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여행의 마지막날이 밝았다. 오전일정으로 바티칸 투어를 준비하고 있는데 오후에 콜로세움을 둘러보게 되면 공식일정은 마무리된다. 저녁 비행기이고 식사는 기내식.

마지막 날이라고는 하지만 여행의 정점은 어제였다. 캄피돌리오에서 포르 로마나 유적을 내려다보았고(기번이 <로마제국 쇠망사>의 착상을 한 곳) 괴테하우스를 방문했다(독일정부에서 운영한다고). 괴테는 로마에서 남부 이탈리아로 더 내려가지만 원래 생각했던 최종 목적지는 로마였다. 로마에서 그는 제2의 탄생을 경험한다. 그의 여정을 일부 흉내낸 이번 여행의 목적도 그러한 재생(르네상스)의 경험에 있었다.

자세한 후기는 기회가 닿는 대로 적기로 하고 남은 일정도 순조롭게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 로마는 흐린 날씨에 현재 기온은 12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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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첫 일정은 보르게제(보르게세)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이었다. 미켈란젤로를 능가하는 조각의 거장 베르니니의 작품들로 유명한데(미술책에서 보던 조각들이었는데 실제 작품은 이미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조각은 3차원적이어서 더욱 그러했다) 그밖에도 카라바조와 티치아노 등의 회화 작품들이 아침 일찍부터 관람객의 발길을 끌고 있는 미술관이었다(미술관 얘기는 따로 적어야겠다). 이곳은 당초 보르게제 집안의 빌라(대저택)였고 작품들은 개인 컬렉션이었지만 국가가 사들여서 공립미술관으로 변신시켰다고. 로마에도 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손에 꼽을 만했다.

미술관을 나와서 일행이 택시를 타고 급하게 찾은 곳은 비가톨릭신자 외국인 묘지였다(그냥 외국인묘지라고 부르는 듯). 토리노에서 프리모 레비의 무덤을 찾지 못해 아쉬웠는데 외국인묘지에 그람시의 무덤이 있다고 해서 일정을 조정해 찾았다. 크지 않은 규모의 묘지에는 그람시(외국인이 아니었지만 가톨릭교도가 아니어서 이곳에 묻혔다) 외에도 영국시인 퍼시 셸리와 존 키츠의 무덤이 있었고 아버지보다 몇 년 앞서 세상을 떠난 괴테의 아들 아우구스트의 무덤도 자리하고 있었다.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한 마르크스주의 이론가 그람시는 토리노대학 출신으로 한 세대 뒤의 레비와는 대학동문이다(이런 동문관계는 한국에서나 따지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무덤을 찾게 되어 부랴부랴 그의 사상을 특히 헤게모니론을 중심으로 간단히 소개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러다 보니 오랜만에 그람시의 저직들에도 눈을 돌리게 되어 <옥중수고>를 포함해 몇 권을 주문했다. 아마도 이탈리아 인문기행이나 사상기행이었다면 마키아벨리와 함께 그람시의 행적을 더듬어보는 것도 주요한 일정이 되었으리라. 예전에 그람시 평전류도 나온 게 있었는데 지나간 유행처럼 되었나 보다. 영어로 된 책이라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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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3-11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람시의 무덤에는 왜 흰돌들을 쌓아뒀을까요

로쟈 2019-03-13 08:47   좋아요 0 | URL
그건 미처 물어보지 못했네요.^^
 

이틀간의 피렌체 일정을 마치고 로마 입성을 앞두고 있다. 피렌체에서 로마까지는 3시간반. 휴게소를 들러야 하기에 4시간쯤 소요된다. 괴테가 로마에 입성한 것은 1786년 11월 1일의 일로 일부러 날짜(만성절)를 맞춘 것이었다. 앞서도 적었지만 베네치아에서 2주 이상 체류했으면서도 피렌체는 3시간만에 통과한 이유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중심 피렌체에서의 일정은 어제(한국시간으로는 그제) 아침 우피치미술관을 찾는 것으로 시작했다.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미술관이다(‘우피치‘는 영어의 ‘오피스‘에 해당하는 단어로 집무실이란 뜻이다).연결통로를 통해서 두 개의 길쭉한 건물이 이어져 있다. 유명한 만큼 관람객들이 많은데 직원들의 파업까지 겹쳐서 아침까지만 하더라도 일정이 불확실했다. 다행이 부분파업으로 몇개의 전시실을 제외한 상태로 문을 열었고 가이드가 미리 언질을 받아두어서 헛탕을 치는 불상사는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파업으로 관람객 입장이 제한되어 여느 때보다는 덜 붐비는 상태에서 관람할 수 있었다.

많은 걸작들이 있었지만(규모에 비해 가성비가 가장 좋은 미술관이 아닐까 싶다), 보티첼리의 대작 ‘프리마베라‘와 ‘비너스의 탄생‘은 누구에게나 경탄을 자아낼 만했다. 그런 대작들이 양호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에 고마움이 느껴질 정도(복원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지만). 그밖에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치마부에의 작품부터 조토(지오토)와 도나텔로,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라파엘로를 거쳐서 카라바조에 이르기까지 미술사에 등장하는 여러 거장들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어제 오후에는 단테의 집을 방문하고 피렌체 상징인 유명한 대성당(두오모)을 안팎으로 둘러보았다(단테이야기는 따로 다룰 예정이다). 아침 일찍 시작하여 저녁까지 꽉 채운 일정이어서 이탈리아 파자로 저녁을 대신한 뒤 호텔로 돌아와서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그러고는 오늘 새벽에 간단한 여행기를 적으려고 했으나 네트워크연결이 불안정하여 적지 못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을 방문하는 게 오늘 오전의 공식 일정이었고(다비드상을 비롯해 미켈란젤로의 조각작품들로 유명한 미술관이다), 오후 자유시간에는 산타 마리아 크로체 성당을 찾아가 단테의 가묘(단테의 시신을 옮겨오지 못해 텅빈 무덤이 되었다)를 구경했다. 탄생 600주년 기념으로 세워진 유명한 동상이 성당 앞에 서 있었다.

글쓰기 가능해서 이동하는 버스에서 급하게 몇차 적었는데 눈이 부셔서 나중에 더 적어야겠다. 이제 한 시간 안으로 최종 목적지 로마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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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로 들어섰다. 숙소까지는 좀더 가야 하지만 도시 입장료를 내는 것으로(버스 통행세인 모양이다) 대면을 시작한다. 저녁 7시쯤이라 어둠은 진작에 내렸고 기온은 현재 18도. 호텔에 여장을 푸는 대로 저녁식사를 하게 될 것 같다. 아직 도심에 들어서기 전이라 피렌체라는 인상은 받기 어려운데 이틀 뒤에는 ‘나의 피렌체‘가 될 것인지 두고볼 일이다.

문학기행을 준비하며 피렌체에 관한 책만 10여 종 이상 을 구입했는데 가방에는 가장 얇은 레오나르도 브루니의 <피렌체 찬가>(책세상)만 넣어왔다. 나머지는 모두 피렌체 여행 이후에나 읽어볼 참. 국내서가 상당히 많은데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나중에 정리를 해봐야겠다. 베네치아에서도 그랬지만 곧 그림 속으로 들어가겠다. 르네상스의 도시 피렌체라는 그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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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는 현재 오후 3시를 향하고 있다. 라벤나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1시간 남짓 자유시간을 갖고 있는데 나는 휴식시간으로 쓰기로 하고 조용한 카페를 찾았다. 건물로 둘러싸인 작은 광장 가운데 작은 분수가 있고 비둘기 두 마리가 나외 비슷한 처지인지 한가한 오후를 즐기고 있다. 자유시간이 끝나면 다시 버스를 타고 피렌체로 이동하게 된다(피렌체에서 2박, 그리고 로마에서의 2박이 남은 일정이다).

라벤나는 인구 17만의 작은 도시로 피렌체의 절반 크기다. 한때는 이탈리아의 중심도시였는데 6세기가 전성기였으니 ‘오래 전‘이란 말도 멋쩍을 정도로 오래 전이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단테의 무덤이 있기 때문. 설명을 들어보니 단테의 유골이 발견된 것도 사후 훨씬 나중의 일이다. 피렌체에서 추방된 단테가 정치적 망명자로 여러 도시를 전전하다가 라벤나에 안착한 것이 1318년, 그의 나이 53세 때의 일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1321년에 세상을 떠났다. 1302년 피렌체를 떠난 지 20년, 그는 끝내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1315년 피렌체가 사면를 조건으로 그의 귀환을 제안했지만 단테는 거부했다).

잠시 주문한 커피맛을 보았다. 에스프레소가 이탈리아식 커피이고 에스프레소에 물을 탄 게 아메리카노인데,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니까 에스프레소 커피에 더운 물을 함께 가져다 준다. 물을 부어서 셀프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마시는데 맛이 좋다.

단테의 무덤과 접하여 아주 크지는 않은 단테박물관이 있었다. 원래는 수도원 건물이라고 하는데 그 일부를 단테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다. 짐작에 생가가 있는 피렌체에는 훨씬 큰 규모의 문학관이 있을 것이다. 피렌체는 단테의 무덤도 마련하여 사후의 단테라도 귀환시키려 했지만 실패했다. 곧 피렌체에는 단테의 빈 무덤이 있다. 단테의 삶이 반으로 쪼개졌던 것처럼 사후의 삶도 피렌체와 라벤나가 나눠갖고 있는 셈이다.

단테의 무덤을 전후로 방문한 곳은 라벤나의 몇몇 성당들이다. 특히 비잔티움 양식의 모자이크화로 유명한 산비탈레 성당을 아침에 찾았는데 대단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정교한 모자이크화들이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빈의 화가 클림트가 영향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오늘로써 절반의 일정이 마무리된다. 다행히 오늘은 빡빡하지 않은 일정이어서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바람이 조금 불지만 쾌청한 오후. 라벤나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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