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게 죽은 여자들이, 혼령이 되어 늦게나마 입을 열어 사대부 남자 관리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여자 귀(鬼)들은 그 남자들의 시스템 안에서 억울함을 풀고 은혜를 갚는다.
이 여자들의 죽음에는 현실이 반영되어 있다. 전쟁, 질병, 강간, 살해, 명예살인, 처첩 고부 간의 갈등, 계모의 구박 등. 그 죽음의 배경에는 아무 것도 안하거나 적극 범죄에 참여하는 아버지, 오빠, 남편, 나라의 관리들이 있다. 은혜 갚는 대신 화를 불러오며 붙어있는 귀신들도 있고, 연정을 고백한 후 죽어버린 귀신도 있고, 후손들을 보호하려 애쓰는 모성애 넘치는 귀신도 있고, 몇 년 무덤 속에 있다가 다시 살아나는, 시침 뚝 떼고 환생하는 시체들도 있다. 하지만 이야기들이 전해지는 통로가 유학자 남정네들이니 어쩔 수 없이 여자 귀신에 답답증이 도질 즈음, 책의 마지막 부분 <여성, 신이 되다>가 우리 나라의 천지창조 신화에 등장하는, 환웅과 웅녀 이전 시대의 여자 거인 '신'에 대한 이야기의 파편들을 들려준다. 하백의 딸 유화부인이 인간이라기 보다는 농경의 여신이라는 해석, 그녀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여신/님프 들 처럼 하늘에서 내려온 '것'에 당해 임신하고 비범한 인물 - 건국 시조를 낳는다는 부분이 흥미롭다. 삼신 할미나 마고 할미, 바리데기가 겪은 여자들의 고초들은 아무리 '신'이 되었다지만 여자 사람들의 기억이 쌓여있는지라 갑갑하기만 하다. 아직도, 여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목소리를 낼 수가, 들어주질 않아서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녀의 일이 나라 지키는 것이었어도 다르지 않다.
책에는 수 많은, 겹치기도 하는 억울한 아랑, 장화 홍련,이생규장전 류의 이야기들이 실려 있고 그에 비해 해석/분석 부분은 탄탄하지 못하다. 10년 전 나온 최기숙의 <처녀귀신>과 많이 겹치는 데 그 책은 처녀, 억울함, 글과 영화에 남은 여자 귀신과 그 한의 정서를 탐구했다면 이번 책은 '왜 여자는 억울하게 죽고 나서야 입을 여는가, 누가 해원을 하는가, 여자 '신'의 존재는 어떤 의미인가'를 고민한다. (별로 다르지는 않...) 끝까지 통쾌함 보다는 고민만 쌓아놓는다. 그러니 우리는 죽기 전에 입을 열고 손을 놀려 이야기를 해야한다. '자궁가족' 이라는 개념으로 결혼 한 여자가 자신의 세를 불리는 과정을 (아들을 낳아야함) 설명하기도 하지만 여자들 사이의 연대는 보이지 않아서 아쉬웠다. 여자들이 서로 챙기는 것은 만신/무당의 굿에서 서로를 품고 달래는 정도일까. 여러 이야기 들 속에서 서양 신화와 고전에서 읽은 것들과 닮은 장면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하지만 책은 .... 기대만큼 무섭지도 않고, (일단 귀신들이 너무 순해서 가해자들을 찢어죽이질 않음) 유학자 남자들에게 기대기만 해서 아쉽다. 그래서 책을 그만 읽을까, 할 때, 짠, 우리의 할매 신들 이야기가 나와서 다행이었다 (지만 지리함은 어쩔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