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세트 - 전3권
아고타 크리스토프 지음, 용경식 옮김 / 까치 / 1993년 8월
구판절판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사과랑 과자, 초콜릿, 동전 등을 길가 풀숲에 던져버렸다.
우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것은 버릴 도리가 없었다. -상-40쪽

한 남자가 말했다.
-당신 입닥쳐. 여자들은 전쟁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 여자가 말했다.
- 아무것도 모른다구? 바보같은 소리! 온갖 궂은 일, 온갖 걱정에 빠져 지내는 게 여자야. 아이들 먹여 살려야지. 부상병들 돌봐야지. 당신드은 일단 전쟁만 끝나면 모두 다 영웅이 되잖아. 죽었으면 죽어서 영웅, 살아 남았으면 살아서 영웅, 부상병은 다쳐서 영웅. 전쟁을 일으킨 것도 당신들 남자들이고. 전쟁은 당신들 거야. 당신들이 원해서 그렇게 한 거야, 개똥 같은 영웅들아! -상-118쪽

- 잊어버리게. 인생은 그런 거야. 모든 게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게 마련이지. 기억도 흐릿해지고, 고통은 줄어들고. (중략)
- 많은 여자들이 그들의 실종되거나 죽은 남편을 기다리며 울고 있어요. 하지만 노인께서 방금 말했듯이, "고통은 줄어들고, 기억은 희미해지고 있지요"
불면증 환자는 눈을 뜨고 루카스를 바라본다.
- 줄어들고, 희미해지고, 그래, 내가 그렇게 말했지. 하지만 사라지지는 않는다네. -중-149쪽

- 나는 네 작업을 위해서, 네 책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했어. 나의 일, 나의 고객, 나의 말년을. 난 너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발끝으로 걸어다녔어. 그런데 여기 온지 2년이 다 되어가도록 한 줄도 안썼다고? 넌 먹고 마시고 피우는 일만 했어! 술주정꾼. 식충이야,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중략)
나는 누나가 옳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누나가 살아 있는 한 어떠한 글도 쓸 수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중-187쪽

그가 말했다.
- 아니, 나는 혼자 살고 있어.
- 왜 혼자 사는 거요?
루카스가 말했다.
- 모르겠어. 어쩌면 아무도 내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 -하-129쪽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9-07-31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으으윽. 막 미치게 추천이에요. 특히 이 부분.

「온갖 궂은 일, 온갖 걱정에 빠져 지내는 게 여자야. 아이들 먹여 살려야지. 부상병들 돌봐야지. 당신드은 일단 전쟁만 끝나면 모두 다 영웅이 되잖아. 죽었으면 죽어서 영웅, 살아 남았으면 살아서 영웅, 부상병은 다쳐서 영웅. 전쟁을 일으킨 것도 당신들 남자들이고. 전쟁은 당신들 거야. 당신들이 원해서 그렇게 한 거야, 개똥 같은 영웅들아!

웽스북스 2009-07-31 10:22   좋아요 0 | URL
그쵸그쵸, 저도 그 부분 너무 마음에 들어요. 개똥같은 영웅들아!!!!!!

근데 다락방님. 덧글에 볼드 어떻게해요? html 태그 먹어요?
테스트

웽스북스 2009-07-31 10:22   좋아요 0 | URL
오오오오옷 되는구나!!!!! (써먹어야지~)

네꼬 2009-07-31 11:27   좋아요 0 | URL
테스트 2

네꼬 2009-07-31 11:27   좋아요 0 | URL
오오 진짜 되네 되네!

웽스북스 2009-07-31 12:56   좋아요 0 | URL
귀여워 네꼬님 귀여워요 ㅋㅋ

다락방 2009-07-31 14:56   좋아요 0 | URL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내가 좋아하는 두 여인네들이 여기서 놀고(?)있네요. 아이 좋아라~
하트 뿅뿅 ♡.♡

웽스북스 2009-08-04 00:11   좋아요 0 | URL
에에에 하트뿅뿅에 볼드 넣어주셨었어야죠

니나 2009-08-04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ml 태그 먹어요? 냠냠~

웽스북스 2009-08-04 16:22   좋아요 0 | URL
냠냠. 맛있게. ㅋㅋ
 
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장바구니담기


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10쪽

나이든 사람 가운데는 젊은이들의 괴이한 짓을 흉내내면서 자기네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애써 믿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개중에도 제일 혈기왕성한 무리를 따라 힘껏 소리를 질러보건만 그 함성은 입 안에서만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중략) 지혜로운 이들은 점잖게 자기들의 길을 간다. 그들의 그윽한 미소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여 있다. 그들은 자기들 역시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소란스럽게, 그들처럼 경멸감을 가지고 안일에 빠져 있던 구세대를 짓밟아왔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지금 용감하게 횃불을 들고 앞장선 이들도 결국은 자기 자리를 물려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옛 도시 니네베가 그들의 위업을 하늘 높이 쌓아올렸을 때 새로운 복음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말하는 당사자에게는 자못 새롭게 여겨지는 용감한 말도 알고 보면 그 이전에 똑같은 어조로 백번도 더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 -17쪽

그때만해도 화술은 하나의 기예처럼 닦여져야 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말에 재치있게 응수할 수 있는 기예는 가시나무로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더 높이 평가 받았다. 경구도 아직은 우둔한 사람들이 재치 흉내를 내기 위해 상투적으로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교양인의 잡담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22쪽

작가들은 인생을 게임하듯 살았는데 그녀들은 작가들에게는 그런 방식이 어울린다고 여겼지만 자기는 거기에 맞춰 행동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작가들의 괴팍한 도덕관도 기이한 옷차림이며 터무니없는 논리나 역설처럼 그저 재미있게 여겨졌을 뿐 그녀의 신조에는 눈곱만치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7쪽

그들이 배경과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은 탓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니 무늬가 어슴푸레해져 그저 하나의 멋진 색깔로만 보이는 것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그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그런 정도였다고나 할까. 사회라는 유기체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그것에 의지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는 희미한 그림자처럼 보이게 마련인데 그들 역시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들은 마치 몸 안의 세포들 같았다. 필수적인 요소이면서 건강한 상태에서는 더 중요한 전체 유기체와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37쪽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좀 부끄러운 노릇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고 싶은 충동도 없지 않았다. -40쪽

세상 평판은 여성의 가장 내밀한 감정에도 위선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법이다. -53쪽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56쪽

당사자들에게야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문제였겠지만 그가 이 뻔뻔스러운 대꾸를 어찌나 쾌활하게 하던지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이 자의 행위가 가증스러운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였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애써 그에 대한 도덕적 노여움을 되살려냈다. -63쪽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69쪽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을 문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77쪽

그 소문은 스트릭랜드 부인에 대해 적지않은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체면도 상당히 세워주었다. -87쪽

나로서는 도덕적인 문제로 분개하는 일이 어쩐지 쑥스럽게 여겨진다. 그런 일은 어쩐지 자기만족을 위한 일 같아서, 유머감각을 가진 이에게는 어색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중략) 스트릭랜드에게는 냉소적이면서도 진실한 데가 있어 나는 그 앞에서는 무슨 일이든 허세처럼 보이는 일은 좀처럼 하기가 어려웠다. -164쪽

정직한 작가라면 특정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느끼기보다 그 행위의 동기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고백할 것이다. -197쪽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223쪽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275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9-07-24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적인 분노를 느끼면서도 죄인을 직접 응징할 완력이 없을 때는 늘 비참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p.43)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p.85)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p.90)


사랑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남자란 거의 없다.(p.219)

웽스북스 2009-07-25 12:56   좋아요 0 | URL
와. 덧글로 밑줄 나누기. 헤헤.
놓치고 간 부분들을 이렇게 덕분에 다시 읽으며 공감해요-

Arch 2009-07-2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밑줄로 다시 보니까 새로운데요. 저도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몇번째 읽으시는거예요?
아, 받아(40p)오타다^^ (어디서 오타 지적질이야!)

웽스북스 2009-07-25 12:57   좋아요 0 | URL
아. 아니요. 저는 처음이에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오타. 아. 수정하기 귀찮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수정합니다 ㅋㅋ
 
걸리버 여행기 - 원전 완역판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79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박용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10월
장바구니담기


계란의 얇은 쪽을 깨느니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고 하는 사람의 수가 반란 때마다 1만 1천명을 넘는다고 집계되어 있소. 그런데 두꺼운 쪽 깨기파의 책은 금지된 지 오래되었고 그쪽 사람들은 법률에 의해서 간직을 갖지 못하게 되어 있소. -57쪽

어떤 것이 크다거나 작다는 것은 단지 인간의 생각 나름이라고 하는 일부 철학자들의 말은 지당한 것이다. 예를 들어 릴리푸트 사람들도 그들보다 훨씬 더 작은 인간들을 어디에선가 만날 수 있을 것이고 현재 내가 맞닥뜨린 이 거대한 인간들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디에선가 그들보다 훨씬 큰 인간들을 만나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107쪽

나의 조그만 친구여 자네는 자네 조국에 대해서 칭찬을 했네. 고관이 될 조건은 사악한 마음씨라는 점을 입증해 주었네. 법을 악용하는 데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재판관이 된다는 사실도 입증해 주었네. 자네 나라에서는 어떤 제도가 시작은 훌륭했지만 결국에는 부패로 인해서 빛이 바랜 걸로 보이네. 자네가 말한 것으로 볼 때 어떤 사람이 어떤 지위를 얻는 데는 그 방면의 학식으로 얻는 것 같지도 않고 귀족들은 훌륭한 인격 덕분에 귀족이 되는 것 같지도 않고 성직자들은 신앙심이나 학식으로 인해서 진급하는 것 같지도 않고, 군인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진급하는 것 같지도 않고, 재판관들은 훌륭한 판결을 했다고 승진하는 것 같지도 않고 의회의 의원들은 애국심으로써 그 자리로 올라가는 것 같지도 않네. 자네는 여러 해 동안 이곳 저곳으로 떠돌아다니면서 보냈으니 자네 나라의 악에 물들지 않았으면 하네. 내가 자네 이야기를 들어보고 판단한 바로는, 자네 나라의 인간들은 자연이 이제껏 이 지구상에서 기어다닐 수 있게 만들어준 벌레들 중에서도 가장 고약한 벌레들이라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네. -167쪽

내가 사방에서 보이는 거대한 것들에 길들여졌고 나 자신이 왜소한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자기의 결점을 인정하지 않듯이 무시해버렸던 거다. -187쪽

영생인들 중에서 비교적 불행이 덜한 사람은 기억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사람들이라고 한다. -270쪽

나는 야후가 고약한 짐승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그들이 힘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네가 말한 그런 모든 짓을 능히 할 것이라고 쉽게 믿을 수도 있을 거다. 그런데 네 이야기가 나에게는 새로운 불안감을 일으킨 것 같다. 내 귀가 그처럼 고약한 말을 자꾸 들음으로 인해서 이제 점점 혐오감을 갖지 않고서 그런 말을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되는 거다. 내가 이 나라의 야후들을 미워하기는 하지만 내가 날카로운 돌이 나의 발굽을 쳤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는 없는 것처럼 그것들 성질이 더럽다고 해서 비난하지 않는다. 그런데 소위 이성을 갖췄다고 하는 너희 나라 종족이 그런 잔인한 행위를 수없이 저지를 수 있는 걸 보면 이성의 타락상이 갈 데까지 갔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321쪽

나의 나라와 다른 나라에서는 야후들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후이늠들은 노예처럼 대우받는다는 사실을 내가 나의 주인에게 설득하려고 했는데, 사실 나의 나라의 야후나 그 나라의 야후가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354쪽

이성에 따라서 행도하는 후이늠들은 그들이 소유한 훌륭한 덕성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팔다리를 가졌다고 해서 자랑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387쪽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Jade 2009-07-05 08: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켁 웬디양님 밤 새신 거예요? 아님 너무 일찍 깨신건가...

웽스북스 2009-07-05 22:43   좋아요 0 | URL
30분 자고 깼어요 ㅜㅜ 2시쯤? ; 온라인쇼핑 버닝하다가 그러고자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밑줄긋기라도 ㅋㅋ 저거 올리고 또 바로 잤어요 ㅎㅎㅎ

다락방 2009-07-06 12: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진짜 부끄러운데요,

제가 고등학교때 이 책 무삭제완역판이 나왔거든요. 그때 도서대여점에서 빌려 읽고는 와, 굉장하다, 하고 생각했어요. 말의 나라에 갔을 때 그 언어를 배우는데 굉장히 체계적이잖아요, 또 거인국에 가서 여자의 가슴에 품어져서는 가슴의 그 땀구멍들을 묘사하는 그 역함도 굉장히 상세하구요. 그래서 다 읽고 나서는 쉬는 시간에 문학선생님을 찾아뵙고 여쭤봤었어요.

"선생님. 걸리버 여행기 무삭제완역판을 읽었는데요, 걸리버는 실존인물인가요? 이 이야기는 모두 실제 있었던 이야긴가요?" 하고 말이죠.

선생님은 웃으시면서 아니라고, 소설이라고 해주셨는데, 저는 선생님도 사실은 잘 모르는게 아닐까, 하던 생각을 했어요. 그때 살짝 제가 돌았었나봐요. 하핫. 지금 생각하면 참 어처구니가 없어요. 대체 왜 그런 질문을 한건지..

웽스북스 2009-07-06 16:53   좋아요 0 | URL
뭐 어때요- 그래도 다락방님은 고등학교 때 걸리버여행기 읽은 여자잖아요- ㅎㅎㅎㅎㅎㅎㅎ 진짜 리얼하게 잘썼죠- 게다가 앞쪽 (제가 본 번역본으로는 뒤쪽)에 편지까지 들어있으니까 더욱 리얼하긴해요- 전 이해해요. 뭐가 부끄러워. ㅋㅋㅋㅋㅋㅋㅋ 전 서른살에 걸리버여행기 읽은 여자에요 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2009-07-06 17:13   좋아요 0 | URL
읽으면 뭐해요. 뭐 그닥 생각은 잘 안난다는거? ㅋㅋ

웽스북스 2009-07-09 12:5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흙. 그렇게 따지면. 저의 독서는. 죄다.
흙.

Alicia 2009-07-09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거 교보에서 재고없음으로 뜨길래 문학수첩걸루 샀어요.

웽스북스 2009-07-09 12:59   좋아요 0 | URL
문학수첩 책이 더 잘팔리는 것 같던데요. ㅎㅎ
(전 순전히 표지땜에 ㅋ)
교보는 매장에는 있던데, 왜 온라인에는 없을까~
 
테레즈 라캥
에밀 졸라 지음, 박이문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3월
장바구니담기


더욱이 그들은 이처럼 마주 보면서도 무관심하며 겁을 먹게 된 데 대해서 서로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냉정한 태도를 신중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의 평온과 극기는 고도의 지헤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육체의 안정과 마음의 수면을 바라는 척 행동했다. 한편 자기들이 느끼는 혐오감과 걱정은 공포의 결과이며 벌에 대한 말없는 두려움이라고 여겼다. 가끔 그들은 억지로 희망을 가지려 애썼고 과거의 타는 듯한 꿈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들은 상상의 공허함에 무척이나 놀랐다. 그러자 그들은 가장 가까운 장래에 있을 결혼 생각에 매달려 보았다. 그 목적지에 도달하면 아무런 걱정도 없이 서로 몸을 맡기고 정열을 다시 찾게 될 것이며 바라던 최고의 쾌락을 맛볼 것이다. 이러한 희망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가라앉고 그들 사이에 생겨난 허무의 밑바닥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과거와 똑같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했으며, 영원히 결합되어서 완전한 행복을 이루게 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153쪽

테레즈와 로랑은 일 년 이상을 그들의 사지에 박혀 그들을 결합시키고 있던 쇠사슬을 가볍게 여겨왔다. 죄를 범했을 당시의 날카로운 흥분이 사라져 긴장이 풀리고 모든 것이 싫어졌으며 안정과 망각을 바라게 되었다. 이 두 범죄자들은 그들이 자유로워져 어떤 사슬에 더는 묶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묶여 있던 쇠사슬은 땅에 끌렸고 멍한 행복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으려고 했고 조용하고 안정된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의 진실은 그들이 다시금 열렬한 말을 나누게 하여 그 쇠사슬은 팽팽하게 조여졌고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영원히 결박되어 있다고 느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176쪽

노년의 이 마지막 사랑 속에는 이기심이 섞여 있었다. -185쪽

마음의 종교는 이상스럽고 미묘한 것이었다. -191쪽

그들은 사랑의 말을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 마치 환자들이 공동의 고통에 대해서 숨은 동정심을 느끼듯이 서로 이해하고 관영하는 것 같았다. 둘 다 자신의 혐오감과 공포심을 감추고 싶어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 주는 야릇한 밤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조그만 소리에도 새파랗게 질린 채 아침까지 앉아 있으면서 모든 신랑 신부가 결혼 초에는 이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는 척했다. 이것은 두 미친 남녀의 서투른 거짓이었다. -231쪽

그들은 전력을 다해 귀중한 라캥 부인의 건강을 유지시키려고 애썼다. 의사들을 부르고 세심히 간호를 했다. 그들은 병자를 간호하는 와중에 일종의 망각과 안정감을 얻어 더욱 열성을 보였다. 저녁 나절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삼자를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식당과 집 전체가 그들의 침실처럼 잔인하고 불결한 장소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라캥 부인은 자신을 열심히 보살펴주는 두 사람에게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두 사람을 결합시키고 사만 몇천 프랑을 그들에게 준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250쪽

이러는 동안 테레즈와 로랑은 분열된 이중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들 내부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해가 지자마자 떨리는 신경증적이고 공포에 휩싸인 존재며 또 하나는 해가 뜨면 마음 편히 숨쉬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마비된 존재여싸. 그들은 두 가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단 둘만 있을 때는 불안에 허덕였으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평화롭게 미소를 짓곤 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마음속을 찢어놓고 있는 고통을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안정되고 행복해 보였다. 자신들의 고통을 본능적으로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251쪽

그는 여성적 기질과 날카롭고 미묘한 감성을 길러내도록 이 사내를 변화시킨 무시무시한 충격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카미유의 살인자에게는 이상한 변화가 생긴 게 틀림없지만 그와 같은 신비를 분석해서 파고들기는 힘들었다. 로랑은 온몸과 정신을 뒤흔들어놓은 큰 충격으로 겁쟁이가 되면서 동시에 예술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전에는 피가 너무 많아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건강의 두터운 증기에 의해 눈이 멀어 있었다. 그러나 여위어 떨고 있는 지금 그는 불안한 열에 달뜨며 히스테릭한 기질의 생생하고 날카로운 감수성을 갖게 되었다. 공포 속에서 사는 동안에 그의 정신은 착란했고 천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정신병을 앓고 온몸에 충격을 전하는 신경과민을 겪으면서 이상스럽게 명석한 예술적 감각이 발전된 것이었다. 살인 이후로 그의 육체는 가벼워진 것 같았고 산만한 그의 두뇌는 거대해보였으며, 사상의 급격한 확장 속에서 미묘한 창조와 시인으로서의 명상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거동이 돌연히 달라지고 그의 작품도 단번에 개성을 갖고 생동하여 아름답게 된 것이다. -260쪽

만일 마음 편히 포옹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다면 조금도 카미유를 딱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서 커다란 이득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육체는 결혼으로부터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공포와 혐오감이 그들을 어디로 이끌어가는지 무서운 마음으로 생각해보았다. 다만 불길하고 난폭한 결말을 지닌 고통에 찬 무서운 미래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들은 마치 함께 묶인 두 적대자들처럼 빠져나가려고 헛된 애를 쓰며 발버둥을 쳤지만 풀려나지 못한 채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결박된 상태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리란 걸 깨닫게 된 그들은 살을 도려내는 듯한 끈에 신경이 상하고 서로의 접촉에 구역질을 느끼고 매시간 괴로움이 증가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제 손으로 제 몸을 결박한 것을 망각하고는 한순간도 더 결박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서로를 심하게 책망하고 서로 욕설을 퍼붓고 고함지르고 비난함으로써 괴로움을 덜고 스스로 낸 상처를 감싸려고 애썼다.(중략)그들은 서로 엿보고 시선으로 더듬어 살피면서 상처를 뒤적거리고 그 상처를 찔러서 고통에 찬 고함을 지르게 하는 일에서 쓰디쓴 쾌락을 맛보았다-289쪽

다시 여자가 되고 다시 소녀가 되기까지 한 테레즈는 공포 앞에서 굳세게 서 있을 힘마저 잃어버리고 동정심과 눈물과 후회에 몸을 던진 것이다. 약간의 위안이라도 찾으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녀는 육체와 정신이 쇠약하게 된 것을 이용하려 했다. 그녀의 흥분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던 죽은 자도 어쩌면 눈물 앞에서는 굴복하리라. 그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카미유를 진정시키고 만족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나름의 계산으로 회한에 몸을 맡겼다. 하느님을 속일 생각으로 입술로만 기도를 올리고 회개한 듯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용서를 얻으려 하는 어떤 신자들처럼 테레즈는 자기를 낮추고 가슴을 두드리며 뉘우치는 말들을 찾아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두려움과 비겁한 생각만이 있었다. 더욱이 그녀는 스스로를 방기하며 저항하지 않고 슬픔에 몸을 맡기는 데에서 일종의 육체적 쾌락을 맛보기도 했다. -301-1쪽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절망적 감정을 내보임으로써 시어머니를 못견디게 했다. 부인은 테레즈에게 일용품으로 변했다.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공포 없이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일종의 기도단 역할을 했다. 테레즈는 울고 싶거나 마음을 풀고 싶은 생각이 들면 곧 온몸이 마비된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외치며 혼자 회한의 연극을 하곤 했다. 그러면 가슴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301-2쪽

라캥 부인에게는 며느리가 보여주는 이 희극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었다. 그녀는 며느리가 퍼붓는 고통에 찬 말에 이기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언제나 카미유의 살인사건을 회상하는 테레즈의 긴 독백을 억지로 들으면서 무서운 고통을 느꼈다. 그녀는 테레즈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꺾일 수 없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풀 수 없어 더욱 괴로웠다. 하루 종일 용서를 구하는 말과 천박하고 비겁한 애원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녀는 그런 말에 대답하고 싶었다. 차가운 거절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끝끝내 말을 하지 못한 채 테레즈가 늘어놓는 변명을 제지하지도 못하고 듣고만 있어야 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귀도 막을 수 없는 그녀의 비통한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었다. 테레즈의 말은 하나하나 부인의 머릿속에 마치 자극적인 노래처럼 천천히 탄식조로 들려왔다. 그녀는 문득, 두 살인자가 악마같이 잔인한 심보로 이런 고역을 가하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303쪽

"오! 당신은 정말 착하세요!" 하고 테레즈는 외쳐댔다. "제 눈물에 감동하신 것을 전 잘 알아요. 당신의 시선은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전 구원을 받았어요!"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질리도록 키스를 퍼부었다. 부인의 무릎 위에 자기 머리를 얹고는 손에 키스하고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으면서 열렬한 애정으로 부인을 보살폈다. 시간이 지나면서 테레즈는 자기 희극을 실제로 믿게 되었다. 그녀는 시어머니한테서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행복감에 겨워서 부인을 대했다. -304쪽

그녀를 특히 못 견디게 했던 것은 벼락이라도 칠 듯한 눈초리를 던지고 있는데 거꾸로 자비심을 발견한 척하는 테레즈의 가혹한 조소였다. -305쪽

"우린 큰 죄를 지었어요. 우리가 조금이라도 안정된 생활을 맛보려면 뉘우쳐야만 해요. 난 울기 시작하자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나처럼 하세요. 무서운 죄를 지어 제대로 벌을 받았다고 함께 인정해요"-306쪽

이러한 구타는 그녀가 겪는 삶의 고통에 치유제가 되기도 했다. 저녁에 많이 맞으면 그날 밤은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312쪽

테레즈는 시어머니가 사라지면 이제 누구 앞에 무릎 꿇고 후회의 눈물을 흘릴까 싶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끝없이 늘어놓았다. -315쪽

서로의 마음을 찢어놓지 않고 서로 고통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들은 증오와 잔인함에 대한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반발과 끌림이 그들을 떼어놓는 동시에 붙들어놓고 있었다. (중략) 그들은 비겁했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여전히 공포의 생활 속에서 질질 끌려가며 살고 있었다. -317쪽

아무 할 일도 없는 지금, 그런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게 몹시 당혹스러웠다. 억지로라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행복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며 팔짱을 끼고 느긋이 앉아 있으면 되는 최고의 행복을 성취했는데도 평화로이 그런 행복을 즐기지 못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현실 앞에서 무력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절망을 좇는 데 쏟았으며 치유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더욱 파고들었으므로 한가함은 그의 괴로움을 더욱 끔찍하게만 했다. 그가 꿈꾸었던 동물적인 생활인 한가로움은 바로 그에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어떨 때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는 일거리를 간절히 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짓눌러 사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소리 없는 숙명의 무게 아래 다시 떨어지곤 했다. -322쪽

그는 한 시간의 마음의 안정을 살 수 있다면 그녀를 백 번이라도 팔아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332쪽

의심하는 마음과 폭로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들을 가혹한 친밀함 속에 묶어두었다. 결혼한 이래로 이처럼 가까이 결합해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고통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강요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았으며, 한 시간이라도 떨어져 있기보다는 극심한 고통을 견디는 편을 택했다. -339쪽

"이 방은 '평화의 전당'이야"-345쪽

둘은 상대방의 마음에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다시 발견하고 얼어붙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당황한 얼굴에서 은밀한 계획을 읽으면서 서로 가없게 여기고 서로 무서워했다. -347쪽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9-06-21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무척 인상깊에 읽은 책이에요.
'박쥐' 보고 나서 찾아 읽었다우^^

웽스북스 2009-06-30 01:3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시간나는데로 에밀졸라의 다른 책들도 보고싶어요. 흐.

2009-06-22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음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4
나쓰메 소세키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02년 8월
장바구니담기


나는 그 후로도 자주 섭섭함을 느꼈지만 그런 이유로 선생님과 소원해질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섭섭한 마음이 들려고 할 때마다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다. 더 다가가면 갈수록 내가 예상하는 어떤 것이 언젠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어렸다.-17쪽

나는 처음 선생님을 뵈었을 때 다가가기 어려운 묘한 분위기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가까워져야겠다는 의지가 내 가슴속 어딘가에서 강하게 발동했다. 선생님을 상대로 이런 느낌을 갖은 사람은 어쩌면 나 혼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직감이 나중에 사실로 입증됐기 때문에 나는 다른 사람들이 유치하다고 하더라도, 바보 같다고 비웃더라도 그것을 미리 예견한 나의 직감에 대해서는 아무튼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인간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 안으로 들어오려는 것을 두 팔 벌려 껴안을 수 없는 사람 - 그것이 선생님이었다. -23쪽

"나는 외로운 사람입니다만 때에 따라선 댁도 외로운 사람 아니오? 나는 외로워도 나이를 먹었으니 흔들리지 않고 견딜 수 있지만 젊은 당신은 다르지요. 움직일 수 있는 만큼 움직이고 싶을 거요. 움직이면서 무엇엔가 충돌해보고 싶을 거란 말이오"
"전 조금도 외롭지 않습니다"
"젊은 것만큼 외로운 것도 없지요. 그렇지 않다면 왜 당신은 그렇게 자주 날 찾아오는 겁니까?"
여기서도 이전에 했던 이야기가 다시 선생님의 입에서 반복되었다.
"당신은 나를 만나도 아마 어딘가에는 외로움이 남아 있을 거요. 나에게는 당신을 위해 그 외로움의 뿌리를 끄집어낼 만큼의 힘은 없으니까요. 당신은 이제부터 밖을 향해 팔을 벌려야 할 겁니다. 그때부턴 내 집 쪽으로는 발길을 돌리지 않게 되겠지요"-27-28쪽

"나는 훗날 그런 모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고 싶네. 나는 지금보다 더 지독한 외로움을 참기보다 차라리 외로운 지금의 상태로 버텨가고 싶네. 자유, 독립 그리고 나 자신으로 가득찬 현대에 태어난 우리는 그 대가로 모두가 이 외로움을 맛봐야겠지"-49쪽

자신에게도 생각이 있따는 것을 상대방에게 보여주고 거기서 달콤한 희열을 느낄 정도로 사모님은 현대적인 분이 아니셨다. 내 눈에 사모님은 깊은 곳에 묻혀 있는 마음을 소중히 여기는 분으로 보였다.-55쪽

사모님과 나, 두 사람은 오랫동안 같은 화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나는 근본적인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사모님의 불안도 근저에서 표류할 뿐 실체에 접근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 말씀하신 사건에 대해서는 사모님도 많은 걸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알고 있는 내용을 전부 내게 밝힐 수도 없었다. 따라서 위로하는 나도, 위로받는 사모님도 똑같이 등대 없는 검은 바다 위를 부유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떠다니면서 사모님은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심정으로 미덥잖은 내 판단에 의지하려고 했다. -65쪽

나는 마음속으로 아버지와 선생님을 비교해 보았다. 두 분 모두 세상 사람들 눈에는 있는지 없는지 모를 만큼 눈에 띄지 않는 분들이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의 가치 기준으로 점수를 매기면 두 분 모두 빵점이었다. 게다가 이렇게 장기 두기를 좋아하는 아버지는 단순한 놀이 상대로서도 내게는 영 모자랐다. 한편 시간이나 보내려고 왕래해왔던 것이 아닌 선생님은 반복되는 만남에서 생겨나는 친밀함 이상으로 언제부턴가 내가 사고하는 데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잠깐, 단순히 사고라고 말하니 너무 딱딱한 느낌이 든다. 나의 가슴속이라고 바꿔 표현하고 싶다. 내 살속에 선생님의 힘이 스며 있다고 해도, 내 피 속에 선생님의 생명력이 흐르고 있다고 해도 나에게는 조금도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가 나와 피를 나눈 친아버지이고, 선생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완전한 타인이라는 명백한 사실을 새삼스레 떠올리고 비로소 큰 진리라도 발견한 듯이 신기해했다. -75쪽

대대로 유교인 집안에 기독교 신자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는 것처럼 내게 묻어 있던 냄새는 우리 부모님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물론 그러 점에 대해 나는 입밖에 내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몸에 밴 것이기 때문에 굳이 숨기려 해도 알게 모르게 부모님 눈에는 거슬려 보였던 것이다. 마침내 이곳 생활이 지겨워졌다. -76쪽

"요즘은 왜 예전만큼 책을 많이 읽지 않으세요?"
"딱히 왜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데- 어차피 아무리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도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그리고"
"그리고 또 이유가 있나요?"
"또 있다고 할 정도의 이유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말이야, 사람들과 만나 얘길 하다가 다른 사람의 질문에 내가 잘 몰라 대답을 못하면 속으로 굉장히 수치스럽게 생각했는데 요즘엔 모른다는 것이 그렇게 수치스럽게 생각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책을 읽어서 답을 알아내려는 의욕이 생기지 않아. 뭐 간단히 말해서 늙었다는 얘기지."-81쪽

너무 진부한 대답이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냉철한 두뇌로 새로운 발견을 입에 담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원리를 이야기하는 편이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네. -197쪽

아무리 그의 머릿속이 위대한 사람들의 이미지로 가득 차 있어도 그 자신 스스로가 인간미를 겸비한 사람이 되지 않는 이상 그런 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난 이미 깨닫고 있었네. -247쪽

다시 말해서 난 정직한길을 걸어갈 생각을 하면서도 발을 헛딛는 바보였네. 혹은 아주 교활한 남자였지.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건 오늘날까지 하늘 아래 오직 나의 마음밖에 없네. -313쪽

작은 아버지에게 배신당했을 때 사람은 믿을 게 못된다는 점을 절실히 느낀 건 사실이지만 그건 타인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이지 내 자신에게만큼은 그때까지만 해도 확실한 믿음이 있었네. 세상이 어찌 돌아가든 나 자신은 멋진 인간이라는 신념이 마음속 어딘가에 있었단 말이지. 그 믿음이 K로 인해 무참히 깨져버리고 나 자신도 작은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마음은 심하게 흔들리게 됐네. 인간들에게 등을 돌린 나는 결국 나 자신도 저버리고 닫힌 공간에 날 가두게 된 것이지. -329쪽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하게 믿고 사랑하는 사람마저 날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생각하니 씁쓸했지. 이해시킬 방법은 있지만 이해시킬 용기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슬퍼졌네. -331쪽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치니 2009-06-15 13: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 읽게 되었던 기억이 새삼 새록새록 나네요.
혹시 안 읽어보셨다면 이 작가의 <그 후>도 읽어보시길. :) 저에겐 '글을 잘 쓴다는게 이런 거구나' 싶게 만들었던 책이에요.

웽스북스 2009-06-16 11:59   좋아요 0 | URL
흐흐 그후도 집에 있는데 계속 못보고 있었어요-
(예전에 중고샵에 꽂혔을 때 한참 이것저것 사면서 나쓰메소세키것도 엄청 샀었다는 ㅋㅋ)

꼭 봐야겠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