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위치 휴일이라 샌드위치로 아침을 먹고 일정에 들어가기 전에 간단하게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한달쯤 전에 나온 책이라 '발견'이라고 하기엔 멋쩍지만 오늘에서야 눈에 띄었으니 발견은 발견이다. 에드윈 헤스코트의 <집을 철학하다>(글담, 2015). 원제가 '집의 의미'다.

 

건축가이자 건축평론가인 에드윈 헤스코트가 집의 역사와 공간의 의미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탐구한다. 유명한 건축물보다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 온 저자는 부엌, 거실, 침실, 서재 등의 공간뿐 아니라 창문, 문 손잡이, 책, 옷장에 이르기까지 그 역사와 의미를 살핀다.

유명한 건축물이 아닌 평범한 집, 일상적 공간에 대해서 성찰하고 있는 것이 강점. 친근하게 읽어봄직하다.

 

 

곁들여 읽어볼 만한 책이 영국 철학자 줄리언 바지니의 신작 <철학이 있는 식탁>(이마, 2015)이다. '먹고 마시고 사는 법에 대한 음식철학'이 부제.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는 가장 사소하고도 일상적인 행위인 동시에 관계와 윤리, 실천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 책은 유기농, 친환경, 동물 복지, 지역 생산 재료 등 음식을 둘러싼 논의를 근원부터 들추어 꼼꼼히 살펴보고, 개인이 좋은 삶을 위해 갖추어야 할 품성과 습관을 먹는다는 측면에서 논하고 그것을 어떻게 일상에 적용할 수 있는지 모색한다.

먹고 마시는 일, 곧 '다반사'는 우리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늘상 하는 일이다. 가장 익숙한 일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는 것. 집과 식사, 가장 익숙한 공간과 가장 익숙한 일에 대한 성찰이 어느 수준까지 도달한 것인지 가늠해보는 것도 독서의 재미겠다...

 

15. 05.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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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을 맞아 밀린 일들을 해치우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밀린 피로를 푸는 하루가 되었다. 하긴 좋지 않은 컨디션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 없을 터이니, 좋은 휴식도 일 못지 않게 중요하다. 서재 일도 꽤 밀려 있지만 그냥 느긋하게 '이주의 발견'에 대해서만 적기로 한다(아직 연휴에 여유가 있다는 게 비빌 언덕이다). 윌리엄 데레저위츠의 <공부의 배신>(다른, 2015). '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가 부제다. 하버드대보다는 예일대의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음에도 그렇게 붙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청어람미디어, 2002)를 염두에 둔 제목이겠다.

 

 

원저의 부제는 '잘못된 미국 엘리트 교육과 의미 있는 삶의 길'이다. <똑똑한 양떼>가 원제. 예일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던 저자가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아성찰과 고독, 정신적인 삶의 가치 등에 대해서 생각해보라고 말하자, 한 학생이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반문했단다. "우리가 그저 '똑똑한 양떼'에 불과하다는 건가요?" 책의 제목은 그 질문에서 가져온 듯한데, 저자의 과녁은 공부 잘하는 우수한 학생들을 결국은 '똑똑한 양떼'로 만드는 데 그치는 엘리트 교육 시스템이다. 학생에서 교수까지 아이비리그에서 24년을 보낸 저자는 이렇게 토로한다.

엘리트 교육 시스템은 똑똑하고 유능하며 투지가 넘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하고 소심하고 길을 잃고 지적 호기심이라고는 거의 없는, 목표의식이 부족한 학생들을 만들어낸다. 이들은 특권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같은 방향으로 온순하게 걸어간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알지만, 왜 그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엘리트 교육의 허점'이란 평론을 저자는 2008년에 발표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공부의 배신>은 이를 더 자세하게 다룬 책이다. 찾아보니 뉴욕타임스와 뉴요커에 장문의 서평이 실렸고 베스트셀러에도 올랐다. 미국의 대학사회에 여론 주도층에 꽤 어필한 책으로 보이는데, 미국의 '좋은 대학'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책이 국내에서는 어떤 반응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대학평가에서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대학들 아닌가). 추천사를 쓴 김정운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은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좋은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은 이 책을 무조건 읽어야 한다. '후진 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에 젖어 있는 학생들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읽어야 한다. 사교육 기관의 '불안 마케팅'에 마음 졸이는 부모들도 한번쯤 펼쳐봐야 한다. '좋은 대학'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모든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도대체 '좋은 대학'이 왜 한국사회에 필요한지 고민할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중간시험을 치르고 며칠 휴식을 취하고 있을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까지 한번 일독해봄직하다(학생들이 시간이 없다면 학부모라도).

 

 

한편 저자는 제인 오스틴 전문가이고 <제인 오스틴의 교육>(2011)이란 책을 갖고 있다. <제인 오스틴에게 배우는 사랑과 우정과 인생>(재승출판, 2011)이라고 번역된 책이다(저자가 '윌리엄 데리지위츠'로 표기돼 있다). 학술서로는 <제인 오스틴과 낭만주의 시인들>(2005)이 있다. 오스틴에 대해서는 종종 강의를 하게 되기에 관심이 가는 책들이다...

 

15. 05. 01.

 

 

P.S. 참고로, 미국 대학교육의 문제점을 다룬 책은 몇 권 나와 있다. 다시 언급하자면, 소스타인 베블런의 <미국의 고등교육>(길, 2014), 앤드류 해커 등의 <비싼 대학>(지식의날개, 2013), 프랭크 도너휴의 <최후의 교수들>(일월서각, 2014) 등이다.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면도 있지만,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그럴 만한 역량이 우리에게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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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기 전에 '이주의 발견'을 적는다. 식전이어서 그런지 '먹는 책'이 눈에 띄었다. 데버러 럽턴의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한울, 2015). 저자는 초면인가 했더니 <의료문화의 사회학>(한울, 2009)이란 책으로 먼저 소개된 바 있다. 다양한 분야의 저작을 펴내고 있는 호주의 사회학자다.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의 원제는 번역본이 부제이기도 한 <음식, 몸, 자아>(1996)다. 어떤 책인가.   

음식이 몸과 자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실증적으로 연구하여 정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연구 과정에서 음식 먹기의 사회학과 감정 사회학을 결합시키고 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1996년에 출간되어 오래된 책이라는 느낌도 들지만, 2011년과 2012년에도 재판을 거듭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의 먹기와 관련된 여러 가지 사회 현상도 이 책을 통해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내가 보기에도 매우 흥미로울 것 같다. 다만 교양서라기보다는 학술서에 해당한다는 점(책을 낸 출판사나 책값만 보아도 책의 난이도를 어림할 수 있다). 정말로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인지는 미지수다. 대신 '음식사회학'이란 새로운 분야를 안내하는 입문서 정도로 읽을 수 있겠다. 찾아보니 같은 분야의 책으론 앨런 비어즈워스 등의 <메뉴의 사회학>(한울, 2010)이 번역돼 있다.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과 역자가 같다. 어떤 경로로 번역됐는지 짐작하게 한다.

 

 

아울러 역자가 옮긴 책으론 밥 애슬리 등이 쓴 <음식의 문화학>(한울, 2014)이 더 있다. 최근에 나온 댄 주래프스키의 <음식의 언어>(어크로스, 2015), 그리고 몇년 전에 나온 주영하의 <음식인문학>(휴머니스트, 2011) 등과 같이 묶어서 읽어봐도 좋겠다(입맛을 좀 잃긴 했지만 책에 대한 입맛은 여전한 모양이다). 점심 먹어야겠다...

 

15. 0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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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곤증으로 잠시 헤매다 특이한 '요리책' 두 권 얘기를 꺼내기로 한다. 전문 교정자 김정선의 <동사의 맛>(유유, 2015)과 메리 앤 코즈의 <모던 아트 쿡북>(디자인하우스, 2015)이 두 권의 책이다. 이미 알라딘에서는 '블로거 베스트셀러'에 올라와 있는 <동사의 맛>은 한국어 동사의 세계를 깔끔하게 총정리해주는 책. 겸하여 남자와 여자의 아련한 이야기도 같이 적어두고 있어서, '소설 같은 사전'이자, 장르를 따로 적자면 '사전소설'의 효시도 될 만한 책이다(따로 생각나는 책이 없어서 '효시'라고 적었다). 그게 어떤 것인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일단 맛을 한번 보시라고 할 밖에. 미리 맛보고서 내가 쓴 추천사는 이렇다.

 

저자가 오랫동안 해 온 외주 교정 일을 쉰다고 했을 때, 건강을 염려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있었다. 남의 글을 읽고 다듬는 일에 그만큼 밝은 눈과 노련한 솜씨를 가진 이가 드물었기에.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가 '이제 루비콘 강을 건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어 동사에 대한 이토록 맛깔나면서도 사려 깊은 책이라니! 뛰어난 교정자를 잃은 대신에 빼어난 '한국어 셰프'를 얻었다. 한국어에 어디 '동사의 맛'만 있겠는가. 바라건대 한국어의 모든 맛을 다시 일깨워주기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저자는 알라딘에서 '후와'님으로 활동했고, 출판계에서는 '이모부'로 통했다. '임호부'란 필명으로 낸 독서일기 <이모부의 서재>(산과글, 2013)가 바로 저자의 책이다(개인적으로는 <로쟈의 인문학 서재>를 내면서 인연을 갖게 되었다). 독서 에세이로나 한국어 요리책으로나, 어느 분야이건 저자를 좀더 자주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특이하다는 점에서는 <모던 아트 쿡북>도 마찬가지다. '고흐의 수프부터 피카소의 디저트까지'가 부제인데, "예술과 음식의 오묘한 교집합을 기본으로 한 독특한 콘셉트의 ‘예술 인문 요리책’이다."

현대 예술가의 음식을 소재로 한 정물화, 요리 재료와 음식과 관련된 글들, 그들이 먹은 음식을 소개한다. 그리고 그 음식들의 실제 레시피와 관련된 에피소드들을 담았다. 그림, 시, 에세이, 소설, 악보, 레시피가 어우러진 이 책은 ‘현대 예술가들의 음식에 대한 모든 것’을 엮은 책이라 할 만하다.

페이퍼의 제목으로 갖다 쓴 '읽는 즐거움과 요리하는 즐거움'은 책의 서문에 나온 문구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읽는 짤막한 글 한 편은 소소하지만 큰 기쁨을 준다. 그 글은 물론 조리법에 관한 것일 수도 있지만 부엌에 관련된 다른 글인 경우도 많다. 다른 종류의 글들은 특정 조리법과 연관이 되어 있든 그렇지 안든 간에 요리할 재료에 특별한 질감과 풍미를 더해주는 것 같다. 이를테면 산문의 한 단락이나 시 한 줄이 식탁을 비로소 완벽하게 만들기도 하는 것처럼. 그것이 이상적인 경우라면 그 생생한 예들을 이 책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읽는 즐거움과 요리하는 즐거움을 한데 섞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애초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는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준 요리책, 어마 롬바우어의 <요리의 즐거움>에서 얻은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찾아보니, 국내에는 소개되지 않았지만 롬바우어의 책은 영어권 요리책의 '전설'인 듯하다. 75주년 기념판을 비롯해 여러 종의 책이 나와 있다. 요리 관련 프로그램들도 꽤 인기를 끌고 있는 터이라 우리의 요리책도 더 다양하게, 혹은 '레벨업'돼 나옴직하다. 그래, 무얼 먹으면서 책을 읽기 위해서라도 요리가 빠지면 안 되겠다...

 

15.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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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을 먹고 잠시 머리를 식히기 위해 하루 종일 읽던 책 대신에 집어든 게 그레고어 아이젠하우어의 <내 인생의 결산 보고서>(책세상, 2015)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가장 짧은 대답'이라는 부제까지 고려해도 어떤 책인지 구체적으로 가늠이 되진 않는다. 소개를 보니 저자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추모기사 작가'라는 점(독일에서는 업종이 전문화돼 있나 보다). 그리고 그 경력을 살려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열 가지'를 추린 게 이 책이다. '인생 결산용 질문 열 가지'가 컨셉이라고 할까. 저자의 제안은 열 가지 질문에 스스로 답하고 '내 인생의 추도사' 곧 셀프 추도사를 써보라는 것. 열 가지 질문은 이렇다.  

 

첫 번째 질문_ 스스로 생각할 것인가, 남에게 시킬 것인가?
두 번째 질문_ 왜 사는가?
세 번째 질문_ 나는 행복한가?
네 번째 질문_ 나는 아름다운가?
다섯 번째 질문_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가?
여섯 번째 질문_ 무엇을 해야 하나?
일곱 번째 질문_ 누구를 위해 해야 하나?
여덟 번째 질문_ 신은 있는가?
아홉 번째 질문_ 내 수호천사는 누구인가?
열 번째 질문_ 죽어서도 살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다 답하려고만 해도 몇 년은 더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래서 저자가 '가장 짧은 대답'이란 조건을 내걸었나 보다(저자는 각 질문당 30분씩만 생각하라고 권고한다. '내 인생의 추도사'도 세 페이지만 써야 한다고. 아무도 그 이상은 읽어주지 않아서일까?). 

 

책을 오래 붙들고 있을 수 없어서, 첫번째 질문만 컨닝을 했다. '스스로 생각할 것인가, 남에게 시킬 것인가?' 사실 이건 그 자체로 첫 질문이어야 한다.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각'이란 걸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생각의 요건에 관한 질문은 세 가지다. 1)얼마나 길게 생각해야 할까? 2)어디서 생각해야 할까? 3) 무슨 옷을 입고 어떤 자세로 생각해야 할까? 요약하면, 생각의 분량, 장소, 자세를 정해두라는 것. 그렇게 해서 셀프 추도사를 쓰기 위해 열 가지 질문에 답하는 '30분 철학자'가 돼 보라는 것인 듯하다.

 

 

흠, 당장 실행에 옮기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지만, 적당한 때 적당한 장소에서 시도해봄직하다는 생각은 든다. 생각도 기력이 있을 때 가능하므로, 정신이 온전할 때 말이다. 찾아보니 저자는 1960년생이고, 원저는 작년에 나왔다. 나도 50대 중반에 가서 같은 질문을 던지고 답해볼까. 그래봐야 아주 먼 미래는 아니군...

 

15. 0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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