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대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괌은 계속 비. 아침에 제법 내리던 비가 조금 잦아들고 있는데 대략 세 시간 간격으로 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는 모양이다. 이곳 우기의 전형적인 날씨 패턴인듯(오래전 기억에 모스크바의 봄날씨가 그랬다. 봄비가 자주 내렸다가 그첬다가). 날씨와 현지사정으로 미리 계획한(내가 계획한 건 아니고) 일정을 계속 변경하고 있는데, 오늘의 일정은 수영이라고 한다. 딱히 내키는 일은 아니어서 나는 먼저 책을 보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오늘 읽을 책이 나보코프의 <창백한 불꽃>이다. 강의준비차 다시 읽는 것인데, 사실 나보코프의 소설들 가운데 여러번 읽기에 가장 적합한 작품이기도 하다. 시와 주석을 왔다갔다하는 과정이 독서의 경로라면 이론적으로는 무한에 가까운 경로의 독서가 가능한 것이 <창백한 불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그 독서가 장소의존성을 갖는 것은 아니어서 한국에서 읽는 것과 괌에서 읽는 것이 차이날 이유는 없다. 시칠리아에서 읽는 것과 뉴욕에서 읽는 일이 별차이가 없을 것처럼.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는 것과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날이 개는 중이다. 괌의 와이키키로 불린다는 투몬비치의 전경을 내려다보면서 눈길을 침대 하얀 시트 위에 놓인 <창백한 불꽃>으로 돌린다. 이제 보니 지난봄(4월초)에 강연회를 갖기도 했다. 4개월 만에 다시 손에 드는 셈인데 장소가 괌일 줄이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저녁 시간을 앞두고 호텔 로비에서 잠시 ‘놔두고 온 책들‘을 생각한다. 들고 온 책은 방에 두고 나왔기에 자투리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이 이런 페이퍼를 적는 정도. 햇볕이 나도 30도가 안 되는 날씨인데 비까지 수시로 내리고 있어서 괌은 서늘한 편이다. 호텔도 아주 북적이는 건 아니어서 로비의 쿠션에서 편안한 자세로 적는다. 좀 딱딱한 책들에 대해서?

문학강의에 치여서 지내는 터라 철학책을 좀처럼 읽을 시간이 없는데 지난 상반기에도 많은 책을 그냥 만져보기만 했다. 당장 생각나는 것이 <알튀세르의 정치철학 강의>(후마니타스)와 <랑시에르의 교훈>(그린비) 같은 책들이다. 알튀세르의 강의는 아마 마키아벨리를 읽은 뒤에 읽겠다고 보류해둔 것 같다. 마키아벨리의 책들도 꽤 쌓여 있는데다가 최근에도 몇 권이 추가되었다. 이러다가는 제논의 역설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계속 중간에 끼여드는 책이 많아서 끝내 목포한 책은 읽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는. 파스칼 질로의 <알튀세르와 정신분석>(그린비)은 최원의 <라캉 또는 알튀세르>(난장)와 같이 읽어봄직하다.

새뮤얼 챔버스의 <랑시에르의 교훈>은 랑시에르 입문격으로 적당할 듯싶지만 아직 확인해보지 못했다. 적당한 책을 강의에서 다룬다면 읽어치울 수 있을 터인데, 그런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 당장은 마키아벨리부터 읽을 책들을 가려놓아야겠다. 하지만 언제?..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wingles 2019-08-03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주 강의하시는 곳에서 철학강의 프로그램 개설을 요청할순 없을까요? 대학때 읽고 한번도 안 들춰본 알튀세르, 그람시, 더 나가서 포스트모더니즘 철학자들.. 읽어보고 싶네요^^

로쟈 2019-08-04 07:15   좋아요 0 | URL
가끔 진행하기는합니다. 상반기의 지그문트 바우만 읽기처럼. 본격적으로 히기는어렵고요.~
 

괌에서 고작 하루를 보냈을 뿐인데 일주일은 머문 것 같은 느낌이다. 여러 차례 문학기행의 부수효과로 여행이 또다른 일상이 되었고 몸의 적응도 빨라진 때문이다. 괌은 우기여서 오전엔 해가 나고 오후에는 비가 오는 날씨다. 장대비가 내리는 건 아니지만 오늘은 한국의 장마 같은 비가 내리고 있다. 섭씨 28도.

괌은 식당 모든 메뉴에 한글이 병기되어 있을 정도로 한국 관광객이 많이 찾는 듯싶다(호텔에도 일어와 한국어 안내가 있고 중국어는 아직 없다). 실제로 호텔에서건 식당에서건 공연장에서건 한국어를 자주 들을 수 있다. 온라인상에 여행자들의 후기가 많이 올리와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괌에 대한 사전지식이 전혀 없었는데, 제주도의 1/4 크기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필히 가봐야 하는 곳이 없다는 점도. 관굉지인 만큼 물가는 한국보다 약간 비싼 편이다. 1.5배 정도일까(그래도 한국의 휴가철 바가지 물가보다는 나을지도).

괌에 대한 책은 한권도 들고 오지 않았는데 아이가 <인조이 괌>을 대출해왔다. 아직 들여다보지 않았는데 돌아가기 전에 보게 될지 모르겠다. 다스 늦은 점심을 먹고 산책중이다. 잠시 비가 그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예정된 시각에 괌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심사대에 늘어선 줄이 상당히 길어서(2004년 러시아 입국시 다음으로 길다) 통과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듯하다(그래도 심사게이트가 많아서, 과거 2시간이나 걸렸던 러시아와는 비교할 수 없다. 30분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다). 그 시간에 따로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집에 두고온 책에 대해 적는다. 탄생 200주년 기념판으로 새 번역본이 나온 멜빌의 <모비딕>. 일러스트와 그래픽노블판까지 한꺼번에 나왔다!

그 사이에 심사대를 통과하여 수하물을 기다리는중이다(이곳에서는 양손 지문과 안면 사진도 찍는군). 다시 <모비딕>으로 돌아오면 이번 번역은 황유원 시인의 번역이다. 밥 딜런 시전집의 공역자로 기억하고 있는데 대작 번역은 의외다. 그간에 강의에서는 김석희 선생의 번역본을 주로 이용했는데, 다른 선택지도 생긴 셈(그밖에 열린책들판이 있다). 더 바란다면 멜빌 평전도 나옴직하다. 그리고 중단편집도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언젠가 적었는데 1819년생 작가로 멜빌과 마찬가지로 올해 탄생 200주년을 맞은 작가로는 조지 엘리엇(영국)과 테오도어 폰타네(독일)가 있다. 분위기상으로는 이들 작가를 기념할 만한 책은 나올 것 같지 않다. 하기야 대표작들은 번역돼 있는 만큼(<미들마치>가 무지막지한 두께로 나온 건 한번 더 아쉽다) 크게 손해본 느낌은 아니다. 그래도 뭔가 나온다면 따로 적기는 하겠다. 이제 공항에서 호텔로 이동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5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isi 2019-08-02 2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가 가셨나봐요~ 25년전 신혼여행지였는데... 모비딕은 없을것같네요. 돌고래투어는 있을듯...즐건 여행되세요.언제나 응원합니다~

로쟈 2019-08-03 0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5년전이면 좀 달라졌을 듯하네요.~
 

공항 게이트에서 대기하며 한가하게 커피를 마시는 중이다. 보통 주문하던 아메리카노 대신에 ‘바리스타 초이스‘를 선택했더니 훨씬 맛이 좋아 만족해하면서(가격차이가 200원이다). 괌에서는 괌커피를 마시는 건가.

수년 전에 발리에 갔을 때도 기억나는 식사는 아침 뷔페에 나오는(즉석요리) 오믈렛과 발리커피였다(신맛이 많은 편이었다). 책을 읽을 수 없는 곳에서 기억거리가 되는 건 그런 소소한 것들이고 커피도 거기에 속한다. 아마 발리에서 읽은 책은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였다. 이번 여행에는 요즘 강의하는 코맥 매카시의 책과 나보코프의 책을 넣어왔다. 미국 작가 시절의 나보코프이므로 모두 미국문학에 속한다. 미국에 가서는 미국문학을.

코맥 매카시의 <로드>(2006)를 어제 강의에서 다시 읽으며 확인해보니 매카시의 신작이 아직 나오지 않았다. 1933년생이므로 현재 86세다. 과연 예고된 신작이 나올 수 있는 건지 궁금하고 만약 출간된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록이 될 만하다. <로드>가 열번째 소설이므로 열한번째 소설이 될 터이다. 한데 종말 이후의 묵시록적 풍경을 보여준 <로드> 이후에는 어떤 소설이 가능한 것일까. 그건 그것대로 또 궁금한 부분이다.

이제 보딩 타임이다(지연중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wo0sun 2019-08-0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방구석 휴가에 국경3부작을 읽으려합니다.
강의도 듣고 있으니.
휴가 잘 다녀오시길~

로쟈 2019-08-02 15:42   좋아요 0 | URL
네.~

blanca 2019-08-02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행 전의 설렘이 느껴지네요. 강의하시는 책과 함께 하는 여행이라니 부럽습니다. 즐거운 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쟈 2019-08-02 15:43   좋아요 0 | URL
설렘까지는 아닌데 일단 일상의 리듬이 아니어서 좋습니다.~

Cinema Paradiso 2019-08-02 13: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교하도서관에서 선생님 강연 듣고 있습니다. 모든 강의가 다 좋았는데. 특히 어제 카프카 강연은 평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로쟈 2019-08-02 15:44   좋아요 0 | URL
카프카에 관심이 있으셨던 듯.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