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마실

 

 

 

syo는 밤에 글을 쓰는 것이 특별하게 두렵진 않다. 밤에 쓰면 별이니 달이니 별 같은 사랑이니 달 같은 영원이니 하는 간지러운 단어를 남발하기 쉽지만, 뭐왜뭐


글쓰기 책에는 밤에 쓴 글을 해 뜨고 읽었더니 오글오글 손발이 점으로 무한히 수렴하더라는 식의 경험담, 저자인 나도 겪어봤지만 독자인 너도 글깨나 깨작대봤다면 남 일은 아닐 거야- 하는 식의 경험담이 종종 등장한다. 감정 과잉의 글을 경계하라는 취지다. 밤에는 쓰는 게 아니라 싸는 것이다! 겁나 부끄러움만이 남을 뿐이다


그러나 낮에 쓴 글, 이성의 견고한 토대 위에서 절제의 붓질로 태어난 글이라면 부끄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은 오만이다. 시간이 지나고 다시 읽어보면, 과거의 글들은 대체로 부끄럽다. 이성이고 삼성이고 간에 그냥 오그라든다. 몇 년 지나고 다시 읽었는데 그때 쓴 글이 여전히 완벽해 보인다면, , 당신은 망하고 있거나 망하기 위해 추진력을 모으는 중입니다. 물론, , 내가 이런 걸 썼다니, 그것도 서른이 되기도 전에! 이런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 아주 가끔 튀어나오긴 하겠지만, 그래도 추세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 잘난 글을 중심으로 며칠 사이의 글을 함께 읽어본다면 그럼 그렇지 싶게 마련. 그러니까 결국, 글 쓰는 이의 운명이란 퇴보와 부끄러움의 Y자형 갈림길을 반복적으로 맞닥뜨리는 꼴이 아닌가 싶다


syo의 경우 밤에 썼든 낮에 썼든 옛날에 쓴 글은 전반적으로 쪽팔려서, 오늘도 밤에 글을 쓰지만 그게 특별히두렵진 않은 것. 이러다 가끔 하나 얻어걸리면, 3년쯤 뒤에 다시 읽고 혼자 감탄하면서 이런 대사나 치는 것이다. 그때 난 천재였지. 하지만 그땐 그걸 몰랐고 지금은 명확히 알겠어. 난 더는 천재가 아니라는 걸.

 

사람들은 너무 낮에만 글을 쓴다. 혹은 밤에 쓴 글은 부끄러워 세상에 내놓지 않는다. 그렇지만 밤에 쓴 글을 어느 다른 밤에 읽고 있는 어느 다른 사람이 있어 낮보다도 환한 위안을 얻는 일도 있을 것이다. 영하 10도다. 밤이 길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다들 나처럼 새벽 1시까지 깨작댈 수 있는 팔자 좋은 백수는 아니구나. , 출퇴근 멸종했으면. 세상에, 얼마나 됐다고 백수 공무원 적 생각 못 하고. 죄송합니다. 경솔했네요. 이래서 밤에는 글을 안 쓰는 것이었군요…….

 

 

 

--- 읽은 ---

 


251. 다정한 매일매일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0

 

syo는 세 가지 유형의 사람을 가장 사랑한다. 무해한 사람, 다정한 사람, 그리고 귀여운 사람. 이 세 가지 미덕은 서로 완전히 격리되거나 하나가 다른 둘을 배제하는 사이는 아니어서, 다정한 사람이 무해하고, 귀여운 사람이 다정하고, 무해한 사람이 귀엽기도 하다. 이 세상에는 심지어 무해하고 다정하고 귀여운 사람조차 존재해주신다. 세상 평화로움과 아름다움은 다 그런 사람들이 암암리에 만들고 있는 것이다. 날숨에 내쉬는 이산화탄소조차 은총인 사람들. , 물론 애기 멍뭉이처럼 생명체가 지나치게 귀여워 버리면 내 심장에 유해하기도 하지만……♡


어, 엄마 그 밑에서 뭐해?

 

하지만 무해한 사람도, 다정하고 귀여운 사람도, 매일매일 한결같이 그러기는 불가능하다고 봐야지. 다정한 매일매일이란, 그런 불가능성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다정한 하루를 꾸려나가겠다는 무해하고 너무 귀여운 다짐이다. 좋아, 씩씩하게 무해하고 뚜벅뚜벅 다정하자. 그럼 완벽하지. 내가 또 귀여운 거 그건 아주 타고났으니까……♡

 

그나저나 2020은 백수린이구나. 여름의 빌라에서 다정한 매일매일을. 

 

사람들은 쉽게 타인의 인생을 실패나 성공으로 요약하고 싶어 한다하지만 좋은 문학 작품은 언제나어떤 인생에 대해서도 실패나 성공으로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세상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당신과 나는 반드시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고 고독과 외로움 앞에 수없이 굴복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사실이다하지만 괜찮다그렇더라도당신이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인 채 생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기만 한다면우리가 서로에게 요청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뿐이다.

백수린다정한 매일매일

 

 

 


252. 성호사설을 읽다

설흔 지음 / 유유 / 2020

 

한국사 외울 때, 저놈의 실학자 패밀리들은 아주 신물 나는 존재였다. 분명히 큰 틀에서 다들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했으니 한 카테고리에 묶였을 텐데, 그 안에서도 차이점을 부각시켜 누군 중농이고 누군 중상이고 이렇게 구분하는 건 약간 중상모략 같았다. 그리고 그 실학이라는 게 뒷날 보니 선구적이었던 거지, 그 많은 실학자들 가운데 지기 시대에 자기 사상을 접목시켜 경세하고 치용한 사람도, 이용하고 후생한 사람도 거의 없다. 물론 그게 그들 탓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들이 그들의 시대에다 해 놓은 건 딱히 없는 것. 그러니까 오늘날 실학의 입장이라는 건 뭐랄까, 주판 시대에 태어나버려서 널리 이용되지 못하고 사장된 286 컴퓨터가 스마트폰 시대에 재조명된 것 같은 모양새가 아닌가. 신박할 땐 묻혔다가 다 낡아 쓸 수도 없을 때야 발견된 지식. 우리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이렇게 똑똑한 얼리어답터에 트렌드세터였다는 증거로 밖에는 기능하지 않는 일종의 화석 같은. 잘 모르겠다. 17세기 할아버지가 만든 20세기 초반까지는 먹혔을 생각을 21세기에 읽는 게 그 할아버지 잘났다는 거 깨닫는 것 말고 무슨 의미가 있는지. 오늘을 사는 syo의 눈에는 공자나 이익이나 도낀개낀 아름다운 대목은 아름답고 훌륭한 대목은 훌륭하며, 낡은 대목은 오십보백보로 낡았다. 아니면, 오늘날에도 되새길 만한 어떤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설흔 선생님 정도의 도력을 갖춰야 하는 것일까

 

하늘과 땅 사이에서 함께 자라나면서 편벽되거나 완전의 차이만이 있을 뿐인데 사람이 어찌 더 물류를 멀리하여 잊어버려야 되겠는가잊지 않는다면 반드시 그 이름을 다 알아야 할 것이니 한 가족이 아무리 많더라도 다 어루만져 사랑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 이름을 알아야 하는 것과 같다라는 구절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설흔성호사설을 읽다

 

 

 

 

--- 읽는 ---

상상력과 가스통 바슐라르 / 홍명희

Chaeg 2020. 12 / ()(월간지) 편집부

법의 이유 / 홍성수

AI 최강의 수업 / 김진형

경애의 마음 / 김금희

당신은 첫눈입니까 / 이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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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20-12-16 07: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밤에 쓰니까 막 쪼끄만 하트를 여기저기 붙이고... 그런 사람이 있어서 세상이 덜 삭막한 거겠죠? ㅎㅎ밤에 읽고 쓰는 대신 쿨쿨 잔 사람은 힘차게 출근이나 해야지 ㅎㅎㅎ

syo 2020-12-17 08:37   좋아요 1 | URL
큰 하트가 적은 세상보다 쪼끄만 하트가 여기저기 있는 세상이 덜 삭막하겠죠?
오늘도 즐거운 출근(역설)되시길(반어아님)^-^

cyrus 2020-12-16 0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밤에 책 읽거나 글 쓰는 일이 오히려 집중이 잘 돼서 좋아요. 요즘은 건강을 생각해서 밤에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자마자 글을 써요. 눈 뜨기 시작해서 아침 식사하기 전의 시간이 그리 길지 않지만, 그래도 제겐 소중해요. 자투리 시간에 글을 조금씩 써놓으면 편해요. ^^

syo 2020-12-17 08:38   좋아요 0 | URL
일찍 자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쪽이 건강에 유리한가요? 저는 아무리 하려고 해도 잘 안되더라구요.....
심지어 아침 식사도 안 하니, 우리는 참 사는 모양이 달라요, 그쵸 ㅎㅎㅎㅎ
자투리 시간이 자꾸 나서 사이러스님이 좋은 글 많이많이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cyrus 2020-12-17 09:14   좋아요 0 | URL
저는 본인이 편한 시간대에 글을 쓰는 습관을 유지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침에 글쓰기가 힘든 대신에 저녁에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정말 당연한 말이지만, 바쁘시고 귀찮더라도 아침 식사는 꼭 하셔야 돼요. ^^

psyche 2020-12-16 08: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을 보니 매가 강아지를 채 가다가 무거워서 옆옆집인가에 떨어뜨렸다는 이야기 들은 게 생각나네요. 매가 채 간다니 무섭긴 한데 강아지가 뚱뚱해서 무거워 떨어뜨렸다니 웃기기도 하고.... 역시 뚱뚱한게 좋은 겁니다!

단발머리 2020-12-16 09:21   좋아요 1 | URL
이 댓글을 제가 좋아합니다*^^

scott 2020-12-16 20:29   좋아요 0 | URL
이 댓글 저도 좋아합니다 ^0^

syo 2020-12-17 08:38   좋아요 0 | URL
이 댓글 저라고 안 좋아할 재간이 없네요^-^

레삭매냐 2020-12-16 0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그것 참.

syo 2020-12-17 08:3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ㅎ 안전하게 구출됩니다. 얼마 못가 떨어뜨리고 주인공이 받아내거든요.

scott 2020-12-16 10: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요님 밤사랑, 밤을 노래 한다-김연수 ㅋㅋㅋ
소요님, 멍뭉이 내려놔요 ^ㅎ^

syo 2020-12-17 08:39   좋아요 1 | URL
저는 멍뭉이를 잡았다 하면 내려놓을 줄 모르는 집요한 짐승입니다 *ㅂ*

stella.K 2020-12-16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사진 무슨 영화에 나온 모양인데, 그것 참...

syo 2020-12-17 08:4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 저러고 가다가 떨어뜨리는 걸 주인공이 받고, 독수리는 주인공 폰을 대신 채갑니다....