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다니엘 튜더의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문학동네, 2015)을 꼽는다. 저자는 구면이다. 이미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문학동네, 2013)를 통해서 외부인이 본 한국사회를 예리하게 짚어낸 바 있어서다.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를 부제로 단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은 그 속편으로 읽힌다. 하지만 전자가 영미권 독자에게 한국을 소개하기 위한 의도로 쓰였다면 후자는 한국인 독자를 위한 책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고.

 

이 책에서 다니엘 튜더는 한국 민주주의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을 제시하고, 정당과 시민은 민주주의를 정상의 자리로 되돌리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한다. 쇠락이 우려되는 제조업을 위해 한국형 미텔슈탄트를 키우자는 제안, 이탈리아의 ‘5성운동’ 같은 풀뿌리 운동을 시작해보자는 제안 등에서는 그만의 시각이 돋보인다. 한국에 머물며 2010년부터 2013년까지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으로 일한 그는 이 책에서 2012년 대통령선거 캠프의 다양한 사람을 만난 경험을 풀어내고, 정치인 및 고위 관료를 접하며 느낀 한국 사회의 부패 문제와 엘리트의 사고방식 문제도 짚었다.

한바탕 홍역을 치르고 있는 '메르스 사태' 때문에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이란 제목을 한번 더 상기하게 되었는데, 저자 또한 마찬가지일 듯싶다. '한국은 왜 저럴까?'라는 심정이지 않을까. 언제까지 '반면교사' 노릇만 하게 될지 심히 염려스럽다. 하긴 그 대답도 알고 있다는 게 문제다. "아몰랑."

 

15. 06.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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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의 아내 예니 마르크스와 그 가족을 다룬 책이 연이어 나왔다. 이번주에 나온 건 예니 마르크스의 평전 <레드 예니>(오월의봄, 2015)이고, 얼마전에는 마르크스 가족의 이야기를 방대한 분량에 담은 메리 게이브리얼의 <사랑과 자본>(모요사, 2015)가 나왔었다. 마르크스 평전이 다루지 않은 더 깊은 속 이야기가 있는 듯싶다.

 

 

 

먼저, <레드 예니>는 어떤 책인가.

카를 마르크스라는 이름이, 그가 내놓은 사상이 20세기를 지나 지금까지 세계를 뒤흔들 동안 예니 마르크스(1814~1881)라는 이름은 희미한 메아리로만 남아 있었다. 그동안 객관적으로 서술한 예니 마르크스의 전기가 드물어서 우리가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귀족 출신이어서 부르주아 생활을 즐기는 여자라는 오해도 있었고, 마르크스를 괴롭히는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했다. <레드 예니>는 예니 마르크스의 불꽃같은 삶을 되살린 본격 평전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마르크스 평전>으로도 읽을 수 있는 책이겠다. 이어서 '카를과 예니 마르크스, 그리고 혁명의 탄생'을 부제로 한 <사랑과 자본>이다.

2011년 전미도서상 논픽션 부문 최종후보에 오르며 화제가 되었다. 이 책은 지금껏 출간된 마르크스의 여느 전기와는 판연히 다르다. 죽었지만 죽지 못하고 유령이 되어 지상을 떠돌던 마르크스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살이 있고 피가 도는 살아 있는 마르크스를 비로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전문 전기 작가인 메리 게이브리얼이 그리는 마르크스는 배경과 완벽하게 융화되어 살아 숨 쉰다. 저자는 마르크스의 특별함을 칭송하는 대신, 시대 속에서 고뇌하는 지식인을 말한다. 독자는 저자의 안내에 따라 시끌벅적한 런던의 빈민굴에, 피비린내 풍기는 파리 코뮌의 현장 한가운데 서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마르크스 평전오르는 프랜시스 윈과 이사야 벌린, 그리고 자크 아탈리의 책이 나와 있다. 이번에 나온 책들과 비교해서 읽어봄직하다...

 

15.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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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도 관심도서가 꽤 많은데, 그 가운데 철학쪽으로는 비트겐슈타인 관련서 두 권을 우선 꼽고 싶다. 알랭 바디우의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사월의책, 2015)이 번역돼 나왔고, 브라이언 클락의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서광사, 2015)도 눈길을 끈다.

 

 

<비트겐슈타인의 반철학>은 바디우의 '철학과 반철학'이란 대결구도부터 흥미를 끄는데, '비트겐슈타인 입문'이자 '바디우 입문'으로도 효용이 닿겠다.

이 책에서 프랑스의 세계적인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비트겐슈타인의 “반反철학”과 치열한 대결을 펼친다. 비트겐슈타인의 <논리-철학 논고>를 세밀하게 분석하며 반철학의 구조와 그 한계를 낱낱이 보여준다. 이 책은 ‘철학’과 ‘반철학’이라는 대립쌍을 통해 삶과 존재, 진리와 의미라는 가장 철학적인 문제에 깊이 천착하며 우리 시대를 위한 새로운 철학의 가능성을 탐구하고 있다. 

분량이 얇다는 점도 이런 경우엔 장점이다. 얇은 건 원제가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 입문>인 후자도 마찬가지다.

어렵기로 악명 높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 그의 사상 중에서도 종교에 관한 그의 사상을 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개괄한 입문서이다. 그의 위대한 두 저서 <논리철학논고>와 <철학적 탐구>를 중심으로 종교에 대한 그의 생각을 알아본 후, ‘주술’, ‘최후 심판’, ‘신’ 과 같은 문제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쓴 글을 소개한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의 후예들이 제시한 종교 철학을 살펴보며 그것을 평가하기도 하고, 주류 종교철학과 근래 진보 신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비트겐슈타인의 책이나 그 관련서를 한두 권 읽어본 독자라면 흥미롭게 손에 들 만하다.

 

 

비트겐슈타인 초심자이고 사실 난해하다는 그의 책을 정독해볼 엄두가 안 나는 독자라면 조금 가벼운 발췌본을 대출해서 읽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초역(발췌역)판으로 <비트겐슈타인의 말>(인벤션, 2015)이 나와 있고, <비트겐슈타인의 인생노트>(필로소픽, 2015)도 비슷한 성격의 책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종교철학에 대해서는 이전에 나온 책이 없는 듯싶었는데, 찾아보니 박사학위논문이 하나 단행본으로 나와 있다. 하영미의 <비트겐슈타인의 종교관과 철학>(서광사, 2014)이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일독해보아도 좋겠다...

 

15. 0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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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402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윌리엄 데레저위츠의 <공부의 배신>(다른, 2015)에 대한 서평이다.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에 비해서 번역본의 제목이 너무 좁게 붙여진 듯한 느낌이다. 엘리트 교육의 결과로 양산된 '똑똑한 양떼'들의 문제를 지적하는 전반부보다 그 시스템을 비판하는 후반부 쪽에 더 주안점을 두었다. 저자가 언급하는 책들 가운데 하버드대 학장을 지낸 해리 루이스의 <영혼 없는 똑똑함>도 소개되면 좋겠다 싶다.

 

 

시사IN(15. 05. 30) 엘리트 교육의 불편한 진실

 

통상 한국사회에서 자녀 교육의 대미는 명문대학 입학으로 장식된다. ‘좋은 대학’이라고 얼버무리기도 하지만 대학은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고, 자녀 교육의 성공 여부는 어느 대학에 들어갔는지로 판가름된다. 미국의 명문 예일 대학 교수를 지낸 윌리엄 데레저위츠의 <공부의 배신>을 보면 미국도 사정이 다르지 않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만 하면 과연 아무 문제가 없을까'라는 것이다. 여러 명문대학에서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을 근거로 그는 문제가 자못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똑똑한 양떼’란 원제가 겨냥하는 것은 미국 엘리트 교육의 실패다.


2차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 국가들이 사회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복기국가 모델을 만들 때 미국은 고등교육의 확장을 통해서 물질적 지원 대신에 기회를 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이러한 기회의 제공은 대규모의 중산층과 새로운 상류층을 낳는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의 대학 교육은 불평등에 맞서 싸우기는커녕 불평등한 시스템 자체가 되어버렸다. 높은 대학등록금도 문제지만 입시경쟁에 들어가는 비용의 비약적 증가로 가정의 경제적 배경이 곧 성적과 직결되게 되었다. 가령 하버드대학 학생의 40퍼센트는 연소득 상위 6퍼센트에 속하는 가정 출신이다. 저자가 보기에 “명문대는 불평등사회를 역전시키는 데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정책적으로 불평등사회를 적극 조장하고 있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다. 우리도 수월성 교육이란 명목으로 온갖 특목고가 난립하는 양상이지만 그런 엘리트 교육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유대인 가정 출신으로 폐쇄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저자가 직접 겪은 일인데, 어느 날 그가 집수리를 위해 배관공을 불렀다. 한데 배관공이 부엌에서 일할 준비를 하며 머뭇거리는 동안 저자는 그에게 변변하게 말을 붙일 수가 없었다. 교육 과정에서 배관공을 만날 일이 없었던 탓이다. 그가 받은 엘리트 교육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대신에 오히려 그런 일로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엘리트 교육이 '실력 사회'를 낳았지만 그 실력 사회의 이면은 진정한 리더십의 부재다. 저자가 현재 미국 지배세력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대목이다. 가령 1988년 이후 주요 대통령 후보자 10명 가운데 대다수가 하버드나 예일 등 명문 사립대학 출신이다. 1948-1984년 대통령 후보자 14명 가운데 단 3명만 명문 사립대에 다녔던 것과 비교되는 수치다. 이들 가운데 명문가 출신이 단 2명이었던 데 비해 그 이후로는 10명 중 6명이 ‘상속자’에 속한다.


그런 배경을 가진 기술관료의 전형으로 저자는 오바마 현 대통령을 지목한다. “오바마는 자신만의 비전이 있는 척하지만 그의 비전은 기술관료 그 자체다.” 오바마는 잘하지 못하는 과목의 수업은 듣지 않으려고 하는 학생처럼 힘겨운 정치적 싸움은 회피하려 한다고 저자는 비꼰다. 하지만 그것은 오바마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똑똑하지만 그렇듯 순응적이며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비전을 갖지 못한 인재들만을 배출해내는 엘리트 교육 시스템의 문제다. 실패할지도 모르는 일은 아예 회피하기에 실패할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엘리트 교육이었다.


예상할 수 있는 결론은 물론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으로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자 한다면 최고의 무상 고등교육 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대학 지원자들에게 성취 목록과 함께 ‘실패 이력서’도 제출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제안도 그럴 듯하게 들린다. “아이들이 배움에 대한 애정으로 공부하고 사람들이 일에 대한 애정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저자만의 이상향이 아니라면 우리도 충분히 경청해볼 필요가 있다.

 

15. 05.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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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책이지만, 부제는 '세상을 보는 가장 큰 시선들의 대립'이다. 샤피크 케샤브지의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궁리, 2015). 이름에서 어림할 수 있지만 저자는 인도인이다(인도인이지만 케냐 출생이고 스위스에서 목사와 교수로 재직했다 한다). 찾아보니 영어권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프랑스와 독일에서는 저자로 좀 알려진 듯하다. 책은 불어로 썼다.

 

 

그렇다고 국내에 처음 소개된 저자는 아니다. 이미 <세계 종교 올림픽>(궁리, 2008)이 나왔었기에. 원제는 <임금과 현자와 광대>. 제목만 보아도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의 짝이란 걸 알 수 있다. 직접 이어지는 내용은 아니더라도. 그리고 생소한 저자를 같은 역자가 계속 옮긴 걸로 보아 역자가 적극적으로 출간을 주선한 게 아닌가 싶다(역자는 독일에서 공부하고 프랑스의 고등학교에서 종교문화 교사로 재직하고 있다). 어떤 효용에 주목한 것일까.

 

슬하에 네 자녀를 두었던 샤피크 케샤브지는 2005년 백혈병에 걸린 만 13세 아들 시몽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게 된다. 그 경험 이후로 그는 ‘삶과 죽음’을 주제로 한 우리 인생의 이야기를 구상하기 시작했고, 10년여 간의 성찰과 숙고의 시간을 지내고서 이 책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를 펴내었다. 정치학과 신학을 공부하며 다양한 철학과 사상들에 정통한 저자는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이야기 형식을 책 속에 도입하여, 자칫 어렵고 묵직할 수 있는 우리네 삶의 크고 작은 철학적 주제들에 대한 사상·종교의 입장과 논쟁점, 죽음과 이별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인생의 희비를 오가는 사람들의 심정 등을 심도 있게 묘사하며 객관적이고도 재미있는 종교 이야기꾼으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핵심은 '종교 이야기꾼'이라는 데 있는 듯싶다. 특정 종교의 편에 서지 않고서 다양한 신앙과 신념들간의 토론을 주선할 수 있는 역량이 종교 이야기꾼의 역량이다. 이 역량은 머리가 굳은 기성세대보다는 한창 성장하는 청소년들에게 더 요긴하게 다가갈 듯싶다. 혹 역자가 프랑스 학생들에게 이 책을 교재 삼아 강의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는 종교판(내지는 신념판) <소피의 세계>로 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왕비와 수도사와 탐식가>의 토론 배틀 참여자는 각각 일심론과 일체론, 유물론의 세계관을 대표한다. '아무 생각없이 산다'주의자가 아니라면, 이 '신념토론대회'의 참관인이 돼 보아도 좋겠다...

 

15. 0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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