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0년 3월
구판절판


야사에 따르면 그는 주로 칼끝의 속도를 한없이 늦추는 검술을 했다고 해. 병법의 허허실실이지. 그거 알아? 빠른 칼끝은 얇은 종이나 베지만 한없이 느린 칼끝은 구절폭포를 갈라 <마지막 롤러코스터>-57쪽

내겐 꿈이 있었어요. 어떻게 이 레일을 벗어나지 않고 플라잉코스터를 날아오르게 할 것인가? 재인씨와 같은 친구들은 스스로를 비웃고 친구를 비웃다가 결국은 레일 안에서 천천히 죽어갔고 살아남은 다른 친구들은 레일을 떠나버렸죠. 꿈. 그렇죠? 그것을 꿈이라고 말하면 왜 안되는 거죠? 아직 꿈에서 깨어나지 않았는데, 우리는 왜 다른 세계를 준비해야만 하는 거죠? <마지막 롤러코스터>-71쪽

밥을 먹을 때도 용변을 볼 때도 거울을 들여다볼 때도 그 이물감만이 시간을 증명할 뿐이죠. 그 이물감의 시간. 친구가 죽기 전까지의 시간만이 진짜죠. 그거 아세요? 돌이켜보면 모두들 그렇게 떠나버렸죠. 내가 사랑했던 친구도, 돌아오지 않을 세월도. 내게 남은 것은 그저 번데기처럼 목을 가로막는 죄책감뿐이죠. 죄책감만이 내 지난 시절을 증언해줄 뿐이죠. 죄책감에 사로잡혀 내가 스피드와 텐션에 젊음의 마지막을 바치는 사이에 수많은 별자리들은 천몇 번씩 천공을 휘휘 돌았고 까닭 없는 눈물들만이 숲을 감쌌죠. 사람들이 상처를 잊어버리는 동안, 사람들이 우리에게 총을 쏜 빌어먹을 개새끼들까지 용서하는 동안 인간의 목소리로 그 개새끼들의 이름을 부르는 동안 나는 더욱 더 스피드와 텐션에 몰두할 수밖에 없었어요. <마지막 롤러코스터>-72쪽

나는 그냥 아무것도 되고 싶지 않았던 거야. <뒈져버린 도플갱어>-94쪽

태어났던 시간으로부터 스무 해가 지난 어느 날 승민은 마치 그 사진처럼 허공에 멈췄다. 태어나던 때의 그 광채, 승민이 아직 갓난아기여서 세상의 모든 것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던 그 때 승민의 눈 속으로 들어온 세상의 빛나는 모습처럼 빛을 발하는 그 광채가 스무 해가 되던 어느 날 허공에 멈춰버린 승민을 비추자 그 이후의 삶은 그림자로서의 삶이 됐다. 자신이 스스로 존재했었던 단 한순간이 있었고 이제 그는 그 순간의 그림자일 뿐이다. <뒈져버린 도플갱어>-103쪽

승민은 한 때 자신의 모습이었던 어떤 이미지를 본다. 그 그림자로서 승민은 이미지를 바라본다. 그 이미지는 지금 허공에 멈춰 있다. 그 이미지에 비쳐지는 아주 오래 전의 광채가 없어진다면 이젠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그림자다. 승민은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맨살을 만진다. 차가운 살갗이 만져진다. <뒈져버린 도플갱어>-104쪽

재식에게 독일이란 자신을 당당하게 만드는 먼 곳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르네마그리트,<빛의제국>,1954년>-112쪽

오징어는 낙지보다는 암모나이트에 더 가까워요. 오징어도 아주 오래전부터 이 지구에 살아왔던 동물이죠. 아주 오래 전에는 오징어에게도 암모나이트와 같이 딱딱한 껍질이 있었대요. 그런데 어느 날 환경이 변한 거에요. 자신을 보호하던 그 딱딱한 껍질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절멸하는 위기가 찾아온 거죠. 어떻게 환경이 변했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 그들에게는 심각했던 변화임에 틀림없어요. 왜냐하면 결국 껍질을 고수한 암모나이트 쪽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으니까. (중략)

그때가 궁금해요. 껍질을 버린 오징어가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는 암모나이트를 보았을 때 서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죽지 않는 인간 - 카르타필루스>-174-175쪽

웬일인지 학교 다닐 때 내 주위의 사람들이 참 많이 죽었어. 건물에서 뛰어내려서 죽은 친구도 있고 군대 가서 자살한 녀석도 있고. 개네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런 생각을 했지. 치사한 자식들. 죽는 것은 너무나 쉬워. 하지만 살아남는 일이 더 어려운 거야. 하지만 그 길을 내려가다가 보니까 죽는 게 어렵다는 생각이 들더라구. 살아남는 것은 의외로 쉬운 일이야. 먼저 죽은 사람에게는 그래서 예의를 표해야 하는 거지. <죽지 않는 인간 - 기억의 어두운 방>-201쪽

내가 인식하는 이 세상 모든 사물이 온 곳, 바로 이미 죽은 것들이다. 이미 죽었으되 살아가는 것들은 이제 다시는 죽지 않는다. 아버지도 주고 J형도 죽지만 동굴을 지나온 나는 죽지 못하는 운명이다. 이미 죽었기 때문에! 착한 사람들은 모두 예수의 존재를 믿었고 예수 당대에 죽었지만 몇몇은 죽지 못하고 영원히 떠도는 것이다. 마치 껍질을 벗어버린 오징어처럼, 동포를 배반하고 살아남은 변절자처럼. 한 번 죽어 다시 죽지 못하는 중음신의 넋처럼.
동굴의 끝에 이르러 비로소 나는 엘리아데가 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입문은 요컨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방법을 배우고 새로이 부활하는 기술을 체득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이 세상에서 고통을 겪고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계시해준다"
동굴을 지나온 사람은 이제 다시는 그 동굴에 들어가기 전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는 '입문'했으며 그는 '죽었고' 이제는 그는 '영원히 죽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죽지 않는 인간 - 기억의 어두운 방>-203쪽

'꿈은 아니었을까?'
'꿈보다는 진하던걸요. 암만해도 잊힐 리 없겠네요'
'잘 지내?'
'잘 지내다마다요. 거긴 어딘가요?'
'낮과 밤처럼 거기와는 아주 다른 곳이야'
'지나가니 행복한가요?'
'.....'
<죽지 않는 인간 - 기억의 어두운 방>-206쪽

하늘은 붉다. 붉은 하늘 아래로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들의 공간을 차지하고 들어앉아 웅크리고 있다. 저맘다 한 시대의 전조가 되고 한 시대의 징후가 되는, 자신들만의 무덤 같다. 공기는 서로 통하지 않고 어두워지지도 않는다. 그런 하늘 아래에서는 누구도 잠을 잘 수 없다. 밤이 깊어가도록 하늘은 더욱더 붉어지기만 한다. 어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자신이 가려지고 한 시대가 가려지고 운명이 갈지고 존재가 가려질 만한 그런 새카만 어둠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영원히 어두워지지 않는 붉은 조명 아래에서 우리는 영원히 건너갈 수 없는 바다를 건너가는 사람들처럼, 혹은 해가 지지 않는 사후의 세계를 떠다니는 중음신의 저주받은 육신처럼 90년대를 건너가고 있는 것이다.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스스로 불임의 육신이 되어 멸종의 길을 택한 생물체처럼 누구보다도 나선 제 몸뚱이를 증오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를 거부하고 유령의 모습으로 떠다니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죽었다. 죽은 몸으로는 더이상 피가 흐르지 않고 눈물도 말라버렸다. 유령의 삶은 어제가 오늘 같고 또한 오늘이 내일 같기만 하다. <구국의 꽃, 성승경>-232-233쪽

열심히 무슨 일을 하든, 아무 일도 하지 않든, 스무 살은 곧 지나간다. 스무 살의 하늘과 스무살의 바람과 스무 살의 눈빛은 우리를 세월 속으로 밀어넣고 저희들끼리만 저만치 등뒤에 남게 되는 것이다. 남몰래 흘리는 눈물보다도 더 빨리 우리의 기억 속에서 마르는 스무 살이 지나가고 나면 스물 한 살이 오는 것이 아니라 스무 살 이후가 온다. <스무 살>-237쪽

스무 살의 가을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스무 살의 가을이 지나가고 나면 다시 스무 살의 겨울이 오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연계점도 없는, 전혀 다르고 낯선 계절이 찾아온다. 그때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스무 살의 가을을 생각할 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열리지 않는 마음, 한 여자와의 우스꽝스러운 이별 등으로 떠오를 가을의 나를 말이다. -25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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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죄
이언 매큐언 지음, 한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9월
구판절판


그녀는 자기가 만든 미로 속에 자신을 가두고 맹목적으로 걸어 들어갔으며 너무나 어렸고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해주고자 하는 마음이 너무 컸기 때문에 갔던 길을 되돌아나올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독립심이 없었거나 아니면 독립심을 가지기엔 너무 어린 나이였다. 위압적인 하객들이 최초의 증언 때에 모여서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녀는 제단 앞에서 이들을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최초의 확신에 더 깊이 몸을 내던져야만 마음속의 의구심을 희석시켜버릴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알고 이싸고 믿는 것을 꽉 부여잡았고 생각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은 채 최초의 증언을 반복하면서 자신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다는 어렴풋한 느낌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사가 종결되고 형이 언도되어 사람들이 흩어지고 나서는 그 일을 깨끗이 잊으려는 의도적인 노력과 무자비한 청소년기 특유의 망각 덕분에 무사히 청소년기로 진입할 수 있었다. -245쪽

그녀는 정말로 남을 모방한 소위 현대적 글쓰기 양식 뒤에 숨어서 의식의 흐름 - 그것도 세 명이나 되는 사람들의 의식의 흐름-속에 죄책감을 익사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449쪽

연인들을 살려두고 다시 만나게 한 것은 나약하고 도피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베푼 친절이었고 망각과 절망에 맞서는 투쟁이었다고 생각하고 싶다. 나는 그들에게 행복을 주었지만 그들에게 나를 용서하게 할 만큼 이기적이지 않다. 그럴 만큼 이기적이지는 않다. -52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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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꼬 2009-03-24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밑줄 속의 밑줄.

그녀의 소설에 없는 것은 그녀의 삶에도 없었다. 그녀가 삶에서 정면으로 부딪치기 싫어했던 것은 소설에서도 빠져 있었다. 진정한 소설이 되기 위해 빠져서는 안될 것이 바로 그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꼼꼼한 웬디 씨. (싱긋)

웽스북스 2009-03-25 00:26   좋아요 0 | URL
싱긋. 네꼬님만 할까.
 
건지 아일랜드 감자껍질파이 클럽
메리 앤 셰퍼.애니 배로우즈 지음, 김안나 옮김 / 매직하우스 / 2008년 12월
품절


이것이 그대에게 휴식을 주지 않는가. 한 때 사람들이 영혼을 가졌다는 것이-평판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 혹은 수사적 표현으로서가 아니라, 그들이 아는 진실로서, 그리고 그에 의하여 행동하는 진실로서! 참으로 그 때는 또 다른 세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영혼의 소리를 잃었다는 것은 애석한 일이다.. 우리는 다시 그것을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더 나쁜 일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181쪽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한 번이라도 이런 생각을 해본 사람 있소? 영혼에 대한 관념이 시들어갈 때쯤 프로이트가 에고를 들고 나와 그 자리를 대신했다는 걸? 그 사람의 타이밍이란! 잠시 멈춰서 곰곰이 생각하지도 않았단 말인가? 이런 무책임하고 늙은 멍청이 같으니라고. 내 생각에 사람들이 에고에 대해 잡소리를 쏟아내는 건 자신에게 영혼이 없다는 게 두렵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봐!"-1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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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학 - 미국인도 모르는 미국 이야기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박상은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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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편리성에 너무 집착한 나머지 그에 따르는 모든 불편함을 감수한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 현실이 그러하다. 시간을 절약해주고 우리 삶을 보다 단순하게 해준다고 하는 것들이 사실은 그와 반대되는 효과를 낼 때가 많다. (중략) 자동 커튼과 자동 차고문, 자동으로 고양이 먹이를 덜어주는 기계, 회전식 넥타이걸이 등은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것처럼 보일 뿐 실제로 우리의 삶에 비용과 복잡성을 더해준다. -209쪽

따라서 주문을 하면 보통 이런 식이다.
디카페인 모카를 넣은 캐러멜 라테 콤보에 시나몬 트위스트하고 저지방 크림치즈 베이글로 주세요. 그런데 이 가게에서 쓰는 양귀비 씨는 고도 불포화 식물성 기름으로 볶은 건가요?
아뇨 저희는 더블 엑스트라 라이트 카놀라유를 사용하는데요
오 그렇담 안되겠네요 뉴욕식 호밀 퍼지 크루아상을 주세요. 그 안에는 어떤 유화제가 들어갔죠? (중략)
무엇을 사든 선택의 폭이 너무 넓어서 시간이 원래의 10배는 더 걸리지만 이상하게도 이것은 불만족을 낳는다. 물건의 종류가 다양해지면 다양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다양한 물건들을 찾고 더욱 다양한 물건을 찾을수록 사람들은 더욱 더 다양한 물건들을 찾는다. 여러분은 모든 것을 더욱 더 많이 원하는, 끊임없고 억제할 수 없는 욕구를 지닌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느낌을 받을 때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소매점을 돌면서 새로운 물건과 옷과 음식을 찾는 게 주된 여가활동이 된 사회에 살고 있는 듯하다. -2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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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9-03-18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고싶어요. 읽어야겠어요. 불끈!

웽스북스 2009-03-20 01:46   좋아요 0 | URL
아. 참고로 10년 전에 나왔던 책이에요 -_- 알고 읽으시면 좀 덜 실망하시려나..
 
우리들의 하느님 - 권정생 산문집, 개정증보판
권정생 지음 / 녹색평론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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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이 땅의 농촌과 농촌 교회를 걱정한다면 좀 더 적극적이고 실질적인 삶이 있어야 한다. 나는 신학이 어떤 것인지 잘 모르지만 올바른 신학을 한다면 농학, 인간학, 자연학을 함께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예수는 추상적이며 관념에 머문 신학을 가르치지 않았다. 입으로 설교하는 목회가 아니라 몸으로 살아가는 목회자가 있어야 한다. -36쪽

내가 한국의 목사님들께 감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목사님도 사회의 직업을 하나씩 가지라는 것이다. 미장이만 되는 것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국회의원도 되고 대통령도 되고 판사, 검사, 대학교수, 회사원, 공장노동자, 거리의 청소부, 운전기사, 비행기조종사, 승무원, 국민학교 선생님, 고기잡는 어부, 사과밭을 가꾸는 농사꾼, 어쨌든 할 수 있는 일이면 자신의 능력대로 일하는 목사님이 되라는 것이다. 함께 일하지 않고는 일주일 계속 책상머리에 앉아 설교준비를 해도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위로가 되는 설교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41쪽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대학입시에 수석합격했다고 감사하고, 복권에 당첨됐다고 감사하고, 취직되었다고, 병고쳤다고, 외국산 전기밥통을 선물로 받았다고 감사하고, 승진되었다고 감사하고, 시집 잘 갔다고 감사하고, 이런 감사는 모두가 이기적인 감사다.
내가 금메달을 따면 못 따는 사람이 있고, 내가 수석을 하면 꼴찌한 사람이 있고, 내가 당첨되면 떨어진 사람이 있고,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못되는 것은 생각하면 어찌 기뻐할 수 있겠는가. 그런 감사를 하느님은 절대 기뻐하지도, 바라지도 않으신다.
왜 나만이 앞서야 되는지 좀 생각해보기 바란다. -51쪽

하느님과는 상관 없는 기도, 이웃의 고통은 아랑곳없이 오직 나의 출세와 성공만을 위한 기도가 어찌 진정한 기도인가. 그런 기도를 예수께서 언제 가르쳐 주었던가.
주님의 기도문엔 처음부터 끝까지 나 하나만을 위한 기도는 없다. 한결같이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다.
나만을 위한 기도는 곧 나만을 위한 삶이 있을 뿐이다. 주기도문은 앉아서 입으로 외는 기도가 아니다. 행동하는 기도, 살아있는 기도다.
하느님의 나라가 와서 임하고,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는 참다운 삶의 기도다. 하느님의 나라에 특혜라는 건 없다.
햇빛이 정부 고관이나 부잣집에만 비추는 것이 아니듯이, 비가 골라가면서 내리지 않듯이, 하느님의 나라는 모두가 고른 세상이다. 그 나라를 이루어지게 하려고 예수는 이 땅에 와서 고통을 겪는 삼ㄹ을 살고 또 그렇게 죽은 것이다.
천국은 우리가 쳐다보는 저 먼 공중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천국은 이 땅 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이 만든 이 땅이 얼마나 아름다운데 왜 우리는 이 땅을 업수이 여기는가. -55쪽

평화를 만드는 길은 어느 한 두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도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루지 못하고 실패했다. 다만 예수는 평화를 만들 수 있는 방법만 가르쳐주고 죽었을 뿐이다. 이 방법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바로 성인들이라고 나는 일컫고 싶다. -62쪽

말의 낭비나 돈의 낭비는 모두가 거짓을 감추려는 인간의 권위와 허영에서 비롯된 것이다. -75쪽

누구라도 이런 상황이면 어떻게 할까. 과연 성경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웃을 살리기는 커녕 애걸하며 붙잡는 것을 뿌리치고 넘어진 사람을 짓밟고 타넘고 무작정 달아나야 살아남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 자체가 죄악인 것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조차 가소롭기 그지없다. -126쪽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란 직설적인 말이 성경책에 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침노란 말은 총칼을 든 군대가 쳐들어가서 빼앗는 것이 아니라 고통의 현장에 뛰어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희생하는 정신이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이런 행동으로 하느님의 부르심대로 평생을 역경 속에 살았다. -1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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