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권이란 뜻 아니고요, 2번째 감상문입니다.
영화에서 코니는 사냥터 관리인 (채털리 가의 넓은 영지 중 숲부분 이겠지요) 멜러즈의 오두막에서 아일랜드 작가의 책을 들고 와서 읽어요. 그걸 두고 남편 클리퍼드는 심한 경멸을 드러냅니다. 자기가 소설을 쓰거든요. 질투와 시기를 감추질 못하는데 소설 안에선 아일랜드 출신 희곡작가 마이클리스가 등장합니다. 영화에선 배우 대신 책으로 나온 셈이죠. 이 아일랜드 작가는 미혼인데 성공을 얻었지만 클리퍼드와 그 친구 무리들에게선 반영국적인 상놈의 결정판으로 취급당합니다. 그래도 예술계에서 유명한 그는 초대에 응하고 코니와 가까워집니다. 글쓰기에 몰두하는 남편 수발들기에 지쳐가는 코니는 문득 문득 흥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묘사가 ...
"그녀는 뭔가 무서운 매력이 그로부터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데, 그로 인해 그녀는 거의 침착성을 잃을 지경이었다." [...] 그(마이클리스)는 모든 것을 보고 모든 것을 기록하여 새기는 그 가득 찬 시선으로 코니를 쳐다보았다. 그 순간, 깜깜한 밤에 울고 있는 어린애와 같은 것이 그의 가슴으로부터 그녀를 향해 울며 불러대었다. 그녀의 자궁 바로 그곳을 사로잡아 뒤흔드는 울음소리였다.[...] 그는 거의 최면술과 같은 마력으로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그녀의 자궁을 곧장 뒤흔들어 사로잡는 매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코니가 흥분할 때, 자궁이 흔들린답니다? 남자의 시선을 받고 매력에 사로잡혀 볼을 붉히거나 가슴이 빠르게 뛰거나 숨이 막히거나 명치가 뜨거워지는 대신 아랫배도 아니고 허리께도 아니고 (이들 묘사는 이 소설에선 남성들에게 할당됩니다) 코니는 '자궁'으로 느낍니다. 생리통이 아니라 흥분의 자궁통. 갑자기 불안+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자궁 안 어딘가 계속 떨리는 곳이 있어 물 속으로 뛰어들"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로렌스에게 여자는 자궁입니까?
이렇게 마력을 뿜어내던 희곡작가가 두어번 밀회를 갖자 은근 코니의 기에 눌립니다. 자기 맘대로 시간 페이스 조절을 못해요. 그녀가 '응 아직 아니야'라고 하면 가만히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그녀가 베드신에서 주도권을 갖는걸 마이클리스가 비난하자 아, 이제 코니의 맘이 쎄하게 식어버립니다. 마이클리스는 쫄보거든요. 그는 영국여자는 물론 아일랜드 여자랑도 결혼하기 힘들거 같으니까 동양 여자를 찾아본다는 말을 한 사람이에요. 겁많고 눈치 보는 남자에요.
코니는 어느 날 산책을 하다 사냥터 관리인 멜러즈의 목욕하는 장면을 봅니다. 훔쳐 봅니다. 몰래. 그리고 도망칩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그 사내가 몸을 씻고 있었다. [...] 날씬하니 하얀 등은 커다란 대야 위로 구부리고 있었는데 [...] 날씬한 하얀 두 팔을 들어올려 귓가로부터 비눗물을 씻어 내리고 있었다. 물장난 치는 족제비처럼 재빠르고 섬세하면서, 또 완전히 혼자인 듯한 모습이었다. [...] 뭔가 묘하게 그것은 하나의 환상 같은 경험이었다. 그녀는 몸 한가운데를 한 대 얻어맞은 듯했다. 그녀는 그 깨끗하고 섬세한 하얀 허리 아래로 바지가 어슬프게 흘러내려서 엉치뼈가 살짝 드러난 모습을 보았고, 고독한 존재에 대한, 그야말로 순전히 혼자인 한 사람의 존재에 대한 의식이 그녀를 압도했다. 홀로, 내면까지 홀로 존재하며 사는 한 인간의 완전하고 순수한 한 존재의 어떤 아름다움. [...] 그것은 부드럽게 빛나는 어떤 하나의 불꽃이었다. [...] 코니는 이 환상의 충격을 바로 자궁 속으로 받아들였으며, 그녀도 이를 꺠달았다. 그것은 그녀의 몸 안에 들어와 있었다."
코니는 스트레스도 매력도 충격과 환상도 모두 자궁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 타인을 그리는 방식이 어딘가 익숙한듯 낯설어서 두 번을 읽었어요. 이건 선녀탕을 훔쳐보는 나뭇꾼의 대사 같잖아요. 하얀 허리! 날씬하고 섬세하고 순수한! 그걸 보는 코니는 아랫도리가 묵직...아니 자궁이 떨렸대요.
하지만 이 순수하게 혼자라는 존재, 멜러즈는 그러나 고독하게 빛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실은 읍내에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데리고 사는데 (별거중임. 부인이 외도를 했기에 슬픈 사연남 역할을 하고 있음) 그 어머니가 일주일에 한 번씩 멜러즈의 오두막으로 살림을 해주러 오십니다. 나는 자연인이다! 라고 외치는 K숲속의 많은 수염남들 처럼 그도 어머니의 반찬과 빨래 청소 수발을 받고 있는 '하얀' 존재인 것입니다.
많이 썼네요. 실은 오늘 마님과 돌쇠, 아니 하얀 영혼의 뜨거운 장면을 읽었는데... 그건 다음 시간에. (나 혼자 신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