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걸 4년째 하고 있군요. 2017년 처음 결산을 할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2018년 두 번째로 결산을 할 때쯤 내가 뭐라고 이런 거창한 짓을 하고 있나 싶더라구요. 2019년 결산을 하면서는, 그래, 내가 뭐라고 아이고 내가 뭐라고 징징징- 하고 있지 말고 차라리 힘을 모아서 진짜 뭐라도 되어 보자 했는데, 오늘 결산을 하며 되돌아보니 뭣도 되지 못한 2020년이었습니다. 서글픔.
먼저, 2019년 말까지 백수였다가 올해 1월 3일 자로 직장인이 되었는데, 지금은 다시 백수입니다. 직장 같은 직장은 처음 다녀봤는데, 그냥 그랬어요. 원래 끈기가 없는 인간인 탓도 있지만, 빈번히 불행하더라구요.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자주 불행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행복하지 않은 삶은 아무렇지도 않게 잘 견디는데 불행한 삶에는 면역이 없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알았네요.
엄마는 상태가 엉망입니다. 암이라는 게 참 알 수 없네요. 의사도 최악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장은 아니지만, 한동안 대구에 내려가 있어야겠네요.
2019년, 35년짜리 백수 생활도 이제 신물이 나고 10년짜리 연애는 결국 파투가 났던 2019년, 환자들 앓는 소리로 귀 마를 새가 없던 병실 간이침대에서 쪽잠을 자면서 아, 올해는 좀 힘들구나, 올해는 확실히 힘들었다고 말하고 다녀도 뻔뻔하다 소리 들을 일은 없겠구나, 최악이구나, 생각했었는데요. 아무래도 2021년은 그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앓는 엄마와 없는 엄마 중 그래도 뭐가 더 나은지는 선명하니까요.
*
책 이야기를 해야지요. 북플이 알려주는 바에 따르면, 올해는 이렇습니다.

01월 : 18권
02월 : 11권
03월 : 05권
04월 : 05권
05월 : 08권
06월 : 34권
07월 : 11권
08월 : 25권
09월 : 46권
10월 : 38권
11월 : 27권
12월 : 30권
---------
2020 : 258권
---------
2019 : 411권
2018 : 500권
2017 : 689권
---------
2017-2020 : 1,858권
딱 보니까 이런 상황이네요.
1월(18) : 인재개발원 연수라 그래도 여유가 좀 있었다.
2월(11) : 구청 발령 받았지만 멋모르고 어영부영 3일에 한 권은 읽었다.
3월(5) : 9급 함부로 발로 까지 마라,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직종이었다.
4월(5) : 이놈의 코로나 때문에 업무량이 두 배라네요, 와 신발, 적같이 신난다 내 인생! 으하하하하!
5월(8) : 여긴 어디? 나는 누구?
6월(34) :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겠다 엎어보자.
7월(11) : 언제 관둔다고 말하지? -> 관두기로 했으니까 하던 일은 마무리해야지 으아아아.
8월(25) : 살맛 난다.
9월(46) : syo가 돌아왔다.
10월(38) : 그래도 먹고 살긴 해야 할 텐데…….
11월(27) : 할 공부는 있지만 그래도 백수가 하루에 한 권은 읽어줘야 사람 대접 받지 않을까?
12월(30) : 에라, 모르겠다. 내년에 더 빡세게 구르면 되겠지…….
일을 하면서 읽는 건 정말 마음 같지 않았습니다. 일도 일 나름이겠고 체력 부족 짬 부족 탓도 있겠지만, 허허허, 세상 만만한 게 없더라구요. 그래서 그냥 마음을 비웠습니다. 추세로 보면 2021년에는 150권 언저리 나오겠고, 무릎 시리기 전에 만 권 찍어보리라는 부질없는 꿈은 먼지가 되어 날아가는군요.
*
올해는 별로 실하게 읽지도 못해서 인상 깊게 읽었던 책이랍시고 목록 올리기도 뭣하네요. 내년에는 좀 더 실하고 두껍한 애들로…….
<시>




사랑을 위한 되풀이 / 황인찬
제주에서 혼자 살고 술은 약해요 / 이원하
북항 / 안도현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 / 이규리
<에세이>






어떤 양형 이유 / 박주영
맨 얼라이브 / 토머스 페이지 맥긴
우물에서 하늘 보기 / 황현산
길 잃기 안내서 / 리베카 솔닛
언젠가, 아마도 / 김연수
보통의 언어들 / 김이나
<한국 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 / 김연수
마음의 빌라 / 백수린
복자에게 / 김금희
체공녀 강주룡 / 박서련
시절과 기분 / 김봉곤
경애의 마음 / 김금희
<외국 소설>




스포츠와 여가 / 제임스 설터
어젯밤 / 제임스 설터
아우스터리츠 / W. G. 제발트
그 후 / 나쓰메 소세키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 / 유진 오닐
<철학>



왜 칸트인가 / 김상환
프로이트 패러다임 / 맹정현
성의 역사 1 / 미셸 푸코
<젠더 / 페미니즘>



섹슈얼리티의 매춘화 / 캐슬린 배리
흑인 페미니즘 사상 / 패트리샤 힐 콜린스
모니크 위티그의 스트레이트 마인드 / 모니크 위티그
<만화>


사브리나 / 닉 드르나소
마주 보기 / 장 자크 상뻬
*
위기의 2020을 지나온 것도, 첩첩산중 2021을 지나갈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의 힘이 없었으면 어려웠겠고 어렵겠습니다.
더덕단 친구들 감사합니다. 처음 결성될 때는 이 정도까지 든든한 단체가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요. syo 인생의 3보험, 암보험 실손보험 더덕보험 사랑합니다.
안아주는 일 하나조차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데도 겁 없이 늘 최선을 다해 안아주는 사람, 사랑합니다. 덕분에 버텼던 시간들 하나도 보답해주지 못했는데 또다시 덕분에 버팁니다. 누군가를 위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거, 다신 하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었는데요.
2020년, 코로나 없이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는 2020년인데도 개인적으로는 코로나 이슈가 전혀 없었네요. 주변에 확진 난 사람도 하나 없고, 어차피 출근도 퇴근도 없는 인생이라 감염 위험도 낮습니다. 심지어 코로나 덕을 본 경우까지 있었네요. 허허. 다들 어떠셨는지. 우리 알라딘 작은 마을 이웃 여러분들, 격랑은 한해가 저무는 밤에 죄다 가라앉고 건강과 평안이 가득한 2021년 맞이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