

지젝은 괴물의 이러한 형상화를 작가가 어머니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게 받은 영향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울스턴크래프트는 <프랑스 혁명의 기원과 과정에 대한 역사적이고 도덕적인 관점>(1794)이란 저작에서 버크 류의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모반(혁명)의 괴물성에는 동의하지만 동시에 이 괴물들이 사회적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즉 그들은 구체제의 압제와 실정과 독재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메리 셸리가 직면했던 모순은 '압제와 무정부' 사이의 모순이었다. "질식할 것처럼 압제적인 집과 그걸 파괴하려는 시도의 살인적 결과 사이의 모순". 지젝의 결론은 이렇다. "그녀는 이 모순을 해소할 수도 없었으며 정면으로 응시할 의지도 없었다. 그녀는 오직 그것을 가족 신화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이다." 

09. 09. 13.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9-09-14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4 13:14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