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파리, 뉴욕, 서구를 대표하는 도시들이지만 동시에 나로선 책으로만 만나본 도시들이다(20대에는 딱히 가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이 도시들에서 살아본 분들도 종종 만나다 보니 그리 멀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기회가 닿으면 언제든 가볼 수도 있겠지. 하긴 여행과 일상은 다른 것이니(최소한 석달 이상은 체류해야 '일상'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이 도시들을 경험하는 것은 또 다른 일이겠다.

 

 

그렇더라도 대리 경험을 하게 해주는 책들이 가까이에 있으니 사정이 나쁘진 않다. 여행서 아닌 일상을 다룬 책들이다. 먼저, 미셸 리의 <런던 이야기>(추수밭, 2015). 저자는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마치고 뉴질랜드로 이민을 갔고, 2006년부터 런던에서 살고 있다 한다. 런던의 역사와 일상을 잘 버무려 '이야기'해주는 책. 태생은 블로그 글이었다고 하니 일종의 '블룩'이다.

이 책의 저자는 영국사를 전공한 역사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지금에 이르렀는지를 해명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회계사를 잠시 쉬고 역사 공부를 시작했고, 역사 현장들을 하나하나 직접 발로 밟아가면서 조금씩 런던을 알아갔다. 그리고 그 성과를 블로그에 연재하며 이웃들과 공유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영국 사극을 보는 것 같다면서 글을 빨리 써달라는 독촉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되자 블로그 이웃들을 위해서라도 글을 멈출 수 없었고, 기왕 시작한 김에 아예 영국의 형성부터 지금까지 훑어 내려가게 되었다.

역사서로 A.N. 윌슨의 <런던의 역사>(을유문화사, 2014), 여행서로 박나리의 <런던, 클래식하게 여행하기>(예담, 2015)를 합해놓은 걸로 봐도 되겠다.

 

 

파리에 대한 책으로는 제인 페이크의 <파리에서 살아보기>(부키, 2015)가 출간됐다. '가장 프랑스다운 동네 파리 16구, 본격 적응기'가 부제. 저자는 호주인으로 뉴욕에서 살다가 파리에 건너갈 기회를 얻었는데, 그 '파리지앵'의 경험담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의 저자 제인 페이크는 가족과 함께 가장 프랑스스러운 동네 파리 16구에서 살 기회를 갖게 되었다. 패션, 예술, 스타일, 로맨스, 음식의 도시에서 글을 쓰고 아기자기한 비스트로에서 식사를 하고 센 강변을 어슬렁거리는, 여유로운 모습을 상상하며 시작한 파리에서의 생활은 상상도 못했던 난관의 연속. 오스만 스타일 아파트를 구하는 일부터 이케아에서 가구를 사는 일, 프랑스 학교에 아이들을 등교시키는 일, 파리지앵 이웃과 친해지는 일, 은행 한 번 우체국 한 번 가는 일은 물론 공중화장실에 가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파리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생활, 문화를 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파리에서 산다는 게 어떤 것인가를 체험하게 해준다. 올해 나온 '파리 책'으로는 예술인문학자 이동섭의 팩션 <파리 로망스>(앨리스, 2015), 프랑스 가정 요리를 소개하는 최연정, 최지민의 <아 따블르 파리>(포북, 2015) 등도 눈길을 끈다.

 

 

'뉴욕 책'으로는 안성민의 <뉴욕의 속살>(마음산책, 2015)이 신간이다. '한국화 그리는 뉴요커가 음미한 뉴욕'이 부제. 부제대로 한 한국화가의 뉴욕 살이 기록이다.

저자는 197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및 동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공부하고 15년 전 미국으로 건너간 한국화가다. "가슴속 깊이 자리 잡은 꿈. 15년 전 나를 뉴욕으로 오게끔 한 그것. 나를 아직도 뉴욕에 붙들어 매고 있는 그것"을 되뇌며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 뉴욕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지" "뉴욕에 있는 나를 의미 있게 하는 게 무엇인지" 날마다 스스로 묻는 아티스트다. 뉴욕이라는 난공불락의 성 가운데 예술가로서 또 생활인으로서 영위해가는 소중한 일상과 그 속에서 포착한 매혹적인 순간들을 독자에게 펼쳐놓는다.

또 다른 뉴요커 박상미의 <나의 사적인 도시>(난다, 2015)와 같이 읽어봄직한데, "뉴요커로 오래 살던 저자가 뉴욕에서 본 것, 느낀 것, 생각한 모든 것을 정리해나간 '진짜배기' 뉴욕 이야기로, 지난 2005년부터 2010년간 뉴욕에서 써내려간 블로그의 글"을 출간한 책이다. 아마도 이런 유형의 책이 출간되는 루트이겠다. 뉴요커이자 건축가인 최이규의 <시티 오브 뉴욕>(서해문집, 2015)은 뉴욕에서 도시 건축을 묻는 책으로 뉴욕에 대한 색다른 가이드북으로도 읽을 수 있겠다...

 

15. 0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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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로 철학자 3인을 골랐지만, 역사가 2인의 이주의 저자로 손색이 없다. <포스트워>(플래닛, 2008)의 저자 토니 주트와 <중동의 역사>(까치,1998)의 저자 버나드 루이스인데, 각각 지난 한 세기(주로 20세기)를 회고한 책을 펴냈다.

 

 

영국의 역사학자로 유럽사가 전문분야였던 토니 주트가 공저로 내놓은 책은 <20세기를 생각한다>(열린책들, 2015)다.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을 주제로 한 <재평가>(열린책들, 2014)와 짝이 될 만한 책. 1948년생인 주트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루게릭병으로 2010년 세상을 떠났는데, 투병중에 티머시 스나이더에게서 공저를 제안받고서 함께 진행한 결과물이다.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의 저자이자 사회 참여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토니 주트와 전도유망한 젊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20세기 서구 정치사상에 대해 나눈 긴 대담의 기록이다. 이 책은 '역사이자 전기이며 윤리학 논문'이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파시스트 지식인들이 이해한 권력과 정의를 주제로 한 서구 근대 정치 사상사,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격변이 일어난 직후 20세기 중반 런던에서 동유럽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역사가 토니 주트의 지적 전기, 그리고 20세기 정치사상의 한계와 도덕적 실패에 대한 윤리학적 사색,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교직되어 있다.   

책이 만들어진 과정도 이야깃거리다.

2009년 정초부터 봄, 여름 내내 스나이더는 매주 목요일마다 주트의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이를 녹음해 녹취한 뒤 주트가 생각한 방식에 따라 9개의 장으로 편집했다. 스나이더와 나눈 일련의 대화에서 주트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과 기억을 나침반 삼아 20세기라는 거대한 대륙을 탐험하며 그 지적, 정치적 지형도를 읽어 내고, 자신의 지적 좌표를 정치적 지식인의 역할과 역사가라는 직업에 비추어 자전적 이야기로 풀어냈다.

그런 면에서는 회고록 <기억의 집>(열린책들, 2010)과도 같이 읽어볼 만하다.

 

 

1916년생으로 '현존하는 최고의 중동학자'로 꼽히는 버나드 루이스이 책은 <100년의 기록>(시공사, 2015)이다(우리 나이로는 말 그대로 100세다!).

중동학자 버나드 루이스가 100년 동안의 자기 삶과 업적, 그리고 중동 역사를 돌아보며 쓴 책이다. 버나드 루이스는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책의 포문을 연다. 자신의 성장 과정과 함께, 역사학자의 삶으로 들어서게 된 계기, 영국인으로서 왜 중동의 역사를 연구하는지, 또 역사를 연구하면서 직면한 학문적 고민과 논쟁에 대해서 솔직하게 풀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참전 당시의 에피소드, 터키와 이집트의 대통령, 요르단의 국왕 등 중동의 여러 인물들과의 만남 등 오늘날의 독자들이 호기심을 가질 만한 여러 이야기를 담았다.

아무래도 중동으로 중심에 놓고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는 만큼 조금 다른 시야의 이야기들이 나올 것 같다. 그 희소성만으로도 기대를 갖게 하는 책이다.

 

 

그런 기대로 원서도 주문을 넣었다. 몇 권 더 번역된 버나드 루이스의 책으로는 같은 역자가 옮긴 <무엇이 잘못되었나>(나무와숲, 2002)와 <암살단>(살림, 2007) 등이 더 있다...

 

15. 06.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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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루츠 라파엘이 엮은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한길사, 2015)를 고른다. 독일에서 나온 책으로 제목대로 근현대 역사학의 거장들을 소개하는 책. 역사가 인명사전으로도 읽을 수 있다.

 

역사책을 읽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먼저 알아야 하고, 역사가가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역사가를 낳은 사회를 알아야 한다. 이는 카가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우리에게 주는 매우 유용한 조언이다. <역사학의 거장들 역사를 말하다>는 지난 두 세기 반 동안 근대 역사학의 태동과 발전을 주도했던 역사가 중에 거장을 선별하여 그들의 고전적인 저술을 통해 역사학의 역사를 개관한다.

안 그래도 오늘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강의하면서 떠올리게 됐는데, 비슷한 성격의 책으론 얼마 전에 나온 이영석 교수의 <역사가를 사로잡은 역사가들>(푸른역사, 2015)과 마리아 루시아 등이 엮은 <탐사>(푸른역사, 2007)도 꼽아볼 수 있다. <탐사>는 "현대 역사학의 거장 9인의 고백과 대화"를 담은 인터뷰집이다.

 

 

그런 거장급에 속하는 역사가의 책으로 최근에 나온 것은 마르크 블로크의 <기적을 행하는 왕>(한길사, 2015)이다. <역사학의 거장들>에서는 '학문적, 정치적 진실을 보증하는 지식인'이라고 블로크를 소개하고 있다. 중세사가로서 블로크의 대표작으로는 <봉건사회>(한길사, 2001)와 <프랑스 농촌사의 기본성격>(나남, 2007) 등이 있다.

 

 

역사학 입문서로도 읽히는 <역사를 위한 변명>(한길사, 2007)도 블로크의 대표작.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블로크가 직접 참전했던 1940년 5월 독일과의 전투를 다룬 <이상한 패배>(까치, 2002)가 절판된 것. 막상 관심을 갖고 읽어보려니 '사라진 책'이 돼버렸다. "프랑스를 위해 싸우다 처형된 레지스탕스의 고백이기도 한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초 프랑스 패전의 원인을 가장 정확하게 분석한 글로 평가받고 있다"는 만큼 다시 출간되면 좋겠다...

 

15. 0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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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인 삼국지 얘기인가 하겠지만 삼국지 주인공들의 평전이 나왔기에 붙여본 제목이다. <조조 평전>(민음사, 2010)으로 처음 소개되었던 저자 장쭤야오의 <유비 평전>(민음사, 2015)이 이번에 나왔다. <손권전>도 쓴 걸 보면 저자의 관심이 삼국지의 영웅들에 많이 가 있는 모양이다.

 

 

굳이 <유비 평전>까지 읽어야 할까 싶지만, 한편으론 아주 친숙한 이야기라 삼국지의 기억과 비교해가며 읽어보는 재미도 있다. 더불어 소설보다는 좀더 미덥다는 인상도 주는데, 유비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후한 편이다.

유비의 인생 역정과 사람됨을 역사 기록에 근거해 객관적으로 담아낸 이 책은 정통론과 대의명분론으로 굳어진 그간의 논평을 재조명하고, 유비가 삼고초려로 얻은 탁월한 정치가 제갈량의 공적을 함께 짚어서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그동안 통속적으로 묘사된 유비의 상을 철저히 사실에 입각해서 고증하는 가운데 영웅다운 기상과 인간적인 약점까지 아우르는 유비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찾아보니 제갈량 평전으로는 여명협의 <제갈량 평전>(지훈, 2007)이 나와 있다. 장쭤야오의 <손권전>까지 번역되면 평전에서도 '천하삼분지계'가 완성되는 것인가. 그렇게 되도 흥미로울 것 같다...

 

15. 0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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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일대학에서 인류학과 정치학을 강의하는 제임스 C. 스콧 교수의 책이 한 권 더 번역되어 나왔다.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삼천리, 2015)이고, '동남아시아 산악지대 아나키즘의 역사'의 부제다. <국가처럼 보기>(에코리브르, 2010) 때문에 알게 된 저자인데, 작년에 나온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여름언덕, 2014)에 이어서 이번에 나온 책 덕분에 저자가 아나키즘 연구의 권위자라는 것도 알겠다.

 

정치인류학의 대가 제임스 스콧이 동남아시아 산악지대에서 살아가고 있는 소수민족과 공동체를 연구한 끝에 내놓은 문제작. 국가 만들기로 대표되는 '문명' 담론을 전면적으로 비판하며 오늘날 21세기에도 국가를 이루지 않고 살아가는 이른바 '조미아'의 실체를 보여 준다. 지은이는 조미아를 사상이나 이념이 아니라 실재하는 아나키즘의 원형으로 바라본다.

 

생소한 지역과 주제를 다룬 책이라 필요하다면 원서도 구입해볼 참이다. 아나키즘과 관련해서는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다>도 같이 읽어봐야 할 텐데, 소개는 이렇다.

아나키즘은 흔히 ‘무정부주의’라는 오역으로 세상의 오해를 받아 왔다. 그러나 아나키즘은 근대에 등장한 일부 몽상가들의 주장이 아니라 자연에 내재한 근본 법칙으로 인류사 저변에 도도히 흐르는 거대한 힘이다. 예일대 석학 제임스 스콧 교수의 <우리는 모두 아나키스트다>는 이러한 아나키즘의 힘이 교차로의 신호등에서 교육 현장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일상에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아나키스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인간사는 얼마나 다른 얼굴을 하는지 말해준다.

 

말이 나온 김에 아나키즘 입문서를 다시 확인해보면, 하승우의 개념 정리 <아나키즘>(책세상, 2008)과 최근에 나온 다니엘 게랭의 <아나키즘>(여름언덕, 2015)을 참고할 수 있고, 제임스 스콧과 마찬가지로 인류학자의 저작으로는 베네딕트 앤더슨의 <세 깃발 아래에서>(길, 2009)를 챙겨놓음직하다. '아나키즘과 반식민주의적 상상력'이 부제인 책으로 필리핀 민족주의 운동을 사례로 "19세기 후반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아나키즘과의 연관관계 속에서 파헤치는 책"이다...

 

15. 06.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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