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의 자유는 다른 여자의 노동과 시간으로 만들어진다, 고 들은 적이 있어요. 기혼 직장 여성은 남편보다 가정 노동 시간이 더 길고, 자녀를 보살피는 것은 친척 여성들이나 도우미 등의 존재를 필요로 하니까요. 코니 같은 귀족 여성도 남편의 수발을 혼자 들자니 몸이 상해갑니다. 친정 언니의 간섭/도움으로 이 상황을 바꿔보기로 합니다. 수소문해서 지역의 간호사 자격증이 있는 볼턴 부인을 고용합니다. 40대의 볼턴 부인은 클리퍼드가 성홍열을 앓을 적에 간호한 적도 있어서 그나마 좀 낫게 여깁니다. 


클리퍼드는 부인이 자신을 내버려둔다고, 어느 날은 굿나잇 키스를 안해준다고 섭섭해 합니다.(응? 프루스트?) 차츰 볼턴 부인의 보살핌에 익숙해지고 편안함을 느끼는 그는 점점 수다스러워지고 볼턴 부인에게 이런 저런 교양을 가르치고, 감탄을 받고, 또 "아기처럼" 몸 전체를 내맡깁니다. 볼턴 부인과 새벽 2-3시 까지 푼돈을 걸고 카드 놀이를 하는데 늘 그가 이깁니다. 그는 이럴 때 아주 편안해서 "멍한 상태"가 되는데 그걸 코니는 혐오하죠. 은근 볼턴 부인은 고매한 귀족 나으리, 이땐 이미 문학으로 유명세와 경제적 성과도 이뤄낸 클리퍼드를 자신이 다룬다는 것에 흡족함도 느낍니다. 간병인이 환자, 특히 노인 환자에게 갖는 특이한 종류의 친밀함과 권력 관계에 대해 생각했어요.


"남자들이란 자기 밑바닥 속까지 다 내보이게 되면, 결국 다 아기처럼 된답니다. [...] 그러니까 그저 몸집만 커다란 아기가 되고 마는 거예요." [...] 처음에 볼턴 부인은 신사 계급, 즉 클리퍼드경처럼 진짜 신사 계급의 남자에게는 뭔가 다른 점이 정말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몸집만 어른 크기로 자란 아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이 아기는 묘한 기질과 세련된 태도와 권력을 지니고 있었고, 그녀가 결코 꿈도 꾸지 못한 온갖 종류의 이상한 지식을 지니고 있어 그걸로 여전히 그녀를 위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실은 그녀의 남편이 22년 전에 바로 이곳 광산의 사고로 죽고 제대로 된 사후 보상이나 진실 규명이 이루어 지지 않았기에 볼턴 부인 마음 깊은 곳에는 귀족/산업주에 대한 적대감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녀도 클러퍼드가 그토록 멸시하는 노동자 계층, 볼셰비키 쪽인 겁니다. 이 소설에는 자궁 만큼이나 볼셰비키 라는 단어가 많이 나와요. 시대 정신으로, 폭력적 대중으로, 비인간적인 기계 중심 사상으로, 새로운 정신으로, ... 무섭고 나쁜 것으로요. 클리포드에겐 굿나잇 뽀뽀해주지 않는 엄마, 아니 부인 코니도 "볼셰비키적"입니다. 


그런데 이 볼셰비키적인 채털리 부인이 볼셰비키 책을 읽는 사냥터지기 멜라즈를 만납니다. 


(투 비 컨티뉴드)




댓글(9)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단발머리 2022-12-11 17: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털리 부인에서 이런 생각도 다뤄지는군요. 채털리 부인... 이라고 할 때 저의 추측은 상당히 협소한 거였네요. (뭘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유부만두님! 서둘러 주세요!

유부만두 2022-12-11 18:33   좋아요 1 | URL
굉장히 다양한 이야기와 묘사를 (뭘까요?) 담고 있는 소설이에요. 광산 이야기, 결혼 이야기, 역사 이야기, 자부심 영국뽕 이야기 등등 ... 그런데 여자 주인공은 참 편협하게 그리는 게 한계죠. 로렌스가 약하네요. 아직 2권 완독 전인데요, 흠... 약해요.

책읽는나무 2022-12-12 0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셰비키!!! 광산!!!
프루스트적인 굿나잇 키스?
다이여 쪽 소설과는 완전 다른 쪽이군요?
채털리 부인이라고 해서...그쪽 계열이겠거니?했는데 제가 로렌스 작가를 잘 몰랐네요^^
근데 책 표지 채털리 부인인가요?
운동 전혀 안 한 아기 등이네요ㅋㅋㅋ

그렇게혜윰 2022-12-12 10:30   좋아요 1 | URL
등까지는 자세히 안 봤는데 좀 안으로 굽은 듯도 ㅋㅋㅋㅋ

책읽는나무 2022-12-12 11:08   좋아요 1 | URL
그러고 보니 어깨가 굽었네요. 어깨는 쫙 펴야 좀 더 젊어지는 비결이라고 들었어요. 채털리 부인님!! 어떡하죠..ㅋㅋㅋ

유부만두 2022-12-12 17:12   좋아요 2 | URL
꼿꼿한 탕웨이 허리가 생각납니다. ^^

그렇게혜윰 2022-12-12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채털리부인 읽은 책인가 안 읽은 책인가 막 헷갈리기 시작하네요. 다른 부인을 읽었나? 암튼 이 글을 읽으니 읽었던 안 읽었던 2023년에 채털리부인을 만나야겠어요!

유부만두 2022-12-12 17:11   좋아요 1 | URL
전쟁 후 하반신으로 돌아온 남편을 둔 젊은 마님이 고용인 사냥터지기와 연인이 되는 줄거리에요. 이 관계가 어떻게 발전하고 드러나고 더 큰 혼란/갈등을 불러오는가 하는 거죠.

그렇게혜윰 2022-12-12 17:34   좋아요 0 | URL
보바리 부인이었네요 제가 읽은 건. 채털리 2023 계획에 넣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