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보일배
1
새해, syo 자신에게 한 첫 번째 질문은, 니가 다섯 권을 읽었으면 그 중 한 권이라도 리뷰로 토해내야 사람 자격 있는 거 아니냐, 양심상- 이었다. 양심良心. 표준국어대사전은 그것을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하는 데, 그렇다면 표준과 국어와 대사전의 성삼위일체는 아무래도 syo가 변별력 없고 도덕적 의식이 멀건, 그야말로 개차반이라고 선고하고 싶은 모양이다. 개차반. 그것을 표준국어대사전은 ‘개가 먹는 음식인 똥이라는 뜻으로, 언행이 몹시 더러운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라고 적시한다는 점을 또한 거론할 만하다. 그러니까 요약하자면, 새해는 왔어도 리뷰를 쓰지 않는다면 syo란 그저 새해에 새로 싼 똥일 뿐이고, 표준국어대사전은 도무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질 줄 모르는 냉혹한 언어 살인기계라는 것이다…….
2
카드회사에서 문자가 오기를, 12월 syo의 대중교통 이용 건수는 3건, 총 교통비는 3,300원이라고 한다. 집 밖에 어지간히 안 나간다는 거, 내 몸뚱이라서 내가 제일 잘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였다고!? 아, 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코로나 시대의 참시민을 목도하고 계십니다.
이제 상남자의 시대는 끝났다, 밝아오는 새 시대는 방남자의 것이다…….
3
연말연시에는 대구에 있었다. 친구 호밀이 일터 근처에 작은 오피스텔을 구한 덕에 코로나 시기에도 우리 패밀리(syo, 三, 호밀, 박곰돌 : 5인 미만입니다)는 작당 모의할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1월 1일이었다. 모여서 대충 치킨이나 시켜 먹을 줄 알았더니, 근래 요리에 꽂혔는지 호밀이 직접 손님 대접을 하겠다고 오전부터 수선을 떨어대는 것이었다.
<돼지 탐험대 단톡방>
- 호밀 : 어제 장 봐놓고 지금 음식 준비 중임. 오늘 저녁에 보면 될 듯?
- syo : 굿.
- 三 : 굿굿.
- 박곰돌 : 굿굿굿.
- 호밀 : 1. 슈바인 학센 / 2. 투움바 파스타 + 치킨 + 3종 치즈를 곁들인 감자튀김 / 3. 스테이크 + 순두부찌개 + 버섯곤드레밥 / 4. 치즈케이크 + 초코브라우니 + 생딸기쉐이크
- 三 : 22222222
- syo : 닥치고 2번 아니냐.
- 박곰돌 : 곤드레…….
- 호밀 : 아니, 니들한테 선택권 따위는 없다. 왜냐하면 이건 1234 다 나오는 코스요리거든.
- syo : 😲!!!!!!!
- 三 : 😨!!!!!!!
- 박곰돌 : 😱😱😱😱곤드레!!!!!!
호밀. 그는 점심나절부터 브라우니와 치즈케이크를 미리 구워놓고(오늘을 위해 90만원짜리 오븐을 샀다는 호기로운 구라는 존경심으로 상쇄), 딸기 덩어리가 둥둥 떠다니는 쉐이크를 미리 제조하고, 스테이크를 숙성시키고, 매실이 들어간 독창적인 치킨소스를 창조하는 등등의 일을 하며 우리를 기다렸다. 그리고 19시에 집합이 완료되자 숙련된 셰프처럼 착착착 코스 요리를 내왔는데, 마지막 브라우니를 입에 집어넣으며 아씨의 발, 겁나 배 터져!를 외쳤을 때가 22시 30분이었다. 네 명 합쳐 350kg에 육박하는 우리 돼지돼지 패밀리의 배를 터뜨리고도 남음이 있던 저 막대한 식량의 flow를 부드럽게 감당한 호밀. 그의 재바르고 정밀한 손과 우리가 먹는 것만 봐도 배가 부르다며 씨익 웃던 그의 어미새 마인드를 다시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렇게 기름진 육폭식을 마친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새벽 1시까지 무려 <리틀 포레스트>를 감상했다고 합니다…….
칼로리 폭탄으로 우리 일당의 배를 빵 터뜨린 호밀이를 syo는 2021년 1월 1일부로 윤봉길 선생님과 동급으로 존경하기로 결심했다.
--- 읽은 ---
1. 마흔에 관하여
정여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
새해 벽두부터 이런 책을 읽고 말았지만, 아직 마흔은 아니랍니다.
일단 좋다. 아름답고, 든든하다. 에세이스트 정여울 선생님의 기량이야 논할 필요가 없지. 그렇지만 선생님의 책을 두 자리수로 읽은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또 이런 것은 있다.
알라딘에 ‘정여울’이라고 때려 넣으면 찾아지는 국내 도서의 수가 64종이다. 대부분 에세이고. 그러면 당연히 작가가 자신의 글로 겨냥하는 분야가 다양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인간이 무언가에 대해 책을 쓸 만큼 정통해지는 일이란 쉽지 않으니 종횡무진에는 한계가 있게 마련, 결국 이야기는 겹치거나 얇아질밖에. 그렇게 자연스레 쓸 말은 줄어드는데 한 권을 채워내려면 중언부언을 동원해 길게 써야만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밀도가 감소하고 마는데 또 그걸 막으려면 내용의 유사를 표현의 다채로움으로 메꿔야 한다. 여기까지 오면 어떻게든 밀도를 유지하면서도 한 권의 제대로 된 책을 뽑아낼 수는 있는 것 같다. 각자 자신의 색을 자랑하지만 실은 유사한 말들일 뿐인 문장들의 반복된 공격은 지나치게 현란한 느낌을 줄 때가 있다. 마치 해가 두 개 뜬 하늘처럼. 그리고 그런 느낌은 작가의 여러 책을 읽다 보면 더 크게 다가온다. 1년에도 책이 두세 권씩 나오는 다작 에세이스트의 슬픈 숙명 중 하나는, 그의 책 한두 권을 새로 접한 이에게는 더없이 달콤하지만, 십수 권을 읽는 단골손님에게는 도리어 그렇지 못하게 되는 일이다.
결론. 아름답지만 필연적으로 다소 중언부언.
중년은 결코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시간’이 아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비로소 나 혼자만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시기, 지혜와 용기를 굳이 저 멀리 타인의 참고문헌에서 꺼내오지 않고 나 자신에게서 바로 참고할 수 있는 시기, 그리하여 내 안에 깃든 밝음과 향기만으로도 능히 내 세상을 지탱할 수 있는 뱃심이 두둑해지는 시기. 그것이 바로 찬란한 ‘마흔’이라는 시간이다.
_ 정여울, 『마흔에 관하여』
2. 아침 3분 데카르트를 읽다
오가와 히토시 지음 / 이정환 옮김 / 나무생각 / 2017
이번에는 진심이다. 자기계발과 철학을 버무린 책은, 그리고 그 책이 일본에서 건너왔다면, 이제 더는 읽지 않아야겠다.
이런 대목이 있다.
가슴 아픈 경험이 하나 있다. 철학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무역상사 신입사원 시절의 이야기다. 대기업에 입사하여 스스로 위대하다는 착각에 빠진 나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잘난 척 함부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특별히 아는 척을 했던 것은 아니고 정말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다, 오만이다. 함부로 판단을 내렸다가 나중에 상사로부터 “자네,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나?”, “그런 말을 했다면서?”라는 질책을 듣고 후회하곤 했다. 그때는 나 자신의 잣대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잣대로 사물을 판단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에, “자신감을 가지고 단언하라”는 명제를 중심으로 이런 대목도 등장한다.
한번 상상해보자. 자신감이 없는 의사가 다음과 같이 자신의 소견을 말한다. “아마 약으로도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수술을 하면 아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런 말을 듣는다면 환자는 불안을 느끼고,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이 수술을 하면 반드시 좋아집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의사가 아니라면 환자나 보호자는 수술을 맡기고 싶지 않을 것이다.
앞의 의사의 예는 극단적일 수 있지만 사실 자신감을 어떤 직업에도 적용할 수 있다.
물론 이 자신감을 가지기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해서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는 전제를 붙이지만, 그건 뭐 김치볶음밥을 김치와 밥을 볶아서 만든다는 말이라서 별로 언급할 가치가 없다. syo가 하고 싶은 말은 이렇다. 이것이 철학서라면, 저 두 개의 대목이 상충하는 지점을 해소하기 위한 실마리를 제공해야 한다. 뒷 문단에 등장하는 의사가 앞 문단의 저자처럼 ‘특별히 아는 척을 했던 것은 아니고 정말로 알고 있다고 생각해서’ ‘이 수술을 하면 반드시 좋아진다’고 자신있게 단언했다가 실패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면 어떨까. 내가 아는 것이 진짜로 아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혹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불가능성에 대해) 다루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이 책이 지식에 대한 회의의 상징인 데카르트를 다룬 책이라서 아쉬움이 더 크다.
중요한 것은 머리를 어떻게 사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바꾸어 말하면 모든 일을 대할 때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르 들어, 1+1=2라는 것은 누구나 지식으로서 알고 있다. 하지만 “1+1은?”이라는 질문을 듣고 기계처럼 “2”라고 대답하는 것과,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고 “화학 반응에 따라서는 무한대가 될 수도 있다.”라고 대답하거나 “성질이 바뀌지 않기 때문에 1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_ 오가와 히토시, 『아침 3분 데카르트를 읽다』
3. 책Chaeg 2020. 12
(주)책(월간지) 편집부 지음 / (주)책(잡지) / 2020
늘 느끼지만 이 잡지 참 든든하다. 그리고 점점 전지윤 에디터님의 팬이 되고 있다. 그래놓고 막상 발췌 포인트는 지은경 편집장님의 걸로 따오네.
어쨌거나 우리는 사회로부터 완벽하게 분리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연결만을 유지하며 사회가 보기 좋다고 정해 놓은 많은 허상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을 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요? 우리 뜻대로 될 수 없는 여러 가지 허상을 찾아다니며 그것이 유일한 의미인 양 살기보다는 실제인 것을 바라보고 만족하는 삶이 더 큰 의미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데이터로 측정할 수 있는 삶이 아닌 스스로 계절과 자연을 느끼는 것에 의미를 두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_ 지은경, 「허상이 이상인 세계」
4.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지음 / 김아림 옮김 / 책세상 / 2020
기초과학 연구 지원 미흡이 장기적인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어제오늘 문제도 아니고, 매번 노벨상 시즌마다 반복되어 지적되는 걸 보면 아직 해결된 문제도 아니다. 이 책 역시 요약하자면 결국 그 말이긴 하다. 그래도 다른 방식으로 읽어 볼 여지도 있다. 이를테면 사내에서 업무와 관련 없는 자유로운 활동을 하도록 지원하는 어떤 기업의 생산성에 대한 고찰이랄지, 아니면 쓸모없는 인간에게 어떤 쓸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랄지……. 왜 이 책을 읽었는지 들켰군. 실은 제목을 보고 유추적용의 욕망이 일었던 것이다. 쓸모없는 인간으로 산다는 건 이렇듯 저거라도 잡아보면 나아질까 싶은 지푸라기들이 사방천지에 둥둥 떠다니는 삶을 사는 일이다.
응용된 연구와 아직 응용되지 않은 연구라는 구별법을 따르는 일은 현명할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다. 수많은 중요한 방식으로 사회에 공급되는 과학적 혁신을 가동하고 장려하기 위해서는, 잘 관리된 금융 자원에 접근하는 것처럼 연구 포트폴리오를 충분히 개발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이다. 균형 잡힌 포트폴리오는 예측 가능하고 안정적인 단기 투자는 물론, 본질적으로 더욱 위험하지만 어마어마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장기적인 투자를 포함한다. 건강하고 균형 잡힌 생태계라면 상호의존성과 피드백 고리가 어우러져 복잡한 망을 육성할 수 있는 완전한 범위의 학문을 지원할 것이다.
_ 에이브러햄 플렉스너, 로버르트 데이크흐라프, 『쓸모없는 지식의 쓸모』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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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수학은 처음이야 / 최영기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 메리 앤 셰퍼, 애니 배로스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오연호
을의 철학 / 송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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