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이 그들은 이처럼 마주 보면서도 무관심하며 겁을 먹게 된 데 대해서 서로가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냉정한 태도를 신중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들의 평온과 극기는 고도의 지헤의 산물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었다. 그들은 육체의 안정과 마음의 수면을 바라는 척 행동했다. 한편 자기들이 느끼는 혐오감과 걱정은 공포의 결과이며 벌에 대한 말없는 두려움이라고 여겼다. 가끔 그들은 억지로 희망을 가지려 애썼고 과거의 타는 듯한 꿈을 찾으려 애썼다. 그러나 그들은 상상의 공허함에 무척이나 놀랐다. 그러자 그들은 가장 가까운 장래에 있을 결혼 생각에 매달려 보았다. 그 목적지에 도달하면 아무런 걱정도 없이 서로 몸을 맡기고 정열을 다시 찾게 될 것이며 바라던 최고의 쾌락을 맛볼 것이다. 이러한 희망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가라앉고 그들 사이에 생겨난 허무의 밑바닥으로 빠지지 않을 수 있었다. 그들은 과거와 똑같이 서로 사랑하고 있다고 확신했으며, 영원히 결합되어서 완전한 행복을 이루게 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153쪽
테레즈와 로랑은 일 년 이상을 그들의 사지에 박혀 그들을 결합시키고 있던 쇠사슬을 가볍게 여겨왔다. 죄를 범했을 당시의 날카로운 흥분이 사라져 긴장이 풀리고 모든 것이 싫어졌으며 안정과 망각을 바라게 되었다. 이 두 범죄자들은 그들이 자유로워져 어떤 사슬에 더는 묶여 있지 않다고 생각하기까지 했다. 묶여 있던 쇠사슬은 땅에 끌렸고 멍한 행복 속에서 그들은 조용히 쉬고 있었다. 그들은 다른 곳에서 사랑을 찾으려고 했고 조용하고 안정된 삶을 꿈꾸었다. 그러나 되돌릴 수 없는 사건의 진실은 그들이 다시금 열렬한 말을 나누게 하여 그 쇠사슬은 팽팽하게 조여졌고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영원히 결박되어 있다고 느껴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176쪽
노년의 이 마지막 사랑 속에는 이기심이 섞여 있었다. -185쪽
마음의 종교는 이상스럽고 미묘한 것이었다. -191쪽
그들은 사랑의 말을 한마디도 입에 올리지 않았고 과거를 완전히 잊어버린 것처럼 행동했다. 마치 환자들이 공동의 고통에 대해서 숨은 동정심을 느끼듯이 서로 이해하고 관영하는 것 같았다. 둘 다 자신의 혐오감과 공포심을 감추고 싶어했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 주는 야릇한 밤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거의 말도 하지 않고 조그만 소리에도 새파랗게 질린 채 아침까지 앉아 있으면서 모든 신랑 신부가 결혼 초에는 이처럼 행동하는 것이라고 믿는 척했다. 이것은 두 미친 남녀의 서투른 거짓이었다. -231쪽
그들은 전력을 다해 귀중한 라캥 부인의 건강을 유지시키려고 애썼다. 의사들을 부르고 세심히 간호를 했다. 그들은 병자를 간호하는 와중에 일종의 망각과 안정감을 얻어 더욱 열성을 보였다. 저녁 나절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제삼자를 잃지 않으려 했던 것이다. 식당과 집 전체가 그들의 침실처럼 잔인하고 불결한 장소가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라캥 부인은 자신을 열심히 보살펴주는 두 사람에게 커다란 감동을 느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두 사람을 결합시키고 사만 몇천 프랑을 그들에게 준 건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250쪽
이러는 동안 테레즈와 로랑은 분열된 이중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들 내부에는 서로 완전히 다른 두 개의 존재가 있었다. 하나는 해가 지자마자 떨리는 신경증적이고 공포에 휩싸인 존재며 또 하나는 해가 뜨면 마음 편히 숨쉬고 모든 것을 잊을 수 있는 마비된 존재여싸. 그들은 두 가지 생활을 하고 있었다. 단 둘만 있을 때는 불안에 허덕였으나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평화롭게 미소를 짓곤 했다. 사람들 앞에서는 마음속을 찢어놓고 있는 고통을 전혀 내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안정되고 행복해 보였다. 자신들의 고통을 본능적으로 감추고 있었던 것이다. -251쪽
그는 여성적 기질과 날카롭고 미묘한 감성을 길러내도록 이 사내를 변화시킨 무시무시한 충격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카미유의 살인자에게는 이상한 변화가 생긴 게 틀림없지만 그와 같은 신비를 분석해서 파고들기는 힘들었다. 로랑은 온몸과 정신을 뒤흔들어놓은 큰 충격으로 겁쟁이가 되면서 동시에 예술가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전에는 피가 너무 많아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건강의 두터운 증기에 의해 눈이 멀어 있었다. 그러나 여위어 떨고 있는 지금 그는 불안한 열에 달뜨며 히스테릭한 기질의 생생하고 날카로운 감수성을 갖게 되었다. 공포 속에서 사는 동안에 그의 정신은 착란했고 천재의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말하자면 정신병을 앓고 온몸에 충격을 전하는 신경과민을 겪으면서 이상스럽게 명석한 예술적 감각이 발전된 것이었다. 살인 이후로 그의 육체는 가벼워진 것 같았고 산만한 그의 두뇌는 거대해보였으며, 사상의 급격한 확장 속에서 미묘한 창조와 시인으로서의 명상이 스쳐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거동이 돌연히 달라지고 그의 작품도 단번에 개성을 갖고 생동하여 아름답게 된 것이다. -260쪽
만일 마음 편히 포옹하고 즐겁게 살 수 있었다면 조금도 카미유를 딱하게 여기지 않았을 것이며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에서 커다란 이득을 누렸을 것이다. 그러나 육체는 결혼으로부터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공포와 혐오감이 그들을 어디로 이끌어가는지 무서운 마음으로 생각해보았다. 다만 불길하고 난폭한 결말을 지닌 고통에 찬 무서운 미래만이 보일 뿐이었다. 그들은 마치 함께 묶인 두 적대자들처럼 빠져나가려고 헛된 애를 쓰며 발버둥을 쳤지만 풀려나지 못한 채 무기력해지기만 했다. 그러다가 결박된 상태에서 영원히 빠져나가지 못하리란 걸 깨닫게 된 그들은 살을 도려내는 듯한 끈에 신경이 상하고 서로의 접촉에 구역질을 느끼고 매시간 괴로움이 증가하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자신들이 제 손으로 제 몸을 결박한 것을 망각하고는 한순간도 더 결박을 견딜 수가 없어서 서로를 심하게 책망하고 서로 욕설을 퍼붓고 고함지르고 비난함으로써 괴로움을 덜고 스스로 낸 상처를 감싸려고 애썼다.(중략)그들은 서로 엿보고 시선으로 더듬어 살피면서 상처를 뒤적거리고 그 상처를 찔러서 고통에 찬 고함을 지르게 하는 일에서 쓰디쓴 쾌락을 맛보았다-289쪽
다시 여자가 되고 다시 소녀가 되기까지 한 테레즈는 공포 앞에서 굳세게 서 있을 힘마저 잃어버리고 동정심과 눈물과 후회에 몸을 던진 것이다. 약간의 위안이라도 찾으려는 희망 때문이었다. 그녀는 육체와 정신이 쇠약하게 된 것을 이용하려 했다. 그녀의 흥분 앞에서 굴복하지 않았던 죽은 자도 어쩌면 눈물 앞에서는 굴복하리라. 그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카미유를 진정시키고 만족시키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나름의 계산으로 회한에 몸을 맡겼다. 하느님을 속일 생각으로 입술로만 기도를 올리고 회개한 듯 겸손한 태도를 취하면서 용서를 얻으려 하는 어떤 신자들처럼 테레즈는 자기를 낮추고 가슴을 두드리며 뉘우치는 말들을 찾아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오직 두려움과 비겁한 생각만이 있었다. 더욱이 그녀는 스스로를 방기하며 저항하지 않고 슬픔에 몸을 맡기는 데에서 일종의 육체적 쾌락을 맛보기도 했다. -301-1쪽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절망적 감정을 내보임으로써 시어머니를 못견디게 했다. 부인은 테레즈에게 일용품으로 변했다. 그녀에게 시어머니는 공포 없이 자신의 과오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일종의 기도단 역할을 했다. 테레즈는 울고 싶거나 마음을 풀고 싶은 생각이 들면 곧 온몸이 마비된 부인 앞에 무릎을 꿇고 외치며 혼자 회한의 연극을 하곤 했다. 그러면 가슴이 가벼워지는 것이었다. -301-2쪽
라캥 부인에게는 며느리가 보여주는 이 희극보다 더 무서운 형벌은 없었다. 그녀는 며느리가 퍼붓는 고통에 찬 말에 이기심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언제나 카미유의 살인사건을 회상하는 테레즈의 긴 독백을 억지로 들으면서 무서운 고통을 느꼈다. 그녀는 테레즈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그녀는 꺾일 수 없는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그것을 풀 수 없어 더욱 괴로웠다. 하루 종일 용서를 구하는 말과 천박하고 비겁한 애원의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그녀는 그런 말에 대답하고 싶었다. 차가운 거절의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끝끝내 말을 하지 못한 채 테레즈가 늘어놓는 변명을 제지하지도 못하고 듣고만 있어야 했다.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귀도 막을 수 없는 그녀의 비통한 마음은 표현할 길이 없었다. 테레즈의 말은 하나하나 부인의 머릿속에 마치 자극적인 노래처럼 천천히 탄식조로 들려왔다. 그녀는 문득, 두 살인자가 악마같이 잔인한 심보로 이런 고역을 가하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303쪽
"오! 당신은 정말 착하세요!" 하고 테레즈는 외쳐댔다. "제 눈물에 감동하신 것을 전 잘 알아요. 당신의 시선은 가엾게 여기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어요..... 전 구원을 받았어요!"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질리도록 키스를 퍼부었다. 부인의 무릎 위에 자기 머리를 얹고는 손에 키스하고 행복에 겨운 미소를 지으면서 열렬한 애정으로 부인을 보살폈다. 시간이 지나면서 테레즈는 자기 희극을 실제로 믿게 되었다. 그녀는 시어머니한테서 용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행복감에 겨워서 부인을 대했다. -304쪽
그녀를 특히 못 견디게 했던 것은 벼락이라도 칠 듯한 눈초리를 던지고 있는데 거꾸로 자비심을 발견한 척하는 테레즈의 가혹한 조소였다. -305쪽
"우린 큰 죄를 지었어요. 우리가 조금이라도 안정된 생활을 맛보려면 뉘우쳐야만 해요. 난 울기 시작하자 훨씬 마음이 편안해졌어요. 나처럼 하세요. 무서운 죄를 지어 제대로 벌을 받았다고 함께 인정해요"-306쪽
이러한 구타는 그녀가 겪는 삶의 고통에 치유제가 되기도 했다. 저녁에 많이 맞으면 그날 밤은 잠을 잘 잘 수 있었다. -312쪽
테레즈는 시어머니가 사라지면 이제 누구 앞에 무릎 꿇고 후회의 눈물을 흘릴까 싶었다. 그녀는 시어머니에게 살아야 하는 이유를 끝없이 늘어놓았다. -315쪽
서로의 마음을 찢어놓지 않고 서로 고통을 주고받지 않는 것은 불가능해보였다. 그들은 증오와 잔인함에 대한 욕망을 느끼고 있었다. 반발과 끌림이 그들을 떼어놓는 동시에 붙들어놓고 있었다. (중략) 그들은 비겁했기 때문에 그대로 남아 있었으며 여전히 공포의 생활 속에서 질질 끌려가며 살고 있었다. -317쪽
아무 할 일도 없는 지금, 그런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게 몹시 당혹스러웠다. 억지로라도 행복해지고 싶었다. 그는 자신이 행복해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행복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며 팔짱을 끼고 느긋이 앉아 있으면 되는 최고의 행복을 성취했는데도 평화로이 그런 행복을 즐기지 못하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현실 앞에서 무력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시간을 절망을 좇는 데 쏟았으며 치유할 수 없는 고통 속으로 더욱 파고들었으므로 한가함은 그의 괴로움을 더욱 끔찍하게만 했다. 그가 꿈꾸었던 동물적인 생활인 한가로움은 바로 그에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어떨 때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는 일거리를 간절히 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를 짓눌러 사지를 꼼짝 못하게 하는 소리 없는 숙명의 무게 아래 다시 떨어지곤 했다. -322쪽
그는 한 시간의 마음의 안정을 살 수 있다면 그녀를 백 번이라도 팔아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332쪽
의심하는 마음과 폭로를 두려워하는 마음은 그들을 가혹한 친밀함 속에 묶어두었다. 결혼한 이래로 이처럼 가까이 결합해 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이처럼 고통을 느껴본 적도 없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강요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서로에게 눈을 떼지 않았으며, 한 시간이라도 떨어져 있기보다는 극심한 고통을 견디는 편을 택했다. -339쪽
둘은 상대방의 마음에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다시 발견하고 얼어붙은 채 그대로 서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당황한 얼굴에서 은밀한 계획을 읽으면서 서로 가없게 여기고 서로 무서워했다. -3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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