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발견'으로 대니얼 헬러-로즌의 <에코랄리아스>(문학과지성사, 2015)를 고른다. '언어의 망각에 대하여'가 부제. 저자는 프린스턴대학의 비교문학과 교수인데, 조르조 아감벤의 주요 저작을 영어로 옮기기도 했다. 아감벤 번역자이면서 그 자신이 독특한 저작을 여럿 갖고 있는 저자다. 가령 이런 책들이 있다고.

 

<운명의 얼굴: 장미 이야기와 우연성의 시학>(2003)을 필두로 온갖 시대와 분야를 종횡무진하면서 독특하고 통찰력 있는 다양한 저서들을 격년 단위로 출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내적 접촉: 감각의 고고학>(2007), <만인의 적: 국민국가들의 법과 해적>(2009), <다섯번째 망치: 세계의 불협화음과 피타고라스>(2011), <검은 혀들: 사기꾼과 수수께끼를 내는 자들>(2013) 등이 있다.  

 

저자가 번역한 아감벤 책과 함께 한두 권 정도는 이번 기회에 구해봐야겠다. 말 그대로 '발견'감이 될지도 모르겠다. <에코랄리아스>는 어떤 책인가.

이 책의 제목인 ‘에코랄리아스’란 ‘언어메아리’ ‘메아리어’ ‘반향어’ 정도로 번역할 수 있는데, 그것은 저 자신은 망실되었으나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마치 메아리처럼 ‘다른’ 언어의 틈새에서 살아남아 그 존재의 ‘지층’이 되는 언어의 특성을 암시한다. 21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고대, 중세, 근대를 넘나들며 신화에서부터 현대 언어학 이론까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면서 말과 글, 기억과 망각 사이의 관계를 탐색해나가는 동시에 ‘망각’이야말로 언어의 본질적 특성이라는 저자의 특별하고 독창적인 통찰을 전해준다.

모처럼 독서욕을 자극하는 철학적 에세이다.

 

 

역자는 아감벤의 <빌라도와 예수>(꾸리에, 2015), <유아기와 역사>(새물결, 2010) 등을 옮긴 조효원 평론가다. 철학적 에세이 <다음 책>(문학과지성사, 2014)을 펴내기도 했다. 벤야민이나 아감벤의 사유가 한국어로는 어떤 반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도 보인다...

 

15. 0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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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나온 여성학이론 분야의 책들을 한데 묶는다. 먼저, 일본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의 <여자들의 사상>(현실문화, 2015). "일본의 저명한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가 자신의 사상의 원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일본과 서양의 명저를 해설했다. 지은이의 20~30대에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끼친 일본의 여성작가와 여성운동가, 여성문학연구자 5명을 비롯해 푸코, 사이드, 세지윅, 스콧, 스피박, 버틀러 등 6명 사상가의 저작을 특유의 명쾌하고 쉬운 문체로 설명해준다."

 

 

저자의 책은 국내에 자주 소개되는 편인데, 작년에 나온 책으로는 <위안부를 둘러싼 기억의 정치학>(현실문화, 2014)이 있으며 가장 많이 읽힌 책은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은행나무, 2012)이다.

 

 

이대 아시아여성학센터에서 기획한 책도 몇 권이 한꺼번에 나왔는데(출판사는 제각각이다),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서해문집, 2015), <변화를 만드는 초국적 여성운동>(이대출판부, 2015), <빼앗긴 사람들>(산지니, 2015) 등이다. 그 가운데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는 "우리 시대 페미니스트 15인의 '현장' 이야기"다.

이 책은 그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의 위기가 회자되고 더 이상 페미니즘은 새로운 담론을 생산할 수 없다는 회의적인 시선이 팽배한 이때, 지난 30여 년간 이 땅의 페미니즘의 역사와 오늘날 전환시대를 맞은 페미니즘의 현장을 낱낱이 드러내 보여주는 ‘21세기 대한민국 페미니즘’의 새로운 교과서다.

'새로운 교과서'를 자부하는 만큼 현단계 페미니즘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디까지 와 있는지 일별하는 데 도움이 되겠다...

 

15. 0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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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대한 상반된 시각을 보여주는 책 두 권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윌리엄 데이비스의 <행복산업>(동녘, 2015)과 브루노 프라이의 <행복, 경제학의 혁명>(부키, 2015)이다.

 

 

먼저 <행복산업>은 원제를 그대로 옮긴 것인데, '자본과 정부는 우리에게 어떻게 행복을 팔아왔는가?'가 부제다. 저자는 영국의 사회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 어떤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가.  

저자는 ‘행복의 과학’이 갑작스럽게 21세기 초에 대두된 것에는 중요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바로 자본주의의 본성과 관련된 것이다. 즉 행복이 중요해진 것은 그만큼 사회의 구성원들이 느끼는 불행함이 중요해졌다는 반증인데, 많은 사회 구성원이 느끼는 불행함은 불평등을 심화하고 심리적, 감정적으로 관계를 맺는 데 자본주의 체제가 바로 그 어려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저자가 제기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하에서 기술이 우리의 감각과 기분, 감정을 일상적으로 감시하는 물리적 환경을 구축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감정은 실시간으로 수량화되고 이는 시장을 넘어 우리의 삶 깊숙한 곳까지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이처럼 행복과 웰빙이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종교’가 어떻게 경영, 금융, 마케팅, 스마트기술 등 우리 일상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보여주며, 가장 사적인 감정의 상업화 등을 통해 공기처럼 우리를 휘감고 있는 ‘행복’에의 강요를 날카롭게 해부한다

제목과 부제만으로도 문제의식을 대충 어림잡을 수 있는 책인데, 장하준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인간에 대한 ‘과학적’인 이해와 조작을 통해 사람들을 더 행복하게 만들고 사회를 개선시키겠다는 지금의 지적 프로젝트의 오도된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눈이 번쩍 뜨이고,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며, 마음이 확 트이게 하는 책이다.” '국민행복시대'의 실상을 경험하고 있는 우리로선 더더욱 필독해볼 필요가 있겠다.

 

 

이미 <경제학, 행복을 말하다>(예문, 2008)을 통해 소개된 바 있는 브루노 프라이는 스위스 취리히대학의 경제학 교수로 '행복경제학'을 주도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경제학과 행복의 관계에 대한 회의적인 견해에 맞서 행복을 계량화하는 것이 가능하고 경제학이 그러한 행복 증진에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행복경제학의 선구자 프라이는 비용과 편익이라는 결과적 효용에만 초점을 맞춘 표준 경제이론의 한계를 지적하며, 개인의 '주관적 안녕감' 즉 행복을 측정하는 것이야말로 경제적 행동을 해석하고 경제정책을 수립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주장한다. 그는 행복 연구가 아직 완전한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것은 효용을 측정할 수 없다는 기존 경제학의 주장에 반해 이 연구가 '주관적 안녕감'이라는 분명한 측정치로 경제적 행동의 효용을 계량화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으며, 이를 통해 경제이론 및 정책의 변화를 가져올 충분한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이라고 말한다.

핵심은 '주관적 안녕감'을 어떻게 측정하고 계량화할 수 있는가란 점이겠다. 행복경제학의 기본 전제니까 말이다. 그래도 경제의 목표를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주류 경제학보다는 좀 다른 시각의 이야기를 해줄 것 같은데, 자칫 '행복산업'의 함정에 빠질 위험도 있어 보인다. <행복산업>과 같이 읽어보아야 하는 이유다...

 

15. 07.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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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고전에 대한 가이드북의 하나로 제임스 가비의 <위대한 철학책>(바이북스, 2015)이 출간됐다. 찾아보니 <위대한 철학책>(지식나이테, 2009)이라고 나왔던 책의 재간본이다. 원제는 <20권의 위대한 철학책>이다. 저자는 제레미 스탠그룸과 <서양철학 산책>(시그마북스, 2015)을 공저하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책이 나오면 아무래도 목록에 관심을 두게 되는데, 영국인 저자라는 걸 염두에 두고 20권의 목록을 살펴본다.

1. 플라톤의 <국가>
2.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3. 아퀴나스의 <신학대전>
4. 데카르트의 <제1철학에 관한 성찰>
5. 홉스의 <리바이어던>
6. 로크의 <인간오성론>
7. 버클리의 <인간 지식의 원리론>
8. 흄의 <인간 오성의 탐구>
9. 루소의 <사회계약론>
10.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11. 헤겔의 <정신현상학>

12. 쇼펜하우어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3.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14. 밀의 <공리주의>
15.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6. 포퍼의 <탐구의 논리>
17. 에어의 <언어, 진리, 논리>
18.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19. 보부아르의 <제2의 성>
20.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

스무 명 가운데 영국철학자는 홉스와 로크, 버클리, 밀, 그리고 에이어('에어'라고 표기됐지만)까지 5명이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포퍼까지 포함하면 6명. 칸트부터 니체까지 5명이 포진한 독일철학과 대등한 수준이다(역시나 오스트리아 출신이면서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책은 독어로 쓴 비트겐슈타인은 어디에 포함시켜야 하나?).  

 

 

같은 종류의 가이드북으로 떠오른 건 <철학 한입>(열린책들, 2012)의 저자 나이절 워버턴의 <스무 권의 철학>(지와사랑, 2000)이다. 똑같이 20권의 철학 고전을 소개하고 있는데, 3판에서는 27권으로 목록을 확장했다. 원서는 작년에 4판이 나온 걸로 보아 꽤 잘 나가는 책이다. 워버턴이 처음에 고른 20권의 목록을 제임스 가비의 목록과 비교해보는 것도 좋겠다. 어떤 '합의' 같은 걸 읽을 수 있을 테니까(공통 목록은 형광펜을 칠했다).

1. 플라톤 <국가>
2.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3. 데카르트 <성찰>

4. 홉스 <리바이어던>
5. 로크 <인간의 지적 능력에 관한 에세이>
6. 로크 <정부에 관한 두 번째 논고>
7. 흄 <인간 오성에 관한 탐구>
8. 흄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9. 루소 <사회계약론>
10. 칸트 <순수이성비판>

11. 칸트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12.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13. 밀 <자유에 관하여>
14. 밀 <공리주의>
15. 키에르케고르 <이것이냐 저것이냐>
16. 마르크스와 엥겔스 <독일 이데올로기> 1부
17. 니체 <도덕의 계보>
18. 에이어 <언어. 진리 그리고 논리>
19. 사르트르 <존재와 무>

20.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워버턴은 로크와 흄, 칸트, 밀의 책을 두 권씩 골랐기에 실제로는 16명의 철학자를 선정한 셈인데, 아퀴나스와 버클리, 헤겔, 포퍼, 보부아르 등 5명을 뺀 대신에 키에르케고르를 집어넣었다. 그럼에도 15명의 철학자, 13권의 책이 공통적이다(제목 번역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 정도가 영국인들이 보는 위대한 철학책 목록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많이 주워섬기는 목록과 비교해봐도 좋겠다...

 

15.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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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의 문학 강의가 번역돼 나왔다. <문학의 고고학>(인간사랑, 2015). 처음에는 문학론이나 비평이 번역된 것인가 했는데, 실제 '강의'다. 그것도 문학 강의. 이미 영어본도 나와 있길래 바로 주문했다. 책의 의의는 이렇게 소개된다.

 

프랑스의 사상가 미셸 푸코는 ‘지식의 고고학’ 시기의 대표작 <말과 사물>(1966)을 발간하기 이전과 이후인 1963년과 1964년, 그리고 1970년에 문학에 관련된 일련의 강연을 행한다. 이 강연들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사실만이 알려졌을 뿐, 실제로 그 원고 혹은 방송 녹음이 완전한 형태로 존재하는지 자체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했던 작품들이다. <문학의 고고학>은 호메로스, 셰익스피어로부터, 세르반테스, 코르네유, 라신을 거쳐, 샤토브리앙과 사드, 그리고 말라르메와 조이스, 프루스트에 이르는 수많은 작가들을 문학, 광기, 언어라는 커다란 주제와 관련하여 전 방위적으로 다룬다. 2013년 프랑스에서 출간된 <문학의 고고학>은 이제까지 한 번도 전모가 밝혀진 적이 없던 1960년대 푸코의 문학관, 곧 광의의 형식주의에 기초한 전복적 아방가르드의 문학관을 푸코가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는 유일한 텍스트들을 모았다는 점에서 실로 흥미진진한 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에 푸코의 문학론을 접할 수 있도록 해준 책은 (이미 절판된)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문학과지성사, 1989)과 김현의 <시칠리아의 암소>(문학과지성사, 1990), 그리고 시몬 듀링의 <푸코와 문학>(동문선, 2003) 등이었다. 그의 문학비평은 다시 번역돼 나오면 좋겠는데, 이번에 나온 <문학의 고고학>은 육성 강의니까 접근성도 좋을 듯싶다.

 

 

<문학의 고고학> 영어판의 제목은 <언어, 광기, 그리고 욕망>이다. 3부 구성의 책에서 핵심 주제를 간추린 것인데, 욕망은 특별히 사드를 염두에 둔 걸로 보인다.

 

 

생각난 김에 적자면, 작년말에 첫 권을 선보인 '사드 전집'도 후속 권들이 빨리 나왔으면 싶다. <문학의 고고학>을 계기로 나도 문학 강의에서 사드를 다룰 기회가 생길지 모르겠다. 아주 오래 전에 <미덕의 불운>에 대해서 강의하려다 일정이 맞지 않아 무산된 일이 떠오른다. 사실 사드와 블량쇼에 대한 관심은 푸코의 문학비평에 빚진 바가 크다...

 

15. 0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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