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걸 4년째 하고 있군요. 2017년 처음 결산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2018년 두 번째로 결산을 할 때쯤 내가 뭐라고 이런 거창한 짓을 하고 있나 싶더라구요. 2019년 결산을 하면서는, 그래, 내가 뭐라고 아이고 내가 뭐라고 징징징- 하고 있지 말고 차라리 힘을 모아서 진짜 뭐라도 되어 보자 했는데, 오늘 결산을 하며 되돌아보니 뭣도 되지 못한 2020년이었습니다. 서글픔.

 

먼저, 2019년 말까지 백수였다가 올해 13일 자로 직장인이 되었는데, 지금은 다시 백수입니다. 직장 같은 직장은 처음 다녀봤는데, 그냥 그랬어요. 원래 끈기가 없는 인간인 탓도 있지만, 빈번히 불행하더라구요.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자주 불행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견디는데 불행한 삶에는 면역이 없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알았네요.

 

엄마는 상태가 엉망입니다. 암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네요. 의사도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한동안 대구에 내려가 있어야겠네요.

 

2019, 35년짜리 백수 생활도 이제 신물이 나고 10년짜리 연애는 결국 파투가 났던 2019, 환자들 앓는 소리로 귀 마를 새가 없던 병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아, 올해는 좀 힘들구나, 올해는 확실히 힘들었다고 말하고 다녀도 뻔뻔하다 소리 들을 일은 없겠구나, 최악이구나, 생각했었는데요. 아무래도 2021년은 그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앓는 엄마와 없는 엄마 중 그래도 뭐가 더 나은지는 선명하니까요.


 


*


책 이야기를 해야지요. 북플이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올해는 이렇습니다.


 

01: 18

02: 11

03: 05

04: 05

05: 08

06: 34

07: 11

08: 25

09: 46

10: 38

11: 27

12: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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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 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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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 411

2018 : 500

2017 : 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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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20 : 1,858

 

딱 보니까 이런 상황이네요.

 

1(18) : 인재개발원 연수라 그래도 여유가 좀 있었다.

2(11) : 구청 발령 받았지만 멋모르고 어영부영 3일에 한 권은 읽었다.

3(5) : 9급 함부로 발로 까지 마라,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직종이었다.

4(5) :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업무량이 두 배라네요, 와 신발, 적같이 신난다 내 인생! 으하하하하!

5(8)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6(34) :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 엎어보자.

7(11) : 언제 관둔다고 말하지? -> 관두기로 했으니까 하던 일은 마무리해야지 으아아아.

8(25) : 살맛 난다.

9(46) : syo가 돌아왔다.

10(38) : 그래도 먹고 살긴 해야 할 텐데…….

11(27) : 할 공부는 있지만 그래도 백수가 하루에 한 권은 읽어줘야 사람 대접 받지 않을까?

12(30) : 에라, 모르겠다. 내년에 더 빡세게 구르면 되겠지…….

 

일을 하면서 읽는 건 정말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일도 일 나름이겠고 체력 부족 짬 부족 탓도 있겠지만, 허허허, 세상 만만한 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마음을 비웠습니다. 추세로 보면 2021년에는 150권 언저리 나오겠고, 무릎 시리기 전에 만 권 찍어보리라는 부질없는 꿈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군요.




*

 

올해는 별로 실하게 읽지도 못해서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랍시고 목록 올리기도 뭣하네요. 내년에는 좀 더 실하고 두껍한 애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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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되풀이 / 황인찬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북항 / 안도현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 이규리

 

 

 

<에세이>



어떤 양형 이유 / 박주영

맨 얼라이브 / 토머스 페이지 맥긴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

길 잃기 안내서 / 리베카 솔닛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보통의 언어들 / 김이나

 

 

 

<한국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마음의 빌라 / 백수린

복자에게 / 김금희

체공녀 강주룡 / 박서련

시절과 기분 / 김봉곤

경애의 마음 / 김금희

 


 

<외국 소설>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어젯밤 / 제임스 설터

아우스터리츠 / W. G. 제발트

그 후 / 나쓰메 소세키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철학>



왜 칸트인가 / 김상환

프로이트 패러다임 / 맹정현

성의 역사 1 / 미셸 푸코

 

 

 

<젠더 / 페미니즘>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 캐슬린 배리

흑인 페미니즘 사상 / 패트리샤 힐 콜린스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만화>



사브리나 / 닉 드르나소

마주 보기 / 장 자크 상뻬

 

 


* 

 

위기의 2020을 지나온 것도, 첩첩산중 2021을 지나갈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이 없었으면 어려웠겠고 어렵겠습니다.

 

더덕단 친구들 감사합니다. 처음 결성될 때는 이 정도까지 든든한 단체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요. syo 인생의 3보험, 암보험 실손보험 더덕보험 사랑합니다.

 

안아주는 일 하나조차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데도 겁 없이 늘 최선을 다해 안아주는 사람, 사랑합니다. 덕분에 버텼던 시간들 하나도 보답해주지 못했는데 또다시 덕분에 버팁니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 다신 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었는데요.

 

2020, 코로나 없이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2020년인데도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이슈가 전혀 없었네요. 주변에 확진 난 사람도 하나 없고, 어차피 출근도 퇴근도 없는 인생이라 감염 위험도 낮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덕을 본 경우까지 있었네요. 허허. 다들 어떠셨는지. 우리 알라딘 작은 마을 이웃 여러분들, 격랑은 한해가 저무는 밤에 죄다 가라앉고 건강과 평안이 가득한 2021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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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12-31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보다 더 힘든 한 해 보내셨습니다. ㅠ
올해는 저만 무척 힘든 줄 알았습니다. ㅠㅠ
‘이 또한 지나가리!’를 외치면 더 나은 내년을 기대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syo 2021-01-01 11:00   좋아요 1 | URL
공무원들 복무신조 비슷한 거더라구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일하던 중에는 그걸 외울 일이 별로 없었는데, 2021년에는 어떻게 될까요...

북다님께는 ˝멈추어라, 너 참 아름답구나˝ 하실 2021년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1-01-01 19:42   좋아요 0 | URL
‘이 또한 지나가리’란 말은 저도 잘 안 쓰는 말인데, 정말 어쩔 수 없을 때, 세상이 정말 무엇인지 모를 때, 만사가 내 맘 같지 않을 때 최후에 떠오르는 말인 것 같습니다.
제 느낌의 표현이 아직 짧은 것 같습니다. ㅠ

독서괭 2020-12-30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 syo님 이 글을 오전에 읽고서 일단 좋아요만 눌러놨는데 지금 잠들려 하는 이 시간까지 틈틈이 계속 떠올랐어요. 한해에 한 사람에게 모두 일어나기 힘든 일들을 겪으셨네요. 부디 새해에는 “다사”는 있더라도 “다난”은 없기를...

syo 2021-01-01 10:58   좋아요 0 | URL
독서괭님도 2020년 어떻게 보내셨는지 모르겠지만 2021년은 그와 비교도 안 되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한 해 만드실 거예요.
무플방지위원회 1호 위원님 늘 감사합니다^-^

AgalmA 2020-12-31 0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힘들다 힘들다 하시면서 이 독서양은 무엇이죠! 저도 힘들었는데 님에 비하면 앓는 소리 말아야 할 것 같은ㅜㅜ
어머님 병세가 괴롭게 진전되지 않았으면 싶고... 기운내시길, syo 님

syo 2021-01-01 10:57   좋아요 1 | URL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셔서 희망 가져봅니다 ㅎㅎㅎㅎ 아갈마님 늘 감사해요^-^

2021년도 잘 부탁드립니다 ㅎㅎ

91 2020-12-3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대단해요.. 항상 syo님의 글을 보며 읽어갈 책들을 하나하나 추가하고 있답니다. 표현은 안했지만 항상 감사해요. 저는 올 한 해 코로나라는 핑계로 책은 뒷전이었네요... 그래도 syo님 덕에 좋은 책 많이 알아갔으니 그걸로 만족한답니다 ㅎㅎ 내년에 읽으면 되니까요! 여튼 덕분에 감사한 2020년이었습니다. 2021년도 부탁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1-01-01 10:56   좋아요 0 | URL
알라딘 참 좋은 곳이죠? 읽을 책이 무한 증식한다 ㅎㅎㅎㅎ

2020년 마무리하며 91님이 가슴에 품으신 계획이나 바람들이 모두 이루어지는 2021년 되시기를 기원할게요. 제가 자주 등장하지는 않지만, 자주 만나요 ㅎㅎ

나무처럼 2020-12-31 1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syo님
올 한 해 수고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21-01-01 10:54   좋아요 0 | URL
2020년 참 감사했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힘차게 2021 열어나가시길 기원합니다^-^

scott 2020-12-31 22: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가족을 잃어본 사람으로서 말씀드리지만 곁에 계실때 최대한 좋은 기억을 많이 만드세요
전 한국에 없을때 돌아가셔서 몇년뒤에 빈자리로 슬픔이 밀려와서 힘들었네요.
마음이 많이 무겁지만 쇼님 힘내세요.

천권을 가슴에 세기 신 쇼님
2021년 쇼님에게 행운과 사랑이 가득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연하장 놓고 갑니다.

새해 행복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2021년 신축년
┏━━━┓
┃※☆※ ┃🐮★
┗━━━┛
힘내세요

syo 2021-01-01 10:54   좋아요 1 | URL
저런 귀여운 표정이나 트리, 연하장 이런 것들은 스캇님이 발명하시는 건가요 ㅋㅋㅋㅋ 맘에 쏙 듭니다.

힘이 되는 말씀 꼭 품고 2021도 열심히 살아야지. 스캇님도 행복 폭발 2021되세요^-^

2020-12-31 23: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1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초딩 2020-12-31 23: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올 한 해 감사했습니다 :-) 파이팅 한 해 기원합니다

syo 2021-01-01 10:51   좋아요 2 | URL
창밖이 어제랑 똑같은데 새해라네요.....
작년이 초딩님께 어떤 한해였든, 올해는 훨씬 더 행복한 1년이 되실 거예요^-^

페크pek0501 2021-01-01 13: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님을 독서광으로 임명합니다.
알라딘에서 가장 기억하기 쉬운 이미지를 쓰시는 분으로도 임명합니다.
글을 맛있게 쓰는 분으로도 임명합니다. (누구 맘대로? 페트 맘대로...)


한 해 동안 감사했습니다.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새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syo 2021-01-02 13:32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임명왕 페크님으로 임명합니다. 1댓3임명 하셨네요.

페크님께서도 올해 많이 읽고 쓰시고, 또 한 권 내시길 ㅎㅎ

2021-01-04 11: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1-04 1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고양이라디오 2021-01-1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찾아뵙습니다. syo님. 2020년 많은 일들이 있으셨군요. 그동안 안녕하셨냐는 뻔한 인삿말을 드릴려고 했는데ㅠ

21년에는 좋은 일들 있으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어머님 부디 좋아지시길.

syo 2021-01-14 23:23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 고라님 오랜만입니다. 잘 사시지요? 요즘 다시 부쩍 활동량을 늘리신 것 같던데, 반갑습니다!
많은 좋은 분들이 좋은 말씀 많이 해주셔서 좋은 일 있을 거라고 좋게 좋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라님께서도 찬란한 21년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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