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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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신화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타고난다. 그래서 보통 사람과 조금이라도 다른 인간이 있으면 그들의 생애에서 놀랍고 신기한 사건들을 열심히 찾아내어 전설을 지어낸 다음 그것을 광적으로 믿어버린다. 범상한 삶에 대한 낭만적 정신의 저항이라고나 할까. -10쪽

나이든 사람 가운데는 젊은이들의 괴이한 짓을 흉내내면서 자기네 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애써 믿으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개중에도 제일 혈기왕성한 무리를 따라 힘껏 소리를 질러보건만 그 함성은 입 안에서만 공허하게 울릴 뿐이다. (중략) 지혜로운 이들은 점잖게 자기들의 길을 간다. 그들의 그윽한 미소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차가운 비웃음이 깃들여 있다. 그들은 자기들 역시 지금의 젊은이들처럼 소란스럽게, 그들처럼 경멸감을 가지고 안일에 빠져 있던 구세대를 짓밟아왔던 일을 기억한다. 또한 지금 용감하게 횃불을 들고 앞장선 이들도 결국은 자기 자리를 물려주게 되리라는 것을 안다. 마지막 말이라는 것은 세상에 없다. 옛 도시 니네베가 그들의 위업을 하늘 높이 쌓아올렸을 때 새로운 복음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말하는 당사자에게는 자못 새롭게 여겨지는 용감한 말도 알고 보면 그 이전에 똑같은 어조로 백번도 더 되풀이되었던 말이다. 추는 항상 좌우로 흔들리고 사람들은 같은 원을 늘 새롭게 돈다. -17쪽

그때만해도 화술은 하나의 기예처럼 닦여져야 하는 것이었다. 상대방의 말에 재치있게 응수할 수 있는 기예는 가시나무로 불을 때서 음식을 만드는 것보다 더 높이 평가 받았다. 경구도 아직은 우둔한 사람들이 재치 흉내를 내기 위해 상투적으로 갖다 붙일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교양인의 잡담에 활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했다. -22쪽

작가들은 인생을 게임하듯 살았는데 그녀들은 작가들에게는 그런 방식이 어울린다고 여겼지만 자기는 거기에 맞춰 행동하려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았다. 작가들의 괴팍한 도덕관도 기이한 옷차림이며 터무니없는 논리나 역설처럼 그저 재미있게 여겨졌을 뿐 그녀의 신조에는 눈곱만치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27쪽

그들이 배경과 뚜렷하게 분리되지 않은 탓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보니 무늬가 어슴푸레해져 그저 하나의 멋진 색깔로만 보이는 것이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내가 그들로부터 받은 인상은 그런 정도였다고나 할까. 사회라는 유기체의 일부로서 그 안에서 그것에 의지해서만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는 희미한 그림자처럼 보이게 마련인데 그들 역시 흐릿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그들은 마치 몸 안의 세포들 같았다. 필수적인 요소이면서 건강한 상태에서는 더 중요한 전체 유기체와 분리될 수 없는 하나가 되어 있는 것이다. -37쪽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는 좀 부끄러운 노릇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고 싶은 충동도 없지 않았다. -40쪽

세상 평판은 여성의 가장 내밀한 감정에도 위선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법이다. -53쪽

그때만 해도 나는 인간의 천성이 얼마나 모순투성이인지를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가식이 있으며 고결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비열함이 있고 불량한 사람에게도 얼마나 많은 선량함이 있는지를 몰랐다. -56쪽

당사자들에게야 더할 나위 없이 심각한 문제였겠지만 그가 이 뻔뻔스러운 대꾸를 어찌나 쾌활하게 하던지 나는 웃음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는 이 자의 행위가 가증스러운 것임을 다시 한번 상기하였다. 그러고는 마음속으로 애써 그에 대한 도덕적 노여움을 되살려냈다. -63쪽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69쪽

남의 칭찬을 바라는 마음이 너무 간절하고 남의 비난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우리는 스스로 적을 문안에 들여놓은 셈이다. -77쪽

그 소문은 스트릭랜드 부인에 대해 적지않은 동정심을 불러일으켰고 동시에 체면도 상당히 세워주었다. -87쪽

나로서는 도덕적인 문제로 분개하는 일이 어쩐지 쑥스럽게 여겨진다. 그런 일은 어쩐지 자기만족을 위한 일 같아서, 유머감각을 가진 이에게는 어색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중략) 스트릭랜드에게는 냉소적이면서도 진실한 데가 있어 나는 그 앞에서는 무슨 일이든 허세처럼 보이는 일은 좀처럼 하기가 어려웠다. -164쪽

정직한 작가라면 특정한 행위들에 대해서는 반감을 느끼기보다 그 행위의 동기를 알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강렬하다는 것을 고백할 것이다. -197쪽

인생은 우스꽝스럽고 지저분한 일들의 뒤범벅이고 웃기에 적절한 소재였다. 하지만 웃으려니 슬펐다. -223쪽

사람은 자기 바라는 대로 되는 게 아니라 생겨먹은 대로 된다는 것을 그 사람들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2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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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7-24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덕적인 분노를 느끼면서도 죄인을 직접 응징할 완력이 없을 때는 늘 비참한 기분이 들게 마련이다.(p.43)


이제는 한 인간의 마음안에도 좀스러움과 위엄스러움, 악의와 선의, 증오와 사랑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음을 너무도 잘 안다.(p.85)


고통을 겪으면 인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앙심을 품게 만들 뿐이다.(p.90)


사랑을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기는 남자란 거의 없다.(p.219)

웽스북스 2009-07-25 12:56   좋아요 0 | URL
와. 덧글로 밑줄 나누기. 헤헤.
놓치고 간 부분들을 이렇게 덕분에 다시 읽으며 공감해요-

Arch 2009-07-24 09: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밑줄로 다시 보니까 새로운데요. 저도 참 좋아하는 작가인데. 몇번째 읽으시는거예요?
아, 받아(40p)오타다^^ (어디서 오타 지적질이야!)

웽스북스 2009-07-25 12:57   좋아요 0 | URL
아. 아니요. 저는 처음이에요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오타. 아. 수정하기 귀찮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
덕분에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수정합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