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같은 일요일이서 결코 느긋하지 않은 상황임에도 마음이 여유를 부린다. 오랜만에 사우나에 다녀온 탓도 있겠다. 이런 기분에 읽기 좋은 책은 크레이그 브라운의 <헬로 굿바이 헬로>(책읽는수요일, 2015).

 

 

'영국에서 가장 재기 넘치는 작가'라지만 국내 독자들에게 크레이그 브라운은 초면이다. 영국의 대표적 시사잡지에 '패러디 일기'를 연재한다고. 그런 명망은 <디스 이즈 크레이그 브라운>이나 <로스트 다이어리스> 같은 그의 다른 책들이 마저 소개돼야 알 수 있을 것 같고, 일단은 <헬로 굿바이 헬로>에 대해서만. 소개는 이렇다.

 

'영국에서 가장 재기 넘치는 작가' 크레이그 브라운이 독창적인 구성으로 그려낸 101번의 특별한 만남 이야기로, 작가, 배우, 가수, 화가, 작곡가, 정치인, 학자 등 셀러브리티 101명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남의 릴레이'를 펼친다. 만남의 순간을 통해 인물들의 숨겨진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주며, 만났다가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관계들로 이루어지는 삶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한다. 가디언, 데일리 텔레그래프, 선데이 타임스 등 주요 매체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으며, 작가 줄리언 반스는 "나를 가장 많이 웃게 한 책"이라고 추천했다.

말 그대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만남'을 한데 모았는데, 히틀러도 포함돼 있지만 작가들이 많고 게다가 러시아 인사들도 꽤 들어 있어서 나로선 흥미를 안 가질 수 없다(고리키와 톨스토이의 만남, 톨스토이와 차이콥스키의 만남, 차이콥스키와 라흐마니토프의 만남 등으로 이어진다). 매우 독창적인 발상에 재기 넘치는 구성이다. 내일이 초파일이기도 하지만 '기이한 인연'의 끈에 대해서도 한번쯤 생각하게끔 해주는 책이다. 설마 초파일에 맞춰서 책이 나온 것일까?..

 

15.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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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부르디외 사회학의 좋은 입문서가 될 만한 책이 출간됐다. 부르디외가 로익 바캉과 공저한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그린비, 2015)다. 제목부터가 입문서라는 걸 웅변한다. 지난해 <언어와 상징권력>(나남, 2014)이 나오기도 했지만 그밖에 관련서가 스테판 올리브지의 <부르디외, 커뮤니케이션을 말하다>(커뮤니케이션북스, 2007)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걸 보면, 생각보다 드물게 출간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도 한 권으로 모든 걸 갈무리해주는 '일당백' 입문서가 나온 터라 반갑다.

 

현대 사회학을 대표하는 학자 중 한 명인 피에르 부르디외의 방대한 학문 세계를 집대성한 책. 제자인 로익 바캉이 질문을 던지고 부르디외가 답하는 인터뷰(2부)가 중심을 이루고, 바캉이 쓴 부르디외 사회학 개관(1부)과 학문하는 자세에 관해 부르디외가 학생들에게 행한 강연(3부)이 더해졌다. 이 책에서는 부르디외가 연구했던 거의 모든 주제(사회학을 위시한 학문 환경 자체에 대한 성찰, 권력, 불평등, 관습, 언어, 젠더 등등)와 관련 논쟁들이 다루어지며, 다른 저작들에서는 선명히 드러낼 수 없었던 그의 솔직한 연구 동기들, 다른 사상가들과의 영향(또는 대결) 관계 또한 밝혀진다. 더불어 부록으로는 바캉이 제시하는 부르디외 저작 독법과 옮긴이의 꼼꼼한 부르디외 용어 해설 등이 함께 실렸다

<언어와 상징권력>에 대한 독서만 틈틈이 엿보고 있었는데, 방향을 <성찰적 사회학>으로 틀었다.

 

 

찾아보면 부르디외 사회학에 대한 소개나 입문에 해당하는 책들은 2000년 전후로 몇 권이 나온 바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가 사회학자로서 가장 많이 호명되던 때가 아닌가 싶다(앤서니 기든스, 울리히 벡 등과 함께 '스타 사회학자'였다). 이후에는 비교적 적조한 편인데, 부르디외 이후 이론사회학자로서 그만한 명성과 평판을 누리고 있는 사회학자가 누가 있는지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감정사회학의 에바 일루즈? 하지만 아직 대가급은 아니다).

 

 

생각해보면 부르디외의 주저인 <구별짓기>(새물결, 2005) 등도 지금 시점에서 더 적실하게 읽을 수 있는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든다. 혹은 그의 취향의 사회학 분석틀을 더 다듬거나 한국적 상황에 적용해보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부르디외를 상기하게 된 건 <성찰적 사회학>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 유학과 한국 엘리트의 탄생'을 다룬 김종영 교수의 <지배받는 지배자>(돌베개, 2015)도 부르디외의 방법론을 원용하고 있고, 이번주에 나온 김경만 교수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문학동네, 2015)도 제목에서부터 '부르디외적'이다. 후자는 '한국 사회과학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부제로 소개만 보자면 꽤 흥미로운 문제제기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이번 책에서는 한국 사회과학계, 나아가 학술문화와 지적 풍토 전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 칼을 들이댄다. 강신표, 김경동, 한완상 등의 원로 사회과학자나 강정인, 조한혜정 같은 중견 사회과학자를 향한 비판은, 글로벌 지식장에 참여해 지그문트 바우만, 앤서니 기든스, 로익 바캉 등 세계적인 학자들과 논쟁을 통해 학문적 성숙에 이르는 과정이 예시된 저자의 자기민속지와 절묘하게 조응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여우와 신포도’ 같은 핑계나 빈말이 아닌, 진정한 학문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장의 구조를 변형시켜 세계 학계에서 우리만의 이론을 창출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묵직하고 깊은 성찰적 울림을 준다.    

<지배받는 지배자>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이나 한국의 지식사회를 들여다보는 드문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다시 부르디외로 돌아오면, <성찰적 사회학>의 원서(영어판)를 찾다가 뜻밖에도 <국가에 대하여>란 신간이 나온 걸 보고 바로 주문했는데, 저자와 타이틀만 보고서도 충분히 관심을 갖게 되는 책이다(소개됨직하다). 부르디외의 <국가 귀족> 같은 책이 번역되었었나 궁금해지는데, <호모 아카데미쿠스>(동문선, 2005)와 같은 맥락에서 지식과 권력과 제도가 어떻게 맞물려 돌아가는지 들여다보게 해주는 것이 부르디외 사회학의 강점으로 여겨진다. <국가에 대하여>는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를 엮은 책이다...

 

15. 0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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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입이 멀쩡하면서, 열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몸의 통증을 느끼는 건 아주 드문 일이라 며칠째 희소한 경험을 하고 있다. 근인은 다른 데 있겠지만 원인을 따지자면 몸이 시간을 겪는 일의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시간에 대한 의식을 자주 할 수밖에 없는 나이가 중년이어서 그런 생각이 드는지도 모르겠고(노년이라면 느낌이 또 다를 듯싶다).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경당, 2015)이란 제목에 눈길이 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왠지 '당신'에 호명된 것 같으니까.  

 

 

찾아보니 저자는 1938년생으로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버클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서 오리건대학에서 영문학 교수로 재직하다가 현재는 명예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대표작은 (영문학 혹은 비교문학 전공이라는 경력에 비추어 이채로운) <디자인과 진실>(북돋음, 2011)인데, 2010년에 펴낸 것이니 72세 때이다. <당신의 시간을 위한 철학>(원제는 <시간과 삶의 기술>)은 그보다 훨씬 앞서 1982년에 출간한 책이다(영어판은 현재 절판됐다). 저자가 44세 때. 실제로 집필한 것은 안식년을 맞았던 1978년과 1979년에 걸쳐서라고 한다. 마흔이라는 (요즘으로는) 인생의 반고비를 넘어가면서 쓴 시간에 대한 성찰이라고 할 수 있다.

 

책의 뒷표지에는 '이 시대의 몽테뉴, 로버트 그루딘의 자유에 관한 단상'으로 되어 있지만 그 정도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저자로 보이지는 않는다.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면 책의 존재는 물론 저자에 대해서도 내가 알 일은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그럼에도 손앞에 놓인 책의 현존은 저자의 삶과 사색으로 바로 이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무런 연결고리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갑작스레 인연이 맺어진 것과 같다. 시간의 어느 고비에 이런 인연이 운명처럼 숨어 있었던 것일까.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는 사색록인지라 잠시 이쪽저쪽 훑어보다가 읽은 대목(실상 이런 대목이 미더워서 이 페이퍼까지 적는다).

미래는 친절한 이방인과 같아서, 예의 바르고 인내심 많으며, 우리와 친해지려고 영원히 노력하지만 영원히 퇴짜를 맞는다. 우리가 하루에 30분씩 운동한다면 우리의 힘과 건강, 아름다움, 기대수명은 크게 향상될 것이다. 하루에 한 시간씩 공부한다면 비교적 빨리 외국어를 배우고 방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새로운 직업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루에 1달러씩 현명하게 투자한다면 30년 후에는 상당한 부를 주무르게 될 것이다. 만약 스스로가 자유 시간을 계획한다는 너무나도 단순한 영광을 부여한다면 우리는 전혀 새로운 자유의 차원 속에서 우리 자신을 확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우리는 이 가운데 하나도 해내지 못한 채, 미래를 몹시 경멸하고 우리 자신을 심하게 무시해버린다. 대부분의 우리에게 미래의 자신을 대면하는 건 매우 불쾌한 경험일 것이다. 굽은 팔다리, 진물 나는 눈, 늘어진 턱살을 떠는 자신의 영혼을 본다는 시각적 충격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건 부끄럽게도 우리가 날마다 부당하게 취급했던 개인을 만난다는 도덕적 충격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미래의 자신과의 조우를 자신이 부당하게 취급한 이방인과의 만남으로 묘사한다. 그 충격은 도덕적 충격이다! 이 정도면 물론 일독해도 좋은 성찰이고 에세이다. 시간에 관한 좋은 에세이의 하나로 꽂아둘 준비가 나는 돼 있다. 당신은 어떤지?..

 

15. 05.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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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넘게 방정리를 해도 찾는 책이 보이지 않아 어이없어 하면서(하지만 익숙한 어이없음이다) 이런 것도 자기분석 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에 카렌 호나이의 <나는 내가 분석한다>(부글북스, 2015)가 출간됐는데(원제는 <자기분석>), 대표작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도 올해 <내가 나를 치유한다>(연암서가, 2015)란 제목으로 나왔기에 호나이는 이제 비로소 독서 목록에 오르게 된 정신분석가다.  

 

 

이전에도 책이 좀 나오긴 했지만 나는 <내가 나를 치유한다> 덕분에 카레 호나이란 이름을 알게 됐다. '프로이트를 잇는 정신분석학의 대가'라고 소개되는 여성 심리학자이자 정신분석가. 올해 독서계를 뜨겁게 했던 알프레드 아들러와 더불어 신 프로이트 학파를 형성한 걸로 돼 있다. 주로 다루는 분야는 신경증. 그런데 현대인의 대다수가 신경증자인 걸 고려하면(라캉 정신분석에서 보면 신경증은 '정상적인' 인격구조다) 그만큼 적용 범위가 넓은 분석과 치유법을 제안한다고 할까. <나는 내가 분석한다>의 소개도 이런 식이다.

신경증에 대한 저자의 견해와 그것을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이 사례 중심으로 세세하게 소개된다. 타인에 대한 의존이 병적일 만큼 심한 사람, 무대 공포증으로 힘들어 하는 사람,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 불안 공포에 시달리는 사람 등이 자신을 분석하는 과정이 세세하게 설명된다. 따라서 그 동안 정신분석 이론서를 통해 정신분석의 세계를 어렴풋이 본 독자들도 이 책을 통해 정신분석의 세계를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저작인 <내가 나를 치유한다: 신경증 극복과 인간다운 성장> 역시도 신경증을 다루는데, 발병 원인과 유형, 그리고 극복 방법에 대해 자세히 밝힌다. 책소개에는 그녀의 관점이 이렇게 요약돼 있다.

모든 신경증은 불리한 조건에 놓인 개인이 좋은 인간 관계를 맺지 못하고 진실한 나를 망각한 채, 현실에 근거하지 않은 이상에 맞춘 자아상을 만들어 내고 그것에 집착하는 데서 발병한다. 신경증에 걸린 사람들은 살면서 겪는 갈등과 불안에서 오는 압박과 긴장을 덜려고 선택한 해결책에 따라 확장 지배 유형, 자기 말소 의존 유형, 체념 독립 유형으로 분류된다. 세 유형이 선택한 신경증 해결책은 가짜 해결책으로 압박감을 일시적으로 덜어 줄 따름이다. 신경증에 걸린 사람은 자기를 분석하고 진실한 나도 찾아, 현실에 직면하고 스스로 책임지며 살 때 신경증을 극복할 수 있다. 현대인이 대부분 앓는 신경증을 극복해야 건강하고 인간답게 성장할 가능성도 열린다.

 

그밖에 호나이의 책은 오래 전에 나온 <현대인의 이상성격>(배영사, 1991)을 제외하면 모두 입문서 내지 소개서다. 두 권의 주저를 읽어본 다음에 더 궁금하다면 참고해볼 만하다. 개인적으로는 '자기심리학'의 하인즈 코헛과 같이 읽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싶다...

 

15. 0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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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멋진 표지와 제목의 책이 출간됐다. 리베카 솔닛(그간에 '레베카 솔닛'으로 표기됐다)의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창비, 2015). 나로선 <이 폐허를 응시하라>(펜타그램, 2012)의 저자로 기억되는데(그 외에도 두 권이 더 번역돼 있다) 영어권에서는 상당한 지명도를 갖고 있는 저자라 한다. 어떤 책인가.

 

생태, 환경, 역사, 정치,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며 섬세하고 날카로운 통찰과 재치 넘치는 글쓰기를 선보여 우리 독자에게도 환영받아온 리베카 솔닛의 신작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전세계에서 공감과 화제를 불러일으킨 신조어 ‘맨스플레인’(mansplain, man+explain)의 발단이 된 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비롯해 여성의 존재를 침묵시키려는 힘을 고찰한 9편의 산문을 묶었다. 잘난 척하며 가르치기를 일삼는 일부 남성들의 우스꽝스런 일화에서 출발해 다양한 사건들을 통해 성별(남녀), 경제(남북), 인종(흑백), 권력(식민-피식민)으로 양분된 세계의 모습을 단숨에 그려낸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늘 마주하는 일상의 작은 폭력이 실은 이 양분된 세계의 거대한 구조적 폭력의 씨앗임을 예리하고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마도 저자에게 공감하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울 (여성)독자가 꽤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나는 그런 성구분을 넘어서 '좋은 에세이'라는 면에서 기대를 표하고 싶다. 마음 같아서는 내일 당장 책을 읽어보고 싶지만 알라딘에서는 바로 주문해도 다음 주 중반에야 책을 받아볼 수 있다. 아쉽지만 리베카와의 만남은 다음 주말에나 가능할 것 같다...

 

15.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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