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를 다룬 국내 학자들의 책 두 권을 관심도서로 같이 묶는다. 먼저 정병준의 <현앨리스와 그의 시대>(돌베개, 2015). '역사에 휩쓸려간 비극의 경계인'이 부제인데, 그 경계인이 물론 제목의 현앨리스이다.

 

일제하 중요 독립운동 인사였던 현순 목사의 맏딸로 제1호 하와이 출생 한국인이자 박헌영, 김단야 등과 독립운동, 재미한인 진보운동에 헌신했던 현앨리스의 비극적 삶과 그 시대를 조망한 책으로, 현앨리스의 개인사에서 출발해 현앨리스와 아들 정웰링턴의 가족사를 거쳐 4세대에 걸친 현씨 집안의 근대사를 다룬다.

'박헌영의 애인'이나 '미국 스파이'이라는 추정만 있었던 한 여인의 삶을 추적하면서 저자는 그가 살았던 시대의 실체적 진실을 복원하려고 한다. '연구'의 성격이 강한 책인데, 문학적 형식으로 푼 책도 나옴직하다는 생각이 든다(어쩌면 영화로도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고).

 

5인의 국내 학자가 공저한 <1970, 박정희 모더니즘>(천년의상상, 2015)는 공저자이기도 한 천정환, 권보드래 교수의 <1960년을 묻다>(천년의상상, 2012)의 속편으로 읽힌다. '유신에서 선데이서울까지'가 부제. "이 책은 박정희부터 이름 없는 장삼이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말과 삶을 통해 유신 시대에 대한 기존 해석이 그동안 조명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다뤘던 부분에 주목하여 문화와 문학, 그리고 역사와 정치학의 사유로 1970년대를 입체적으로 재조명하고 있다."

 

'근대화' 같은 용어 대신에 '모더니즘'을 키워드로 삼은 것이 눈에 띈다(첫 장의 제목이 '유신의 모더니즘'이다). 유신의 재구성, 유신의 재조명이라고 할 수 잇을까. 저자들의 의도는 이렇게 요약된다.

보수에게 유신 시대(1972-1979년)는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 영광의 시기다. 반면 진보에게는 1948년 제헌헌법이 규정한 민주주의가 압살당한 오욕의 시기다. 두 입장은 1970년대 한국 사회가 경험한 근대화를 긍정하느냐 부정하느냐의 차이가 있지만, 모두 정치·경제 영역에 중심을 두고 유신 시대를 파악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1970년대의 일상을 구성했던 구체적인 장면과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러니까 문화와 일상에 초점을 맞추어서 유신 시대를 다시 바라보고자 한다는 것. 그런 의도에 흥미를 느낀다면, 일독해볼 만하다...

 

15.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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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여성 작가 리디 살베르의 산문집 <일곱 명의 여자>(뮤진트리, 2015)가 출간됐다. "글쓰는 일이 삶의 전부인, 불붙은 일곱 명의 여자"를 다룬 책인데, 그 일곱이란 에밀리 브론테, 주나 반스, 실비아 플라스, 콜레트, 마리나 츠베타예바, 버지니아 울프, 잉에보르크 바흐만이다. 주나 반스만 생소한 편. 이 일곱 명의 저자는 "일곱 명의 미친 여자들"이라고도 부른다. 츠베타예바는 이렇게 말했다. "글 쓰는 일을 뺀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 미친 여자들이다.

 

 

리디 살베르느는 지난해 <울지 않기>란 소설로 공쿠르상을 수상했는데,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만큼 작가적 역량은 충분히 신뢰해봐도 좋겠다(작품도 번역되면 좋겠고). 기타 여러 작품이 영어로도 번역돼 있는데, 그 가운데 <애완동물로서 작가의 초상>이란 제목이 눈에 띄어 살펴보니 이미 <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창비, 2010)라고 번역돼 있다.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책이니 그냥 묻힌 작품 같다(번역서 제목도 별로 인상적이지 않다. 원제가 더 낫지 않았을까?). 아무튼 <일곱 명의 여자>가 만족스럽다면, <애완작가> 또한 읽어볼 참이다.

 

 

한편 일곱 명의 여자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출간되고 있는 작가는 단연 버지니아 울프인데, 최근에도 에세이집 <나방의 죽음>(솔출판사, 2015)이 출간됐고, <댈러웨이 부인>(책읽는수요일, 2015)이 다시 번역돼 나왔다. 그리고 수전 셀러스의 <그녀들의 방>(안나푸르나, 2015)도 관련서인데, "현대소설의 선구자 버지니아 울프의 미술가 언니 바네사 벨의 시선으로 그녀들의 일생과 시대, 예술 세계를 담은" 장편소설이다.

 

 

콜레트는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를 말하는데, <암고양이, 2013), <방랑하는 여인>(지만지, 2013), <여명>(문학동네, 2010) 등이 번역돼 있다.  

 

 

바흐만의 대표작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삼십세>(문예출판사, 2005)이며, <말리나>(민음사, 2010)와 <동시에>(북스토리, 2006)가 번역돼 있다.

 

 

실비아 플라스의 경우엔 <실비아 플라스 시 전집>(마음산책, 2013)과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문예출판사, 2004)가 나와 있으며 <실비아 플라스 드로잉집>(마음산책, 2014)까지 출간됐으니 별로 아쉬울 게 없는 편. 아쉬운 건 츠베타예바의 시집이나 산문집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에밀리 브론테의 경우는 물론 <폭풍의 언덕> 정도를 챙겨놓으면 되겠다. 더 꼽을 만한 다른 작품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15. 04.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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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리처드 솅크먼의 <왜 우리는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인물과사상사, 2015)를 고른다. 부제는 '욕망과 무지로 일그러진 선거의 맨얼굴'이고 미국의 현실을 다룬 책이지만,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우리네 얘기다.

 

저자 리처드 솅크먼은 이번 책에서 과감하게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에 도전한다. 그는 9·11 사태 이후 부시 정부의 전횡과, 정부의 선전과 선동에 무방비로 속아 넘어가 전횡을 가능케 한 미국 국민들에 대한 실망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솅크먼은 ‘대중의 어리석음’이라는 난제에 도전하기 위해 각종 여론조사 자료를 언급함은 물론, 미국의 건국 시대로 내려가 과거 미국의 정치는 어떠했는지까지 살펴본다. 그리하여 그는 유권자로서의 국민은 늘 그르지도 않았지만, 늘 옳지도 않았음을 밝혀낸다. 그리고 국민의 현명한 판단을 가로막는 수많은 우민화 장치(언론 조작, 감정에 호소하기, 우리 내부의 편향성 등)의 범람 속에서, 어떻게 ‘현명한 유권자의 시대’를 열어가야 할지 함께 고민하기를 호소한다.

정확하게 한국판도 나왔으면 싶은 책이다. 조자는 조지메이슨대학교의 역사학과 부교수로 <미국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를 포함해 다섯 권의 역사서를 썼다고 소개된다.  <미국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미래인, 2003)과 <세계사의 전설, 거짓말, 날조된 신화들>(미래인, 2001)이 오래 전에 번역되었지만 현재는 절판된 상태. 너무 일찍 번역됐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여하튼 한국판 <왜 우리는 어리석은 투표를 하는가>가 당장에 나와 있지 않아서, 대체해볼 만한 책을 떠올려봤는데, 국민의 어리석음이 어떤 재앙을 초래했는지 보여주는 사례로 (좀 부족해 보이지만) <또, 라이 가카>(책으로보는세상, 2012)부터 <MB의 비용>(알마, 2015)까지 참고해볼 수 있겠다. 아직 전모도 다 드러나지 않은 국가적 재앙을 누군가는 '대통령의 시간'이라고 부른다지만, 말은 바로 하자면 '대국민 사기의 시간'이라고 해야겠다. 그 비용처리가 아직도 까마득한...

 

15. 0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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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책 두 권을 '이주의 발견'으로 고른다. 음식을 가려먹어야 하게 된 이후로는 평소 중요하지 않게 생각한 것들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데, 음식책 역시 그렇다(욕망이란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이어서 그렇겠다).

 

 

레이첼 조던의 <탐식의 시대>(다른세상, 2015)는 음식과 요리의 문명사로 '요리는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꾸었는가'가 부제. 원제는 <요리와 제국>(2013)이다. 식문화사를 통째로 다룬 책은 드물지 않았던가 싶다.

<탐식의 시대>는 출간 즉시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으며, 그 해에 요리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IACP 어워드를 수상했다. 여기에는 5,000년의 식문화사를 한 권에 담아낸 저자의 공력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저자가 단순히 과거의 문명사를 조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을 진단하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요리계'란 표현도 눈길을 끄는데, 아무튼 요리책의 기준을 한단계 올려줄 만하다.

 

 

그리고 댄 주래프스키의 <음식의 언어>(어크로스, 2015).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문학'을 표방한다. 저자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교양 강의 ‘음식의 언어’를 가르치는 스탠퍼드 대학의 언어학 교수이자 계량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라고 소개된다. "요리와 어원의 역사에 대한 다채롭고 진지한 연구로 엄밀성과 읽는 재미를 겸비한 훌륭한 책"(뉴욕타임스)이란 평.

TV도 SNS도 푸드포르노로 넘쳐나는 음식의 시대에, 언어학 분야의 세계적 석학이자 스탠퍼드 대학의 괴짜 언어학 교수 댄 주래프스키는 음식을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 우리의 허기를 품격 있게 채워준다. 그는 고대의 레시피에서 과자 포장지 홍보 문구까지 다양한 음식의 언어들을 통해 케첩, 칠면조, 토스트, 밀가루, 아이스크림이 품고 있는 수천 년 인류 문명의 진보와 동서양의 극적인 만남의 순간들을 발굴해내고, 메뉴판에 담긴 레스토랑의 영업 전략, 앙트레의 용법에서 나타나는 문화의 계급, 포테이토칩이나 아이스크림 마케팅이 겨냥하는 우리의 취향, 맛집 리뷰에서 호평과 악평의 차이점을 분석하며 인간의 진화와 심리, 행동을 해독하는 은밀한 힌트를 던진다.

흠, 음식의 즐거움을 음식책의 즐거움으로 대체하려 한다면, 가장 유력해 보이는 책이로군...

 

15. 03.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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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스톤과 타리크 알리의 대담집 <역사는 현재다>(오월의봄, 2014)를 읽으면서 꼭 번역서가 나왔으면 싶었던 책이 생각보다 일찍 번역돼 나왔다. 동명의 다큐영화로도 제작된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들녘, 2015)다. 방대한 분량 때문에 두 권으로 분권돼 나왔는데, 지난해 이미 구해놓은 원서를 빨리 찾아봐야겠다. 이주에 나온 가장 반가운 책. 우리와도 무관하지 않은 미국 현대사이기에 필독의 의의가 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미국 현대사 시리즈. 미국이 제국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추적해 들어간다. 저자들은 역대 대통령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의 핵심 참모들이 정책 형성을 이뤄가는 길목을 예리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피터 커즈닉의 엄중한 역사적 검증 및 해석에다 올리버 스톤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우러져 박진감 넘치는,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흥미진진한 역사서가 창조되었다. 각 대통령과 중심인물들은 공개.미공개 자료들을 통해 마치 현실로 튀어나온 영화 속 캐릭터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정책과 사건의 유기적 인과관계와 흐름은 미국의 전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미국의 대외정책 결과물로서 한국의 현대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찾아보니 원저는 청소년판과 축약판까지 나왔다. 무자막 DVD 타이틀도 출시됐는데, 이왕이면 한글 자막판으로도 나오면 좋겠다(공영방송에서 이런 다큐를 볼 기회가 있을까?). 미국의 '정상화'를 바라는 미국인뿐 아니라 세계인 모두가 읽고, 또 관람해볼 필요가 있다. 마땅히!..

 

15. 0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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