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헤더 몽고메리의 <유년기 인류학>(연암서가, 2015)을 고른다. '인류학자가 본 어린이의 삶'이 부제이고, 원제는 '유년기 입문'이다. 저자는 이 분야의 전문가로 보이는데, 아동 학대나 성매매 등에 대한 저작도 갖고 있다. <유년기 인류학>은 교재용 책.

 

저자는 오랜 역사를 지닌 풍부한 인류학 문헌 자료에서 핵심적 사례를 화두로 뽑아 유년기 인류학 연구의 중요 이슈를 다루었다. 이 책은 여타 사회에서 부모가 아이를 기르는 방법, 그들이 생각하는 학대, 어린이가 어른이 되는 과정, 어른과 어린이에게 주어진 역할과 책임 등을 살펴봄으로써 어린이들의 일상생활과 유년기에 관한 사회적 믿음이 얼마나 다양한지를 보여 주는 생생한 연구다.

책의 마지막 장에서는 청소년기와 성인식도 다루고 있어서 성장기 자녀를 둔 '학구적인' 부모라면 일독해봐도 좋겠다. 덧붙여 유년기를 다룬 문학작품들을 읽을 때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15. 09.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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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생활이 생각보다 길어지고 있다. 그나마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게 위안거리이긴 하지만, 예정된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있어서 마음이 편하진 않다. 하나라도 정상화한다는 의미로 '이주의 발견'을 고른다. 정확하게 발견감은 아니다. 이미 몇 권 소개된 일본 비평가 아즈마 히로키의 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데뷔작인 만큼 '아즈마 히로키의 발견'에는 해당하는 책이(었)다. 바로 <존재론적, 우편적>(도서출판b, 2015)이다.

 

아즈마 히로키가 1998년에 간행한 처녀작, 자크 데리다에 대한 해설서의 완역본. 20대 중반에 씌어진 <존재론적, 우편적>은 출간되자마자 철학연구서로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팔리고,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하고 심지어는 문학상인 미시마 유키오상 후보에까지 올랐다. 어떤 이는 그를 가라타니 고진의 후계자'라고 평가했고, 또 어떤 이는 일본사상계는 이 책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으로 보았다. 이렇듯 당시 일본사상계에 충격을 준 이유는 단순한 해설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후반 프랑스철학의 유행에 대한 반성과 그것의 종언을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오래전 다음카페 비평고원에서 아즈마 히로키의 이름이 회자될 때, <존재론적, 우편적>의 존재를 알았고, 역자에게 번역을 적극 독려한 멤버의 일원인지라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참이기도 했다.그래도 출간은 언제나 새로운 사실이며 반가움 또한 줄지 않는다.

 

 

'인덕후'들에게는 상식에 속하지만 아즈마 히로키는 가라타니 고진과 아사다 아키라의 계보를 잇는 비평가다(이들은 각자 자기 세대를 대표한다). 비록 고진과 견주기에는 고진이 '넘사벽'이 돼버린 감이 있지만, 이들은 '제2의 가라타니 고진'란 기대를 모았었다. 아사다 아키라의 대표작은 <구조주의와 포스트구조주의>(새길, 1995)로 번역된 <구조와 힘>이고, 들뢰즈 해설서로도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아사다 아키라는 <도주론>(민음사, 1999/2012) 이후로는 별다른 저작이 없는 듯싶다. 아무튼 그 <구조와 힘>에 견주어지는 책이 <존재론적, 우편적>이다. 이번주에 드디어, 우리에게 도착한 책이다...

 

15. 08. 26.

 

 

P.S. <존재론적, 우편적>보다 먼저, 적어도 함께 도착했으면 좋았을 책은 데리다의 <우편엽서>다. 아즈마 히로키의 발상이 근거하고 있는 책이어서다. 우리로선 <데리다 평전>(인간사랑, 2011)이나 데리다의 문학론, <문학의 행위>(문학과지성사, 2013) 등을 들러리로라도 갖다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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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앓다가 회복기 환자 모드로 서재에 들어오니 짧은 해외여행이라도 다녀온 기분이다. 낯익은 것들이 새삼스럽게 느껴지니까. 원해서 될 일은 아니지만 해외여행 대체로 며칠 감기몸살과 함께해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다. 병원비야 좀 들겠지만 해외여행 경비에 비할 바가 아니다(암이 아니라 감기몸살이잖은가!). 여행의 재미에는 물론 견줄 수 없지만 고생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인 면이 있고(무더위속에서 몇 시간씩 걷는 것과 고열로 방안에 널브러져 있는 것), 막상 끝나는 시점에는 상황이 역전된다. 여행은 일상의 단조로움으로 다시 돌아오게 만들지만 감기몸살은 일상의 안락과 고마움을 재발견하게 한다. 그 정도면 비교거리는 되지 않을까.

 

 

이상이 회복기 환자의 넋두리였고, 며칠 놀았던 서재일도 시작해야겠다 싶어서 일단 '이주의 발견'부터. 내일이 광복절인 만큼 일본 관련서 두 권을 골랐다. 일본의 양심과 일본의 망상을 주제로 한 두 권의 책이다. 먼저 오구마 에이지의 <일본 양심의 탄생>(동아시아, 2015). 저자는 게이오대 역사사회학자로 국내에 이미 여러 권의 책이 소개된 바 있다. 이번에 나온 건 " 저자가 아버지의 일생을 인터뷰하면서 민중사, 개인사적 서술을 통해 일본의 지난 20세기를 그려낸 책"이다. 원제는 '살아서 돌아온 남자 - 어느 일본군의 전쟁과 전후'이고 번역본 부제는 '한 일본인의 삶에 드러난 일본 근현대 영욕의 민중사'다.

이 책은 전쟁 체험의 범위를 본격적으로 넓힌다. 한 사람의 일생을 놓고 전쟁 전의 삶과, 전쟁 후의 삶을 샅샅이 추적한다. 오구마 겐지의 일생을 통해 전쟁이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전후 평화의식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저자는 자신의 사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아버지의 인생사를 각 시대의 사회적 맥락에 위치시킨다. 한 사람의 일생을 그려내는 것이 역사 서술이 될 수 있음을 직접 증명해낸 것이다. 한 인물의 인상과 성격이 아닌, 매 시대 그가 행했던 선택, , 그에 대한 결과를 그저 서술하는 것만으로도 입체적인 역사 서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새로운 역사서술의 방식으로도 눈길을 끄는 책이다.

 

 

<일본 양심의 탄생>이 평범한 일본 민중의 양심을 엿보게 해준다면 그와는 정반대되는 게 이시와라 간지의 <세계최종전쟁론>(이미지프렘임, 2015)이다. 어떤 인물인가 생소해서 저자 프로필을 봤다.

1889년생, 1945년 사망. 일본육군 중장,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 종교인. 남만주철도 폭파 사건을 조작한 만주사변의 주범으로 만주국 건국을 주도했다. 이후 자신의 망상인 최종전쟁에 돌입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 확전을 주장한 도조 히데키에 반대하다 예편당했다. 이후 리츠메이칸 대학에서 국방과학을 가르치다 평론가가 되었으며, 전후 도쿄 전범재판에서 증인으로 활동하고 죽었다.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에 반대했다고 하니까 좋게 봐줄 수 있나 싶지만 둘다 나쁜 놈이다. 스탈린식 표현을 빌리자면 둘다 '더 나쁜 놈'이다. <세계최종전쟁론>은 그의 전쟁론.

만주국을 세운 이시와라 간지의 전쟁론. 러일전쟁 이후 승승장구한 덕에 자신들을 과대평가하며 미쳐가던 일본 육군, 그 와중에서 조금 다른 방향으로 미친 한 명의 전략가가 있었다. 곧 닥쳐올 양 대국이 맞붙는 최후의 대전쟁과 그 전쟁의 승리자가 영원한 평화를 일구는 새로운 질서의 주인이 되리라는 그의 망상이었다. 일본을 최종전쟁에서 맞붙을 양 대국 중 하나로 만들겠다던 이시와라 간지는 망상 끝에 만주사변을 일으켰다. 이렇게 세워진 만주국, 이시와라는 이 만주국을 최종전쟁에서 일본의 가장 든든한 우방으로 키우려 했다.

찾아보니 이시와라 간지에 대해서는 위톈런의 <대본영의 참모들>(나남, 2014)과 호사카 마사야스의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페이퍼로드, 2012)에서도 읽어볼 수 있다.

 

 

사실 만주국은 우리 현대사와 무관할 수 없다. 박정희가 바로 만주국 장교 출신이기 때문이다. 출신으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만주국의 제도, 정책, 신념 등이 내면화되어 있었다는 게 문제다(<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책과함께, 2012)가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책이다). 만주국 관련서들을 드문드문 모아놓고 있는데, 읽을 여유가 없다. 모아놓고 읽을 만한 테마독서 거리다...

 

15. 08.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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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연일 기승이다. 외출을 삼가고 있어서 여느 여름과 특별히 다르다는 느낌은 없지만 어제오늘 긴급재난문자가 연이어 온 것만 봐도 예사 더위는 아닌 모양이다. 그래도 일에 대한 의욕이 좀 떨어진다는 것 말고 특별히 '재난'스러운 건 없는 처지다. 아니 그게 좀 문제일 수는 있겠다. 며칠 축 처져 있으니. 그런 와중에도 책탐은 줄지 않아서 이런저련 욕심을 내본다. 그 가운데 좀 덩치가 큰 욕심은 몇 권의 역사서에 대한 것이다. 새로 나온 세계사와 근대문화사에 대한 욕심이다.

 

 

어제 주문해서 받은 책은 J.M. 로버츠와 O.A.베스타가 공저한 <세계사>(까치, 2015)다. '학술적으로도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았고 보통 독자들에게도 가장 널리 읽히는 세계사'라고 광고하는 책. 실제로는 1976년에 초판이 나왔고, 번역 대본이 된 책은 2013년에 나온 6판이다. 애초엔 로버츠가 쓴 책인데, 5판부터 베스타가 가세했다. 번역서는 두 권짜리로 나왔지만 원저는 1,260쪽짜리 단권이다. 단권 세계사로는 가장 훌륭하다는 게 대략적인 평판으로 보인다. 소개는 이렇다.

이번에 국내에 첫 소개되는 제6판은 최근의 세계 역사에 대한 다양한 내용들을 증보하여 전면 개정해서 출간되었다. 전체 세계사를 시대별로 다루면서, 세부적인 역사적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서술한다. 또한 미래에 상당한 유산들을 남기고 인류의 역사적 흐름을 바꾼 주요 역사적 과정들을 정리하고, 그 사건들의 역사적 의미를 예리한 시각으로 탁월하게 보여준다.

 

 

분량으로는 <세계사>를 능가하는 게 에곤 프리델의 <근대문화사>(전5권, 한국문화사, 2015)다. 독어판 원저가 1,600쪽 분량이라니 말이다. 1931년작. 이만한 분량을 쓴 저자나 옮긴 역자나 다 경탄스럽다.

독일어판 1,600쪽 분량에 가까운 <근대문화사>는 출간되자마자 대중에게 폭발적 관심을 받았다. 당대에도 표현주의 작가 알프레트 되블린과 저널리스트 레오폴트 슈바르츠쉴트, 극작가 아르투어 슈니츨러 등의 추천을 받은 <근대문화사>는 수십 개 나라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이 기념비적인 작품은 600여 년간 서구인이 겪은 문화적 부침의 역사를 섬세한 예술적.철학적 문화프리즘으로 그려낸다. 이 부침의 역사 속에는 예술과 종교, 정치와 혁명, 과학과 기술, 전쟁과 억압 등속의 거시적 문화 조류뿐만 아니라 음식.놀이.문학.철학.음악.춤.미술.의상.가발 등과 같은 미시적인 일상생활의 문화 조류도 포함된다.

기념비적이라는 건 확실히 알겠는데, 문제는 이걸 누가 읽겠는가, 라는 점. 일단 5권의 책값만 138,000원이다(최근에 화제가 되고 있는 책으로 움베르토 에코가 엮은 <중세>는 1권이 80,000원이므로 4권이 완간되면 300,000원이 넘어갈 기세이지만, 단일 저자의 책만 고려하자). 게다가 2,000쪽을 훌쩍 넘는 번역서의 분량이라니!

 

 

이런 계산 때문에 주문은 잠시 보류해놓은 상태다(폭염이 지난 다음에 주문하는 게 택배 기사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인 것 같기도 하고). 책은 영어판으로도 나와 있는 걸로 보아(3권짜리다) '수십 개 나라의 언어'로 번역됐다는 말이 거짓은 아닌 걸로 보인다(현재까지 절판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아무튼 분량으로는 도널드 서순의 대작 <유럽문화사>(전5권, 뿌리와이파리, 2012)와 견줘볼 만하겠다. 구입한다면 두 시리즈를 서가의 같은 칸에 꽂아두어도 좋겠다 싶다(당장은 <유럽문화사>의 행방을 모르겠지만)...

 

날도 더운데 두꺼운 책 얘기를 꺼내서 더 덥게 느껴지지만 책도 이열치열이란 게 있어서...

 

15. 08.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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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애덤 모턴의 <잔혹함에 대하여>(돌베개, 2015)를 고른다. '악에 대한 성찰'이 부제로 붙었는데, 사실 원제가 '악에 대하여'이다. 번역본 제목이 '잔혹함에 대하여'로 바뀐 건 얼마전에 테리 이글턴의 <악>(이매진, 2015)이 먼저 나와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영어 제목으로는 둘다 '악에 대하여(On Evil)'다. 소개는 이렇다.

 

유대인 학살 책임자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기록한 한나 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나치 수용소에서의 경험을 담은 프리모 레비의 저작, 소련의 정치범 수용소를 다룬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의 인종 차별과 인권 탄압에 대한 데즈먼드 투투의 저술이 철학자로 하여금 악이 무엇인지, 악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사유를 촉발시켰다. 이 책은 20세기 심리학의 성과와 인간의 악을 직접 경험하거나 목격한 사람들의 성찰을 경유하는 한 철학자의 사유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여러 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고 현재는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의 명예교수로 재직중이다. 눈에 띄는 건 책이 루틀리지 출판사의 'Thinking in action' 시리즈의 하나라는 점. 동문선에서 소개될 때 '행동하는 지성'이라고 옮겼다. 가장 최근에 나온 걸로는 레나타 살레츨의 <불안들>(후마니타스, 2015)이 이 시리즈의 책이었다. 생각나는 대로 몇 권 꼽아본다(동문선에서 나온 책은 슬라보예 지젝의 <믿음에 대하여>를 비롯하여 대부분 번역을 신뢰하기 어렵다).

 

-레나타 살레츨, <불안들>(후마니타스, 2015) -> <불안에 대하여>

 

 

-슬라보예 지젝, <믿음에 대하여>(동문선, 2003) -> <믿음에 대하여>

 

 

 

-존 카푸토, <종교에 대하여>(동문선, 2003) -> <종교에 대하여>

 

 

 

-스티븐 멀할, <영화에 대하여>(동문선, 2003) -> <영화에 대하여>

 

 

 

-허버트 드레퓌스, <인터넷상에서>(동문선, 2003) -> <인터넷에 대하여>

 

 

15. 08.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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